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을 살아내며, 3월의 일기, 서울나들이/The present
2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내 검찰에서의 마지막 보직인 대검찰청 감찰부 제 2과 감사담당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업무가 일반직 공무원들의 업무에 대한 감사이다 보니, 당연히 직원들과의 이런저런 소통이 많았다.
직속상관들은 잘못된 업무를 지적하고 지적된 직원에 대해서는 징계처벌을 요구했지만, 나는 그 요구를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았다.
선배들에게 잘못 배워서 지적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을 지적은 하되, 앞으로는 그 잘못을 고쳐나가게 하는 계도적 감사에 치중했다.
그렇게 계도를 위주로 하다 보니,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대화 자료를 얻기 위해 책을 많이 읽어야 했었다.
바로 그 즈음에, 내게 특별한 선물을 한 후배 수사관이 있었다.
책 한 권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그 선물은 참으로 희한한 것이었다.
책을 현물로 선물한 것이 아니라, 검찰 내부통신망인 e-pros에 메시지를 띄워서 책 제목만 선물해준 것이었다.
곧 이 책이었다.
‘The present’
당시의 베스트셀러인 스펜서 존슨의 책으로, 우리말로는 ‘선물’이라고 풀어놓고 있었다.
그날로 다 읽어버렸다.
그 책은 그 이후의 내 인생관을 확 바꾸어버릴 정도로, 내게 너무나 귀한 깨우침을 준 선물이었다.
어느 노인이 동네 어린 소년에게 어릴 적부터 선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 소년은 어른이 될 때까지 그 노인이 약속한 선물을 주지 않아서, 소년이 그 노인에게 선물을 달라고 자꾸 보채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노인이 주겠다고 했던 그 선물이란 것이, 바로 Present의 또 다른 의미인 ‘지금’이란 것을 소년이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는 내용을 담은 글이었다.
이 책은, 선물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Learn from the past, Plan for the future, Be in the present’
멀찌감치 낯익은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2023년 3월 26일 일요일 오후 8시쯤의 일로, 봉천동 달동네에 사는 막내며느리 은영이네 집으로 가는 골목길로 막 접어들었을 때, 내 눈에 비쳐든 밤의 그 골목길 풍경이 그랬다.
그 골목길 초입에서 느낀 대로, 그 낯익은 풍경이 현실이기를 바랐다.
아내는 내 그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어쩌면 내 생각을 미리 짚어 알기에 그렇게 발걸음을 더 빨리 했을 수도 있다.
남편인 내가 그 낯익은 풍경에 빠져드는 것을 싫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싫어하든 말든, 난 이미 마음 작정을 해놓고 있었다.
이날 하룻밤을 묵게 될 은영이네 집에 빈손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각해서였다.
역시 내 느낌대로였다.
홍게찜 트럭이 그 골목 중간에 떡 버티고 있었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지금 당장이 중요했다.
은영이가 그 게를 참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 가치를 잘 모르겠으면 돈을 많이 주라고 하셨던, 우리 아버지의 살아생전 가르침도 생각했다.
그래서 그 주인에게 이렇게 외쳤다.
“제일 비싼 걸로 한 보따리 싸주세요. 그리고 덤 한 마리 보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