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살아내며, 3월의 일기, 서울나들이/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책 한 권을 읽었다.
한 열흘 전쯤이나 됐을까, 같은 검찰수사관 입사동기이지만 우리 검찰조직에서는 내게 상관이 되는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최봉영국장이 내게 전화를 해왔다.
“야! 이 보리 문디야! 내가 서울 올라온 기 운제고. 근데 우예 한 번도 만나지지를 않노 말이다. 그카고 또 인사 있으면 우리 우예 될낀가도 모리는데, 우리 함도 안 보고 그냥 넘어 가뿌만 진짜로 운제 또 함 만나 볼끼고? 안 그러나 일마야! 야! 멀리 갈 거도 없다. 우리 바로 오늘 고마 쐐주나 한 잔 때리뿌자!”
거두절미하고 그렇게 나를 혼냈다.
그 말대로 만나야했다.
그날로 강남전철역에서 왼쪽 국기원 들어가는 길로 들어가 곧바로 왼쪽 내리막 끝자락에 있는, 20여 년 전부터 고기 맛 때문에 틈틈이 들리던 부산삼정이라는 고깃집에서 느닷없는 번개팅이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서 우리 검찰의 현안과, 우리가 선 자리에서 스스로 챙겨 감당해가야 할 임무와, 조직의 조화로움과, 우리 후배들의 진로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했었다.
그 한 토막 한 토막 대화 때마다 술잔이 한 순배씩 돌아가다 보니 그런대로 얼큰하게 취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끝판 무렵이 되었을 때, 내 평소 술버릇대로 이렇게 2차를 권했다.
“생맥주로 입가심이나 하지 뭐.”
내 그 권함에 최국장의 응대는 딱 부러지게 거절이었다.
이랬다.
“야! 야! 니는 안죽도 술버릇 못 고쳤나? 건강 좀 생각해라, 건강! 내도 솔직히 마음이야 한 잔 더하고는 싶지만, 대구서 마누라가 올라와 기다리고 있어서 오늘은 안 되겠다. 그 대신, 내 니한테 줄 선물이 하나 있다.”
그러면서 내 손에 쥐어준 것은 책 한 권이었다.
책을 받아드는 내게 최국장은 한마디 더 보태고 있었다.
이랬다.
“오늘 이쯤에서 파토되어서 집에 일찍 들어가게 됐으니, 그 책이나 한 번 읽어봐라. 우리 마누라가 보고는 내용이 디기 좋다카더라. 눈물을 철철 흘리가민서 읽었다나 뭐라나 카더라꼬.”
그 말에 내 이리 답했다.
“고맙다. 오늘로 다 읽을게.”
그때 받아들고 온 책이 칼럼니스트 미치 앨봄이 쓴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었다.
약속한대로 그 밤으로 다 읽었다.
감동이 하도 깊어서, 도중에 멈출 수가 없어서였다.
최국장 부인이 그랬다는 것처럼, 나 역시 눈물을 철철 흘려가면서 읽었다.
책은 루비가든 이라는 놀이공원에서 ‘놀이공원 할아버지’로 불리면서 정비공으로 일하고 있던 노인 에디가 그의 83번째 생일날 놀이공원 이곳저곳을 순찰하던 중, 고공낙하 놀이기구인 프레디낙하 기구가 막 추락 직전에 있는 현장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에디는 그 기구가 떨어지면 닿을 만한 지점에 콧물을 질질 흘리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자애가 쓰러져 엄마를 찾으면서 울어대는 것을 보고 그 소녀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뒤이어 추락한 그 기구에 치여 죽음을 맞이한다.
바로 그 육신적 죽음의 순간은, 에디에게는 또 다른 시작의 순간이었다.
곧 천국으로 향하는 첫발걸음이었다.
그렇게 에디의 영혼이 천국에 이르기까지에 경험하게 되는, 다섯의 또 다른 영혼들과의 만남, 그 과정이 바로 이 책의 줄거리였다.
첫 번째는 파란사내와의 만남이다.
이 사람은 어릴 때 아버지한테 혼나는 것이 무서워 오줌을 싸게 된 것이 원인이 되어 신경안정을 위해 일종의 독약인 질산은을 복용하게 되는데, 이것을 너무 많이 복용하다가 그 부작용으로 몸의 색깔이 파래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에디가 일곱 살 때에 바로 에디의 아버지가 역시 정비공으로 일했던 루비가든 에서 ‘북극으로부터 온 파란사내’라는 별칭으로 사람의 눈요기꺼리로 등장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에 에디가 야구공을 주우려고 자동차 도로를 느닷없이 가로질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침 그곳을 승용차를 몰고 지나가던 파란사내가 에디를 피하려고 하다가 쭉 미끄러지면서 다른 차와 부딪쳐 죽게 된 것을 알게 된다.
에디는 여기서 인연의 우연성과 끝없음을 깨우친다.
두 번째는 에디가 군인으로서 필리핀전투에 참가했을 때 직속상관이었던 대위와의 만남이다.
에디와 대위를 비롯한 부대원들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개머리판으로 머리가 깨지도록 얻어터지는 등 모진 학대를 당하다가 에디가 루비가든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공 던져 받기 묘기에 눈이 팔린 일본군 초병들을 처치한 후 화염방사기로 막사 등을 불태우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앞서가던 대위가 지뢰를 밟아 사지가 찢겨지면서 그 대위는 희생적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때 대위는 에디에게 이렇게 말한다.
