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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무림대회(武林大會) 1 군웅(群雄) 드디어 오늘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리쳤다. 그렇다. 드디어 오늘이다. 드디어 오늘이 닥친 것이다. 천하무림영웅대회(天下武林英雄大會)! 처음 화군악의 지시로 무림대회가 열린다는 선포가 있은 지 정확히 삼 년째 되는 날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삼 년 동안에 강호에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무림대회로 인해 여러 가지 파란들이 일어났고, 새로운 인물들이 속속 등장을 했다.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가진 사람들대로, 야망이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대로 누구나 오늘을 기다려 왔다. 그 동안의 무림은 오직 이날을 위해 존재한 것처럼 모든 무림인들은 가슴 벅찬 심정으로 이날을 맞이했다. 아직 동이 채 뜨기도 전인 이른 새벽부터 무림인들은 옷을 깨끗이 차려 입고 종산으로, 종산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엄청난 광경을 목격했다. 대(臺)의 너비는 무려 십여 장에 달했다. 길이도 그 정도였고 높이는 삼 장이나 되었다. 아마 무림역사상 이렇게 크고 웅장한 비무대(比武臺)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산의 앞에 설치된 어마어마한 비무대를 보고 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웬만한 경공실력으로는 비무대 위로 올라가지도 못할 정도였다. 비무대가 설치된 공터는 거의 팔천 평에 달했는데도 그 웅장한 크기의 비무대가 중앙에 놓이자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아직 무림대회가 시작되는 오 시(午時)가 되려면 멀었는데도 공터는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들은 몰려든 군웅들의 수에 놀랐고, 설치된 비무대의 웅대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 조자건 일행도 그 엄청난 인파의 행렬에 섞여 있었다. 정각은 입을 딱 벌린 채 그저 감탄의 소리를 연발하며 멍청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사마결은 그보다는 조금 침착했다. 그는 비무대보다는 몰려든 군웅들에게 더 많은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문득 그는 조자건을 돌아보며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저 자를 잘 보시오. 저 자가 바로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의 총채주(總寨主)인 건곤수(乾坤手) 노극량(盧極良)이오." 조자건은 사마결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노란 피풍을 두른 십여 명의 인물들이 우뚝 서 있었다. 그들의 중앙에는 머리에 황색 두건을 하고 황포(黃袍)를 걸친 우람한 체구의 중년인이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황포중년인의 전신에서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뻗쳐 나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감히 그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슬금슬금 피해 달아나기 바빴다. 사마결은 조자건의 귓전에 대고 나직하게 소곤거렸다. "저 자는 비록 동정호 수적(水賊)들의 우두머리이지만 그래도 제법 사내다운 구석이 있는 자요. 무공도 상당히 고강해서 장력(掌力)으로만 따진다면 강호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이기도 하오." 조자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결의 시선은 어느새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아! 저 자는 하북팽가(河北彭家)의 고수인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팽립(彭立)이군.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배불뚝이는 그와 절친한 사이인 미륵태세(彌勒太歲) 반우성(潘于星)이고......." 그는 마치 자신의 무림제일통(武林第一通)이라는 별명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주위에 있는 고수들의 이름을 주절주절 내뱉었다. 정각은 그가 사람들을 가리킬 때마다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가 또 다른 쪽을 보고 그가 말을 하면 또 그쪽을 봤다가 저쪽을 보고 쉴새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는 사람이 다 정신없을 정도였다. 사마결은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고수들을 지적해 주었다. "저쪽에 호화로운 금의를 입고 뻐기는 자세로 있는 작자가 재수 없기로 유명한 장안호(長安虎) 양중산(楊重山)이고 그 왼쪽의 비쩍 마른 인물은 망산귀초(邙山鬼樵) 요광(寥匡)이오. 