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이야기"---(4) (멋지게 살자)
난 언제부터인지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써 너무 쉽게 포기하는 습관을 은연중 가르쳐준 것 같다. 아이들은 옛날 열심히 살때의 모습은 기억하질않고(어렸을때이니 기억할리도 만무하겠지만) 요즘 새벽까지 돌아다니거나 늦잠자는 등의 나태하고 못된 버릇만 따라한다. 나의 불타던 의지가 차차 꺾인계기는 '80년대 초반 강남신사동서 탁구장과 당구장에서 손을 떼고(매일 새벽4시에 퇴근하는 난 건강체질이라 그런지 괜찮았는데 입고다닌 옷에묻은 쵸크가루로 말미암아 집사람과 어린 두아이가 모두 결핵에 걸렸다.
(1977년 홍중사가 제대하기전 결혼전 대구누님들께 신고하러 가면서~ 금강휴게소)
거의 2년동안 약값대느라 혼났다. 설상가상으로 나마져 형님공장을 도와주려다 허리를 다쳤으니 당시엔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였다. 덜컥 고질을 얻고보니 의욕도 사라지고 매사에 짜증만 쌓이고 있었다. 적잖은 인원을 데리고 살금살금 주문오는 전화 받아가면서 하는 가구공장이 꽤 짭짤할때이었다. TV STAND, VTR RACK, COMPUTER TABLE 등을 상계동에서 만들어 가구점(특히 라자가구)에 거래하면서 차차 궤도에 들어서려던 시기였다.
(1978년 여름 결혼직전 용인 자연농원에서~)
어느날 느닷없는 집중호우로 순식간에 완제품(400여대)이 물에 잠기면서(더운 열사의 나라에서 악착같이 돈벌어 몇년간 피땀흘려 어렵게 모은 재산을 몽땅 투자한 터전을)하루아침에 어이없이 날리게 되었다. 넘어진 사람을 그위로 밟고 지나가려는 세상인심인지라 더우기 위탁판매로 이미팔린 제품마저도 수금이 되지않았다. 이게 바로 현사회 실정이었다.---(생략)---일조일석에 깡통을 차게돼 타락이 된 형님은 못마시던 술도 홀짝홀짝 한잔씩 마시더니 언젠가 부터는 손이 떨리는 중독증세까지로도 갔었고 집안
모두 평소 좋아하는 고스톱에 날밤을 세우기가 비일비재하였다.
결국, 끝내는 공장도 처분하는 신세로 한때 데리고있던 종업원 밑에 다시 들어가 기술자역활로 위치가 뒤바뀐적도 있었다. 한번 기우러진 가세는 좀체 원상복귀가 되지않았고 이제 겨우 진 빚을 거의갚았지만 아직도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불행중 다행인것은 모든잡념과 허욕을 버리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김으로 지난 모든 잘못된 일을 반성하고 헛살아온 과거를 그 자식들에게 되풀이 않도록 일깨워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로썬 오늘 못하면 내일, 내일 못하면 모레, 그것도 못하면 이 다음에~ 이런식으로 삶에 여유를 두자는건데--- 우리 아이들이 잘못 이해하면 너무 양보만하는 안일한 습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착같은 삶의 경쟁에서 뒤쳐진생활을 살아온건 아닌지?
(속리산에서~ 끼고있는 '다이어 반지'는 사촌형(홍재흠)님께서 마련 해 주심)
그저 양보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그럴수있겠지~ 등등 으로 자꾸 미루다보니 점점 동료들과의 심한 격차가 벌어짐을 어느날
느끼게 되었다. 때문에 모든게 주위사람과 비교하면 뒤떨어지는것 같다. 다행인것은 애비가 그렇게 흥청망청(?) 쓰는 습관은
따라하지않고 상당히 구두쇠 타입으로 알뜰하게 사는 모습에 잘 못 살아온 아비를 거울삼아 이넘들은 아마도 딛고 일어서는 듯
하다. 그 옛날 신혼초시절 가끔 장인어른께서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하며 한번씩 보러오셨다. 영동대교 지난 바로옆 경기고교
근처의 청담동 살때이다. 딸자식 갖인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듯 그냥 오시잖는다. 하다못해 닭이라도 한마리사서 그 먼 의정부
에서 버스를 몇번 갈아타고 오셨다.
(신혼여행 중 "워커 힐" 에서~ 당시 신랑, 신부친구들이 몇명 동행함)
사실 나로썬 가실 차비에 약주값을 웃짐으로 더 얹어드리니 닭값의 몇배나 드는셈이었다. 헌데 "숙"인 그럴경우의 가계부를 잘
적질 못했다. 난 당시 닭값은 과외수입으로 적고 가시는 차비와 술값은 지출란에 따로 적는걸 W.는 무척 헷갈리는듯 한동안 많은 혼선을 빚었다. 그 후부터 난 가계부를 내가 관리(?)했다. 지난날 아들이 엄마가게에서 가끔 알바를 한적이 있다. 나로썬 공과
사를 가리자는 의미로 꼬박 일당을 쳐 줘야한다며 근무한 일수X일당=용돈으로 쳐줬다. 또한 지금도 에미에게 작은넘이 밥값으로 한달에 얼마씩 통장으로 자동이체 하도록한다. 결혼하지않은 자식과 한집 살면서 뭐 하숙비를 챙기는가하는 아이들의 항의가 있을런지도 모르지만 난 이미 대학졸업시까진 모든걸 부모로서 해 주겠지만 그다음부턴 돈을 갖어가도 꼭 빌리는 형식이다.
