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하사는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였던지 초등학교때 부터 동네아이들과 공 따먹기를 하였다. 당시만해도 상당히 열악한 환경에서
정구공(지금의 테니스 볼)하나를 걸고 타동네 아이들과 내기를 하곤했는데 글러브가 따로없고 학교의 검은모자를 뒤집어 만들어서 야구글러브 대신으로 쓰곤했다. 초등학교 6년때에 부잣집 친구인 산격동 사는 서상두란 친구가 있었으며 우린 상당히 친했다.
그는 얼마나 잘 사는지 혼자서 캣처 망을 비롯해서 야구빳다와 1루수 글러브 등 없는게 없었다. 그는 소아마비의 친구로 그의
부모님이 우릴 반겨주었다.암튼 그를위해 함께 놀아주는것 만으로 그부모님은 우릴 맞아주셨고 나중에 보결로 경북중학교까지 들어갔다고 소문이 났었다. 좌우간 그렇게해서 홍하사는 초등학교 야구선수(대구 침산초등학교)였으며 당시엔 초등학교 야구
대회가 상당히 유명하였는데 "대구칠성국민학교" 가 전국을 제패하곤했는데 우리학교의 형님뻘(?)되는 학교였으며 우리학교는
칠성,달성,수창등에서 조금씩 인원을 떼어와서 만든학교였으므로 (6회부터가 정식으로 우리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한 생도이며
홍하사가 그 6회인 이유는 경북 선산군에서 3학년초에 대구시로 전입한 것이므로) 어린시절 함께한 친구는 많지않었다.
좌우간 야구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군생활중에도(70년대 고교야구 결승전 등)57병원(도봉동 소재)간다면서 "서울운동장"을
가곤했다. 또한 제대하고는 "삼성"(경북에 태어났으므로 자동으로 삼성을 응원하였으며 홍하사 본적인 "대구 칠성동"이 바로
야구장 스코어 보드쪽)의 경기를 보러 대구까지 내려간 적도 있고 큰아들이 사는 "요꼬하마"를 방문시 함께 구경간 적도 있다.
홍하사가 美군무원 생활(1985년~2012년)의 27년중 Supply Div. 에서 탁구를 쳐서 참피온이 된 적도 있었으며(1977년 제대후
강남의 신사동에서 탁구장을 한적도 있었으며 나중엔 당구장으로 바꿈)당시에 얼마나 시설이 훌륭했으면 청파동에서 그곳까지 매주일이면 "숙대교수"(미국인)까지 와서 치고갈 정도였으며 국가대표급과 쳐서 17점(당시엔 21점)까지 따라 붙은적도 있었다.
첫댓글 전우님들! 홍하사가 반세기전에 보았던 그리고 너무나도 감명깊었던 영화, "라무(코끼리)는 나의 친구"라는 영화로 오늘은 즐겨보십시오. 인도영화로 너무나도 보고파 오늘 다시 리뷰해 봅니다. 음악도 참 좋았구요 진품을 소
개합니다.맨윗 사진은 "경상북도"에서 준우승(홍하사 중 2년때)한 '승리기계제작소'(9인조)팀. 가운데 모자 쓴 홍하사.
사진은 요코하마 경기장서 그들이 보여준 원정,홈팀의 선수들이 관객서비스 차원에서 사진을~홍하사수술후 지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