그리고......." 그의 말이 갑자기 멈추었다. 조자건은 이상해서 슬쩍 그를 쳐다보았다. 사마결은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조자건의 시선도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진한 회색 유삼(儒衫)을 걸친 뚱뚱한 체구의 청년이 서 있었다. 회색유삼의 청년은 키가 제법 컸는데도 워낙 몸이 뚱뚱해서 별로 커 보이지 않았다. 하나 살이 찐 것을 제외한다면 이목구비는 제법 반듯한 편이었다. 한 가지 기이한 것은 회삼청년의 옷소매인데 다른 사람들의 소매보다 훨씬 커서 어린아이 한 명쯤은 충분히 들락날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뚱뚱한 체구의 인물이 소맷자락마저 그처럼 넓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회삼청년을 보는 사마결의 눈가에는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전신이 팽팽하게 긴장된 채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조자건은 그가 이처럼 긴장하는 것을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자가 누구요?" 사마결은 한동안 심각한 안색으로 회삼청년을 바라보더니 오히려 나직이 되물었다. "당신은 혹시 강호무림에서 가장 괴이무쌍한 병기에 대해 들어 본 일이 있소?" 조자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괴이한 병기?" "그렇소.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한번 발출 되면 반드시 피를 보고야 만다는 무적의 살인병기(殺人兵器)." 조자건은 잠시 침음하다가 눈을 반짝 빛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혹시 우내십대기문병기 중에서도 가장 괴이하다는 무형륜(無形輪)이 아니오?" 사마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바로 무형륜이오." 무형륜에 대해서는 조자건도 들은 바가 있었다. 무형륜은 천하에서 가장 괴이하고도 위력적인 병기라고 했다. 이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또 사용 방법은 어떠 한지도 철저한 비밀에 싸여 있었다. 하나 일단 이 무형륜이 발출되면 상대는 반드시 피를 뿌리고 쓰러진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무형륜이 우내십대기문병기 중에서 가장 무서운 병기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마결은 왜 난데없이 이 무형륜의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저 자가 바로 무형륜의 주인인 위불군(魏不君)이오." 사마결의 말에 조자건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 회삼청년을 주시했다. 이 뚱뚱하고 둔해 보이는 회삼청년이 그 유명한 무형륜의 주인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조자건은 문득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떠올라서 사마결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 자의 무형륜을 아직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게 사실이오?" 사마결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분명하오. 그의 무형륜을 본 사람은 모두 죽었으니 산 사람 중에서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소."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소?" 사마결은 조자건이 묻는 의도를 알지 못해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말이오?" "아무도 보지 못했다면서 그의 병기가 륜(輪)이라는 것은 어떻게 안단 말이오?" 그제서야 사마결은 그가 묻는 말뜻을 알아차렸다. "사실 그가 사용하는 병기가 륜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오. 아마 아무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거요." "그런데 어떻게 그에게 무형륜이란 별호가 붙게 되었소?" 사마결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그건 말이오. 과거 위불군이 관락삼패(關洛三覇)를 살해할 때 마침 멀지 않은 숲속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소. 그는 하충(何忠)이란 자인데 하충의 말인즉 그때 위불군의 손에서 륜같이 생긴 작고 동그란 물체가 번뜩이더니 관락삼패가 갑자기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는 것이었소. 그래서 사람들은 위불군의 병기가 륜이라고 짐작한 것이오." "그럼 그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겠구려?" "그렇소." "그럼 왜 하충에게 가서 보다 더 자세한 것을 알아보지 않았소?" 사마결은 다시 씁쓸하게 웃었다. "하충은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실종되었소. 그래서 아무도 더 이상 자세한 진상은 알지 못하게 되었소." 