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따 니파타
애련설
愛蓮說
연꽃을 아끼는 까닭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지음
물과 뭍에 풀과 나무의 꽃이 아낄마한 것이 심히 많으나,
진나라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아꼈고,
이씨 당나라 시대부터는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아주 아껴왔다.
나는 홀로 연꽃을 아끼나니,
진흙 속에서 솟아나지만 그에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다.
속은 통하고 겉은 곧으며
덩굴도 뻗어나가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지만,
향기는 멀어질수록 맑으며,
꼿꼿하고 맑게 서 있으니
멀리서 볼 수는 있어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나는 국화를 은사라고 하고,
모란을 꽃 가운데서 부귀한 자라고 하며,
연꽃은 꽃 중에 군자라고 하겠다.
아!
국화를 아낀 사람은 도연명 이후에 들어보기가 드물고,
연꽃을 아낄 사람은 나와 함께 누구인가?
모란을 아끼는 사람은 많기도 하겠지!
경자년(2019) 여름 시헌 김희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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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상련
雨中賞蓮
빗속에 연꽃을 감상하며
퇴계 선생
華樓東畔俯蓮池
고운 누각 동쪽 가에서
연꽃 연못을 굽어보다가,
罷酒來看急雨時
술자리 파하고 와서 보는데
마침 소나기 쏟아지네.
溜滿卽傾欹器似
빗방울 가득차면 기우는 것이
의기(欹器) 같고,
聲喧不厭淨襟宜
빗소리 요란해도 싫지 않으니
가슴 속 찌꺼기 씻어주기 때문이라네.
*의기: 물시계의 부품으로 기울어서 쇠구슬을 떨어뜨림.
물시계-자격루
물시계의 의기
비를 마주하니 홀연히 연꽃 감상의 흥취가 일어나서
對雨忽起賞蓮之興
아침에 내린 비를 마주하니 흥취가 유연하여,
홀로 남쪽의 연못으로 가서 연꽃 감상하고 싶네.
다만 저어하는 것은 천태의 절이 가까워서,
휘파람 소리가 지관(止觀)의 참선을 깨뜨림이네.
-목은 선생
*천태의 절: 목은 선생의 벗인 천태종 나잔자羅殘子 스님이 머문 절.
*지관止觀 : 지는 마음을 고요하고 호흡에 집중하는 사마디 명상,
관은 몸과 마음의 변화를 통찰하는 위빠사나 명상.
연꽃 연못 가에 고요히 앉았노라니
향이 소매에 가득하고,
새벽 꽃길을 거니노니
이슬이 옷자락을
적시네.
백련정
백련정기
김희준
천지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탄소를 배출하는 인류가 자초한 타는 더위도 처서의 절후가 다가오니 한결 가시고, 밤이면 풀벌레 울음이 머리맡에 뿌려진다. 제국주의 일본이 닦다가 전쟁에 패망하여 버려두고 간 철길 가의 마장지(馬場池)에는 연꽃이 다 지고 연밥이 굵어간다.
장미가 피어나고 녹음이 짙어져 가는 첫 여름날 아침이었다. 연못의 수면에 자라난 새 연잎과 부화한 새끼들을 데리고 헤엄치는 야생오리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휴대폰의 대화방에 올라왔다. 새벽마다 솔숲 오솔길을 걸어서 연못가의 정자에서 아침 해를 맞이하는 선배는 동식물을 관찰하고 짧은 편지를 부친다. 나는 중국인이 쓴 대련 글씨를 답장 삼아 올렸다.
