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적을 기록하고 회포를 서술하여 북평사로 있는 박덕일 길응 에게 주다〔記行述懷贈北評事朴德一 吉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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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에 북막으로 부임했을 때 / 昔余赴北幕
팔월 달에 서울 땅을 하직하였지 / 八月辭京都
당에 올라 어머님께 절을 올리고 / 上堂拜慈親
문을 나서 채찍 치며 길을 갔었지 / 出門鞭驪駒
그때 종제 술 단지를 차고 나와서 / 從弟佩壺酒
동대문서 가는 나를 전별하였지 / 東門來別余
그 술을 다 마시고는 헤어진 뒤에 / 酒罷解袂去
멀고도 먼 길에 올라 가고 또 갔지 / 行行指長途
양문에서 말 마구간 지날 적에는 / 梁門過厩置
가을비 와 내가 갈 길 질척거렸지 / 秋雨泥我塗
회양 고을 지세 아주 가팔랐거니 / 淮陽地之脊
고을 이에 산기슭에 기대 있었지 / 縣邑憑山居
객사 벽에 사상 지은 시가 있는데 / 壁有沙相詩
그 필세는 형무조차 능가하였지 / 筆勢凌衡巫
내 일찍이 들었거니 동해 넘칠 때 / 曾聞東海溢
해약 이에 그 경거를 훔쳤다 했지 / 海若偷瓊琚
맑은 새벽 철령 고개 넘어갔는데 / 淸晨踰鐡嶺
아득 높은 고갯길이 서려 있었지 / 鳥道爭盤紆
고개 넘어 삼십 리를 내려가는데 / 下嶺三十里
수목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지 / 樹木正扶踈
안변 고을 철령 고개 아래에 있어 / 安邊在嶺底
북로 고을 중에 첫째 고을이었지 / 北路州郡初
덕원에서 옛 자취를 찾아봤더니 / 德源訪遺迹
동네 이름 용주리라 부른다 했지 / 里名名湧珠
도조께서 화가하기 전에 살던 곳 / 度祖未化家
이 마을이 이에 바로 그 터라 했지 / 此里乃其墟
하늘에서 신손에게 명 내렸으매 / 天命在神孫
태조 이에 녹도 적힌 글에 응했지 / 太祖應籙圖
손에다가 삼척수의 검을 잡고서 / 手提三尺劍
질타하며 난신적자 제거하였지 / 叱咤昏亂除
크고도 큰 용흥강의 강가에 서서 / 龍興大江上
맘 처연히 바라보며 머뭇거렸지 / 悵望却踟蹰
함흥 고을 하나의 큰 도회지거니 / 咸興一都會
누관 모습 어쩜 그리 크고 컸던가 / 樓觀何渠渠
아래에는 만세교란 다리 있는데 / 下有萬歲橋
그 길이가 십 리도 또 넘는다 했지 / 十里頗有餘
다리 위론 수레와 말 다 모여들고 / 橋頭車馬簇
시장에선 맛이 좋은 술을 팔았지 / 市上美酒沽
빛나고도 빛이 나는 풍패 고을에 / 赫赫豐沛邑
곱디고운 연조 땅의 미녀 있었지 / 盈盈燕趙姝
채찍 치며 함관령의 고개 넘자니 / 着鞭越咸關
꼬불꼬불 고개 몹시 험난하였지 / 羊腸甚崎嶇
청해에는 시중대란 누대 있는데 / 靑海侍中臺
푸른 솔이 만 그루나 우거졌었지 / 蒼松森萬株
이성에서 바닷가의 길 따라가며 / 利城遵海畔
어지러이 나는 물새 바라보았지 / 泛泛觀鷖鳧
함경남도 곳곳을 다 둘러보고서 / 歷覽南道盡
성진 향해 나의 말을 몰아갔었지 / 城津余馬驅
절반 정도 오랑캐에 속한 백두산 / 白頭半胡地
아득 멀리 하늘 한쪽 솟아 있었지 / 峩峩天一隅
그 산 꺾여 장백산이 되었거니와 / 折爲長白山
동쪽 향해 뻗은 형세 내닫듯 했지 / 東來勢若趍
마천령과 마운령의 두 고개 있어 / 天雲兩嶺起
만길 높이 북두성에 꽂혀 있었지 / 萬仞揷斗樞
단천 길주 고을 사이 서려 있거니 / 磅礴端吉間
조화옹의 솜씨 정말 웅대했었지 / 雄哉造化爐
고개 올라 긴 칼 잡고 기대어 서자 / 登臨倚長劍
아득 멀리 적소가 다 바라보였지 / 渺然瞰積蘇
동쪽 남쪽 푸른 바다 잇닿아 있고 / 東南受滄海
서쪽 북쪽 흉노들과 접해 있었지 / 西北邊匈奴
바람 구름 만고토록 검은빛이고 / 風雲萬古黑
북녘 기운 궁려인 양 뭉쳐 있었지 / 北氣如穹廬
대황 땅은 크고 커서 공활한 데다 / 大荒莾空濶
푸르고도 푸른 산 빛 이상도 했지 / 蒼蒼山色殊
바다 고래 바다의 문 넘어뜨리매 / 鯨魚跋海門
노한 형세 번개 우레 함께 쳤었지 / 怒勢雷霆俱
하얀 파도 푸른 하늘 접하였으며 / 白波接靑天
날리는 눈 온 천하에 흩뿌렸었지 / 飛雪洒九區
그 바닷물 일부분만 떠낸다 해도 / 酌彼一杯水
동정호의 호수 만들 수가 있었지 / 猶作洞庭湖
눈을 들어 만리 밖을 바라다보매 / 極目萬里外
삼신산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지 / 三山知有無
비록 거기 불사약이 있다고 해도 / 縱有不死藥
그 파도를 무슨 수로 넘어가리오 / 風濤安可踰
부질없이 오백 명을 보냈거니와 / 虛遣五百人
진 시황의 어리석음 비웃었었지 / 遠哂秦皇愚
시원스런 기운 구름 뚫고 솟으니 / 飄飄氣凌雲
상쾌하긴 태허 밖을 나간 듯했지 / 爽如出太虛
비록 멀리 오는 것이 괴롭다 해도 / 雖云遠行苦
장한 회포 역시 한번 펼칠 만했지 / 壯懷亦可舒
그늘이 져 음침스런 귀문관 보자 / 陰沈鬼門關
수레 가득 실린 귀신 본 듯했었지 / 怳見載一車
총림에는 비와 바람 잔뜩 쌓였고 / 叢林積風雨
괴석은 또 오도인가 의심했었지 / 恠石疑於菟
구월 달에 경성 고을 도달을 하자 / 九月到鏡城
찬 가을에 변방 풀 다 시들었었지 / 凉秋塞草枯
변방 사막 넓고 넓어 아득도 한데 / 邊沙浩茫茫
양쪽 가엔 황유나무 자라났었지 / 兩邊夾黃榆
길 가는 말 쓸쓸하게 울음을 울고 / 征馬蕭蕭鳴
변방 기럭 갈대 입에 물고 있었지 / 朔鴈已含蘆
그 땅 본디 오랑캐들 살던 데라서 / 此地本戎虜
사는 굴을 우도라고 이름 불렀지 / 巢穴呼于屠
전 시대인 고려조 때 윤 원수께서 / 前朝尹元帥
드센 자들 다 죽이고 국토 넓혔지 / 闢地驍悍誅
그분께선 이미 멀리 떠나갔으며 / 斯人去已遠
옛 대만이 쓸쓸하게 서서 있었지 / 古臺空寒蕪
초루에는 성첩 모습 장엄도 하고 / 譙樓壯粉堞
높은 누각 큰길가에 임해 있었지 / 高棟臨通衢
오랑캐 땅 미녀 옥과 같이 고운데 / 胡姫美如玉
술집 안에 비파 끌어안고 있었지 / 挾瑟當酒壚
장사들은 자류마를 타고 달리며 / 壯士躍紫騮
들판에서 토끼 여우 사냥을 했지 / 平原獵兔狐
다음 봄에 무산으로 넘어갈 적에 / 明春度茂山
길 험하여 건장한 말 몹시 지쳤지 / 路險壯馬瘏
모래자갈 날려 사람 얼굴을 치고 / 沙礫擊人面
북녘 바람 뼛골 속을 파고들었지 / 北風刮肌膚
행영 이에 육진을 다 틀어쥐었고 / 行營控六鎭
육진 서로 맞물려서 엉켜 있었지 / 犬牙相枝梧
성은 방비 엄해 밤에 딱따기 치고 / 嚴城夜擊拆
뿔피리는 애절하게 흐느꼈었지 / 畫角鳴嗚嗚
강가에는 구탈들이 늘어서 있고 / 江濱列甌脫
먼 봉수엔 외론 연기 피어올랐지 / 遠戍峯烟孤
권관이나 만호 벼슬 있는 사람들 / 權管與萬戶
허리춤에 각각 병부 차고 있었지 / 各各佩兵符
주민들은 모두 가죽옷 입었으며 / 居人盡皮服
눈은 깊고 구레나룻 많이 났었지 / 深眼多髯鬚
어둔 절벽에는 새매 깃들어 살고 / 陰崖宿蒼隼
눈 속에는 날다람쥐 주려 있었지 / 凍雪飢寒鼯
관산에서 오랫동안 나그네 되어 / 關山久爲客
몇 번이나 달에 사는 두꺼비 봤나 / 幾度見蟾蜍
본부에서 통판으로 있는 신생과 / 本府通判申
쫓겨나서 원외로다 있는 서생과 / 謫客貟外徐
수성역에 독우로다 있는 송생이 / 輸城督郵宋
서로 간에 어울려서 세월 보냈지 / 相與送居諸
객중에서 다시금 또 이별을 하니 / 客中又相離
나의 회포 뉘와 서로 즐길 것이랴 / 我懷誰與娛
이생 이에 어사 되어 이르러 오매 / 李生御史至
성 머리의 밤 까마귀 울음 들렸지 / 城頭聞夜烏
내가 이제 그대가 탄 청총마 묶고 / 繫爾靑驄馬
내게 있는 백옥호 술 함께 마시리 / 傾我白玉壺
고운 기생 아쟁 당겨 안고 있다가 / 美人抱鳴箏
봉장추의 곡을 뜯어 연주를 하네 / 彈作鳳將雛
강군 보니 북쪽에서 남쪽 그리며 / 姜君北思南
술 취하여 자고사의 노래 부르네 / 酒闌歌鷓鴣
뜻과 기운 커져 자못 호탕해지자 / 意氣頗跌宕
고양에서 술 먹던 자 우습게 보네 / 笑殺高陽徒
지난 일이 마치 어제 일과 같은데 / 往事如昨日
가는 세월 어느 사이 많이 흘렀네 / 歲月倏已徂
뜬 인생엔 삶과 죽음 있는 거기에 / 浮生有存沒
흐른 눈물 옷소매를 흠씬 적시네 / 淚下沾衣裾
박후 본디 청운 그릇감이거니와 / 朴侯靑雲器
문채롭긴 산호보다 빛이 더 곱네 / 文彩傾珊瑚
나야 본디 신분 낮은 일개 서기라 / 翩翩一書記
허리 아래 녹로검을 차고 있다네 / 腰下帶轆轤
성 동쪽서 내 그대와 이별할 적에 / 城東與君別
잠깐 동안 서서 말을 나누었었지 / 與語立須臾
우리 삼한 비록 작긴 하다지마는 / 三韓國雖小
예로부터 군사와 말 강건했다네 / 自古士馬麤
당 태종은 안시성을 함락 못했고 / 安市唐不拔
수나라 군 살수에서 고기밥 됐네 / 薩水隋爲魚
오늘날엔 우리 국토 더 넓어져서 / 國家土地大
지난날의 국토보다 더 크게 됐네 / 不特向時如
그런 데다 우리 주상 신성하시니 / 主上況神聖
당우 세상 다시 만들 수가 있으리 / 世足回唐虞
그러한즉 일개 낮은 장수를 명해 / 可命一褊將
북쪽으로 낭거서에 봉해도 되리 / 北封狼居胥
그런데 왜 저 오랑캐 두려워하여 / 胡爲畏犬羊
여러 차례 수겹장유 허비를 하나 / 屢費繡袷襦
지금 와선 공갈함을 극도로 하니 / 到今恐喝極
구렁 같은 욕심 어찌 채워 주리오 / 溪壑安能輸
임금 치욕 당할 경우 신하 죽는 법 / 主辱臣合死
매번 이를 생각하면 마음 슬퍼져 / 每念一嗚呼
한밤중에 일어나 검 쓰다듬으며 / 中夜撫劍坐
이오에서 말 내달릴 뜻을 머금네 / 有志馳伊吾
평생 품은 격앙스런 나의 속마음 / 平生激昂懷
오늘 그대 위하여서 다 털어놨네 / 今日爲君攄
그댄 속박 안 당하는 재주 있으며 / 君有不羈才
또한 옛날 사람들의 글을 읽었네 / 且讀古人書
모름지기 군사 운용 계책을 쓰매 / 須當運籌策
임기응변 손오 같길 기해야 하리 / 合變期孫吳
어찌 단지 격문 한 통 기초하여서 / 豈但草一檄
옛 원유와 이름 같길 구해서 되랴 / 名竝阬元瑜
상하 간에 서로 고락 같이해야만 / 上下同苦樂
사졸들이 자신의 몸 바치는 거네 / 士卒方捐軀
오기 장군 강한 진을 격파할 적에 / 吳起破强秦
입으로다 병졸 종기 고름 빨았고 / 卒病吮其疽
이목 장군 첨람 멸망시킬 때에는 / 李牧滅襜襤
받은 세금 다 풀어서 군사 먹였네 / 饗士軍市租
이리할 길 오늘날엔 전혀 없으매 / 此道今寂寞
옛날 일을 생각하니 탄식만 나네 / 懷古堪長吁
병마를 다 맡고 있는 이 절도사는 / 兵馬李節度
그 용략이 양저보다 더 뛰어나네 / 勇略追穰苴
그대 얻어 막빈으로 삼았거니와 / 得君爲幕賓
영웅호걸 정히 서로 잘 만난 거네 / 英豪正相須
북방 말은 눈보라에 익숙한 데다 / 北馬習風雪
북쪽 풍속 선우 따위 얕잡아 보네 / 北俗輕單于
변방 성에 건장한 자 많이 있거니 / 邊城多健兒
어깨 힘이 맹수와도 같이 세다네 / 膂力如羆貙
어렸을 때부터 활을 잘 쏘았거니 / 少小善控弦
그 기운은 낭호성을 쏘려 하였네 / 氣欲射狼弧
진정으로 사력 다할 맘 얻는다면 / 苟能得死力
동쪽 되놈 잡는 거야 뭘 걱정하리 / 何患東擒胡
한번 나가 질지 머리 참수할 건데 / 一擧斬郅支
어찌 계차 생포한 걸 논하겠는가 / 寧論捕稽且
공 이루고 연연산에 명 새기는 것 / 功成勒燕然
그게 바로 대장부가 할 일인 거네 / 此乃大丈夫
두예 장군 말을 타던 사람 아니고 / 杜預不跨馬
반초 본디 글을 읽던 유자였었네 / 班超本是儒
그댄 부디 저 옛날의 사군과 같이 / 莫學古使君
진 나부만 수레 싣고 오진 마시게 / 但載秦羅敷
길응(吉應) : 박길응(朴吉應, 1598~?)으로,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일(德一), 호는 진정재(眞靜齋)이다. 음보(蔭補)로 찰방이 되었고 1634년(인조1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정언, 지평, 사간, 집의, 승지를 역임하고 참판에 이르렀다.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성인이 되는 방법, 곧 학행일치의 법을 연마하였다. 뒤에 장현광(張顯光)을 사사하여 그가 지은 〈우주요괄(宇宙要括)〉을 상고하고 잘못된 곳을 고쳐 임금께 차기(箚記)를 붙여 올렸다. 또 안회(顔回)의 일생을 연구하고 그의 장점을 표출하여 《학안록(學顔錄)》이라 이름을 붙이고, 자기의 의견서를 첨가하여 왕에게 올려 인정을 받았다.
내가 …… 하직하였지 : 동명은 1632년(인조10)에 북평사(北評事)에 임명되었다. 북막(北幕)은 북평사를 가리킨다.
양문(梁門) :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영평(永平)에 있던 역(驛)의 이름이다. 양문(梁文)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객사(客舍) …… 있는데 : 사상(沙相)은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를 가리킨다. 이정귀가 사명(使命)을 받들고 가던 중에 회양(淮陽)에 있는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고서 지은 시를 판에 새겨 회양의 동헌(東軒)에 걸어 놓았는데, 그 시가 《월사집(月沙集)》 권17에 〈회양동헌운(淮陽東軒韻)〉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山擁重關險 江蟠二嶺長 風雲護仙窟 日月近扶桑 秋膾銀鱗細 春醪柏葉香 瓜時倘許代 吾不薄淮陽” 이 시는 당시에 명시(名詩)로 칭해져서 많은 시인들이 화운시(和韻詩)를 지어 별도로 시첩(詩帖)을 만들었으며, 이 시첩을 중국 사신 웅화(熊化)가 보고 서문을 지어 주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월사집》 권34의 웅화와 월사가 주고받은 편지와 권39의 〈회양시판중현서(淮陽詩板重懸序)〉 등에 자세하게 나온다.