“희생? 자네도 희생했고 나도 희생 했어 그러나 자네는 희생하고 나서 분노를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어. 도리어 갈망했지. 그것이 자네의 희생과 나의 희생의 차이야”
에디는 여기서 희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친다.
세 번째는 어느 식당 창문을 통하여 그 식당 안 한구석에서 시거를 피워 문 아버지와의 만남이다.
에디의 아버지는 에디 보다 앞서 루비가든의 정비공 일을 했었는데, 에디는 늘 언젠가는 그 아버지가 영웅적 모습으로 변신할 것임을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에디의 그 기대와는 달리 놀음판에만 돌아다니고, 담배를 끝임없이 피워대며, 술고래이고, 맨날 쥐어박기만 하여, 에디는 드디어 아버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에디는 아버지의 허락 없이 군에 자원입대하였다가 다리가 잘린 상이용사로 돌아왔다고 하여 아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 아버지가 미웠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그 후 어느 날, 에디의 아버지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모래를 한 입 문채 죽은 시신으로 발견된다.
작은 영웅이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그렇게 구차했으니, 에디로서는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으로 가득 찬 에디에게 루비가든의 주인인 루비가 나타나 에디가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준다.
그 순간과 마주한 에디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직장으로 향하다가 공구를 빠뜨린 것을 알고 집으로 되돌아온 아버지의 시선에는 아버지의 친구인 이웃집 아저씨 미키가 어머니를 겁탈 하려는 순간이 잡혔고, 그 순간을 들킨 미키가 도망가다가 방파제에서 바다로 떨어지게 됐고, 그래서 허우적거리는 미키의 모습을 한참을 보던 아버지가, 그 바다로 뛰어 들어가 익사 직전의 미키는 구해내고 자신은 기진맥진하여 모래를 한입 물고 죽게 된 것을 알게 된다.
에디가 어릴 적에 그렇게도 원했던 작은 영웅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으신 아버지의 실상을 이제야 알고는 오열한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렇게 목 터지게 불러도 그 목소리가 전달되어가지 않는다.
에디는 여기서 용서의 의미를 깨우친다.
네 번째는 에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 아내 마거릿과의 만남이다.
“씁쓸한 일과 달콤한 일을 위해 사탕 하나 드실래요?”
마거릿은 그렇게 속삭이듯이 다가왔다.
서로 얼마나 사랑했으면 놀이동산 정비공 품새 정도 밖에 안 되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다고할 만한 결혼식으로 마거릿을 즐겁게 해줬었다.
그러한 아내 마거릿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그 교통사고는 친구 노엘과 같이 경마에 미쳐 있던 에디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에디가 있는 경마장까지 차를 몰고 오다가, 거리의 건달들이 심심풀이로 하던 벽돌던지기 장난 때문에 일어난 사고였고, 그 사고가 결국 아내 마거릿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 것이란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여기에서 에디는 아내에 대한 사랑의 깊은 의미를 다시 느낀다.
다섯 번째는 얼굴, 어깨, 팔, 다리 할 것 없이 온 몸뚱어리에 화상을 잔뜩 입은 어린 소녀와의 만남이다.
그 소녀와 대화과정에서 그 소녀는 에디가 필리핀 전투 시 일본군 막사를 화염방사기로 불지를 때, 그 막사 안에 얼핏 눈 안에 들어왔다 사라져 버렸던, 그래서 지금까지 그 움직임이 무엇이었는지 늘 궁금했던 그 존재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에디가 프레디낙하 기구가 추락하면서 마지막으로 손을 잡아 구해줄려고 했던 소녀가 또 바로 그 소녀였음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에디의 영혼은 진정한 화해의 의미를 담고 가벼운 발길로 천국으로 향하게 된다.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고, 하여튼 또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 한 권 또 읽었다.//
18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31년 9개월을 몸담고 있었던 검찰을 떠나기로 작정했던 그 즈음인 2005년 6월에, 검찰 내부통신망인 e-pros에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라는 제목을 붙여 마지막으로 게시했던 글이다.
또 서울나들이를 했다.
지난주 금요일인 2023년 3월 24일의 일이다.
어지럼증으로 진단을 받은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를 들러 경과를 확인해봐야 했고, 송파여성문화회관 김경아 관장의 초대로 플라멩코 공연에도 발걸음 해야 했고, 빠뜨릴 수 없는 결혼식에도 참석을 해야 하는 등, 챙겨야 할 일이 많아서 사흘 일정으로 서울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맨 먼저 들른 곳은 오후 3시 10분으로 예약이 되어 있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였다.
심장 쪽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음 일정은 플라멩코 공연이 있는 송파여성문화회관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오후 7시 30분이어서, 그 사이에 여유시간이 꽤나 많이 남아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곳이 석촌호수였다.
송파여성문화회관의 인근이서 석촌호수의 풍경도 즐기고, 걷기도 할 겸해서 그 호수를 찾아갔다.
벚꽃이 막 피기 시작했고, 그 풍경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와 아내도 그 사람들과 어울려, 호수의 동쪽과 서쪽 둘레를 돌았다.
그러던 중에, 어디선가 함성이 들리는 곳이 있었다.
서쪽 호수의 중앙에 70여m 높이로 높다랗게 세워진 롯데월드의 놀이기구 ‘자이로드롭’(Gyro Drop)에서 나오는 함성이었다.
그 함성을 들으며, 나는 문득 지난날에 내 가슴에 깊은 감동으로 담겼던, 미치 앨봄의 소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