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수 반열에 오른 격투계의 전설들을 보면, 동시대 강자들과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그 라이벌들과의 대결에서 최종승자가 된 케이스가 많습니다.
복싱의 경우, 알리와 레너드가 떠 오르는군요.
알리는 60년대 소니 리스턴이라는 초강타자를 2번이나 꺾고, 플로이드 패터슨이라는 스타 챔프를 꺽고 위대한 실적을 거둡니다.
리스턴-패터슨-알리의 관계를 라이벌리라 보기는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만, 이렇게 이미 뛰어난 실적을 올린 알리는 병역문제로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복귀하면서 70년대 초반 조 프레이저 - 조지 포먼 - 알리의 헤비급 역사에서도 손꼽힐 만한 강자들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합니다.
알리가 프레이저에게 1차전에서 패했지만, 프레이저를 학살하다시피한 조지 포먼이라는 공포의 강타자를 8회 케이오로 잡고 챔프에 올랐으며 프레이저와는 결국 3번의 승부를 벌여 2승1패의 우위를 점합니다. 결국 이 라이벌리의 최종승자가 되면서 60년대 실적에 더하여 어마어마한 업적을 쌓게 됩니다. 그 후에도 1차례 더 헤비급 타이틀을 차지하였고 알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복싱에서 슈거 레이 로빈슨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복서의 반열에 오릅니다.
80년대 웰터급~미들급의 중량급에는 파블러스4라는 슈퍼스타들이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레너드, 두란, 헌즈, 해글러였죠. 이들 각각은 정말 엄청난 강자이며 위대한 선수였고 이들간에는 물고 물리는 라이벌리가 형성되어 복싱 중흥기를 형성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레너드는 두란에게 1차전에서 패했지만 2차전에서 리벤지에 성공하였고 먼 훗날 노인정 매치로 벌어진 3차전에서 승리 (별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만)하여 전적상 우위를 차지했고 헌즈와 1승1무, 그리고 은퇴후 복귀하여 해글러를 판정으로 잡으면서 이 라이벌리의 최종 승자가 되며 복싱 역사상 위대한 레전드의 반열에 오릅니다.
알리와 레너드를 보면 그 자체로서 엄청난 기술 등 실력을 지녔지만 그들이 상대했던 강자들의 레벨이 또한 엄청난지라 그 위대함을 더욱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알리의 경우, 라이벌이었던 조지 포먼이 40세가 넘은 나이에 홀연히 복귀하여 젊은 강자들을 연파하고 헤비급 타이틀까지 차지하는 엄청난 괴력을 보여주어 그의 전성기에 KO승리를 거둔 알리의 업적이 반사이익으로 더욱 찬연히 빛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포먼의 쾌거로 인해 복싱계에서는 70년대의 수준이 90년대 수준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는 평까지 끌어내게 되죠.
MMA의 역사는 복싱과 비교할 수 없이 일천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나름 슈퍼스타들을 배출하였고 이들은 대단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여전히 진행중인 선수들과 있구요. 효도르와 GSP는 각각 라이벌리의 최종승자로서 슈퍼스타의 위치에 오른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효도르의 경우 프라이드 무대에서 노게이라, 크로캅과 이룬 라이벌리는 MMA의 흥행에 지대한 역할을 했고 효도르는 노게이라에 2승 1무효, 크로캅에 1승을 거두면서 이 라이벌리의 최종승자가 되면서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릅니다.
당시 노게이라와 크로캅의 실력이 명성만큼이었는지, 프라이드 특유의 포장의 덕을 입은, 그러니까 거품이 다소 끼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있는데 아무튼 노게이라는 사실 프라이드 시절에도 떡밥매치와는 큰 연관이 없었고 강자들과 무수한 매치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 강자라 생각하며 프라이드가 막을 내린 후 UFC에 진출하여 팀 실비아에게 역전 서브미션승을 거두며 잠정 챔피온에 오르기도 했으니 자신의 강함은 나름 충분히 입증했다고 봅니다.
문제는 크로캅인데 크로캅은 K-1이라는 입식 타격무대에서 그랑프리 준우승 경력자이며 결국 프라이드 무차별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커리어에서 최대 실적을 거둡니다만, 만만히 보고 건너간 UFC무대에서 곤자가라는, 당시 미드레벨 정도의 다크호스에게 실신 케이오되면서 충격을 줍니다. 이후 칙 콩고라는 역시 문지기급 선수에게도 패하면서 프라이드 출신 강자들의 레벨에 의문부호가 달리는데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크로캅외에도 쇼군의 충격적인 패배, 반실의 리델에게의 패배 등은 결국 그때까지 격투계의 절대강자이자 아이콘의 지위를 누리던 효도르의 실적에도 검증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만들었죠.
결국 효도르는 옥타곤 무대가 아닌 어플릭션이라는 신흥단체와 계약하여 링의 무대로 팀 실비아와 알롭스키라는 UFC의 전 헤비급 챔프출신의 비슷한 연배의 스타선수들과 연이은 대결을 벌여 두 선수를 각각 1라운드 서브미션 및 KO로 꺾으면서 그에게 제기된 검증론을 종식시키면서 황제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합니다.
GSP의 경우 웰터급이라는 중량급 무대에서 BJ펜이라는 천재 선수, 그리고 인간 기중기 맷 휴즈라는 위대한 챔피온과 라이벌리를 형성하여 치열한 대결을 벌이면서 UFC 흥행에 큰 축을 형성합니다. (물론 최대 흥행축은 라헤의 리델과 티토, 커투어간의 라이벌리였지만요.) 여기에 라이트급 챔프 출신인 션 셔크까지 포함시키면 4인간의 라이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셔크가 이들 3인에게 모두 털린지라 좀 쳐지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GSP는 결국 맷 휴즈와 3번의 승부에서 2승1패로 우위를 점하고 BJ펜에 2승, 그리고 셔크에게도 KO승을 거두면서 이 라이벌리의 최종승자가 되며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릅니다.