형무(衡巫) : 형산(衡山)과 무산(巫山)의 병칭이다. 형산은 오악(五嶽) 가운데 남악(南嶽)인데, 산이 너무 높아서 기러기도 이 산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무산은 사천성(四川省) 무산현(巫山縣)에 있는 산으로, 열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내 …… 했지 : 회양 객사에 걸려 있던 월사의 시판(詩板)이 강화(江華)에 걸린 일이 있었으므로 한 말이다. 월사의 아들인 이명한(李明漢)의 《백주집(白洲集)》 권20 〈회양시판기사(淮陽詩板記事)〉에 “이 시판을 만력 계묘년(1603, 선조36)에 선군(先君)께서 함경도에 사명을 받들고 가다가 지어서 회양의 벽에다가 걸었는데, 을사년(1605)에 경기 관찰사로서 순시하다가 강화부에 이르렀을 때 이 시판이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회양으로 돌려주어 걸게 하고 〈회양시판중현서(淮陽詩板重懸序)〉를 지었으며, 이에 대해 여러 사람이 시를 지어 그 사실을 서술하였다. 그 뒤에 천계(天啓) 계해년(1623, 인조1)에 내가 어사가 되었을 때 그 시판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인조 16년(1638)에 강원 감사가 되어 회양에 가서 보니 시판이 없었는바, 병자호란 때 없어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해약(海若)은 바다를 주관하는 신의 이름이다. 경거(瓊琚)는 아름다운 옥인데, 흔히 상대방이 보내 준 아름다운 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용주리(湧珠里) : 덕원부에서 남쪽으로 10리 되는 곳에 있는 지명이다. 태조의 선조인 목조(穆祖)가 전주(全州)로부터 삼척(三陟)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이곳으로 이사해 살면서 익조(翼祖)를 낳았다. 익조가 다시 경흥부(慶興府)로 이사해 살다가 난리를 피하여 적도(赤島)로 들어갔으며, 적도로부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살면서 적전사(赤田社)라 이름을 고쳤다. 다시 또 함흥(咸興)의 송두등리(松頭等里)로 이사해 살면서 도조(度祖)를 낳았으며, 얼마 뒤에 도로 적전으로 돌아와서 살았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49 德源都護府》
화가(化家) : 화가위국(化家爲國)으로, 집안을 변화시켜 나라로 만든다는 뜻인데, 전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녹도(籙圖) : 보록(寶籙)과 같은 말로, 도가(道家)의 부록(符籙)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미래의 일을 예언한 비결이 적혀 있다고 한다.
삼척수(三尺水) : 검(劍)을 가리키는데, 좋은 칼 빛이 가을 물 같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당나라 이하(李賀)의 〈춘방정자검자가(春坊正字劍子歌)〉에 이르기를 “선배의 칼집 속의 삼척수는, 일찍이 오 연못에 들어가서 용자를 베었다네.〔先輩匣中三尺水 曾入吳潭斬龍子〕” 하였다.
만세교(萬歲橋) : 함흥의 낙민루(樂民樓) 아래에 있는 다리이다.
연조(燕趙) 땅의 미녀 : 무녀(舞女)와 가희(歌姬)들을 가리킨다. 연과 조에는 예로부터 미녀들이 많이 난다고 한다. 고시(古詩)에 “연과 조엔 아름다운 사람 많아서 미인은 얼굴이 옥과 같다네.〔燕趙多佳人 美者顔如玉〕”라고 하였다.
함관령(咸關嶺) : 함흥부에서 동쪽으로 70리 지점에 있는 고개이다.
청해(靑海)에는 …… 있는데 : 청해는 북청(北靑)의 고호이다. 시중대(侍中臺)는 고려 때 윤관(尹瓘)이 북쪽을 정벌할 적에 머물렀던 곳인데, 주위에 솔밭이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고 한다.
적소(積蘇) : 쌓아 둔 풀 더미라는 말로, 높은 데 올라 바라보는 산천이 그와 같다는 말이다. 《열자(列子)》 〈주목왕(周穆王)〉에 “그 궁궐과 정자가 흙더미와 나뭇가리 같았다.” 하였다.
궁려(穹廬) : 몽고인들이 사는 위가 둥글고 높은 모양의 천막을 말한다.
대황(大荒) : 본디는 중국에서 아주 먼 지역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함경도 일대의 변경 지역을 말한다.
부질없이 …… 비웃었었지 : 진(秦)나라 시황(始皇)이 서복(徐福)에게 동해의 삼신산(三神山)으로 가서 불로초(不老草)를 캐 오라고 하면서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많이 데리고 가게 하였는데, 서복이 일본에 도착하여 그곳에 살면서 돌아오지 않아 일본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귀문관(鬼門關) : 함경도 경성(鏡城)에 있는 관문 이름이다. 귀문관은 본디 중국 광서성(廣西省)에 있는 변방 요새로, 산세가 험준한 데다 장려(瘴癘)가 만연하는 등 풍토가 험악하여 생환(生還)하는 자가 드물었으므로 “열에 아홉은 못 돌아오는 귀문관〔鬼門關 十人九不還〕”이라는 속요(俗謠)까지 유행했다 한다. 시문에서는 흔히 풍토가 나쁘고 지형이 험악한 먼 변경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舊唐書 卷41 地理志 嶺南道》
수레 …… 듯했었지 : 《주역(周易)》 〈규괘(睽卦) 상구(上九)〉에 “돼지가 진흙을 등에 진 것과 귀신을 수레에 가득 실은 것을 본다.〔見豕負塗 載鬼一車〕” 하였는데, 이는 흔히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함을 받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나, 여기서는 위 구절의 귀문관과 연결되어 단순히 음침스러운 모습을 표현하는 말로 쓰였다.
오도(於菟) : 호랑이의 이명(異名)인데 춘추(春秋) 시대 초(楚)나라의 방언이다. 《春秋左氏傳 宣公4年》
황유(黃楡) : 북방의 변경 지대에서 자라는 나무로, 흔히 변경의 풍광을 말할 적에 끌어다가 쓰는 나무이다. 당(唐)나라 장적(張籍)의 시 〈양주사(涼州詞)〉에 “봉림관 물 하염없이 동쪽으로 흘러가고, 백초와 황유는 예순 해를 넘겼도다.〔鳳林關裏水東流 白草黃楡六十秋〕”라는 구절이 있다.
우도(于屠) : 사람이 사는 굴혈(窟穴)을 가리키는 함경북도의 방언인 듯하다. 참고로 《시경》 〈대아(大雅) 한혁(韓奕)〉에 이르기를 “한후가 나가 노제(路祭)를 지내니, 나가서 도 땅에서 묵도다.〔韓侯出祖 出宿于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르기를 “도는 지명이다. 혹자는 ‘바로 두(杜) 땅이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우도라는 말이 사람이 사는 굴혈의 방언이라고 한다면, 《시경》의 해석도 “한후가 나가 노제를 지내니, 나가서 우도에서 묵도다.”라고 해야 할 듯하며, 주석의 해석도 수정되어야 할 듯하다.
전 …… 넓혔지 : 윤 원수(尹元帥)는 고려 예종(睿宗) 때의 장수인 윤관(尹瓘, ?~1111)을 가리킨다. 윤관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동현(同玄)이며, 시호는 처음에 문경(文景)이었으나, 후에 문숙(文肅)으로 고쳤다. 예종 때 별무반(別武班)이라는 군대를 조직해서 여진족(女眞族)이 있던 함경도 일대를 정벌하여 9성을 축조하였는데, 두만강 북쪽 7백 리에 있는 선춘령(先春嶺)이라는 고개까지 진출하여 그곳에 ‘고려의 국경’이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
자류마(紫騮馬) : 검은 색깔의 갈기에 붉은 색깔의 몸을 한 말로, 좋은 말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
구탈(甌脫) : 변경 지역에 척후병들이 기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막사를 말한다.
수성역(輸城驛)에 …… 송생(宋生) : 송생은 동명이 1632년(인조10)에 북평사(北評事)에 제수되었을 때 수성도 찰방(輸城道察訪)으로 있던 송국택(宋國澤)을 가리킨다. 송국택은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定遠君)을 원종(元宗)으로 추존하는 데 반대하다가 수성도 찰방으로 좌천되었다.
이생(李生) : 1632년(인조10)에 함경도 암행 어사가 되어 나갔던 이상질(李尙質)을 가리킨다.
청총마(靑驄馬) : 푸른색과 흰색이 뒤섞여 있는 말로, 흔히 어사(御史)나 수령(守令)들이 타는 말을 가리킨다.
백옥호(白玉壺) : 백옥병을 말한 것으로, 여기서는 아주 좋은 술을 의미한다.
봉장추(鳳將雛) : 어버이와 자식이 함께 있는 것을 노래한 옛 악곡의 이름이다. 《고악부(古樂府)》 〈농서행(隴西行)〉에 “봉황새 추추히 우는구나, 한 어미 아홉 새끼 거느리고.〔鳳凰鳴啾啾 一母將九雛〕”라고 하였다.
자고사(鷓鴣詞) : 당(唐)나라 때의 교방곡(敎坊曲) 이름이다. 〈자고사(鷓鴣辭)〉, 〈산자고(山鷓鴣)〉라고도 한다.
고양(高陽)에서 …… 자 : 술을 아주 좋아하여 모든 일에 얽매이지 않고 방탕하게 노는 사람을 뜻한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패공(沛公)으로 있으면서 군사를 이끌고 진류(陳留)를 지날 적에 역생(酈生)이 군문(軍門)에 와서 알현하기를 청하였는데, 패공의 사자(使者)가 나와서 말하기를 “패공께서 한창 천하를 경략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유인(儒人)을 볼 겨를이 없다고 하십니다.”라고 하니, 역생이 눈을 부릅뜨고 칼을 쓰다듬으면서 사자를 질타하기를 “다시 들어가서 패공에게 나는 고양의 술꾼이지 유자가 아니라고 하라.”라고 하였다. 《史記 卷97 酈生陸賈列傳》
청운(靑雲) : 현귀(顯貴)한 자리에 있는 고관(高官)을 말한다.
녹로검(轆轤劍) : 칼자루에 녹로, 즉 차륜(車輪) 형태의 옥 장식을 가한 검을 말한다. 당나라 상건(常建)의 〈장공자행(張公子行)〉에 이르기를 “협객이 흰 구름 속에 있는데, 허리춤엔 녹로검을 차고 있구나.〔俠客白雲中 腰間懸轆轤〕” 하였다.
당 태종(唐太宗)은 …… 못했고 : 안시성(安市城)은 고구려와 당나라의 경계 지점에 있던 성으로, 지금의 요동(遼東) 해성현(海城縣) 동남쪽에 있는 영성자(英城子)이다.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하다가 이곳에서 고구려의 장수에게 패하였다. 그런데 이때 싸운 안시성의 성주(城主) 이름이 정사(正史)에는 전하지 않아 상세하게 알 수가 없으나, 야사(野史)에는 양만춘(梁萬春), 또는 양만춘(楊萬春)이라 전한다. 《동춘당선생별집(同春堂先生別集)》 권6 〈경연일기(經筵日記)〉 기유년 4월 26일 조에 “상이 이르기를 ‘안시성 성주의 이름은 누구인가?’ 하니, 송준길(宋浚吉)이 아뢰기를 ‘양만춘(梁萬春)입니다. 그는 당나라 태종의 군대를 막았으니, 참으로 성을 잘 수비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라고 문답한 내용이 나온다. 《國譯 三國史記, 이병도, 을유문화사, 1977, 335쪽 주》
수(隋)나라 …… 됐네 : 고구려 영양왕 23년(612)에 수나라 양제(煬帝)의 명을 받은 우중문(于仲文)과 우문술(宇文述) 등이 고구려의 국도인 평양(平壤)으로 쳐들어오자, 을지문덕(乙支文德)이 계책을 써서 이들을 유인하여 지치게 만든 다음, 되돌아가는 수나라 군사를 추격해 살수(薩水)에서 크게 대파하였는데, 이를 살수대첩(薩水大捷)이라고 한다. 이 살수의 위치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청천강(淸川江)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이에 반해 북한(北韓)의 《조선전사》에서는 살수를 청천강이 아니라 소자하(小子河)라고 하면서 “소자하라는 강 이름의 소자(小子)는 살수(薩水)의 살(薩)이 음이 변한 것이며, 지금의 소자하 하류에는 사리채와 같이 ‘살’과 관련된 지명도 있다.”라고 하였다. 《조선전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제3권, 1979, 244쪽》
당우(唐虞) : 요 임금과 순 임금의 시대로, 태평성대를 말한다.
낭거서(狼居胥) : 중국 서쪽에 있는 오원현(五原縣)의 서북쪽에 있는 산으로, 황하의 북쪽에 있으며, 낭산(狼山)이라고도 한다. 한 효문제(漢孝文帝) 때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이 흉노를 정벌하여 크게 승리를 거두고서 낭거서산(狼居胥山)에 봉(封)하고 고연산(姑衍山)에 선(禪)한 뒤에 한해(翰海)까지 진격하였는데, 이로 인해 흉노는 멀리 도망하여 사막의 남쪽에는 흉노의 왕정(王庭)이 없었다. 《史記 卷110 匈奴列傳》
수겹장유(繡袷長襦) :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저고리로, 한나라 효문제(孝文帝) 때 한나라에서 흉노족을 무마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물품을 보내면서 황제 자신이 입고 있던 이 옷을 예물로 보내어 달래었다. 《史記 卷110 匈奴列傳》
이오(伊吾) : 이오로(伊吾盧)로,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합밀현(哈密縣)에 있는 지명인데, 한나라 때 이곳에서 흉노족과 자주 다투었다. 여기서는 오랑캐 지역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손오(孫吳) : 전국 시대의 병법가(兵法家)인 손무(孫武)와 오기(吳起)를 말한다.
원유(元瑜)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진류(陳留) 사람인 완우(阮瑀)의 자(字)이다. 중국 문학사에서 이른바 건안칠자(建安七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채옹(蔡邕)의 제자로 문장이 뛰어났고, 특히 막료로 있으면서 서기(書記)의 솜씨가 뛰어났다는 평을 받았다.
오기(吳起) …… 빨았고 : 오기는 전국 시대 위(衛)나라 사람으로 위(魏)나라에서 벼슬하였는데, 그가 장군이 되어서는 가장 낮은 사졸들과 의식(衣食)을 같이하면서 부상당한 사졸의 고름을 빨아 주는 등 동고동락하였으므로, 군사들이 싸움에 임하여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진격하였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이목(李牧) …… 먹였네 : 이목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명장이고, 첨람(襜襤)은 오랑캐 나라 이름이다. 이목이 북쪽 변방에서 흉노들과 대치하고 있을 적에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것을 다 풀어서 날마다 군사들에게 소를 잡아 먹이고 상을 내려 주면서도 흉노와 싸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군사들이 모두 흉노와 싸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일거에 흉노를 들이쳐서 흉노 10여만 기를 크게 깨뜨렸으며, 이후 첨람을 멸하고, 임호(林胡)를 깨뜨리고 장성(長城)을 쌓았는데, 그 이후로 흉노가 10여 년 동안이나 조나라 북방을 침입하지 못하였다. 《史記 卷81 李牧列傳》
이 절도사(李節度使) : 박길응(朴吉應)이 함경도 평사(咸鏡道評事)로 나간 것이 언제인지를 몰라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양저(穰苴) : 춘추 시대 제(齊)나라의 장수로, 본래의 성은 전씨(田氏)이다. 미천한 출신으로 병법에 밝아서 대사마(大司馬)가 되었으므로, 후대에는 흔히 사마양저라고 칭한다. 병서(兵書)를 남겼는데 《사마병법(司馬兵法)》으로 널리 알려졌다.
선우(單于) : 한나라 때 흉노족의 군장(君長) 칭호이다.
낭호성(狼弧星) : 낭성(狼星)과 호성(弧星)의 합칭인데, 이 두 별이 후대에는 전란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호성이 낭성을 향하고 있지 않으면 도적이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서는 오랑캐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질지(郅支) : 흉노족의 선우(單于) 가운데 한 사람인데, 한 원제(漢元帝) 때 한나라 사신(使臣)을 죽이고 반항하다가 진탕(陳湯) 등에 의해 참살(斬殺)당하였다.
계차(稽且) : 흉노족의 부족 이름이다. 한나라 때 위청(衛靑)이 흉노족을 쳐서 계차왕을 생포한 일이 있다. 《漢書 卷55 衛靑傳》
공(功) …… 것 : 오랑캐를 쳐서 큰 공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연연산(燕然山)은 몽고 지방에 있는 산으로, 항애산(杭愛山)이라고도 불린다. 후한(後漢)의 화제(和帝) 원년(89)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남선우(南單于) 및 강호(羌胡)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락산(稽落山)에서 북선우(北單于)와 싸워 크게 승리하여 연연산을 점령하고 돌아왔는데,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반고(班固)에게 명해 명(銘)을 짓게 하여 그곳에 비석을 세웠다. 《後漢書 卷23 竇憲列傳》
두예(杜預) …… 아니고 : 두예는 삼국 시대 오(吳)나라를 평정한 진(晉)나라의 명장인데, 본디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읽기를 몹시 좋아하던 학자였다. 두예는 양호(羊祜)의 뒤를 이어 군대를 맡아서는 양호가 한 것처럼 갑옷을 입지 않은 채 항상 가벼운 옷을 입고 허리띠를 느슨히 풀어놓고 있었는데도 군사들이 정제(整齊)되어 오(吳)나라를 평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晉書 卷34 杜預列傳》
반초(班超) …… 유자(儒者)였었네 : 반초는 후한(後漢) 때의 명장이다. 젊어서 집이 가난하여 문서(文書)를 서사(書寫)하는 품을 팔아 모친을 봉양하고 살았는데, 관상 보는 사람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제비의 턱이고 범의 머리이니, 만리후(萬里侯)에 봉해질 상(相)이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반초는 붓을 내던지고 떨쳐 일어나 말하기를 “장부로 태어났으면 이역(異域)에 나아가 큰 공을 세워 제후로 봉해져야 마땅하니, 어찌 이런 일에만 매달려서야 되겠는가.” 하였다. 뒤에 반초는 서역 50개국을 평정하여 그 공으로 서역 도호(西域都護)가 되고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後漢書 卷47 班超列傳》
그댄 …… 마시게 : 관직에 있는 동안 미녀만을 탐하지 말고 아름다운 정사를 펼치라는 뜻이다.
