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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여행기 공유합니당
막여행자 blog.naver.com/jh2er에서 여행기 더 보실 수 있어요 ^^
원래 겁이 없었다, 그냥 겁이 생길 구석에 호기심이 꾹꾹 눌러 채워진 사람이었다. 1년 간의 가나 파견 근무를 끝내고 유럽 여행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새로운 게 하고 싶었다. 다 갖춰진 곳 말고 하나하나 내가 찾아내야 하는 여행, 그런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가나 근처의 서아프리카 나라들이 제격이었다. 겁이 없다고는 했지만 외교부의 여행 안전여행 지도를 보니 온통 빨갛고 노란 철수권고나 여행자제 지역이었다. 가나에서 스페인으로 올라가려면 말리, 모리타니아같은 철수권고 국가들 뿐 아니라 서사하라같은 미승인 국가, 너무나도 내겐 생소한 지구 반대편 지역을 지나야 했다. 하지만 무엇에 홀려서인지, 나는 유럽 여행의 관문으로 점찍어뒀던 터키에서 가나로 가는 항공권을 질러버렸다.
들어는 봤나? 아프리카에서 제일 작은 나라 상투메프린시페
가나에서도 서쪽으로 두 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섬나라 상투메프린시페는 상상 속 정글같은, 무인의 해안으로 둘러싸인 나라였다.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유폐하고 싶을 때, 상상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환상이 북받칠 때 가나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상투메프린시페를 꿈꾸곤 했다.
“정화씨, 상투메 프린시페라고 들어봤어요? 저어~기 기니만에 있는 섬나란데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한 번 가봐요.”
그 때가 처음이었다. 상투메 프린시페를 처음 들은 것은. 그리고는 가나 근무 중에는 여전히 상상 속의 섬나라로 남겨두었었고.
서아프리카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제일 처음 그 상상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비행기도 포르투갈 항공사인 TAP Portugal에서 일주일에 세 편 밖에 운항을 안했기에 가나에 들어간 바로 그날 나는 비행기를 탔다.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설렘과 걱정 가득한 비행 후에 나는 상투메 섬에 닿았다.
그냥 밀림같은 나라일 거라고 생각한 탓일까, 여행 계획, 언어, 화폐 아무 것도 공부해가지 않은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뭐 어떤 것도 신속하고 똑똑하게 처리한 것이 없었다.
진짜 밀림을 찾아서
사실 상투메 프린시페의 상투메 마을은 그렇게 상상 속 밀림같은 나라는 아니었다. 큰 마트가 있고 신선한 해산물 요리를 파는 음식점이 있고, 피부만 검을 뿐 나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진짜 밀림을 찾기로 했다! Bom Successo에서 각종 열대종 초목이 그늘을 드리운 등산로를 지나 각종 식물 퇴적층으로 땅이 융단처럼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Lagoa Amelia까지 가는 2~3시간의 트레킹. 주머니 가벼운 배낭 여행자였던 나는 조금 불편해도 좋으니 저렴한, 여러 사람이 끼어 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했으나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었던 건지, 어디선가 나타나 손짓발짓으로 Bom Successo에 가고 싶다 말하는 하얀 외국인이 돈이 많아 보였던 건지. (왠지 시가보다 훨씬 많이 준 듯한) 가격 협상을 완료한 후 조그만 승합차는 나와, 영어를 Small small하게 할 줄 안다며 통역을 자처하는 승합차 기사의 친구인 듯 한 청년 둘만을 태우고 트레킹이 시작되는 Bom Successo로 달렸다.
