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집(東溟集)》 해제(解題)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시문집(詩文集)
동명이 살았던 시대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이 이어지던 국난기(國難期)와 그 이후의 북벌운동(北伐運動)이 벌어졌던 우리 민족의 시련기 중간본(重刊本) 《동명집》은 국내에는 공개된 것이 없고 오직 일본에만 한 질 남아 있는 귀중한 문헌
동명은 우리나라 문학사상사에서 매우 독특한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사상적인 면에서 당대의 유학자들과는 달리 유학은 물론 도학(道學)까지도 겸섭(兼攝)하였으며, 문(文)과 아울러 무(武)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인물이다. 문학적인 측면에서는 기건의 문학을 추구하면서 글을 통해 현실을 개혁하고자 했으며, 극단적인 비평과 찬사를 엇갈리게 받으면서 후대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동명집》 번역의 대본으로는 일본의 오사카(大阪) 부립(府立) 나카노시마(中之鳥) 도서관에 소장된 중간본(重刊本) 《동명선생집(東溟先生集)》(도서번호 韓7-29)을 사용하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동명집》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간행되어, 총 세 종류가 있다. 맨 처음 간행된 문집은 자찬본(自撰本) 《동명집》이다. 이 문집은 다른 문집들이 대개 저자의 사후에 간행된 데 반해, 저자의 생전인 1646년(인조24)에 간행된 것으로, 동명 자신이 찬한 것을 윤신지(尹新之)의 서문과 아울러 간행한 것이다. 현재 이 자찬본 《동명집》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동명에 대해 깊이 연구한 남은경에 의하면, 이 자찬본 《동명집》을 진산 강씨(晉山姜氏)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두경의 본관은 온양(溫陽)이고, 자는 군평(君平)이며, 호는 동명이다.
동명이 살았던 17세기는 광해조의 혼정,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 주화파(主和派)와 척화파(斥和派) 간의 주도권 다툼,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죽음, 효종의 북벌정책,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 문제를 놓고 벌어진 기해예송(己亥禮訟) 등 굵직한 사건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에 태어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온몸으로 맞았던 동명은, 시대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그 자신도 부침할 수밖에 없었다. 유학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했던 당대의 일반 지식인들과는 달리 도학(道學)과 불교(佛敎)에도 친화를 보인, 폭넓고 개방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당시의 문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무(武)를 중시하였다. 당시의 현안인 청나라와의 관계에서 명분론(名分論)에 의한 척화론(斥和論)과 북벌론(北伐論)이 아니라 비판적인 척화론과 북벌론을 주장했다. 문학적인 면에서 동명은, 17세기의 문학 창작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시(詩)는 물론 문(文)도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만큼 큰 성과를 남긴 문인이었다. 또한 동명은 후대의 문인들로부터 ‘천기(天機)가 드러나지 않고 허경(虛境)의 묘사가 중심이었다.’라는 극단적인 악평과 ‘엄청난 기력(氣力)을 가진 조선 최고의 문인이다.’라는 찬사를 동시에 받는 문제의 문인이었다.
사상적인 면에서 폭넓고 개방적인 면모를 보였다. 실제로 동명은 당대 극성하여 세력을 떨치던 향교나 서원의 역기능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심한 곤욕과 좌절을 맛보기도 하였다.
유가(儒家)로서 나라에 이바지하려는 사명감을 가진 동명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사상은 도교 사상, 즉 도학이었다. 동명은 가문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도학에 대한 관심과 친화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종증조인 북창(北窓) 정렴(鄭𥖝)은 우리나라 도학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일가는 대대로 도학의 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동명이 도학에서 주목한 것은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위한 신선술(神仙術)이 아니라, 천하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유학의 사상적 보완 요소로서의 도학이었다. 즉 도학을 유학 위주의 절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보조 수단으로 보았던 것이다. 또한 동명은 도학의 사상적 근원을 우리 민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도가의 현풍(玄風)에서 찾았다.
동명은 예론(禮論)으로 경직되어 가는 유교적 명분과 격식으로부터 자유로운 호흡을 함으로써, 절대주의적 가치를 추구하는 유가에 비해 상대주의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었다. 또한 문약(文弱)에 물들어 가는 사회 풍조 속에서 무(武)의 가치를 인식하였으며,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 관념에서 탈피하여 민족의 자존(自尊)을 일깨우기도 하였다.
동명이 활동했던 인조조부터 현종조의 시기는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가 긴장 국면에 접어든 때였다. 원접사의 종사관으로서 평안도 서새(西塞)에 가 있을 때 목격한 명나라의 쇠약한 상황과 청나라의 조선 변방에 대한 약탈은 조선 지식인 동명으로 하여금 강한 분노와 위기의식을 동시에 느끼게 하였다. 또 정묘호란의 발발은 당대 지식인이었던 동명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무(武)를 중시하고 절의(節義)를 중시했던 동명은 자연스럽게 주화론(主和論)보다는 척화론(斥和論) 쪽으로 흘렀다. 그러나 대부분의 척화론자들이 명분론적인 존주대의론(尊周大義論)에 입각한 척화론을 주장한 반면, 동명은 국방력 강화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등, 실제적인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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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집 제2권 / 오언절구(五言絶句) 62수
마천령에 오르다〔登磨天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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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몰아 마천령에 올라서 보니 / 驅馬磨天嶺
겹친 봉은 구름 속에 들어가 있네 / 層峯上入雲
앞쪽에는 큰 바다가 임해 있는데 / 前臨有大澤
이 바다를 북해라고 부른다 하네 / 蓋乃北海云
마천령(磨天嶺)에 오르다 : 이 시에 대해 남은경은 “1629년(인조7)에 33세의 정두경은 북평사(北評事)의 임무를 띠고 함경도 북새(北塞)로 떠나게 되었다. 이 시는 북새로 향하던 길에 올랐던 마천령 위에서 쓴 것이다. 이 시에 대해 장유(張維)는 ‘필력이 웅건하여 가히 우주를 떠받들 수 있다.’라고 하였고, 홍양호(洪良浩) 역시 마천령이란 제목의 시를 쓰면서 ‘여기 오르니 동명이 생각난다. 서까래 같은 그의 붓을 어찌하면 얻을까?’라고 하여 정두경 시에 대한 찬사를 삽입하였다
◆북해(北海) 가 지금의 바다(海)가 아닌 대택(大澤)을 이름
삼척 부사로 있는 박덕일 길응에게 부치다〔寄朴三陟德一 吉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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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고을 멀고 멀어 삼천 리나 돼 / 三陟三千里
오십 천의 경치 좋단 말만 들었네 / 徒聞五十流
나의 친구 그 고을의 수령 됐기에 / 故人爲邑宰
꿈속에서 죽서루에 내 오를 거리 / 夢上竹西樓
박길응(朴吉應) : 1598~?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일(德一), 호는 진정재(眞靜齋)이다. 이안눌(李安訥)의 문인이다. 승지와 참판을 지냈다.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학안록(學顔錄)》을 지었다. 《인조실록》 26년(1648) 12월 17일 기사에 강원 감사 유석(柳碩)이 삼척 부사로 있는 박길응과 함께 황지(黃池)를 답사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용산 7수 〔龍山 七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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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의 산 앞으로 강물 흘러 내려오고 / 五臺山前江水流
조강에서 오는 조수 한강 머리 지나가네 / 祖江潮過漢江頭
공세 실어 들이는 길 바닷길과 통하거니 / 貢稅自通滄海路
산하 형세 본디부터 제왕 사는 곳이라네 / 山河元是帝王州
푸른 강물 백사장을 끼고서 빙 돌아들고 / 碧水逶迤帶白沙
저녁 돛배 빗속에서 어부 집을 향해 가네 / 晩帆冒雨入漁家
주인장이 객을 보고 어디에서 왔나 묻자 / 主人問客發何處
아침나절 소양강서 꽃과 이별했다 하네 / 朝別昭陽江上花
공자께서 맑은 강서 닻줄 끌고 돌아가매 / 公子澄江錦纜廻
버들 꽃은 곳곳마다 강을 향해 피어 있네 / 楊花處處向江開
춘풍 불자 떨어져서 강물 따라 흘러가니 / 春風吹落隨流水
멀리에서 바라보매 흰 눈 오는 것만 같네 / 遠望還疑白雪來
무뢰배인 서울 사는 나이 젊은 악동들은 / 無賴京華惡少年
호주머니 속에 많은 수형전을 가졌다네 / 囊中多貯水衡錢
가끔씩은 강가로 와 술을 사서 마시고는 / 時來江上沽春酒
다시 수양버들 꺾어 말채찍을 만드누나 / 更拗垂楊作馬鞭
용산강의 장사치들 배 띄워서 출발하매 / 龍山商賈發行舟
북을 치는 소리 속에 흰 갈매기 나는구나 / 打鼓聲聞起白鷗
뱃사람들 말하거니 봄 온 뒤로 바람 순해 / 爭道春來風勢順
조강 뜬 지 삼일이면 나주 도착한다 하네 / 祖江三日到羅州
해가 지자 바람 거세 하얀 물결 일더니만 / 日落衝風起白波
큰 강 위에 뇌우 오매 교룡들이 울부짖네 / 大江雷雨吼蛟鼍
아침 되자 낚싯배의 높이 석 자 되었으매 / 朝來釣艇高三尺
봄 강물이 한밤 새에 불어난 걸 알겠구나 / 始覺春流一夜多
장사꾼 탄 일천 돛배 만리 밖서 돌아오매 / 賈客千帆萬里廻
긴 바람이 물결 깨어 바다 문을 열어 주네 / 長風破浪海門開
모든 배들 연미정의 정자 앞을 지나서는 / 俱從燕尾亭前過
양화도의 강나루를 향해 함께 들어오네 / 共入楊花渡口來
조강(祖江) : 개풍군(開豐郡) 덕수(德水) 남쪽, 통진(通津) 동쪽 15리 지점에 있는 강으로, 한강(漢江)과 임진강(臨津江)이 합하는 곳을 가리킨다. 한강은 교하(交河) 서쪽에 이르러서 임진강과 합하며, 통진(通津) 북쪽에 이르러 조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 한성부》
수형전(水衡錢) : 임금에게 하사받은 돈을 말한다. 수형은 한(漢)나라 때 세무(稅務)를 맡은 벼슬 이름이다. 이 수형의 관아에 보관한 돈은 모두 임금의 사장(私藏)이므로,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돈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연미정(燕尾亭) :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누정으로,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물길이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 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오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려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객사〔賈客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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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상꾼이 해 넘도록 집에 가지 못하고는 / 賈客經年不還家
배 속에서 달을 보며 눈물 주룩 흘리누나 / 舟中望月淚雙下
소상강 가 단풍 숲엔 원숭이들 밤에 울고 / 瀟湘靑楓夜有猿
염여퇴의 하얀 돌은 가을이라 말과 같네 / 灔澦白石秋如馬
염여퇴(灩澦堆) : 양자강(揚子江) 삼협(三峽) 중에 하나인 구당협(瞿塘峽)의 입구에 솟아 있는 험한 바위의 이름으로, 겨울철에 강물이 줄어들면 수백 척이나 우뚝하게 드러나고 여름에 강물이 불면 수십 척이나 물에 잠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말과 같으며, 뱃사공들이 무서워서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고 한다.
배를 타고 장단을 지나다 3수 〔舟過長湍 三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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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닿은 절벽 보니 백 장이나 되거니와 / 絶壁緣江百丈開
길고 긴 강 한 굽이가 조강을 휘감아도네 / 長江一曲祖江廻
해문에는 해가 지자 찬 조수가 오르는데 / 海門日落寒潮上
산과 같은 흰 물결이 바위 치며 올라오네 / 白浪如山觸石來
한 조각배 돛단배가 빗속에 돛 달았거니 / 一片風帆雨裏懸
이는 물결 푸른 하늘 닿는 것이 보이누나 / 坐看波浪接靑天
동오 땅의 적벽인들 어찌 이만 하겠는가 / 東吳赤壁何如此
주랑 타고 싸움했던 배 충분히 띄우겠네 / 可泛周郞水戰船
흰 물결에 파도 일어 뜬 오량이 가볍거니 / 白水揚波五兩輕
뱃사람들 마주 보며 뱃노래를 부르누나 / 舟人相向棹歌聲
저녁나절 천 길 되는 절벽에서 노을 일자 / 晩來霞起千尋壁
천태산서 적성 노을 보는 건가 의심했네 / 疑入天台望赤城
동오(東吳) …… 띄우겠네 : 적벽(赤壁)은 동오 지방을 흐르는 양자강(揚子江) 가에 있는 지명이며, 주랑(周郞)은 삼국 시대 오(吳)나라의 장수인 주유(周瑜)를 가리킨다. 삼국 시대 주유가 이 적벽에서 바람을 이용한 화공(火攻)을 써 위(魏)나라 조조(曹操) 군사들이 탄 배를 불태워 대승을 거두었다.
오량(五兩) : 초(楚) 지방의 방언으로, 닭털을 장대 끝에 매어 풍향을 알아보는 기구를 말한다.
천태산(天台山)서 …… 의심했네 : 천태산은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산이고, 적성(赤城)은 천태산의 남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토석의 색깔이 붉어 항상 노을이 낀 것 같으며, 산의 모양이 성첩과 같이 생겼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 이르기를 “적성의 노을을 들어서 표지를 세운다.〔赤城霞起而建標〕” 하였다. 《文選 卷6》
벽란도2수 〔碧瀾渡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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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란도라, 포구에는 물결 일어 출렁이고 / 碧瀾渡口水揚波
서리 내린 푸른 잎엔 가을빛이 완연하네 / 霜落靑楓秋色多
여기에서 예성강이 그리 멀지 않은데도 / 此去禮成江近遠
고기잡인 옛날 노래 부를 줄을 모르누나 / 漁人不解舊時歌
고려 때에 사신들이 이 나루서 배 탔거니 / 漢使乘槎此渡頭
흑산도 섬 아득 멀고 명주 땅과 격하였네 / 黑山迢遞隔明州
조종하는 길은 아직 뽕밭으로 아니 변해 / 桑田不變朝宗路
급수문 앞 흐르는 물 물살 아주 급하구나 / 急水門前水急流
벽란도(碧瀾渡) : 예성강(禮成江) 위쪽에 있는 나루로, 개성에서 서쪽으로 36리 되는 곳에 있다. 고려 때의 중요한 나루로, 개성부터 황해도의 연안(延安), 해주(海州) 방면으로 통하는 큰길은 이곳을 경유했다.
옛날 노래 : 〈예성강곡(禮成江曲)〉을 말한다. 고려 때 중국의 상인 하두강(賀頭綱)이 바둑을 잘 두었는데, 일찍이 강가에서 아름다운 부녀자를 보고는 반해서 내기를 해 빼앗으려고 하였다. 이에 그 남편과 바둑을 두어 거짓으로 지고 나서 내기를 두 배로 걸자, 그 남편이 혹하여 자신의 아내를 내기에 걸었다. 하두강이 단판에 이겨 아내를 빼앗아 배에 싣고 가니, 그 남편이 뉘우치고 이 노래를 지었다. 부인이 갈 때에 옷 단속을 매우 단단하게 하니, 하두강이 범하지 못하였다. 배가 바다 가운데에 이르자 빙빙 돌면서 가지 않으므로 점을 치자, “절부(節婦)에게 감동되어 그러한 것이다.” 하였다. 이에 하두강이 부인을 돌려보내니, 부인 역시 돌아와서 〈예성강곡〉 후편을 지었다. 《高麗史 卷71 樂志 禮成江》
고려 …… 격하였네 : 중국 명주(明州)의 정해(定海)에서 우리나라로 올 적에 배를 타고 흑산도(黑山島)에 도착했다가 다시 예성강(禮成江)으로 왔으므로 한 말이다.
급수문(急水門) : 예성강(禮成江)의 하구 근처에 있는, 물살이 아주 급한 곳을 말한다.
조강에서 배를 띄우고는 이 문순공을 생각하다〔泛祖江懷李文順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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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산은 높이 솟고 비는 아니 개었는데 / 白馬山高雨不開
조강의 물 급하여서 물결 높이 일어나네 / 祖江潮急浪崔嵬
배를 타자 전조의 일 더욱 생각나거니와 / 乘舟倍憶前朝事
그 당시에 부를 읊던 재주 지닌 분이었네 / 爲是當年作賦才
이 문순공(李文順公) : 고려 때의 문신이면서 명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로,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ㆍ지헌(止軒)ㆍ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며,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동명왕편(東明王篇)〉, 〈국선생전(麴先生傳)〉 등이 있다.
