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전집 제19권 / 잡저(雜著) - 상량문(上樑文)
을유년에 지은 대창니고(大倉泥庫) 상량문 고원(誥院)에서 명을 받들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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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위(兒郞偉), 집에 있어서는 곳집이라 하니 실상 곡식을 저장하는 근원이요, 하늘에 있어서는 별이 되니 대개 곳집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라에 있어서 곳집이 가장 중대하니, 그 제도는 의당 웅장해야 하리라.
우리 국가는 만세의 도읍을 정하고 사방의 공세(貢稅)를 받는다. 먹을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천 칸이나 되는 곳집을 지어 여기에 저장하게 되었다. 수로로 운수하는 배들은 서로 꼬리를 물고, 육로로 수송하는 수레들은 서로 뒤를 잇는다. 백성들에게는 비록 공전(公田) 10분의 1에 해당되는 적은 부세를 받으나 전체의 부세는 1년에 수천으로 헤아릴 정도이다. 그러나 많은 노적(露積)을 하자니, 어찌 그 저장이 허술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되는 대로 처리해 왔을 뿐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성상 폐하(聖上陛下)께서는 정치에 있어서는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데 우선을 두고, 일에 있어서는 시기에 알맞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비록 둥근 곳집, 모난 곳집 수많은 것이 있었으나, 오래 유지하려는 계책은 높은 담으로 높이 짓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여 이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불일간에 완성하게 하였다. 나무 하나를 끌매 티끌이 백 리에 덮이고, 돌 하나를 떨어뜨리매 우레가 만산을 울린다. 규모ㆍ위치를 경영하니 장엄하고 화려하도다. 이처럼 공력을 들이니, 비록 공수(公輸 춘추 시대 노(魯)의 유명한 공장(工匠))가 먹줄을 튕겨 짓는다 하더라도 이보다 잘 지을 수 없고, 여기에 곡식이 얼마나 드는가는 예수(隷首 황제(黃帝) 때 사람으로 처음으로 산수법을 정하였다)를 시켜 계산하게 하더라도 잘 셀 수 없을 것이다. 좋은 날을 가려 긴 들보를 올리려 하기에 삼가 칠위(七偉)의 소리를 떨쳐 육방(六方)의 송을 올린다.
삼가 비노니, 상량한 뒤에 신명이 깊이 도와 복록이 이르며, 하늘은 좋은 때를 낳고, 땅은 재물을 낳아 삼농(三農)은 풍년 들게 하고 남자에게는 남은 곡식이 있고 여자에게는 남은 베[布]가 있으며 만백성이 편안하고, 곳집에 곡식이 가득하여 나라가 공고해지게 하소서.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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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19권 / 구호(口號)
정사년 상원 등석(上元燈夕)에 교방(敎坊)의 치어(致語)와 구호(口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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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운. 기상을 보고 구름을 점쳐서 성인이 일어남을 알았사온데, 상서(祥瑞)를 싣고 선부(仙府)에서 멀리 오도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성상 폐하는 도(道)가 통삼(通三)에 합하고, 덕(德)이 함오(咸五)에 오르시어, 그늘 아래에서 더위먹은 사람을 쉬게 하시매, 온 세상이 주발(周發 주 무왕(周武王))의 인자를 생각하고, 길거리에서 잔치를 베푸시니 사람들이 당고(唐高 당요(唐堯))의 덕화를 읊조립니다. 부상(扶桑 해돋는 곳, 동쪽)의 동국(東國)을 통일하고 송록(松麓 송악산(松岳山) 기슭)의 상도(上都)에 자리잡으셨으나 명당(明堂)의 정침(正寢)이 아직 수리되지 못한 까닭으로 별관인 이궁(離宮)에 거처하신 지 이미 오래이옵니다. 왼쪽에는 난조(鸞鳥)가 날개를 펴고 오른쪽에는 봉황(鳳凰)이 깃드는 것처럼 형성된 땅에 옛터를 의지하여 다시 새롭게 하옵고, 4필의 창리(蒼螭 푸른 용마(龍馬))와 6필의 소규(素虯 흰 용(龍))로 법장(法仗 시위병)을 갖추어 이에 들어오시도다. 마침 상원(上元 정월 보름)의 저녁을 당한지라, 성대한 풍악의 의식을 베푸시니, 칠정육합(七政六合)의 생황[苼]은 그 소리가 천상의 풍악보다 우렁차고, 구광사조(九光四照)의 등불은 그 그림자가 별빛처럼 찬란하도다. 모든 오락을 교대로 연주하여 백성들과 함께 즐기시도다. 귀신과 사람이 서로 경하하고, 미개인이나 문화인이나 모두 손님처럼 오게 되도다.
첩등(妾等)은 이름이 단대(丹臺)에 기재되어 있고, 몸이 강궐(絳闕)에 매여 있사오니, 비록 고당(高唐)에 비를 오게 한 무협(巫峽)의 신선은 아니오나, 한전(漢殿)에 복숭아를 드린 귀대(龜臺)의 어멈을 본받으려 하옵니다. 겸하여 구호(口號)를 바치어, 민요를 채취하는 데 참여합니다. 운운.
구호
시위들이 채색으로 만든 영 앞에 늘어섰는데 / 法仗參排綵嶺前
주옥으로 꾸민 누전들은 삼천(三天)을 개벽하였네 / 瓊樓珠殿闢三天
봉등이 불꽃을 토하니 은화가 합하였고 / 鳳燈吐焰銀花合
섬월이 바퀴를 이루니 옥경이 둥글도다 / 蟾月成輪玉鏡圓
십 리의 향풍은 비단옷을 훈훈하게 하고 / 十里香風薰錦繡
구중의 춘색은 신선을 취하게 하도다 / 九重春色醉神仙
승로반에 새로이 신령스러운 복숭아를 드리오니 / 露盤新獻靈桃顆
다시 열매 맺는 해가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 更請重廻結子年
통삼(通三) : ‘왕’(王) 자를 말한다. 파자(破字)하면, 세 획은 천(天)ㆍ지(地)ㆍ인(人)을 뜻하는데, 한 획이 내려 관통(貫通)하였으므로 천ㆍ지ㆍ인 삼재(三才)를 겸통(兼通)하였다는 말이다.
함오(咸五) : 덕이 오제(五帝)와 같음을 말한다. 오제는 황제 헌원(黃帝軒轅)ㆍ전욱 고양(顓頊高陽)ㆍ제곡 고신(帝嚳高辛)ㆍ당요(唐堯)ㆍ우순(虞舜), 또는 포희(包犧)ㆍ신농(神農)ㆍ황제(黃帝)ㆍ요(堯)ㆍ순(舜)이다.
칠정육합(七政六合)의 생황[笙] : 생황에는 칠정(七政)의 음절(音節)과 육합(六合)의 화성(和聲)이 있다. 칠정은 궁(宮)ㆍ상(商)ㆍ각(角)ㆍ치(徵)ㆍ우(羽)ㆍ소궁(少宮)ㆍ소상(少商) 이고, 육합은 상하ㆍ사방이다. 《白虎通 禮樂》
구광사조(九光四照)의 등불 : 도가(道家)의 말로, 아홉 색채의 빛이 사극(四極) 즉 사방에 비칠 수 있는 밝은 등(燈)이다.[주-D005] 단대(丹臺) : 선인(仙人)의 거소(居所)로 여기서는 궁전(宮殿)을 뜻한다.[주-D006] 고당(高唐)에……하옵니다 :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 서문(序文)에 의하면, 초 회왕(楚懷王)이 수시로 운몽(雲夢)에 놀면서 꿈에 무산(巫山)의 선녀(仙女)와 즐기더니 그 산 아래에 고당(高堂)이란 대관(臺觀)을 지었다고 한다. 또 《한무내전(漢武內傳)》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가 한 무제(漢武帝)에게 복숭아를 드린 일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인데, 아름답지는 못하나 축수하겠다는 뜻이다.
