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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관련 예화 이야기
성탄절 축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기독교의 성립 후 처음 300년 동안에는 성탄절 축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온 교회의 관심이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육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 사상가들이 주님의 인성에 대하여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교회도 성육신의 심오한 의미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특별히 동방의 기독교인들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교회는 성탄절을 기쁨과 경이로써 축하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알려진 성탄절에 대한 기록 중의 최초는 4세기 초기의 이집트 파피루스에 남은 기록이다.
이 파피루스에는 수 많은 손자국들이 찍혀 있는데, 이것은 이미 그 파피루스가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파피루스는 4세기 초의 성탄절이 1월 6일 저녁부터 7일까지 축하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냈을까?
2세기에 있었던 이단 분파인 알렉산드리아의 영지주의 추종자들은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날(1월 6일 또는 10일)을 축제일로 지켰다.
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하여 신성의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또한 1월 5-6일 밤엔 나일강 물이 놀라운 기적의 힘을 갖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날을 에피파니(Epiphany) 또는 `현현'이라고 불렀다.
한편 정통적인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세례 받으심과 탄생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역시 1월 6일을 축제일로 선택했다.
이 에피파니 축제는 오랫동안 팔레스틴에서 장엄하게 행해졌다.
성탄절이 1월 6일에서 12월 25일로 바뀐 것은 언제부터인가? 그리고 왜 바뀌게 되었나?
가장 유력한 가설은 AD 325년에서 354년 사이에 로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AD 336년에는 그리스도의 성탄일이 12월 25일로 증명되고 모두가 그것을 신봉하도록 공포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12월 25일은 정복되지 않는 태양신을 경배하는 이교도들의 축제일이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빛의 축제가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성암부로스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새로운 태양'이라고 말했다.
한동안은 태양의 축제를 그리스도의 성탄절에 통합한 것이 많은 혼란을 주었다.
그리고 많은 반대도 있었다. 성탄절을 12월 25일로 확정지은 것은 크리소스톰에 의해서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1818년 성탄절을 일주일 앞두고 일어난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 교회에 시무하던 26세의 젊은 신부 모올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성탄절 연극을 준비하는데 그만 하나밖에 없는 풍금이 고장이 났다. 수리공이 온통 분해하여 늘어 놓았지만 성탄절까지 고칠 수가 없었다. 신부 모올은 근심 중 마을의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고요했다.
이전에 시를 써본 일이 없었던 모올이지만 그날 받은 영감으로 시를 썼으며 그 교회의 organist인 구루버에게 작곡을 부탁했고 이내 그 곡을 연주하게 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유명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이 노래는 오늘날 성탄절에 가장 많이 애창되는 성탄 곡이 되었다.
전쟁터의 성탄절
2차 대전 차디찬 겨울에 있었던 실화다. 12월 24일 성탄 전야에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작은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살벌한 전쟁터는 아롱지는 별빛으로 인해 고요하고 적막해져 갔다. 이 고요함 가운데 참호 속에 앉았던 한 프랑스 병사가 고향 생각을 하며 무심코 낮은 휘파람 소리로 성탄 캐롤을 불렀다
이 휘파람 소리가 적막한 강 주변을 잔잔히 울려 퍼졌다.
그 애닮프고 잔잔한 휘파람은 이내 건너편의 독일 병사의 마음을 향수에 잠겨버리게 했다. 독일 병사가 그 멜로디를 따라 마음과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후 아군과 적군의 캐롤 멜로디가 함께 강을 멤돌고 있었다.
그리고 고향의 성탄을 그리워하던 모든 병사들이 이 합창의 멜로디를 듣고는 다 함께 부르게 되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강은 캐롤의 향연이 되었다. 아군도 적도 없는 성탄의 밤이었다. 모두가 서로 피 흘려야 하는 병사로서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성탄을 축하하며 그리워하는 애절 어린 사람의 마음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강가의 캐롤 향연은 적과 아군이 한자리에서 드리는 성탄의 예배로 이어졌고 즐거운 파티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파파노의 성탄절
러시아의 한 작은 마을에 파파파노라는 착하고 성실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가 사셨다. 이 할아버지에게 어느 성탄 전날 밤 꿈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내일 성탄절 날 할아버지를 방문하고자 합니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할아버지가 잠을 깨었을 때 눈 속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태양이 밝게 비치는 성탄의 아침이었다.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성탄절에 특별히 쓰는
커피 주전자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청소도 깨끗하게 하였다.