백마산(白馬山) : 옛날 해평군(海平郡), 지금의 풍덕(豐德)에서 남쪽으로 15리쯤 되는 곳에 있는데, 고려 때에는 이 산을 우소(右蘇)로 삼았다. 일찍이 이규보(李奎報)가 좌보궐(左補闕)로 있던 중 탄핵을 받아 계양수(桂陽守)에 제수되어 가면서 이 산을 지나 조강(祖江)을 건너가게 되었는데, 강물이 본래 세찬 데다가 마침 폭풍을 만나서 고생을 하고 건넜으므로, 자신의 신세를 슬퍼하여 〈조강부(祖江賦)〉라는 글을 지었는데, 이 글은 《동국이상국집》 권1에 실려 있다.
삼각산을 바라보다〔望三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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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은 듯한 천 길 산이 장안 땅을 누르거니 / 削成千仞鎭長安
기세 아주 웅장하여 용과 범이 서려 있네 / 氣勢雄雄龍虎盤
비 온 뒤라 흰 구름이 절벽 아래 끼었으매 / 雨後白雲浮絶壁
말 머리서 눈 덮인 산 바라보는 것 같구나 / 馬頭還似雪中看
만세교2수 〔萬歲橋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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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위에서 바라보면 아스라이 보인단 말 / 城上迢迢一望遙
지난날에 그 말 듣고 오늘 아침 보았다네 / 昔年聞說見今朝
인간 세상 장관치고 이 같은 곳 없거니와 / 人間壯觀無如此
은하수에 있다 하는 직녀교가 이 같으리 / 直比天河織女橋
가을날에 바닷가서 배를 띄워 돌아갈새 / 海門秋水泛槎歸
다리 가엔 의연하게 직녀 베틀 걸려 있네 / 橋畔依然織女機
오작 역시 은하수가 가까운가 퍼뜩 놀라 / 烏鵲亦驚河漢近
깊은 밤에 되레 밝은 달을 향해 날아가네 / 夜深還向月明飛
고전번역서 > 동명집 > 동명집 제3권 > 칠언절구 > 최종정보
동명집 제3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175수
윤이원 명은이 경성으로 유배 가는 것을 전송하다 4수 〔送尹而遠 鳴殷 謫鏡城 四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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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라서 변방 성의 길 가기가 힘들 건데 / 歲暮邊城行路難
누런 모래 막막하고 바다는 또 드넓으리 / 黃沙漠漠海漫漫
갈래길서 제포 벗어 선사함 괴이타 마소 / 臨岐莫怪綈袍贈
장백산의 산 앞에는 오월에도 날 춥다오 / 長白山前五月寒
변방 요새 봄이 와도 봄빛 아니 보이거니 / 邊塞春還不見春
양류곡의 피리 소리 듣자 눈물 흠씬 나네 / 笛中楊柳淚沾巾
삼 년 동안 나그네로 관산의 달 보았는데 / 三年爲客關山月
다시금 또 관산 향해 가는 친구 전별하네 / 又向關山別故人
윤관 장군 공 이루어 대막 지방 열었는데 / 尹瓘功成大漠開
지금 와선 그 사당에 이끼 길게 자랐으리 / 至今遺廟長蒼苔
봄이 와서 한식 되면 고향 선산 생각나서 / 春來寒食思先壟
그대 집안 비조께서 세운 대에 오를 거리 / 且上君家鼻祖臺
문천 고을 수령 맡은 송 태수께 내 묻나니 / 爲問文川宋太守
임금 은혜 받아 고을 누운 채로 다스리리 / 主恩高枕臥專城
바라노니 그대께선 오마 된 걸 싫어 마소 / 請君莫厭五馬貴
쫓겨나는 신하 천리 먼 길 가는 꼴을 보소 / 看取逐臣千里行
윤명은(尹鳴殷) : 1601~1646.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이원(而遠), 호는 사정(思亭)이다. 1628년(인조6)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4년에 부수찬으로 있던 중 인조의 생부인 원종(元宗)을 추숭하는 것에 반대하는 차자를 올렸다가 경성(鏡城)에 유배되었다. 1645년에 전라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제포(綈袍) : 두꺼운 명주로 만든 솜옷인데, 친구 간의 우정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수가(須賈)가 그의 옛 친구 범수(范睢)가 추위에 떠는 것을 보고 제포를 주었던 고사가 있다. 《史記 卷79 范睢列傳》
양류곡(楊柳曲) : 〈절양류(折楊柳)〉로, 고대의 악부 가운데 하나인데, 버들가지를 꺾으면서 이별하는 아쉬운 정을 노래한 것이다.윤관(尹瓘) …… 열었는데 : 윤관이 여진족을 물리치고 함경도 일대에 9성을 쌓았으므로 한 말이다. 윤관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동현(同玄),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107년(예종2)에 17만 대군을 이끌고 동북계에 출진하여 함주(咸州), 영주(英州), 웅주(雄州), 복주(福州), 길주(吉州), 공험진(公嶮鎭), 숭녕(崇寧), 통태(通泰), 진양(眞陽)의 9성을 쌓아 침범하는 여진을 평정하였는데, 이들 9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대막(大漠)은 본디 몽고 고원(高原)의 큰 사막으로, 한해(瀚海), 대적(大磧)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함경도 북쪽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비조(鼻祖)께서 세운 대 : 경성(鏡城)의 서쪽에 있는 원수대(元帥臺)를 말한다. 비조는 윤명은의 선조인 윤관을 가리킨다.
송 태수(宋太守) : 송국택(宋國澤, 1597~1659)을 가리킨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택지(澤之), 호는 사우당(四友堂)이다. 인조의 생부인 원종(元宗)을 추숭하는 데 반대하다가 수성도 찰방(輸城道察訪)으로 좌천되었으며, 이후 문천 군수(文川郡守)로 나갔다. 1636년(인조14) 병자호란 이후 승지, 예조 참의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사우당집》이 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임금 …… 다스리리 : 수고롭게 정사를 돌보지 않더라도 백성들이 덕에 감화되어 잘 다스려질 것이라는 뜻이다. 한(漢)나라 때 급암(汲黯)이 동해 태수(東海太守)가 되었을 적에 문을 닫고 방 안에 누워서 백성을 다스렸는데도 1년 남짓한 사이에 동해군이 매우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漢書 卷50 汲黯傳》
오마(五馬) : 말 다섯 마리가 끄는 수레로, 태수가 부임할 적에 이 수레를 타고 갔으므로, 한 고을의 수령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송둔암 연이 강도로 가는 것을 전송하다 6수 〔送宋芚庵 淵 之江都 六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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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편지 아니 오고 부슬부슬 비 내릴 때 / 鄕書迢遞雨蕭蕭
몇 번이나 시 읊으며 적적함을 달래었나 / 幾度詩篇送寂寥
종남산의 푸른빛을 질리도록 보고서는 / 物色終南蒼翠盡
다시금 또 가을날에 조강 드는 조수 보네 / 更觀秋日祖江潮
지난날에 강도에서 국화 필 때 취했거니 / 江都曾醉菊花時
오늘의 이 이별 임해 그때의 일 생각나네 / 此日臨岐有所思
맑은 술을 마시면서 회고시를 읊지 마소 / 莫把淸尊賦懷古
마니산의 위에 뜬 달 맘 슬프게 하였다오 / 磨尼山月使人悲
가을 되어 술집에 갈 돈 없어서 괴롭거니 / 秋來苦乏酒家錢
어촌에서 한 번 취해 잠들던 일 생각나네 / 憶向漁村一醉眠
강도 맡은 이천석께 내가 부탁하거니와 / 爲報江都二千石
조강에 가 효렴선을 부디 찾아보시게나 / 祖江須覓孝廉船
조강 보면 강과 바다 서로 만나는 곳이라 / 祖江江海兩相衝
바다 비에 강구름이 만 빛깔을 띠었으리 / 海雨江雲色萬重
배 안에서 술잔 잡고 해타 쏟아 낼 참이면 / 把酒舟中應咳唾
달빛 밝아 자던 여룡 퍼뜩 놀라 일어나리 / 月明驚起睡驪龍
외로운 돛 한 조각배 양화 나루 떠나거니 / 孤帆一片背楊花
물 많을 때 뱃길로 가 길이 멀지 않을 거리 / 夏水乘船路不賖
찬 조수 물 들어오는 대청포를 향해 가면 / 直下寒潮大靑浦
단풍 숲에 지는 달빛 어부 집을 비추리라 / 楓林落月照漁家
만리 아득 창망하게 구름 끼어 어둑한데 / 萬里蒼茫雲海陰
갑진에는 가을비 와 조강 강물 깊어졌네 / 甲津秋雨祖江深
그댄 보소 연미정 앞 흘러가는 그 강물을 / 君看燕尾亭前水
그게 바로 이별한 이 한스러운 마음이리 / 不是離人有恨心
송연(宋淵) : 생몰년은 미상이다.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자심(子深), 호는 둔암(芚菴)이다. 권필(權韠)의 조카사위로 성혼(成渾)에게서 수업하였다. 문장과 덕망이 뛰어났으며, 이안눌(李安訥) 등과 교류하였다. 인조조에는 진산 현감(珍山縣監)을 지냈다. 강화군 선원면 연리(煙里)에 살았으며, 묘소 또한 연리에 있다. 유고(遺稿) 수편이 《강화고금시선(江華古今詩選)》에 전한다.
강도(江都) 맡은 이천석(二千石) : 강화 유수(江華留守)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아마도 강화 유수를 지냈으며, 동명과 친하였던 이안눌(李安訥)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천석은 고을의 수령을 가리키는 말로, 한(漢)나라 때 고을 수령의 녹봉이 이천 석이었으므로 이렇게 칭한다.
효렴선(孝廉船) : 효렴과(孝廉科)에 천거된 사람이 타고 있는 배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탄 배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송연(宋淵)이 타고 있는 배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 진(晉)나라 때 효렴으로 천거된 재사(才士) 장빙(張憑)이 당시의 고사(高士)이던 유담(劉惔)을 찾아가 하룻밤을 묵으면서 청담(淸談)을 나누고는, 이튿날 유담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돌아오는데, 유담이 그를 대단하게 여겨 다시 장 효렴(張孝廉)의 배를 찾으라고 명하여 그를 데리고 가서 간문제(簡文帝)에게 천거하였던 고사가 있다. 《晉書 卷75 張憑列傳》
해타(咳唾) : 기침과 침이 모두 구슬이 된다는 뜻인 해타성주(咳唾成珠)로,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뜻한다. 《莊子 秋水》
여룡(驪龍) : 깊은 바닷속에 살고 있다고 하는 검은빛의 용을 말한다.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에 이르기를 “천금(千金)의 구슬이 저 깊은 바닷속 여룡의 턱 아래에 숨겨져 있다.” 하였다.
대청포(大靑浦) : 강화도에 있는 포구 이름이다.
연미정(燕尾亭) :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누정으로,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물길이, 하나는 서해로 또 하나는 갑곶(甲串)의 앞을 지나 인천 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오는 배가 이 정자 밑에서 닻을 내리고 조류(潮流)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고전번역서 > 동명집 > 동명집 제3권 > 칠언절구 > 최종정보
어떤 사람이 함경도로 가는 것을 전송하다〔送人之嶺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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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령 길 흰 구름의 사이로 나 있거니와 / 磨天嶺路入雲間
만길이나 아득 높아 올라가기 힘들다네 / 萬仞崔嵬不可攀
그대 가서 천하 장관 한번 내려다보게나 / 君去試觀天下壯
바닷가에 바람 불면 흰 파도가 산 같으리 / 海門風起白波山
별좌 김충각에게 장난삼아 써서 주다〔戲贈金別坐忠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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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리 밖의 강릉 고을 대관령의 동쪽 있어 / 千里江陵大嶺東
경포호의 봄물 이에 바닷물과 통하누나 / 鏡湖春水海門通
호수에는 농어들이 있는데도 아니 감은 / 湖有鱸魚不歸去
계응 이에 추풍 불 때 기다리는 것이리라 / 季鷹無乃待秋風
김충각(金忠慤) : 1577~1650.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계성(季誠)이다. 직장(直長) 등을 지냈으며, 강릉에 살았다. 강릉의 향현사(鄕賢祠)를 짓기도 하였다.
호수에는 …… 것이리라 : 가을바람이 불 때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아직 안 가고 있다는 뜻이다. 계응(季鷹)은 진(晉)나라 때 맑은 지조로 이름 높았던 장한(張翰)의 자(字)이다. 장한은 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자 오중(吳中)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살이에 있어서는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한 법인데, 어찌 벼슬에 얽매여서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예와 관작을 노리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관직을 버린 채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농어목 농어과의 바닷물고기로 어릴 때에는 담수를 좋아하여 연안이나 강 하구까지 거슬러 올라왔다가 깊은 바다로 이동한다.
제주에서 바친 공물을 보다 3수 〔觀濟州貢物 三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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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풍토 보면 삼오 땅에 가깝거니 / 濟州風壤近三吳
푸른 바다 동남쪽은 중국 오호 접하였네 / 滄海東南接五湖
말 듣건대 소봉 된 집 천호후와 같다는데 / 聞說素封千戶等
몇몇 집의 금빛 귤이 목노로다 됐으려나 / 幾家金橘木爲奴
푸른 나무 서리 와도 시들지를 않거니와 / 碧樹霜天不受寒
바다 끝서 아름답게 꾸미는 게 어여쁘네 / 自憐雕飾海雲端
봉래전서 먹어 주길 기대하여 몸 맡기니 / 委身冀食蓬萊殿
좋은 향기 군왕 앞의 백옥반에 가득하네 / 香滿君王白玉盤
매년 바다 저 밖에서 용매 조공 바치거니 / 年年海外貢龍媒
멀리 구름 뛰어넘어 옥대까지 도달하네 / 遠躡浮雲到玉臺
비록 인간 세상에서 삼만 일이 지났어도 / 縱過人間三萬日
천리마의 준마인 줄 알아보는 사람 없네 / 無人知道駃騠才
삼오(三吳) : 중국의 오흥(吳興), 오군(吳郡), 회계(會稽)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장강(長江) 동쪽 지방의 범칭으로 쓰인다.
오호(五湖) : 오월(吳越) 지방에 있는 호수로, 구구(具區), 요격(洮滆), 팽려(彭蠡), 청초(靑草), 동정(洞庭) 등을 말한다.
소봉(素封) : 벼슬살이를 하지 않는 사람이 전원(田園)에서 수확하는 이익이 많아 왕후에 봉해진 것이나 다름없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권129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이르기를 “요즈음 관직의 녹봉도 없고 작읍의 수입도 없으면서 낙이 관직과 작읍이 있는 사람과 비등한 자들이 있는데 그들을 이름하여 소봉이라 한다.〔今有無秩祿之奉爵邑之入 而樂與之比者 命曰素封〕” 하였다.
목노(木奴) : 귤(橘)의 별칭이다. 당나라 때 사람인 이형(李衡)이 가족들 몰래 용양현(龍陽縣)에 귤(橘) 1천 그루를 심어 두고는 죽을 때에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용양현에 천 두(頭)의 목노를 남겼으니, 너에게 해마다 비단 1천 필을 바칠 것이다.” 하였다.
봉래전(蓬萊殿)서 …… 가득하네 : 제주도의 귤이 임금에게 진상되었다는 뜻이다. 봉래전은 당(唐)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에 있던 궁전으로, 왕궁을 뜻한다.
매년 …… 도달하네 : 제주도에서 해마다 아주 좋은 말을 진상품으로 바친다는 뜻이다. 용매(龍媒)는 준마(駿馬)를 가리키는 말로,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천마가 왔으니, 용이 오게 될 매개이다. 창합에서 노닐며, 옥대를 보는도다.〔天馬徠 龍之媒 游閶闔觀玉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옥대는 천제(天帝)가 사는 곳을 말하는데, 전하여 임금이 있는 대궐을 가리킨다.