조자건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려. 그런데 하충이 실종된 것에는......." "물론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위불군이 하충을 해쳤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감히 위불군에게 가서 정면으로 그 사실을 물어 볼 담량을 가진 사람은 없었소. 그래서 그 일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소." 조자건은 새삼 호기심이 일었다. 위불군이 사용하는 병기는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위불군은 자신이 사용하는 병기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조자건은 아무리 살펴보았으나 위불군의 뚱뚱한 몸 어디에도 병기를 숨길 만한 곳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의심스러운 데라고는 유난히 넓은 소맷자락뿐인데 오히려 지나치게 넓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이상했다. 그때였다. "앗?" 그들 옆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던 정각이 누구를 발견했는지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급히 사마결의 뒤로 숨으려 했다. 하나 그때 이미 그 사람은 정각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형(鄭兄)! 이곳에 있었구려. 그런 줄도 모르고 엉뚱한 곳만 헤매고 있었지 뭐요." 정각은 떨떠름한 얼굴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사마결의 뒤에서 엉거주춤 앞으로 나왔다. "헤헤...... 곽형(郭兄)도 왔구려. 바...... 반갑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완전히 벌레 씹은 표정이 완연하게 배어 있었다. 사마결은 나타난 인물이 누구기에 정각이 이토록 사색이 될까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화려한 청포(靑袍)를 걸친 이십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청포청년은 호화로운 금대(錦帶)를 두르고 비단 옥단화(玉短靴)를 신고 있어서 몹시 부유해 보였다. 얼굴은 제법 준수했는데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입꼬리가 얄팍해서 사마결은 오히려 거부감이 잔뜩 들었다. 특히 코끝이 매부리코처럼 날카롭게 꼬부라져서 더욱 신경에 거슬렸다. 청포청년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정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정형, 그때 오궁집회(五宮集會)에서 헤어진 뒤로 정형의 소식을 듣지 못해 무척 궁금했는데 벌써 여기에 와 있었구려. 그 동안 정형의 신수가 훤해진 것으로 보아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거 아니오?" 오궁집회라는 말에 사마결은 내심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오궁집회는 오행신궁(五行神宮)의 다섯 개 궁들이 일 년에 한번씩 모이는 집회인데 그렇다면 이 자는 혹시......?' 정각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일은 무슨...... 오히려 엉뚱한 데 끌려가서 혼날 뻔했는데......." 청포청년은 짐짓 낭랑한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 그러게 내 뭐랬소? 정형은 나하고 같이 다녀야 아무도 괄시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소? 정형과 나는 같은 오행신궁의 후계자들이니 남들과는 다른 특수한 신분이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떨어지지 말고 함께 다닙시다." 정각은 머뭇거리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때처럼 궂은일만 시키려고......." "그 일을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소? 정형이 그렇게 옹졸한 생각만 하니까 남들이 정형을 무시하는 거요." 청포청년은 호탕하게 말하며 정각의 어깨를 탁 쳤다. "자, 갑시다. 오늘은 내가 아주 멋지게 한턱 내겠소." "저...... 나는 일행이 있는데......." 정각이 움찔해서 말하자 청포청년은 사마결과 조자건을 쓰윽 흘겨보았다. 그의 입가에 냉랭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흐...... 당당한 파금궁의 소궁주가 어찌 아무하고나 어울릴 수 있겠소? 그러지 말고 갑시다. 내가 아주 유명한 분들을 소개해 주겠소." "하...... 하지만......." 정각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표정으로 조자건과 사마결의 눈치를 살폈다. 사마결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신경은 쓰지 말고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를 따라가고 싶으면 따라가고 남고 싶으면 남아 있게." 정각은 우물쭈물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그럼 나는 남......." 