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연산책길에 수화님이 알토란 같은 춘천투어 1-3 연작으로 올리셨네요. 춘천은 갈데도 많고 아름다운 곳, 함께 걷기에도 좋은 곳, 오케스트라에서는 2020년 2월 피피사랑님의 춘천역-강촌역 이어걷기가 있었죠. 그때는 너무 추워서 참가하지 못해 후기가 없는데, 낙화는 지난 2015년 4월 28일 ‘춘천 의암호 나들길 봄내길 4코스’를 걷고 후기를 남겼습니다. 수화님 춘천투어와 겹치는 곳은 이디오피아 기념관, 춘천에 대한 참고삼아 올리는 글입니다.
오랫동안 잊었던 춘천에 대한 기억을 소환시켜주신 수화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춘천 공지가 떳을 때 첫 느낌은 “가고 싶다”였습니다. 춘천의 우리말은 봄春 내川 봄내, 어쩌면 봄에 가기 딱 좋은 곳,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라는 이미지 보다는 어쩌면 ‘청춘의 도시’, 혹은 경춘선 타고 간 그 시절 그 청춘이 더 그리워서인지 모릅니다.
강원도 춘천 가는 길, 평일에 경춘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서울에서 가게 되면 기차를 여러번 갈아타고 2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 봄 기운을 넘어 여름 문턱에 들어선 철로변의 싱그러운 신록이 먼거리임을 잊게 해줍니다. 젊은 시절, 춘천행 완행열차를 타고 강촌이나 춘천을 갔던 시절을 생각합니다. 그때는 참 느렸다고 생각한 완행열차, 지금은 무척이나 빨라진 전철, ITX청춘을 타면 1시간도 안걸리는 춘천이지만 기차가 아무리 빨라도 세월만큼 빠르지는 않더군요. 그 옛날이 주마등처럼 흘러갑니다.
춘천역에 도착합니다. 기차가 달라진 만큼 춘천역도 초현대식이라 옛 정취를 느낄 수 없음이 안타깝더군요. 예전 역사였으면 추억의 한자락이라도 더듬으면서 나올 수 있었을텐데 생경하게 바뀌어 버린 현대식 건물앞에 어색함이 성큼 다가옵니다.
생명의 젖줄, 춘천은 호수의 도시. 춘천호, 의암호, 소양호는 춘천의 자랑이자 가장 큰 볼거리
춘천 의암호 나들길 봄내길 4코스는 의암호를 끼고 서면 문학공원에서부터 삼천동까지 걷는 길입니다. 춘천의 상징인 호수와 소양강 처녀상, 춘천대첩 기념공원 호반산책로, 공지천 등을 만나며 호반의 도시 서정이 담긴, 가장 춘천다운 길입니다. 아울러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 황금비늘테마거리, MBC전망대, 중도관광선착장에서 봉황대까지 들릅니다. 춘천의 자연풍광과 근현대사까지 아우르는 코스입니다. 이곳에서 군 생활을 하셨다는 분 덕분에 춘천관광의 필수코스인 강원도립 화목원(산림박물관)을 먼저 들러 구경하는 보너스도 챙깁니다.
화목원을 나와 인형극장 사거리 근처에서 막국수로 점심을 먹고 의암호를 따라 소양강 길을 걷습니다. 나무와 꽃길과 물길을 따라 걷습니다. 나무가 울창한 숲길도 부드러운 흙길도 아닌 잘 포장된 도로, 가다가 가끔 끊어지기도 하지만 생명의 젖줄인 물과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길이라 그런지 걷기에 좋은 길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춘천이라는 도시 자체가 주는 이미지, 청춘의 이정표, 혹은 유안진 시인의 표현처럼 어느 누구에게라도 있을 ‘그립고 안타까운 가슴 조용히 설레곤 하는 그곳’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삼삼오오 걷는 분들의 발걸음도 가벼우면서 끊임없이 대화도 나누고 때로는 눈을 지긋이 감으면서 옛날을 회상하시는 것 같기도 하더군요.
호반의 도시 춘천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인지 춘천 출신이 아닌 유안진 시인은 다음과 같은 멋진 시를 남겼습니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 유안진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춘천이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움할 거라
녹다만 눈 응달 발치에 두고
마른 억새 깨벗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피고 있는 진달래꽃을 닮은 누가 있을거라
왜 느닷없이 불쑥불쑥 춘천에 가고 싶어지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라
가서, 할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거라
그저, 다만 새 봄 한 아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몽롱한 안개 피듯 언제나 춘천 춘천이면서도
정말 가 본 적은 없지
엄두가 안 나지, 두렵지, 겁나기도 하지
봄은 산 넘어 남촌 아닌 춘천에서 오지
여름날 산마루의 소낙비는 이슬비로 몸 바꾸고
단풍 든 산허리에 아지랑거리는 봄의 실루엣
쌓이는 낙엽 밑에는 봄나물 꽃다지 노랑 웃음도 쌓이지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춘천이니까.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젊은 시절이라 아름다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혹은 어느 누구 말대로 ‘많이 아팠기’ 때문에 더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모처럼 청춘의 도시 춘천을 간 것은 단지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상하려고 간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더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을에 걷고 싶은 길...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만...
너무 짧은 봄날, 아쉬움과 그리움만 남긴 춘천여행이지만 오히려 그 여운이 위안이 됩니다. 다음에는 물안개 피는 공지천을 보러 가을날의 춘천을 갈 생각입니다. 시인에 의하면 춘천은 가을도 봄이겠지만...
낙화는 유수처럼
너무 현대식이라 정감없는 춘천역. 시계는 약속시간인 11시 30분으로 가고 있는 중
춘천시 관광안내도
갈 곳 많은 춘천 일대
수목원 아닌 화목원이라 해서 무슨 뜻인가 했더니 꽃과 나무의 정원
4월 말인데 춘천은 벌써 여름을 맞은 듯.
화목원 내 산림박물관
오랜 연륜처럼...
화목원이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잘 조성되어 있음
인형극장을 나와 의암호 따라가는 봄내길 4코스가 시작됨
잘 정비된 길. 다만 자전거길과 걷는 길 구분이 모호하고 걷는 길이 강변에 위치 풍광이 덜 좋은 느낌.
걷다가 자전거 타는 분들과 충돌 위험도...
소양2교.
가사가 서정적인 소양강 처녀
춘천의 아이콘, 소양강 처녀상
평화의 도시 춘천의 전쟁 상흔
60-70년대식 반공영화에나 나올법한 전쟁기념물(?).
나무와 꽃과 강물이 어우러진 길을 따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 월남에 한국군 참전이 겹치기도...
춘천의 새명물 스카이워크길
춘천MBC 앞의 조형물, 청춘의 도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듯...
원래 일정은 중도관광지 지나 봉황대까지 갈 예정이었으나 봉황대 주변이 공사중이라 여기서 멈춤. 이제 공사도 다 끝났겠죠~~
첫댓글
가 볼 곳 많은 춘천이건만
몇 년 전 이상원 미술관 갔던 기억 외엔
아련한 그리움 한 조각 저에겐 없었네요.
그래도 이번에 몇 군데 돌아다니며 특별한 추억을 갖게 되었어요.
못 가 본 곳들을 올려주셔서 다음에 좋은 참고가 되겠어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