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화려한 꽃소식과 달리 어둠이 깔린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는 계절을 떠나지 못하는 겨울바람이 마지막 안간힘을 쓰며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 삭풍을 피할 길 없는 횡한 아스팔트 위에는 2,300명쯤으로 보이는 한무리의 군중들이 모여있었다.
고흥 보성 장흥 강진에서 벌어진 민주당 경선에서 문금주 후보 관계자 측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흥 지역 권리당원 명부가 유출돼 경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민주당의 대오각성과함께 이 사건의 전모와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기 위해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는 그물을 버리고 씨앗을 심던 농부는 호미와 삽을 버리고 올라온 것이다.
명목상 집회였지만 그 흔한 운동권이나 노동계에서 즐겨부르는 노래 한소절, 극단적 구호 한마디없이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절박한 심정으로 왕궁 앞에서 신문고를 치는 순박한 백성의 모습과 흡사했다.
머리가 히끗한 촌로가 내 손을 잡고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리가 경선에서 졌다고 심술부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디 고것이 아니라 경선이 끝난 다음날 문금주 후보측으로 추정되는 사람 집에서 고흥군 민주당 당원명부가 발각되었다는디 어찌끄름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될 당원명부가 그들 손에 버젓이 가지고 있었는지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싶고 이런 진흙탕같은 선거로 인해 우리 아까운 김승남 후보가 희생양이 되서 쓰까라 문금주 측은 이걸갖고 우리 김승남 후보측의 정치공작이라고 했는가 본디 정치공작을 하도 안 헐 의원님이지만 할라믄 경선때 써묵어야재 경선이 끝나고 머할라고 그란다요 말도 안되는 소리재라"
그 이후로도 만난 몇 명의 집회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원명부유출에 대해 마음 속에 있는 격정을 쏟아냈다. 아울러 "지금까정 찐으로다가 농어촌을 위하는 의원나리는 김승남 의원 한명이었재라"는 말과 함께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민심의 역풍을 우려했는지 자당의 자산인 정우택 의원과 도태우 의원의 언행을 문제삼아 후보사퇴를 시켰다. 민주당 역시 경선에서 승리한 정봉주 후보를 컷오프시키는 과단성을 보였다.
당원명단 유출은 선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로 민주당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텅이에 몰아넣는 자해행위다. 나아가 민주주의 근간을 헤치는 중차대한 일이기도해 선거법에서도 무겁게 다루고 있는 사안이다.
신문기사에 의하면 문금주 후보는 당원명부유출건에 대해"도당위원장 지낸 김 의원이 당원 명부 더 많이 확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더 많이 확보했을 것"이라는 의미는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이 당원명단을 확보했다고 자인하는 것과 아무런 근거없이 김승남 후보자도 당연히 그런 일탈을 했을것이라는 일방적 주장으로 읽힌다.
김승남 후보는 전남도당위원장을 지냈지만 원칙에 입각해 일체의 권리당원명부를 확보하지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도 하고 못본 척,못 들은 척도 하고살라는 말을 전할 정도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로는 누군가의 이름앞에 '바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위대한 노무현을 기리는 방식이다.
우직하게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손해가는 일이라도 해야할 일을 주저하지않는 김승남 의원을 나는 제 2의 바보라 칭한다.
민주당이 지지율 하락을 걱정해 당원명부 유출사건을 한낱 헤프닝으로 간주하고 넘어간다면 민주당은 감당하기 어려운 직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
2013년 대선당시 이재명 대표는 "같은 편이라고 잘못을 덮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려면 잘못을 과감히 드러내고 용서를 구한뒤에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권리당원명부 불법유출 의혹이 민주당 정체성을 가늠해볼 수 좋은 기회다.
어둠이 깊어가고 추위를 피해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 한곳에 모여있을 때 백발의 신사 김종규 원장이 선창하고 군중들이 따라하는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가 민주당 당사에 잔잔하게 울려퍼졌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 노래 한소절은 그 어떤 웅변이나 외침보다 가슴을 울렸다.
썩은 나뭇가지를 잘라내야 새싹이 돋고 꽃이 핀다.
누구를 막론하고 경선에서 승리하기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않는 자가 선택받는 다면 우리가 그토록 외치고 갈구했던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헛구호에 그치고만다.
집회 참석자들이 탄 버스가 떠나는 걸 보고나서야 여의도를 떠나왔다.
작은 외마디 함성을 외치고자 일상을 내팽게치고 올라온 동지들을 바라보니 내 마음 속에는 피보다 붉은 동백이 피어나 붉은 눈물로 나를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