삼천(三天) : 삼천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혼의(渾儀)ㆍ선야(宣夜)ㆍ주비(周髀)라는 설과 도가(道家)의 청미천(淸微天)ㆍ우여천(禹餘天)ㆍ대적천(大赤天), 불가(佛家)의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 등이다.
섬월(蟾月) : 달에 두꺼비가 산다는 전설이 있으므로 달을 이렇게 일컫는다.
황자(皇子)와 공주(公主)의 봉책연례(封冊宴禮)에 교방의 치어ㆍ구호ㆍ구합곡(句合曲) 한림(翰林)에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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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명을 내리어 두터운 은택을 임금의 자손에게 베풀고, 술을 마련하여 손님을 잔치하시매 빛난 자리를 갑관(甲觀 세자궁)에서 여시나이다. 환성이 궁액(宮掖)에 메아리치고 기쁨이 환구(寰區)에 넘치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성상 폐하는 덕이 백왕 중에서 뛰어나고 공이 삼대(三代 하(夏)ㆍ은(殷)ㆍ주(周))보다 높으십니다. 건(乾)은 아버지가 되고 곤(坤)은 어머니가 되어 부재(覆載 천지(天地))의 인자를 체받아 행하시며, 손(巽)은 여자를 얻고, 감(坎)은 남자를 얻어, 앉아서 번창한 경사를 안으시옵니다. 선식(璿式)ㆍ금상(金相)이 연달아 귀함을 아름답게 여기시어 지함옥검(芝函玉檢 영지(靈芝)와 옥으로 꾸민 함)을 내려 책봉하셨도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새로 책봉된 영공(令公)께서는 마음이 효경(孝敬)스럽고 성품이 총명하시와 일찍부터 겸상(縑緗 서적)의 학문에 독실하시어 일화궁(日華宮) 20구(區)를 지으셨더니, 과연 규조(珪組)의 영광을 얻고 전복(甸服 왕성(王城) 5백리 안의 땅) 5백 리를 받으십니다. 영광이 척리(戚里)에 미치고 명성이 후번(侯蕃)에 떨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새로 책봉된 공주께서는 성무(星婺 직녀성(織女星))가 영기(靈氣)를 모으고 초풍(椒風 후비(后妃))이 수기(秀氣)를 발하였습니다. 검은 구름이 문에 들어오니 탄생하는 상서를 바치옵고, 흰 달이 하늘에 있으니 풍성한 자질을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갑자기 임금의 사랑을 입어 공경히 책봉하는 포상을 받으셨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사상(使相)과 부상(副相)들께서는 산악(山岳)의 웅장한 정기를 받으셨고 만인이 바라보는 높은 자리에 계시도다. 어진이는 국보(國寶)인지라, 함께 권병(權柄)을 가진 신하가 되었으므로 황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가서 특히 책봉하는 명을 주라.”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연반(筵伴)한 영공들께서도 은하(銀河)처럼 맑고 체악(棣萼)처럼 빛나옵니다. 서한(西漢)의 타뉴장(駝鈕章 낙타의 형상을 꾸며 붙인 인장)을 가지니 걸음걸이가 법도에 맞고 동아(東阿)의 상아석(象牙席)을 펴니, 응대에 있어 피로를 잊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선화독책(宣花讀冊)의 모관(某官)께서도 온화하고 우아스러우며 부귀스럽고 정숙하시옵니다. 인장을 찍어 선포하니, 그 빛은 마치 이슬이 맺힌 자태와 같고, 조서를 읽어 내리니 그 소리는 마치 쇠를 치는 소리와 같습니다. 이것은 실로 신선의 좋은 모임이니, 마땅히 빈주(賓主)가 함께 즐겨야 하옵니다.
보요(步搖 수식(首飾))를 꽂고 쌍시(雙翅 두 날개)를 드날린 것은 창희(倡姬)들의 대오를 짓는 그 가냘픈 몸맵시요, 운화(雲和 거문고)를 타고 고죽(孤竹 피리)을 부니 흡사 우렁찬 천악(天樂)의 소리이옵니다. 더구나 지금은 방초(芳草)가 자라고 잡화(雜花)가 날며 광풍(光風)이 불고 화기(和氣)가 화창한 시절임에리까? 즐겁게 마시는 일이 있지 않으면 그 좋은 시절을 어찌하겠습니까?
저희들은 외람되이 영관(伶官)에 참여하여 거룩한 일을 보게 되오니,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고 심정이 자연 그것을 형언하게 됩니다. 널리 민요(民謠)를 채취하여 우러러 구호를 바치옵니다.
구호
구소의 우악한 은택이 금지를 적시는데 / 九霄優澤浥金枝
황화를 머물러 잔치하며 성대한 의식 거행하네 / 留宴皇華講縟儀
채천에 바람 부니 붉은 물결 출렁이고 / 風颺綵天紅浪皺
증령에 해 비치니 붉은 구름 나는구나 / 日勻繒嶺絳雲披
선온에 기쁨 짙으니 봄빛이 먼저 호탕하고 / 喜濃仙醞春先蕩
선화의 은혜 중하니 이슬이 쉬이 젖도다 / 恩重宣花露易滋
궁액의 환성이 사해에 메아리치니 / 宮掖讙聲騰四海
황가가 태평의 터전을 쌓았네 / 皇家正築太平基
구합곡(句合曲)
질서정연한 빛나는 자리에 / 秩秩華筵
안주 좋고 술 또한 맛있도다 / 肴旣嘉酒旣旨
우렁찬 아악은 / 洋洋雅樂
혁악(革樂)으로 조절하고 포악(匏樂)으로 연주하네 / 華以節匏以宣
청아(淸雅)한 즐거움을 받들어 올립니다 / 上奉淸歡
교방(敎坊)의 합곡(合曲)으로 / 敎坊合曲
진강후(晉康侯)의 별제(別第)에서 어가를 맞이할 때 교방(敎坊)에 서물(瑞物)의 치어(致語)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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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백풍이(河伯馮夷 물을 맡은 귀신)는, 엎드려 성상 폐하께서 진강후의 집에 행행하여 군신간에 연회를 베푸시어 태평을 즐기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청강사자(淸江使者)를 보내어 보도(寶圖)를 지고 가서 성수만년을 드리게 하옵니다.
따스한 바람, 긴긴 해에 아름다운 경치를 푸른 봄에 점치시고 제일가는 집, 빛나는 당(堂)에서 질서 정연한 잔치를 백주에 여신다 하오니, 비록 물 속에 잠겨 있는 하백이오나 어찌 기뻐함을 게을리할 수 있겠습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기(幾)를 아심이 신과 같으시고, 지혜스러워 성인이 되시옵니다. 의상을 드리우고 천하를 다스리시매 앉아서 태평을 즐기시고, 모토(茅土)를 주어 공신을 봉하시매 일찍이 예모(禮貌)를 숭상하셨습니다. 대궐의 시위를 거느리시고 진강후의 집에 행행하시었습니다
성황조(聖皇朝)가 태묘(大廟)에 향사(享祀)한 데 대한 송 병서 을해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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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삼가 보오니, 성상 폐하께서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태묘(大廟 종묘(宗廟))에 조향(朝享)하시고, 모일에 의봉루(儀鳳樓)에 나가셔서 대사령(大赦令)을 내리시니, 이에 백의(白衣) 제생(諸生)이 궐정(闕庭)에 서립(序立)하여 각기 민요와 찬송을 올리어 우러러 성덕을 노래하였습니다.
