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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유순한 성격의 로페스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진정한 프로입니다. ⓒ민기자닷컴
190cm의 큰 신장이지만 날렵한 몸매의 아퀼리노 로페스(34)는 쉽게 미소를 짓는 선한 성격의 사내였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 힘들게 야구를 했고, 남들보다 늦게 미국 프로야구에 진출했지만 능력에 비해 참 어렵게 야구 생애가 풀린 선수입니다.
그러나 두 번의 메이저리그 풀 시즌 동안 맘껏 실력발휘를 했고, 지난 시즌이 끝나고 제대로 예우를 받지 못하자 빅리그를 내팽개친 자존심도 아주 강한 선수입니다.
유순한 성격이지만 마운드에 오르면 투지를 불사르는 로페스는 3.19의 평균자책점으로 동료 구톰슨과 함께 이 부문 공동 5위에 올라 있습니다.
시즌 성적은 6승3패.
그러나 지난 10일 두산전에서 7이닝 1실점의 역투에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던 것처럼 승운은 따르지 않는 편입니다.
기아 타이거스의 원정 숙소에서 로페스를 만났습니다.
-시애틀과 계약한 것이 1997이었다. 만 22세였는데 다른 도미니칸 선수들에 비해 상당히 늦은 편이었는데.
▶모든 선수들이 큰 계약금을 받고 어린 나이에 계약을 하는 행운을 누리지는 못한다.
나처럼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는 야구 말고도 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나마 나는 친한 스카우트가 시애틀에서 일하게 되면서 한번의 기회를 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조차 내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시애틀에서는 기회가 없었지만 토론토로 가서 곧바로 빅리그에서 뛰게 되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 호적이 잘못돼 있었다.
내가 시애틀과 계약을 했을 때 나이가 19세로 돼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면서 내 나이가 세 살이 많아졌다.
과거에 도미니카에는 그런 일들이 빈번했다.
-촉망받는 유망주는 아니었나보다.
▶나는 아주 말랐었고, 늘 조용한 편이었다.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나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모든 것을 야구에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다.
노력을 한다면 하늘이 도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2002년 겨울에 룰5 드래프트로 토론토로 옮긴 후 2003년에는 빅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했는데. 마무리로 뛴 기록도 있었다.
▶스프링 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자 로스터에 들어갔다.
그런데 마무리이던 캘빔 에스코바가 선발을 원해 마무리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나와 클리프 폴리스가 경합을 벌였는데 토스카 감독이 나를 마무리로 선택했다.
(로페스는 72경기에 나서 14세이브에 평균자책점 3.32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2004년에는 빅리그에서 거의 뛰지 못했다.
▶그 해는 집중을 하지 못하고 엉망의 시즌을 보냈다.
스프링 캠프 마지막 날까지도 감독은 내가 마무리라며 준비를 잘하라고 했다.
그런데 시즌 첫 등판에서 나를 6회에 투입했다.
깜짝 놀랐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총 7이닝인가 던지고는 나를 마이너로 보냈다.
누군가 부상을 입으면 나를 빅리그로 부르기도 했지만 등판 기회는 18이닝인가가 전부였다.
-부상은 아니었나.
▶그건 전혀 아니었다.
야구를 하면서 단 한번도 부상자 명단에 오른 적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늘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천주교신자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고 선하게 사는 좋은 사람들의 세상을 믿는다.
늘 신에게 감사하며 산다.
-그 후 다저스, 필리스, 로키스 등을 옮겨 다녔는데.
▶2005년에 다저스와 계약을 했다.
스프링 캠프에서 성적이 아주 좋았다.
내 당시 계약은 3개월짜리였다.
당시 트리플A 감독이 제리 로이스터였는데 3개월이 되도 빅리그에서 나를 부르지 않자 나는 새 기회를 찾아 떠나겠다고 말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아주 아쉬워했지만 내 요구를 받아주었고, 그렇게 FA가 된 후 1주일 후에 로키스와 계약을 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로키스에 합류했다.
합류한 첫날 경기에서 4이닝 6삼진 1실점으로 좋은 경기를 했는데 그 경기 후에 로키스는 곧바로 나를 웨이버 공시했다.
-그건 정말 드문 일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었나.
▶당시 로키스는 포수를 영입하려고 했고, 레드삭스에서 뛰던 켈리 쇼팩 트레이드를 했다.
그들은 40명 로스터에 자리가 필요했고, 내가 밀려난 것이다.
그런데 쇼팩 트레이드가 깨지고 말았는데 로키스는 나를 원했지만 웨이버에 오르자마자 필리스가 나를 데려갔다.
