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10시 45분쯤 미군 장교 2명과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등 11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UN군측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고 있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는 한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지휘·경호하던 중, 북한군 장교 2명과 20여 명의 사병이 나타나 "나뭇가지를 치지 말라"고 요구했으나 우리측 경비병이 작업을 계속하자, 북한군 장교와 북한초소에서 2대의 트럭에 분승한 50~60명의 북한병사들이 달려와 도끼·쇠꼬챙이·몽둥이 등을 휘두르며 폭행하여 미군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UN군 트럭 3대와 초소를 파괴하고 물러갔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사령부는 주한미군 장병들의 휴가취소와 부대복귀명령을 내리는 한편,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데프콘 3호(경계상태돌입)를 발령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미국은 백악관·국무부·중앙정보국(CIA) 등 행정부 고위관리들로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F-4전폭기, F-111전폭기 각 1개 대대를 한국기지에 배치하고, 핵항공모함 레인저호를 한국해역으로 이동시키는가 하면, B-52폭격기를 급거 출동시키고 오키나와[沖繩] 주둔 해병대 1,800명을 한국에 증파하는 등 강경한 대응을 취했다. 이와 동시에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내셔널방송회사(NBC) 텔레비전 회견을 통해 북한의 해명과 배상을 요구했다.
동시에 8월 21일 새벽 7시 데프콘 2호(전쟁돌입상태)하에서 문제의 미루나무 절단작업에 나섰다. 포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미 양국간 협의결정으로 실시된 이 작전에는 건십헬리콥터 26대, B-52 중폭격기 3대, F-4 및 F-111 폭격기 수십 대가 판문점 상공을 엄호하는 가운데
3백여 명의 한미 양군 기동타격대가 투입되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21일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UN군측에 전달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9월 1일부터는 판문점공동경비지구를 남과 북으로 분할경비하기로 합의해 사건은 19일 만에 마무리되었다. 이 합의는 9월 16일부터 효력을 발생했다.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2454399
미루나무와 북진통일의 호기 [0]
람보 (kang****)
사진 오른쪽의 저 미루나무 한 그루가 발단이었다. 여름인지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나무의 잎이 무성해서 시야를 가렸다. 1976년 8월 18일 제5 관측소를 맡고 있던 미군들이 가지치기를 하러 갔다. “됐어. 그만 잘라!” “더 잘라!” 나무 아래에서 북한군과 미군의 언성이 경쟁적으로 높아졌다. 가지를 치던 한국인 근로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때 북한군 박철 중위는 시계를 풀어 주머니에 넣은 뒤 “죽여”라고 소리를 질렀고 난투극이 벌어졌다. 북측은 벌목용 도끼를 주워 보나파스 대위와 배리트 중위를 학살했다. 이 만행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은 충격적이었다. 살벌한 상황에서 미군이 카메라를 준비해 동영상을 찍었다는 것도 놀랍다.
사진의 반향은 컸다. 한·미 양국이 발칵 뒤집혔다. 박정희 대통령은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서종철 국방장관이 대독)에서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라고 말했다. 포드 정부와 주한미군은 한때 미루나무 주변을 초토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숨을 고르고 우선 문제가 된 나무를 제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작전명은 ‘폴 버년(Paul Bunyan)’이었다. 폴 버년은 도끼 하나로 나무 81그루를 단숨에 자르고 로키산맥을 평지로 만든 미국의 전설적 영웅이다. 도끼를 응징하러 ‘도끼 수퍼맨’이 나선 셈이다. 미군이 8월 21일 오전 7시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을 때 ‘데프콘2’(공격준비태세)까지 발동됐다. 핵탑재가 가능한 F-111 전투기 20대가 미국에서 떴고 괌에선 B-52 폭격기 3대가 날아올랐다. 항모 미드웨이호가 중무장한 5척의 호위함과 함께 동해의 북한 해역으로 이동했다. 태권도 유단자인 한국 특전사 요원 64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근처에 배치됐다. 북한은 노농적위대와 붉은청년근위대에 전투태세를 명령하고 ‘북풍1호(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미군들이 나무를 쓰러뜨렸다. 그때 비무장으로 작전을 수행하던 한국 특전 요원들이 갑자기 몸에 숨긴 무기를 꺼내 조립했다. 그들은 북한 초소 4개를 파괴하며 도발을 유도했다(상부의 은밀한 ‘응징’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군은 꼼짝하지 않았다. 만약 북한이 저항해서 전쟁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미국은 최악의 경우 전술핵을 쓸 생각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미루나무가 한반도 핵전쟁을 일으킬 뻔한 사건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은 33년 전 그날이다. 남북간 대치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상국(문화칼럼니스트)
============================================================================================
http://cafe.daum.net/shogun/2DR/2586?docid=SWL|2DR|2586|20110404123616&q=%C6%C7%B9%AE%C1%A1%20%B5%B5%B3%A2%B8%B8%C7%E0
1976년 8월 18일에 판문점에서 도끼만행사건이 벌어져
미군장교 2명이 즉사하고 나머지 8명이 중경상을 입게 된다.
이에 열받은 미국은 이 기회에 북한을 완전히 삭제키로 하고
美 본토에서 전투기 20대, 오키나와에서 전투기 24대, 괌에서 폭격기 3대,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항공모함(미드웨이호)과 함께 호위함 5척 등을 급파한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군과 '우발계획'까지 수립하고
카투사로 위장한 특전사 요원들을 비무장지대로 보내 북측의 도발을 유도했다.
여기서 북한이 반응하면 한,미 포병대가 개성의 군부대를 쑥밭으로 만들고
전쟁이 확대될 경우 개성과 연변평야까지 탈환할 생각이었다.
여기까지가 관련 내용이고 아래는 숨겨진 뒷이야기입니다.
( 이 숨겨진 뒷 이야기가 다른 책에선 다르게 나옴)
![](https://t1.daumcdn.net/cfile/cafe/151495224BB6804744)
우발계획의 일환으로 비무장지대에 투입된 특전사 요원들.
북측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해 총도 없이 도끼 하나만을 들고 벌목을 시작했다.
물론 그 뒤엔 한,미 연합군이 은밀하게 숨어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전혀 도발하지 않았고 쥐죽은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특전사 요원들은 한참이나 계속된 움직임에도 아무 반응이 없자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식사 때까지 놓쳐버리자 흥분한 나머지 북한 초소까지 넘어가버리고 만다.
한마디로 돌발사태였다.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제길~ 북한의 초소가 텅 비어있는게 아닌가.
아무리 근처를 뒤져봐도 개미새끼 한마리 없다.
결국 더욱 흥분한 요원들, 초소와 주변 시설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도 북한은 아무 반응이 없다.
이유는 김일성이 이미 손을 써놨기 때문.
"남측이 어떤 도발을 하더라도 절대 대응하지 말라"는 전문이 하달된 것이다.
이에 인민군들, 멀리 숨어서 망원경으로만 쳐다보고 있다.
결국 다급해진 김일성, 긴급수석대표회의를 통해 유감성명(사과문)을 전달한다.
이에 미국, 24시간 이내에 끝장을 보려했으나 작전을 수정, 철수해버린다.
//
첫댓글 분단된 조국의 암울했던 역사의 한 장면...
이사건 나어릴적 일이엇지요!그때만해도 동아일보가 강력한 야당이엇습니다 전두환 언론 통펴합으로 똥지가돵엇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