그때 청포청년이 정각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의 귓전에다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정각의 눈이 갑자기 커지며 절로 입이 벌어졌다. "과...... 곽형! 그게 정말이오?" 청포청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엇 때문에 정형을 속이겠소? 어떻소? 이래도 나를 따라오지 않겠소?" "저...... 정말 그녀를......." "그렇다니까. 정형이 오지 않아도 일은 계획대로 진행될 텐데 굳이 정형을 데려가려는 건 내가 정형을 끔찍이 생각하기 때문이오. 아직도 모르겠소?" 정각은 다시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결심을 굳힌 듯 그답지 않게 큰소리로 말했다. "좋소, 그럼 난 곽형을 따라가겠소." 이어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사마결과 조자건을 바라보았다. "저...... 나는......." 사마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괜찮으니 자네는 어서 가 보게." "조...... 조형, 미안하오." 정각은 조자건과 사마결을 향해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린 후 청포청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청포청년은 사마결과 조자건을 힐끗 쳐다보다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매달며 정각을 데리고 군웅들 속으로 사라졌다. 조자건은 청포청년의 손에 이끌려 가는 정각의 모습이 마치 늑대 소굴로 끌려가는 양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왜 사마결이 정각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사마결은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입가에 고졸한 미소를 머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정각은 아마 놀림을 당할지 모르지만 흉험한 꼴은 당하지 않을 거요." 이어 그는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자는 오행신궁 중 하토궁(蝦土宮)의 소궁주인 곽표요(郭杓堯)라는 자요. 비록 좋은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하토궁은 파금궁과 함께 오행신궁에 속해 있으니 정각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을 거요." 하토궁의 궁주는 강호에서 무서운 인물로 소문난 하토살군(蝦土煞君)이었다. 곽표요는 하토살군의 장자(長子)인데 심계가 깊고 무공이 고강해 효웅(梟雄)기질이 있는 자라고 알려져 있었다. 조자건도 사실 정각을 그렇게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각의 아버지인 파금왕이 건재하는 한 노골적으로 그에게 해를 입힐 인물은 당금 강호에는 아직 없었다. 더구나 곽표요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각을 데려갔으므로 그에게 어떤 위해는 가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가 걱정되는 것은 조금 전 곽표요가 정각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렸던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곽표요는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운 이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을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조자건의 시력과 청력은 심등대법을 익힌 후 범인(凡人)들이 상상치 못할 수준으로 발달해 있었다. 때문에 그는 곽표요의 음성을 아주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음성은 아주 간단했다. 하나 그 속에 담긴 뜻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곽표요가 정각의 귀에 소곤거린 음성은 이러했다. 오늘 밤 신주홍안(神州紅顔)을 납치하겠다! 2 대회(大會) 해가 정확히 중천에 떠오른 시각, 갑자기 중앙에 설치된 비무대의 중앙으로 한 인물이 날아들었다. 그 인물은 거의 이십여 장을 훨훨 날아 낙엽처럼 사뿐하게 대 위에 내려섰기 때문에 중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놀란 탄성을 터뜨렸다. "앗! 대단하다......!" 나타난 인물은 푸른 학창의를 입고 손에는 쇠로 된 섭선을 들고 있는 사십대 초반의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은 무척 탈속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입가에 떠오른 부드러운 미소와 섬광처럼 반짝이는 지혜로운 눈빛이 특히 중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를 보자 중인들 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 저 사람은 무적검수맹의 수석집법(首席執法)인 철선새제갈(鐵扇賽諸葛) 소동루(蘇東樓)다!" "저 사람이 무적검수맹의 지낭(智囊:꾀주머니)이라는 소동루 이구나!" 경악과 탄성의 외침이 한동안 주위를 시끌벅적하게 했다. 