어천의 이 찰방을 전송하다〔送魚川李察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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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에는 이름난 산 많고 많지만 / 東國多名山
묘향산이 명산 중에 으뜸이라네 / 妙香山之宗
아득 높아 푸른 하늘 닿아 있는데 / 峨峨入太淸
향로봉은 특히 삐죽 솟아 있다네 / 聳出香爐峯
내가 전에 나이 아주 젊던 시절에 / 我昔少年時
관서에서 군막 속의 객이 되었네 / 關西幕中客
백상루의 누각 위에 올라가서는 / 登臨百祥樓
푸른 산 빛 멀리에서 바라보았네 / 望見蒼翠色
지금에도 아직 모습 눈 안에 있어 / 至今猶在眼
나의 맘과 기백 모두 장하게 하네 / 令人壯心魄
이생 이제 관리 되어 떠나가거니 / 李生作吏去
맡은 일은 마관직과 비슷하다네 / 其曹似是馬
그댄 부디 그 꼭대기 올라가 보게 / 君須上絶頂
올라 보면 천하 작게 보일 것일세 / 可以小天下
신인께서 단목 아래 내려왔거니 / 神人降檀木
남은 자취 사천 년의 세월 흘렀네 / 遺迹四千載
압록강은 백두산서 발원하여서 / 鴨綠發白頭
강물 흘러 바다로다 들어간다네 / 江流入于海
그 압록강 천지간에 크고도 커서 / 此江天地間
삼대수 중 하나라고 칭해진다네 / 稱爲三大水
강 동쪽은 바로 옛날 고구려이고 / 東則高勾麗
강 북쪽은 저 옛날의 숙신씨라네 / 北則肅愼氏
대황 이에 아득하여 끝이 없거니 / 大荒邈無際
누런 구름 몇 만 리나 뻗쳐 있는가 / 黃雲幾萬里
이생 본디 시에 능해 잘 짓거니와 / 李生也能詩
시를 짓는 구법 몹시 좋고도 좋네 / 詩成句法好
이번 길에 회포 녹일 수 있으리니 / 此行可遣懷
관직 낮은 거야 어찌 족히 말하리 / 官卑何足道
시 지으면 부디 내게 부쳐 보내고 / 有作寄東溟
겸하여서 용주 노인께도 보이게 / 兼示龍洲老
어천(魚川)의 이 찰방(李察訪) : 누구인지 미상이다.
내가 …… 되었네 : 1626년(인조4)에 강왈광(姜曰廣)과 왕몽윤(王夢尹) 두 조사(詔使)가 조선에 왔을 때 동명이 30세의 나이로 원접사(遠接使)로 가는 김류(金瑬)의 막하로 따라갔으므로 한 말이다.
마관(馬官) : 찰방(察訪)의 별칭이다.
신인(神人)께서 …… 흘렀네 : 단군(檀君)이 묘향산에 있는 박달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으므로 한 말이다. 옛날에 천제인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웅녀(熊女)와 결혼하여 신단수 아래에서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三國遺事 紀異篇》
삼대수(三大水) : 천하에서 크다고 하는 세 개의 강으로, 《주자어류(朱子語類)》에 이르기를 “천하에는 세 개의 큰 강이 있는데, 양자강과 황하와 혼동강(混同江)이 바로 그것이다. 혼동강은 오랑캐 땅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혼동강은 바로 압록강을 말한다. 《朱子語類 卷79 尙書 禹貢》
대황(大荒) : 본디는 중국에서 아주 먼 지역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함경도 일대의 변경 지역을 가리킨다.
용주(龍洲) : 조경(趙絅)으로,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일장(日章), 호는 용주ㆍ주봉(柱峯)ㆍ간옹(鬜翁),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인조 때 문신이며, 윤근수(尹根壽)의 문인이다. 인조반정 뒤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였다. 효종 때 청나라가 척화신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여 이경석(李景奭)과 함께 백마성(白馬城)에 안치되었다가 풀려났다. 저서로는 《용주유고(龍洲遺稿)》와 《동사록(東槎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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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집 제8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61수
유여일 도삼 이 단천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하다〔送柳汝一 道三 赴端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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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댄 보지 못하였나 / 君不見
마운 마천 두 고개가 높아 오를 수 없는데 / 雲天兩嶺鬱相望不可攀
단천이라 하는 고을 그 사이에 있는 거를 / 端川之邑居其間
단천 지역 산엔 은을 캐는 은혈 있거니와 / 端川有山是銀穴
지난 고려 시절부터 은이 산출되었다네 / 粤自前朝白金出
산을 파고 뚫은 굴이 수십 리는 뻗었기에 / 鑿山通穴數十里
가끔씩은 산 무너져 은 캐던 자 죽는다네 / 往往山崩採者死
나라에다 일천 냥씩 매년 공물 바치는데 / 歲貢國家一千兩
탐학스런 관리가 또 그걸 인해 훔쳐 먹네 / 貪吏因之又封己
이 때문에 크나큰 해 백성에게 미치거니 / 以玆大害及斯民
어찌 수령 신중하게 뽑지 않을 수 있으랴 / 胡不愼旃惟其人
유도삼(柳道三, 1609~?)으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일(汝一), 호는 경암(敬庵)이다. 1632년(인조10)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1635년에 단천 군수로 있으면서 소송을 명쾌하게 처리하고 민생을 잘 보살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효종조에 승지를 지냈다. 시를 잘 짓기로 유명하였다.
내형인 평사 정두원이 영변으로 부임하러 가는 것을 전송하다〔送內兄鄭評事 斗源 赴寧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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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 고을 땅의 형세 어쩜 그리 장하던가 / 寧邊地勢何壯哉
변방 정자 보루 요새 우뚝 높이 서려 있네 / 邊亭障塞鬱崔嵬
푸른빛의 묘향산은 천 봉우리 솟아났고 / 妙香積翠千峯出
웅장한 저 철옹산성 백장 높이 열려 있네 / 鐡甕雄城百丈開
약산 동대 영변성의 동북쪽에 서 있는데 / 藥山東臺在東北
대 앞에는 술병을 찬 객이 항상 오간다네 / 臺前常有載酒客
올라가서 한 번 보면 만리가 다 평평한데 / 登臨一望萬里平
바닷가의 어둔 구름 대막 땅에 연했으리 / 海門窮陰連大漠
이 지역의 장관 모습 천하에서 드물거니 / 此地壯觀天下稀
젊은 시절 행락 놀이 그댄 놓치지를 마소 / 少年行樂公莫違
옥장 속의 장군께선 긴 칼 기대 있을 거고 / 玉帳將軍倚長劍
청루 위의 미녀들은 깁옷 입고 춤을 추리 / 靑樓美女舞羅衣
깁옷 입은 미녀들이 그대 위해 춤을 추면 / 美女羅衣爲君舞
군중에서 술에 취해 날마다 북 두드리리 / 軍中縱酒日擊鼓
금슬 잡고 아침에는 맥상상곡 뜯을 거고 / 錦瑟朝彈陌上桑
큰소리로 밤중에는 정도호가 부르리라 / 高歌夜唱丁都護
도호가의 노랫소리 소리마다 애달거니 / 都護歌聲聲正哀
서쪽 변방 간 나그네 어느 때나 돌아오랴 / 西征遠客幾時廻
버들가지 꺾어서는 서로 주고받거니와 / 爲折柳條持相贈
부디 임기 마치고서 곧장 바로 돌아오소 / 須及瓜時歸去來
정두원(鄭斗源) : 1581~?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정숙(丁叔), 호는 호정(壺亭)으로, 정명호(鄭明湖)의 아들이다. 1616년(광해군8)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631년(인조9)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화포(火砲), 천리경(千里鏡), 자명종(自鳴鍾) 등의 현대적 기계와 함께, 신부 육약한(陸若漢, Johannes Rodorigue)에게 이마두(利瑪竇, Matteo Ricci)의 천문서(天文書)와 《직방외기(職方外記)》, 《서양국풍속기(西洋國風俗記)》, 《천문도(天文圖)》, 《홍이포제본(紅夷砲題本)》 등의 서적을 얻어 가지고 이듬해 돌아왔는데, 새로운 화약의 제조법도 이때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가 사신으로 명나라에 드나들던 17세기 초는 중국을 통하여 서양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해 올 기운이 넘칠 때이다. 그는 이에 참여한 인물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인물이다. 정두원이 평사(評事)로 나간 것은 언제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철옹산성(鐵甕山城) : 영변의 약산(藥山)에 있는 산성으로, 약산산성(藥山山城)이라고도 하는데, 둘레가 20여 리이다.
약산(藥山) : 영변부의 서쪽 8리에 있는 진산으로, 그 모양이 마치 쇠독〔鐵甕〕과 같이 생긴 천하의 요새이며, 풍경이 아주 좋아 유람객들이 많다고 한다.
대막(大漠) : 몽고고원(蒙古高原)의 큰 사막으로, 한해(瀚海), 대적(大磧) 등으로 부르기도
옥장(玉帳) : 장수가 거처하는 장막을 가리킨다.
청루(靑樓) : 푸른색으로 칠해 아름답게 장식한 누각으로, 전하여 기원(妓院)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정도호가(丁都護歌) : 악부(樂府)의 노래 이름이다. 송 고조(宋高祖) 딸의 남편인 서규(徐逵)가 노궤(魯軌)에게 피살되었는데, 고조가 도호(都護)인 정오(丁旿)에게 서규를 장사 지내도록 하였다. 그러자 서규의 처가 울부짖으며 찾아와 장례에 관한 일을 물어 볼 때마다 정 도호를 애달프게 불렀는데, 그 소리가 몹시 애절하였으므로 후대의 사람들이 이를 노래로 지어 불렀다고 한다. 《昌谷集註〉
버들가지 …… 주고받거니와 : 옛날 사람들은 이별할 적에 버들가지를 꺾어서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다.
호정을 전별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어 중흥동에서 노닐다〔別壺亭鄭斗源遊中興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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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 뗏목 타러 가는 사신을 / 朝別乘槎使
벽제관에 나아가서 떠나보냈네 / 送之碧蹄館
각자 서로 동쪽 서쪽 헤어졌거니 / 分袂各東西
눈물 흘러 마음속이 심란하였네 / 淚下心緖亂
맘속 걱정 씻으려고 기이한 곳 찾았거니 / 寫憂聊欲訪靈異
더군다나 화악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데랴 / 況乃華岳無多地
말 멈추고 멀찍이서 백운대를 바라보다 / 駐馬遙望白雲臺
말을 다시 되돌려서 중흥사를 향해 가네 / 回鞭却向中興寺
동구 들자 여기저기 수석 어지럽거니와 / 入洞縱橫亂水石
장하구나, 조화옹이 산골짜기 파내었네 / 壯哉造化之疏鑿
푸른 하늘 솟은 창칼 구름 사이 봉우리고 / 靑天劍戟雲間峯
밝은 대낮 치는 우레 절벽 사이 폭포구나 / 白日雷霆石上瀑
폭포의 물 쏟아져서 만 골짜기 흐르는데 / 瀑水噴薄萬壑交
비온 뒤라 더욱 크게 포효하는 소리 나네 / 雨後轉益聲咆哮
얕은 곳은 잔잔하여 발을 씻을 만하거니 / 淺者潺湲堪濯足
깊은 곳은 짙푸르러 교룡 있을 것만 같네 / 深者澄碧疑藏蛟
나는 평소 장관 모습 구경 좋아하였기에 / 病夫平生好奇壯
이를 보자 되레 심신 상쾌해짐 깨닫겠네 / 見此頓覺心神爽
세상의 일 끝이 없어 기약하기 어렵거니 / 世事無涯不可期
구름 산이 이 같지만 누가 능히 감상하랴 / 雲山如許誰能賞
잔을 들고 민지암을 향해 조문하거니와 / 把盃爲吊閔漬巖
나 역시도 이 뒷날에 옷깃 떨쳐 떠나가리 / 我亦他時拂衣往
호정(壺亭)을 …… 노닐다 : 호정은 정두원(鄭斗源)의 호이고, 중흥동(中興洞)은 북한산성 아래에 있는 골짜기로, 중흥사(中興寺)가 이 골짜기에 있다. 이 시는 1631년(인조9)에 지은 시인 듯하다.
화악(華岳) : 북한산의 별칭이다.
푸른 …… 폭포구나 : 이 시구에 대해서 임방(任埅)의 《수촌만록(水村漫錄)》에 이르기를 “정두경이 일찍이 관동에 가서 산 구경을 하였는데, 돌벼랑 위에 ‘푸른 하늘 솟은 창칼 구름 사이 봉우리고, 밝은 대낮 치는 우레 절벽 사이 폭포구나.〔靑天劍戟雲間峯 白日雷霆石上瀑〕’라고 한 것을 보고는 ‘이 시는 시어가 매우 아름다운데, 지은이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한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동명은 이 시에서 벼랑 위의 시구를 그대로 따다가 쓴 듯하다.
민지암(閔漬巖) : 북한산성의 대수구(大水口) 안쪽에 있는 바위로, 위쪽은 처마 같고, 아래쪽은 평상(平床)같이 묘하게 생긴 바위이다. 고려 충숙왕 때의 명재상(名宰相)인 민지(閔漬, 1248~1326)가 소요하면서 놀던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배를 타고 두미협을 내려오면서 짓다〔乘舟下斗尾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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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월악산과 강원 오대산 / 月嶽與五臺
서로 간에 거리 멀어 몇백 리라네 / 相去幾百里
두 산에서 큰 강물이 함께 발원하여서는 / 二山俱發大江源
흘러내려 오다가는 우천에 와 한수 되네 / 流到牛川爲漢水
두미 나루 좁아져서 푸른 강이 짤록한데 / 斗尾津峽束滄江
만길 되는 푸른 절벽 하늘 위로 꽂히었네 / 萬仞蒼崖揷天起
푸른 절벽 하늘 꽂혀 해와 달의 빛 어둡고 / 蒼崖揷天日月昏
모인 물들 포효하며 한 문으로 몰려드네 / 衆水咆哮爭一門
일엽편주 띄워 타고 협곡으로 내려오다 / 我乘扁舟下峽口
조화 모습 장관이라 한참 동안 바라봤네 / 壯觀造化爲之久
때는 마침 봄 하늘에 밤비 지나간 뒤라서 / 是時春天夜雨過
산봉우리 비에 씻겨 푸르른 빛 높았다네 / 峯巒雨洗靑峩峩
강가 온통 바위라서 진달래는 듬성하고 / 江邊杜鵑岩花少
골짝 속엔 교룡 살아 바람 물결 많이 이네 / 峽裡蛟龍風浪多
교룡들과 바람 물결 서로 싸우는 것 같고 / 蛟龍風浪如相戰
뱃사공은 돛 펼치고 살보다 더 빨리 가네 / 蒿師掛帆疾於箭
광릉 주변 강가 나무 안개 속에 다가오고 / 廣陵江樹霧中來
남한산성 성첩들은 구름 끝에 드러나네 / 南漢粉堞雲端見
이를 보며 흥을 타고 술잔 들어 기울이다 / 對此乘興斗酒傾
배 속에서 취해 눕자 허공 속을 가는구나 / 舟中醉臥空中行
술 깨어나 일어나서 저자도를 바라보니 / 酒醒起望楮子島
어부들이 불러 대는 노랫소리 들려오네 / 還聽漁人歌一聲
두미협(斗尾峽) : 한강 상류에 있던 지명으로, 지금의 팔당댐 부근에 있던 북한강(北漢江)과 남한강(南漢江)이 만나는 부근을 칭한다. 두미(斗尾), 두미(斗迷), 두릉(斗陵) 등으로도 칭해졌다.
충청도의 …… 발원하여서는 : 남한강은 오대산 우통수(于筒水)에서 발원하고 달천(澾川)은 속리산(俗離山)에서 발원하는데, 여기서 오대산과 월악산을 발원지라고 한 것은 남한강이 월악산 주위로 흐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우천(牛川) : 경기도 광주(廣州)에 있는 지명이다.
저자도(楮子島) : 서울의 뚝섬 위쪽과 송파나루 맞은편에 있는 섬이다.
막수가〔莫愁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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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 용흥강을 건너왔으며 / 朝渡龍興江
저녁나절 고산역에 투숙하누나 / 暮投高山驛
독우로다 있는 허군 바로 나의 친구거니 / 督郵許君是故人
술 마시며 손잡고서 오늘 저녁 즐기누나 / 開樽把臂歡今夕
독우 문채 지니어서 본디 풍류 있거니와 / 督郵文彩本風流
고운 기생 하나 있어 그 이름이 막수라네 / 貯得名姫名莫愁
하얀 이에 고운 눈썹 노래와 춤 잘하는데 / 皓齒蛾眉善歌舞
사는 집은 만세교의 머리맡에 있다누나 / 家臨萬歲橋頭住
남쪽 밭서 뽕을 따매 새하얀 손 비치거니 / 採桑南陌暎素手
정히 옛날 노씨 집의 며느리와 비슷하네 / 正似昔時盧家婦
만세교의 물은 흘러 바다로다 들어가니 / 萬歲橋水入海流
다시금 또 황하에 물 흘러가는 것만 같네 / 又似河中之水流
이런 날에 고당에서 촛불 켜고 노닐 제에 / 是日高堂夜秉燭
비단옷을 입고서는 공후 잡아 뜯는구나 / 羅衣被服彈箜篌
현 뜯으며 녹수곡의 노래 자랑하지 마소 / 絃上休誇綠水曲
동이 앞의 나 역시도 청운객의 몸이라오 / 樽前余亦靑雲客
술잔 잡고 막수 향해 물어보나니 / 把盃問莫愁
이별한 뒤 능히 나를 기억할 건가 / 別後能記否
이 뒷날에 사마장경 손을 잡고 따라오면 / 他年定隨長卿來
술집에서 봄 술 같이 마시고서 취하리라 / 會向壚頭醉春酒
막수가(莫愁歌) : 함경도 고산(高山)에 사는 막수라는 기생에게 주는 시이다.
용흥강(龍興江) : 함경남도 동부 지역의 영흥평야를 관통하여 흐르는 강이다.
고산역(高山驛) : 안변(安邊)에서 남쪽으로 70리 되는 곳에 있는 역이다.