신은 우습유(右拾遺)의 자격으로 호종(扈從)하여 거룩한 예식을 직접 보았사오며, 신은 본시 제생(諸生)이옵기에 제생의 올린 바에 의하여 삼가 ‘성황조향대묘송’(聖皇朝享大廟頌) 한 편을 지었사옵니다. 다만 부끄럽고 황공하와 능히 제 손으로 올리지 못하오나 거의 천청(天聽 임금의 들음)에 전달될 수 있을 것이오니, 신은 떨리고 황송함을 견딜 수 없사옵니다. 그 가사는 이러하옵니다.
거란(契丹)을 평정한 데 대한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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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저 오랑캐 / 獷彼頑戎
우리 변방에 함부로 들어오네 / 闌入邊鄙
우리 백성을 씹어서 / 呑噬我生民
피가 그 이[齒]에 흐르네 / 血流于齒
우리 성황 크게 성내시어 / 聖皇赫怒
그 무리 몰아냈구려 / 克掃厥類
모르는 자는 모두 이렇게 말하네 / 不知者皆曰
이것은 달단(韃靼)의 도움이며 / 是韃靼之助
우리 군사가 용병을 잘한 때문이라고 / 與夫我軍善用兵之致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네 / 予曰不是
이것은 너희들이 논할 바 아니요 / 非爾所議
우리 성황의 받으신 명은 / 聖皇受命
실로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네 / 寔天所畀
하느님이 우리 성황을 위하여 / 天爲我聖皇
달단에게 손을 빈 것이네 / 假手韃靼耳
달단이 아무리 사납다 하나 / 韃靼雖狼
하느님의 사명을 어찌 피할까보냐 / 天其可避
우리 성황 지극히 인자하시어 / 我皇至仁
백성 보기를 자식같이 하시는데 / 視人如子
백성들은 어찌 차마 군부(君父)의 명을 쓰지 아니하고 / 人其忍不用君父之命
도리어 적에게 이 공을 돌려주려 하느냐 / 反以賊是遺耶
이는 천심의 도운 바이며 / 是則天心之所助
또한 성공으로 인한 것인데 / 與聖功之所自
달단이나 우리 군사가 / 夫韃靼與我軍
어찌 이에 참여한단 말이냐 / 何與是耶
사업(司業) 윤위(尹威)가 남원(南原)을 안무(安撫)한 데 대한 송 병서 문은 유별로 붙였기 때문에 저술 연대의 선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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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안(承安 금 장종(金章宗)의 연호, 1196~1200) 5년(1200 고려 신종3, )에 나는 완산(完山 전주)을 다스리고 사업(司業) 윤공(尹公)은 나아가 염찰사(廉察使)가 되었었는데, 그 지방에서 존경하고 두려워하였다.
당시 남원에 불순분자가 있어 작당하여 산을 의지해 굳게 둔을 치고 반역을 도모하려 하는데, 그 고을 관원들이 나약하여 제압하지 못하고 달려와 염찰사에게 보고하였다. 이날 공은 단기(單騎)로 부중(府中)에 들어가서 화복(禍福)으로 설득시키니, 도적들은 감격하여 울면서 명령을 듣지 않은 자가 없었다. 그래서 괴수 2~3명만을 주참하고 나머지는 다 놓아주어 곧 안정을 이룩하니, 온 경내가 경하하였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차탄(嗟嘆)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삼가 단송(短頌) 한 수를 지어 멀리 행헌(行軒)에 바친다.
대방이라 고군은 / 帶方古郡
남방의 오른팔이네 / 維南右臂
한 팔이 만약 꺾이면 / 一臂若折
몸을 어떻게 사용하리 / 於身何使
땅이 넓고 사람이 사나워서 / 地廣人悍
역사의 무리가 봉기하였네 / 逆詐鋒起
완악한 도적떼가 있어 / 有頑賊類
반역을 도모하려고 / 圖爲不軌
평민들을 협박하여 / 驅脅平民
개미떼처럼 집결하였네 / 聚結如蟻
산을 등져 스스로 굳히고 / 負山自固
칼을 갈아 날을 세웠네 / 厲兵犀利
간간이 나와 약탈하여 / 間出摽奪
그 식량을 충당하였네 / 充其糧糒
뿌리 차츰 굳게 박히니 / 植根漸牢
뽑아내기 쉽지 않네 / 拔之不易
부로들은 황겁하여 / 父老驚惶
토끼처럼 도망하고 사슴처럼 달아나고 / 兔奔鹿趡
그 고을 관원들은 / 曰守曰倅
얼굴에 땀이 물처럼 흐르네 / 面汗如水
달려와 염찰사에게 아뢰는데 / 奔告使軒
말이 나오자 눈물이 떨어지네 / 言出涕墮
공은 이르되 너희들은 / 公曰爾曹
어찌 일찍 방비하지 않았더냐 / 何不早備
거북과 옥이 궤 속에서 훼상되면 / 龜玉毀櫝
이는 누구의 수치인가 / 是誰之恥
너희들이 이미 제압하지 못했으니 / 爾旣不制
내 어찌 그를 차마 보겠느냐 / 吾其忍視
그날로 길을 떠나 / 卽日命駕
수레에 멍에 메울 겨를도 없었네 / 其車不軛
노기를 떨치고 부중(府中)에 앉아 / 奮髥坐府
급히 적의 괴수를 불러들였네 / 急召渠帥
명령하여 앞으로 나오게 해서 / 命之使前
생사를 가지고 설득시키니 / 喩以生死
도적이 울며 복종하고 / 賊泣聽命
칼과 창을 던져 버렸네 / 捨兵擲鍦
그 괴수만을 주참하고 / 但誅首謀
나머지는 다스리지 않으니 / 餘悉不理
많은 도적떼들이 / 林林賊徒
마음을 고쳐 의를 사모하였네 / 革心慕義
모두 말하되 우리들은 / 咸曰我曹
처음 사리를 알지 못하고 / 初不自揆
미친 말을 탄 것처럼 / 如馭狂馬
치달리니 정지하기 어려웠네 / 奔突難止
그 힘을 이길 수 없어 / 其力莫勝
남에게 고삐를 잡아달라 하였네 / 倩人執轡
만약에 이 사람이 없었던들 / 若無是人
몸 상하고 목숨 잃었으리 / 身敗命棄
아 우리들은 / 嗟嗟我曹
어쩔 수 없어 그랬었네 / 無奈類是
공이 만약 정지시키지 않았던들 / 公若不止
우리가 어디로 갔을는지 / 吾走何指
부로들은 이제 살았다고 / 父老再生
춤 추고 기뻐하네 / 抃躍以喜
모두 말하되 우리 공이시여 / 咸曰我公
우리를 범[虎]의 입에서 구출하였네 / 脫我虎齒
우리들의 목숨은 / 繄我首領
실로 우리 공이 주신 것이라오 / 實公之賜
칭송 소리 바람 따라 / 頌聲隨風
천 리에 우렁차네 / 洋溢千里
큰 공과 높은 이름이 / 功碩名大
천지와 동등하구려 / 齊天等地
노래로 형용한 자는 / 歌以形容
완산(完山)의 미미한 관리로세 / 完山未吏
거북과……수치인가 : 노(魯) 나라 계씨(季氏)가 전유(顓臾)를 치려는 일을 저지시키지 못한 염유(冉有) 등을 공자가 힐난하기를 “범과 들소가 우리에서 뛰어나오고 거북과 옥이 궤 속에서 문드러지게 한 것은 누구의 과실인가?[虎兕出於柙 龜玉毁於櫝中 是誰之過與]” 하였는데, 즉 간수자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論語 季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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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21권 / 서(序)
거제(巨濟)에 부임하는 이 사관(李史館)을 전송하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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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찍이 들으니, 이른바 거제현(巨濟縣)이란 데는 남방의 극변으로 물 가운데 집이 있고, 사면에는 넘실거리는 바닷물이 둘러 있으며, 독한 안개가 찌는 듯이 무덥고 태풍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여름에는 벌보다 큰 모기떼가 모여들어 사람을 문다고 하니, 참으로 두렵다.
