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바위 전설
거대한 한강 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순간 상큼한 향기를 느끼게 되지요. 그러면 거기에 멈추어서 느릿느릿 비~잉 한 바퀴 둘러보는 게 좋아요. 방금 푸른 산을 넘어온 바람과 인사도 나누어야 하지만 이제 곧 푸른 잔디처럼 팔베개를 하고 누운 멋진 휴식의 도시를 만나게 될 테니까요.
우선, 이 푸른 도시를 가로질러 온 두개의 물줄기에게 말을 걸어보는 일도 잊지 마세요. 이 강물은 깊고 넓은 호수나라에서 술렁이는 수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이야기 박사에요. 호수를 지나온 친구들은 누구나 그 동안에 들었던 신기하고 재미있고 또 슬픈 이야기를 나누느라 깊은 밤이 되도록 ‘두런두런’, 아니 새벽녘이 되어야 잠드니까요. 이 강을 춘천 사람들은 소양강이라 부릅니다.
시냇물처럼 사이좋은 춘천사람들은, 강 넘어 서쪽으로 섬처럼 보이는 마을을 박사마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박사님을 가장 많이 낳은 마을이라는 뜻이지요. 그 마을에 가면 푸른 물결 속으로 그림자처럼 일렁이는 건물 하나가 보일 거예요. 바로 거기가 푸른산초등학교랍니다. 이름이 좀 이상하다 구요? 학교를 가보면 절대로 그런 생각 안하게 되죠.
나지막한 산언덕에 잠자리처럼 걸터앉은 푸른산초등학교는 우람한 소나무로 둘러 싸여 있어요. 학교 운동장 정면에서 바라보이는 산이 장군봉이랍니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 같은 장군봉 옆으로 바람에 날려 살짝 비껴난 치맛자락처럼 휘어진 산줄기가 하나 이어지는데 그 끝에 애기봉이 있지요. 초등학교는 애기봉 위에 세워진 것이랍니다.
학교 옆으로 흐흐는 폭 넓은 소양강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배가 뽈록한 붕어섬이 있습니다. 그 섬은 사람이 아무도 살고 있지 않지만 해마다 마을 노인들은 배를 타고 건너가 메밀을 심었습니다. 그래서 6월이면 그 섬 전체가 하얀 꽃섬이되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용바위전설이랍니다.
“야~ 거기가면 용이 누워 있던 자리가 있대. 정말이야!”
아이들은 용바위 이야기만 나오면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인태도 할머니로부터 용바위 전설을 들었습니다. 용바위 전설은 할머니한테 처음 들었지만 아빠도 어렸을 적에 들은 이야기라면서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똑 같이 들려 주셨습니다. 아빠뿐만 아니라 이 동네사람들은 모두 다 용바위전설을 믿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이요?’ 하고 물으면 이 동네 사람들은 ‘옛날 옛날에 말이야......’하면서 용바위전설을 들려 주셨습니다.
장군봉은 학교 운동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높은 봉우리를 말하는데 그 봉우리는 마치 무엇을 감싸기 위해 어깨를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용바위 동굴이 있는 작은 봉우리는 장군봉의 어깨에 감싸인 것처럼 아늑하게 보입니다. 용바위전설이 진짜라면 옥황상제의 배려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용’이 살던 곳이니까요.
“하하하....... 너 알아?”
아이들이 웃음소리는 장군봉을 향해 굴뚝처럼 솟아올라 용바위 동굴에서 머물곤 했습니다.
“옛날 옛날에 용바위에 이무기가 살았대”
“아니야. 용이 살았다고 했어. 그러니까 용바위지”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키 작은 아기가 지지 않고 대들었습니다.
“아니야. 이무기가 본래는 용이었는데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이무기가 됐대”
“아니야! 우리 할머니가 용이랬어.”
“이무기가 용이라니까.”
“이무기가 왜 용이야? 말도 안 된다 뭐”
“아이참!”