그런데 필리스가 나를 마이너로 보내자 로키스 단장은 내가 필요하다면서 도로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트리플A에 1주일 쯤 있다가 필리스에 합류했고, 남은 시즌 3개월 동안을 빅리그에서 던졌다.
그리고 다음 해 캠프에서 상당히 잘 했지만 결국은 개막전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필리스 단장이 나를 싫어했던 모양이다.(웃음)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당시 단장은 팻 길릭이었다.
정말 좋은 분이긴 했는데 이상하게 시애틀 때부터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캠프 마지막 날 두 명의 마이너리그 선수와 트레이드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갔다.
그러나 파드레스에서도 트리플A에서만 뛰었고 3개월 반 쯤 후에 방출됐다.
말린스와 몇 팀에서 연락이 왔지만 메이저리그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난 도미니카로 돌아갔다.
그리고 야구를 몇 개월 쉬었다.
-야구를 포기하려고 한건가.
▶그건 전혀 아니었다.
두 달 정도 쉬고 윈터리그가 시작돼 곧바로 다시 피칭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장말 희한한 일이 발생했고, 나는 다시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수 있었다.
-희한한 일이라니 궁금하다.
▶하루는 야구장에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스카우트가 왔었다.
그런데 다른 도시로 급히 이동을 하면서 스피드건을 운동장에 두고 갔다.
내가 그것을 발견해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 일요일에 집에서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내가 스피드건을 보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스카우트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때가 2007년 초, 2월이었다.
그런데 그 스카우트는 시즌을 준비할 시기인데 집에 있는 나를 보고 팀이 없느냐며 깜짝 놀랐다.
윈터리그에서 내가 던지는 것을 봤던 그 스카우트는 곧바로 팀에 연락을 해보겠다며 우리 집을 나섰다.
그리고 3시간 후에 전화가 왔다.
일단 마이너 캠프에 합류하고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뛸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타이거스 캠프에 합류한 것이 2월말이었다.
그리고도 희한한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또 다른 일이 있었나.
▶내가 필리스 트리플A에 갔을 때 짐 라몬트 씨가 감독이었는데 그 분이 타이거스의 순회 코치로 있었다.
그런데 트리플A 캠프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라몬트 코치가 왔다가 나를 발견하더니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마이너에 오래 있을 선수가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2주 후 개막 때 실제로 내 이름이 빅리그 로스터에 들어있었다.
마운드에 오르면 투지를 불사르는 로페스는 기아의 우승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습니다.<사진=스포츠조선>
-그런데 2007년보다 2008년에 빅리그에서 풀타임으로 활약을 했다.
그런데도 디트로이트와 재계약을 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2008년 로페스는 디트로이트에서 48경기에 투입돼 4승1패 3.5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나를 원했지만 개런티 계약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조정신청 자격이 있기 때문에 상당한 액수를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디트로이트는 스플릿 계약을 원했다.
그건 옳지 않았다.
내 나이가 34세인데 그런 식의 계약서에 사인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나보다 못한 투수들도 훨씬 좋은 계약들을 맺었는데 그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다고 보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난 늘 조용한 편이었고 불평도 늘어놓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마 내가 너무 조용하고 순하니까 그런 식으로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기아 타이거스에서 오퍼를 했고, 그래서 결단 내렸다.
-기아와는 어떻게 연결이 된건가.
▶예전에 기아에서 뛴 래리 서튼이 도미니칸 윈터볼에서 스카우트를 했다.
그가 중간에서 소개를 했다.
-과거 동양에 온 적이 있는지. 큰 결정인데 걱정이 되지는 않았는가.
▶한국이고 일본이고 이쪽에 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와보니 한국이 훨씬 좋다.
사람들도 모두 친절하고 선수들도 똑같이 대해준다.
메이저리그는 꼭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한국은 처음이지만 인연은 있었다.
-무슨 인연을 뜻하는지.
▶시애틀의 마이너리그에서 뛰면서 추신수, 백차승과 동료로 지냈다.
추는 아주 유쾌하고 정말 좋은 타자다.
백은 조용하지만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보면 나도 그랬지만 추나 백도 시애틀에서는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었다.
참 좋은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경기 때 최희섭을 만난 적도 있다.
내게 큰 홈런을 쳤었는데 이제 동료가 됐다.
-지난 몇 년간은 계속 구원 투수였는데 기아에 오면서 선발이 됐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2003년 메이저리그에 처음 올라간 이후로 계속 구원 투수로 뛰었지만 윈터리그에서는 늘 선발이었다.