소동루는 강호무림에서 지혜가 높고 인품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소동루는 주위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들어찬 군웅들을 쓰윽 훑어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본맹에서 주최하는 천하영웅들의 무림대회에 이렇게 많은 강호동도(江湖同道)들이 참석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와아......!" 주위에서 요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소동루는 손을 들어 그것을 제지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무림대회는 동도들께서도 아시겠지만 단순히 무공의 고하(高下)를 겨루고 우승자를 뽑는 여타 대회와는 달리 진정한 무도(武道)의 실력자를 선발하여 무적초자 화군악, 화대협의 상대를 가려내는 특이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화군악이란 말이 나오자 중인들 틈에서 다시 우렁한 함성이 뿜어 나왔다. "와...... 화군악! 화군악!" 그 함성은 처음에는 한 구석에서 터져 나왔으나 이내 사방으로 퍼져 수천 명의 군웅들이 일제히 내지르는 소리로 인해 주위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그 함성은 무림의 절대제일인자(絶對第一人者)에 대한 예우임과 동시에 진정한 경의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 뜨거운 함성을 듣고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무림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소동루도 이번에는 군웅들의 함성을 제지하지 않았다. 함성은 근 일각(一刻)이나 계속되었다. 소동루는 함성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번 무림대회에는 워낙 많은 분들이 참가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본맹에서는 원만한 진행을 위해 다음과 같은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첫째, 강호무림의 스물네 개 대문파(大門派)와 열두 개 무림세가(武林世家)의 대표들은 결선에 자동 진출한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인들 틈에서 야유의 소리가 흘러 나왔다. "쳇...... 완전히 사람 차별하는군." "명문정파와 무림세가 출신이 아닌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소동루는 그런 소리에는 일체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둘째, 연거푸 세 사람의 도전자를 격파한 사람은 결선에 진출한다. 셋째, 북이 다섯 번 울릴 때까지 도전자가 나타나지 않아도 결선에 진출한다. 넷째, 예선은 칠 일 동안 계속하며 그 후에 결선 진출자들끼리 추첨을 통해 상대를 결정한다. 이상 네 가지 규칙들은 불필요한 시간과 인력의 낭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만든 것이니 다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그는 비무대의 좌측 아래쪽을 가리켰다. "본 대회의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 두 분의 참관인(參觀人)을 모셨습니다." 참관인을 모셨다는 말에 중인들은 모두 목을 길게 빼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비무대에서 멀지 않은 아래쪽에 일속일승(一俗一僧)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우측의 인물은 청삼을 걸치고 수려한 용모를 한 노인이었다. 소동루가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분은 이번 무림대회의 주최자이시며 본맹의 맹주이신 낙영신검 궁소천, 궁대협이십니다." 군웅들은 청수한 용모의 노인이 그 유명한 낙영신검 궁소천이라는 말에 모두 놀라는 기색이었다. 개중에는 그의 얼굴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앞으로 나가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았다. 궁소천은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소동루는 더욱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리고 그 옆의 분은 정파의 최고명숙(最高名宿)이자 무림의 제일신승(第一神僧)이신 소림(少林)의 백결대선사(百缺大禪師)이십니다!" 그 말에 중인들의 시선이 벼락을 맞은 듯 떨리며 일제히 그 인물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피부가 고목(枯木)처럼 갈라지고 쭈글쭈글한 노승(老僧)이었다. 노승은 어찌나 늙었는지 금시라도 쓰러져 무덤 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게다가 깡마르고 체구도 자그마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하나 노승의 두 눈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끝없이 깊은 우물처럼 한없이 맑고 투명한 노승의 눈에 심혼(心魂)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빠져 들 것이다. 