무릇 그곳으로 부임한 자는 흔히 좌천된 사람들이었다. 지금 그대는 영위(英偉)한 재주로 봉산의 관서[蓬山之署 한림원(翰林院)]에 있으면서 일찍이 역사를 편수(編修)하여 만세에 전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공적을 따지면 마땅히 승진의 명령을 받아야 할 터인데, 도리어 이곳으로 낙착되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그렇지만 축하할 만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予固聞之。其所謂縣之巨濟者。炎方之極徼也。家於水中。環四面皆瀛海之浩溔也。毒霧熏蒸。颶風不息。暑月。有蚊蝱之大於蜂者群集噆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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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23권 / 기(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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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찍이 사방을 두루 다녀 무릇 나의 말발굽이 닿는 곳에 만일 이문(異聞)이나 이견(異見)이 있으면, 곧 시(詩)로써 거두고 문(文)으로써 채집하여 후일에 볼 것을 만들고자 하였으니, 그 뜻은 무엇인가?
가령 내가 늙어서 다리에 힘이 없고 허리가 굽어서 거처하는 곳이 방안에 불과하고, 보는 것이 자리 사이에 불과하게 될 때, 내가 손수 모은 것을 가져다가 옛날 젊은날에 분주히 뛰어다니며 유상(遊賞)하던 자취를 보면, 지난 일이 또렷이 바로 어젯일 같아서 족히 울적한 회포를 풀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나의 시집 가운데 강남시(江南詩) 약간 수(首)가 있는데, 이제 와서 그 시들을 읽으면, 당시 노닐던 일이 역력히 마치 눈앞에 있는 듯하다.
그 뒤 5년 후에 전주막부(全州幕府)로 나가 2년 동안에 무릇 유력(遊歷)한 바가 자못 많았다. 그러나 매양 강산(江山)ㆍ풍월(風月)을 만나 휘파람이 겨우 입에서 나올 듯하면 부서(簿書)와 옥송(獄訟)이 번갈아 시끄럽게 침노하여 겨우 1연(聯) 1구(句)를 얻고 그마저 다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았으므로 전편을 얻은 것은 불과 60여 수뿐이었다.
그러나 열군(列郡)의 풍토(風土)와 산천의 형승(形勝)으로 기록할 만한 것이 있으되, 창졸간에 그것을 능히 가영(歌詠)에다 나타내지 못할 경우에는 간략하게 단전(短牋)ㆍ편간(片簡)에 써서 일록(日錄)이라고 하였는데, 거기에는 방언(方言)과 속어(俗語)를 섞어 썼다.
경신년(1200, 신종 3) 계동(季冬) 서울에 들어와 한가히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을 꺼내 보았더니 너무 소략해서 읽을 수가 없었으니, 자신이 기록한 것인데도 도리어 우습기만 하였다. 그래서 다 가져다가 불살라버리고 그 중에서 한두 가지 읽을 만한 것을 모아서 우선 차례로 적어보겠다.
전주(全州)는 완산(完山)이라고도 일컫는데 옛날 백제국(百濟國)이다. 인물이 번창하고 가옥이 즐비하여 고국풍(故國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백성들은 질박하지 않고 아전들은 모두 점잖은 사인(士人)과 같아, 행동거지의 신중함이 볼 만하였다.
중자산(中子山)이란 산이 가장 울창하니, 그 고을에서는 제일 큰 진산(鎭山)이었다. 소위 완산(完山)이란 산은 나지막한 한 봉우리에 불과할 뿐인데, 한 고을이 이로써 부르게 된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주 소재지에서 1천 보(步)쯤 떨어진 지점에 경복사(景福寺)가 있고 그 절에는 비래방장(飛來方丈)이 있다. 이것을 내가 예전부터 들었으나 사무에 바빠서 한 번 찾아보지 못하였다가 하루는 휴가를 이용하여 결국 가보았다.
11월 기사일(己巳日)에 비로소 속군(屬郡)들을 두루 다녀 보았더니, 마령(馬靈)ㆍ진안(鎭安)은 산곡간(山谷間)의 옛고을이라, 그 백성들이 질박하고 미개하여 얼굴은 원숭이와 같고, 배반(杯盤)이나 음식에는 오랑캐의 풍속이 있으며, 꾸짖거나 나무라면 형상이 마치 놀란 사슴과 같아서 달아날 것만 같았다.
산을 따라 감돌아 가서 운제(雲梯)에 이르렀다. 운제에서 고산(高山)에 이르기까지는 높은 봉우리와 고개가 만길이나 솟고 길이 매우 좁으므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고산은 다른 군에 비하여 질이 낮지 않았다. 고산에서 예양(禮陽)으로, 예양에서 낭산(朗山)으로 갔는데, 모두 하룻밤씩 자고 갔다.
다음날 금마군(金馬郡)으로 향하려 할 때 이른바 ‘지석(支石 고인돌)’이란 것을 구경하였다. 지석이란 것은 세속에서 전하기를, 옛날 성인(聖人)이 고여놓은 것이라 하는데, 과연 기적(奇迹)으로서 이상한 것이 있었다.
다음날 이성(伊城)에 들어가니, 민호(民戶)가 조잔(凋殘)하고 이락(籬落)이 소조(蕭條)하여 객관(客館)도 초가(草家)요, 아전이라고 와 뵙는 자는 4~5인에 불과하였으니, 보기에 측은하고 서글펐다.
12월에 조칙(朝勅)을 받들어 변산(邊山)에서 벌목(伐木)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변산이란 곳은 우리나라의 재목창(材木倉)이다. 궁실(宮室)을 수리 영건하느라 해마다 재목을 베어내지만 아름드리 나무와 치솟은 나무는 항상 떨어지지 않는다. 내가 벌목하는 일을 항시 감독하므로 나를 ‘작목사(斫木使)’라고 부른다. 나는 노상에서 장난삼아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군사 거느리고 권세부리니 그 영화 자랑할 만한데 / 權在擁軍榮可詑
벼슬 이름 작목사라 하니 수치스럽기 그지없네 / 官呼斫木辱堪知
이는 나의 맡은 일이 담부(擔夫)ㆍ초자(樵者)의 일과 같기 때문이다.
정월 임진일(壬辰日)에 처음 변산에 들어가니, 층층한 봉우리와 겹겹한 멧부리가 솟았다 엎뎠다 구부렸다 폈다 하여, 그 머리나 꼬리의 놓인 곳과 뒤축과 팔죽지의 끝난 곳이 도대체 몇 리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옆에 큰 바다가 굽어보이고 바다 가운데는 군산도(群山島)ㆍ위도(猬島)ㆍ구도(鳩島)가 있는데, 모두 조석으로 이를 수가 있었다. 해인(海人)들이 말하기를,
“순풍을 만나 쏜살같이 가면 중국을 가기가 또한 멀지 않다.”
