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일하게 팝송을 들으면 괜히 벅차 오르는 감동과 함께 눈물샘이 유난히 자극되는 노래가 한곡있다.
미모의 팝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이 불러 빌보드 챠트에서도 상위권을 한동안 유지했고, 뮤지컬의 천재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Don"t cry for me Argentina 다.
이 노랫소리에 묻어 나오는 에바의 피끓는 정열과 죽어서도 영원히 식지 않는 그녀의 조국애 앞에 정작
대한민국 국적의 나도 이러한데, 당사자들인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으로 중남미의 역사에 관심을 갔게 된건 1985년 남미 경제 위기가 찾아 왔을 무렵이었다.
1982년 영국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한 포클랜드전쟁에서 승리할 때만 하더라도 난 고등학생이였기에
이들의 전쟁은 입시라는 큰 관문 아래 별다른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밀려났지만, 대학 2년차가 되던 해 터진
남미 경제 위기는 나의 지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세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 측의 식량을 제공하며, 세계 식량 생산의 보고가 되며 세계 5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음했던 아르헨티나. 팜파스, 카우보이, 펭귄, 탱고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신 역시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지고 있을거란 우스갯 소리가 나올만큼 풍요로운 자원과 환경을 두루 가진 아르헨티나가 이젠 세계
1위 부도 위험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일까?
아르헨티나 역사 속에서 Don"t cry for me Argentina 의 주인공인 에바를 빼놓을 순 없다.
아르헨티나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는 삼류 나이트 클럽의 댄서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후에 라디오 성우와 영화 배우로 변신을 거듭하던 중 아르헨티나 지진 때문에 생긴 난민구호단체에서
당시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던 그녀의 평생동지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에바는 페론을 통한 또 다른 변신을 도모하였고, 페론은 젊음과 미모를 갖춘 에바에게 금새 사랑을 느낀다.
두사람의 사랑이 무르익어 결혼을 할 무렵, 날로 커져가는 페론의 정치력에 불안을 느낀 권력기관에서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체포해 버린다.
이 사태는 페론 석방 운동을 불러일으키며, 급기야 민중봉기혁명으로 까지 이어지며 결국 후안 페론은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퍼스트 레이디가 된 에바는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노동부 복지부
차관 자리를 자청한 뒤 노동자 및 빈민소외계층의 적극적인 구제에 앞장선다.
빈민구제 재정마련을 위해 에바와 페론은 여러가지 획기적인 조치를 내놓는데 그중 하나가 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교회에 대한 정부지원을 백지화하고 교회의 모든 수익에 대해 세금부화를 입법화한다. 에바의뜻은 확고했다.
" 소외계층을 챙기고 빈민구제에 앞장서야 할 교회가 정부와 담합하여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있으니, 이들
종교지도자들에게 지금까지 베풀었던 정부지원과 세금을 이제부턴 빈민층지원에 활용하겠다 " 며 종교계에
전면전을 선언한다. 우리 정치인 중에 이런 배짱 가지고 있는 인간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당시 정치세력 위에 군림하고 있던 교회의 거센 반발을 잠재우고 이 법안을 강력히 밀어 부칠만큼이나 에바의
빈민구호사업은 전국민의 폭넓은 호응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와의 악연으로 말미암아 쿠테타 이후 군사정권 시절 아르헨티나 교회는 군부를 도와
페론과 에바의 업적말살 및 진실왜곡에 앞장서고, 군사정권은 그 댓가로 에바가 제정했던 교회의 소득세법을
무효화시킨다.
그녀는 빈민구제사업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폭넓은 복지제도에도 두 팔을 걷어부치는데, 그중 하나가
유소년 축구재단을 만들어 크게 활성화 시키니 축구의 강국이기도 한 아르헨티나는 남미축구 자존심의
뿌리는 바로 그녀의 식지 않는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노동자들과 극빈자들로부터 성 에비타라는 칭송을 받으며 자나깨나 조국을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만들겠다며 사업에 몰두하던 에바는 건강상의 문제로 몇차례나 " 더 이상은 무리니 이제 쉬어야 한다 " 는 주치의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 내가 할 일이 많은데 편히 쉴 시간이 어디 있느냐 " 며 강행군을 계속한다.
강풍에 홍수가 범람해도 예약된 골프모임이 취소될까 걱정하는 우리네 정치인들아, 좀 보고 배워라!!!
결국 강행군을 계속하던 그녀는 쓰러졌고, 아르헨티나 전국민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과하고 33살의 꽃다운
나이에 짧지만 굵은 생을 마감한다.
살아 생전 자선사업에 매달리게 된 동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 이것이야말로 내 존재의 이유이며, 박애정신
이나 단순한 자선 사업이 아닌 양극화된 사회를 평준화시켜 빈부상호 결속을 강화 시키기 위함이다" 라고 밝히며 "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는 것이 준엄한 내 삶의 좌우명이다 " 고 하였다.
일부 무식한 경제학자들이 아르헨티나의 경제 악순환을 두고 그건 에바가 주도한 빈민구제 사업에 그녀가
무작정 정부 지원을 쏟아부어 경제를 망가뜨렸다고 하지만, 그건 정확한 공부도 안하고 일부 보고서만 인용한
무식함과 태만함의 산물이다.
페론은 이미 집권 전 정부로부터 물려 받은 80억 달러의 외채를 안고 가고 있었고, 실제로 페론과 에바의
집권기간 동안 아르헨티나 경제는 130% 수준의 성장세를 기록하였고, 개인소득은 200% 이상 증가하였다.
에바가 그토록 숙원했던 부의 재분배는 결국 노동자들과 일반 국민들이 노력은 전혀 안하면서 감 떨어지기만
기대하는 식의 게으름으로 인해 결국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이나 임금 인상 등을 전제로 노동자 계층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지만, 이들은 실제론 자신들의 힘있는 노조원들을 위해서만 나서고 있지 정말 막노동이나 허드렛일로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진정한 노동자들의 대변인 역활은 외면하고 있다.
나라경제는 어려운데 목표한 생산량도 채우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성과금을 지급하라며, 생떼를 쓰며 상경한
노동자들아! 그게 너희들만의 잔치지 정말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잔치니...?
너희들 진짜 언제 인간될래?
대통령 궁 앞에 모여 Don"t cry for me Argentina 를 눈물로 불렀던 에바와 아르헨티나 국민들 처럼 되지 않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때 개개인의 욕심과 사견만을 앞세우는 이들에게 에바의 숭고한 조국애를
받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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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옳으신 말씀~ 부익부 빈익빈의 지금 현실이 안타까울 뿐.
주신글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좋은글이군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참 좋은 글입니다..에바 같은 정치인의 나라 사랑 하심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