연꽃 연못 가에 고요히 앉았노라니 향기가 소매에 가득하고, 靜坐蓮池香滿袖
꽃이 피어난 오솔길을 새벽에 걷노라니 이슬이 옷자락을 적시네. 曉行華徑露霑衣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한낮의 폭염을 견디지 못하여 아내와 나는 해가 서산 너머로 지고 나서야 서림농원(瑞林農園)에서 옥수수, 오이, 참외, 가지, 호박에 물을 주고 풀을 뽑는다. 일을 끝내고 나니 초승달이 밤하늘에 빛나고,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마장지로 가서 운동 삼아 산책하였다. 못가에는 어미 오리가 노랑털이 난 다섯 마리 새끼들을 데리고 깃털을 매만지며 잠들 준비를 하고, 벤치에 앉은 엄마가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쏟아내는 딸을 달래고 있었다. 물 위에 놓인 나무다리에 들어서자 감미롭고도 짙은 향기가 밀려왔다. 녹색의 연잎들이 물 위로 곧게 올라와 넓적하고 둥글게 자라나 있지만 합장한 모습으로 맺힌 연꽃 봉오리는 아직 피지 않고 있었다. 작년 늦가을에 잎과 줄기와 연밥은 갈색으로 시들고 말았으나 진흙에 뿌리를 묻고 얼음장 밑에서 봄이 오기를 기다린 연은 꽃이 피기도 전에 온몸에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향기는 가혹한 시련을 견디며 기른 내면의 덕성일 것이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나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사방에 퍼진다고 한 법구경(法句經)의 말씀이 떠올랐다.
유월이 끝나갈 무렵에 마침내 기다리던 연꽃이 피어났다. 나는 연꽃이 피고부터 날마다 해를 피하여 밤이면 연꽃 향기를 맡으러 마장지로 갔다. 못가의 빈 정자에 말없이 앉아 있으면 향기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연잎에 장맛비가 쏟아지는 소리는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주었다. 염계(濂溪) 선생의 애련설(愛蓮說)을 젊은 날부터 좋아하여, 재작년 가을에는 서실의 회원전에 여덟 폭 병풍으로 써서 출품하기도 하였다. 작은 정자이지만 편액과 주련이 없어서 집에 책이 없는 것처럼 허전하였다. 귀가하니 밤늦도록 필흥(筆興)이 일어나 정자의 이름을 백련정이라 짓고, 백련의 인상을 담아 편액과 주련 글씨를 몇 번이나 쓰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오래전에 구한 고서를 펼치는데 책의 속표지에 종매(宗梅)라는 붓글씨가 있었다. 종매 스님께 보여드리니 스님이 젊은 시절 보던 책이라고 하였다. 스님은 책을 받아들고 책장을 넘기다가 내가 오래전에 꽂아둔 옛사람의 간찰을 펼쳐보시고는 빙그레 웃으셨다. 나는 스님께 작은 벼루 두 점과 함께 그 책을 올렸다. 꿈에서 깨어나 태평양 너머 미국에 머무시는 스님께 페이스북으로 간밤에 촬영한 연꽃 사진과 함께 꿈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스님께서도 길몽이라며 이젠 붓을 자주 들어야 하겠다고 하셨다. 오래전 조국에 있을 때 통도사(通度寺)의 월하(月下) 노스님에게 받아서 절의 다실에 걸어놓은 ‘求佛冥加’(부처님의 명훈가피력을 구하여라!)이라는 휘호를 촬영해 보내주셨다. 금강경은 일체의 유위법이 꿈과 같은 줄을 알라고 하였지만, 내 아뢰야식이 연꽃 향기로 물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장지에 연꽃이 피어난 소식을 벗들에게도 알렸다. 다음날, 서연(瑞蓮)과 계림(雞林) 내외분과 함께 연꽃을 보러 갔다. 은퇴하여 도연명(陶淵明)처럼 농사를 짓는 무궁한 즐거움에 새벽마다 서림농원에 나와서 일을 하고, 열정적으로 문화유산 길라잡이 활동을 하는 계림 선생님은 바삐 사느라 연꽃도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서연 선생님은 꽃을 어찌나 사랑하는지, 하얀 면포에다 들꽃을 수놓아 선물하기도 하였다. 