고 한다. 산중에는 밤[栗]이 많은데 이 고장 사람들이 해마다 이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얼마쯤 가노라니, 수백 보 가량 아름다운 대나무가 마치 삼대처럼 서 있는데, 모두 울타리로 막아놓았다. 대숲을 가로질러 곧장 내려가서 비로소 평탄한 길을 만났다. 그 길로 가서 한 고을에 이르렀더니, 거기는 바로 보안(保安)이란 곳이었다.
밀물이 들어올 때는 평탄한 길이라도 순식간에 바다가 되므로 조수의 진퇴를 보아서 다니는 시기를 정해야 한다. 내가 처음 갈 때에는 조수가 막 들어오는데 사람이 선 곳에서 오히려 50보 정도의 거리는 있었다. 그래서 급히 채찍질하여 말을 달려서 먼저 가려고 하였더니, 종자(從者)가 깜짝 놀라며 급히 말린다. 내가 듣지 않고 그냥 달렸더니, 이윽고 조수가 쿵쾅 하고 휘몰아 들어오는데, 그 형세가 사뭇 만군(萬軍)이 배도(倍道)로 달려오는 듯하여 매우 겁이 났다. 내가 넋을 잃고 급히 달려 산으로 올라가서 겨우 화는 면하였으나, 조수가 거기까지 따라와서 말의 배에 넘실거린다. 푸른 물결, 파란 멧부리가 숨었다 나타났다 하고, 음청(陰晴)ㆍ혼조(昏朝)에 경상(景狀)이 각기 다르며, 구름과 노을이 붉으락푸르락 그 위에 둥실 떠 있어, 아스라이 만첩(萬疊)의 화병(畫屛)을 두른 듯하였다.
윤12월 정미에 또 조정의 영을 받아 여러 고을의 원옥(冤獄)을 감찰하게 되어 먼저 진례현(進禮縣 금산(錦山))으로 향하였다. 산이 매우 높고 들어갈수록 점점 깊숙하여 마치 딴나라의 별경을 밟는 듯하여, 마음이 울적하고 무료하였다. 낮이 지나서야 비로소 군사(郡舍)에 들어가니, 현령(縣令)과 수리(首吏)가 모두 부재중이었다. 밤 2경(更) 무렵에 현령과 수리가 각기 8천 보 밖에서 헐떡거리면서 달려왔다. 그들은 문기둥에 말을 매어놓고 여물을 주지 못하게 경계하였다. 무릇 매우 달린 말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는 척하면서 들었다. 그 두 사람이 이 노부(老夫)를 돌보는 데 정성을 다하는 것을 알고서는 부득이 술자리를 허락하였다. 한 기생이 비파(琵琶)를 타는데, 꽤 들을 만하였다. 내가 다른 고을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다가 여기에 와서 유쾌히 마시고 또 현악(絃樂) 소리를 들었으니, 그것은 아마 머나먼 길을 달려왔으므로 마치 딴나라에 들어온 기분으로 사물을 보고 쉽게 감동되어 그런 것이리라.
진례현에서 떠나 남원부(南原府)에 이르렀다. 남원은 옛날의 대방국(帶方國)이다. 객관(客館) 뒤에 죽루(竹樓)가 있는데, 한적하여 사랑스럽기에 하룻밤을 자고 떠났다.
경신년 춘3월에 또 바다를 따라 배를 조사할 때 수촌(水村)ㆍ사호(沙戶)ㆍ어등(漁燈)ㆍ염시(鹽市)를 유열(遊閱)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만경(萬頃)ㆍ임피(臨陂)ㆍ옥구(沃溝)에 들러 며칠을 묵고 떠나 장사(長沙)로 향하였다. 길가에 한 바위가 있고 바위에 미륵상(彌勒像)이 우뚝 서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위를 쪼아 만든 것이었다. 그 미륵상에서 몇 보 떨어진 지점에 또 속이 텅 빈 큰 바위가 있었다. 그 안을 경유하여 들어갔더니, 땅이 점차 넓어지고 위가 갑자기 환하게 트이며 집이 굉장히 화려하고 불상이 준엄하게 빛났는데 그것이 바로 도솔사(兜率寺)였다. 날이 저물기에 말을 채찍질해 달려서 선운사(禪雲寺)에 들어가 잤다.
다음날 장사에 들렀다 장사에서 떠나 무송(茂松)에 이르렀는데, 모두 잔폐(殘弊)한 작은 고을인지라, 기록할 만한 일이 없었다. 그래서 다만 바다를 따라 배를 조사하고 척수를 계산했을 뿐이다.
평소에 샘 하나 못 하나를 만나면 움켜마시기도 하고 헤엄치기도 하여 그지없이 애완(愛翫)하였던 것은, 강해(江海)를 그리워하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바다와 함께 노닌 지 오래라,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물이요, 귀에 들리는 것도 역시 물이 고함치는 소리이므로 싫증이 날 지경이다.
왜 하느님은 마치 배고픈 자를 갑자기 배불리 먹여서 도리어 맛있는 음식을 물리치게 하는 것처럼 이같이 실컷 먹이는가?
이해 8월 20일은 내 선군(先君)의 기일(忌日)이었다. 하루 앞서 변산 소래사(蘇來寺)에 갔는데, 벽 위에 고(故) 자현거사(資玄居士)의 시가 있으므로 나도 2수를 화답하여 벽에 썼다.
다음날 부령 현령(扶寧縣令) 이군(李君) 및 다른 손님 6~7인과 더불어 원효방(元曉房)에 이르렀다. 높이가 수십 층이나 되는 나무 사다리가 있어서 발을 후들후들 떨며 찬찬히 올라갔는데, 정계(庭階)와 창호(窓戶)가 수풀 끝에 솟아나 있었다. 듣건대, 이따금 범과 표범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다가 결국 올라오지 못한다고 한다. 곁에 한 암자가 있는데, 속어에 이른바 ‘사포성인(蛇包聖人)’이란 이가 옛날 머물던 곳이다. 원효(元曉)가 와서 살자 사포(蛇包)가 또한 와서 모시고 있었는데, 차를 달여 효공(曉公)에게 드리려 하였으나 샘물이 없어 딱하던 중, 이 물이 바위 틈에서 갑자기 솟아났는데 맛이 매우 달아 젖과 같으므로 늘 차를 달였다 한다. 원효방은 겨우 8척쯤 되는데, 한 늙은 중이 거처하고 있었다. 그는 삽살개 눈썹과 다 해어진 누비옷에 도모(道貌)가 고고(高古)하였다. 방 한가운데를 막아 내실(內室)과 외실(外室)을 만들었는데, 내실에는 불상(佛像)과 원효의 진용(眞容)이 있고, 외실에는 병(甁) 하나, 신 한 켤레, 찻잔과 경궤(經机)만이 있을 뿐, 취구(炊具)도 없고 시자(侍者)도 없었다. 그는 다만 소래사에 가서 하루 한 차례의 재(齋)에 참여할 뿐이라 한다. 나의 배리(陪吏)가 슬그머니 나에게 말하기를,
“이 대사는 일찍이 전주에 우거했었는데, 이르는 곳마다 힘을 믿고 횡포하매, 사람들이 모두 성가시게 여기더니 그 뒤 간 곳을 몰랐는데, 지금 보니 바로 그 대사이옵니다.”