충주 목사 곽흠로를 전송하다〔送郭忠州欽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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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은 아득 높아 형세 절로 높거니와 / 月岳岧嶢勢自尊
멀리 하늘 밖에서 와 중원 땅을 억누르네 / 遠從天外鎭中原
한강 본디 민강의 물 사양하지 아니하니 / 漢江不謝岷江水
부디 산에 올라가서 발원지를 읊어 보소 / 須爲登臨賦發源
곽흠로(郭欽魯) : 대본에는 ‘郭欽老’로 되어 있는데, 《면암집(勉菴集)》 권30 〈집의증이조참의지포곽공묘갈명(執義贈吏曹參議芝浦郭公墓碣銘)〉에 의거하여 ‘老’를 ‘魯’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흠로는 곽지흠(郭之欽, 1601~1661)의 자인데, 《동명집》 이외의 곽지흠과 관련된 모든 기록에는 곽지흠의 자가 홈로(欽老)가 아닌 흠로(欽魯)로 기록되어 있다. 곽지흠은 본관은 청주, 호는 지포(芝浦)이다. 1646년(인조24)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효종조에 장령, 현종조에 사간, 집의 등 언관을 지냈다. 곽지흠은 1647년에 충원 현감(忠原縣監)에 제수되었다.
한강(漢江) …… 보소 : 한강의 근원지를 찾아보라는 뜻이다. 민강(岷江)은 본디 중국 사천성(四川省)의 민산(岷山)에서 발원하는 강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강원도에서 흘러오는 남한강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 또한 옛날 사람들은 시를 지으면서 한강의 근원을 흔히 충주 근처에 있는 월악산(月嶽山)으로 비정(比定)하여 읊곤 하였다.
남한산으로 가는 중을 전송하다〔送南漢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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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그 곁으로 한강 물이 감돌거니 / 南漢城邊漢水廻
눈과 같은 하얀 물결 하늘 닿아 흘러오네 / 白波如雪接天來
행인들은 하루 종일 배를 타고 오가는데 / 行人盡日皆舟楫
오직 산승 있어 홀로 잔을 타고 건너누나 / 惟有山僧渡一杯
오직 …… 건너누나 : 승려의 법력(法力)이 뛰어난 것을 형용한 것이다. 진(晉)나라 때 기주(冀州) 출신의 어떤 승려가 항상 나무로 만든 잔〔盃〕을 타고 물을 건너다녔으므로 사람들이 그 승을 배도 화상(盃渡和尙)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세세한 행실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신통력이 탁월하였다고 한다.
허 삼척을 전송하다〔送許三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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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의 동북쪽에 이름난 주 있거니와 / 大關東北有名州
삼척 고을 흐르는 물 오십천이 흐른다네 / 三陟川流五十流
잘 알겠네, 사군께선 이는 흥취 많을 건데 / 知道使君多逸興
밤이 되면 밝은 달이 죽서루 위에 뜨리 / 夜來明月竹西樓
허 삼척(許三陟) : 허목(許穆, 1595~1682)을 가리키는 듯하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문보(文甫)ㆍ화보(和甫), 호는 미수(眉叟)이다. 《현종실록》 1년(1660) 9월 24일 기사에 허목이 삼척 부사에 제수된 것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허목이 삼척 부사로 있을 적에 썼다고 하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가 지금도 전한다
마운령에 오르다〔登磨雲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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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구절양장 길 굽어 있고 / 詰屈羊腸轉
깎아지른 절벽에는 조도 걸렸네 / 巉巖鳥道懸
고개 높아 장백산의 눈과 통하고 / 嶺通長白雪
바다는 또 여진 하늘 접하였다네 / 海接女眞天
나그네는 가을 되어 맘 슬프거니 / 客鬢悲秋氣
객지 떠돈 지가 벌써 몇 달이구나 / 歸期數月弦
남쪽 가는 기러기 다 떠나갔거니 / 稍看南雁盡
소식 이제 누굴 통해 전하겠는가 / 音信若爲傳
함경도 절도사 김준룡과 이별하다〔別金節度俊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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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땅 하늘 밖에 우뚝 솟은 산 / 突兀胡天外
그 산 바로 하얀빛의 백두산이네 / 其山鎭白頭
쌓인 눈은 개벽하던 때부터 있고 / 雪從開闢有
강은 북쪽 동쪽으로 터져 흐르네 / 江拆北東流
정히 방추 급한 때를 만났거니와 / 正屬防秋急
변경 가는 시름 어느 누가 논하랴 / 誰論出塞愁
장군께서 말을 타고 떠나갈 새에 / 將軍上馬去
일천 기병 갖옷 입은 이 옹위하네 / 千騎擁貂裘
김준룡(金俊龍) : 1586~1642. 본관은 원주, 자는 수부(秀夫)이다. 1608년(선조41)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2년(인조10)에 함경도 절도사가 되었으며, 1636년에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그해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관할 군사를 이끌고 용인의 광교산(光敎山)에서 청나라 군대와 싸워 공을 세웠다. 이후 김해 부사(金海府使), 경상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충양(忠襄)이다.
방추(防秋) : 가을철에 오랑캐를 방어하는 것을 말한다. 오랑캐는 늦가을 무렵에 세력이 강성해져 쳐들어오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舊唐書 卷139 陸贄列傳》
절도사 김준룡에게 부치다 2수 〔寄金節度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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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오래전에 수성역에서 / 憶昔輸城驛
헤어질 때 이별의 맘 심란하였지 / 相離惱別襟
장군께선 이목보다 더 뛰어난데 / 將軍過李牧
서기 보니 진림에게 부끄러웠네 / 書記愧陳琳
하얀 말을 일천 군사 에워쌌으며 / 白馬千夫擁
누런 구름 육진 지역 그늘 지웠네 / 黃雲六鎭陰
몸 병들어 막부로다 가지 못하고 / 病孤趍幕府
객중에서 읊은 시만 부쳐 보내네 / 聊寄客中吟
대장군의 위엄 명성 엄숙도 하고 / 大將威聲肅
원문에는 칼과 창이 삼엄도 하네 / 轅門劍戟森
산을 보면 백두산에 연해 험하고 / 山連白頭峻
강은 또한 흑룡강에 들어서 깊네 / 江入黑龍深
말을 이미 가을철에 놓아기르니 / 馬已秋天牧
오랑캐를 눈이 오는 밤에 잡으리 / 胡應雪夜擒
서생에게 무슨 좋은 계책 있으랴 / 書生有何策
장군께서 인심 얻기만을 기원네 / 唯願得人心
수성역(輸城驛) : 함경도 경성(鏡城)에서 북쪽으로 50리 되는 곳에 있는 역이다.
이목(李牧) : 전국 시대 때 조(趙)나라의 북쪽 변경 지역을 지키던 훌륭한 장수로서, 그가 흉노(匈奴)와 진(秦)나라를 칠 때에는 그의 위엄에 눌려 적의 군마가 감히 전진하지를 못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81 廉頗藺相如列傳》
진림(陳琳) : 동한(東漢) 말 광릉(廣陵) 석양(射陽) 사람으로 자는 공장(孔璋)이며 문학으로 왕찬(王粲) 등과 이름이 비등하였다. 문장이 뛰어나 일찍이 원소(袁紹)를 위해 조조(曹操)의 죄상을 문책하는 격문을 지었는데, 원소가 패하여 조조에게 돌아가니 조조는 그 재주가 아까워 죄를 주지 않고 기실(記室)로 삼았다 한다. 《三國志 卷21 陳琳傳》
원문(轅門) : 출정 나간 장수가 주둔해 있는 군문(軍門)을 말한다.
고전번역서 > 동명집 > 동명집 제4권 > 오언율시 > 최종정보
동명집 제4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185수
백운대를 바라보다〔望白雲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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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 산 그 높이는 얼마이려나 / 雲臺高幾許
정북쪽서 위로 솟아 별에 닿았네 / 直北上干星
쌓인 기운 절로 뭉쳐 서리었으며 / 積氣自磅礴
뜬구름은 아득하고 또 아득하네 / 浮雲紛渺冥
세속에서 백악이라 이름 전하나 / 俗傳名是白
저 하늘과 더불어 산 항상 푸르네 / 天與色常靑
정히 멀리 봉래도서 여기 왔거니 / 定自蓬萊島
거령의 힘 빌려 옮겨 온 것이라네 / 移來藉巨靈
거령(巨靈) : 전설에 화산(華山)을 쪼갰다고 하는 하신(河神)의 이름이다. 옛날에 산 하나가 하수(河水)를 막고 있어서 하수가 빙 돌아서 흘렀는데, 거령이 이 산을 둘로 쪼개어 하수를 곧게 흐르게 하였다고 한다.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거령이 힘차게 손바닥으로 높이 떠받들고 발바닥으로 멀리 차 버려, 하수를 흐르게 하였다.〔巨靈贔屭高掌遠蹠 以流河曲〕”라고 하였다.
눈이 오는 밤에 조윤지를 생각하다가 시를 읊어서 홍대이에게 부치다 4수 〔雪夜憶胤之賦詩寄洪大而 四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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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서 보니 삼동이 다 가는 때인데 / 節序三冬盡
변방 성은 육진 앞쪽 위치해 있네 / 邊城六鎭前
북쪽에는 얼음 이미 바다에 얼고 / 北氷應合海
남쪽에는 눈이 이미 하늘 연했네 / 南雪已連天
술잔 잡고 그리워할 줄 알겠거니 / 把酒知相憶
시 읊는 건 몇 편이나 읊었으리오 / 吟詩賦幾篇
산과 시내 멀고 멀어 만여 리인데 / 山川萬餘里
왕자유 배 타고서 갈 길이 없구려 / 無計子猷船
하얀 산은 오랑캐 땅 서리어 있고 / 白岳蟠胡塞
푸른 강은 바다 문에 들어가리라 / 滄江入海門
구름 짙어 밤과 낮의 구별이 없고 / 屯雲無晝夜
눈은 쌓여 하늘과 땅 온통 하야리 / 積雪自乾坤
쫓겨난 객 도성 땅을 그리워하나 / 逐客思京國
관직 옮김 임금에게 달린 것이네 / 移官在至尊
맘 있어도 끝내 전달 못했거니와 / 有懷終不達
성조에서 내린 은혜 등져 버렸네 / 孤負聖朝恩
변방 성서 온 나그네 나를 찾아와 / 客自邊城至
북쪽 변방 소식 내게 전하여 주네 / 因傳塞北音
전에 비해 날씨 춥긴 배는 더 춥고 / 爲言寒倍昔
올해같이 눈 많은 해 없었다 하네 / 未有雪如今
흰 눈빛은 되 하늘에 들어가 멀고 / 色入胡天遠
음 기운은 북방 들판 삼켜 깊으리 / 陰呑朔野深
시름 깊어 지은 시가 많을 것인데 / 窮愁多著述
부디 내게 장편 단편 시 보내 주소 / 須寄短長吟
잠깐 새에 이미 묵은 자취 되어서 / 陳迹隨俄頃
해 넘도록 서로 간에 헤어져 있네 / 經年作別離
승냥이가 제사하는 달에 헤어져 / 昔分豺祭月
범이 교미하는 때인 지금 그리네 / 今憶虎交時
그댄 풍상 겪으면서 고생 많은데 / 念子風霜苦
나는 임금 은혜 받아 부끄럽구려 / 慙余雨露私
홍 이부께 하고 싶은 말 부치노니 / 寄言洪吏部
몇 편의 시 화답하여 보내 주시게 / 要和數篇詩
조윤지(趙胤之) : 조석윤(趙錫胤, 1605~1655)으로, 윤지는 그의 자이다. 호는 낙정재(樂靜齋)이다. 1650년(효종1)에 이경억(李慶億)이 왕에게 여색을 멀리하라고 건의하다가 미움을 사자 이를 적극 신구(伸救)하다가 파직되어 임천(林川)으로 귀양 갔다가 이듬해에 풀려났다. 1652년에는 정세규(鄭世䂓)를 비난하였다가 영암(靈巖)으로 귀양 간 후 뒤에 강계(江界)로 옮겨졌으며, 이듬해 풀려났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저서로는 《낙정집(樂静集)》이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홍대이(洪大而) : 홍명하(洪命夏, 1607~1667)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대이, 호는 기천(沂川)이다. 현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효종의 신임이 아주 두터워 효종을 도와 북벌 계획을 적극 추진하였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 《기천집(沂川集)》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절서(節序) …… 있네 : 조석윤이 강계(江界)에 귀양 가 있으므로 한 말이다. 조석윤은 1652년(효종3)에 당시 이조 판서로 있던 정세규(鄭世䂓)를 비방하다가 호당(護黨)을 한다는 혐의를 받아 영암으로 귀양 갔다가 10월 6일에 강계로 유배지가 옮겨졌다.
왕자유(王子猷) …… 없구려 : 상대방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길이 없다는 뜻이다. 왕자유는 진(晉)나라 때의 명사인 왕휘지(王徽之)로, 자유는 그의 자이다. 왕휘지가 산음(山陰)에 살았는데, 한밤중에 눈이 내리자 친구인 대규(戴逵)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에 즉시 밤을 새워 배를 타고 가 대규가 사는 집 문 앞까지 갔는데,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왔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나는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世說新語 任誕》
맘 …… 버렸네 : 동명 자신이 조정에 있으면서도 조석윤을 석방해 주라고 아뢰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승냥이가 …… 그리네 : 9월에 헤어져서 11월이 된 지금까지 서로 못 만나고 있다는 뜻이다. ‘승냥이가 제사하는 달’은 9월로,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1월에는 수달이 고기를 제사 지내고 9월에는 승냥이가 짐승을 제사 지낸다.〔孟春之月 獺祭魚 季秋之月 豺祭獸〕”라고 하였다. ‘범이 교미하는 때’는 11월로, 《예기》 〈월령〉에 “11월에 범이 처음으로 교미한다.”라고 하였다.
봄날에 여러 벗들과 더불어 팔각정에 오르다〔春日與諸友登八角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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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우리 동국 보배인 이곳 / 美哉東國寶
하늘에서 이런 산하 만들어 냈네 / 天作此山河
만대토록 제왕 대궐 있을 곳인데 / 萬世帝王宅
삼춘이라 꽃과 버들 많고도 많네 / 三春花柳多
시 읊으면 그대가 또 화답하게나 / 吟詩君且和
술잔 들면 내가 응당 노래하리라 / 對酒我當歌
비록 오만 시름 생각 이르러 오나 / 縱有千愁至
한번 잔뜩 술 취하는 데야 어쩌리 / 其如一醉何
청하자에게 부치다〔寄靑霞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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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 북쪽 삼추 가을 든 날에다가 / 漢北三秋日
호남 땅의 만리밖의 하늘이라네 / 湖南萬里天
그대 모습 그리우나 갈 수 없거니 / 相思道路隔
편지 써서 부치어서 맘 전할 밖에 / 只有信書傳
매번 그대 청하의 뜻 우러르면서 / 每仰靑霞意
긴 소리로 백설편의 시 읊는다오 / 長吟白雪篇
비록 한번 만나 본 적 없긴 하지만 / 雖微一傾蓋
백아 타는 금의 소리 알 수 있다오 / 猶識伯牙絃
청하자(靑霞子) : 권극중(權克中, 1585~1659)으로,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도교학자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지(正之), 호는 청하자이며 전라도 고부(古阜)에서 태어났다. 1612년(광해군4)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인목대비의 폐출 소식을 듣고 크게 낙담하여 은둔해 지냈다. 동명, 이식(李植), 임전(任錪) 등과 교유하는 한편 내단사상(內丹思想)에도 침잠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청하집(靑霞集)》을 비롯하여 《참동계주해(參同契註解)》, 《역대사요(歷代史要)》, 《비요복서결(備要卜筮訣)》 등이 있다.
김상일은 동명과 권극중의 관계에 대해 “정두경은 자신보다 열두 살 위인 권극중의 인품을 숭모하였으며, 자신의 종증조인 북창 정렴과 고옥 정작의 시를 모은 《북창고옥선생시집》의 서문과 발문을 받았다. 이 시집의 서문을 쓴 이는 모두가 당대 문단의 거장들이었다. 정두경이 방외의 선비라고 할 수 있는 권극중에게 자신의 선조의 문집에 서를 부탁한 것을 보면, 정두경의 권극중에 대한 대우나 숭모의 정이 보통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권극중 역시 정두경을 사단(詞壇)의 우두머리로 대우하였다. 그것은 권극중이 평소 자신이 지은 글이 있으면 정두경에게 의뢰, 검토를 받았다는 정두경의 말에서도 확인된다.”라고 하였다. 《김상일, 東溟 鄭斗卿의 정치적 不遇와 道仙에의 경도, 한국문학연구 제15집,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1992, 300쪽》
청하(靑霞)의 뜻 : 아주 고상한 뜻을 말한다. 청하는 푸른 노을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권극중의 호가 청하자이므로 특별히 끌어다가 쓴 것이다.