트레킹 시작점에서 나의 트레킹에 합류한 숲 해설사 겸 가이드 아저씨와 자칭 ‘영어를 할 줄 아는’ 청년, 그리고 나는 완만한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숲 해설사 아저씨가 무언가를 설명할 때마다 영어 청년은 내게 친절하게도 포르투갈어를 포르투갈어로 번역해주었고 등산 내내 내가 들은 영어라곤 여기 조심해~ 천천히 걸으라는 의미의 “Small small”밖에 없었다. 하지만 약간은 쫄아 있는 내게 커피콩과 산딸기를 따다주고 위험해 보이는 곳에서 손을 잡아주고 잠깐 쉬었다 가는 바위 위에 나뭇잎을 깔아주고, 사진을 찍어주고. 사람 키의 두 배만한 장대가 땅에 다 박힐만큼 폭신폭신한 평원인 Lagoa Amelia까지 그는 내게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클라우디오 할아버지의 초콜릿 연구소
“뭐 얼마나 대단한 곳이라고 이 더위에 사람을 문 밖에 이렇게 기다리게 하나…”
대문 쇠창살 사이로 입장표를 사고 한참을 더위 속에 서있었던 나의 불평은 클라우디오 할아버지의 초콜릿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가득한 눈빛을 보고 쑥 들어가버렸다. 그의 오랜 연구에 걸쳐 나온 후추 초콜릿, 커피콩 초콜릿, 술 초콜릿 등 다양한 종류의 양질의 초콜릿을 맛보며 우리는 상투메 프린시페 카카오 이야기, 그와 그의 연구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그는 프랑스어와 포르투갈어밖에 할 줄 몰라서 그의 부인이 내 곁에서 밀착 통역을 해주었는데, 그녀의 행복감이 눌러 담겨진 듯한 자연스러운 웃음 주름과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따뜻함과 친절함이 느껴졌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진심을 고스란히 느낀 그 곳 덕분에 나의 상투메 프린시페 여행은 힘들었지만 감히 말하건대 최고의 서아프리카 여행지 중 하나가 되었다.
첫 노숙, 그리고 서아프리카 전통 가옥의 원형, 토고 쿠탐마쿠
그렇게 나의 상상 속으로의 모험을 마치고 가나에서 잠깐 쉰 후 가나의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토고로 향했다. 토고의 중북부 지방에 있는 Kara에서 정원을 훨씬 초과하는 사람들이 끼어 타는 셰어택시를 타고 시골 마을 사이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나오는 마을 Kande 옆에는 부르키나파소 지역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무슬림들에게 박해받아 토고 및 베넹 땅으로 남하하여 정착한 사람들의 정착촌인 쿠탐마쿠가 있다. 그 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전통 가옥에서 그들의 애니미즘 신앙인 부두교를 믿으며 여러 개의 마을을 형성하여 살고 있는데, 유네스코에서도 이 곳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쿠탐마쿠로 가기 위해 카라로 도착한 날 밤, 그 날은 토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레슬링축제가 있는 날이었다. 바람같이 여행하는 게 좋아 어떤 예약도 없이 다니면서도 조금의? 아니 엄청난 찾아 헤매기 신공 끝에 질이야 어찌됐든 매일 밤 베개에 머리를 붙일 수 있었던 나는 처음으로 노숙의 위기에 봉착했다. 꽤 괜찮은 호텔에서부터 과연 저런데서 잘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칙칙하고 지저분한 느낌의 게스트하우스까지.
“방 있어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어요. 오늘은 축제 기간이라 어딜 가도 방 없을 거예요”
였다. 음 이를 어쩐담. 쿵짝쿵짝 요란한 시내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빛 하나 없는 어두움.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다가 행여 하얀 이를 드러내며 쓰윽 웃기만 하면 존재를 깨닫게 되는 길거리의 흑인들. 아무리 겁 따위는 엄마 뱃 속에 버려 버리고 나온 나라지만 이건 처음 봉착하는 난감한 상황.
일단은 그 동네에서 가장 밝아 보이는 조그만 부띠끄 호텔 로비에 자리를 잡았다. 와이파이 되고 선풍기가 돌아가는, 적은 수의 모기가 서식하는,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한 그곳에서 새벽 두 시까지 버텼다. 음 그런데 나가라고? 눈 앞이 깜깜해서 호텔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으니 호텔 매니저부터 경비, 동네 아저씨들까지 모여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두 개의 의자를 문 밖에 내주었다. 이제 나의 밤은 모기와 더위와의 싸움이 되었다. 야간 보초를 서던 경비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자신의 치킨을 내어줬으나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는 어이없어 미친 듯이, 정말 단어 그대로 미친 듯이, 웃은 나.