백결대선사! 그는 당금 소림장문인(少林掌門人)의 전전대(前前代) 장로였다. 배분으로 따지면 강호의 그 누구도 견줄 수 없고 무공 또한 측량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소림에서는 오래 전부터 활불(活佛)로 지칭되고 있는데 이미 삼십 년 전부터 달마동(達磨洞)에 은거하여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그러던 그가 다시 달마동을 나온 것은 순전히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는 소림사 유사 이래 최고의 기재(奇才)라고 했다. 그는 소림의 속가제자(俗家弟子)로 입문하여 단기간 내에 소림의 그 어떤 제자들보다도 월등한 수준의 향상을 보였다. 그의 기재가 너무도 출중하여 소림의 어떤 고수도 그 그릇을 완전하게 충족시켜 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소림장문인이 직접 달마동으로 찾아가 백결대선사에게 간청을 했다고 한다. 백결대선사는 그 기재를 직접 만나서 삼 일 동안 대화를 한 후 달마동을 나왔다.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그 절대기재를 명실상부한 소림제일인(少林第一人)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위해서 백결대선사는 물론이고 소림의 모든 힘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완벽하게 충족되었다. 불과 이 년 만에 소림사 창건 이래 최고의 고수(高手)가 탄생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천룡대협(天龍大俠)이라고 불렀다. 그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마침내 그는 신화(神話)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소림제일인은 천룡대협이다! 누구도 그를 당할 수 없으며 특히 그의 패도무쌍한 내가공력(內家功力) 앞에는 도저히 견뎌 낼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런 소문이 대강남북(大江南北)을 온통 뒤흔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천룡대협을 키워 낸 강호의 최고 배분인 고승을 보게 되자 미친 듯이 열광하여 함성을 질러 댔다. 백결대선사는 주름진 노안(老顔)을 들어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소동루는 헛기침을 한 후 낭랑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럼 지금부터 무림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함성 소리가 한동안 장내를 뒤흔들었다. 천하무림영웅대회! 지난 삼 년 간 숱한 무림영웅들의 피를 들끓게 했던 무림대회가 드디어 정식으로 개최된 것이다. 소동루가 비무대를 내려가자 곧이어 하나의 인영이 대 위로 올라왔다. 그 인영은 피부가 유난히 거무튀튀하고 체구가 우람한 중년인이었는데 등뒤에 거대한 도끼를 메고 있었다. 중년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커다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본인은 농서(聾西)에서 온 흑표자(黑彪子) 주웅(周熊)이라 하오. 오늘 무림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되어 영광이오. 어느 분이 본인과 겨루겠소?" 흑표자 주웅은 감숙성(甘肅省) 일대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고수였다. 특히 그는 신력(神力)이 대단해서 그가 휘두르는 도끼에는 천 근(千斤)의 위력이 담겨 있다고 한다. 주웅의 외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하나의 인영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 인영의 신법이 어찌나 표홀한지 장내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올라온 인물은 주웅과는 반대로 비쩍 마른 체구에 눈빛이 스산한 흑삼인이었다. 흑삼인의 허리춤에는 기형의 장검이 매달려 있었다. 흑삼인을 보자 주웅의 얼굴에는 떪은 감을 씹은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누군가 했더니 묘천뢰(苗天雷), 당신이었군." 흑삼인은 장성(長城) 부근에서 혁혁한 명성을 떨치는 추풍검(追風劍) 묘천뢰였다. 장성과 감숙은 거리가 멀지 않아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주웅은 설마 자신에게 처음 도전하는 사람이 묘천뢰일 줄은 몰랐는지라 내심 당황했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난 상태였다. 주웅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소리쳤다. "묘천뢰! 당신의 추풍검과 내 천근부(千斤斧) 중 어느것이 강한지를 오늘에야 판가름하게 되었군. 각오를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요!" 이어 그는 번개 같은 동작으로 등뒤의 도끼를 꺼내 휘두르며 묘천뢰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도끼를 휘두르는 동작은 비록 약간의 엉성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속도와 도끼에 실린 역량(力量)은 대단한 것이었다. 