백설편(白雪篇) : 상대편의 시를 칭하는 말이다. 〈백설편〉은 본디 전국 시대 때 초(楚)나라의 고아(高雅)한 가곡인 〈양춘백설가(陽春白雪歌)〉를 말하는데, 후대에는 일반적으로 고상하고 아취 있는 곡이나 아름다운 시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옛날에 노래를 잘 부르는 어떤 사람이 초나라 서울 영(郢)에서 처음에 보통 유행가인 〈하리(下里)〉나 〈파인(巴人)〉 같은 것을 불렀더니, 같이 합창하여 부르는 자가 수백 명이 있었다. 그러나 〈양춘백설(陽春白雪)〉이라는 최고급의 노래를 부를 적에는 따라 부르는 자가 거의 없었다 한다.
비록 …… 있다오 : 동명 자신이 권극중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고상한 풍모를 지녔음을 알 수 있겠다는 뜻이다. 백아(伯牙)는 옛날에 금(琴)을 잘 탔다고 하는 사람 이름이다. 백아는 금을 잘 탔고, 종자기(鍾子期)는 소리를 잘 들었는데, 백아가 금을 타면서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아아(峨峨)하기가 태산(泰山)과 같구나.”라고 하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좋구나, 양양(洋洋)하기가 강하(江河)와 같구나.”라고 하였다. 그 뒤에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다시는 금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의주 부윤으로 가는 이사강을 전별하다 2수 〔別李義州士强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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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진 어진 분께 맡겨졌으매 / 巨鎭歸賢俊
뭇 신하들 성조 정사 축하하누나 / 群臣賀聖朝
긴 강물은 소리 내며 바다로 들고 / 長江聲入海
광야 기운 요동 벌판 위에 떴으리 / 廣野氣浮遼
눈비 오는 속에 변성 해가 저물고 / 雨雪邊城暮
하늘과 땅 속에 고을 아득히 멀리 / 乾坤郡邑遙
한 추위에 갖옷 이미 다 해졌는데 / 一寒裘已弊
읍루 갖옷 능히 내게 부쳐 주려나 / 能寄挹婁貂
땅은 바로 삼한 땅이 다한 곳이고 / 地卽三韓盡
강은 만리 저 먼 곳서 흘러오누나 / 江從萬里流
어둔 구름 발해 바다 잇닿아 있고 / 陰雲連渤海
큰길은 또 유주 향해 내달리리라 / 大道走幽州
그곳 물색 시흥 절로 일으키리니 / 物色供詩興
높은 곳에 올라 객지 시름 삭이리 / 登臨散客愁
공명 보면 이천석의 높은 자리니 / 功名二千石
중선루의 부는 부디 읊지 마시게 / 莫賦仲宣樓
이사강(李士强) : 이시술(李時術, 1606~1672)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강이며, 이항복(李恒福)의 손자이다. 1652년(효종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현종조에 선천 부사(宣川府使)와 의주 부윤(義州府尹)을 지냈고, 이후 이조 참의와 승지를 지냈다. 《현종실록》 1년 5월 15일 기사에 이시술을 의주 부윤으로 삼은 기사가 나온다.
읍루(挹婁) 갖옷 : 아주 좋은 담비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말한다. 읍루는 후한에서 오호십육국 시대 사이에 외만주(外滿洲) 부근에 있었던 나라로, 이곳에서는 아주 좋은 담비 가죽이 산출되는데, 그것으로 만든 갖옷을 말한다. 《三國志 卷30 挹婁》
공명(功名) …… 마시게 : 아주 중요한 고을의 수령으로 나가 공명을 이루게 되었으니,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름의 노래는 부르지 말라는 뜻이다. ‘이천석의 높은 자리’는 고을의 수령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고을 수령의 녹봉이 이천 석이었으므로 이렇게 칭한다. 중선(仲宣)은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왕찬(王粲)의 자(字)이다. 왕찬이 일찍이 동탁(董卓)의 난리를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의지해 있으면서, 강릉(江陵)의 성루에 올라 고향을 그리워하며 〈등루부(登樓賦)〉를 지어 고향 생각을 달랬다. 《三國志 卷21 王粲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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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집 제5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189수
길주 목사로 가는 임한백을 전송하다〔送任吉州 翰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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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군 중에 어느 곳이 제일이던가 / 北郡誰爲最
큰 주로는 바로 길주 고을이라네 / 雄州是吉州
하늘 닿는 큰 고개가 가로놓였고 / 磨天橫巨嶺(마천횡거령)
해를 보는 높은 누각 솟아 있다네 / 朝日有高樓
길은 깊은 바닷가를 지나갈 거고 / 路過重溟水
때는 팔월 가을날을 당할 것이리 / 時當八月秋
산과 바다 좋은 경치 두루 보면서 / 歷觀山海勝
고금 시름 씻어 낼 수 있을 것이리 / 堪滌古今愁
임한백(任翰伯) : 1605~1664.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경익(景翼), 호는 남곡(南谷)이다. 1642년(인조20)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1644년에 사서(司書)로서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심양에 볼모로 갈 때 최명길(崔鳴吉)ㆍ김상헌(金尙憲) 등과 함께 배종하였다. 길주 목사(吉州牧使)를 지냈다. 시문에 뛰어나 조선 팔대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현종실록》 3년(1662) 6월 21일 기사에 임한백을 길주 목사(吉州牧使)에 제수한 기사가 나온다.
하늘 …… 가로놓였고 : 길주(吉州) 경내에 마천령(磨天嶺)이 있으므로 한 말이다.
해를 …… 있다네 : 길주의 바닷가에 압해정(壓海亭)이라는 정자가 있으므로 한 말이다.
한반도의 마천령 횡(가로)으로 있지않고 종(세로)으로 있음
호남 관찰사로 가는 여희천을 전송하다〔送湖南伯呂希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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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께서 명해 방백 삼았거니와 / 上命爲方伯
그대 재주 진신 중에 으뜸이리라 / 君才冠縉紳
이생에서 기자국에 태어났으나 / 此生箕子國
예전에는 바로 태공 몸이었으리 / 前是太公身
길 떠나는 날은 날씨 추운 때이나 / 征蓋當寒日
휘장 걷는 거는 이른 봄일 것이리 / 褰帷趁早春
산과 시내 남쪽 지방 멀리 있는데 / 山川南紀遠
만리 먼 길 가는 웅륜 전송하누나 / 萬里送熊輪
여희천(呂希天) : 여성제(呂聖齊, 1625~1691)로,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희천, 호는 운포(雲浦),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여러 관직을 거치고서 1689년(숙종15)에 영의정이 되었다. 이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廢位)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기 위해 상경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 울분으로 발병, 고향에서 죽었다. 문집에 《운포집》이 있다. 《현종실록》 9년(1668) 10월 17일 기사에 여성제를 전라 감사에 제수하는 내용이 있다.
이생에서 …… 몸이었으리 : 여성제가 지금은 비록 기자(箕子)가 봉해진 조선 땅에 태어났지만, 옛날에 주나라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멸한 강태공(姜太公)과 같은 훌륭한 인재라는 뜻이다.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인 문왕(文王)이 위수(渭水) 북쪽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던 여상(呂尙)을 얻어 결국 주나라를 흥성시켰는데, 여상은 바로 뒤에 태공에 봉해진 강태공이다.
휘장 …… 것이리 : 이른 봄에 부임지에 도착할 것이란 뜻이다. 후한 때 가종(賈琮)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었는데, 부임할 적에 붉은 장막을 드리우고서 가는 것이 규례였는데도 “자사는 멀리 보고 널리 들어서 좋고 나쁨을 규찰하여야 한다. 어찌 휘장을 드리워 앞을 가려서야 되겠는가.”라고 하고는 휘장을 걷게 하였다. 《後漢書 卷31 賈琮列傳》
웅륜(熊輪) : 곰이 웅크린 모양을 한 수레의 횡목(橫木)인 웅식(熊軾)이 있는 수레로, 지방관이 타는 수레를 말하는데, 조선에서는 특히 감사(監司)가 타고 가는 수레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후한서(後漢書)》 〈여복지 상(輿服志上)〉에 이르기를 “삼공(三公)과 열후(列侯)는 녹교(鹿較)와 웅식에 검은 깃발을 단 수레를 탄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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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집 제6권 / 오언배율(五言排律) 15수
동래 부사로 가는 민인보 응협을 전송하다〔送閔東萊寅甫 應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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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땅의 제 지역에 있는 동래군 / 齊地東萊郡
만리 되는 모래밭이 있다고 하네 / 傳聞萬里沙
신라에도 또한 이런 고을 있거니 / 新羅又此邑
중국 땅의 동래와도 맞설 만하네 / 外國敵中華
성은 험해 창해 가에 임하여 있고 / 城峻臨滄海
대는 높아 제거성에 바짝 닿았네 / 臺高近帝車
해가 먼저 뜨매 근본 있음 알 거고 / 日先知有本
하늘 다한 곳에 끝이 없지 않으리 / 天盡不無涯
풍랑 일어 자라 등서 시름할 거고 / 風浪愁鰲背
관방 위해 겹겹의 성 설치해 두리 / 關防設犬牙
민후께서 그 고을의 태수가 된 건 / 閔侯爲太守
뽑아 써서 나라 윤택하게 한 거네 / 遷擢潤邦家
걸음 빨라 준마같이 내달릴 거고 / 絶足牽騏驥
엉킨 뿌리 막야로다 처리할 거리 / 盤根別鏌鋣
명월주를 품은 조개 다시 자라고 / 應還明月蚌
객성이 탄 뗏목 오나 바라보리라 / 更候客星槎
머리가 센 나는 몸에 병이 들어서 / 白首身仍病
청문에서 술 마시며 전별 못하네 / 靑門酒未賒
그대와 나 나눈 정분 형제 같은데 / 鴒原情義類
가는 길은 조령 넘어 멀고도 머네 / 鳥嶺道途遐
서신 보낼 쌍비연을 생각할 거고 / 信憶雙飛燕
돌아온 뒤 오색과가 필요할 거리 / 歸須五色瓜
교서 내려 좋은 정사 표창하리니 / 璽書褒異政
조석 간에 황마지를 보게 될 거리 / 朝夕見黃麻
민응협(閔應協) : 1597~1663.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인보(寅甫), 호는 명고(嗚皐)이다. 1633년(인조1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5년에 접위관(接慰官)으로 동래(東萊)에 파견되어 왜인 접대를 수행하였으며, 1646년에 동래 부사(東萊府使)가 되었다. 1663년(현종4)에 대사헌의 직을 사퇴하고, 그해에 죽었다.
동래군(東萊郡) : 중국 산동성의 산동반도 끝에 있는 고을 이름이다. 조선의 동래(東萊)와 이름이 같으므로 끌어다가 쓴 것이다.제제거성(帝車星) : 북두성의 별칭으로, 임금을 상징하는 별이다.
풍랑 …… 거고 : 동래가 바닷가에 있으므로 바다에서 일어나는 거센 파도를 볼 것이라는 뜻이다. ‘자라 등’은 전설에 열다섯 마리의 큰 자라가 대여(岱輿), 원교(員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 등 다섯 선산을 떠받치고 있다는 전설이 있으므로 한 말이다.
엉킨 …… 거리 : 고을 수령으로서 처리해야 할 복잡한 업무를 시원스럽게 잘 처리할 것이란 뜻이다. ‘엉킨 뿌리’는 복잡한 업무를 말하고, 막야(鏌鋣)는 춘추 시대 오(吳)나라의 간장(干將)이 만든 명검(名劍)의 이름이다.
명월주(明月珠)를 …… 자라고 : 민응협이 청렴한 정사를 펼쳐 백성들이 다시 소생될 것이란 뜻이다. 동한(東漢) 때에 맹상(孟嘗)이 합포 태수(合浦太守)로 부임하여 폐단을 개혁하고 청렴한 정사를 펼치자, 그동안 마구 캐내어 생산되지 않던 진주(珍珠)가 예전처럼 다시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환주합포(還珠合浦)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76 循吏列傳 孟嘗》
객성(客星)이 …… 바라보리라 : 일본으로 오가는 사신들을 맞이할 것이란 뜻이다. ‘객성이 탄 뗏목’은 사신으로 가는 사람이 타고 가는 배를 가리킨다. 옛날에 한(漢)나라의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에 사신으로 가면서 뗏목을 타고 간 고사가 있으므로 이렇게 이르는 것이다.
청문(靑門) : 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인데, 전하여 도성의 성문이나 떠나가는 사람을 전송하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백거이(白居易)의 〈권주(勸酒)〉에 “어디서도 술 잊기가 어려우려나, 청문에서 송별 잔치 많기도 하네.〔何處難忘酒 靑門送別多〕”라고 하였다.
서신 …… 거고 : 수령으로 있으면서 서신을 보내 줄 것이란 뜻이다. 쌍비연(雙飛燕)은 짝을 지어 나는 제비로,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을 말한다. 강엄(江淹)의 〈효이릉종군(效李陵從軍)〉에 “소매 속에 짧은 편지 들었거니와, 쌍비연을 통해 부쳐 보내고 싶네.〔袖中有短書 願寄雙飛鷰〕”라고 하였다. 《文選 雜體詩 江淹》
돌아온 …… 거리 : 벼슬을 마치고 돌아오면 전원으로 물러나 살 것이란 뜻이다. 오색과(五色瓜)는 다섯 빛깔이 나는 참외로, 진(秦)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졌던 소평(邵平)이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가난한 선비의 신분으로 장안(長安)의 성(城) 동쪽에 오색과를 심어서 생활을 영위했던 일이 있다.
조석 …… 거리 : 훌륭한 정사를 펼쳐 얼마 지나지 않아 승진될 것이란 뜻이다. 황마지(黃麻紙)는 옛날에 임금의 조서(詔書)를 베껴 쓸 적에 쓰던 종이로, 전하여 임금이 내리는 교서(敎書)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동래군(東萊郡) : 중국 산동성의 산동반도 끝에 있는 고을 ,그렇다면 제나라와 산동 은 사막지대가있는곳에 있어야하는데
마암(馬巖)은 여주팔경 중 제2경으로 여주의 옛지명 ‘황려(黃驪)’와 연관이 있으며, 여주의 대표적 성씨인 여흥민씨의 시조가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우리군을 대표하는 자연경관유적이다.
즉, 이 바위에서 여주 지명의 유래(由來)가 되는 황마(黃馬:누른 말)와 여마(驪馬:검은말) 가 솟아났다 하여 마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고장의 지명도 황려(黃驪)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이 고장 출신 대문호 이규보의 한시중에 “두 마리 말이 기이하게 물가에서 나왔다 하여, 이 때문에 고을 이름이 황려라네”라고 읊은 내용이 있어 그 역사성이 매우 높은 유적이다.
마암은 해동지도, 여지도, 지승, 광여도, 1872년 지방도 등 각종 고지도에 모두 그려져 있으며 ‘馬巖’이라 표기되어 있다. 특히 가장 세밀한 지도인 1872년 지방도에는 바위 전체를 ‘馬巖’으로 표기하였고, 그 마암에 삼각형 모양의 바위를 덧붙여 그렸으며, 이를 ‘인암(釼岩) ’ 즉, 칼바위로 표기하였다.
또한 이규보, 이색, 서거정, 최숙정, 김상헌, 정약용, 김창협 등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마암에 찾아와 시와 풍류를 즐기던 명소였다.
현재 평평한 바위면에 ‘馬巖’이라 큰 글씨가 새겨져 있는며, 위쪽에 여주목사를 역임한 “李寅應(이인응)”과 좌측에 “庚午(경오, 1870년) 十月(시월) 日(일) 刻(각)”이, 그리고 우측에 여주군수를 지낸 “申鉉泰(신현태)”라 새겨진 글씨가 있다
(인용 여주시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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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2수 〔神勒寺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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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 화상 남긴 자취 동대 위에 남았는데 / 懶翁遺迹有東臺
대 아래론 푸른 강이 끊임없이 흘러오네 / 臺下滄江衮衮來
해가 저문 마암에는 하얀 물결 일렁이고 / 日落馬巖翻白浪
봄 돌아온 안탑에는 푸른 이끼 끼어 있네 / 春回雁塔長靑苔
대에 올라 흐르는 물 바라다만 볼 뿐이고 / 登臨只自觀流水
가고 옴에 대해서는 겁회 물을 길이 없네 / 代謝無因問刦灰
슬프게도 자항 타고 사람들은 안 건너매 / 怊悵慈航人不渡
작은 돛은 낚싯배에 오래도록 펴져 있네 / 片帆長爲釣船開
큰 강 서쪽 흘러와서 영릉 향해 배알하고 / 大江西下謁英陵
강가 있는 초제에는 백층 높은 탑이 있네 / 江畔招提塔百層
용이 사는 굴 나직해 흐르는 물 빙빙 돌고 / 龍窟平臨水洶湧
마주하여 솟은 마암 삐죽삐죽 험준하네 / 馬巖相對石崚嶒
해가 저문 모래밭엔 어부들이 노래하고 / 日斜沙岸歌漁子
밤이 깊은 선방에는 늙은 승이 앉아 있네 / 夜久禪房坐老僧
삼거 이치 첫 번째 뜻 물어보고 싶건마는 / 欲問三車第一義
혜근께선 떠나가고 외론 등만 남아 있네 / 惠勤歸去只孤燈
나옹 화상(懶翁和尙) : 1320~1376. 고려 때의 고승으로, 여주(驪州)의 신륵사(神勒寺)에서 입적(入寂)하였다. 성은 아씨(牙氏), 속명은 원혜(元惠), 호는 나옹 또는 강월헌(江月軒)이다.