하였다. 내가 탄식하여 말하기를,
“대저 중품ㆍ하품의 사람은 그 기국이 일정하기 때문에 변동이 없지만, 악(惡)으로써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자는 그 기국이 보통 사람과 다르므로 한번 선(善)으로 돌아오면 반드시 이처럼 초월하는 것이다. 옛날에 사냥하던 장수가 우두 이조대사(牛頭二祖大士)를 만나 허물을 고치고 선을 닦아 마침내 숙덕(宿德)을 이루었고, 해동(海東)의 명덕대사(明德大士)도 매사냥을 하다가 보덕성사(普德聖師)의 고제(高弟)가 되었으니, 이런 유로 미루어본다면, 이 대사가 마음을 고쳐 개연(介然)히 특이한 행실을 닦게 된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였다.
또 이른바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서 구경하였는데, 그 높고 험함이 효공의 방장의 만배였고 높이 1백 척쯤 되는 나무사다리가 곧게 절벽에 걸쳐 있었다. 3면이 모두 위험한 골짜기라, 몸을 돌려 계단을 하나씩 딛고 내려와야만 방장에 이를 수가 있다. 한번만 헛디디면 다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나는 평소에 높이 한 길에 불과한 누대(樓臺)를 오를 때도 두통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이 아찔하여 굽어볼 수 없던 터인데, 이에 이르러는 더욱 다리가 와들와들 떨려 들어가기도 전에 머리가 벌써 빙 돈다. 그러나 예전부터 이 승적(勝跡)을 익히 들어오다가 이제 다행히 일부러 오게 되었는데, 만일 그 방장을 들어가 보지 못하고 또 진표대사(眞表大士)의 상(像)을 뵙지 못한다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그래서 어정어정 기어 내려가는데, 발은 사다리 계단에 있으면서도 금방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들어가서 부싯돌을 쳐서 불을 만들어 향(香)을 피우고 율사(律師)의 진용(眞容)에 예배하였다. 율사는 이름이 진표(眞表)이며 벽골군(碧骨郡) 대정촌(大井村) 사람이다. 그는 12살 때 현계산(賢戒山) 불사의암(不思議巖)에 와서 거처하였는데 현계산이 바로 이 산이다. 그는 명심(冥心)하고 가만히 앉아 자씨(慈氏 미륵보살)와 지장(地藏 지장보살)을 보고자 하였으나 며칠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자 이에 몸을 구렁에 던지니, 두 명의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손으로 받으면서 말하기를,
“대사의 법력(法力)이 약한 때문에 두 성인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더욱 노력하여 삼칠일(三七日)에 이르니, 바위 앞 나무 위에 자씨와 지장이 현신(現身)하여 계(戒)를 주고, 자씨는 친히 《점찰경(占察經)》 2권을 주고 아울러 1백 99생(栍)을 주어 도왕(導往 중생을 인도해 감)의 도구로 삼게 하였다. 그 방장은 쇠줄로 바위에 박혀 있기 때문에 기울어지지 않는데, 세속에서 전하기를 바다 용이 그렇게 한 것이라 한다. 돌아오려 할 때 현재(縣宰)가 한 산꼭대기에 술자리를 베풀고는 말하기를,
“이것이 망해대(望海臺)입니다. 제가 공(公)을 위로하고자 먼저 사람을 시켜서 자리를 베풀고 기다리게 했으니, 잠깐 쉬십시오.”
하였다. 내가 드디어 올라가서 바라보니, 큰 바다가 둘러 있는데, 산에서 거리가 겨우 백여 보쯤 되었다. 한 잔 술, 한 구 시를 읊을 때마다 온갖 경치가 제 스스로 아양을 부려 도무지 인간 세상의 한 점 속된 생각이 없어 표연히 속골(俗骨)을 벗고 날개를 붙여 육합(六合) 밖으로 날아나가는 듯, 머리를 들어 한 번 바라보니 장차 뭇 신선을 손짓하여 부를 듯하였다. 동석한 10여 인이 다 취하였는데, 내 선군의 기일(忌日)이므로 관현(管絃)과 가취(歌吹)만이 없을 뿐이었다.
무릇 내가 지난 곳에 기록할 만한 것이 없으면 적지 않았다. 대저 경사(京師)를 몸으로 보고 사방(四方)을 지체(支體)로 보면, 내가 노닌 곳은 남도의 한쪽, 한 지체 중에도 한 손가락일 뿐이다. 하물며 이 기록은 다 잊고 빠뜨린 나머지인데 어찌 후일의 볼 만한 것이 되랴? 우선 이것을 간직하여, 뒤에 동서남북을 모조리 노닐며 온통 기록할 때를 기다렸다가 합하여 1통(通)을 만들어서 늘그막에 소일할 자료를 삼는 것도 또한 좋지 않겠는가?
신유년 3월 일에 쓴다.
부사의방: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산내면(山內面) 중계리(中溪里)와 변산(邊山)에 걸쳐 있는, 의상봉(嶬上峯) 동쪽 절벽 위에 있었다. 신라 때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거주하던 방장(方丈)이었다고 하는데, 1백 척의 나무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렸다 한다 그러나한반도의실상은 그렇게험하지않을뿐아니라 밧줄을잡고 5미터정도 오르면 그 터만 남았다하는곳에 오를수있음 변산도 재목창과는 동떨어진곳20년전에봤을때 다른산과별반차이없음 아름드리거목이라할만한수목보지못함에 조림도열심이 하나 지금이라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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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24권 / 기(記)
최 승제(崔承制)의 대루기(大樓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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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양지에 있으면 기분이 느긋하고 음지에 있으면 마음이 쓸쓸하며 높은 곳에 있으면 속이 시원하고 낮은 곳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이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타고난 상정이다.
노자(老子)는,
“비록 화려한 집이 있더라도 설레지 않고 한가한 마음으로 초연하게 있다.”
하고,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고명(高明)한 데와 대사(臺榭)에 거처할 만하다.”
한 것은 대개 이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누대(樓臺)와 관사(觀榭)의 크고 작음과 번화하고 간소함은 또한 사람의 형세에 따라 각각 적당한 정도가 있다. 비록 지위가 같고 존귀함이 균등한 자에 있어서도 사람들의 촉망하는 바는 다르다. 사람들이 크게 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경우에 크게 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옳게 여기지 않고 모두 정도에 지나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공이 많고 덕이 커서 명망이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 온 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 있는 자에 이르러서는 비록 그 집을 극도로 크게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사치스럽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좁다고 할 것이다. 이것이 이제 승제(承制) 최공이 거대한 누각을 거실의 남쪽에 짓게 된 까닭이다.
누각 위는 손님 1천 명을 앉힐 수 있고 누각 아래는 수레 1백 대를 나란히 놓을 만하다. 그것은 새가 날아다니는 길을 끊을 만큼 높고 해와 달을 가릴 만큼 크다. 푸른 구슬로 꾸민 기둥에 옥신[玉舃]으로 밑을 받쳤으며, 양각(陽刻)한 말[馬]이 마룻대를 등에 짊어지고 머리를 치켜들어 끌어당긴다.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이 나무로 조각되어 그 자세를 나타내는 것은 건축이 생긴 이래로 아직까지 없었던 일이다.
《선경(仙經)》을 상고하니, 신선의 세계에 옥루(玉樓) 12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것을 눈으로 본 사람이 없어서 그 집의 제도가 어떠하며 그 안에 어떤 기이한 광경이 있는지 알지 못하여 일찍이 이것을 한스럽게 여겼더니, 이 누각을 보매 비록 하늘에 있는 옥루도 아마 이보다 더 화려하지는 못하리라.
