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동아시론/이재묵]‘선거민심 왜곡’ 부실 여론조사, 감시 강화해야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4-01-26 23:45업데이트 2024-01-26 23:45
조사기관 등록제 시행에도 부실 논란 여전
정부 규제보단 기관 자율규제 강화 바람직
유권자도 여론조사에 대한 문해력 높여야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여론조사는 현대 사회에서 민의를 파악하기 위한 편리한 수단으로 발전해 왔으며, 선거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 과정에서 민심의 바로미터처럼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소위 대표성 있는 표본을 표집해 모집단의 특징을 측정하는데, 여기에는 통계 과학과 조사 기법의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
다만, 통계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표본을 통해 모집단의 특징을 추론해 내기 때문에 여전히 표본오차가 존재하고, 또한 설문 문항 작성이나 조사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표본 오차(non-sampling error)의 문제도 갖고 있다. 따라서 대표성 없는 표본의 선택이나 정교하게 구성되지 못한 설문 문항은 조사 결과의 정확도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여론의 왜곡 논란을 낳을 수도 있다. 특히 여론조사 결과의 의도적 왜곡은 심각한 사회 문제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여론조사가 실제 여론을 보여주는 참고 지표인 동시에 앞으로의 여론 형성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권자들은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지지 후보의 선거 경쟁력을 판가름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영향이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와 연동해 후보자들 간 유불리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여론의 왜곡 문제와 그것이 초래하는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여론조사는 방법론의 엄밀성과 조사 시행 및 처리 과정에서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결과나 관련 보도를 접할 때 표본의 크기와 오차, 응답률, 설문 문항과 조사 방법 등을 전반적으로 참고해 결과를 살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선거 여론조사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고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한 기관만이 조사 결과를 공표할 수 있는데, 여심위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조사업체들이 결과 등록 시 제공한 조사 관련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자격 미달의 소위 ‘떴다방식’ 부실 여론조사기관의 난립과 여론조사 결과의 질적 저하에 대한 우려 속에서 우리나라는 2017년 선거 여론조사기관 등록제를 도입했다. 나아가 올해 초 여심위는 심의위를 통해 기존 88개 조사기관 중 34%에 달하는 30개 기관에 대해 등록취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러한 조치는 여심위가 지난해 여름 조사기관 등록 요건을 강화한 데 따른 후속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개정된 등록 요건 강화와 기관 수 변경에 따라 등록업체당 분석 전문인력은 평균 1.7명에서 3.4명으로, 평균 직원 수는 20.6명에서 32.3명으로 개선됐지만, 여전히 추가 규제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남아 있다. 양질의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선거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지만, 우후죽순처럼 남발되는 여론조사 홍수는 유권자들의 혼란만 가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지방선거 직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제8회 지방선거 개시일(5월 19일)부터 5월 29일까지 일주일 동안 여심위에 결과가 등록된 여론조사 전화 횟수는 모두 1624만5204통이었는데, 이 중 접촉 후 응답 완료 사례는 24만7879건(1.5%)에 그친 반면, 접촉 실패나 거절 건수는 1063만9043통(63.8%)이나 됐다고 한다. 이러한 과도한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조사 피로도나 거부감을 증가시켜 응답률을 낮추고 조사의 정확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물론 최소 기준의 응답률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게 하는 추가 규제를 도입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언론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신중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선거 여론조사를 법령으로 직접 규제하는 방식보다는 조사기관들이 스스로 책임성을 갖고 자율규제를 강화해 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과도한 공적 규제는 오히려 부실 조사기관에 품질 보증을 달아주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작년 12월 국내 주요 여론조사 회사 34곳이 가입 중인 한국조사협회가 7% 미만 응답률의 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는 내용을 포함한 정치·선거 여론조사 품질 강화 기준을 자체 합의해 발표한 것은 고무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한편, 시장의 이러한 자율규제 강화 조치와 별도로 조사 전문가와 유관 학회 등 민간 부문이 중심이 돼 조사 기법, 응답률, 설문 문항 또는 과거 조사 결과의 정확도 등을 기준으로 한 기관 평가 등급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도 하다.
민의는 민주주의의 근본이고, 여론은 그러한 민심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는 개인이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는 중요한 정보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여론조사기관들은 왜곡 없이 여론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막중한 책임성이 요구된다. 물론, 민의를 왜곡하는 부실 여론조사에 대한 감시와 책임 추궁은 여전히 유권자의 몫이기에 우리는 선거 조사에 대한 기본적 문해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동아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경청하겠습니다.
추천 많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