올 여름 필자의 가족은 안면도와 대천, 청양, 청주 등지에서 8박 9일 여정의 국내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여름휴가 기간에 남편의 출장을
더해 만들어낸 긴 휴가였다. 유난히 바쁜 올해, 매주 숨 가쁘게 월화수목금을 달리고 토요일, 일요일에 잠시 숨을 돌리고 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마주한 휴식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차가 안면도의 해수욕장에 도착한 순간에는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도시에서 휴양지로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눈 앞에 펼쳐진 바다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일상에서는 매일매일 교무실에서 생활기록부 작업으로 인해 컴퓨터와 씨름하고, 비좁은 교실에서
성적과 입시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고3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이기에, 백사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래알들과 드넓게 펼쳐져 있는 바다를
마주한 순간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느껴진 것이다.
통 창문에 오션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펜션 안에 앉아 바닷가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이 되는 필자와는 달리 아이들은
짐을 풀자마자 바닷가에 뛰어들고자 했다. 결국 첫날부터 우리 네 식구는 요즘 유행하는 거위모양의 큰 튜브에 바람을 넣은 후 해수욕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바다수영을 마치고도 펜션의 수영장에서 한동안 피구 등 물놀이를 즐겼는데, 특히 첫째아이가 둘째아이에게 구명조끼를 의지한 채 혼자
물에서 떠있는 방법을 가르치자, 물을 겁내던 둘째 아이가 이내 혼자 물에서 뜨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이 가르쳐 주는 것보다
형제자매, 혹은 또래 친구가 가르쳐 주는 것을 더 쉽게 따라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는 이때 바닷가에서 보내게 될 3박 4일의 일정이 즐거운
물놀이로 채워질 것이라 생각하며 무척 신이나 있었다.
그런데 둘째 날 아침, 맨손물고기잡이 체험을 하고 돌아와 점심을 먹으려고 숙소에 들어온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둘째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로 인해 우리의 물놀이 계획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첫째아이와 둘째아이가 베란다 문을 가지고 서로 실랑이를
하다 둘째아이의 손가락이 문틈에 끼어 피가 철철 흐를 정도가 된 것이다. 순간적으로 딸 아이의 손가락이 잘린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처였다. 그날부터 우리는 휴가 기간 내내 병원을 찾아 다녀야했다. 둘째아이는 이때부터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도 물놀이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둘째아이가 다친 순간과 그 이후 아이의 행동이 매우 흥미로웠다. 오빠로 인해 손가락이 크게 베인 그 순간에도, 그리고
그로 인해 수영을 못하게 된 계속적인 상황에도, 딸 아이가 오빠를 원망하는 말을 단 한번도 내뱉지 않은 것이다. 다친 순간에는 `아프다`는 말을
반복하며 크게 울었지만, 그 다음날부터는 병원치료를 받을 때도 울지 않았다. 그 어떤 순간에도 `오빠 때문에 다쳤다`, `오빠 때문에 수영을
못하게 되었다`라는 원망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왜 다쳤냐고 물었을 때 단 한번 `오빠가 문을 닫아서 다쳤어요`라며 객관적인 사실을 설명하듯이
이야기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 사고였음에도 아이는 매우 담담했다.
필자는 아직 아기인 줄만 알았던 다섯 살 딸아이에게서 큰 교훈을 얻었다. 내 아이이지만 나보다 더 나은 면이, 내가 배워야 할 점이
있었다. 최악의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다섯 살 아이의 마음에 있었다. 자신이 다쳤을 때 자기보다 더 놀란 오빠의 마음을 읽고,
`오빠를 탓하면 안되겠다 `판단하는 지혜가 어린 아이의 마음에 있었다. 자신을 다치게 한 오빠를 용서하는 일이 아이에게는 매우 쉬운 일처럼
보였다. 작은 일에도 엄살을 떨고 힘들어 하며, 심지어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어른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이다.
어른이라 할지라도 겸손한 자세로 어린 아이의 용서와 배려를 배우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일이다. 나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해서, 혹은
피해를 주지도 않았음에도 다른 사람의 가십을 너무 쉽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예수님도 그래서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기사입력: 2017/08/23 [14:44] 최종편집: ⓒ 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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