동대(東臺) : 여주 신륵사 옆 남한강 가의 마암(馬巖) 위에 있는 누대를 말한다.
안탑(雁塔) : 절에 있는 탑을 말한다. 인도의 왕사성(王舍城)에 안탑이 있는데, 중들이 기러기가 공중에 날아가는 것을 보고 희롱하는 말로 “우리들이 배가 고프니, 몸으로 보시(布施)하라.”라고 하였더니, 기러기가 스스로 죽어서 떨어졌다. 이에 중들이 감동하여 기러기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신륵사에는 두 개의 석탑(石塔)과 한 개의 전탑(塼塔)이 있는데, 여기서는 전탑을 가리키는 듯하다.겁회(刦灰) : 불교 용어로, 세계가 파멸할 때 일어난다고 하는 큰 불의 재를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가 곤명지(昆明池)를 팔 적에 밑바닥에서 검은 재가 나와 동방삭(東方朔)에게 물어보았으나 동방삭도 몰랐다. 그 뒤에 서역(西域)의 중이 와서 그것을 보고는 “천지가 다 타고 남은 재인 겁회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자항(慈航) : 불교 용어로, 부처와 보살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중을 제도하여 생사의 고해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마치 배로 사람들을 태워 물을 건너게 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영릉(英陵) : 세종(世宗)의 능으로, 여주에 있다.
초제(招提) : 범어(梵語) caturdeśa의 음역(音譯)으로, 사원(寺院)의 별칭이다.
삼거(三車) : 불가(佛家)에서 쓰는 용어로, 《법화경》 〈비유품(比喩品)〉에서 말한 우거(牛車), 녹거(鹿車), 양거(羊車)를 말하는데, 이들은 각각 보살승(菩薩乘) 즉 대승(大乘)과 연각승(緣覺乘) 즉 중승(中乘)과 성문승(聲聞乘) 즉 소승(小乘)에 비유한다.
혜근(惠勤) : 혜근(慧勤)이라고도 쓰며, 나옹 화상을 가리킨다
신륵사에서 배를 타고 한강으로 내려오다 2수 〔自神勒寺泛舟下江漢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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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여주에서 광주로다 내려오니 / 舟自驪州下廣州
여강의 물 한강으로 흘러들어 흐르누나 / 驪江水入漢江流
위나 아래 모두가 다 경치 좋음 알겠거니 / 始知上下皆佳境
내 평생에 장한 유람 한번 했다 자부하네 / 自許平生一壯遊
온조성은 높고 높아 눈 들어서 바라보고 / 溫祚城高聊極目
나옹대는 멀어져서 고개 돌려 바라보네 / 懶翁臺迥却回頭
모래밭 가 비 지나자 꾀꼬리가 울어 대매 / 沙邊雨過黃鸝語
맑은 술잔 잡고서는 객의 시름 녹이누나 / 且把靑樽遣客愁
긴 바람이 물결 깨어 일엽편주 가벼우매 / 長風破浪片帆輕
하루 만에 만리 길을 왔다고 할 만하구나 / 一日堪論萬里程
비 내리는 속에 문득 신륵사를 떠났는데 / 雨裏暫辭神勒寺
구름 끝에 갑작스레 광릉의 성 보이누나 / 雲端忽見廣陵城
강가의 꽃 언덕 버들 봄빛 서로 다투는데 / 江花岸柳爭春色
비오리와 푸른 백로 저녁 맑아 좋아하네 / 鸂𪄠鵁鶄喜晩晴
풍진 속에 머리 이미 희어진 게 부끄런데 / 自愧風塵頭已白
곁 사람은 잘못 계응 가는 데에 비하누나 / 傍人錯比季鷹行
온조성(溫祚城) : 광주(廣州)의 남한산성을 말한다. 광주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溫祚)가 도읍한 땅이므로 남한산성을 온조성이라고도 한다.
나옹대(懶翁臺) : 나옹 화상이 머물렀던 여주 신륵사 옆에 있는 동대(東臺)를 가리킨다.
계응(季鷹) : 진(晉)나라 때 맑은 지조로 이름 높았던 장한(張翰)의 자(字)이다. 장한은 가을바람이 부는 것을 보자 오중(吳中)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살이에 있어서는 뜻에 맞게 사는 것이 귀한 법인데, 어찌 벼슬에 얽매여서 수천 리 밖을 떠돌면서 명예와 관직을 노리겠는가.”라고 하고는, 드디어 관직을 버린 채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고전번역서 > 동명집 > 동명집 제8권 > 칠언고시 > 최종정보
신륵사〔神勒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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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께서 젊은 시절 금강산에 머무를 때 / 懶翁少住金剛山
부처 모신 범전들이 구름 사이 연했었네 / 藥師梵殿連雲間
나옹께서 늘그막에 신륵사에 머무르매 / 懶翁晩居神勒寺
동대 이에 우뚝하니 허공 속에 솟았다네 / 東臺逈出臨無地
동대 아래 흐르는 강 백장 길어 맑았는데 / 臺下江流百丈淸
그 당시에 설법하자 귀신 와서 들었다네 / 當年說法鬼神聽
하늘나라 선녀 낮에 방장실로 내려왔고 / 天女晝下方丈室
물속 용왕 한밤중에 연화경을 들었다네 / 龍王夜參蓮花經
삼천세계 아득하고 아득하여 드넓은데 / 三千世界莾空濶
한쪽 신발 메고 서천 가서 소식 끊기었네 / 隻履西天斷消息
오직 푸른 이끼 자란 한 조각의 빗돌 있어 / 唯有蒼苔一片石
초제에 온 과객들이 가끔 와서 읽는구나 / 招提過客時來讀
한쪽 …… 끊기었네 : 나옹 화상이 죽었다는 뜻이다. 서천(西天)은 서역(西域)을 말한다. 옛날에 달마(達磨)가 죽어 중국의 웅이산(熊耳山)에 장사하였는데, 위(魏)나라의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중 총령(蔥嶺)에서 달마를 만났다. 그때 달마가 손에 신 한 짝만 메고 있었으므로 송운이 “대사는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묻자, 대사가 “나는 서역으로 가오.”라고 하였다. 송운이 돌아와서 이 말을 임금에게 상세히 전하자, 임금이 명하여 달마의 묘를 파고 관(棺)을 열어 보니 신발이 한 짝만 있었다 한다. 후대에는 이로 인하여 승려가 먼 길을 떠나거나 죽은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傳燈錄》
고전번역서 > 동명집 > 동명집 제8권 > 칠언고시 > 최종정보
동명집 제8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61수
마암3수 〔馬巖 三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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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보지 못하였나 구당협의 염예퇴를 / 君不見瞿塘灔澦堆
강 가운데 커다란 돌 아득 높이 솟아 있네 / 中有巨石高崔嵬
허연 물결 산과 같고 바위는 또 말 같은데 / 白波如山石如馬
뱃사람들 서로 겁내 지나가지 못한다네 / 舟人相戒不敢下
파선되어 죽은 자들 셀 수 없이 많았거니 / 破碎淪溺不可記
한 해 사이 몇몇이나 물고기 밥 되었던가 / 一年幾人魚腹裡
그렇지만 여강 가의 마암만은 못하거니 / 不及驪江馬巖江畔起
배는 난파 안 시키고 강물만을 막고 있네 / 不破江船捍江水
이 여강에 오 년 사이 두 차례나 내 왔거니 / 驪江五年兩度來
강가 있는 이 마암석 눈에 아주 익숙하네 / 慣見江邊馬巖石
전에 왔을 때엔 바로 봄이 저물 때였기에 / 昔來正値春暮時
바위 앞엔 밤비 오고 강가에 꽃 떨어졌네 / 巖前夜雨江花落
지금 오매 드센 교룡 물결 크게 일으켜서 / 今來蛟龍水波惡
푸른 절벽 하얀 눈이 서로 치며 내뿜누나 / 蒼壁白雪相噴薄
이 두 경치 어느 쪽이 더 좋은 줄 모르기에 / 二景優劣吾不知
나옹 있던 동대 위에 종일토록 앉았노라 / 懶翁東臺坐終夕
여주 고을 고을 모습 어쩜 이리 웅장한가 / 驪州州府何雄壯
큰 강가에 백척 높은 누대 우뚝 솟아 있네 / 百尺樓臨大江上
큰 강물이 기슭 치면 무너지기 쉬울 건데 / 大江簸岸岸善崩
다행히도 마암 있어 강물 마주 보고 있네 / 幸有馬巖列相向
마암 바위 강물 향해 우뚝 높이 솟았거니 / 馬巖相向起嵯峨
너 아니면 마을 모두 휩쓸려져 나갔으리 / 微爾難免閭爲河
강에다가 배 띄우고 푸른 절벽 바라보니 / 掛帆中流望蒼壁
조화옹의 공력이지 사람 힘이 아니구나 / 偉哉造化非人力
마암(馬巖) :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 옆에 있는 바위로, 여강(驪江)에서 두 마리의 검은 말이 나왔다 하여 이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7 驪州牧》
구당협(瞿塘峽)의 염예퇴(灔澦堆) : 구당협은 양자강(揚子江) 삼협(三峽) 중의 하나로, 물살이 몹시 거센 곳이다. 염예퇴는 구당협의 입구에 솟아 있는 험한 바위의 이름으로, 겨울철에 강물이 줄어들면 수백 자나 우뚝하게 드러나고 여름에 강물이 불면 수십 자나 물에 잠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말과 같으며, 뱃사공들이 무서워서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고 한다.
나옹(懶翁) 있던 동대(東臺) : 나옹은 고려 공민왕 때의 왕사(王師)이다. 중국의 지공화상(指空和尙)에게서 심법의 정맥(正脈)을 받아 지공(指空)ㆍ무학(無學)과 함께 삼대 화상(三大和尙)으로 불리었다. 고려 말기에 보우(普愚)와 함께 우리나라 불교의 초석을 세운 위대한 고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1376년(우왕2)에 왕명으로 밀양(密陽)에 있는 영원사(瑩源寺)로 옮겨 가던 중 5월 15일에 나이 56세, 법랍 37세로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으므로, 신륵사에 부도(浮屠)를 세웠다. 동대는 마암 위에 있는 대를 말한다.
능한산성에 오르다 2수 〔登凌漢山城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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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높은 누 오르자 기운 절로 호탕커니 / 獨上危樓氣自豪
툭 트여진 사막 땅에 변방 구름 드높구나 / 眼空沙磧朔雲高
만리 되는 막남 땅에 오랑캐의 말 없으며 / 漠南萬里無胡馬
바다 위의 삼신산엔 크고도 큰 자라 있네 / 海上三山有巨鰲
객 됐으매 애오라지 왕찬 지은 부를 짓고 / 作客聊成王粲賦
몸 지킴엔 되레 여건 찼던 칼을 생각하네 / 防身却憶呂虔刀
뗏목 타고 간 한사는 소식 아예 끊겼는데 / 乘槎漢使音書斷
해가 지는 선사포엔 저녁 파도 급히 이네 / 落日宣沙急暮濤
능한산성 아득 높아 까막이 깃들려 하고 / 凌漢城高烏欲棲
구름 닿은 대는 높아 나르는 새 나직하네 / 接雲臺迥鳥飛低
오랑캐는 봉홧불을 올려 소식 전달하고 / 胡兒消息傳烽火
변방 객은 고비 소리 속에 생애 보내누나 / 戍客生涯送鼓鼙
전쟁 기운 오늘날에 계북 땅에 뻗쳐 가고 / 兵氣卽今衝薊北
지형 모습 예로부터 관서 지방 안고 있네 / 地形從古抱關西
서생인 난 연연산에 명을 새길 수 없으매 / 書生未勒燕然石
공연스레 술잔 잡고 마셔 흠씬 취하누나 / 空把淸樽醉似泥
막남(漠南) : 중국의 사막 남쪽 지역으로, 예로부터 이 지역에는 오랑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삼신산(三神山) : 발해(渤海)에 있다고 하는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瀛洲)를 가리키는데, 이 산들은 금빛 자라가 등에 지고 있다고 한다.
왕찬(王粲)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건안칠재자(建安七才子) 가운데 한 사람인데, 일찍이 난을 피하여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가서 의지해 있으면서 뜻을 얻지 못하자 당양성(當陽城)의 누각에 올라가서 〈등루부(登樓賦)〉를 읊어 시름을 달랜 고사가 있다. 《三國志 卷21 王粲傳》
여건(呂虔)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각(子恪)이며, 벼슬은 서주 자사(徐州刺史)에 이르렀다. 당초에 여건이 차고 있는 패도(佩刀)를 도공(刀工)이 감정하고서는, 이 칼을 차고 있으면 반드시 삼공(三公)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뒤에 여건이 이 칼을 왕상(王祥)에게 주면서 “만일 적격자가 아니면 반드시 해를 당하게 되는 법인데, 당신은 삼공의 역량이 있으므로 주는 것이오.”라고 했는데, 뒤에 과연 왕상이 삼공이 되었다. 《三國志 卷18 呂虔傳》
憶 : 이 부분의 소주에 “어떤 본에는 ‘패(佩)’로 되어 있다.” 하였다. 이에 의거하여 이 구절을 번역하면 “몸 지킴엔 되레 여건 찼던 칼을 차고 있네.”라는 뜻이 된다.
한사(漢使)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서역(西域)으로 사신을 갔던 장건(張騫)을 가리킨다. 무제가 장건으로 하여금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가서 황하(黃河)의 근원을 찾게 하였는데, 장건이 뗏목을 타고 가다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만났다고 한다. 《荊楚歲時記》
선사포(宣沙浦) : 평안북도 철산군에 있는 포구(浦口)이름으로,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조선 시대 때 명나라에 보내는 조공선의 출발지 중 하나였다.
고비(鼓鼙) : 적이 쳐들어올 때 신호로 치는 북으로, 전하여 전쟁 또는 군사(軍事)를 뜻한다.
[주-D009] 계북(薊北) : 북경(北京) 덕승문(德勝門)의 서북쪽 지역으로, 춘추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지역이다. 계구(薊丘)라고도 하며, 지금은 토성관(土城關)이라고 한다.[주-D010] 연연산(燕然山) : 몽고 지방에 있는 산으로, 항애산(杭愛山)이라고도 불린다. 후한 화제(後漢和帝) 원년(89)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남선우(南單于) 및 강호(羌胡)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락산(稽落山)에서 북선우(北單于)와 싸워 크게 승리하여 연연산을 점령하고 돌아왔는데,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반고(班固)에게 명해 명(銘)을 지어 그곳에 비석을 세웠다. 《後漢書 卷23 竇憲列傳》
용만의 이 부윤과 함께 통군정에 오르다3수 〔携龍灣李府尹登統軍亭 三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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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군정의 정자 앞엔 강이 성지 되었으며 / 統軍亭前江作池
통군정의 정자 위엔 피리 소리 슬프구나 / 統軍亭上角聲悲
사군이 탄 오마에는 푸른 실을 매었으며 / 使君五馬靑絲絡
도독 휘하 천 군사들 적우기를 들었구나 / 都督千夫赤羽旗
변방 땅의 아이들 다 중국 말을 하거니와 / 塞垣兒童盡華語
요동 땅의 산천 모습 옛날 모습 아니구나 / 遼東山川非昔時
이로부터 선우가 늘 사냥하러 나올 거니 / 自是單于事田獵
성 머리의 밤 횃불을 의심할 거 없으리라 / 城頭夜火不須疑
장안성에 사는 사람 임금 계신 곳에서 와 / 長安人自日邊來
용만에서 길이 다해 고개 다시 돌리누나 / 路盡龍灣首更回
이로부터 사마천의 장한 유람 다 끝났고 / 自是馬遷窮壯觀
감히 왕찬 같은 기재 지녔다고 말하리라 / 敢言王粲有奇才
먼 지역의 외로운 성 강 흐름은 급박하고 / 孤城地迥江流急
높은 누각 뿔피리는 변새의 곡 슬프구나 / 畫角樓高塞曲哀
객중에서 수심 회포 뉘와 함께 녹이려나 / 客裏愁懷共誰遣
누각 올라 애오라지 다시 술을 마시누나 / 登臨聊復一含杯
흐르는 강 아득 멀리 백두산서 흘러와서 / 江流遠自白頭山
동쪽으로 푸른 바다 천지간에 흘러드네 / 東入滄溟天地間
압록강은 모두들 다 삼대수라 말 전하고 / 鴨綠共傳三大水
용만 땅은 절로 하나 웅대한 관 되었구나 / 龍灣自作一雄關
중원 땅과 예맥 지역 각각 남쪽 북쪽 있고 / 中原穢貊各南北
중국 사신 번방 신하 가끔 서로 오가누나 / 漢使藩臣時往還
오늘날엔 되놈 아이 강가에서 사냥하매 / 今日胡兒獵江上
장군께선 술 있어도 얼굴 펴지 못하누나 / 將軍有酒莫開顔
이 부윤(李府尹) : 이완(李莞, 1579~1627)을 가리킨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열보(悅甫)이며,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이다. 1599년(선조32)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23년(인조1)에 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올랐다. 이듬해에 이괄(李适)의 난군을 평정한 공을 세웠으며, 이어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되었는데, 재임하는 동안 모문룡(毛文龍)과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정묘호란 때 적과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패하자 분사(焚死)하였다. 1706년(숙종32)에 아산 현충사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강민(剛愍)이다.