독우(督郵)로다 있는 허군(許君) : 독우는 찰방(察訪)의 별칭이다. 허군은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으나, 허적(許𥛚, 1563~1641)이 고산 찰방을 지냈으며, 그의 문집인 《수색집(水色集)》에 막수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허적을 가리키는 듯하다.
노씨(盧氏) 집의 며느리 : 양 무제(梁武帝)의 〈하중지수가(河中之水歌)〉에 나오는 막수(莫愁)라는 이름의 여인이다. 양 무제의 시에 “하수는 동쪽으로 흐르는데, 낙양 소녀의 이름 막수였네. 열두 살이 되자 비단 짜고, 열네 살엔 누에 쳤네. 열다섯에 노씨에게 시집을 가, 열여섯에 아후 같은 아이 낳았네. 계수나무 들보에 깨끗하게 꾸민 방, 언제나 울금초 향기 감돌곤 하였네.〔河中之水向東流 洛陽女兒名莫愁 年來十二能織綺 十四採桑南陌頭 十五嫁爲盧家婦 十六生兒似阿侯 盧家蘭室桂爲梁 中有欝金蘇合香〕”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고산역의 기생과 이름이 같으므로 끌어다가 쓴 것이다.
녹수곡(綠水曲) : 악부(樂府)의 금곡(琴曲) 이름으로, 일명 〈녹수곡(淥水曲)〉이라고도 하고 〈백저가(白紵歌)〉라고도 한다.
청운객(靑雲客) : 현귀(顯貴)한 자리에 있는 고관(高官)이나 숨어 사는 선비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숨어 사는 선비를 뜻하는 말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 취하리라 : 사마장경(司馬長卿)은 한(漢)나라 때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사마상여가 일찍이 부인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고향인 성도(成都)로 돌아갔을 적에 워낙 가난했던 탓에 자기가 입고 있던 숙상구(鷫鸘裘)를 전당잡히고 술을 사서 탁문군과 함께 마시며 즐긴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허 찰방을 사마상여에, 막수를 탁문군에 비기어 막수가 허 찰방과 함께 오면 자신도 같이 술을 마실 것이라는 뜻으로 말하였다.
성진의 누각에서 김 사군을 모시고 밤에 술을 마시다〔城津樓陪金使君夜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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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께선 관직 갈려 돌아가는데 / 使君遞官歸
서기인 나 서울에서 이곳에 왔네 / 書記自京至
높고 높은 마천령의 고개 아래서 / 磨天大嶺下
말을 타고 가다 서로 만나게 됐네 / 鞍馬兩相値
만났다가 금세 다시 서로 이별하는 데다 / 相値居然復相別
더군다나 가을 기운 정히 싸늘할 때이랴 / 況乃秋氣正憀慄
뭐로 걱정 누그리나 두강의 술 있거니와 / 何以解憂有杜康
술 마실새 서산 지는 해는 아니 멈추누나 / 對飮不貸西飛日
밤이 되자 떠들면서 술잔 자주 오가는데 / 入夜喧闐亂酒籌
기생들은 술 권하면 공후 잡고 타는구나 / 胡姫勸酒彈箜篌
달은 관산 떠올라서 한해 바다 비추는데 / 月出關山照瀚海
금빛 물결 그림자가 성진루에 들어오네 / 金波影入城津樓
고래가 물 뿜어내어 흰 눈 높이 솟구치매 / 鯨魚噴浪白雪高
흥 올라서 봉래 이고 있는 자라 낚고프네 / 興來欲釣蓬萊鰲
이런 때의 광경 한번 취해 볼 만하건마는 / 此時光景堪一醉
이런 데서 송별하매 다시 눈물 떨어지네 / 此地送別更下淚
조령 고개 아득 높아 제거성에 닿았는데 / 鳥嶺崔嵬揷帝車
마천령은 그곳에서 천리도 더 떨어졌네 / 磨天此去千里餘
낙동강의 얼음 풀려 기러기가 북쪽 올 때 / 洛江氷冸鴈北徂
기러기를 통해 부디 편지 한 통 부쳐 주소 / 肯爲寄書空中無
두강(杜康) : 전설 속에 나오는, 술을 가장 처음 빚은 사람이다. 전하여 술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한해(瀚海) : 몽고의 항원산(杭爰山)에 대한 음역(音譯)이다. 한나라 때 곽거병(霍去病)이 이곳에 여섯 번 출정하여, 멀리 사막을 건너고 봉선(封禪)을 행하며 한해에 등림(登臨)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史記 卷111 衛將軍驃騎列傳》
경성에서 사냥하는 것을 보다〔鏡城觀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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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땅엔 구월에도 눈이 많이 내리기에 / 鏡城九月雪壯哉
장군께서 원수대로 사냥하러 나가시네 / 將軍出獵元帥臺
자류마는 힝힝대며 깨끗한 눈 밟고 가고 / 紫騮驕嘶踏晴雪
사냥매는 새를 쳐서 붉은 피를 흩뿌리네 / 蒼鷹擊鳥洒毛血
사냥매는 날개 쳐서 푸른 구름 위 오르고 / 蒼鷹擧翮上靑雲
장사들은 만월처럼 팽팽하게 활 당기네 / 壯士彎弓滿明月
한로들이 산 쏘다녀 동곽 토끼 죽이거니 / 韓盧騰山東郭死
세 개의 굴 있다 한들 어찌 능히 피하겠나 / 雖有三窟安能避
산 앞에는 아침나절 다시는 꿩 날지 않고 / 山前無復雉朝飛
구름 가엔 가끔 기럭 떨어지는 것 보이네 / 雲際時看鴈虛墮
온 좌중이 다 즐거워 분방한 흥 생기거니 / 四座樂極逸興生
옥잔 담긴 맛 좋은 술 다퉈 서로 기울이네 / 玉椀美酒爭相傾
술 오르자 고개 돌려 사막 쪽을 바라보니 / 酒酣回首望沙漠
북방 기운 잔뜩 서려 가축들의 떼 같구나 / 北氣鬱鬱如群畜
이곳에서 하는 사냥 진정 작고잡다하거니 / 此間田獵眞瑣瑣
그대 부디 음산 아래 가서 크게 사냥하소 / 願君大獵陰山下
어찌하면 철사로다 만든 하복 화살 구해 / 安得夏服鐡絲箭
천교가 탄 저 자백마 쏴 죽일 수 있으려나 / 射殺天驕赭白馬
자류마(紫騮馬) : 검은 색깔의 갈기에 붉은 색깔의 몸을 한 말로, 좋은 말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
한로(韓盧)들이 …… 피하겠나 : 짐승들이 모두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한로는 전국 시대 한(韓)나라에서 생산된 날랜 사냥개를 말한다. 세 개의 굴은 토끼가 뜻밖의 환난을 피하기 위하여 항상 세 개의 탈출구를 미리 파 놓는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음산(陰山) : 오늘날의 하투(河套) 이북과 대막(大漠) 이남에 있는 여러 산의 통칭으로, 흔히 중국 북방의 산들을 가리키며, 북쪽 오랑캐들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인다.
하복(夏服) : 좋은 화살의 이름이다. 《문선(文選)》에 나오는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에 이르기를 “오른쪽엔 하복의 강한 활을 차고 있고, 왼쪽에는 오호의 아로새긴 활을 찼네.〔右夏服之勁箭 左烏號之雕弓〕”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옛날에 활을 잘 쏘기로 이름났던 하예(夏羿)가 차던 전낭(箭囊)이라고도 한다.
천교(天驕) : 힘이 강성하여 마치 하늘이 놓아먹이는 것 같은 자를 말하는데, 흔히 북쪽의 호족(胡族)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한서(漢書)》 권94상 〈흉노전(匈奴傳)〉에 이르기를 “북방 오랑캐는 하늘이 낸 교만한 자들이다.〔胡者 天之驕子也〕” 하였으며, 두보(杜甫)의 〈유화문(留花門)〉 시에 이르기를 “화문 땅의 교만한 자들, 고기 먹고 호기 부리네.〔花門天驕子 飽肉氣勇決〕” 하였다.
이 절도사의 보검에 대한 노래〔李節度寶劍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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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옛날에 월왕 가진 담로라는 칼 만들 때 / 昔者越王鑄湛盧
적근산 다 파헤쳤고 야계의 물 말랐다네 / 赤菫山破邪溪涸
주조할 때 태을 신선 내려와서 보았으며 / 鑄時太乙下來觀
뇌공은 또 그 자신이 풀무질을 하였다네 / 雷公爲之親擊橐
풀리기는 봄 얼음이 녹으려는 것 같았고 / 渙如春氷勢將釋
뒤섞이긴 연못 물에 빛이 어린 것 같았네 / 渾如塘水光欲溢
찬란하긴 하늘에 별 운행하는 것 같았고 / 爛如雲霄列星行
순수하긴 연잎 사이 연꽃 솟는 듯하였네 / 粹如菡蓞芙蓉出
그 담로검 잃어버려 어디 간 줄 몰랐으며 / 此劍一去不知處
공연스레 검 이름만 월절서에 남았었네 / 空餘劍名載越絶
막부 있는 장군께서 검을 꺼내 보이는데 / 幕府將軍示我劍
방 안 가득 빛 일렁여 서릿발과 같았다네 / 滿堂動色對霜雪
연평에서 검이 변해 용 됐단 말 진짜거니 / 延平龍變信不虛
월나라 검 장군 칼집 속의 물건 되었구나 / 越劍爲君匣中物
살펴보니 적근산서 나는 주석 분명한바 / 細看分明赤山錫
천년토록 연화의 빛 바뀌지를 아니했네 / 千年不改蓮花色
벽제 기름 새로 묻혀 벽에다가 걸어 놓자 / 鸊鵜新淬掛壁上
교룡 노해 울부짖어 도깨비들 다 놀라네 / 蛟龍怒吼驚魍魎
경성 고을 성문 밖엔 하얀 산을 마주했고 / 鏡城城門對白山
장군 있는 옥장에는 칼 고리가 빛을 내네 / 將軍玉帳明月環
장군께서 술 오르자 칼을 잡고 일어나선 / 將軍酒酣按劍起
청천 기대 바닷물에 칼날 씻으려고 하네 / 欲倚靑天洗海水
바닷물은 아득 멀리 흑룡강에 닿았는데 / 海水遙連黑龍江
오랑캐들 그 강에서 말에게 물 먹인다네 / 胡兒飮馬江之涘
육진 지역 장사들은 기운 자못 드세거니 / 六鎭壯士氣頗麤
장군께서 잘 키워서 되놈 선우 잡으소서 / 願君撫養擒單于
코끼리나 물소 벤들 무슨 도움 있으리오 / 陸斷犀象復何益
간장검은 한 사람만 상대할 수 있는 거네 / 干將只是一人敵
목숨 바칠 군사 얻길 장군에게 바라노니 / 得人死力望將軍
부디 연산 향해 가서 공적비를 새기소서 / 須向燕山早勒石
담로(湛盧) : 춘추 시대 월(越)나라 왕이 가지고 있던 명검(名劍)의 이름으로, 당시 최고의 장인(匠人)인 구야자(歐冶子)가 만들었다고 한다.
적근산(赤菫山) …… 말랐다네 : 적근산은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의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구야자가 월왕을 위하여 검을 만들 적에 이곳에서 주조하였다고 한다. 일명 주포산(鑄浦山)이라고도 한다. 야계(邪溪)는 약야계(若邪溪)로, 소흥의 약야산(若邪山)에서 나온 시내의 이름이다. 월나라의 미인인 서시(西施)가 일찍이 여기에서 깁을 빨았다 하여 일명 완사계(浣紗溪)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연(蓮)의 명소(名所)이기도 했다.
태을(太乙) : 태일진군(太一眞君)이라고도 하는 신으로, 태을성(太乙星)에 살며, 천신(天神) 가운데에서 가장 존귀한 신이다. 태을성은 하늘 북쪽에 있는 별로, 병란과 재앙과 생사(生死) 따위를 맡아서 다스린다고 한다.
뇌공(雷公) : 전설상에 나오는, 우레를 주관하는 신이다.
월절서(越絶書) : 한나라 때 원경(袁庚)이 찬한 책으로, 전체가 15권으로 되어 있으며, 주나라 때의 월(越)나라의 흥망을 기록한 책이다. 혹은 자공(子貢)이 지은 책이라고도 한다.
연평(延平)에서 …… 말 : 연평은 복건성(福建省)에 있는 나루터 이름이다. 진(晉)나라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명검을 얻어 하나는 자기가 차고 하나는 장화(張華)에게 주었는데, 그 뒤에 장화가 복주(伏誅)되면서 그 칼도 없어졌다. 그 뒤 뇌환이 가지고 있던 칼을 뇌환의 아들이 차고 다니다가 연평진에 이르렀을 때, 차고 있던 칼이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면서, 없어졌던 장화의 칼과 합하여 두 마리의 용으로 변한 뒤 사라졌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월(越)나라 …… 되었구나 : 명검이 장군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이다. 옛날에 오제(五帝) 가운데 한 사람인 전욱(顓頊)에게 예영검(曳影劍)이라는 명검이 있었는데, 사방에 병란이 일어나면 이 검이 날아올라 그 방향을 가리켰으므로 이를 들고 나가 정벌하였으며, 검을 쓰지 않고 갑 속에 넣어 두면 항상 갑 속에서 용의 울음을 울고 있었다고 한다. 《拾遺記 卷1 顓頊》
연화(蓮花)의 빛 : 연화는 명검(名劍)의 이름이다. 연화의 빛은 보검에서 발하는 서늘한 빛을 말한다. 북주(北周) 유신(庾信)의 〈주거기대장군하루공신도비(周車騎大將軍賀婁公神道碑)〉에 이르기를 “각단이 손에 들렸으매 반드시 제로의 침입이 없었을 것이며, 연화검이 허리에 꽂혔으매 교룡의 기운을 잘 얻었으리.〔角端在手 必無齊魯之侵 蓮花揷腰 甚得蛟龍之氣〕”라고 하였다.
벽제(鷿鵜) 기름 : 벽제는 논병아릿과에 속하는 물새로, 이 새의 기름을 도검(刀劍)에 바르면 녹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장군 …… 내네 : 옥장(玉帳)은 장수가 거처하는 장막을 가리킨다. 이백의 〈종군행(從軍行)〉에 이르기를 “옥문관의 길에서 종군을 하고, 금미산서 오랑캐들 쫓아내누나. 피리는 매화의 곡을 불어 대고, 칼끝에 달린 고리 밝은 달 같네.〔從軍玉門道 逐虜金微山 笛奏梅花曲 刀開明月環〕”라고 하였다.
청천(靑天) …… 하네 : 남아 장부의 웅대한 영무(英武)를 펼치려고 한다는 뜻이다. 초(楚)나라 송옥(宋玉)의 〈대언부(大言賦)〉에 이르기를 “네모진 땅을 수레로 삼고, 둥근 하늘을 수레 덮개로 삼으매, 장검이 하늘 밖에서 번쩍인다.〔方地爲車 圓天爲蓋 長劍耿耿倚天外〕”라고 하였다.
흑룡강(黑龍江) : 중국 북부 지역을 흐르는 강으로, 그 주위에는 북방 오랑캐들이 거주하였다.
선우(單于) : 한나라 때 흉노족의 군장(君長) 칭호이다.
간장검(干將劍) : 옛날 오(吳)나라에 있었다고 하는 명검(名劍)이다.
부디 …… 새기소서 : 장차 오랑캐들을 물리치는 큰 공을 세우기 바란다는 뜻이다. 연산(燕山)은 연연산(燕然山)으로, 몽고 지방에 있는 산이며, 항애산(杭愛山)이라고도 불린다. 후한(後漢)의 화제(和帝) 원년(89)에 거기장군(車騎將軍) 두헌(竇憲)이 남선우(南單于) 및 강호(羌胡)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계락산(稽落山)에서 북선우(北單于)와 싸워 크게 승리하여 연연산을 점령하고 돌아왔는데,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반고(班固)에게 명해 명(銘)을 짓게 하여 새긴 비석을 그곳에 세웠다. 《後漢書 卷23 竇憲列傳》
자선 기조 가 영남을 안찰하러 가는 것을 전송하다〔送李子善 基祚 出按嶺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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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에 내가 변방 성에 있을 때 / 昔我在邊城
그댄 그때 장안성의 근처 있었네 / 君在長安陌
지금 나는 장안으로 다시 왔는데 / 今我還長安
그댄 영남 감사 되어 떠나가누나 / 君爲嶺之伯
이 세상의 이별 만남 어찌할 수 없거니와 / 世間離合奈爾何
이에 술을 권하고는 이어 길게 노래하네 / 且勸美酒仍長歌
그댄 보지 못하였나 장백산이 만리 뻗쳐 / 君不見長白山連一萬里
남쪽으로 내달려 와 조령 고개 일으킨 걸 / 走勢南來鳥嶺起
용추 폭포 한낮에도 우레 소리 울리다가 / 龍湫白日霹靂鬪
산골짜기 흘러가서 낙동강의 물이 되네 / 開闢流爲洛東水
낙동강의 줄기 따라 남도 북도 나뉘거니 / 洛東江流限南北
넘실대는 그 강한은 남쪽 나라 강기 되네 / 江漢滔滔南國紀
영남 지방 칠십 고을 바둑돌과 같거니와 / 七十列郡若碁置
땅 신령해 예로부터 선비 많이 난다 하네 / 地靈從古稱多士
은혜로운 그대 교화 감당 이을 줄 알겠고 / 知君惠化繼甘棠
장한 유람 부상 가에 임할 것이 부럽구려 / 羡君壯遊臨扶桑
탐리들은 소문 듣고 검은 인끈 풀 것이고 / 貪吏聞風解墨綬
제생들은 눈을 씻고 맑은 광채 바라보리 / 諸生拭目瞻淸光
성주께서 교화 펴매 어진 신하 얻었거니 / 聖主宣化得賢臣
전엔 홍군 있었으며 지금은 또 이군 있네 / 往年洪君今李君
그대 감을 성조 위해 축하하는 맘이지만 / 此行竊爲聖朝賀
매년마다 친구들과 헤어짐은 한스럽네 / 唯恨年年別故人
기조(基祚) : 이기조(李基祚, 1595~1653)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자선(子善), 호는 호암(浩菴)이다. 박동열(朴東說)의 문인이다. 1635년(인조13)에 경상도 관찰사로 나가 많은 치적을 쌓아 송덕비가 세워졌다. 이후 예조 판서를 지내고 함경 감사로 밀려났다가 1653년(효종4)에 공조 판서에 임명되어 돌아오던 중 김화(金化)에서 병사하였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용추(龍湫) : 조령(鳥嶺)의 아래에 있는 폭포 이름이다.
