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살아내며, 3월의 일기, 서울나들이/we shall overcome
1963년 8월 28일 오전,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는 20만 명의 군중이 모였다. 노예해방 100주년과 링컨의 기념일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1,514대의 버스와 21편의 열차가 동원됐지만, 반 수 이상의 가난한 흑인들은 자신들의 대표와 함께 고향에서부터 걸어서 행진해온 이른바 시민 권리행진(civil rights rally)을 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킹 목사의 연설이 끝나자 운동권 가수들이 등장해 집회 참석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밥 딜런, 존 바에즈, 그룹 피터 폴 앤 매리, 해리 벨라폰테, 마할리아 잭슨 등 쟁쟁한 가수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밥 딜런이 <초라한 보병>을, 피터 폴 앤 매리가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부르고, 이윽고 존 바에즈가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자, 20만 명의 군중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20만 명의 합창, 바로 그 위대한 노래! 우린 승리하리라. ‘we shall overcome’이었다.
워싱턴 대행진과 이듬해 소위 ‘자유의 여름’으로 불리는 프리덤 라이드(freedom Ride) 운동의 결과, 1964년 케네디의 뒤를 이은 존슨이 흑인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민권법’에 서명함으로서, 그렇게도 목 놓아 부르던 ‘we shall overcome’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워싱턴 대행진의 주제가이자 피날레였던 ‘we shall overcome’은, 그 이후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향한 저항가요의 대명사가 되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카카오스토리 ‘윤홍규 파란돌’에서 인용한 글이다.
그 글 덕분에, 미국의 반전 포크가수 존 바에즈(Joan Baez)의 그 한 일과, 그녀가 부른 ‘we shall overcome’이라는 그 노래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됐다.
종로길이 꽉 찼다.
인파로 그랬다.
2023년 3월 25일 토요일 오후 4시쯤의 일로, 차도도 사람으로 꽉 찼고, 인도도 사람으로 꽉 찼다.
차도에는 ‘내려라 공공요금 올려라 최저임금’이라는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들로 그랬고, 인도에는 로또 복권을 사겠다는 꾼들로 그랬다.
다 좋다.
자기 멋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풍경이 하나 있었다.
현직 대통령의 모형을 트럭 위에 올려놓고, 그를 향해 도끼를 내리 찍듯 해놓은 풍경이 그랬다.
도가 지나쳤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다.
그런 그를 그렇게 모욕해도 되는지 의문이 갔다.
그때 문득 떠오른 노래가 바로 ‘we shall overcome’ 그 노래였다.
그때 그들은 진정한 승리를 이뤄냈지만, 종로를 꽉 채운 그들은 과연 무엇과 다퉈 승리를 이뤄내려고 그러는 것인지, 참으로 씁쓸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