BJ펜은 라이트급의 절대 강자였으며 체급을 뛰어넘어 료토 마치다와도 겨룰 정도의 엄청난 실력자였고 맷 휴즈도 전설로 불릴만한 위대한 챔프였기에 이들을 꺾고 최종승자가 된 GSP의 위상은 엄청난 것이 될 수 있었겠죠.
GSP는 이후 맷 세라에게 충격의 업셋을 당하지만 절치부심하여 리벤지를 완벽히 수행했고 이후 현재 6차방어에 이를 동안 존 피치, 티에고 알베스, 제이크 쉴즈 등 당시 연승을 거두면서 무서운 기세로 도전해온 강력한 도전자들을 모두 꺾고 위대한 커리어를 쌓아 갑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헤비급의 알리와 효도르, 웰터급 등 중량급의 레너드는 GSP와 비교되는 면이 있습니다.
효도르의 경우, 만일 크로캅이 조지 포먼이 그랬듯이 UFC무대를 평정하고 챔프자리를 거머 쥐었다면 효도르는 이의 반사이익으로 더욱 그 위상을 공고히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만일 효도르가 알롭스키를 제압한 직후 만일 명예롭게 은퇴했다면 효도르는 아마도 복싱의 알리에 비견되는 위대한 선수로 지금까지 추앙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UFC등이 주 전장으로 삼는 케이지에서의 경기력은 끝내 검증이 안되었겠지만 대신 UFC의 전 챔프 두명을 모두 1라운드에 잡음으로써 조금 미흡하나마 어떤 증명을 해 낸 것으로 평가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효도르의 커리어는 이 시점부터 꼬여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크로캅전 승리이후 몇년간 소위 떡밥매치를 주로 소화하면서 승수쌓기와 자신의 위상을 지키고자 리스크 회피적인 면을 보인 면은 있지만 어플릭션에서의 의미있는 2승으로 당시에는 그간의 의문의 행보를 모두 날려버리는 실적을 쌓았기에 큰 문제는 없어보였죠.
알리가 리스턴과 패터슨을 모두 꺾고 수차례 방어전에 성공하면서 쌓은 명성과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복귀후 프레이저와 포먼과 벌인 대결들은 그의 도전정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알리로서는 다른 길이 없었을지 모르겠지만요. 3번의 챔프를 지낸 후, 말년에 다시 래리 홈즈라는 신흥 강자에게 도전하여 무참히 KO로 지지만 그의 커리어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기서 효도르는 알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길로 접어듭니다. 만일 어플릭션이 망한 직후 효도르가 UFC에 입성하였다면, 그리고 그를 위해 레슬링을 보완하고 근력을 강화하는 등 기술발전에 노력했다면, 그래서 만일 랜디 커투어와 타이틀전이 성사되어 만일 그를 꺽고 챔피온에 등극했다면, 설사 그 이후 레스너에게 만일 패하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 들 그의 커리어를 비난할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우리나라 씨름계에서 이만기가 강호동에게 패하면서 정상에서 내려온 상황, 그 이후 엄청난 거구들이 득세한 상황과 비슷하게 보면서 효도르의 마지막을 지켜보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커투어에게 패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레스너에게 승리했을 수도 있고 이미 알 수 없는 가정이 되겠지만요.
효도르는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너무 커리어 관리에 신경을 썼고, 바딤과의 관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악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스포에서 3연패를 당하며 기술적인 낙후성까지 드러내면서 커리어 전체에 대한 평가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효도르 입장에서는 프라이드의 소멸이 상당히 아쉽고, 그간의 업적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하지 못한 상황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복싱계의 슈퍼스타들처럼 엄청난 대전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그래서 알롭스키를 꺾은 시점까지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면 정상에서 은퇴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해 MMA무대를 떠날 수 없었고 하필 파트너가 바딤같은 사람이었죠. (물론 바딤을 선택한 것은 효도르이니 자초한 일이긴 합니다.)
MMA계의 알리가 될 수 있었던 효도르는 급전직하하여 이제 커리어 전체를 의심받는 상황까지 왔으니 MMA팬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 없겠죠. 훗날 MMA 역사가 09년까지의 그의 업적을 높게 평가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GSP는 이대로 커리어를 진행해 간다면 MMA계에서 레너드 만큼의 위상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레너드는 화려한 경기와 언행을 지니고 있었고 GSP는 맷세라전 이후 수면제 파이터로 변모했다는 점, 레너드는 다체급 석권자이지만 GSP는 웰터급에서 장기집권자라는 점이지만 커리어 실적이라는 면에서는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글 아직 다 못 읽었지만 표도르 노게이라 2승 1무.... 요즘 복싱도 꽤나 잼게 보고 있어서 쓰신글 잘읽었어요.
어우...진짜 좋은글이네요~
잘봤습니다.
개인적으로 GSP는 바셀린이 후대에 계속 발목 잡을듯하네요.
글은 정말 잘봤습니다.
그 당시 생방으로 보고... 바셀린 도포 기사들 막 터질때...
어차피 또 해도 질텐데 몰~ 이랬는데...
GSP가 계속 승승장구하고 레전드네 이런 평가가 짙어짐에 따라서
갈수록 그게 찜찜하게 걸리더군요.
그 누구보다 체급을 강력하게 지배하긴 했지만,
그 누구보다 비겁했죠.
조상필은 레너드보다는 아래인 버나드홉킨스 정도로 평가하면 될것 같습니다(미들급에서 월장 이전의 비홉) 혹은 헤글러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