그날 밤은 그렇게 무사히, 호텔 (앞)에서 지내고, 칸데로 넘어가서 쿠탐마쿠 지역 한적하고 평화로운 들판에 세워진 서아프리카 전통 가옥의 원형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나는 도대체 언제 말리에 갈 수 있을까…
토고와 베넹을 여행하고 가나를 지나 도착한 코트디부아르, 과연 수도 아비장은 아프리카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화려했다. 뭐 뒷골목에 들어가는 순간, 빈부의 큰 격차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지만. 아비장에서 간만에 화려한 도시 생활을 즐기고 코트디부아르 중부 지방에 위치한 정치 수도 야무수크로에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성당이라는 야무수크로 대성당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낮잠을 자던 그 때까지도, 나는 말리까지 가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닭장같은 차 안에서 보내야할 지 몰랐었더랬다.
여행정보라곤 쉬이 찾아지지 않는 지역에 한국인의 육로 이동 시 말리 비자발급 조건을 찾을 수 있을리가 만무했고, 나는 그저 어딘가에서 전해들은, 얼마를 내면 국경 비자가 가능하답니다,라는 말만 철썩같이 믿고 야무수크로에서 말리 수도 바마코까지 가는 버스표를 샀더랬다. 그렇게 타게 된, 한 줄 정원 6명의, 창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고 금방이라도 멈춰버릴 것 같던 더럽고 오래된 버스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한 시간 달리면 두 시간 멈춰 서서 그의 폐부를 드러내 수리해줘야 하는 기염을 수차례 내뿜었다. 새벽 두 시에야 도착한 코트디부아르-말리 국경 지대에는 흙으로 지어진, 창문이나 문도 없는 출입국 사무소와 모기를 쫓으며 어둠 속에서 수기로 출입국 기록을 적는 공무원들이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여권의 힘을 믿으며 국경 비자로 지나갈 생각만 하며 여권을 보란듯이 내밀었으나,
“국경비자 없습니다~ 중북부 지방 부아케에 내려가서 비자 받아오세요.”
그렇게 내가 타고 온 버스는 나를 그 어둠 속에 두고 말리로 떠나버렸다. 두 번째 노숙을 고민했지만 친절한 출입국 사무소 직원의 도움으로 국경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는 다시 기약 없이 고장과 수리를 반복하는 버스를 타고 부아케로 돌아가 영사관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뒷거래가 성행한다고 악명이 높았으나 그런거 전혀 없이 깔끔하게 친절하게 비자를 받았다. 역시 진실은 소문이 아닌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부아케에서 말리까지 가는 길은 또다시 너무나도 험난해서, 32시간 만에 아무튼 나는, 폭우가 쏟아지는 말리 바마코에 도착했다. 내가 발 담그고 있는 이 물은, 하수 시설과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 곳에서, 많은 것이 섞인 것이리라. 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감비아, 제발 내게 길을 터줘!
앞선 국가들에서 굳이 사서하는 고생을 무사무탈히 마치고 세네갈에 도착! 동서로 길게 뻗은 세네갈 중심에는 감비아라는 나라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한국인이 국경 비자를 받으려면 ‘입국허가증’이라는 알 수 없는 서류를 ‘감비아 내’의 사람이 받아야 한다는 얘길 풍문으로 들은 터였다. 일단 나는 세네갈 남쪽으로 들어왔고, 수도인 다카르가 있고 다음 나라 모리타니아로 가는 북행길이 있는 세네갈 북쪽으로 올라가려면 감비아를 지나야 하는 상황. 들르는 길에 여행도 할 수 있는 관광비자를 받으려고 처음 벨링가라-사비 국경으로 갔을 때 국경 관계자들은 아마도 육로로 국경을 넘으려는 한국인을 처음 본 듯했다. 그리고 그들도 오직 이집트인과 한국인에게만 요구하는 입국허가증이 뭔지 우왕좌왕하다가 자기네들끼리 South Korea가 Republic of Korea라는 걸 확인하는 대사관 서류,라고 결론. 이건 뭐… 분단국가라서 이렇게 억울할 수가.... 뭐 마을로 돌아와 시-바까페(불어로 사이버 카페, 즉 PC방을 일컫는 말이다, 절대 욕하는 것 아니다…)에서 한참을 느린 인터넷과 씨름하여 아는 대사관 분들께 부탁해서 서류를 받아갔지만 아…알고 보니 아니었다는 결론. 뭐 말리로 가기 위한 길고 긴 여정도 겪어봤으니까
이….정도는… 뭐. 비가 쏟아지는 비포장도로를 오토바이 택시로 두세번 왔다갔다한 거 이거는 뭐… 별거 아니지 뭐...하하…하…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곳을 여행하니 인내력이 인위적으로 막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일단 더 큰 국경이 있는 동쪽 카사만스 지방으로 가기로 했다.