중인들은 둔해 보이던 주웅이 일단 몸을 움직이자 비호처럼 빠른 것을 보고 그의 흑표자라는 명성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하나 묘천뢰의 동작은 더욱 빨랐다. 그는 주웅의 천근부가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서 있다가 섬전처럼 허리춤의 장검을 뽑아 휘둘렀다. 파앗! 눈부신 검광(劍光)이 번뜩이며 주웅의 입에서 다급한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헛!" 그는 묘천뢰의 추풍검이 자신의 공세를 뚫고 가슴팍까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사력을 다해 도끼를 회수해 가슴을 보호했다. 빙글! 막 도끼와 추풍검이 부딪칠 순간, 갑자기 추풍검이 기이하게 회전하며 주웅의 옆구리를 베어 가는 것이 아닌가? 주웅은 사색이 된 채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 간신히 묘천뢰의 일검을 피했다. 하나 그 바람에 수세(守勢)에 몰려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반면에 승기를 잡은 묘천뢰는 계속 질풍 같은 공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마결은 이것을 보고 나직이 혀를 찼다. "승부는 끝났군." 주웅은 힘을 위주로 한 반면 묘천뢰는 빠른 것이 장기였다. 따라서 주웅이 먼저 선기를 잡고 공격을 해야만 묘천뢰의 빠른 공세를 견뎌 낼 수 있는데 반대로 수세에 몰리게 되었으니 어찌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사마결의 예상대로 주웅은 반격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피하기만 하다가 결국 이십여 초만에 왼팔에 일검을 격중 당하고 패퇴하고 말았다. "이번 대결은 추풍검 묘천뢰대협의 승리요!" 대 아래에서 긴 외침이 들리자 주웅은 상처의 고통도 잊은 듯 얼굴을 붉힌 채 묘천뢰를 노려보고 있다가 말없이 몸을 돌려 사라져 갔다. 묘천뢰는 이번 무림대회에서 첫 번째 승리를 거둔 사람답지 않게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대 위에 우뚝 서 있었다. 휙! 다시 그림자가 번뜩이며 하나의 인영이 대 위로 올라왔다. 이번에 올라온 사람은 키가 크고 체구가 건장한 삼십 대 초반의 인물이었다. 그는 묘천뢰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본인은 양양(襄陽)에서 온 개산검(蓋山劍) 전환(典環)이라 하오. 묘대협께 한 수 가르침을 청하겠소." 묘천뢰는 냉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하의 명성은 많이 들었소. 어서 손을 쓰시오." 개산검 전환은 사양하지 않고 등뒤의 장검을 꺼내 공격을 시작했다. 싸악! 그의 검을 휘두르는 솜씨는 조금 특이했다. 남들처럼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양손을 모두 사용했다. 그래서 조금 둔해 보였다. 하나 묘천뢰는 오히려 팽팽하게 긴장된 얼굴이었다. 전환의 이 개산검법(蓋山劍法)은 비록 변화무쌍한 점은 조금 뒤떨어졌으나 그 패도적인 위력과 빠르고 강맹한 공세만은 강호무림의 어떠한 절학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더구나 전환은 유달리 손목 힘이 강해 두 손으로 검을 잡고 있어도 그 검을 쳐내고 거둬들이는 동작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빠르고 신속했다. 파팟! 순식간에 전환의 질풍노도 같은 십이검(十二劍)이 묘천뢰의 전신을 사납게 압박해 왔다. 묘천뢰는 수중의 추풍검을 떨치며 전환의 공세에 맞서 갔다. 까깡! 두 사람의 검이 허공에서 격돌하며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으음!" 묘천뢰는 그 격돌하는 여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하나 전환은 오히려 앞으로 한 발 나서며 더욱 사납게 검을 휘둘렀다. 묘천뢰는 조금 전의 격돌로 자신의 공력(功力)이 전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처음과 같이 정면으로 맞받지 않고 옆으로 몸을 피하며 자신의 독문절학인 추풍이십사식(追風二十四式)을 전개했다. 넓은 비무대는 그들이 뿜어내는 검광과 예리한 검풍에 휘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마결은 잠시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으나 둘 중 누가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전환이 패도적인 개산검의 위력을 앞세워 묘천뢰를 몰아치는 것도 같았고 또 어찌 보면 묘천뢰의 예리한 추풍검이 개산검의 허점을 노려 전환을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것도 같았다. 그는 한동안 장내의 격전을 지켜보다가 조자건을 돌아보며 물었다. "당신이 보기엔 누가 이길 것 같소?" 조자건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 싸움은 전환의 승리요."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전환의 개산검은 검을 펼칠수록 더욱 위력이 강해져서 나중에는 검을 휘두를 때 일어나는 경기(勁氣)만으로도 상대를 질식시킬 수 있소. 아마 묘천뢰는 잠시 후면 검을 휘두르기는커녕 제대로 들고 있지도 못할 거요." 