기다리는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거리의 청소부만 보이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청소부를 향해 “이리 들어와요. 추운데 몸이나 녹이고 커피라도 들어요”라고 하시고 그를 맞이해 들였다. 점심때가 다 되어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누더기옷을 입은 여인이 홑이불에 어린아이를 싸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측은하여 그 여인을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빨갛고 시퍼렇게 얼어 있는 아기의 발을 할아버지는 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아기에게 신발을 신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젯밤에 보았던 조그마한 신발을 신겨 보았다. 신기하게도 꼭 맞았다.
아기와 여인은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느 듯 마을에 저녁 기운이 몰려왔다. 할아버지는 저녁 준비를 위해 스프와 빵을 데웠다. 그때 한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과일을 훔쳐 달아나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훔치고 달아나던 아이를 붙잡아 때리며 경찰서로 데리고 갈려고 끌고 갔다.
그때 파파파노는 그 할머니에게 간청을 했다. "그 아이가 배고 고파서 그런 짓을 했으니 용서해주고 내가 대신 과일값을 지불 하지요." 파파파노의 마음에 할머니는 그 아이를 용서했고 그 아이도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었다. 어느새 할머니와 아이는 정답게 길 저쪽으로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결국 꿈이었단 말이지”라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 나를 보셨지요”라고 하는 어젯밤 꿈의 그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 계셨습니까”라고 묻자 “나는 오늘 할아버지를 세 번이나 찾아갔어요. 한 번은 청소부로 한 번은 아기를 안은 여인으로 마지막으로 거지로 말이예요. 당신이 나에게 베푼 따스한 사랑 정말 감사했어요.” 거리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포로수용소의 촛불
2차 대전 때 열대 밀림 한복판에 있던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기 시설이 제대로 없어 늘 어둠이 가득했고 무더위와 굶주림 때문에 수용소 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 어쩌다 쥐를 발견해서 잡아 먹게 되면 그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수용소 안에 남들에게 내놓지 않는 식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미국인이었다. 그는 가방 깊숙한 곳에 양초를 숨겨 두고 있었다. 그 미국인은 절친한 친구 포로에게 이 양초가 위급할 때 중요한 식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때는 이 양초를 친구에게 나눠주리라는 약속을 했다. 어느 날 한 포로가 ‘오늘이 성탄이야. 내년 성탄은 집에서 보낼 수 있었으면…’하고 말했다. 그러나 굶주림에 빠져 있는 포로들은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양초를 숨겨 두었던 포로는 그 양초를 꺼내어 판자 가운데로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갑자기 그 안에 밝음이 퍼져나갔다. 그 불빛에 포로들은 잠을 깼고 하나둘 촛불 주위로 모여들었다. 촛불은 어느새 포로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촛불은 점점 더 환하게 비추어 포로들의 마음까지도 비추고 있는 듯했다.
“우리 내년 성탄절은 집에서 보내자고”라고 누군가가 말하자 모두들 환하게 웃으며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자며 서로의 소원을 얘기했다. 이날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본 포로들은 어느 누구도 배고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선물
어떤 어머니의 회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이 어머니의 60회 생일잔치를 차렸습니다. 그 어머니는 치아가 나빠서 굳은 음식을 잘 못 잡숫고 또 위장이 나빠서 매운 것을 못 잡숫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김치, 깍두기, 오징어볶음 등 질긴 음식의 요리를 푸짐하게 장만하고 또 매운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서 사방에 흩어져 살던 친지, 친척들이 모두 선물 하나씩을 사들고 와서는 서로 선물을 교환했습니다. 생일의 주인공에게는 아무 선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네들끼리 음식을 먹고, 술잔을 돌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마음껏 즐기다가 돌아갔습니다. 그 잔치는 떠들썩하고 푸짐한 잔치였습니다.