넘실대는 …… 되네 : 낙동강이 경상도의 젖줄이 된다는 뜻이다. 강한은 낙동강을 말한다. 《시경》 〈소아(小雅) 사월(四月)〉에 “넘실거리는 강한의 물, 남쪽 나라의 강기로다.〔滔滔江漢 南國之紀〕”라고 하였다.
감당(甘棠) : 어진 관리의 아름다운 정사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감사(監司)의 어진 정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주(周)나라 때 소공(召公)이 북연(北燕)에 봉해져서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쳤는데, 소공이 죽은 뒤에 백성들이 소공을 그리워해 감당나무를 감히 베지 못하면서 〈감당(甘棠)〉 시를 지어 기렸다.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부상(扶桑) : 해가 뜨는 곳에 있다는 나무 이름으로, 흔히 해가 뜨는 곳에 있는 나라인 우리나라나 일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일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탐리(貪吏)들은 …… 것이고 : 이기조가 관찰사로 내려온다는 소문을 듣고는 탐리들이 모두 겁을 먹고 벼슬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뜻이다. 검은 인끈은 수령들이 차는 인끈이다. 후한 환제(後漢桓帝) 때의 사람인 범방(范滂)이 기주(冀州)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일어났을 때 청조사(淸詔使)가 되어 안찰하게 되었는데, 그가 이르는 곳마다 죄가 있는 수령들은 그의 소문만 듣고도 인끈을 풀어 놓고 스스로 물러났다고 한다. 《後漢書 卷97 黨錮列傳 范滂》
홍군(洪君) : 홍명구(洪命耈, 1596~1637)를 가리킨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로(元老), 호는 나재(懶齋)이다. 1633년(인조11)에 경상도 관찰사에 제수되었으며, 1634년 7월에 이기조와 교체되었다.
고전번역서 > 동명집 > 동명집 제9권 > 칠언고시 > 최종정보
호남 방백을 전송하다〔送湖南方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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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댄 보지 못했는가 / 君不見
지난날에 삼한 나라 솥발처럼 있었던 때 / 昔日三韓鼎足時
장수 베고 물리치며 자웅 서로 다투던 걸 / 斬將逐北爭雄雌
그 당시에 호남 지방 백제 땅에 속했는데 / 是時湖南屬百濟
산천 형세 험고하고 용사들은 굳세었네 / 山川險阻勇士厲
지금에도 드세었던 그 유풍이 남아 있어 / 至今豪悍猶有風
한나라의 이천 섬도 능히 제압 못하였네 / 漢二千石莫能制
임금께서 공을 명해 방백으로 삼았거니 / 王命我公作方伯
공은 비록 고사하나 어찌 허락받았으랴 / 公雖固辭安可得
우리 공의 경륜 능력 초야 때에 드러났고 / 我公經綸自草萊
형제들이 나란하게 기린대에 들어갔네 / 兄弟鴈行麒麟臺
바람 파도 질타하매 발해 바다 일렁이고 / 叱咤風濤渤海動
해와 달이 씻어 내어 구름 우레 열리었네 / 洗拂日月雲雷開
맨손으로 또한 건곤 돌릴 수가 있거니와 / 赤手尙且轉乾坤
더군다나 이런 작은 지방 어찌 논하리오 / 況此小者何足論
공이시여 칼 놀림에 여지 있음 내 알거니 / 公乎公乎我知遊刃地有餘
탐리들은 겁을 먹고 창생들은 소생하리 / 黠吏慴伏蒼生蘇
휘장 걷고 백성들의 풍속 묻지 않더라도 / 不須褰帷問風俗
원문에서 베개 높이 베고 또한 투호하리 / 轅門高枕且投壺
이천 섬(二千石) : 고을의 수령을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고을 수령의 녹봉이 2000섬이었으므로 이렇게 칭한다
기린대(麒麟臺) : 기린각(麒麟閣)으로, 공신들의 화상을 모셔 놓은 전각을 말한다. 한나라 선제(宣帝) 때 미앙궁(未央宮) 안에 기린각을 짓고 곽광(霍光) 등 공신 11명의 화상을 모시어 그들의 공적을 기렸다.
칼 …… 알거니 : 맡은 바의 일을 능숙하게 잘 처리한다는 뜻이다.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하여 소를 잡는데, 문혜군에게 말하기를 “신의 칼이 19년 동안에 소를 잡아 분해한 것이 수천 마리지만, 칼날이 새로 숫돌에 갈아 놓은 것 같습니다. 그 마디는 틈이 있고 이 칼날은 무디지 않으니 무디지 않은 칼로 틈이 있는 데를 찾아 들어가면 그 칼날을 놀리는 데 있어 반드시 여지가 생깁니다.”라고 하였다.
휘장 …… 투호(投壺)하리 :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정사를 펼치지 않더라도 호남 지방이 잘 다스려질 것이라는 뜻이다. ‘휘장을 걷고 백성들의 풍속을 묻는다’는 것은, 수령이 백성들과 가까이하여 청렴한 정사를 펴는 것을 말한다. 후한 때 가종(賈琮)이 기주 자사(冀州刺史)가 되었는데, 자사가 부임할 적에는 붉은 장막을 드리우고 가는 것이 규례였다. 그러나 가종은 “자사는 멀리 보고 널리 들어서 좋고 나쁨을 규찰하여야 마땅한데, 어찌 휘장을 드리워 앞을 가려서야 되겠는가.”라고 하고는, 휘장을 걷게 하였다. 원문(轅門)은 출정 나간 장수가 주둔해 있는 군문(軍門)을 말한다. 투호는 병을 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병 속에 화살을 던져 넣는 유희로, 주로 고관들의 연회석에서 여흥으로 벌였던 놀이인데, 후한(後漢) 때 채준(祭遵)은 장군이 되었을 적에 유술(儒術)이 있는 선비들만 청하여 술을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반드시 아시(雅詩)를 노래하고 투호를 즐겼다고 한다. 《後漢書 卷31 賈琮列傳, 卷20 祭遵列傳》
난리가 끝난 뒤에 서수부에게 부치다〔亂後寄徐秀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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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에 장서기로 북변 군막 갔었을 때 / 昔掌書記北邊幕
그 당시에 그대 역시 유배를 온 객이었지 / 同時君亦爲謫客
객중에서 서로 만나 매일 서로 어울리며 / 客中相値日相過
하루라도 시를 읊지 않고 지낸 날 없었지 / 無有一日無吟哦
오월 달에 누각 올라 장백산을 바라보니 / 五月登樓望長白
산 가득한 하얀 눈에 얼음 높이 솟았었지 / 白雪滿山氷峨峨
두껀 얼음 아득 높아 변방 땅이 갈라질 때 / 層氷峨峨邊土拆
술 마음껏 마시면서 또한 맘껏 노래했지 / 無何縱飮且爲樂
다음 해에 다행히도 함께 서울 들어왔고 / 明年幸得同入洛
더군다나 남쪽 북쪽 마을에서 살았었지 / 況乃家住巷南北
팔각정의 정자 앞에 봄이 정히 깊을 때엔 / 八角亭前春正深
노소 사람 모두 모여 봄 술 주고받았었지 / 少長咸集動春酌
이 세상의 만남 이별 정해진 게 없거니와 / 世間聚散不可常
그댄 다시 충주 고을 이천 섬이 되어 갔지 / 君爲忠州二千石
이별한 뒤 서새에서 전쟁 먼지 일어나서 / 別後風塵西塞起
되놈 기병 하룻밤에 칠백 리나 들어왔지 / 胡騎一夜七百里
남한산성 성 머리서 뿔피리를 불었으며 / 南漢城頭吹畫角
남한산성 밖에서는 진영 구름 검었었지 / 南漢城外陣雲黑
여러 장수 옹병한 채 전진하지 않았는데 / 諸將擁兵莫肯前
검을 뽑아 베려 해도 나는 그럴 힘 없었지 / 拔劍欲斬我無力
내 그대와 더불어서 오합지졸 끌어모아 / 與君相議糾烏合
여사에서 손잡으매 눈물 줄줄 흘렀었지 / 旅舍握手涕橫落
빈말로는 되놈 군대 물리칠 수 없거니와 / 空談不得却秦軍
강개한 뜻 있다 한들 어찌 족히 논하리오 / 雖有慷慨何足論
임금 치욕 당한 그때 신하 죽지 못했으니 / 當年主辱臣不死
지금 와서 생각해도 부끄럽기 짝이 없네 / 至今追憶慚心魂
난리 끝난 뒤로부터 서울 떠나 있으면서 / 自從亂後辭輦轂
창강에서 와병할 새 머리 이미 희어졌네 / 滄江臥病頭已白
평생토록 썩은 쥐는 좋아하는 바 아니라 / 平生腐鼠非所嗜
늘그막에 흰 물새에 나의 마음 의탁했네 / 歲晩白鷗聊可託
문 나서면 호수와 산 눈 안으로 들어오고 / 出門湖山在眼中
문 앞에는 고기 잡는 늙은이가 오고 가네 / 門前來往釣魚翁
번거롭게 그대 내게 황금인을 묻지 말게 / 煩君莫問黃金印
이 세상서 나는 바로 장장공의 몸이라오 / 世路吾其張長公
서수부(徐秀夫) : 서정연(徐挺然, 1588~?)으로, 본관은 남양, 자는 수부, 호는 사봉(沙峰)이다. 1625년(인조3)의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전라 도사, 예조 정랑, 북평사, 태복시 정 등을 지냈다.
난리가 …… 부치다 : 이 시에 대해 김상일(金相日)은 “이 시에서 정두경은 병자호란 당시의 참담했던 사정을 추억하고, 의론이 분분한 조정을 떠나 창강(滄江)과 백구(白鷗)로 대변되는 자연과 벗하며 벼슬과는 인연을 끊고 살겠다는 다짐을 토로하고 있다. 이 시를 통하여 정두경이 조정을 떠나 강호로 대변되는 자연에 묻히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신하로서 임금을 보필하여 나라를 구하지 못하고 임금을 욕되게 한 불충에서 오는 자괴감(自愧感) 때문이며, 또 하나는 외적이 침범한 위기 상황에서도 의론만 분분한 혼탁한 정치 현실에 염증이 나서이다. 결국 동명이 정치 일선에 나가지 않은 것은 혼탁한 정치 현실이 가장 큰 이유임을 알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김상일, 東溟 鄭斗卿의 정치적 不遇와 道仙에의 경도, 한국문학연구 제15집,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1992, 293쪽》 또 남은경은 “정두경의 한거(閑居)에 대한 지향은 병자호란 직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시는 이와 관련된 그의 심회를 잘 보여 준다. 이 시에서 정두경은 장장공(張長公)이나 정자진(鄭子眞)과 같은 인물들처럼 자신의 지조를 지키며, 썩은 쥐와 같은 벼슬살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남은경, 東溟 鄭斗卿 文學의 硏究,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8, 88쪽》
장서기(掌書記) : 관찰사나 절도사의 아래에 있는 속관(屬官)으로, 문서(文書)의 작성을 담당하는 관원이다. 동명이 평사(評事)의 직에 있었으므로 한 말이다.
평생토록 …… 아니라 :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썩은 쥐’는 높은 벼슬자리를 말한다. 전국 시대 혜자(惠子)가 양(梁)나라의 재상(宰相)으로 있을 때, 혹자가 혜자에게 “장자(莊子)가 와서 당신 대신 재상이 되려고 한다.” 하였다. 그러자 혜자가 몹시 두려워하면서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장자를 찾아내게 했는데, 장자가 혜자를 찾아가서 “남방(南方)에 사는 원추(鵷鶵)라는 새는 썩은 쥐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莊子 秋水》
황금인(黃金印) : 고관이 차는 인장을 말한다.
장장공(張長公) : 당나라 사람으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9대가 한집에 모여 살면서 화목하게 지냈던 장공예(張公藝)를 가리킨다.
붓 가는 대로 써서 박백겸 형제에게 주다〔走筆贈朴伯謙兄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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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나의 나이 십칠팔 세 되었을 때 / 我昔十七八
그때 처음 사마자장 지은 글을 읽었었네 / 始讀子長書
스무 살에 붓을 들어 검부 처음 지었는데 / 二十下筆作劍賦
창주 사백 보시고선 상여 같다 칭찬했네 / 滄洲詞伯稱相如
다시금 또 수십 편의 가와 행을 지었는데 / 又作歌行數十篇
문장 좋은 대가들이 앞다투어 전하였네 / 文章巨公爭相傳
북저 선생 자리에서 양쪽 눈썹 치켜떴고 / 揚眉北渚先生座
동양도위 마주하여 손뼉 치며 좋아했네 / 抵掌東陽都尉前
내가 지은 글을 보고 악부풍이 들어 있어 / 謂余殊有樂府風
한위와도 서로 자웅 겨룰 수가 있다 했네 / 可與漢魏相爭雄
대장부가 어찌 오래 빈천하게 지내리오 / 丈夫豈可久貧賤
책상 위에 수백 권의 서책 쌓아 두었다네 / 床頭有書數百卷
십 년 동안 글 읽으며 늙는 줄도 몰랐으며 / 十年貫穿不知老
성 서쪽서 폐문하매 가을 풀이 자라났네 / 閉門城西長秋草
지금 와선 장한 생각 이룬 바가 없거니와 / 至今壯懷無所成
가소로운 뜬 이름을 어찌 족히 말하리오 / 可笑浮名何足道
그만두고 문 나서서 술집으로 향하거니 / 出門擺落向酒壚
한묵 따윈 내게 있어 뜬구름의 헛것이네 / 翰墨於我浮雲虛
영웅 협객 따르려고 검술 배워 보았지만 / 欲隨雄俠學擊劍
검술 내게 형경과는 멀다는 걸 깨달았네 / 劍術自覺荊卿踈
하사들은 나를 보고 박장대소 웃었거니 / 下士見我大笑之
이 세상서 실패하여 사람들이 깔보았네 / 此生落魄爲人欺
태항산은 높고 높아 천리마 굽 부러지니 / 太行山高天馬蹶
백락 멀리 떠났으매 누가 능히 알아주랴 / 伯樂去遠誰能知
그대 집안 형제 모두 재주 있는 선비기에 / 君家兄弟自奇士
한번 보고 허여하여 서로 어울리었다네 / 一見相許相追隨
관중 포숙 두 사람들 뼈는 이미 썩었어도 / 管鮑其人骨已朽
천년토록 지음이야 각자가 다 한때이네 / 千載知音各一時
그대 의기 천고 세월 뛰어넘음 알았거니 / 知君意氣超千古
집에 있는 황금 따위 흙과 같이 써 버렸네 / 家有黃金散如土
그대 집에 매일처럼 뭇 빈객들 모였으나 / 高堂日日會衆賓
그 빈객들 가운데서 나와 가장 친하였네 / 就中與我最相親
호로 육박 놀이할새 하얀 해는 저물었고 / 呼盧六博白日暮
한번 취할 줄만 알 뿐 어찌 가난 알았으랴 / 但知一醉安知貧
그대 마음 보았으며 / 見君心
그대 손을 잡았었네 / 握君手
어젯밤에 장안 오던 가는 비가 개었으매 / 昨夜長安細雨晴
성 머리의 봄바람은 버들가지 스치누나 / 城頭春風拂楊柳
그대에게 내 청하니 숙상구를 다시 벗어 / 請君更脫鷫鸘裘
호희 파는 한 말 술과 바꾸어다 주시게나 / 換取胡姫一斗酒
오래전에 …… 읽었었네 : 이 구절에 대해 남은경은 “이 시를 통해 정두경이 어린 시절부터 《사기》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으며, 또 이를 문학적 소재로 삼아 시 작품을 쓰길 즐겨 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남은경, 鄭斗卿 俠客詩의 內容과 意味, 한국한문학연구 제15집, 한국한문학연구회, 1992, 289쪽》
스무 …… 칭찬했네 : 창주 사백(滄洲詞伯)은 차운로(車雲輅)를 가리킨다. 강빈(姜彬)이 지은 〈동명선생언행록(東溟先生言行錄)〉에 “공은 약관의 나이에 이미 문장의 체격(體格)이 이루어졌는바, 창주 차운로가 공이 지은 사부(詞賦)를 보고는 ‘사마장경(司馬長卿)도 이보다 더 잘 지을 수는 없다.’라고 하였으므로, 공이 지은 시에 ‘창주 사백 보시고선 상여 같다 칭찬했네.〔滄洲詞伯稱相如〕’라고 한 구절이 있다.”라고 하였다.
북저(北渚) : 김류(金瑬)의 호이다.
동양도위(東陽都尉) : 선조(宣祖)의 사위인 신익성(申翊聖)을 가리킨다.
내가 …… 했네 : 한위(漢魏)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가리킨다. 악부는 시체(詩體)의 이름으로, 당초에는 악부(樂府)의 관서(官署)에서 채집한 시가(詩歌)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나, 후대에는 위진(魏晉) 시대 이후부터 당나라 때에 이르기까지 음악에 올릴 수 있는 시가들부터 악부에 나오는 옛 시의 제목을 모방한 작품들까지 모두 악부라고 통칭하였다. 동명의 작품에 대해 윤신지(尹新之)는 “정두경의 악부는 한위와 같았고, 가행은 이백(李白)이나 두보(杜甫)와 같았으며, 오칠언절구(五七言絶句) 및 근체시(近體詩)는 모두 초당(初唐)이나 성당(盛唐)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였으며, 김창협(金昌協)은 “한위의 고시(古詩)와 악부를 법받았고, 가행 장편(歌行長篇)은 이백이나 두보를 보취(步驟)하고, 율절 근체(律絶近體)는 성당을 모의(模擬)하였다.”라고 평하였다.