(S전우(백마) 며느리 보면서 함께(그는 베트남 며느리, 홍하사는 중국며느리를~)
집사람과의 시장행도 마찬가지이다. 동대문과 남대문을 가끔 나다니는데 몸은 내가 봉사해 주지만 연료비는 꼭꼭 받아챙긴다.
차량에 들어가는 돈은 따로 계산해서 와이프 가계운영비에서 지출해야만 되는게 아닌가? 그런 나를 어떤 사람들은 이해가 가질않는 모양이다. 주머니 돈이 쌈짓돈인데 뭘 그리 부부간에 따지느냐고--- 처음엔 와이프의 불만이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은 수긍
하는듯 내가 하는대로 따라준다. 요사인 더더욱 경제가 좋지않아 가계도 매일 적자란다. 때려치우고 싶어도 그렇질 못한다.
언제나 마이너스 통장이 플러스가 될려는지~. 이젠 와이프도 웬만한 걱정쯤은 만성이되어 재치로 넘기고 오히려 웃으며살자며 내겔 위로한다. 자신은 배우는 드럼에서 스트레쓰를 풀듯 열심히 두드리며---
(백두산 산행을 하면서~ "주미(주한미군 노동조합)산악회" 가운데 홍하사 부부)
짧은 일정의 이번 여행은 예상보다 적잖은 출혈로 많은 반대를 무릎쓰고 강행했으니 역시 밤샘의 비행과 뜬눈으로 새우고
바로 출근하는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결코 잘 했구나를 느낀다. 이로써 난 일본의 4대도시라 불리는 東京(Tokyo)과 橫炳(Yokohama) -두 도시는 하네다공항(주로 국내선)과 나리타공항(국제선)을 다녔다. 大阪(Osaka-칸사이 국제공항)과 나고야(名古屋)등은 비록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곤했지만 느낀점등을 홍하사 나름대로 적어보니 우선 일본은 노선버스는 거의 보이잖고 모든 교통수단이 지하철,전철,국철,괘도차 등으로 이뤄져있었으며 선진국답게 점자등에도 세심한 배려를 한것에 놀랐다. 때론 지하철이 한쪽으로 내리고 반대편으로 타는것도 우리완 많이 색다른 무척 합리적이었다.
(2014/3/22일 홍연호(큰아들)결혼식에서 홍하사 부부가 "금발의 제니"(포스터 작곡)축가를 부르다)
금새 바꿔타야기에 그런탓도 있겠으나 한 자리나면 서로 앉으려고 우루루 눈치보는 우리의 그런 모습은 거의 없었다. 또한
함부로 앉질 않았다. 깨끗한 거리모습과 반듯한 주차된 모습과 순서대로 주행하는 교통질서등 역시 선진국이란 사실은 믿어
의심치않게했다. 희한하게도 (1)편을 쓸 당시에도(독일월드컵 최종예선전'05/6/6) 박주영이가 종반에 한골넣어 겨우 1:1로 비긴 경기이드니 이번에도 남아공 월드컵최종예선전'08/11/24)에 그것도 과거19년 동안 한번도 이기지 못했던 "사우디 아라비아" 를 단 한골차로 살얼음판의 리드에 쇄기를 박는 한골을 추가하여 2:0 으로 끝냈으니---
(홍하사 월남에서 약혼한 Anh(16세였으나 실제론 14세였음)
"월드컵" 과 "우리가족 이야기" 와 "박주영" 이가 무슨 불가분의 관계인지? 이 다음에도 잘 기억해놨다가 홍하사가 최종예선전
치루는 날이면 꼭 날밤을 새우는 어려움이 있드래도 어김없이 이행해야겠다. 우리나라가 이기는 게임인데 무얼 못할까?
헤어질때는 3년전 갈때 한말이 기억났다. 돼 먹지않게 이해타산 따지며 이리저리 저울질하는 약삭빠른 아가씨는 원치않는다.
그 보다는 차라리 기본예절이 제대로 되어있고 소처럼 우직하드라도 사회때가 묻지않은 일본아가씨나 하나 데려와라.
(일본 며느리가 더 낫다고 말한적이있음을 강조한데) --- 아직은--- 그레도 한국여잘 택하겠다는 고마움이 앞선다.