시간도 돈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일잔치가 잘못된 잔치인 것을 여러분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잔치는 안 한 것만도 못합니다. 생일잔치를 차리려면 주인공을 중심하여 그분의 기호에 맞추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물은 자기들끼리 주고받을 것이 아니라 오직 주인공에게 모든 선물이 주어져야 마땅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금 년 성탄절에는 주인공 되시는 예수님께 제일 값비싸고 좋은 선물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주의 깊게 관찰하여 바로 그것을 선물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탄 준비
기약이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셨다(갈4:4). 구약성서의 페이지마다 이스라엘의 숨결마다 메시야 대망으로 꽉 차 있었다. 구약성서에는 456개의 예수 예언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정치적으로 로마제국의 문화와 언어를 통일시켜 예수의 복음 전도의 세계화를 준비하셨다. 로마의 주민 세 사람 중 두 명은 노예였던 당시 사회는 신음 속에 구세주 대망이 팽배했다.
고대 세계는 유대 나라에서 세계의 지배자이며 구원자인 왕이 난다는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고 헬라의 극작가들은 인간의 죄와 고통과 죽음과 저주를 풀어주는 구속 신에 대해서 말했고, 플라톤은 로고스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사랑의 화신에 대해서 석가는 또 다른 불타에 대해서 중국은 서방에 성인이 난다는 통념과 도성인신 사상이 있었고 세계의 민속 신앙들도 소박한 구세주 사상이 있었다. 동방박사들은 세계의 윤리와 철학과 모든 종교를 대표한 상징적 인물들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이 생각난다. 한 도시에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부부 짐과 델라가 살았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각각 걱정이 되었다. 서로에게 선물은 하고 싶은데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짐은 아내의 긴 머리에 꽂을 머리핀을 사기로 마음먹고 갖고 있던 시계를 팔기로 결정했다. 아내 델라는 남편에게 시계 줄을 선물하기로 하고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팔았다.
두 사람은 시장으로 나가 선물을 구입했다. 짐과 델라는 서로를 기쁘게 할 마음으로 거의 같은 시간 집에 도착했다. 짐은 머리핀을 들고 아내의 머리에 꽂아 주려고 했으나 아내의 머리는 이미 짧게 깎여 있었다. 델라 역시 시계 줄을 들고 있었으나 남편에겐 이미 그 시계가 없었다. 준비된 선물은 쓸모없게 됐지만 둘은 곧 부둥켜안고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사랑은 추위를 녹인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넘치게 나누는 성탄절이 되길 기도하자.
기쁨
한국의 슈바이처인 장기려 박사는 의학을 공부한 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적인 진료를 했다. 그는 80회 생일을 맞았을 때 몇 가지 생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다.
