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회 "이금회 회장" 님께서 어제 퇴원하신댔는데 여태 연락이없다. 환자에게 밥한번 먹자고 자꾸 연락할 수 도 없고~
어차피 모레 다시 전우들과의 미팅이 있으므로~ 할 수 없이 그분과 오랜친구이며 지기인 박조광상사님만 만나고 함께~
꼭 십년전 셋이서 함께 탁구장에서 우연히 조우해서 기막힌 상봉이 이루어진적이 있었다. P 선배님과는 지금 반세기를~
모두가 원사,상사,중사출신으로 탁구 역시 보통의 실력들이 아니다. P선배님은 탁구뿐만 아니라 하모니카도 얼나마 열심이신지?
홍하사 3개로 겨우 반음 올라간 음악을 연주한다면 그분은 하모니카 케이스에 총 열개가 넘는 종류를 갖고있다.
홍하사가 이것저것 조금씩 처삼촌 벌초하듯 손댄다면 그분은 한방면을 완전히 마스터 하시는 모습을 볼때 여간 존경스럽지않다.
홍하사가 '71년 귀국후 의정부 한미1군단에 107통신대 근무할적에 우리 "보급과선임하사" 로 전입오신 박조광상사님이시다.
www.vietvet.co.kr "살아가는 이야기" 中 "와이프 이야기"---(3) (2007/9/2(일) 글에서 부분을 퍼 온 글이다.
"와이프 이야기"---(3) (울淑과의 연애시절 결혼하기 전 까지 5편을 올린 이야기 중이다.
"전북 정읍이 고향인 백 낙은 중위님-방을 얻어준 우리 인사계(상사)와 더불어 자취방까지 이사해준 본부행정반 모든 병사들도
한동안 중대장을 잃은 슬픔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그레서 그런진 모르지만 혼자 방 얻어놓고 사는 초급장교나 하사관들은 특별 관찰대상자였다. 특히 난 우리 통신부대의 육십 여명의 하사들 중에 ’74년 당시 병참하사인 내가 서열 1위로 올라 진급함도
(고가점수 매기는 지휘관들 모두 통신병과였음)나름대로 인정을 받은 때문이리라.
출근시간이 임박하여 늦지 않으려고 달음질쳐 가는 나를 가끔은 대대장님이 1호차로 출근하시며 도중에 태워 함께 출근하는
불상사도 여러번 있었으니 그럴 때 마다 결혼문제가 대두되곤 했다. 결혼을 해야만 마누라가 깨워주고 아침밥도 제대로 챙길게 아닌가? 특히 우리 보급과의 선임하사로 나중 전입오신, 내겐 큰 형님같이 자상히 대해 주신 박 조광 상사님은 당신이 세 들어
사는 쥔집 딸과 연결시켜 주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사모님이 탁구장을 경영했던 그 부부와 우린 더불 데이트로 즐거운 시간을 꽤나 가졌고 가끔은 복식의 탁구시합으로 저녁내기도 자주 가졌다. 그 아가씨는 미쓰 의정부 선발에도 나온바 있는 용모도 괜찮은 여자였다. 뭐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던가? 하루는 동료 K하사로부터 퇴근 후에 오거리의 xx 다방에서 좀 만나자고 한다. 군번은 나보다 늦지만 나이는 한살 많고 일찍 결혼해 아이 셋을 이미 둔 학부형이다. 그는 Camp Jackson 의 파견대장 이기도 했다.
"어버이 날" 자주 부르는 "사모곡" - 이 곡은 홍하사 "장암 음악회"(2번째 사진)서 사회보기전 무대로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이다.
첫댓글 6년전 홍하사가 아파트 동대표(감투 안쓰는 홍하사가 와이프때문에 어쩔 수 없이)하면서 음악회
사회를 본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출연할 가수가 결장하는 바람에 애꿎은 울숙을 땜빵시켰는데 너무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구두뒷축을 무대위에서~암튼 함께 배우던 교회의 우쿨렐레팀을 출연시키면서 본의아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