카사만스에서 제일 큰 도시 지겡쇼르에서 일단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곳으로 추정되는 곳곳에 연락을 취해놓고 답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론리플래닛에 의하면) 아프리카 최고의 바닷가 중 하나라는 캡스키링에 휴양을 다녀오기로 했다. 뭐 해변 자체가 최고,라는데는 크게 동의할 수 없었지만 ‘파라다이스’ 오두막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면서 해변에 각종 초목으로 거칠게 지어진 ‘해피니스’ 주스바에서 생망고 주스를 마시고 ‘네이쳐’ 오두막 레스토랑에서 현지식과 동네 총각들의 젬베 연주, 그들이 직접 따다가 까주는 코코넛과 엄청나게 많은 설탕과 녹차잎을 우려내 만드는 현지식 차를 즐기는 것도 재미있었다. 음식을 한 번 주문하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만큼의 시간을 거기서 보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시 지겡쇼르로 돌아왔으나 관련 정보를 문의한 곳들은 묵묵부답 감감무소식. 감비아 관광비자 받기를 포기하고 그냥 트랜짓하여 다카르로 올라가기로 하고, 새벽 다섯시에 셉트플라스(서아프리카에서 주로 이용하는 9인승 대중교통) 정류장에 갔더니 왠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셉트플라스 기사들이 파업을 벌였다고 한다. 뭐 말은 안 통하니 왠지 알 수는 없고. 그렇게 나의 지겡쇼르에서의 하루는 연장. 캡스키링에서 만나 하루 묵게 해 준 아주머니의 하우스 메이트는 하필이면 그 날 밤 지갑을 잃어버렸고, 세상 태어나 남의 돈 한 번 탐낸 적 없었던 나를 도둑으로 몰아가고. 경찰서 가자고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보기에 나는 모르는 일이다. 인간적으로 미안하지만 나는 아는게 없다,고 하니 자기의 삼촌이 주술사라서 만약 니가 진짜 도둑이라면 넌 저주받을거다,라는 그녀의 말로 마무리(서아프리카에서는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도 많이 믿지만 여전히 샤머니즘의 힘도 크다). 너무 할 것 없는,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의 의심을 받고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바닷가에서의 며칠은 그렇게 하루, 하루 또 연장되었다. 결국에 나는, 죽치고 앉아 있던 바닷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내일 항공편이 있어 꼭 오늘 올라가야 한다는 한 커플이 빌린 차를 같이 얻어 타고 다카르로 북행하였다.
황폐한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지다.