용만(龍灣)의 …… 오르다 : 이 시에 대해 남은경은 “정두경은 인조 4년(1626)에 28세의 나이로 강왈광(姜曰廣)과 왕몽윤(王夢尹) 두 조사(詔使)가 조선에 왔을 때 원접사인 김류(金瑬)를 따라 포의(布衣)로 제술에 참여하였다. 이때 이들 일행이 의주에 이르러 부윤인 이완(李莞)과 더불어 통군정(統軍亭)에 모여서 술을 마시다가 명나라 도독(都督) 모문룡(毛文龍)의 군대가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이 시는 그때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 시의 첫 수에 대해 “이 시의 앞의 1, 2, 3연이 자연과 주변 경물에 대한 묘사라면, 마지막 4연에서는 정두경이 직접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1연에서 보이는 까마득한 높이는 독자로 하여금 치솟는 힘이라는 양(揚)의 기운을 느끼게 하다가, 구슬픈 피리 소리로 억(抑)의 정조로 급격히 내려갔다. 2연의 씩씩한 말과 군사의 모습을 묘사한 두 구는 사기를 북돋우는 양(揚)의 기운을 느끼게 하고, 3연의 요동 지방의 무상한 변화를 보여 주는 두 구는 다시 억(抑)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4연에서는 다시 한 번 처진 기운을 고양시키는 격려조의 말로 양(揚)의 정조로써 끝마무리를 짓고 있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 시는 정두경의 문장 솜씨를 확인시켜 당시 원접사 일행에게 실력을 인정받게 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또한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시의 기격(氣格)이 굳건하여 두보(杜甫)와 방불하다.’고 격찬하였다.”라고 하였다. 《남은경, 東溟 鄭斗卿 文學의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56~58쪽》
오마(五馬) : 말 다섯 마리가 끄는 수레로, 태수가 부임할 적에 이 수레를 타고 갔으므로, 한 고을의 수령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적우기(赤羽旗) : 붉은 깃을 꽂은 깃발을 말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장한 유람 : 《사기(史記)》를 지은 사마천은 천성이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남쪽으로 강수(江水), 회수(淮水)를 유람하고 회계(會稽)로 올라가서 우혈(禹穴)을 보고 구의산(九疑山)을 보았으며, 북쪽으로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제로(齊魯) 지방을 거쳐 양(梁)과 초(楚) 지방까지 두루 유람하였다. 이때 얻은 산천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명문장가가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왕찬(王粲)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건안칠재자(建安七才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자는 중선(仲宣)이다. 박학다식하고 문사(文詞)가 넉넉하였다. 한말(漢末)에 형주(荊州)로 피난하여 유표(劉表)에게 의지하였고, 뒤에는 위(魏)에서 벼슬하여 관직이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왕찬이 일찍이 난을 피하여 유표에게 의지해 있을 때 당양성(當陽城)의 누각에 올라가서 〈등루부(登樓賦)〉를 읊어 시름을 달랜 고사가 있다. 《三國志 卷21 王粲傳》
동쪽으로 …… 흘러드네 : 압록강의 흐름을 형용한 것인데, 실제의 흐름과는 방향이 맞지 않는다.
삼대수(三大水) : 천하에서 크다고 하는 세 개의 강으로,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이르기를 “천하에는 세 개의 큰 강이 있는데, 양자강과 황하와 혼동강(混同江)이 바로 그것이다. 혼동강은 오랑캐 땅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혼동강은 바로 압록강을 말한다. 《朱子語類 卷79 尙書 禹貢》
서쪽 변방에서 옛일을 생각하다 3수 〔西塞懷古 三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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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과 요동 지역 서로 이웃하여 있고 / 鴨江遼塞地相隣
중국 땅과 삼한 땅은 형세 서로 친하구나 / 中國三韓勢自親
먼 옛날에 낙랑 지역 한의 군현 되었는데 / 在昔樂浪爲漢郡
그 당시에 왔던 위만 연나라의 사람이네 / 當時衛滿是燕人
산하에는 금성탕지 험한 요새 남았거니 / 空餘河岳金湯險
몇 번이나 뭇 영웅들 전쟁터서 싸웠던가 / 幾度英雄戰伐塵
높은 누각 올라가서 북쪽 변경 아니 봄은 / 不上高樓望邊朔
해 저물면 옛 생각에 맘 상할까 겁나서네 / 晩來懷古恐傷神
요동 지역 요새들은 용만 땅과 접했거니 / 遼東障塞接龍灣
두 나라의 국경 바로 강물 하나 사이구나 / 兩國封疆一水間
어느 누가 하늘과 땅 안팎 구분되게 했나 / 誰遣乾坤分內外
개벽했던 그때부터 강과 산은 있었다네 / 自從開闢有江山
한나라의 누선장군 지금 어디 있으려나 / 樓船漢將今安在
화표주에 있던 신선 날아가선 아니 오네 / 華表仙人去不還
칼 만지며 슬픈 노래 부르자 맘 슬프거니 / 撫劍悲歌空悵望
변방 성에 해는 지고 귀밑머리 세었구나 / 邊城落日鬢毛斑
사마천 뼈 썩었어도 그의 말은 남아 있어 / 馬遷骨朽其言在
매번 읽어 볼 때마다 감개 일어나게 하네 / 每讀令人感慨多
문장 중에 흉노전의 글이 가장 맛있으며 / 文章最嗜匈奴傳
뜻과 기운 역수가의 노래가 또 특히 좋네 / 意氣偏憐易水歌
함께 나서 빼어남을 못 다툰 게 한 되거니 / 恨不竝驅爭俊逸
고개 돌려 우뚝 솟은 그 모습을 상상하네 / 有時回首想嵯峨
그 당시에 우혈을 다 탐색한 걸 말을 마소 / 莫道當年探禹穴
이 통군정 서북쪽도 역시 산과 강 있다오 / 統軍西北亦山河
그 당시에 …… 사람이네 : 위만(衛滿)은 고조선의 한 국가인 위만조선의 창건자이다. 연나라 왕의 부장으로 있던 위만은 혼란기에 1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의 준왕(準王)에게 투항하였다가 세력을 키워, 왕위를 빼앗고 도읍을 왕검성(王儉城)에 정했다. 이 위만조선은 고조선 역사상 가장 융성했던 나라로 꼽힌다
한나라의 누선장군(樓船將軍) : 한나라 무제(武帝) 때의 장군으로 고구려에 쳐들어왔던 누선장군 양복(楊僕)을 가리킨다. 누선장군은 수군의 장군을 말한다. 무제 원봉(元封) 2년(기원전109)에 양복이 누선장군이란 호칭으로 수군을 거느리고 산동반도(山東半島)를 출발하여 발해만을 횡단해 왕검성(王儉城)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서 귀국하였다가 처형당하였다.
화표주(華表柱)에 있던 신선 : 한나라 때 요동 사람인 정영위(丁令威)를 말한다. 정영위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서는, 천년이 지난 뒤에 학이 되어 요동에 돌아와 화표주에 앉아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새여, 새여, 정영위여, 집 떠난 지 천년 만에 오늘에야 돌아왔네.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들은 아니로세. 어찌 신선 아니 배워 무덤이 총총하뇨.”라고 하였다. 《搜神後記》
흉노전(匈奴傳) : 《사기》 권110에 실려 있는 열전으로, 《사기》 가운데 〈항우본기(項羽本紀)〉, 〈백이열전(伯夷列傳)〉과 함께 명문(名文)으로 손꼽힌다.[주-D005] 嗜 : 이 부분의 소주에 “어떤 본에는 ‘愛’로 되어 있다.” 하였다. 이에 의거하여 이 구절을 번역하면 “문장 중에 흉노전이 가장 사랑스러우며”라는 뜻이 된다.
역수가(易水歌) :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자객(刺客) 형가(荊軻)가 진왕(秦王)을 죽이려고 떠날 때 역수(易水) 가에서 부른 노래로, 그 노래에 “차가운 역수 가에 바람결 쓸쓸한데, 장사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고 하였다. 《戰國策 燕策3》
그 당시에 …… 마소 : 사마천이 천하를 유람한 것을 말한다. 사마천은 천성이 유람하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남쪽으로 강수(江水), 회수(淮水)를 유람하고 회계(會稽)로 올라가서 우혈(禹穴)을 보고 구의산(九疑山)을 보았으며, 북쪽으로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제로(齊魯) 지방을 거쳐 양(梁)과 초(楚) 지방까지 두루 유람하였다. 이때 얻은 산천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명문장가가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130 太史公自序》
마천령 위에서 짓다〔磨天嶺上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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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령의 고개 위에 올라 보지 않고서는 / 不向磨天嶺上看
하늘 오르는 것보다 힘든 줄을 뉘 알리오 / 誰知行路上天難
지형 절로 삼한 땅의 험한 곳이 되었으며 / 地形自作三韓險
바다 기운 유월에도 추워 덜덜 떨게 하네 / 海氣能令六月寒
눈 속 솟은 천 봉우리 사막 땅에 연하였고 / 雪裏千峯連朔漠
구름 가의 외로운 길 장안 향해 내달리네 / 雲邊一道走長安
고개 돌려 바라봐도 미인 소식 아니 오매 / 美人回首音塵闕
고운 꽃을 보내려도 해 넘길까 걱정 되네 / 欲寄芳華恐歲闌
행영에서 즉사로 읊다〔行營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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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바람 거센 속에 다 떨어진 갖옷 입고 / 北風沙礫弊貂裘
도성 떠나 백척 높은 누대 위에 올랐다네 / 去國登臨百尺樓
해 진 뒤에 푸른 산은 대막 땅에 닿았으며 / 日落蒼山連大漠
날씨 추워 하얀 눈은 종성 땅에 가득하네 / 天寒白雪滿愁州
변성에는 종군하는 음악 절로 있거니와 / 邊城自有從軍樂(즐거움)
막부에서 촛불 들고 노님 어찌 사양하리 / 幕府何辭秉燭遊
서생의 몸 공연스레 늙어 간다 말을 마소 / 莫道書生空老去
장한 맘은 월지두로 술 마시길 기약하네 / 壯心期飮月支頭
도성 …… 올랐다네 : 경성(鏡城)에 있는 원수대(元帥臺)에 올랐다는 뜻이다.
대막(大漠) : 몽고고원(蒙古高原)의 큰 사막으로, 한해(瀚海), 대적(大磧)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흔히 북쪽 변경 지역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장한 …… 기약하네 : 북쪽 오랑캐들을 섬멸할 뜻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월지(月支)는 한나라 때 서역(西域)에 있던 나라로, 감숙성(甘肅省)과 청해현(靑海縣), 서령현(西寧縣) 일대에 있었다. 흉노(匈奴)가 일찍이 월지왕(月支王)의 군대를 격파하고 월지왕의 두골(頭骨)로 술 그릇을 만들어 술을 마셨다
원수대2수 〔元帥臺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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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께서 그 당시에 궁려를 다 깨었거니 / 將軍當日破穹廬
그 공적은 표요보다 한층은 더 뛰어났네 / 功駕嫖姚不啻如
왕정을 다 청소하여 범의 굴을 없앴으며 / 掃盡王庭無虎穴
오랑캐 땅 개척하여 낭거서산 차지했네 / 闢來胡地有狼居
천년 세월 푸른 바다 비석 가라앉은 뒤고 / 千年碧海沈碑後
백척 높은 누대 바로 말이 놀던 나머지네 / 百尺高臺戲馬餘
변방에 해 저물녘에 칼을 잡고 노래하매 / 倚劍悲歌邊日暮
옛 생각을 못 견디어 가던 걸음 머뭇대네 / 不堪懷古一躕躇
서글픈 대 쓸쓸하게 삭풍 맞고 서 있거니 / 悲臺蕭瑟朔風前
대에 올라 바라보자 아득한 흥 일어나네 / 一上令人興渺然
경치 좋아 몇 번이나 놀이꾼들 왔었던가 / 勝地幾回遊子至
객수 녹일 길 없어서 술잔만을 들이켜네 / 客愁無賴酒杯傳
동쪽으로 일역 임해 바닷속에 별 잠기고 / 東臨日域星沈海
북쪽으로 음산 보매 하늘까지 눈 쌓였네 / 北望陰山雪到天
검을 잡자 절로 붓을 내던질 맘 생기거니 / 倚劍自生投筆意
양웅 이제 감천부를 읊은 거를 후회하리 / 揚雄方悔賦甘泉
원수대(元帥臺) : 경성(鏡城)에 있는 대 이름이다. 이 시에 대해 남은경은 “정두경은 자연 속을 노닐면서도 과거의 인물을 연상하는데, 그가 생각한 인물들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의 명장들이었다. 정두경은 북평사(北評事)의 직위로서 함경북도 북새(北塞)에 갔을 때 원수대에 오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정두경은 윤관의 행적을 떠올리며 그리워하였다. 이 시에서 정두경은 여진족을 밀어내고 육진을 개설하였던 고려 시대 윤관의 행적을 소리 높여 찬양하며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남은경, 東溟 鄭斗卿 文學의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71쪽》
장군께서 …… 깨었거니 : 장군은 윤관(尹瓘)을 가리키고, 궁려(穹廬)는 몽고인들이 사는, 위가 둥글고 높은 모양의 천막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야인(野人)들의 집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윤관은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동현(同玄)이며, 시호는 처음에 문경(文景)이었으나, 후에 문숙(文肅)으로 고쳤다. 예종 때 별무반(別武班)이란 군대를 조직해서 여진족(女眞族)이 있던 함경도 일대를 정벌하여 9성을 축조하였는데,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선춘령(先春嶺)이란 고개까지 진출하여 그곳에 ‘고려의 국경’이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
표요(嫖姚) : 한(漢)나라 무제 때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있었던 곽거병(霍去病)을 가리킨다. 그는 표요교위(嫖姚校尉)로 있으면서 기련산(祁連山) 주위에 있는 흉노족들을 정벌하기 위하여 여섯 차례나 출정하여 큰 공을 세워 표기장군이 되고 관군후(冠軍侯)에 봉해졌다. 《漢書 卷55 霍去病傳》[주-D004] 왕정(王庭) : 중국 서북 지역의 오랑캐 군장(君長)들이 막사를 설치하고 정사를 보면서 관할하는 지방으로, 전하여 오랑캐 지역을 말한다.
