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계획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우르크와 같은 도시에서부터 고대 로마,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수나라와 당나라의 장안, 이를 모방한 신라의 금성(경주시), 바둑판식 계획도시였던 발해의 상경용천부, 일본의 헤이얀쿄, 그리고 조선의 한성(서울) 등, 도시계획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건축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현대사회에서는 그야말로 기존의 도시까지 갈아엎는 재개발을 통해 철저한 도시계획이 많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도시가 동경이다.
해안가 늪의 작은 마을이었던 곳을 도꾸가와 막부는 에도를 건설하고 지금의 동경이 되었다.
도시계획(都市計劃)은 도시의 건전한 발전과 균형 있는 정비, 시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의 이용, 도로 및 철도의 확충, 공원이나 편의시설 설치, 주거지구 배분 등을 자연발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정부의 인위적이고 체계적인 계획하에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의 도시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도시계획을 등한시하고 생각 없이 도시를 방치하게 되면 난개발이 된다.
난 개발의 대표적인 곳이 서울 달동네 개발을 비롯하여, 지금 전국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구 도심 개발이다.
"그거 벽돌이 멋있어요?"
"색깔 입히고 강화 벽돌입니다"
아침에 나와서 담배를 피고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원룸 옆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쌓고 있다.
묵호의 구 도심 발한지구 노후화 개선 사업이라고 써붙혀 놓았다.
내 질문에 인부는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그들의 일 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인다. 내가 사는 옆에서 공사가 한창이고 아침에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동해시 부곡동 발한동 일대가 정부의 도시 재생 사업에 채택이 되고 그 사업의 일환이다.
도시는 새롭고 거대하게 발전하지만, 이면에는 낡아지고 뒤떨어지고 사라지는 것들도 많다.
새롭고 거대한 것이 탄생하면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안타까워 하고 어떻게든 살려볼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다.
보수정부는 그것을 부수었고 진보정부는 살려볼려고 한다.
부수어낸 그곳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건물들에는 새로운 가치가 매겨지고, 국민총생산은 상승한다.
이것을 우리는 경제 상승이라고 부른다. 진보정부가 새롭게 고친 곳도 보수정부가 세운 건물보다는 작겠지만 또 새로운 가치가 매겨진다.
완전히 부수는 것과 적게 부수는 차이일 뿐이다.
혹시, 그대로 나두는 것은 어떨까. 폐허가 되고 빈집이 생기고 그러면 집값 땅값이 떨어질거다.
우리는 틀림없이 그것을 낙후된 지역 경제라고 부를 것이다. 정부는 또는 사람들은 마치 그곳을 더러운 시궁창을 보듯이 또는 환부를 힘보듯이 창피해하고 안타까워하고 미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은 살고 살 수 있다. 그곳에 살아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도시는 결코 번듯하고 잘난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다. 가난하고 못나고 힘 없는 사람도 살아야 하고 살 수 밖에 없다.
언젠가 내가 써 놓았던 글을 대신해서 옮겨온다.
86 아시안 게임, 88 서울 올림픽을 위해 얼마나 많은 달동네를 도시 개발 한다면서 그들을 내쫒았던가. 그들의 달동네를 부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외국 사람들에게 서울의 더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였다.
박정희 산업화 시대, 시골에서 잡초 처럼 쑥쑥 뽑혀서, 그들은 시골의 빈농에서 도시의 빈민이 되었다.
그들이 갈 곳은 달동네 무허가 판잣촌. 시골의 삶보다 나아진 것은 약간의 돈.
도시는 점점 거대해져가고 빌딩은 높아져 가는데, 그들은 점점 초라해져 갔다. 아니, 더욱 높은 곳으로 밀려 올라갔다. 달 동네로.
90 년대 중반인가. 텔레비젼 드라마로 [서울의 달]을 재미있게 봤었다. 달 동네에서 벌어지는 서민들의 이야기인데, 지금은 그런 리얼리티가 가득찬 드라마는 보기 힘들다.
도시형 현대판 신파가 가득찬 저질스런 드라마만 화면 가득 차 있을 뿐.
서울의 달동네 이야기는, 그 속에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다.