다행히 다카르에는 지인 및 지인의 지인들의 따스한 맞이와 대접으로 그간의 고된 여행의 때를 벗어낼 수 있었다. 비록, 눈 깜짝할 새에 산 지 몇 달 안 된 나의 최신폰이 사라지는 현상을 경험하긴 했지만. 그렇게 세네갈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 머물고 전 국토의 90퍼센트가 사막인 나라 모리타니아에서도 또한 우연히 만난 태권도 선교단 분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세네갈과 모리타니아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다시 모로코로 향할 때가 되었다. 모리타니아에서 모로코로 올라가려면 필수적으로 황폐한 사막 지대인 서사하라를 지나야 했는데, 모리타니아-서사하라의 경계지역에서 왠일인지 나를 태우고 왔던 승합차는 나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아마도 차가 고장나 더 조그만 차로 옮겨 타면서 말 통하지 않는 동양 여자애를 버리고 간게 아닐까 하는 추측. 그들이 나를 버리고 떠난 지도 모르고 또 어딘가에서 고장 수리를 마칠 차를 기다리며 뜨거운 태양 밑에 세 시간을 기다렸다.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과연 숙박 시설이라는게 있을까 싶던 다클라로 가는 길이었기에 되도록 일찍 도착하고 싶었던 나는, 인위적 인내심으로 억압해놓았던 나의 분노를 사막 모래에게 표출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클라?! 다클라!!’라고 외치는 멀대같은 동양 여자애가 불쌍해보였는지, 주변 사람들이 함께 다클라로 가는 차를 수소문해주었고, 나는 그렇게 다클라로 향하는 화물차를 잡아탈 수 있었다. 처음엔 약간은 경계심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으나, 너무나도 편안하게 해주고 손님을 융성하게 대접하는 사막 유목민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화물차 기사 아미드 덕분에 나는 새벽이었지만 의외로 밝고 깔끔한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었던 다클라에 안전히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 수 있었다.
여행의 끝, 서아프리카를 돌아보다
그렇게 다클라에서 모로코 마라케시로, 마라케시에서 카사블랑카로, 카사블랑카에서 라바트를 거쳐 페스, 셰프샤우엔을 지나 탕헤르에 닿은 나는, 스페인행 페리에 올라탐으로써 약 2달이 넘는 기간 만에 아프리카 땅을 떠났다. 가나에서 시작해 상투메 프린시페, 토고, 베넹을 거쳐 코트디부아르, 말리, 세네갈, 감비아, 모리타니아, 서사하라 지역, 모로코로 올라온 나의 아프리카 여행 경로는 사실, 너무나도 보편적이지 않고 쉬운 여정도 아니어서, 누군가에게 쉽게 추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세상 어떤 곳의 땅을 밟든, 깔끔하고 잘 꾸며진 환경과는 별개로 사람이 여행의 의미가 되기도 하기에, 나를 도와주고 함께 해주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그 곳을 또 아예 여행 불가 지역으로 이정화식 청구기호로는 분류하고 싶지 않다. 사람 사는 어디나 정이 있고 추억이 남는 것 아니겠는가. 다소 도전적이었던 내 여행에 남은 향기와 추억은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귀국 후 나는 한국에서의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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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저 입만딱 벌리고 읽었지요.
내 배낭여행은 그저 패캐지였음을 일깨워준
그대의 모험에 일단 박수를~
70대로 향해 가는 할줌마(할머니+아줌마)는
십년만 젊었더라면을 속으로만 외쳤음다!!!
우와 그래도 항상 꿈을 가지고 계신 선생님도 멋지십니다. 잘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대단하십니다.덕분에 여러 생소한 나라이름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대단합니다.
나도 그동안 해외 여행을 좀 무모하게 했다고 생각하였지만
"겸레아" 님의 이지역에의 노정에는 감히 비견할 수 없습니다.
그 열정 용기가 부럽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 쪽에 한번 가보고싶은 생각도 드네요.
에이 누구에게나 자신이 겪는 노정이 비견할 수 없는 노정이겠죠 ~ 정보 필요하시면 언제든 네이버 아이디로 연락주세요 ^^
덕분에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도 많이 풀린것 같습니다.. 후기 읽는 내내 대단하단 생각밖에는....
네 굉장히 아프리카에 대해 오해가 많죠 ! 아직 생소한 곳이라! 직접 경험하고 보고 얘기하는게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
읽기만 해도 두근두근하네요.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될 듯...너무 대단하시네요.
전 그렇게 했다간 심장마비 걸렸을 듯...^^;;
ㅎㅎㅎ 여기 쓰지 못한 심장마비 걸릴 이야기들도 많죠 ㅋㅋㅋ 그런데 정말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댓글 감사드려요 ^^
와 정말 멋진 여행기... 아직 두렵기만해서... 동아프리카 트럭킹만 검색하고 있는데,,
서아프리카 도전해 보고싶네요...
힘든 여정이긴 하지만 또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이 쌓이는 곳이랍니다! 도전 하실 때 네이버로 연락주세요 ㅎㅎ 아는정보는 최대한 도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