낭거서산(狼居胥山) : 중국의 서쪽에 있는 오원현(五原縣)의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황하의 북쪽에 있으며, 낭산(狼山)이라고도 한다. 한나라 효문제(孝文帝) 때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이 흉노를 정벌하여 크게 승리를 거두어 낭거서산에 봉하고 고연산(姑衍山)에 선(禪)한 뒤에 한해(瀚海)까지 진격하였는데, 이로 인해 흉노는 멀리 도망하여 사막의 남쪽에는 흉노의 왕정(王庭)이 없었다. 《史記 卷110 匈奴列傳》
천년 …… 뒤고 : 진(晉)나라 두예(杜預)가 형주(荊州)를 지키는 대장으로 있으면서, 부하들과 함께 현산(峴山)에 올라가 탄식하기를 “이 산은 항상 있건마는 이 산에 놀던 사람은 천추 뒤에 누가 알겠는가.”라고 하고, 비석(碑石) 둘을 만들어 자기의 사적을 새겨서, 하나는 산 위에 세워 두고, 하나는 후일에 산천이 변하여 산이 못이 되고, 못이 육지가 될 때를 예상하여 연못 속에 던져 두었다. 《晉書 卷34 杜預列傳》
백척 …… 나머지네 : 백척 높은 누대는 희마대(戲馬臺)를 말한다. 희마대는 강소성(江蘇省) 동산현(銅山縣)의 남쪽에 있는 누대(樓臺)로, 초한(楚漢) 시절에 항우(項羽)가 세운 누대인 양마대(凉馬臺)를 말한다.
일역(日域) : 해가 뜨는 곳으로, 동쪽 끝의 땅을 말한다. 여기서는 일본을 가리킨다.
음산(陰山) : 오늘날의 하투(河套) 이북과 대막(大漠) 이남에 있는 여러 산의 통칭으로, 흔히 중국 북방의 오랑캐 지역에 있는 산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검을 …… 생기거니 : 장수가 되어 멀리 정벌하여 오랑캐들을 섬멸할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반초가 관청의 대서(代書) 일을 하며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다가 붓을 던지며 탄식하기를 “대장부가 별다른 지략(智略)이 없더라도 부개자(傅介子)나 장건(張鶱)처럼 이역(異域)에서 공을 세워 봉후(封侯)가 된 일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서역(西域)에 사신으로 가 큰 공을 세워 정원후에 봉해졌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감천부(甘泉賦) : 한 무제(漢武帝) 때 양웅(揚雄)이 지은 문장 제목이다. 양웅이 일찍이 천자의 부름을 받고 대궐에 들어갔다가 뒤에 천자를 따라 감천궁(甘泉宮)을 다녀와서 〈감천부〉를 지어 올리자, 천자가 그것을 보고는 아주 기이하게 여겼다고 한다.
길주에서 민 사군에게 주고 겸하여 어사로 온 자문에게 보이다〔吉州贈閔使君兼示御史子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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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닿은 네 고개 중 마천령이 가파르며 / 四嶺橫空天嶺峻
관북 지방 아홉 성 중 길주성이 웅대하네 / 九城關北吉城雄
맑은 가을 열병하니 군사와 말 건장하고 / 淸秋閱兵士馬健
한낮에도 금 뜯어서 쟁송하는 사람 없네 / 白日彈琴爭訟空
변방 지역 민심 온통 위상에게 귀의했고 / 塞上民心歸魏尙
성도 땅의 풍속 모두 문옹 교화 받았구나 / 成都風俗化文翁
임금 교서 명광전서 내려오지 아니하매 / 璽書不下明光殿
환전 한갓 어사들이 타는 총마 타고 있네 / 桓典徒乘御史驄
자문(子文) : 이상질(李尙質, 1597~1635)의 자(字)이다. 이상질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가주(家洲)이다. 1632년에 암행 어사로 북관(北關)에 갔다가 돌아왔으며, 1634년에 원종(元宗)을 종묘에 추숭하려는 것을 간하다가 종성(鍾城)으로 유배되었고, 이듬해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회양(淮陽)에서 죽었다
한낮에도 …… 없네 : 고을 수령의 정사가 간략하고 형옥(刑獄)이 맑아서 다스리지 않아도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다. 옛날에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 지역을 다스릴 적에 거문고나 뜯고 지내면서 당(堂)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도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呂氏春秋 察賢》
변방 …… 받았구나 : 길주의 수령으로 있는 민 사군(閔使君)이 정사를 아주 잘 펼쳐서 백성들이 모두 감화되었다는 뜻이다. 위상(魏尙)은 전한(前漢) 시대 괴리(槐里) 출신으로 일찍이 운중 태수(雲中太守)가 되어 뛰어난 지략으로 흉노(匈奴)를 물리치는 등 큰 업적을 남겼다. 문옹(文翁)은 촉군(蜀郡)의 태수가 되어 문교(文敎)를 폈다.
임금 …… 있네 : 이상질과 같이 뛰어난 인물이 변경 지역의 어사(御史)로 떠돌고 있다는 뜻이다. 명광전(明光殿)은 한 무제(漢武帝)가 건립한 궁전 이름으로, 금과 옥, 진주 등으로 발을 만들어 쳐서 밤낮없이 빛나고 밝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후대에는 대궐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환전(桓典)은 한나라 때 사람으로, 일찍이 시어사(侍御史)에 제수되어 당시에 국정을 농단하던 환관(宦官)들을 조금도 꺼리지 않고 탄핵하였는데, 항상 총마(驄馬)를 타고 다녔다. 《後漢書 卷37 桓典列傳》
남 관찰사 택지 남선을 전송하다〔送嶺南伯澤之 南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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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제회 이루어서 인조대왕 만났거니 / 風雲仁祖大王遭
팔도 사람 여섯 번째 깃발 잡고 감을 보네 / 八道人看六擁旄
성주께서 지금 새로 정치 교화 펼치면서 / 聖主即今新政化
큰 지역을 다시금 또 어진 분께 맡기었네 / 雄藩又復屬賢豪
칠십 개의 고을들은 봉래에서 다하였고 / 郡城七十蓬萊盡
서남쪽을 누르는 산 태백 높이 솟아 있네 / 山鎭西南太白高
택상 본디 승상부의 집안에서 나왔거니 / 宅相本來丞相府
허리춤에 여건 찼던 칼을 끝내 찰 것이리 / 腰間終佩吕虔刀
남선(南銑) : 1582~1654.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택지(澤之), 호는 회곡(晦谷)ㆍ대몽(大夢)이다. 1629년(인조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5년에 병조 참의로 있던 중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0년(효종1)에 경상 감사가 되었다. 이후 이조와 형조의 판서를 지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풍운제회(風雲際會) : 어진 임금과 뛰어난 신하가 만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의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에서 나온 말이다.
팔도 …… 보네 : 남선이 여섯 번째로 감사가 되어 나가는 것을 본다는 뜻이다. 남선은 경상도 관찰사에 제수되기 전에 황해도ㆍ평안도ㆍ함경도ㆍ전라도ㆍ강원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八道人看六擁旄 : 이 부분의 소주에 “어떤 데에는 이 구절이 ‘팔도에서 중승이 여섯 번째 깃발 잡았네.〔八道中丞六擁旄〕’로 되어 있다.” 하였다.
칠십 …… 다하였고 : 경상도의 고을이 모두 70여 개이며, 그 가운데 동래부(東萊府)가 가장 끝에 있다는 뜻이다. 봉래(蓬萊)는 동래의 별칭이다.
서남쪽을 …… 있네 : 경상도의 서남쪽에 지리산이 있다는 뜻이다. ‘태백(太白)’은 여기서는 봉화에 있는 태백산이 아니라 경상도의 서남쪽에 있는 지리산을 가리킨다.◆그렇다면 지리산이라하지 태백을왜갔다붙이나 해석하기를 어거지로같다붙이네요
山鎭西南太白高 : 이 부분의 소주에 “어떤 데에는 이 구절이 ‘산세 보면 서남쪽에 태백산이 아득 높네.〔山勢西南太白高〕’로 되어 있다.” 하였다.
택상(宅相) …… 나왔거니 : 남선의 외할아버지가 좌의정을 지낸 김명원(金命元)이므로 한 말이다. 택상은 본디 집터의 풍수(風水)를 보는 것을 말하는데, 훌륭한 외손(外孫)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진(晉)나라 위서(魏舒)가 어려서 고아가 되어 외가인 영씨(甯氏)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영씨가 집을 새로 지을 적에 집의 풍수를 보는 자가 “귀한 외손이 나올 것이다.” 하였다. 그러자 위서가 “응당 외가를 위해서 택상이 말한 대로 되겠다.”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과연 마흔 남짓한 나이에 상서랑(尙書郞)이 되었다. 《晉書 卷41 魏舒列傳》
허리춤에 …… 것이리 : 남선이 끝내 정승 자리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뜻이다. 여건(呂虔)은 삼국 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각(子恪)이며, 벼슬은 서주 자사(徐州刺史)에 이르렀다. 당초에 여건이 차고 있던 패도(佩刀)를 도공(刀工)이 감정하고는, 이 칼을 차고 있으면 반드시 삼공(三公)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뒤에 여건이 왕상(王祥)에게 주면서 “만일 적격자가 아니면 반드시 해를 입게 되는 법인데, 당신은 삼공의 역량이 있으므로 주는 것이오.”라고 했는데, 뒤에 과연 왕상이 삼공이 되었다. 《三國志 卷18 魏書 呂虔傳》
백헌이 지은 금강록의 뒤에 제하다〔題白軒金剛錄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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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악 아득 높이 솟아 일어 엎어뜨리거니 / 楓岳峩峩日御翻
온 천하의 산 가운데 이 산이 젤 존귀하네 / 衆山天下此爲尊
동쪽 땅에 높이 솟아 발해에다 서리었고 / 秀出東方蟠渤海
서쪽 끝을 굽어보며 곤륜산을 압도하네 / 俯臨西極倒崑崙
구룡 사는 굴을 보면 못 깊어서 바닥없고 / 九龍有宅淵無底
일만 폭포 쏟아지는 동구 문은 한 문이네 / 萬瀑爭流洞一門
승상이신 이공 바로 오늘날의 이백으로 / 丞相李公今李白
읊은 시편 천년토록 문단에서 나란하리 / 詩篇千載並詞源
백헌(白軒) : 이경석(李景奭, 1595~1671)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상보(尙輔), 호는 백헌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인조조에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이 되었으며, 영의정을 지냈다. 저서로는 《백헌집(白軒集)》이 있다.
일어(日御) : 고대 신화 속에 나오는 해를 모는 신(神) 희화(羲和)인데, 일반적으로 해를 가리킨다.
곤륜산(崑崙山) : 중국의 서쪽에 있다는 상상 속의 산으로, 서왕모(西王母)가 그곳에 살며, 산 위에는 예천(醴泉)과 요지(瑤池)가 있다고 한다. 곤륜산(昆侖山)으로도 표기한다.
구룡(九龍) …… 문이네 : 금강산에 구룡연(九龍淵)과 만폭동(萬瀑洞)이 있으므로 한 말이다.
조 강진을 전송하다〔送趙康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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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니 넓은 바다 하늘 접해 일렁이고 / 茫茫大海接天流
만리 밖의 탐진 고을 제주도를 마주했네 / 萬里耽津對濟州
절도사가 방비함엔 가리포의 진이 있고 / 節度關防加里浦
사군께서 노닐음엔 진남루의 누각 있네 / 使君遊賞鎭南樓
당 오르면 절로 금을 뜯으면서 다스리고 / 陞堂自可琴爲理
도성 뜨면 근심 녹일 술이 필요할 것이리 / 去國還須酒散憂
옥서나 또 금화성의 소명 의당 내리리니 / 玉署金華當有召
바닷가의 고을에서 어찌 오래 머물리오 / 瘴郷何足久淹留
조 강진(趙康津) : 조성(趙䃏, 1625~1680)을 가리키는 듯하다. 《동명집》 제5권에 〈강진의 수령으로 가는 조씨를 전송하다〔送趙康津〕〉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이 부분이 초간본에는 ‘송조강진성(送趙康津䃏)’으로 되어 있어 수령으로 가는 인물이 조성임을 알 수 있다. 대본에서는 ‘䃏’이라는 글자를 목판에서 깎아 내었는데, 이는 조성이 형조 참판으로 있던 중 허적(許積) 등 남인(南人) 일파가 축출되고 김수항(金壽恒)ㆍ김석주(金錫冑) 등 서인 일파가 정권을 잡았던 사건인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이 일어나 1680년(숙종6) 윤8월 10일에 곤장을 맞고 죽었으므로, 본서의 대본이 된 중간본을 간행할 적에 이름자를 깎아 낸 듯하다. 조성의 본관은 평양, 자는 숙옥(叔玉)이다. 1652년(효종3)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1667년(현종8)에 정언, 고산 찰방, 1671년에 성주 목사, 1673년에 형조 참의가 되었다. 숙종조에 강원 감사, 승지 등을 역임하고 형조 참판으로 있던 중 1680년에 있었던 경신대출척에 걸려 윤8월 10일에 장하(杖下)에서 죽었으며, 이때 그의 아들 조정시(趙挺時)도 죽었다. 이로 인해 후대의 인명사전 등에 기록이 없게 되었다.
탐진(耽津) : 강진의 고호이다.
茫茫大海接天流 萬里耽津對濟州 : 이 부분의 소주에 “어떤 데에는 ‘탐진 땅의 바닷물은 하늘 접해 일렁이고, 만리 밖의 구름 안개 제주도를 마주했네.〔耽津海水接天流 萬里雲烟對濟州〕’로 되어 있다.” 하였다.
가리포(加里浦) : 완도(莞島)에 있던 진(鎭)으로, 왜구가 침입해 오는 요로에 위치해 있다.
진남루(鎭南樓) : 강진의 병영에 있던 누각으로, 외적의 침입을 망보는 곳이다.
당(堂) …… 다스리고 : 조성이 강진의 수령이 되어 잘 다스릴 것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복자천(宓子賤)이 선보(單父)를 다스릴 때 악기나 뜯고 지내면서 당 아래로 내려가지 않아도 선보가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呂氏春秋 察賢》
옥서(玉署)나 …… 머물리오 : 조정에서 곧바로 불러올려 임금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직에 임명할 것이니 강진에서 오래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옥서는 옥당(玉堂)과 같은 말로, 홍문관을 가리키며, 금화성(金華省)은 문하성(門下省)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경연(經筵)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호남 감사 민유중 을 전송하다〔送湖南伯 閔維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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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아직 젊은 방백 청운 오를 그릇으로 / 少年方伯器靑雲
밝은 때에 무리들 중 뛰어나서 발탁됐네 / 昭代超遷得出群
만리 산하 방비 온통 형제에게 맡겼거니 / 萬里山河兄弟屬
삼한 땅을 남북으로 서로 나눠 지키누나 / 三韓鎖鑰北南分
그 위엄은 절도 겸해 병마들을 점검하고 / 威兼節度看兵馬
그 직책은 누선 거느려서 수군 살펴보네 / 職領樓船見水軍
순시하다 대방군을 지나가게 될 경우엔 / 巡郡如經帶方郡
고을 사람들이 응당 옛 낭군을 알아보리 / 邑人應識舊郞君
이 당시에 민공의 형인 민정중(閔鼎重)이 함경도 관찰사로 있었다. 그리고 대방(帶方)은 바로 남원(南原)의 별칭인데, 민공의 선군(先君아버지)께서 일찍이 이 고을의 수령으로 있었다.
민유중(閔維重) : 1630~1687.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지숙(持叔), 호는 둔촌(屯村)이다. 숙종의 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아버지이며,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민광훈(閔光勳)의 막내아들이고, 대사헌을 지낸 민시중(閔蓍重)과 좌의정을 지낸 민정중(閔鼎重)의 동생이다. 민유중은 36세 때인 1665년(현종6)에 전라도 관찰사로 발탁되어 나갔다.
청운(靑雲) : 현귀(顯貴)한 자리에 있는 고관(高官)을 말한다.
누선(樓船) : 다락배로, 화려하게 꾸민 배를 말하는데, 전하여 뱃놀이를 하기 위해 타는 배나 전투하는 데 사용하는 배를 말한다. 여기서는 전투하는 배를 말한다.
태안 군수 이구를 전송하다〔送泰安李使君 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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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고을 외로운 섬 오호도의 가에 있어 / 郡在嗚呼孤島邊
지금에도 그 풍경은 예전 모습 그대로네 / 至今雲物尙依然
정히 초객 가을 됨을 슬퍼하는 날 당했고 / 正當楚客悲秋日
멀리 제왕 바다 섬에 들어간 해 생각하네 / 遙想齊王入海年
이 우주서 지나간 일 상심할 거 없거니와 / 宇宙不須傷往事
산하 모습 새 시 지어 읊을 수가 있으리라 / 山河只可賦新篇
이 늙은이 지닌 재주 쓸모없음 알면서도 / 自知白髮才無用
되레 이정 향하여 가 말채찍을 선사하네 / 猶向離亭贈馬鞭
이구(李球) : 1620~1684.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대옥(大玉), 호는 은와(隱窩)이다. 1652년(효종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63년(현종4)에 순천 부사가 되었으며,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680년(숙종6)에 길주 목사에 임명되었다. 《전성세고(全城世稿)》에 약간의 시문이 전한다. 이구가 태안 군수에 제수된 것이 언제인지는 미상이다.