형경(荊卿) : 전국 시대 연(燕)나라의 자객(刺客) 형가(荊軻)를 가리킨다. 형가는 연나라의 태자 단(丹)을 위하여 진왕(秦王)을 죽이려고 갔다가 실패하고 살해되었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荊軻》
태행산(太行山)은 …… 부러지니 : 세상에 나가 뜻을 펴지 못하고 좌절되었다는 뜻이다. 태행산은 중국 하남성과 산서성 경계에 있는 산으로 길이 험준하기로 유명하다. 백거이(白居易)의 〈태항로(太行路)〉에 “태행산 길 수레를 꺾으나 그대의 마음에 비하면 평평한 길이로다.”라고 하였다.
백락(伯樂) …… 알아주랴 : 명마를 보고도 알아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대저 늙은 준마가 소금 수레를 끌고 태항산을 올라가자면 발굽은 무력하고 무릎은 꺾이며, 꼬리는 처지고 살갗은 문드러지며, 몸의 진액은 땅에 뿌려지고, 흰 땀은 줄줄 흐르는 가운데, 산비탈 중턱에서 머뭇거리며, 끌채를 등에 진 채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때 마침 백락이 그 준마를 만나게 되면, 대번에 수레에서 내려 부여잡고 통곡을 하고, 옷을 벗어서 준마를 덮어 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관중(管仲) 포숙(鮑叔) : 춘추 시대 사람으로, 서로 간에 잘 이해하면서 친하게 지냈으므로 친구 간의 우의와 신의를 지키는 사람의 대명사로 쓰인다. 관중이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세 번 싸움터에 나가서 세 번 달아났는데, 포숙은 나를 보고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고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라고 하였다. 《史記 卷62 管晏列傳》
집에 …… 버렸네 : 가산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껏 놀았다는 뜻이다. 소식(蘇軾)의 〈왕제만수재우거무창현유랑복정여오주상대오자서분오소종도강야(王齊萬秀才寓居武昌縣劉郞洑正與伍洲相對伍子胥奔吳所從渡江也)〉에 “가산을 기울여 즐거이 놀고 명을 논하지 않으니, 황금을 흩어 다 쓰는 게 바람 앞에 촛불 같아라.〔傾家取樂不論命 散盡黃金如轉燭〕”라고 하였다.
호로(呼盧) 육박(六博) : 호로는 나무로 만든 패 다섯 개를 가지고 하는 저포(樗蒲)라는 놀이를 말한다. 다섯 개의 투자마다 양면(兩面)의 한쪽에는 흑색(黑色)을 칠하고 송아지를 그렸으며, 다른 쪽에는 백색(白色)을 칠하고 꿩을 그렸는데, 이 다섯 투자를 던져서 모두 흑색을 얻으면 ‘노(盧)’라고 외친 데서 온 말이다. 육박은 주사위 놀이나 골패 노름을 말한다.
숙상구(鷫鸘裘): 한(漢)나라 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입었던 옷으로, 기러기와 비슷한 숙상이라는 새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인데, 흔히 가난한 사람이 입는 옷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사마상여가 일찍이 부인 탁문군(卓文君)과 함께 고향인 성도(成都)로 돌아갔을 적에 워낙 가난했던 탓에 자기가 입고 있던 이 숙상구를 전당 잡히고 술을 사서 탁문군과 함께 마시며 즐겼다.
호희(胡姬) : 술집에서 술을 파는 오랑캐 여자를 말하는데, 전하여 술집 작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시에서는 흔히 변경의 풍정을 그리기 위해 끌어다가 쓴다.
사냥하는 것을 보다〔觀獵관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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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는 나이 젊은 양갓집의 어떤 사내 / 隣居年少良家子
매일처럼 매를 불러 산에 사는 꿩을 잡네 / 日日呼鷹獵山雉
달리는 개 산 올랐다 다시 산을 빙빙 돌자 / 疾犬騰山復環山
동곽 사는 약은 토끼 산 앞에서 물려 죽네 / 東郭狡兎山前死
날 저물어 꿩과 토끼 손에 들고 돌아오자 / 日暮手携雉兎歸
어린아이 멀리 보다 사립문을 열어 주네 / 稚子遠望開荊扉
시골집의 동이 안에 새로 익은 술 마시곤 / 田家瓦盆醉新釀
활과 화살 벽에 걸고 매는 시렁 위에 놓네 / 弓箭掛壁鷹架上
맑은 새벽 다시 나가 들판에서 사냥하며 / 淸晨復出獵平原
함양 있는 진 정승을 안 부러워하는구나 / 不向咸陽羡秦相
동곽(東郭) …… 토끼 : 아주 날랜 토끼를 말한다.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에 “동곽에 사는 토끼인 준(㕙)이 날래고 뜀박질을 잘하여 한로(韓盧)라는 사냥개와 능력을 다투었는데, 한로가 준을 따르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함양(咸陽) 있는 진(秦) 정승 : 진나라의 정승으로 있던 이사(李斯)를 말한다. 정승으로 있던 이사가 몰락하여 사형장으로 끌려가 사형을 받기 직전에 그의 아들을 돌아보며 “사냥개와 매를 몰고 상채(上蔡)의 동문을 나가 토끼 사냥을 하고 싶어도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87 李斯列傳》
기러기를 쏘는 데 대한 노래〔射鴈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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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고을 사군께서 나를 찾아오셨는데 / 平澤使君來訪我
어린 종이 채찍 잡은 말을 타고 오시었네 / 紫馬執鞭蒼頭奴
스스로가 그 종 총을 잘 쏜다고 자랑하며 / 自矜此奴善放砲
기러기를 쏘아 안주 마련할 수 있다 하네 / 能射鴈鶩供庖厨
우리 집의 문 앞 바로 강가 언덕이거니와 / 我家門前是江岸
기러기들 논 주위에 내려와서 노닌다네 / 鴈下遊戱田之畔
웃으면서 종을 불러 총을 쏘아 잡게 하니 / 笑呼蒼頭命放砲
총성 한 번 울리이자 기러기들 흩어지네 / 砲聲一放群鴈散
기러기 떼 꽥꽥대며 남쪽 북쪽 흩어질새 / 群鴈嗈嗈散南北
그 가운데 한 기러기 날개가 뚝 부러졌네 / 就中一鴈摧六翮
파닥대며 구름 저 밖 날아가려 하다가는 / 奮飛欲向雲外去
잠깐 사이 되레 나의 눈앞으로 떨어지네 / 倏忽還從眼前落
내가 이후 돌아보고 탄식하며 말하였네 / 我顧李侯喟然嘆
그 사이에 어찌 운수 있는 것이 아니겠나 / 此豈有數存其間
천 마리의 기러기 중 살고 죽는 놈 있으니 / 千群鴈中有死生
어느 누가 울고 울지 않는 거를 논하겠나 / 已矣誰論鳴不鳴
세마가〔洗馬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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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 안의 마구간에 가두어 둔 제주도 말 / 九重天廐濟州馬
매달마다 반송지로 끌고 나가 몸 씻기네 / 每月出洗蟠松池
씻길 때엔 태복께서 친히 끌고 나가는데 / 洗時太僕親領出
북을 치고 피리 불며 대장기를 들고 가네 / 擊鼓吹角建牙旗
북과 피리 우는 속에 깃발 펄럭 나부끼며 / 鼓角淵淵旗影翻
건장하고 씩씩한 말 도성 남문 나가누나 / 蕭蕭馬出城南門
몸을 씻자 오화의 빛 피어나서 일렁이매 / 洗出五花光欲動
하늘 향해 히힝대며 총애받음 자랑하네 / 靑雲仰嘶自矜寵
천년토록 한라산에 방성의 빛 비치거니 / 千秋漢挐照房精
지난날에 원나라서 용종들을 길렀다네 / 往者胡元牧龍種
방성의 별 하늘 있고 용은 들판 있거니와 / 房精在天龍在野
지금에도 용매들은 한라산의 아래 사네 / 至今龍媒漢挐下
배를 타고 만리나 먼 바다 건너 왔거니와 / 風帆萬里渡海來
대궐 안에 들어와서 천마로다 되었다네 / 來入天門作天馬
내달리는 천마 타고 붉은 고삐 감아쥐고 / 天馬飛騰紫游韁
들고 나매 보는 자들 길가 가득 메웠었네 / 出入觀者滿路傍
옥대에서 노래를 한 한나라의 무제이고 / 玉臺絃歌漢武帝
노상에서 은총 쏟은 초나라의 장왕이네 / 露床恩寵楚莊王
슬프구나, 너는 한갓 낙양 길만 걸어가니 / 嗟爾徒行洛陽道
어느 때에 천산의 풀 한번 뜯어 먹으리오 / 何時一齕天山草
이 세상엔 곽 표요와 같은 사람 다시 없어 / 世間不見霍嫖姚
공연스레 화류마를 마구간서 늙게 하네 / 空使驊騮櫪上老
반송지(蟠松池) : 인왕산 자락에 있던 연못 이름이다.
태복(太僕) : 사복시 정(司僕寺正)을 말한다.
오화(五花) : 말의 털빛에 청색(靑色)이나 백색(白色) 등의 반문(斑文)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말은 아주 좋은 말로 친다.
방성(房星) : 이십팔수(二十八宿) 중의 하나이며, 창룡칠수(蒼龍七宿)의 네 번째 별인데, 천사(天駟) 또는 방사(房駟)라고도 한다. 말이 이 방성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서 명마가 된다고 한다. 《宋史 卷50 天文志3》
지난날에 …… 길렀다네 : 고려 때 원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제주도에서 말을 길러 바치게 하였다. 용종(龍種)은 곧 준마(駿馬)의 종자라는 뜻으로 쓴 말이다.
용매(龍媒) : 준마(駿馬)를 가리키는 말로,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천마가 왔으니, 용이 오게 될 매개이다. 창합에서 노닐며, 옥대를 보는도다.〔天馬徠 龍之媒 遊閶闔 觀玉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옥대(玉臺)에서 …… 무제(武帝)이고 : 말을 몹시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옥대는 전설 속에 나오는 천제(天帝)가 사는 곳을 말한다.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천마가 왔으니, 용이 오게 될 매개이다. 창합에서 노닐며, 옥대를 보는도다.〔天馬徠 龍之媒 遊閶闔 觀玉臺〕”라고 하였다.
노상(露床)에서 …… 장왕(莊王)이네 : 말을 몹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노상은 휘장이 없는 침상을 말한다. 초나라 장왕에게 애마가 한 필 있었는데, 무늬 있는 비단옷을 입히고 화려한 집에서 기르며 장막이 없는 침대에서 자게 하고, 대추와 말린 고기를 먹였다. 이 말이 살이 찌는 병에 걸려 죽자, 장왕은 대부(大夫)의 예로 장사 지내려고 하였는데, 우맹(優孟)이 이에 대해서 풍간(諷諫)하자, 장왕이 잘못을 뉘우치고 그만두게 하였다. 《史記 卷126 滑稽列傳 優孟》
천산(天山) : 감숙성(甘肅省) 청해(靑海)에 있는 산으로, 흉노족들이 기련산(祁連山)이라고 부르는 산이다. 흔히 서쪽 오랑캐들이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곽 표요(霍嫖姚) : 한(漢)나라 무제 때 표기장군으로 있었던 곽거병(霍去病)을 가리킨다. 그는 표요교위(嫖姚校尉)로 있으면서 기련산(祁連山) 주위에 있는 흉노족들을 정벌하기 위하여 여섯 차례나 출정하여 큰 공을 세워 표기장군(驃騎將軍)이 되고 관군후(冠軍侯)에 봉해졌다. 《漢書 卷55 霍去病傳》
화류마(驊騮馬) : 검은 색깔의 갈기에 붉은 색깔의 몸을 한 말로, 아주 좋은 말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다.
고한행 2수 〔苦寒行 二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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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 성에 겨울 깊어 날씨 몹시 춥거니와 / 邊城暮冬氣慘慄
만 구멍의 노한 소리 거센 바람 불어오네 / 萬竅怒號風木拔
부는 바람 먼 북해서 휘몰아쳐 오거니와 / 風勢長驅北海來
바닷가의 모래 놀라 하얀 해를 가리누나 / 海邊驚沙蔽白日
음산스런 대막 땅에 열흘 동안 눈 내리매 / 大漠陰沈十日雪
길 막혀서 안 통하고 새들조차 아니 나네 / 道路不通飛鳥絶
북쪽 사람 밤낮없이 하늘 향해 탄식하며 / 北人日夜仰天吁
남쪽 땅의 희화오를 속히 보길 원하누나 / 願見南陸羲和烏
오랑캐 땅 지역에는 음기 가득 쌓였거니 / 胡貊之地陰氣積
나무껍질 세 치이고 얼음 두께 여섯 자네 / 木皮三寸氷六尺
더군다나 금년에는 추위 다시 혹독하여 / 況乃今年寒更酷
변방 성의 군졸들은 손가락 다 떨어지네 / 邊城戍卒指皆落장백산의 구름과 눈 밤이면 산 다 덮어 / 白山雲雪夜埋山 (백두산)
울부짖는 범과 표범 깊은 굴서 죽어 가네 / 哀號虎豹死深穴
장군께선 밤새도록 잠을 들지 못하는데 / 將軍達夜不得寐
여우 갖옷 비단 이불 차갑기가 쇠와 같네 / 狐裘錦衾冷如鐵
희화오(羲和烏) : 태양을 가리킨다. 전설에 의하면, 태양의 신이 타는 수레를 여섯 마리의 용이 끄는데, 희화가 그 수레를 몬다고 한다. 또 태양 속에는 세 발을 가진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가 산다고 한다.
군불견〔君不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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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댄 보지 못하였나 구주새에 간 대왕을 / 君不見代王句注塞
그대는 또 못 보았나 함곡관에 간 초왕을 / 君不見楚王函谷關
한번 가선 언영 길을 다시는 못 걸었으며 / 一去不復鄢郢路
지금에도 마계산은 그 자리에 남아 있네 / 至今猶有摩笄山
삭북 지역 두껍게 언 얼음 높이 솟았거니 / 朔北層氷起峩峩
죽은 사람 뼈는 쌓여 마구 자란 삼 같다네 / 死人積骨如亂麻
오랑캐 땅 막막하여 누런 모래 날리는데 / 胡天漠漠飛黃沙
누런 모래 이는 대막 땅에 가선 안 되거니 / 黃沙大漠不可往
맹수에다 독충에다 시랑 따위 득실대네 / 猰㺄蝮蛇豺狼些
구주새(句注塞)에 간 대왕(代王) : 구주새는 산서성(山西省) 대현(代縣)의 서북쪽에 있는 구주산에 있는 요새로, 중국 육대 요새 가운데 하나이다. 구주산은 안문산(雁門山)이라고도 한다. 조(趙)나라 양자(襄子)가 대나라를 병합하고자 하여 그의 여동생을 대왕에게 시집보내면서 구주새에서 만나서는 쇠로 술 국자를 만들어 대왕과 술을 마시다가 때려죽이고 군사를 동원해 대나라를 멸망시켰다. 《史記 卷70 張儀列傳》
함곡관(函谷關)에 간 초왕(楚王) : 함곡관은 진나라에서 동쪽으로 나오는 길목에 있는 관문으로, 군사적 요충지이다. 전국 시대 말기에 초 회왕(楚懷王)이 함곡관을 통하여 진(秦)나라에 들어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자 초나라 사람들이 진나라를 몹시 원망하였다. 그러자 초 남공(楚南公)이 “초나라에 비록 세 집만 남아 있어도,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은 분명히 초나라 사람들일 것이다.〔楚雖三戶 亡秦必楚也〕”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언영(鄢郢) : 춘추 시대 초나라의 도읍지이다. 초나라 문왕(文王)이 처음 영(郢) 땅에 도읍했다가 언(鄢) 땅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서도 그대로 영이라 불렀다.
마계산(摩笄山) : 대왕(代王)의 부인인 조 양자(趙襄子)의 누이동생이, 대왕이 조 양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녀를 만지며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면서 자살한 곳이다. 대왕의 부인이 죽은 뒤에 대 땅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가 죽은 곳을 이렇게 불렀다. 《史記 卷43 趙世家》
전야행〔箭野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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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성서 동쪽으로 십 리가량 되는 곳에 / 漢陽城東十里許
목장 있어 그 이름을 전야라고 하는구나 / 有一牧場名箭野
전야 목장 땅은 넓고 풀들 수북 자랐으매 / 箭野地廣水草美
나라 세운 이후부터 말 목장을 열었다네 / 國初以來開牧馬
우리나라 좋은 말은 제주에서 나거니와 / 國家善馬出濟州
매년마다 봄가을에 바다 건너오는구나 / 年年渡海來春秋
저 옛날에 원나라가 중국 지역 차지해서 / 伊昔胡元據中國
서쪽으로 대완 통해 화류마를 구하였네 / 西通大宛求驊騮
그러고는 우리나라에서 용매 기르게 해 / 遂令我國字龍媒
그 당시에 제주에다 말 목장을 열었었네 / 當時濟州牧場開
제주에는 높고 높은 한라산이 있거니와 / 濟州天作漢挐山
천리마를 그 산에다 방목하여 길렀다네 / 千蹄馬放山之間
지금에도 가끔씩은 천리마가 나오거니 / 至今往往有千里
그 조상이 천리마의 종자란 걸 알겠구나 / 信知其先天馬子
제주산의 천리마가 사복시로 들어오매 / 濟州天馬入太僕
우뚝 솟은 높은 말굽 마치 푸른 옥과 같네 / 高蹄削立如碧玉
전야 들판 봄풀 속에 풀어놓아 기르거니 / 放之箭野春草中
풀을 씹고 물 마시며 서로 몰려다니누나 / 齕草飮水相馳逐
준마 꼬리 끝에서는 북녘 바람 일어나고 / 駿尾蕭梢起朔風
도화질발 좋은 말에 오화마의 말이라네 / 桃花叱撥五花色
삭막 땅의 되놈 먼지 서북쪽에 가득 이니 / 朔漠胡塵滿西北
지난날에 말 기른 게 무슨 도움 되겠는가 / 從前養馬知何益
내원 있는 마구간에 천리마가 있거니와 / 內苑天廐有龍駒
어찌하면 이 말들을 장사에게 나눠 주어 / 安得散之壯士
저 동호를 모조리 다 사로잡게 하려는가 / 擒東胡
아아 이 말 어찌하면 장사에게 풀어 주어 / 嗚呼安得散之壯士
저 오랑캐 모조리 다 사로잡게 하려는가 / 擒東胡
전야(箭野) : 전야는 살곶이, 즉 전관(箭串)이며, 오늘날의 뚝섬 지역을 가리킨다. 옛날에 이곳에는 사복시(司僕寺)에서 관장하는 말을 기르는 목장(牧場)이 있었다.[
서쪽으로 …… 구하였네 : 서역에서 아주 좋은 말을 구해 왔다는 뜻이다. 대완(大宛)은 서역에 있는 나라 이름으로, 여기에서 생산되는 말은 붉은 피 같은 땀을 흘리는 천리마라고 한다. 화류마(驊騮馬)는 검은 색깔의 갈기에 붉은 색깔의 몸을 한 말로, 아주 좋은 말을 가리킨다.