연꽃 향기를 맡으며 핸드폰으로 연꽃 사진을 촬영했다. 서연 선생님이 촬영한 사진은 어둠 속에서 백련꽃 봉오리가 신비롭게도 등불을 켠 것처럼 환하게 빛이 났다.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성도하여 지혜와 자비의 화신이 되신 부처님의 모습이 그러했을까 싶었다. 밤이라 꽃잎이 오므라들어 있었다. 활짝 피어난 연꽃의 자태를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내외분과 나무다리 위를 걸으며 향기를 맡다가 정자에 올라 편액과 주련 글씨 붙이는 일을 의논하는데, 계림 선생님이 정자에 백련정기(白蓮亭記)도 걸려 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연꽃 향기를 맡고 가로등이 켜진 철길을 두 분과 함께 걸었다. 상현달이 서산마루에 걸렸고 제철 공장의 불빛에도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희미하게 빛났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은하수가 흐르며 수천의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던 어린 날의 밤하늘에서 제일 먼저 찾아보던 별자리라서 반가웠다. 정초에 틱낫한(釋一行) 스님이 아흔다섯의 연세에 열여섯 살에 동자승으로 출가했던 베트남 중부의 고도 후예(順化)의 자효사(慈孝寺)에서 니르바나에 들었다. 이젠 성좌(星座)가 되신 스님의 게송을 읊고 싶은 밤이었다. 스님은 베트남 전쟁의 불구덩이 속에서 한 송이 흰 연꽃으로 피어나 인류의 가슴에 평화와 정념(正念)의 가르침을 심으셨다. 나는 생전에 프랑스의 매화마을에서 우리나라에 오신 스님을 두 번이나 뵈었다. 피안으로 건너게 하는 지혜를 설법하는 스님이 내 눈앞에 나타나신 부처님인 것만 같았고, 제자들이 합창하는 관세음보살 찬탄은 지금도 내 가슴에 메아리친다.
밤에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읊조리니/ 그 소리 별들을 움직이고/ 대지도 눈을 뜨네/ 대지의 무릎 위에 홀연히 연꽃이 피어나네// 밤에 묘법연화경을 읊조리니/ 다보탑 찬연히 빛나고/ 하늘 가득 보살들 나타나시네/ 내 손 안에 부처의 손이 있네
비가 그치고 퇴근길에 풍염(豐艶)한 연꽃을 감상하러 마장지로 갔다. 햇빛은 반짝이고 맑은 바람은 불어오며 향기가 물결쳤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처럼 기쁨에 겨워 연못에 놓인 나무다리 위를 거닐었다. 백련정 난간에 홀로 기대어 서서 상련(賞蓮)의 흥취에 젖었다. 물고기는 연꽃 줄기를 흔들고, 연잎에 앉은 잠자리는 선정(禪定)에 들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바람에 일렁이는 싱그러운 녹색의 연잎들은 수정처럼 새맑은 빗방울을 맺었고, 내 몸은 평화로움으로 차올랐다. 총총히 켜진 연꽃 등불은 고운 꽃잎을 활짝 열고 벌을 불러들이며 샛노란 꽃술에 쌓인 씨방을 보여주었다. 햇살에 곱게 빛나는 백련의 꽃잎을 보고서야 이순의 나이에 비로소 순백색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연꽃의 향기를 맡고 정결한 얼굴을 만나는 그 시공에 내내 머물고 싶어 차마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선배는 나의 편액 글씨에서 향기가 묻어난다고 하였다. 나는 아내의 투병 중인 벗이 씻은 듯이 낫기를 염원하며 눈빛 닥종이에 쓴 ‘白蓮亭’ 붓글씨에 ‘염화미소(拈花微笑)’라 새긴 붉은 인장을 찍어 표구점에 맡겼다. 연꽃은 꽃 중에 군자라서 예로부터 선비들이 아꼈고, 부처님 나라 사람들은 백련을 고귀하게 여겨서 중생의 뻘밭에 만개한 경전의 이름으로 삼았다. 또한 내가 정자를 백련이라 명명하는 까닭이다.
-<<포항문학>> 통권 제49호(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