지난겨울에도 선발 투수로 뛰었고, 난 그 자리가 훨씬 편하고 나를 더 나은 투수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빅리그에서도 롱릴리프를 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한국 야구에 적응하는 데도 문제가 없었던 것 같은데.
▶시즌 초반에는 정말 어려웠다.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좁아서 경기를 풀어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화도 많이 났다.
그러나 빨리 적응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한국 심판들은 모든 타자들에게 똑같은 스트라이크존을 적용한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강타자들에게는 훨씬 후하다. 한국 심판들은 그것이 공정하다.
그리고 정말 좋은 타자들이 많은 것도 어려웠다.
베어스의 50번(김현수), 18번(김동주), LG의 33번(박용택) 이런 타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 뛰어난 타자들을 상대하면 정말 좋은 공이 아니면 잡아내기 어렵다.
한국 프로에는 까다로운 타자들이 아주 많다.
-고향 이야기 좀 해 달라. 빌라 알타그라시아에서 태어났다는데. 형제들은 많은가.
▶내 고향은 산토 도밍고에서 차로 30분 정도 북쪽에 있는 도시다.
아주 작지는 않지만 대단히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나는 5남2녀 중에 끝에서 두 번째다.
-형들도 야구를 했나.
▶4명의 형들은 아무도 야구를 하지 않았다. 아마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형들은 매일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해야 했다. 나도 8살 때부터 형과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했다.
매일 벌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이었다. 집은 허물어져 가고 천장에는 구멍이 숭숭했던 기억이 난다.
도미니카의 빈민들은 정말 어렵게 산다.
-그런데 어떻게 혼자만 야구를 했나.
▶나는 어려서부터 야구를 너무 좋아했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도 야구를 아주 좋아하시고 저녁마다 야구를 보시곤 했다.
그리고 집에서 3분 거리에 야구장이 있었는데 거기에 ‘펠리스 로아 야구학교’가 있었다.
20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나이별로 팀을 이뤄 야구를 배우고 경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돈을 내지 않았기에 그 야구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로아 아저씨는 우리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돈을 내야 했다면 나는 야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애틀과 계약을 맺을 때까지 거기서 야구를 했다.
오전에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고 오후엔 학교를 갔다가 끝나면 야구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농장에서 일하고 곧바로 야구를 하러갔다.
지금은 내 아들이 그 야구 학교를 다닌다. 이젠 내가 그 야구학교에 모든 장비며 여러 가지를 지원해주고 있다.
-자식은 몇인가.
▶셋이 있다. 큰 애 브라이언은 야구를 하고, 2살 된 딸과 갓난쟁이 아들이 있다. 브라이언은 야구를 아주 잘 한다.
내야수인데 아마 메이저리그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정도다.
-첫째랑 둘째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브라이언은 원래 내 형의 아들이다. 그런데 브라이언이 아주 어렸을 때 이혼을 했고, 분쟁이 생겨 내가 키우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함께 키워주셨고 이젠 나의 큰 아들이다.
-한국 음식이나 문화에는 잘 적응하고 있나.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젠 문제없다. 식사도 이젠 항상 동료들과 함께 한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맛있는 것들도 아주 많다.
매운 것들은 여전히 힘들지만 그래도 많이 익숙해졌다.
-한국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특별히 개인적인 욕심은 없다. 승수는 어차피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꼭 몇 승을 하겠다는 목표는 없다.
그러나 우리 팀은 플레이오프에 나가고 우승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력이 있는 팀이고, 분위기도 좋다.
내게 이런 기회를 준 타이거스와 그리고 팬들에게 보답을 하고 싶다. 타이거스에서 오랜 기간 뛰고 싶다.
로페스는 자기 관리가 아주 철저하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빅리그 출신이라는 자존심도 대단히 강한 선수입니다.
기아의 윤기두 운영 팀장은 “힘들어할 때 마음이라도 풀어주려고 저녁 자리를 마련해도 맥주 한 두 잔이면 딱 그만하고 자리를 일어나는 친구다.
프로 의식이 대단하고 야구에 모든 것을 맞추는 대단히 모범적인 선수다.”라고 말했습니다.
비오는 날 홀로 운동장으로 달리는 아퀼리노 로아 로페스의 모습은 그가 어떻게 그 험한 길을 뚫고 오늘날까지 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배울 점이 참 많은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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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슴이 찡하네...담에 석민선수 줄꺼 몇개 빼돌려서 로페즈 줘야겠어...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