그 동쪽에는 불상을 안치한 감실(龕室)이 있다. 불사(佛事)를 행할 때면 곧 중들을 맞아들이는데, 그 수가 수백 명에 이르건만 장소는 오히려 여유가 있다. 누각 남쪽에는 격구장(擊毬場)을 설치하였는데, 길이가 무려 4백여 보나 되고 평탄하기가 숫돌 같으며, 주위에 담을 둘러쌓았는데, 수리에 뻗쳤다.
공이 일찍이 여가를 이용하여 손님들을 불러 호화스러운 연석을 벌이고 술을 마시다가, 기녀(妓女)들의 아름답고 고운 모습도 싫증이 나고 풍악 소리의 고조(高調)된 음률도 귀에 싫게 될 때에 보는 것을 상쾌하게 해 주고 기분을 시원스럽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공을 치고 말을 달리는 유희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왕량(王良 춘추시대 사람)과 조보(造父 주 목왕(周穆王) 때 사람)처럼 말 잘 타는 무리에게 명하여 날랜 말을 타게 한다. 빠르고 민첩하여 유성(流星)처럼 달아나고 번개처럼 움직인다. 동쪽으로 갈 듯하다가는 다시 서쪽으로 뛰고, 달릴 것처럼 하다가는 다시 머무른다. 사람들은 서로 손을 모으고 말들은 서로 말굽을 모은다. 뛰고 구르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는 사이에 서로 공을 다툰다. 비유하면 뭇 용이 갈기를 떨치고 발톱을 세워 큰 바다 속에서 한 개의 진주(眞珠)를 다투는 것과 같으니 아, 놀랄 만하다.
대저 공을 치고 말을 달리는 일은 평탄한 광장이나 넓은 평원이 아니면 적합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공은 홀로 그렇게 하지 않고 담을 둘러 쌓고 장랑(長廊)을 둘러 지은 그 속에서 놀이를 하게 하니 무슨 까닭인가? 무릇 넓은 평원이나 평탄한 광장에서는 비록 표주(標柱)를 세워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데도 오히려 규칙을 지키지 않고 벗어나 한계선을 넘는 자가 있다. 이것은 곧 땅이 국한되지 않고 마음이 단속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니 장무(墻廡) 안에 격구장을 설치하여, 빙빙 돌고 이리저리 달리면서도 그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 땅이 국한되매 기술은 여유가 있고 마음이 단속되매 기교가 더욱 나온다. 이것이 공의 즐거워하는 바이다.
아, 누각이 비록 맞이하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온갖 경치가 이 누각에 나타남이 저러하고, 공이 비록 받고자 하지 않더라도 누각이 공에게 이바지함이 이와 같다. 모든 훌륭하고 특출한 풍경이 이 누각에 모였다. 나는 공의 측근에 있는 호사자들이 좋은 경치를 기록한 일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기고 공에게 청하여 현액(懸額)을 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부평도호부」 편에 "고려 의종 때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만들고 고종 때 계양(桂陽)이라 개칭
계양망해지(桂陽望海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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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계양(桂陽)의 변두리에 사방으로 나 있으나 한 면만 육지에 통하고 삼면은 다 물이다. 처음 내가 이 고을 수령으로 좌천되어 올 때 망망대해의 푸른 물을 돌아보니 섬 가운데 들어온 듯하므로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서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보려 하지 않았다.
2년 후 6월에 문하성의 낭관에 제배되어 장차 날짜를 정하여 서울로 가게 되니, 전일에 보던 망망대해의 푸른 물이 다 좋게만 보였다. 그래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은 모두 놀러가 보았다.
처음 만일사(萬日寺)의 누대(樓臺) 위에 올라가 바라보니, 큰 배가 파도 가운데 떠 있는 것이 마치 오리가 헤엄치는 것과 같고, 작은 배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서 머리를 조금 드러낸 것과 같으며, 돛대가 가는 것이 사람이 우뚝 솟은 모자를 쓰고 가는 것과 같고, 뭇 산과 여러 섬은 묘연하게 마주 대하여 우뚝한 것, 벗어진 것, 추켜든 것, 엎드린 것, 등척이 나온 것, 상투처럼 솟은 것, 구멍처럼 가운데가 뚫린 것, 일산처럼 머리가 둥근 것 등등이 있다. 사승(寺僧)이 와서 바라보는 일을 돕다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섬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것은 자연도(紫燕島)ㆍ고연도(高燕島)ㆍ기린도(麒麟島)입니다.”
하고, 산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것은 경도(京都)의 곡령(鵠嶺), 저것은 승천부(昇天府)의 진산(鎭山)ㆍ용산(龍山), 인주(仁州)의 망산(望山), 통진(通津)의 망산입니다.”
하며, 역력히 잘 가르쳐 주었다. 이날 내가 매우 즐거워서 함께 놀러온 자와 같이 술을 마시고 취해서 돌아왔다.
며칠 후에 명월사(明月寺)에 가서 앞서와 같이 놀았다. 그러나 명월사는 많은 산들이 가려서 만일사의 툭 트인 것만 못하였다.
며칠 후에 다시 산을 따라 북으로 바다를 끼고 동으로 향하여 조수가 밀려오는 것과 해시(海市)의 변괴를 구경하는데, 말을 타기도 하고 걷기도 하다가 피곤한 뒤에야 돌아오니, 함께 놀던 자 모모인이 모두 술병을 가지고 따랐다.
아, 저 물은 전일의 물이요 마음도 전일의 마음인데, 전일에 보기 싫던 것을 지금은 도리어 즐거운 구경거리로 삼으니, 그것은 구구한 한 벼슬을 얻은 때문일까? 마음은 나의 마음이거늘 능히 자제하지 못하고 이처럼 때를 따라 바뀌게 하니, 그 사생을 동일하게 하고 득실을 동등하게 하기를 바랄 수 있으랴? 후일에 경계할 만한 것이기에 적는다.
손 비서(孫祕書)의 냉천정기(冷泉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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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대 아감(芸臺亞監) 비서성 소감(祕書省少監) 손군(孫君)이 성북(城北)의 어느 마을에 새 집을 지었다. 큰 바위가 있어서 높이가 두어 길이나 되며, 형상은 쇠를 깎아세운 듯이 험준하여 청사(廳事) 북쪽에서부터 동쪽 구석까지 창창하게 둘러 있다. 그 아래에 차가운 샘이 철철 흘러내려 고여서 깊은 웅덩이를 이루었는데 그 맑고 깨끗함이 실로 아낄 만하다.
청사 동쪽에 붙여서 작은 정자를 걸쳐 지었는데 10여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다. 맑고 깨끗함이 산재(山齋)와 같으니, 이것은 편안하게 노닐고 한가롭게 지내기 위한 곳이다.
내가 귀인(貴人)의 사는 곳을 많이 보았는데, 그들이 정원을 꾸미는 데는 반드시 굴곡이 많고 우묵하게 패고 혹난 것처럼 울퉁불퉁하고 기이하게 생긴 돌들을 가져다가, 여러 개를 쌓아서 산을 만들고 형산(衡山)과 곽산(霍山)의 기이한 모습을 본뜬 것이 진실로 기묘하다.
