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울음소리가 희망이다』(고요아침,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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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성장기는 삶의 과정에서 가장 보편적인 통과의례이자 가혹한 변화의 시기다. 좋든 싫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성장을 멈추기란 불가능하고, 누구도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어른들은 흔히 십대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말한다. 그 시절엔 생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마냥 좋기만 한 순수의 시간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돌이켜 보았을 때 그렇단 얘기지, 그 시기의 그들은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어른들의 말과 달리 십대엔 대개 시험과 입시에 시달리는가 하면 또 더러는 일찌감치 불우한 환경에 맞서야하고 사춘기도 겪는다. 이래저래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시기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며 그 요동은 통증으로 반응한다. 십대들이 겪는 아픔도 고역도 방황도 실패도 모두 삶의 한 요소이다. 성장통은 지나고 보면 짧은 순식간의 바람처럼 여겨지지만 그 시기에는 조바심과 지루함으로 가득한 순간순간들이다.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짓거나 추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미래를 위해 혹독한 대가를 지불했거나 견디기 힘든 질곡의 나날이었을 경우 울컥 암울한 고통들이 역류되어 먹먹해지곤 한다. 가족들은 덫이자 굴레일 뿐이었다. 비루하고 신산한 삶들이 불운을 원망할 겨를도 없이 천형처럼 몸을 옥죈다. 어서 빨리 질척대는 가난과 고단에서 벗어나 세상 밖 미래로 뛰쳐나가야 했다.
반세기 전의 전태일도 그러했으리라. 차가워진 날씨에 수능시험을 치루는 수험생도 온몸에 불안을 휘감고 있다.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 한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대학생이 사방천지 널려있는 세상이다. 대학진학률이 80% 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그럼에도 수능시험은 여전히 인생의 전부가 걸려있는 최대 관문이라 여긴다. 말로는 원하는 대학이니 적성에 맞는 대학이라 둘러대지만 출세하고 대접받고 행세부리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안간 힘들이다. 대학 나와도 별 볼일 있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 6~70년대엔 ‘가정 형편상’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일이 여사였다.
허정분 시인의 십대에도 물론이거니와, 여자는 더욱 그랬다. 눈물을 삼키고 입술을 깨무는 일이 잦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은 '미래가 있다고 여겼다.' 허정분 시인이 첫 달거리 이후 덧없는 미래에 기대 흘러 흘러가 닿은 곳은 문학 지대였다. 시인에게 지난날의 혹독한 가난과 척박한 환경은 시적 상상력의 원적지였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굶주림은 인간의 근본충동으로 인간을 사유케 하고 행동하게 하며 희망을 갖게 한다.’며 희망의 철학을 말했다. 시인이 고단한 가족사를 들추면서 십대의 추레한 기억을 되살려 스스로 상처를 덧나게 한 까닭을 알겠다. 그런 시련 속에서 문학 정신이 탁마되었으리라.
지금의 십대들은 입시연옥 말고 딱히 고역이라 할 만한 게 있을까. 전태일이 살아낸 그 시대에도 십대들의 현안은 입시였으나, 그와는 다른 환경의 육체노동에 종사하면서 공부를 목말라했던 십대도 적지 않았다. 전태일도 열여섯에 대구명덕초등학교 안에 임시교사를 둔 청옥고등공민학교(중학과정)에 입학하는데, 그의 전 생애 가운데 이때가 가장 행복했노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러다가 전태일은 부친으로부터 학교를 작파하고 재봉 일을 배우라는 청천벽력 같은 분부를 받는다. 허정분 시인도 자신이 살아낸 삶의 고통과 쓰라림과 막막함의 무늬로 다른 이를 어루만져주는 문학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아무쪼록 수험생과 모든 십대들의 오늘날 시련이 훗날 정신적인 자양분이 되기를 바란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