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학 무늬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입술 위아래로 검은색을 바른 푸르베족 아낙네들. 나이저강(Niger River)의 지류인 바니강을 연락선 배로 건너는 마차들의 행렬. 진흙을 이겨 만든 거대한 모스크, 플라스틱 통을 하나씩 들고 먹을 것을 구걸하는 아이들의 호기심 그득한 얼굴들. 말리의 심장 바마코에서도 북쪽으로 열 시간 가까이 달려가야 하는 14세기 말리 왕국의 교역 중심지, 젠네(Djenne)다. 서부 아프리카의 진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말리의 진짜 얼굴은 젠네에 있다.
진흙을 이겨 만든 젠네의 얼굴 그랜드모스크 광장 앞으로 월요일마다 장터가 펼쳐진다.
“나의 모든 음악은 나이저강에서 나옵니다. 강의 정신 없이 나는 벙어리에 귀머거리일 뿐이죠.” 말리를 떠올리면, 영혼을 뒤흔드는 멜로디가 있다. 아프리카 전통 음악과 미국 남부의 블루스를 가미한 아프리카 블루스 음악의 대가 알리 파르카 뚜레(Ali Farka Toure)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말리 록으로 미국 음반업계 최고 권위의 상인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고, 영국 방송 BBC는 그의 죽음을 ‘위대한 영혼과 관대한 영혼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그가 언제나 공연을 마치면 돌아가 고기잡고 가축을 키우던 터전이 젠네와 팀북투(Timbuktu)의 푸근한 품, 나이저 강이다. 바마코에서 나이저 강을 따라 북쪽으로 3일 나절 배를 타고 가다 보면, 나이저강의 지류인 바니강 강변에 인류 문화유산으로 명성이 자자한 진흙으로 만든 거대한 모스크가 보이기 시작한다.
젠네를 찾아가려면 나이저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가는 법 외에, 말리의 수도 바마코(Bamako) 또는 인근 수상교통의 요충지 몹티(Mopti)에서 버스를 타고 카르푸 젠네(젠네 삼거리)를 거쳐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어디서 출발하든 한 번에 직행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에, 젠네로 들어오는 모든 여행자는 카르푸 젠네를 반드시 거쳐간다. 40년 가까이 된 푸조 픽업트럭의 짐칸에 집채만한 짐들을 쌓아 올린 후, 손님들이 하나 둘 탑승하기 시작한다. 작고 비좁은 트럭의 짐칸에 16명이 빈틈없이 끼어 앉았다. 드디어 출발이다. 밤새워 젠네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고단하지만, 아프리카의 심장 말리에서 젠네를 보지 못하면 모든 것을 놓치는 것이다.
젠네의 먼데이 마켓을 가기 위해 먼 곳에서 마차를 타고 달려온 사람들이 도강을 기다리고 있다.
젠네는 나이저강의 지류인 바니강가의 모래톱 위에 세워진 도시다. 나이저강을 따라 몹티와 함께 교역 도시로 번성해 왔다. 북쪽 통북투(Tombouctou)가 사하라 사막의 횡단 교역도시였다면 남부 사바나 열대 우림 지역의 농산물 교역지로 번영해 온 곳이 젠네다. 바니강을 따라 배들이 오르내리는 젠네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소금과 금의 교역 때문이었다.
14세기 말리 왕국의 만사 무사(Mansa Musa) 대왕이 다스리던 전성기가 수 세기 지난 지금, 젠네의 그랜드모스크 앞 광장은 이제 매주 먼데이 마켓(Monday Market)이 열릴 때마다 말리 서민들의 소통과 축제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변모해 있다. 다른 날과 월요일의 풍경은 천지 차이다. 한산하던 그랜드모스크 앞 너른 광장은 일요일 오후부터 주변 각지에서 찾아 든 상인들이 텐트를 치거나 좌판을 펼치면서 정겨운 시골 장터의 분위기를 잡아간다.
월요일 이른 아침, 떠들썩한 그랜드모스크 앞 광장은 온통 화려한 옷으로 단장한 부인네들의 정겨운 수다로 시작된다. 동네 잔치를 벌이는 양 머리에 이고 등에 둘러치고 나온 온갖 먹거리와 판매 물건들을 늘어 놓고는, 어깨를 기대고 등을 맞대고 앉아 웃음꽃을 피운다. 엄마 등 뒤에서 곤히 잠든 아기는 업힌 채로 장터의 소음을 자장가 삼아 쌔근거린다.
푸르베족 아낙네들은 잠든 아기를 등에 둘러매고 젠네 월요 장터의 골목길에 좌판을 연다.
버스며 트럭, 마차와 당나귀까지 온갖 운송 수단들이 광장에 물건을 부리고 나면 판매자들은 기둥을 세우고 천막을 치면서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간다. 옷가지, 신발, 비누, 견과류, 장닭, 오렌지, 도자기, 생선, 조미료, 야채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이 총집결한다. 마을 아이들은 장터 비좁은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손을 내밀기도 하고, 아낙네들은 마치 제 자식들인 양 동전 한 줌 혹은 쌓아둔 음식들을 선뜻 집어주기도 한다.