그러나 그것은 조물주가 일찍이 개벽하여 놓은 높고 깊숙하고 기이하게 빼어난 천연의 형상만은 못하다. 저들도 또한 거짓이 진실만 못한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부귀의 힘으로 모을 수 있는 것은 기이한 꽃, 이상한 나무, 진귀한 새, 기이한 짐승 같은 것뿐이요, 암석의 높고 크며 위엄찬 것 같은 것은 권력으로는 오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억지로 가져오려고 하면 마땅히 큰 끌과 잘 드는 칼을 사용하여 조각조각 자르고 한장 한장 쪼개어 수레에 싣고 말로 끌어온 뒤라야 될 것이다. 구차히 이렇게 한다면 그것은 다만 깨어진 돌과 흩어진 자갈일 뿐이다. 설사 쌓아서 높게 한들 앞에서 말한 기괴한 돌을 여러 층 쌓아 산을 만든 것과 다름이 없다. 어찌 다시 높고 그윽하며 기이하게 빼어난 천연 그대로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이제 손군의 집은 그윽한 벽지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서울 안 만인이 살고 있는 사이에 있다. 그런데도 거대한 바위의 기이하고 아름다움이 이와 같으니, 손군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손군의 높은 회포와 뛰어난 생각이 실로 진세(塵世)의 밖에 초월하여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공명(功名)에 얽매인 바 되었으나, 마음은 언제나 푸른 산과 흰 구름에 있는 까닭에 하늘이 이것을 선사하여 위로함이라 하겠다. 세상 사람들이 손군을 우러러보는 명망도 또한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개천사(開天寺)의 청석탑기명(靑石塔記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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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실(宗室)인 광릉후(廣陵侯) 면(沔)이 높은 벼슬에 있으면서도 초연히 세속을 벗어난 담박한 생각이 있었다. 방외(方外)의 교우(交友)에 고승(高僧) 아무가 있었는데, 그가 풍세현(豐歲縣)의 남쪽 땅에 가서 개천사(開天寺)라는 옛절을 얻어 바야흐로 다시 창건하려 하였는데, 광릉후가 시주(施主)가 되어 더욱 힘이 되었다.
고승의 수제자의 제자인 현규(玄規)가 이것을 보고 탄식하기를,
“스승께서 창건한 것이 이와 같은데, 내가 그 문하에 있으면서 한 가지의 일도 하지 않는다면 또한 하나의 수치다.”
하고, 이에 드디어 범어(梵語)의 이른바 솔도파(窣堵波)라는 것을 세우되, 모두 청석(靑石)을 사용하여 빙빙 돌려 쌓아 올려서 만들었는데 대범 13층이었다. 탑이 이미 완성되자 광릉후에게 이 일을 보고하고, 또 말하기를,
“중이 먹는 것도 모두 국토에서 나는 곡물입니다. 그런데 만약 안일하게만 지내고 국가에 대한 조그마한 보답도 없이 죽는다면, 나라의 은혜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국가에 복을 빌어 바치려는 생각에서 이제 이 하찮은 석탑을 세워 이미 완성되었으니, 글 잘하는 사람에게 명(銘)을 받아서 이 사적이 길이 썩지 않게 하려는 생각뿐입니다.”
하였다. 광릉후가 그 말을 듣고 그의 마음가짐이 성실하여 속일 수 없는 것이 있음을 가상히 여기고서, 농서(隴西) 이춘경(李春卿)에게 편지를 보내어 기명(記銘)을 부탁하였다. 내 비록 글을 잘하지는 못하나, 의리상 남의 선행(善行)을 덮어 버리고 싶지 않으며, 또 광릉후의 부탁을 어기기 어려우므로 삼가 받아들여 명을 쓰노니 때는 황상(皇上 고려 고종)의 즉위 원년(1214) 모월 모일이다. 명은 다음과 같다.
쌍림에서 멸도하신 분 / 雙林滅度
바로 우리 대웅이다 / 是我大雄
이미 멸했다 한다면 / 若云已滅
일체가 모두 공이니라 / 一切皆空
비록 탑이 온전한 몸이나 / 雖塔全身
속에 무엇이 있으리오 / 何有於中
이 멸은 멸이 아니요 / 是滅非滅
구경에는 무루한 것이다 / 究竟無漏
백억이나 화신을 하였는데 / 百億化身
어디엔들 보지 못하랴 / 於何不覩
그렇다면 이 탑은 / 然則是塔
역시 부처가 머문 곳이라 / 亦佛所住
부처는 어디에서 오며 / 佛從何來
탑은 다시 무슨 물건인고 / 塔復何物
탑을 보고 탑을 잊어야 / 見塔忘塔
보탑이 이에 나오리 / 寶塔乃出
이 탑으로 인하여 / 由是塔故
제불을 보게 되리라 / 得見諸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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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25권 / 잡저(雜著)
신묘년 12월 일에 군신(君臣)의 맹고문(盟告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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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下土)에 있는 신(臣) 아무 등은 목욕 재계하고 삼가 돈수 재배하며 황천상제(皇天上帝)와 일체의 영관(靈官)에게 애절히 고유합니다.
무릇 화복(禍福)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신등의 불초로 인하여 하느님이 국가에 상란(喪亂)을 내리사, 저 달단(韃靼)의 완악한 종내기가 이유없이 국경을 침범하여 우리 변경을 패잔하고 우리 인민을 살육하여, 점점 침투해서 경기에 이르러 사방을 유린하되 마치 범이 고기를 고르는 것처럼 하니, 백성들이 겁박을 당해 죽은 자가 길에 낭자합니다. 그런데 군신(君臣)은 막아낼 계책을 생각하나 창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 방도를 모르고, 단지 무릎을 끼고 앉아 두루 돌아보면서 길게 탄식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 달단은 일찍이 우리에게 은혜를 받았는지라, 불만을 품을 자가 아닌데 일조에 이처럼 잔폭한 일을 하니, 이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앞에서 말한 신등의 불초로 인해 그런 것입니다.
아, 지나간 일은 추궁할 것 없거니와, 이후로는 다시 이런 비법(非法)의 일을 행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것을 상제께 청원하오니, 상제께서 우리나라를 아주 도륙시키지 않으려 하신다면 끝내 버려두고 불쌍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은 딴 글에 갖추 기재하여 상제께 맹세하오니, 상제께서는 살펴주소서.
대장경(大藏經)을 판각할 때 군신(君臣)의 기고문(祈告文) 정유년에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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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國王) 휘(諱)는 태자(太子)ㆍ공(公)ㆍ후(侯)ㆍ백(伯)ㆍ재추(宰樞), 문무 백관 등과 함께 목욕 재계하고 끝없는 허공계(虛空界), 시방의 한량없는 제불보살(諸佛菩薩)과 천제석(天帝釋)을 수반으로 하는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일체 호법영관(護法靈官)에게 기고(祈告)합니다.
심하도다, 달단이 환란을 일으킴이여! 그 잔인하고 흉포한 성품은 이미 말로 다할 수 없고, 심지어 어리석고 혼암함도 또한 금수(禽獸)보다 심하니, 어찌 천하에서 공경하는 바를 알겠으며, 이른바 불법(佛法)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이런 때문에 그들이 경유하는 곳에는 불상(佛像)과 범서(梵書)를 마구 불태워버렸습니다. 이에 부인사(符仁寺)에 소장된 대장경(大藏經) 판본도 또한 남김없이 태워버렸습니다. 아, 여러 해를 걸려서 이룬 공적이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버렸으니, 나라의 큰 보배가 상실되었습니다. 제불다천(諸佛多天)의 대자심(大慈心)에 대해서도 이런 짓을 하는데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인용 한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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