(결혼전날 서울투어(남산)에서 울淑과 함께(左 중국사돈, 右 미국사돈)
졸업과 동시에 네가 벌어서 장가도 가고 모든걸 네 스스로 하라고 했다. 물론 앞으로 장래 부모를 모실 생각도 하지말고 우리도
느네들에게 신세않질것이다. 그레서 그런지 이넘들이 아직 사귀는 예비 며느리감으로 한사람도 여태 데리고 오질않는다. 난
형제간에 순서가 뒤바뀌어도 상관않고 누굴 데려와도 그들이 좋다면 오케이다. 내욕심 같아선 그래도 친딸같이 한집에서 당분간 함께 살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포세이돈의 굴뚝" 같지만 어디 그게 요즘세상에 젊은 아가씨들에겐 가당키나 한 얘긴가?
(홍하사 태어나기전 부모님과 두누님 - 안고있는 아기가 유일한 생존자 대구작은 누님 - 86세 )
<천하의 홍하사는 그렇다>
어느누가 말했드시 훗날, 인생의 흔적을 뒤돌아 봤을때 "어디서 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 에 역점을 두고싶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갖인게없는 사이라할지라도 사람하나만 믿고 서로서로 마음만 일치하며 숟가락에서부터 냄비 순으로
하나하나 처음부터 시작 할 어디 그런 좋은 색씨감은 없는지? 찾아보면 있을것인즉 나와같은 그런사고를 갖인 사돈감은 없을까?
가훈처럼 "멋지게 살자" 를 실천에 동참하려는 참한 여식을 갖인 사람을 말이다.
이상 글들은 두아들이 결혼하기전의 쓴 글인데 지금은 큰아이(연호-중국 며느리)와 작은 아이(제주 며느리)가 각각 결혼하여
특히 일본의 "코알라 3세"(손녀 세하)는 멋진 그림도 만들어 "코알라 1세" 를 보람되게 하고있다. 세하(世霞)외갓집으론 그림
그리는데에는 상당한 조예가 있는 집안으로 알고있다. 미국의 상당한 대회서 입상,전시회를 연 바도 있다한다. 암튼 글로벌
시대에 무엇이라도 남들에게 뒤지지않을 가족이 되었으면 하였고 이미 두며느리와 3세는 4개국어를 하고있으니 다행이다.
---우리(코알라)가족 이야기--- 끝
"LAY ALL YOUR LOVE ON ME"(네 모든 사랑을 내게 쏟아줘)
SUNG BY ABBA
I wasn't jealous before we met.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내게 질투란없었어요.
Now every woman I see is a potential threat. 그렇지만 이젠 모든 여자들이 적으로 보여요.
And I'm possessive, it isn't nice. 그래요 난 소유욕이 강해요. 좋지 않다는 걸 알죠.
you've heard me saying that smoking was my only vice. 난 담배 피우는 것 말고는 뭐 흠잡을 데가 없는 여자죠.
But now it isn't true. 그런데 이젠 담배도 안 펴요.
Now every is new. 모든 게 변했어요.
And all I've learned has overturned.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었어요.
I beg of you. 난 당신에게 이떻게 애원해요.
Don't go wasting your emotion. 감정을 낭비하지 마세요.
(Don't go sharing your devotion.) (노력을 흩뿌리지 말라고요.)
Lay all your love on me. 당신의 모든 사랑을 내게 주세요.
It was like shooting a sitting duck. 난 당신에게 너무나도 무력하게 빠져들었죠.
A little small talk, a smile and baby I was stuck. 잠깐 동안의 얘기와 미소로 난 당신에게 빠지게 되었어요.
I still don't know what you've done with me. 나한테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A grown-up woman should never fall so easily.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가 이렇게 쉽사리 빠져들다니
I feel a kind of fear. 두렵기 조차 하네요.
When I don't have you near. 당신이 곁에 없을 땐
Unsatisfied, I skip my pride. 뭔가 불만스럽고 자존심도 버릴 지경이예요.
I beg you dear. 당신에게 애원해요.
I've had a few little love affairs. 예전에도 몇 번 사랑에 빠졌더랬죠.
They didn't last very long and they've been pretty scarce. 모두 오래가지 못했고 최근엔 그런 일도 없었어요.
I used to think that was sensible. 그게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It makes the truth even more incomprehensible. 오히려 현실을 더 이해할 수 없게 만들어요.
Cause everything is new. 모든 게 변했기 때문이죠.
And everything is you. 당신이 그 원인이예요.
And all I've learned has oventurned.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었어요.
What can I do...... 어찌해야 할까요......
(자가용 헬기로 순회공연 다니는 세계적인 보컬, 스웨덴이 자랑하는 그룹 ABBA - 두쌍의 부부였으나~)
첫댓글 "멋지게 살자"---(4)(우리가족 이야기 中에서) 는 2008/11/28일 쓴 글이었으나 조금 변형하여
다시한번 "코알라 가족"으로 올려봅니다.12번째의 우리 손녀가 쓴 뜻은 "홍세하"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동물:개, 포메라니언 모두와 함께 최고의 교실을 만들고 싶다" 라는 뜻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