용매(龍媒) : 준마(駿馬)를 가리키는 말로, 《한서(漢書)》 권22 〈예악지(禮樂志)〉에 “천마가 왔으니, 용이 오게 될 매개이다. 창합에서 노닐며, 옥대를 보는도다.〔天馬徠 龍之媒 遊閶闔 觀玉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주-D004]
도화질발(桃花叱撥) …… 말이라네 : 도화질발은 명마(名馬)의 이름이다. 당(唐)나라 천보(天寶) 연간에 서역(西域)에서 여섯 필의 한혈마(汗血馬)를 바쳤는데, 그 이름을 각각 홍질발(紅叱撥), 자질발(紫叱撥), 청질발(靑叱撥), 황질발(黃叱撥), 정향질발(丁香叱撥), 도화질발이라고 하였다. 오화마(五花馬) 역시 말의 털빛에 청색(靑色)이나 백색(白色) 등의 반문(斑文)이 있는 아주 좋은 말을 가리킨다. 《續博物志 卷4》
동호(東胡) : 동쪽의 오랑캐로, 흔히 거란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청(淸)나라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
탄금대에 대한 노래를 지어 충주 목사 서정연을 전송하다〔彈琴臺歌 送徐忠州 挺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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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땅의 형승 모습 모두가 다 절경이나 / 忠州形勝盡奇絶
그 가운데 탄금대가 경치 제일 뛰어나네 / 彈琴之臺爲第一
동남쪽엔 월악산이 허공 속에 솟았는데 / 月嶽東南倚天半
큰 강물이 발원하여 흘러와서 한강 되네 / 大江發源流爲漢
한강의 물 휘돌면서 골짝 사이 흐르는데 / 江漢盤渦下峽來
백 번 굽은 그 형세는 탄금대를 감아 도네 / 百折勢抱彈琴臺
탄금대는 높고 높아 그 높이가 백 척이며 / 琴臺峨峨高百尺
굽이치는 물결 세차 돌 절벽이 흔들리네 / 波濤噴薄動石壁
옛사람이 여기 앉아 가야금을 뜯었거니 / 昔人於此坐彈琴
천년 전의 그 예전 일 옛 자취로 남았구나 / 千年事往餘古迹
지금에는 오직 꿩만 아침나절에 날거니 / 至今惟有雉朝飛
춘풍 속에 몇 번이나 매화꽃이 떨어졌나 / 春風幾回梅花落
매화꽃 다 떨어지면 눈이 산에 가득하여 / 梅花落盡雪滿山
매화곡과 백설곡의 노래 들리는 것 같네 / 似聞梅花白雪曲
백설곡의 노래 멀리 그대에게 보내자니 / 白雪高歌遠送君
탄금대의 지난 일은 뜬구름이 되었구나 / 琴臺往事空浮雲
지난날에 내 그대와 함께 관새 갔을 적에 / 憶昔與君度關塞
마운령의 꼭대기서 푸른 바다 보았었지 / 磨雲嶺頭觀滄海
지난번엔 유배객이 되어 풍상 겪었는데 / 向時遷客困風霜
오늘날엔 오마 타고 가서 광채 빛나누나 / 此日五馬生光彩
그대 금을 가지고서 대에 올라 뜯다가는 / 請君携琴臺上彈
가끔 뜯길 멈추고서 장안 땅을 생각하소 / 時時彈罷憶長安
이별 뒤에 상사곡을 뜯는 마음 알려거든 / 欲知別後相思曲
모름지기 관산 땅의 행로난을 뜯어 보소 / 須奏關山行路難
서정연(徐挺然) : 1588~? 본관은 남양, 자는 수부(秀夫), 호는 사봉(沙峰)이다. 1625년(인조3)의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전라 도사, 예조 정랑, 북평사, 태복시 정 등을 지냈다.
옛사람이 …… 남았구나 : 신라 시대의 음악가로 가야금(伽倻琴)을 만든 우륵(于勒)이 탄금대에서 가야금을 뜯었다고 한다.
지금에는 …… 날거니 : 고악부(古樂府)의 금조(琴操) 가운데 〈치조비(雉朝飛)〉가 있다.
춘풍 …… 떨어졌나 : 악부 횡취곡사(橫吹曲辭) 가운데 〈낙매화곡(落梅花曲)〉이 있다. 〈매화락(梅花落)〉 또는 〈관산낙매곡(關山落梅曲)〉이라고도 한다.
백설곡(白雪曲) : 악부 금곡가사 가운데 〈백설가(白雪歌)〉가 있다.
행로난(行路難) : 악부 잡곡가사(雜曲歌辭)의 이름이다. 원래는 민간(民間)의 가요(歌謠)인데, 뒤에 문인(文人)들이 모방하여 지은 것들이 채집되어 악부에 들어갔다. 진(晉)나라 포조(鮑照)가 처음 지은 뒤로 수많은 작품이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이백(李白)이 지은 〈행로난〉이 가장 유명하다. 내용은 대부분 세상길의 험난함과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였다.
고산 찰방으로 가는 이의상을 전송하다〔送高山督郵李倚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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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대와 동갑에다 하루 먼저 태어났고 / 與君甲子長一日
또 그대와 과거에서 같은 해에 급제했네 / 與君射策同一歲
옛사람은 사해 사람 모두들 다 친했는데 / 古人尙親四海人
황차 같은 해 태어난 형과 동생인 데이랴 / 況乃同年即兄弟
재주 없는 몸이 용케 앞자리에 있게 되어 / 不才幸忝居上頭
둔한 말이 화류마에 앞서 맘 부끄러웠네 / 却愧駑馬先驊騮
그댄 장고 직책 맡아 태상시에 속하였고 / 君爲掌故屬太常
나는 남궁 직책 맡아 원외랑이 되었다네 / 我爲南宮貟外郞
남궁에서 봄날 밤에 함께 촛불 잡았었고 / 南宮春夜共秉燭
태상에서 마신 술은 호박 빛이 짙었었네 / 太常美酒濃琥珀
절도사의 높은 누각에서 빈객 모였을 때 / 節度高樓會衆賓
누각 올라 사방 보며 북악 마주 대했었지 / 登樓四望對北嶽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세상일이 변하여서 / 十餘年來世事變
오랑캐 말 낙타 등이 장안 교외 내달렸네 / 胡馬橐駝長安陌
압록강의 동쪽에서 사막 먼지 일었거니 / 鴨江以東盡沙塵
친구 간에 생사 아는 사람 몇이 있으리오 / 朋知存歿有幾人
지난해에 호서 지방 바닷가로 날 찾아와 / 去年訪我湖海曲
손을 잡고 기뻐하다 되레 눈물 떨구었지 / 握手喜極涕還落
내 스스로 우스웠네 늙은이 집 안 가난해 / 自笑白首家不貧
사립문에 거마를 탄 청운객이 찾아온 게 / 門有靑雲車馬客
거마 타고 오고 갈 제 말은 바로 총마였고 / 車馬行行馬是驄
수의 입고 명광궁에 들고 나고 하였었네 / 繡衣出入明光宮
어제까진 주후혜문관을 쓰고 있었는데 / 昨日柱後惠文冠
오늘 아침 영외의 한 고을 안에 갇히었네 / 今朝嶺外困一官
대장부의 총욕이야 각각 때가 있는 거니 / 丈夫寵辱各有時
한번 얻고 한번 잃는 거를 어찌 한탄하랴 / 一得一失何足歎
버려둔 채 말을 말고 부디부디 잘 지내소 / 棄置勿陳須加飱
이의상(李倚相) : 어떤 인물인지 미상이다. 《동명집》에는 그에 관한 시가 몇 편 나오며, 《한수재집》 권27 〈군수(郡守) 박공(朴公) 태두(泰斗)의 묘갈명〉에는 유복기(兪復基)의 사위라는 내용이 나온다.
태상시(太常寺) : 봉상시(奉常寺)의 별칭이다.
남궁(南宮) …… 되었다네 : 남궁은 상서성(尙書省)의 별칭이기도 하며, 예조(禮曹)의 별칭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예조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동명은 예조 정랑을 역임하였다.
청운객(靑雲客) : 현귀(顯貴)한 자리에 있는 고관(高官)을 말한다.
거마(車馬) …… 하였었네 : 대간(臺諫)으로 있으면서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셨다는 뜻이다. 총마(驄馬)는 대간의 관직에 있는 사람이 타는 말로, 한나라 때 환전(桓典)이 시어사(侍御史)에 제수되어 당시에 국정을 농단하던 환관(宦官)들을 조금도 꺼리지 않고 탄핵하였는데, 항상 총마를 타고 다녔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총마를 탄 어사는 피해 가라.”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37 桓典列傳》 명광궁(明光宮)은 한 무제(漢武帝)가 건립한 궁전 이름으로, 미앙궁(未央宮) 서편에 있었는데, 발을 금과 옥, 진주 등으로 만들어 쳐서 밤낮없이 빛나고 밝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후대에는 임금이 있는 대궐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주후혜문관(柱後惠文冠) : 법관(法官)과 무관(武官)이 쓰는 모자를 말하는데, 전하여 대관(臺官)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판서 정군칙 세규 가 함경도를 안찰하기 위해 나가는 걸 전송하다〔奉送鄭尙書君則 世䂓 出按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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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께서 지난날에 남한산성 계실 적에 / 仁祖昔在南漢城
제진 군사 근왕하러 가길 머뭇거리었네 / 諸鎭逗橈勤王兵
그때 공은 호서 군사 거느리고 있으면서 / 是時我公領湖內
맘 강개해 생사 잊고 피눈물을 흘리었네 / 慷慨泣血忘死生
군사들이 칼날 맞서 앞다투어 싸웠는데 / 士冒白刃爭死敵
상장으로 있으면서 사졸들에 앞장섰네 / 爲是上將先士卒
성패 따위 모름지기 논할 것이 없거니와 / 成敗利鈍不須論
그 정충은 해와 달을 꿰뚫을 만하였다네 / 精忠可以貫日月
명성 크게 빛나는 게 이로부터 시작되어 / 聲名燀爀從此始
청운 위에 오르는 걸 스스로가 쟁취했네 / 靑雲之上能自致
태창에선 호조 판서 적임 얻음 축하했고 / 太倉賀得判度支
경사에선 도어사를 피한다고 칭하였네 / 京師稱避都御史
그댄 보지 못하였나 철령 북쪽 수천 리 땅 / 君不見鐵嶺之北數千里
백두산을 한계 삼고 바닷가에 있는 거를 / 限以白山邊海水
금상께서 즉위하여 북쪽 지역 걱정하다 / 今上即位眷北顧
공께 명해 부월 잡고 그곳 진압하게 했네 / 命公仗鉞鎭玆土
인견할 때 임금 말씀 아주 정성스러워서 / 引見天語接慇懃
선조 때의 옛 신하를 크게 우대하였다네 / 禮數優待先朝臣
황금 바로 도박으로 걸 물건이 아니거니 / 黃金不是爲注物
북문 맡을 적임자를 오직 가려 뽑은 거네 / 北門鎖鑰惟其人
세모라서 날씨 추워 빙설 꽁꽁 얼었는데 / 歲暮天寒氷雪壯
성 사람 다 송별 나와 모인 수레 백 대이네 / 傾城送別車百兩
전송하며 말 주는 걸 내가 감히 하랴마는 / 送人以言吾豈敢
애오라지 공을 위해 한마디 말 선사하리 / 聊復爲公贈一語
전에 공의 할아버지 되는 승상공께서는 / 公家王父丞相公
북방 사람 사랑하여 감당 은혜 끼쳤거니 / 北方人愛甘棠樹
가서 부디 잘 다스려 조부 명성 뒤이으소 / 往哉家聲繼乃祖
세규(世䂓) : 정세규(鄭世䂓, 1583~1661)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이다. 좌의정을 지낸 정언신(鄭彦信)의 손자이다. 여러 곳의 감사와 우참찬, 이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승정원일기》 효종 즉위년(1649) 11월 19일 기사에 정세규를 함경 감사에 제수한 내용이 나온다.
그때 …… 앞장섰네 : 정세규는 충청도 관찰사로 있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에서 포위되자, 근왕병을 이끌고 포위된 남한산성을 향하여 진격하다가 용인(龍仁) 험천(險川)에서 적의 기습으로 대패하였다. 그러나 충성심을 인정받아 면죄되고 전라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태창(太倉)에선 …… 칭하였네 : 정세규가 호조 판서와 대사헌을 지냈으므로 한 말이다. 태창은 호조의 별칭이다.
황금 …… 거네 : 북쪽 변경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는 함경도 관찰사를 신중히 잘 가려서 적임자를 뽑았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기왓장을 내기에 건 자는 생각이 야릇해지고, 쇠로 만든 띠쇠를 건 자는 슬슬 겁을 내고, 황금 덩어리를 몽땅 건 자는 정신이 하나도 없게 된다.〔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㱪〕”라고 하였다.
전송하며 …… 걸 : 먼 길을 떠나가는 사람에게 지침이 될 만한 말을 해 주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주(周)나라에 가서 노자(老子)에게 예(禮)를 묻고 떠나려 할 때, 노자가 공자를 보내면서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부귀한 사람은 사람에게 재물을 주어 보내고, 인한 사람은 사람에게 말〔言〕을 주어 보낸다 하는데, 나는 부귀하지 못한 사람이니, 인한 사람의 호칭을 훔쳐서 그대에게 말을 주어 보내노라.”라고 하였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전에 …… 끼쳤거니 : 승상공은 선조조에 우의정을 지낸 정언신(鄭彦信)을 말한다. 정언신은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나가 변민(邊民)을 잘 다스리고 녹둔도(鹿屯島)에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군량미를 풍족하게 비축하였으며, 1583년(선조16)에 이탕개(尼湯介)가 쳐들어오자 우참찬으로 함경도 도순찰사에 임명되어 이순신(李舜臣)ㆍ신립(申砬) 등을 거느리고 적을 격퇴하였다. 이어 함경도 관찰사가 되어 북쪽 변방을 방비하였다. ‘감당(甘棠)’은 어진 관리의 아름다운 정사를 말하는데, 주(周)나라 때 소공(召公)이 북연(北燕)에 봉해져서 감당나무 아래에서 어진 정사를 펼치자, 소공이 죽은 뒤에 백성들이 소공을 그리워해 감당나무를 감히 베지 못하면서 〈감당(甘棠)〉 시를 지어 기렸다. 《史記 卷34 燕召公世家》
홍원구와 더불어서 서호에서 배를 띄우다〔與洪元九泛西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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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들어 몸 병들어 누워 있는 노부에게 / 入夏多病臥老夫
한 친구가 편지 보내 서호에서 놀자 했네 / 有友抵書遊西湖
얼마 뒤에 마포에서 일엽편주 띄워서는 / 已於麻浦艤扁舟
배에 올라 술잔 들며 양후조차 깔보았네 / 入舟把盃凌陽侯
양후께서 물결 재워 시흥 돋워 주었기에 / 陽侯波靜助詩興
멀리 율도 바라보며 나의 근심 녹이었네 / 回望栗島消我憂
저녁나절 바람 일어 돛을 펼쳐 걸고서는 / 向晩風起掛帆席
물결 타고 내려가며 돌 절벽을 바라봤네 / 乘流直下望石壁
잠두 솟은 돌 절벽은 만길 펼쳐졌거니와 / 石壁蠶頭萬丈開
안개가 낀 돌 절벽은 어쩜 그리 높고 높나 / 壁立霞駁何崔嵬
이끼 흔적 다 씻어 낸 물결 형세 장한 속에 / 苔痕蝕盡水勢壯
구름 기운 몽롱한데 푸른 산은 다가오네 / 雲氣朦朧蒼翠來
조강에는 조수 올라 해는 저물려고 할 제 / 祖江潮上日欲暮
뱃사람들 뱃노래에 갈매기들 흩어지네 / 舟人棹謳散鷗鷺
높이 솟은 은행정을 가 보려고 하였건만 / 高亭銀杏且歸來
양화도에 물결 일어 건너서 갈 수가 없네 / 風浪楊花不得渡
민수와도 같은 술에 잔뜩 취해 떠들거니 / 如澠之酒醉喧呼
내게 있어 부귀 따윈 뜬구름과 같은 거네 / 富貴於我浮雲踈
공동산서 의천검 빼 시험하진 못했으나 / 崆峒未試倚天劍
창해에서 배 삼키는 큰 고기를 낚고프네 / 滄海欲釣呑舟魚
홍치 때의 임술부터 몇 년 세월 흘렀는가 / 弘治壬戌去幾許
비가 속에 슬피 보며 지난 일을 회고하네 / 悲歌悵望懷往古
우리 삼한 사백으로 칭해지는 취헌공은 / 三韓詞伯翠軒公
천년 뒤에 적벽부와 웅장함을 다투었네 / 千載爭雄赤壁賦
나의 두 벗 원외랑께 내가 말을 해 주노니 / 爲語兩友貟外郞
그대들의 높은 재주 누가 능히 맞서리오 / 君才磊落誰能當
시 지음에 모름지기 고인 작품 뒤이으소 / 作詩須繼古人作
인간 세상 순식간에 진적 되고 마는 거니 / 轉眄人間便陳迹
홍원구(洪元九) : 홍석기(洪錫箕, 1606~1680)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원구, 호는 만주(晩州)이다. 1641년(인조19)의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45년에 정언으로 있던 중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다가 파직되었으며, 이후 여러 곳의 수령을 지냈다. 시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만주집》과 《존주록(尊周錄)》이 있다.
