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아무리 보고 알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들이 못 박혀 죽으신 창조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의 죽으심을 한시라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십자가로 인한 멸시 천대 희롱과 조롱 핍박과 창에 옆구리 찔리시고 보혈의 피를 다 쏟으시고 채찍을 맞음은 인류의 죄악을 다 짊어 지시고 아픈 고통을 이기시기 위하심입니다(사 53:5). 믿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고통과 멸시 천대 십자가를 감당하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구원 계획이 다 포함된 십자가 희생의 사건은 주님을 따르는 자기부인의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바울의 고백대로 라면(갈 2:20) 십자가에 저희들이 죽어 없어져서 이제 부터 세상 가운데 사는 것은 우리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신 삶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십자가의 대속하심의 원리는 날마다 죽는 회개케 하시는 은혜를 입는 것이 중요함이 내포 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자랑(고전 15:31)은 날마다 죽는 것이였습니다.
십자가를 한시라도 잊으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람은 십자가를 잊으면 변질되고 인간의 죄의 본질적인 나약함으로 타락해지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질문을 십자가에 목숨을 바쳐서 날마다 죽는 생활을 고백하려는지 답답해하실 수도 있고 십자가 고통을 즐기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잔에 참여하지 않으면(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에게 나와 상관이 없다고 셨기에 고백을 하는 것이고요(요 13:8)~🙏🏻
마땅히 감당할 믿음은 부르심을 받은 은혜의 분량대로 믿는 자들의 몫으로 주어졌습니다. 하고 안 하고 손해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예수님께는 언제나 바알에 무릎 꿇지 아니한 남은 자로 키우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롬 11:5).
믿음이 있다. 없다. 유별나게 할 필요성에 있나 하고서 생각을 하면서 판단한다면 판단을 하면서 예수님께 따지는 사람이 될 것이고 주님 앞에서 떴떴하면 이럴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고민을 한다면 양심이 뭐라 하시는지요? 그 양심이 그래도 판단하며 정죄를 한다면 평생 동안 그렇게 사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아서 천국을 가는 사람이 일 것입니다.
가서는 어떤 변화가 주어지겠습니까? 심판 주이신 예수님 앞에서 한탄할 수는 없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확실히 보여줍니다(눅 16:11-31). 🙏🏻부자는 음부에 용광로🔥가 고통스러워 견디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있는 것을 부자에게 보여주시니 물 한 방울이라도 찍어서 혀가 서늘하게 해 달라고 고민을 합니다(24절).
교회는 예수님만 나타나야 합니다. 내 것이 나타나니 타락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전국 부동산 제일로 많이 자랑 건물 자랑 목사 자랑이 아니라 예수 십자가 자랑입니다. 남녀 이성 자랑 이성없는 짐승 같은 욕구를(유 1:10) 표출하는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매스컴 자랑 그곳에서 인기 상승하는 것만이 다가 아닌 것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자리 잡고 있느냐입니다. 간단한 거지 화려하게 고급 외제 승용차로 대접받고 고급 호텔 숙박하고 비싼 음식값을 치르고 누리지만~
성도들은 전세에 사월세에 월급쟁이 생활에 빡빡한 생활을 하면서 감사하며 봉헌한 헌금이였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쓰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유다서 1:17-21 KRV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https://bible.com/bible/88/jud.1.17-21.KR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