태안(泰安) …… 그대로네 : 태안 근처의 서해에 속칭 오호도(嗚呼島), 또는 전횡도(田橫島)라는 섬이 있으므로 한 말이다. 오호도는 본디 중국의 산동반도 근처에 있는 섬으로, 전횡(田橫)이 머물렀던 섬이라 하여 전횡도라고도 한다. 전횡은 유방(劉邦)과 항우(項羽)가 천하의 패권을 놓고 싸우던 초한(楚漢) 시대에 제왕(齊王)으로 있던 전영(田榮)의 동생인데, 한나라의 한신(韓信)이 제왕을 쳐부수자 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한나라가 항우(項羽)를 쳐 없애자, 자신을 따르는 무리 500명을 거느리고 섬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 뒤에 한나라 고조(高祖)가 사람을 시켜 부르니, 전횡은 낙양(洛陽)으로 가다가 수치스러움을 못 이겨 자살하였다. 그러자 전횡을 따르던 무리 500명도 모두 전횡의 뒤를 따라 자살하였다. 《史記 卷94 田橫列傳》 지금 우리나라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외연도가 있는데, 이 섬의 별칭이 전횡도와 오호도이며, 이 섬에는 현재도 전횡을 제사 지내는 사당이 남아 있어 매년 전횡 장군을 추모하며 풍어를 기원하는 제례를 지낸다 ◆ 한반도는 전횡과 아무상관없는데 뭘 추모하고 기원하나
초객(楚客) : 비방을 당해 초(楚) 지방으로 유배되어 객지를 떠돌았던 굴원(屈原)을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고향을 떠난 나그네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제왕(齊王) : 전횡(田橫)을 가리킨다.
되레 …… 선사하네 : 떠나가는 사람을 전송하면서 공을 세우라고 권면한다는 뜻이다. 이정(離亭)은 길가에 있는 역정(驛亭)인데, 멀리 떠나는 사람과의 작별은 주로 역정에서 이뤄지므로 이를 이정이라고도 한다. 옛날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사회(士會)가 진(秦)나라에 망명하였는데, 진(晉)나라에서는 사회가 진(秦)나라에 쓰일까 염려한 나머지, 계책을 써서 사회를 다시 진(晉)나라로 유인하여 갔다. 이때 진(秦)나라의 대부(大夫)인 요조(繞朝)가 사회와 작별할 때 말채찍을 주며 말하기를 “그대는 진(秦)나라에 인물이 없다고 이르지 마라. 나의 계책이 마침 쓰이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文公13年》 요조가 사회에게 준 말채찍은 계책(計策)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나, 후대의 시문에서는 떠나는 사람을 격려하는 뜻으로 흔히 쓰였다.
북평사 홍주국 을 전송하면서 겸하여 절도사로 있는 춘장 영공께 부치다 2수 〔送北評事 洪柱國 兼寄節度使春長令公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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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되어 발 가뿐히 삭방으로 나가거니 / 書記翩翩出朔方
장군 있는 막부에서 좋은 인재 얻었구나 / 將軍幕府得才良
동쪽 임해 푸른 바다 바라볼 수 있을 거고 / 東臨可以觀滄海
북쪽 가는 길은 되레 태행 넘는 것 같으리 / 北上還如度太行
행색 보면 해진 갖옷 눈 맞으며 갈 것이고 / 行色獘裘衝雨雪
격문 보면 웅대한 붓 서릿바람 일어나리 / 檄成雄筆挾風霜
머리 세어 거기 갔던 지난 일이 애처로워 / 自憐白首曾經此
벗 떠났던 옛날 일을 생각하며 한 수 읊네 / 懷舊離群賦一章
오랑캐 땅 여러 산들 북극에서 흘러오다 / 胡地群山北極來
뭉쳐서 된 장백산은 그 기세가 우뚝하네 / 結爲長白勢崔嵬
창을 열면 천년 쌓인 눈을 마주 볼 것이고 / 開窓正對千秋雪
검 잡고선 백척 높은 대에 올라 볼 것이리 / 倚劍須登百尺臺
생각건대 대장 이에 한가로운 흥 많아서 / 遙想摠戎多逸興
자주 부하 장수 불러 함께 술을 마시리라 / 數延參佐共含盃
이제부터 한해 땅에 표요 군막 있으리니 / 從今瀚海嫖姚幕
진류 완우 재주 따윈 끼지조차 못하리라 / 不數陳留阮瑀才
홍주국(洪柱國) : 1623~1680.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국경(國卿), 호는 범옹(泛翁)ㆍ죽리(竹里)이다. 1662년(현종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예조 참의, 안악 현감 등을 지냈다. 저서로 《범옹집》이 있다. 홍주국은 1667년(현종8) 6월에 사서(司書)에 임명되었고, 1668년 10월에 부수찬에 임명되었는데, 북평사로 나갔던 일은 그사이에 있었다. 《顯宗實錄 8年 6月 29日, 9年 10月 7日》
태행(太行) : 중국 하남성과 산서성 경계에 있는 산으로, 길이 험준하기로 유명하다.
이제부터 …… 있으리니 : 함경도 북변 지방에 뛰어난 장수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한해(瀚海)는 몽고의 항원산(杭爰山)에 대한 음역(音譯)이다. 한나라 때 곽거병(霍去病)이 이곳에 여섯 번 출정하여, 멀리 사막을 건너고 봉선(封禪)을 행하며 한해에 등림(登臨)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여기서는 함경도 변경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표요(嫖姚)는 한(漢)나라 무제 때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있었던 곽거병을 가리킨다. 그는 표요교위(嫖姚校尉)로 있으면서 기련산(祁連山) 주위에 있는 흉노족들을 정벌하기 위하여 여섯 차례나 출정하여 큰 공을 세워 표기장군이 되고 관군후(冠軍侯)에 봉해졌다. 《漢書 卷55 霍去病傳》 《史記 卷111 衛將軍驃騎列傳》
완우(阮瑀)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진류(陳留) 사람으로, 중국 문학사에서 이른바 건안칠자(建安七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채옹(蔡邕)의 제자로 문장이 뛰어났으며, 특히 막료로 있으면서 서기(書記)의 솜씨가 뛰어났다는 품평을 받았다. 진류는 지금의 하남성 진류현 지역이다.
정문중ㆍ신백거ㆍ유백기와 더불어 삼각산에서 놀다 젊은 시절에 지은 것이다. 〔與鄭文中申伯擧庾伯起遊三角山 少時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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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높이 하늘 속에 닿아 있거니 / 華山入太淸
깎은 듯이 삼각으로 산 이뤄졌네 / 削成有三角
이 산 본디 중국 땅에 솟아 있어서 / 本是在中州
황하 강을 누르면서 서악 되었네 / 壓河爲西嶽
거령 이에 한 번 크게 포효하고는 / 巨靈一咆哮
끌어와서 한양 북쪽에다 놓았네 / 擘來漢京北
은하수가 쏟아져서 폭포 되었고 / 銀河成瀑布
북두성은 산허리에 걸려 있다네 / 北斗挂山腹
구월 달로 바뀌면서 날씨 추워져 / 天寒九月交
초목 모두 시들어서 이미 누렇네 / 草木已黃落
가을 깊어 경물 모습 새로 바뀌매 / 高秋景物新
그림 속의 산 모습과 맞설 만하네 / 堪與畫圖敵
만리 밖에 사는 이도 찾아오는데 / 萬里尙可訪
이 산 바로 지척인 데 있는 데이랴 / 此山乃咫尺
어언간에 높은 흥취 동하거니와 / 悠然動高興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구나 / 欲止不可得
몇 사람이 서로 간에 어울리어서 / 逐呼數三人
모두 함께 사공 신던 신발 신었네 / 共着謝公屐
표표하게 티끌세상 벗어나고자 / 飄飄出塵土
넝쿨과 숲 헤치고서 가고 또 가네 / 去去穿蘿薜
승가사 절 이름 전에 들었거니와 / 僧伽久聞名
불전에는 단청의 빛 환히 비치네 / 佛殿照金碧
황혼 녘에 높은 고개 올라서서는 / 黃昏上危嶺
장안 땅을 고개 숙여 내려다보네 / 俯視長安陌
커다란 집 붉은 누각 바라보이매 / 甲第與朱樓
누가 사는 집인가를 물어보누나 / 借問誰氏宅
길 위로다 오고 가는 사람들 보니 / 道上往來人
진정 모두 녹록해서 불쌍해 뵈네 / 可憐眞碌碌
잠깐 올라왔는데도 이와 같으니 / 暫登且如此
더군다나 길이 떠난 나그네이랴 / 何況長往客
구름 오자 뭇 봉우리 어둑해지고 / 雲來衆峯陰
해 질 녘엔 하늘 반쪽 붉어지누나 / 日沒半天赤
황금 바퀴 푸른 바다 위를 구르고 / 金輪蕩滄海
어둔 색은 바위 골짝 연하였구나 / 暝色連巖壑
산 내려와 중흥사 절 향하여 가니 / 下山指中興
외길 하나 숲 사이로 길이 나 있네 / 一路出林木
손을 잡고 중흥사 문 도착을 하니 / 相攀到寺門
등불을 켜 놓은 높은 누각이 있네 / 夜燈在高閣
산승 나와 우리들이 오는 걸 보고 / 山僧出見我
우릴 맞아 상방에서 묵게 하누나 / 迎我上方宿
좋은 밤에 목침 베고 잠 푹 자고는 / 良宵正高枕
맑은 새벽 지팡이를 다시 잡았네 / 淸曉還杖策
시냇물의 양쪽 옆에 숲이 있거니 / 前林夾流水
바로 어제 올 때 지나왔던 곳이네 / 昨日所經歷
동구 모습 좋다는 중 말을 듣고는 / 僧言洞口好
길을 돌려 마음 가는 대로 가누나 / 回策任所適
가을 서리 어쩜 이리 흠씬 내렸나 / 秋霜一何多
단풍잎은 반쯤이 져 쓸쓸만 하네 / 楓葉半蕭索
시 읊으며 외론 솔에 기대 있다가 / 吟詩倚孤松
노래하며 반석 위에 앉아서 쉬네 / 放謌坐盤石
신생이야 나와 기운 서로가 맞고 / 申生氣相合
유생은 또 서로 마음 간격이 없네 / 庾生心不隔
정생은 또 이제 서로 알게 됐거니 / 鄭生新相知
예로부터 이런 낙은 없었을 거네 / 自古樂莫樂
붕우 얻은 데다 좋은 유람했으니 / 得朋且勝遊
오늘 저녁 그 어떠한 저녁이런가 / 今夕是何夕
길 가다가 민지암에 도착해 보니 / 行到閔漬巖
적막하게 옛날 성의 흔적만 있네 / 寂寞古城蹟
고개 돌려 노적봉을 올려다보니 / 回瞻露積峯
우뚝하니 만길 석벽 솟아 있구나 / 崛起萬仞壁
저 옛날의 최 장군을 생각해 보니 / 憶昔崔將軍
그 모략은 한백보다 더 뛰어났네 / 謀略過韓白
손에다가 의천검을 잡아 쥐고는 / 手中倚天劍
홍건적을 모두 쓸어 평정하였네 / 削平紅巾賊
그 사람은 떠나간 지 이미 오래고 / 斯人去已遠
장한 기운 가을빛만 홀로 남았네 / 壯氣只秋色
노니는 이 괜히 가던 걸음 멈추고 / 遊子空踟蹰
열사는 또 길게 탄식 토하는구나 / 烈士長歎息
아득하니 높이 솟은 백운대 보니 / 峨峨白雲臺
오르려고 하니 되레 겁이 나누나 / 欲上還怵惕
후회해도 소용없을까 겁나서지 / 但恐悔莫追
어찌 다리 힘이 없어 그런 거겠나 / 豈是脚無力
며칠 동안 연이어서 산 찾아와서 / 尋山連數日
얻은 바가 역시 이미 충분하거니 / 所得亦已足
하필 높은 산봉우리 꼭대기 올라 / 何必到絶頂
삶과 죽음 갈리는 데 몸을 두리오 / 付身生死域
정문중(鄭文中)ㆍ신백거(申伯擧)ㆍ유백기(庾伯起) : 정문중은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큰아들인 정심(鄭杺, 1597~1625)의 자가 문중(文中)인데, 혹 이 사람을 가리키는 듯하다. 정심은 1624년(인조2)에 진사가 되고, 그해 증광시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이 되었으나, 이듬해 역질로 세상을 떠났다. 사초(史草) 2권을 남겼다. 신백거는 신천익(愼天翊, 1592~1661)으로,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백거, 호는 소은(素隱)이며, 1615년(광해군7)에 광해군의 실정을 보고 사직, 전라도 영암에 은거하였다. 인조반정 후 홍문관과 사간원의 요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유백기는 누구인지 미상이다.
이 …… 되었네 : 중국의 오악(五嶽) 가운데 서악(西嶽)의 이름이 화산(華山)이므로 한 말이다.
거령(巨靈) : 전설에 화산(華山)을 쪼갰다고 하는 하신(河神)의 이름이다. 옛날에 산 하나가 하수(河水)를 막고 있어서 하수가 빙 돌아서 흘렀는데, 거령이 이 산을 둘로 쪼개어 하수를 곧게 흐르게 하였다고 한다.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거령이 힘차게 손바닥으로 높이 떠받들고 발바닥으로 멀리 차 버려, 하수를 흐르게 하였다.〔巨靈贔屭高掌遠蹠 以流河曲〕”라고 하였다.
모두 …… 신었네 : 산을 올라갔다는 뜻이다. 사공(謝公)은 험준한 산을 오르기를 좋아하였던 남송(南宋) 때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을 가리킨다. 사영운은 산을 유람하기를 즐겨 하였는데, 산을 오를 때에는 나막신의 앞굽을 빼고 오르고, 내려올 때에는 뒷굽을 빼고 내려왔다고 한다. 《南史 卷19 謝靈運列傳》
민지암(閔漬巖) : 북한산성의 대수구(大水口) 안쪽에 있는 위쪽은 처마 같고 아래쪽은 평상(平床)같이 생긴 바위로 민지(閔漬)가 소요하면서 놀던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민지(閔漬, 1248~1326)의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용연(龍涎), 호는 묵헌(默軒)이다. 1266년(원종7)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충선왕이 세자 때인 1290년(충렬왕16)에 세자를 따라 원나라에 가서 한림직학사(翰林直學士)의 벼슬을 받았다. 1321년(충숙왕8)에 수정승(守政丞)이 되고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세대편년절요(世代編年節要)》를 지었고, 《본국편년강목(本國編年綱目)》을 편찬하였으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저서로는 《묵헌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인(文仁)이다.
최 장군(崔將軍) : 고려의 명장인 최영(崔瑩, 1316~1388)을 가리킨다. 고려 우왕(禑王)이 1387년(우왕8)에 왜구에 대한 방비책으로 최영을 보내어 북한산의 노적봉을 중심으로 한 중흥동 일대에 석성을 수축하게 하였다.
한백(韓白) : 고대 중국의 명장(名將)인 한(漢)나라 한신(韓信)과 진(秦)나라 백기(白起)의 병칭으로, 명장 가운데 대표적으로 칭해지는 인물이다.
의천검(倚天劍) : 아주 큰 칼을 말한다. 송옥(宋玉)의 〈대언부(大言賦)〉에 이르기를 “네모난 땅을 수레로 삼고 둥근 하늘을 휘장으로 삼으매, 장검이 하늘 밖에서 번쩍인다.〔方地爲車 圓天爲蓋 長劍耿耿倚天外〕” 하였다.
변방 성에서 추위로 고생하다〔邊城苦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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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라 변경 지역 날씨 추운데 / 十月邊地寒
북녘 바람 모래자갈 말아 오누나 / 北風捲沙礫
긴 칼 잡고 외로운 성 기대어서는 / 杖劍倚孤城
높이 올라 대막 땅을 바라보누나 / 登高望大漠
삭방의 눈 음산을 다 파묻었으매 / 朔雪埋陰山
오랑캐 땅 만리 온통 하얀색이네 / 胡天萬里白
괴롭거니 다시금 또 무슨 말하랴 / 苦哉復何言
변방 땅을 떠도는 객 옷이 없구나 / 無衣征戍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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