그랜드모스크 앞, 상점의 간이 의자에 앉아 장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독특한 모자를 쓴 사람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인다. 그들은 다름아닌 플라니족이다. 모스크의 반대편 쁘띠마르셰(Petit Marche)를 지나 상코레 부둣가(Port Sankore)로 가는 길 삼거리 광장에서 나귀와 염소를 거래하느라 여념이 없다. 가축을 주로 거래하는 플라니족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흥정을 하거나 무리 지어 담소 나누는 장면을 바라보는 일은 이 시장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체험이다.
그랜드모스크를 등지고 세워진 쁘띠마르셰 인근 골목길에는 플라니족의 가축시장이 진풍경을 이룬다.
나이저강변의 도시 통북투 혹은 가오(Gao)에서 가축 거래를 위해 먼 길을 달려 온 투아레그족이나, 암염과 담배, 피혁 제품 등을 팔기 위해 떠돌아 다니는 쥬라족 등도 만나게 된다. 통북투의 생활 필수품 공급지인 젠네에서는 바마코, 시카소(Sikasso) 등 남부 도시에서 공급되는 일상 잡화를 구입하고 암염, 피혁 제품 등 북부 사하라에서 유입되어 온 물품들을 거래하기도 한다. 귓속말로 거래를 하거나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얹은 채 협상을 하는 진귀한 표정들을 살펴보는 일은 젠네의 특별한 선물이다.
젠네는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다. 여행자는 강을 끼고 젠네 시가지를 한 바퀴 둘러보거나 배를 타고 이웃마을 웰링가라(Welingara)나 느네소우루(Nenesourou)의 풀라 빌리지(Fula Village)로 반나절 여정을 떠나기도 한다. 좁고 단조로운 젠네에서 벗어나 드넓은 초원을 만끽하면서 전통 마을의 풍경과 순박한 아이들, 여인네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나보고 싶다면 보조(Bozo) 마을 여행이 제격이다.
보조 마을의 아이들은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수줍어하지만 쉽게 친구가 된다.
마차를 타고 젠네를 벗어나 보조 마을로 향한다. 흙먼지가 폴폴 날리기도 하고 달그락거리는 마차소리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40여 분 달리는 동안 불편한 엉덩이와 소음은 금새 익숙해진다. 바니강 위 다리를 건너고 끝없이 펼쳐진 시리무(Sirimou) 들판을 지나 피로그(pirogue)라는 작은 카누를 타고 강을 건너서야 비로서 보조 마을에 들어선다. 호기심 그득한 아이들과 아낙네들은 반가운 미소로 여행자를 반긴다. 강을 건너면서 멀리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에 마음은 들뜨기 시작한다.
비탈진 흙 둔덕을 올라, 마을 골목길로 들어선다. 온통 흙으로 지어진 집들이지만, 열기와 한기를 막아내기에 충분하다. 문짝도 없는 흙집에서 아이를 안고 나온 아낙네는 반가운 미소를 건넨다. 흙장난과 물장난으로 얼굴이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아이들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낯선 이방인을 반긴다. 강가 아낙네들의 빨래하는 모습과 밥짓는 일상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나룻배들은 유유히 강둑을 오가며 멈추어 버린 세월을 노래하고 있다. 바니강가의 삶의 속도는 그 강물의 흐름만큼이나 느리고 여유롭다.
젠네 외각 마을을 오가는 당나귀. 수레를 타고 황토 흙길을 달리는 여정은 낭만적이다.
마차를 타고 다시 젠네로 향한다. 들녘에서 풀을 베어 마을로 돌아오는 마차들의 행렬과 소몰이꾼의 평화로운 귀가, 흙먼지 일으키며 집을 향해가는 나귀들의 행렬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붉은 노을이 서쪽 하늘에 기울고 마차가 구시가지로 접어 들면, 마을 어귀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란스러움이 고향처럼 푸근하다. 수천 년 내려온 전설과 같은 도시 젠네 여행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이처럼 강렬한 색채, 아이들의 순수한 미소, 그리고 문명이 잠입하지 못한 원시적인 삶의 소박한 풍경들이다.
가는 길 말리는 서부 아프리카 내륙국가이므로 접근이 쉽지 않다. 세네갈 다카르나 코트디브아르 아비장으로 입국한 후, 항공 이동 혹은 버스를 타고 수도 바마코로 이동해야 한다. 터키 항공으로 이스탄불을 거쳐 다카르, 아비장, 또는 모리타니의 수도 누악쇼트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바마코에서 젠네로 직행하는 버스는 많지 않다. 바마코에서 우선 몹티로 간 다음, 몹티, 반디아가라를 다녀온 후 젠네를 둘러보고 바마코로 나오기도 한다. 타파마 호텔(Hotel Tapama), 폰도리 호텔(Hotel Pondori) 등 적당한 가격대의 숙소가 많으니 잠자리 걱정은 없다.
그랜드모스크 주변.
먼데이 마켓 매주 월요일 열리는 마켓을 놓치지 말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여정을 꼭 조정해 보자. 먼데이 마켓을 준비하려 다양한 상품과 도구들을 싣고 연이어 강을 건너오는 차량과 마차들이 장터로 모이는 일요일 진풍경이 진짜 볼거리다.
방문하기 좋은 시기 늘 더위와 열악한 환경으로 여행이 쉬운 곳은 아니지만, 우기가 끝나고 여름의 극심한 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11월부터 3월까지가 가장 적합하다. 사실 더위를 빼놓고 말리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젠네와 몹티를 둘러보면 그 무더위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젠네 먼데이 마켓
독특한 삼각 모양의 모자를 쓴 플라니족은 주로 가축시장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며 거래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