사마결은 그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전환의 개산검이 그렇게 위력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호에서의 명성이나 검을 펼칠 때의 능숙함으로 보면 묘천뢰가 전환보다 한 수 위로 보였다. 지금도 묘천뢰는 전환의 공세를 교묘하게 피하며 매서운 반격을 가하고 있었다. 하나 잠시 후 상황은 역전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묘천뢰의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점차 둔해지는 것 같더니 마침내는 전환의 일 검을 피하지 못하고 수중의 검으로 맞받아 쳤다. 챙! 날카로운 검명이 터져 나오며 묘천뢰의 몸이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음!" 그의 얼굴이 찌푸려지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전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안광을 번뜩이며 양손으로 움켜잡은 개산검을 무시무시하게 휘둘러 왔다. 쑤아앙! 주위의 공기가 파동치며 태산이라도 가를 듯한 엄청난 검기가 몰려왔다. 묘천뢰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는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간신히 검을 들어 전환의 막강한 일 검을 막아냈다. 차앙! 순간 그의 추풍검이 반으로 뚝 부러지며 그의 입에서 폭포수 같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크윽!" 묘천뢰는 비록 간신히 전환의 일격을 막았으나 그 안에 실린 엄청난 역도(力道)를 미처 감당하지 못하고 내상(內傷)을 입고 만 것이다. "와아...... 굉장하다......!" "전환...... 최고다!" 주위에서 요란한 환호성이 일어났다. 전환은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그 환호성을 들으며 비무대 중앙에 당당한 자세로 서 있었다. 묘천뢰는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한 후 힘없이 고개를 수그렸다. "내가 패했소." 이어 그는 맥없이 비무대 아래로 몸을 날려 사라져 갔다. 사마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조자건을 바라보았다. "과연 당신이 말한 대로구려. 그런데 전환의 검법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소?" 조자건은 피식 웃었다. "예전에 그가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소." 사마결은 뜻밖인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렇소? 그게 언제요?" "칠팔 년쯤 되었을 거요. 그때 전환은 벽력부(霹靂斧) 염문광(閻門廣)과 겨루었는데 염문광도 십여 초만에 조금 전의 묘천뢰처럼 자신의 병기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패하고 말았소." "벽력부 염문광이라면 관동(關東)지방에서 제일 가는 고수인데....... 그런데 왜 그런 사실이 무림에 소문이 나지 않았을까?" 조자건은 담담하게 웃었다. "전환은 평소 명리(名利)를 그렇게 밝히지 않아 자신이 이기고도 남들 앞에서 별로 내세우지 않았소. 하지만 당시 그의 싸우는 모습을 본 형님께서 그의 검법은 당금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셨소." 사마결은 흠칫 놀랐다. "형님이라면...... 조립산, 조대협 말이오?" 조자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잠시 아련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문득 자신의 형님과 함께 손을 잡고 천하의 방방곡곡을 누비며 고수들의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시절의 기억들이 자신에게 더 없이 소중한 것임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강호무림에서 명성이 꼭 실력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는 실력에 비해서 명성이 지나치게 높은 인물도 있고 또 명성은 별로 없지만 무서운 실력을 지닌 고수들도 많았다. 상대의 명성에 현혹되어 상대와 겨루었다가 의외의 낭패를 당하는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조자건이 조립산과 함께 십여 년 동안 강호무림을 방랑하면서 보아 온 인물들 중에는 이름을 숨긴 진정한 고수들도 상당히 있었다. 조자건은 그들 하나하나를 가슴 깊숙이 새겨 담았다. 아울러 그때 조립산이 했던 말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명성이 높다고 상대를 두려워해서도 안되지만 명성이 없다고 상대를 경시해서는 더 더욱 안된다. 진정한 무도자(武道者)라면 명성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상대의 기세와 눈빛을 읽고 상대를 판단해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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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ㅎ늘 감사 히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