가난한 삶 속에 풋풋한 휴머니즘. 휴머니즘이 리얼리티로 살아나고, 그 속에서 그들은 서울의 자본주의를 지켜주는 작은 실핏줄이었다.
동맥경화에 걸려 버린 서울을 진정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그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있었다.
가끔 서울로 올라가 지하철을 타면, 열차 안에서 난장을 치는 장삿꾼들을 본다. 나는 그들의 상품을 어김없이 사준다.
그들의 아이디어 상품보다,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는 그들의 몸부림이 예술에 가깝다.
리얼리티는 바로 그들이었다. 순식간에 천원짜리 몇 장을 손에 움켜쥐고 다음 칸으로 향하는 그들의 등 뒤에 항상 박수를 보냈다.
도시는 그들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도시는 계획을 하면서 그들을 떠나보낸다.
더 외진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더 어두운 곳으로.
도시계획이 그 동안 보여준 것은, 부동산 투기와 건설 재벌의 이익 뿐이었다.
그들은 도시의 진정성을 모르고 있다. 도시는 항상 깨끗하고 정리된 것으로만 있어서는 안된다. 도시는 더럽고 천박하고 힘 없고 왜소한 것과 같이 있어야 한다.
도시의 풍요로움이 유지되자면 그러한 빈곤한 것들이 같이 있어줘야 한다는 것을 도시계획자들은 모르고 있다.
자본주의 난장판인 도시에서 착취할 것이라고는 도시의 빈민이다.
부자들은 그들을 내쫓고 더이상 누구로 부터 착취를 할 것인가.
이제, 도시계획이란, 부유층과 권력층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수 많은 방법 중에 하나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도시계획은 필요없다.
도시에 단 하나 남은 휴머니티 공동체 달 동네가 사라지면 도시는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로 남을 뿐이다.
멕시코의 콜로니아 프롤레타리아, 페루의 바리아다, 튀니지의 구어비빌, 인도의 부스티, 터키의 게세콘두, 베네수엘라의 란초.등 모두 서울 달동네의 다른 이름들이다.
마지막으로 바바라 워드의 페루의 바리아다를 연구한 결과를 읽어보자.
“이곳에서는 혼란과 붕괴를 찾아볼 수 없다. 폭력적인 경찰 진압에 맞선 공유지 점거는 고도로 조직적 양상을 띠고 있고, 내부에 정치조직이 있어서 해마다 선거를 치른다. 수천명의 주민들은 경찰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공공설비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지만, 질서를 유지하며 더불어 살아간다.
점거 초기에는 짚으로 집을 짓지만, 곧 벽돌 집과 시멘트 집으로 바뀐다.
여기에 들어가는 노동력과 재료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만 달러는 될 것이다.
취업률, 임금, 식자율, 교육 수준은 도심의 스럼보다 높으며, 전국 평균보다 높다. 범죄, 청소년 비행, 매춘, 도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좀도둑은 좀 있지만, 도시의 다른 지역에 비해 낮은 것 같다.”
묵호항을 내려다 보고 있는 논골담길은, 전국에서 오징어 때문에 몰려온 사람들이 무허가 집을 짓고 살던 곳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그대로 살고 있고, 동해시는 그곳을 아름답게 꾸며 놓았고, 이제는 확실한 동해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첫댓글 묵호가 갈수록 화려해지네요...하루숙박비가 150만원인곳도 있으니...
그래요? 처음 들어봐요
@장성열 묵호에 다니면서 펜션 에어비앤비 호텔등 숙박시설 30군데 정도 이용했는데 최근의
변화가 가장큽니다 강릉씨마크온돌스위트와 오사카리츠칼튼 재패니스스위트
인천 송도신도시의 오크우드 펜트하우스에 육박하는 묵호의 여름성수기 가격입니다
@한지현 그럼 팬션 가지 말아요. 묵호 시내 오면 싼 여관들 많아요
@장성열 가격을 책정하는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겠죠 몸이 건강하면 게스트하우스도 괜찮겠지만
여관은 가본적이 없어서..묵호의 숙박시설에 대한 경제학자의 관점으로 연재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