첫째는 결혼한 후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이 주신 아들로 천하를 얻은 기쁨이었다고 감사했다. 둘째는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했을 때 민족 감정에 의해 기뻐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의 기쁨에 비교하면 위의 기쁨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이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죽음의 세계로부터 우리들을 해방시켜 주고 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2:14)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번 성탄절에 이 평화와 기쁨이 온누리에 임하기를 기도한다(고수철 목사).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현대인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잃어버린 채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세속 문화가 날로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날. 이날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아픔 위에 생겨난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전쟁 중의 성탄절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성탄절을 맞아 영국과 독일 병사들은 서로 합의한 바도 없이, 성탄 저녁에 쌍방의 병사가 싸움을 중단하고 며칠 동안을 서로 친구같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유명한 작가인 처킨스와 타카리 두 사람은 싸운 일 때문에 오랫동안 서로 대화를 끊고 지냈다. 성탄 맞을 즈음에 타카리는 이런 일이 예수 정신이 아닌 줄 알고서 처킨스에게 가서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때 처킨스의 말이 자신도 똑같이 생각되어 그대에게 가서 고백하고자 했다고 대답했다. 그 후에 두 사람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성탄의 정신은 합심하지 못한 여러 가정의 부부나, 혹은 자녀들을 화합하게 함에 있다
시므온의 성탄절
유명한 데일 카네기의 사무실에는 아주 중요한 자리에 커다란 거룻배의 그림 한 점이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배는 무척이나 낡은 모습을 하고 있고 노는 모래 위에 놓여있습니다. 썰물로 물이 빠져나간 모래 언덕 위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배를 그린 그림입니다. 마치 버려진 것 같은 배 그림 하나가 철강 왕 카네기의 사무실 정면에 왜 걸려있었을까요? 처량하게 아주 쓸모없이 내버려진 것 같은 배 한 척이 그려있는 그림이지만, 그 그림 밑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지금은 썰물이 돼서 물이 다 빠져나가 이 배가 이렇게 모래 언덕에 걸쳐 있지만 반드시 밀물 때가 와서 이 배를 물 위에 띄워 놓을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이 낡은 배도 쓸모 있게 쓰여질 때가 올 것입니다. 썰물이 있는가 하면, 또 밀물 때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때를 기다리는 이 낡은 배 한 척, 이 거루의 모습을 그 사무실에 늘 걸어놓은 카네기는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무리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낙망하지 않았던 그의 생애가 보이지 않습니까?
성탄절을 기다리는 마음
미국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더니 가장 큰 변화가 오는 것은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다.
이 경우를 100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화했는데 이혼의 경우가 73, 임신했을 때가 40, 집을 옮기거나 고쳤을 때가 25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나 된다는 것이었다.
매년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마침 연말과 겹쳐 무엇인가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기 쉬운 때이다.
아직도 이 땅에는 예수 없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만일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 기분으로만 넘긴다면 그것은 예수 탄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나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주지 못하는 허망한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
낮은 데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 하신 깊고 높은 뜻을 헤아려 그 사랑을 실천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성탄절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작은 구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천국에서 온 성탄 카드
지병인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던 한 고위 성직자가 죽음을 앞두고 몰래 비서를 불렀다.
그리고는 자필로 쓴 한 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그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들, 행복한 성탄을 맞이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이번 성탄은 내게 각별하다는 느낌입니다.
이 땅에서 맞는 마지막 성탄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이 슬프기도 하지만 다가올 세상에서 주님과 더욱 친밀히 일치될 것을 생각하면 기쁘고 기대되기도 합니다.
내가 본향에로 마지막 여행을 시작할 때 여러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갈 것입니다.
여러분의 우정과 친절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는 비서에게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에 이 카드를 자신과 친분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부칠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1996년 11월 14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조셉 버나딘(미국 시카고 대교구장) 추기경이었다.
성탄 카드는 그가 임종한 후 수 시간이 지나 우체국으로 보내졌고, 세계 각처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카드를 받았다.
임종을 며칠 앞둔 11월 7일 미연방 대법원에 자살 방조 합법화를 거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하고, 임종 전날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및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마지막 전화 통화를 하기도 한 그가 마지막 성탄 카드를 자필로 써서 자신을 아는 많은 사람들에게 보냈다는 사실은 고인이 자신의 죽음을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버나딘 추기경의 비서 겸 운전기사인 벨로 몬시뇰에 따르면, 고인은 이미 지난 9월에 자신의 장례식 준비를 마쳤을 정도였다.
버나딘 추기경은 당시 로마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항공기 안에서 벨로 몬시뇰에게 장례식 계획표를 보여주었고, 몬시뇰은 그 계획표에 자신이 강론자로 배정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자 이렇게 위로했다고 한다.
“괜찮다네, 나 자신도 울었으니까.”
늘 열려있는 사람으로 살았던 그를 조문하기 위해 10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고, 장례식 다음 날 시카고 트리뷴 지는 장례식 강론을 했던 벨로 몬시뇰의 말을 인용, 1면 기사의 제목을 ‘추기경, 고향으로 돌아오다’라고 달았다.
죽음을 대하는 고인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 백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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