양후(陽侯) : 물귀신의 이름으로 큰 파도를 뜻한다. 《초사(楚辭)》 〈구장(九章) 섭강(涉江)〉에 “양후의 범람함도 업신여긴다.”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양후는 양국(陽國)의 후(侯)로 물에 빠져 죽었는데 그 귀신이 큰 파도를 일으킨다.”라고 하였다.
율도(栗島) : 용산(龍山) 앞에 있는 밤섬을 말한다.
조강(祖江) : 개풍군(開豐郡) 덕수(德水) 남쪽, 통진(通津) 동쪽 15리에 있는 강으로, 한강(漢江)과 임진강(臨津江)이 합하는 곳을 가리킨다. 한강은 교하(交河) 서쪽에 이르러서 임진강과 합하며, 통진 북쪽에 이르러 조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 漢城府》
은행정(銀杏亭) : 양천구 신정동에 있던 정자이다.[주-D006] 민수(澠水)와도 같은 술 : 아주 많은 술을 말한다. 민수는 전국 시대 제(齊)나라에 속했던 강물 이름이다. 제후(齊侯)가 연회를 베풀고서 “민수처럼 술도 많고 산처럼 고기도 쌓였다.〔有酒如澠 有肉如陵〕”라고 말한 기록이 보인다. 《春秋左氏傳 昭公20年》
공동산(崆峒山)서 …… 못했으나 : 칼을 들고 오랑캐들을 정벌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공동산은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평량현(平涼縣) 서쪽에 있는 산인데, 토번(吐蕃)이 출입하던 길목에 있었다. 두보(杜甫)의 〈투증가서개부이십운(投贈哥舒開府二十韻)〉 시에 “몸을 막을 한 자루 긴 칼로, 장차 공동산에 의탁하고 싶다오.〔防身一長劍 將欲依崆峒〕”라고 하였다. 의천검(倚天劍)은 아주 큰 칼을 말한다. 송옥(宋玉)의 〈대언부(大言賦)〉에 이르기를 “네모난 땅을 수레로 삼고 둥근 하늘을 휘장으로 삼으매 장검이 하늘 밖에서 번쩍인다.〔方地爲車 圓天爲蓋 長劍耿耿倚天外〕”라고 하였다.
홍치(弘治) 때의 임술(壬戌) : 1502년(연산군8)이다. 홍치는 명나라 효종(孝宗)의 연호이다
우리 …… 다투었네 : 취헌공(翠軒公)은 박은(朴誾, 1479~1504)을 가리킨다. 박은은 20세 때인 1498년(연산군4)에 유자광(柳子光)의 간사함에 대해 탄핵하였다가 모함을 받아 파직되었다. 23세 때 옥에 갇혔다가 25세 때인 1503년에 아내를 잃고 26세 때 갑자사화로 인해 처형되었다. 박은은 해동강서파(海東江西派)의 대표적 시인으로, 주로 인생무상을 노래한 시를 많이 남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칭해지는데, 1502년(연산군8) 7월에 이행(李荇)ㆍ남곤(南袞)과 함께 잠두(蠶頭)를 유람하면서 시를 지어 〈잠두록(蠶頭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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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집 제11권 / 논(論)
완급론〔緩急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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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천천히 해야 할 것과 급하게 해야 할 것이 있다. 천천히 해야 할 것을 알아서 천천히 하고, 급하게 해야 할 것을 알아서 급하게 하면,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해야 할 것을 급하게 해서는 안 되고, 급하게 해야 할 것을 천천히 해서는 안 된다. 천천히 해야 할 것을 천천히 하고, 급하게 해야 할 것을 급하게 한다면, 편안할 것이다. 이에 반해 천천히 해야 할 것을 급하게 하고, 급하게 해야 할 것을 천천히 한다면, 위태로울 것이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다.
무엇을 일러 천천히 해야 할 것이고 급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가? 이는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시기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가? 옛날에 홍수가 나서 물이 하늘에까지 차오르자, 순(舜) 임금이 우(禹)에게 명하여 수토(水土)를 고르게 하라고 하고, 직(稷)에게 명하여 백곡을 파종하게 하였다. 그런 다음 설(契)에게 명하여 오교(五敎)를 펴게 하였다.
사람의 도리로는 오교보다 더 중한 것이 없다. 성인께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도 역시 오교보다 더 중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설에게 명한 것이 우나 직보다 늦은 것은 어째서인가? 아아, 감히 뒤로 미룬 것이 아니라, 급하게 해야 할 것이 있어서 형세상 부득불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가령 먼저 설에게 명하고 나중에 우와 직에게 명하였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며, 천하의 사람들이 굶주려 죽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우와 직에게 먼저 명하고 설에게 나중에 명한 까닭이다. 이로 말미암아서 논해 본다면, 성인이 천천히 한 일과 먼저 한 일을 잘 알 수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천천히 할 것과 먼저 할 것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나라가 위태롭지 않겠는가. 천천히 할 것은 무엇인가? 예문(禮文)이 바로 그것이다. 급하게 할 것은 무엇인가? 무비(武備)가 바로 그것이다. 어찌하여 예문은 천천히 하고 무비는 급하게 해야 하는가? 시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해 보겠다.
지난날 폐조(廢朝) 때에는 정사를 어지럽혀서 스스로 천명을 끊었다. 하늘이 우리 성상을 돌보아 주시어 우리 성상께서는 선묘(宣廟)의 훌륭한 손자로서 대통(大統)을 이어받았다. 이에 예묘(禰廟)를 추숭(追崇)하자는 의논이 일어났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추숭해도 괜찮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추숭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추숭해도 괜찮다고 하는 자들은 말하기를 “추숭하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다. 나라가 반드시 어지러워져 위태롭게 될 것이니 쟁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으며, 추숭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자들은 말하기를 “추숭하는 것은 예가 아니다. 나라가 반드시 어지러워져 위태롭게 될 것이니 쟁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그리하여 양쪽이 서로 대립하여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느니, 저것이 옳고 이것이 그르다느니 하면서 따졌으며, 초야의 사람들까지도 그 의논에 참여하여 수없이 많은 상소를 올렸다. 이에 조정에서는 모든 사무를 폐하고 오직 이것만을 놓고 다투었다. 그리하여 계해년(1623, 인조1)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을 서로 자기 주장만 고집하면서 결정을 보지 못하였다.
내가 보건대, 크게 걱정스러운 점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주장은 거기에 들어 있지 않다. 어째서 그런가? 가령 추숭하는 것이 예가 아니라고 한다면, 옛사람 가운데에는 행한 자가 있다. 우리 성묘(成廟)가 바로 그분이다. 가령 추숭하지 않는 것이 예가 아니라고 한다면, 옛사람 가운데 행한 사람이 있다.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가 바로 그분이다. 이 두 경우에서 위태로워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예가 바르지 않더라도 위태롭거나 어지러워지는 데에는 이르지 않고, 일이 없는 데 처하면 비록 수십 년이 지나더라도 반드시 바른 곳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그러니 역시 해서 안 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적당한 때가 아니다.
어찌하여 적당한 때가 아니라고 하는가? 훈육씨(獯鬻氏)가 강성해져 천하를 집어삼킬 뜻을 품고 있다. 그들이 우리 삼한(三韓)을 집어삼키는 것은 단지 손바닥을 한 번 뒤집는 것처럼 쉽다. 이 점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도 그 위급함을 잘 알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른 바 크게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아아, 우리나라가 비록 작기는 하지만, 긴 곳을 끊어서 짧은 곳에 이어 붙이면 지방이 수천 리는 된다. 그리고 장정들을 모두 끌어 모으면 정예로운 군사 수십만 명을 갖출 수가 있다. 이런데도 나라가 되기에 부족하단 말인가? 참으로 능히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번다한 비용을 줄이고, 기강을 바로잡고, 출척(黜陟)을 엄명하게 하고, 상벌을 미덥게 시행하고 내수사(內需司)를 혁파하고, 고강(考講)을 엄하게 하고, 군정(軍政)을 잘 다스리고 간성(干城)의 장수를 잘 가려 뽑고, 용사(勇士)들을 잘 어루만지고, 병기를 잘 벼리고, 기사(騎射)를 잘 익히고, 군량(軍糧)을 잘 저축하고, 성지(城池)를 잘 수리하되, 상하 간에 온 힘을 다하면서 한마음으로 무비(武備)를 갖춘다면, 저들이 비록 강하다고 하더라도 역시 감히 우리나라를 침범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날의 급선무로는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치지도외하고 있다.
군사들은 지치고 약해 빠져 위급한 사태가 일어났을 적에 쓸 수가 없고, 팔도의 장정들 가운데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힘이 세면서도 죽을 때까지 놀고먹는 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도 그들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주군(州郡)의 무비는 해이하기만 하여 갑옷과 창, 활과 화살, 칼이 명목은 있으나 실제는 없다. 그런데도 이 모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고 있다. 성지는 수리하지 않았으며, 또한 저축해 놓은 군량이 없어 불행스럽게도 포위를 당하였을 경우 현재 있는 곡식을 가지고는 한 달도 버틸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를 갖추지 않고 있다. 탐학스럽고 용렬한 무부(武夫)들이 세력가에게 뇌물을 바치고 등짐을 지고 수레를 타서는 제멋대로 굴면서 짓밟고 사졸들을 어루만져 주지 않은 채 오직 긁어모으기만을 일삼는 자들이 서로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도 제대로 가려 뽑지 않고 있다. 훈척(勳戚)의 군관들은 많은 경우에는 천 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모두 훈척들에게 의지하여 살아 가고 있으며, 태창(太倉)은 나라에는 이익이 없고 먹는 데에 해만 끼쳐 헛되이 낭비되는 비용이 매우 많다. 그런데도 줄이지 않고 있다.
기율이 엄숙하지 않아 호령이 행해지지 않은 탓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함이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금하지 않고 있다. 나랏일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그럭저럭 소일하면서 나라가 뒤엎어지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고, 한 해 내내 하는 것이라곤 단지 피혐(避嫌)하고 정고(呈告)하며, 같은 당파 사람은 끌어 주고 다른 당파 사람은 치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를 고치지 않고 있다. 이상에서 말한 일곱 가지는 모두 오늘날에 큰 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투는 바는 오직 추숭에만 있다. 그러니 역시 가소롭지 아니한가.
또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있다. 서원(書院)을 설치한 것은 본디 어진 이를 높이기 위해서인데, 도리어 큰 폐단이 되었다. 혹 몸은 한 사람인데도 서원은 수십 군데나 되며, 혹 적당한 장소가 아닌데도 서원을 창설하고는 있으면 영광스럽게 여기고 없으면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리하여 서로 앞다투어 본받아 열읍의 곳곳마다 서원이 없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이에 한정(閑丁)이 여기에 투속(投屬)하는 것을 수령은 제압하지 못하고 방백은 금하지 못한다. 일이 유림(儒林)에 관계되면 한 명의 교생(校生)이 능히 조정을 제압하는데, 조정에서는 태연히 제압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일러 유학자를 높이고 도를 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하니, 아, 역시 잘못된 것이다.
조정에서 숭상하는 바가 모두 이와 같으니, 어느 겨를에 변경을 염려하겠는가. 이 때문에 헛된 형식은 날로 치성해지고 무비(武備)는 날로 약해진다. 정묘년(1627, 인조5)의 난리 때 오랑캐 기병이 한 번 쳐들어와 압록강(鴨綠江)을 끊고 의주(義州)를 습격하고 용천(龍川)을 깨뜨리고 선천(宣川)과 철산(鐵山)을 유린하고, 능한산성(凌漢山城)을 함락하고 살수(薩水)를 건넌 다음 곧장 평양(平壤)으로 쳐들어오자, 양서(兩西) 지방의 군사들은 오랑캐의 모습만 보고서도 스스로 무너졌다. 오랑캐들이 경기 지방으로 들어오기를 마치 무인지경에 쳐들어오듯이 하여 자녀들 가운데 오랑캐에게 잡혀 죽은 자들이 삼대〔麻〕와 같이 많아 피가 천리를 흘렀으며, 종묘사직은 파천하였다. 이는 무(武)를 숭상하지 않은 잘못이다.
현재 저 오랑캐들은 더욱더 전쟁에 대한 대비책을 닦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날의 일을 경계로 삼지 않고 있다. 오랑캐들이 만약 재차 쳐들어온다면, 나는 아마도 앞으로의 우환이 지난날보다 더 심할까 걱정된다. 무릇 병이 들었을 경우에는 그에 맞는 약을 써야만 한다. 참으로 그에 맞는 약을 쓰지 않는다면 그 약을 비록 만금을 주고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병은 끝내 낫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그에 대한 적합한 처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랑캐들은 우리나라에서 보면 고황(膏肓) 속에 든 병이다. 나는 현재 조정에서 하는 바가 과연 오랑캐들에 대처하는 올바른 약인지 모르겠다. 천천히 할 것과 급하게 할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바둑을 두는 것은 하찮은 기예이다. 그러나 바둑돌을 놓을 때 한 번 완급을 놓치면 승부가 결판나는 법이다. 그런데 더구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겠는가.
지금 범과 이리, 독사와 전갈이 문 앞에 모여들고 있는데, 이러한 때에 비록 성인으로 하여금 계책을 세우게 한다 하더라도 역시 장사들을 불러 모으고 활을 잡고 칼을 들어 막는 데 불과할 뿐이다. 만약 이를 돌아보지 않은 채 당 위에서 《예기(禮記)》나 《효경(孝經)》을 강론하면서 진퇴(進退)하고 읍양(揖讓)한다면, 예는 예이지만 반드시 해가 있을 것이다. 아아, 오늘날의 조정에서 하는 짓이 그에 가깝다.
오교(五敎) : 오상(五常)의 가르침으로,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자애로우며, 형은 우애 있고, 동생은 공손하며, 아들은 효성스러운 다섯 가지 윤리 도덕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에 …… 일어났다 :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定遠君)을 추숭하는 데 대한 의논을 말한다. 인조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의 장남으로서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뒤, 정원군을 어떻게 대우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때 조정의 의논은 대략 세 갈래로 나뉘어졌는데, 박지계(朴知誡)는 정원군을 왕으로 추존하여 인조와는 부자 관계로 칭해야 한다는 설을 주장하였고, 김장생(金長生)은 인조는 선조의 뒤를 이은 것이므로 정원군과는 숙질관계로 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정경세(鄭經世)는 부자 관계로 칭하되, 일반적인 부자 관계로 칭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 “고(考)라고 칭하되 현고(顯考)라고는 하지 않으며, 자(子)라고 칭하되 효자라고는 칭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친 뒤에 인조의 뜻에 따라 1632년(인조10)에 드디어 정원군을 원종(元宗)으로 추존하고 능호(陵號)를 장릉(章陵)이라고 하였다.
성묘(成廟)가 바로 그분이다 : 성종(成宗)이 자신의 생부를 덕종(德宗)이라고 추숭한 것을 말한다. 덕종은 세조의 첫째 아들로, 이름이 장(暲)이고, 자는 원명(原明)이며, 초명은 숭(崇)이다. 1455년(세조1)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457년에 죽었다. 그 뒤 성종이 즉위하자 1472년(성종3)에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이라 추숭하고 연경궁(延敬宮)에 별묘(別廟)를 지어 월산대군(月山大君)으로 하여금 봉사(奉祀)하게 하였으며, 이어 시호를 의경왕(懿敬王)이라 하고, 능호를 경릉(敬陵)이라고 하였다.
한(漢)나라 …… 그분이다 : 후한의 광무제가 처음에 왕망(王莽)의 신(新)을 멸망시키고 후한을 세운 뒤 건무(建武) 3년(27)에 낙양(洛陽)에 친묘(親廟)를 세우고 자신의 친아버지인 남돈군(南頓君) 위로 용릉절후(舂陵節侯)까지 4대를 제사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 장순(張純) 등의 건의에 의하여 남돈군을 추숭해 황제로 높이지 않고 별도로 황고묘(皇考廟)를 세워 다른 사람에게 제사 지내게 하였으며, 자신은 전한의 원제(元帝)의 뒤를 이은 것으로 하였다.
훈육씨(獯鬻氏) : 북쪽 오랑캐를 칭하는 말로, 여기서는 청나라를 가리킨다.
등짐을 …… 타서는 : 재주가 직책에 걸맞지 않은 것을 말한다. 《주역》 〈해괘(解卦)〉에 이르기를 “등에 지고서 또 수레를 탔으니 도적을 오게 한다.〔負且乘 致寇至〕” 하였다.[
고황(膏肓) : 사람의 몸 속 깊은 곳에 있는 장기로, 고질병이 든 것을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춘추 시대 때 진후(晉侯)가 병이 나서 진(秦)나라에서 의원을 구하였는데, 진백(秦伯)이 의원을 보냈다. 그런데 의원이 도착하기 전에 진후가 꿈을 꾸니, 꿈속에서 병이 두 어린아이로 화해 말하기를 “저 어진 의원이 우리를 해칠까 두렵다.” 하니, 그중 하나가 말하기를 “황(肓)의 위, 고(膏)의 아래에 숨으면 우리를 어쩌겠는가.” 하였다. 의원이 이르러서는 말하기를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황의 위, 고의 아래에 숨어 있어서 공격하려 해도 할 수가 없고 도달하려 해도 할 수가 없어서 약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니 고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春秋左氏傳 成公10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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