아이들의 이야기는 곧바로 동굴까지 올라와 빈 동굴 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아이참! 아이참! 아이참! 아이참! 아이참.......”
유독 바람기 많은 메아리처럼 아이들의 목소리가 뱅뱅 술래잡기를 했습니다.
“그럼 너 왜 우리 학교 이름이 푸른산초등학교인지 알아?”
키 큰아이는 ‘아무기가 왜 용이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면서 키 작은 아이에게 또 다시 당당하게 물었습니다. 아이의 목소리는 씩씩하고 용감했습니다.
“......”
키 작은 아이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습니다. 그렇지만 지지 않으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 푸른산 밑에 있으니까 그렇지”
“아니야!”
아이는 세도라도 부리는 듯 멋지게 좌우로 한 번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럼?”
“우리학교는 본래 산에 붙어있었어.”
“왜?”
“왜가 어딨냐. 붙어있었으니까 붙어있지.”
“......”
“우리학교 소풍갈 때 비가 왜 오는 줄 알아?”
“용, 아니 이무기......”
그 애는 이번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산이 자르고 길을 만들어서 신령님이 화가 나셨대”
“신령님도 있어?”
“그러~엄!”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컸습니다. 의기양양했습니다.
“너 우리학교 소나무 알지?”
“어.”
“그 소나무 몇 년 묵은 건지 알아?”
“몰러”
“그거 천년 묵은 거다.”
“천년?”
“그래. 그 소나무를 자르면 이 동네가 다 물에 잠긴대”
“왜?”
“우리학교 잣나무 있지?”
“그건 몇 년 묵은 건지 알아?”
“몰라.”
“우리학교는 나무를 베면 큰일이 난대.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도 안돼”
“왜?”
“나무가 죽으니까?”
“쓰레기를 버리면 안돼?”
‘그럼’하고 대답하면서 아이가 길가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키 작은 아이도 얼른 그 옆에 있는 쓰레기를 주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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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무지개 그리고 풀벌레이야기
1) 씨앗 구름
“용을 본 적이 있니?”
옛날 옛날에 옥황상제님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용이래. 입에는 여의주라는 구슬을 물고 삐쭉삐쭉한 날개를 가진 뱀. 아냐 뱀이라고 하면 큰일 나. 구렁이? 아니 그 것도 안 돼. 발가락 하나가 어른 코끼리 코만 하고 덩치는 우리 학교만큼 긴~~뱀! 어이쿠! 무서워. 생각만 해도 몸이 오싹한다니깐.
용이 하늘나라에서 살 때 말이야. 그러니까 징그러운 뱀이 아니고 옥황상제님 아들이었을 때는, 용이 멋있고 잘 생긴 사람이었다는 거야. 힘은 또 얼마나 센지,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용 혼자 끌기도 했고, 수레를 등에 지고 날개 달린 말처럼 뛰어가기도 했다지 뭐야. 하늘나라에 사는 선녀들은 용을 한 번 만나는 게 한 평생 소원이기도 했대. 이제 이해 가니?
용의 인기는 나날이 더했어. 성인식을 마치자 하늘 사람들은 옥황상제님보다도 용을 만나고 싶어 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였을 거야. 옥황상제님께서 용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기로 했지. 힘센 청년이 되기도 했지만 인기가 그 정도로 많아졌다면 용도 이젠 중요한 일을 할 만큼 큰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었거든. 그래서 맡게 된 것이 인간의 세상에서 비를 뿌리는 것이었어.
비를 뿌리는 건 하늘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 하늘은 구름위에 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늘 구름으로 가려져야 하지만 구름이 너무 많아지면 맑은 빛을 낼 수 없고 구름이 너무 적어지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땅처럼 하늘세상은 없어지는 거야. 하늘과 땅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주는 온통 까맣게 타버리게 되지. 그러니까 하늘은 구름을 조금씩 인간세상과 나눠 갖아야 하는 거야. 하늘에서 내리는 구름을 사람들은 ‘비’라고 하지.
옥황상제가 용을 데리고 구름언덕으로 갔어. 시범을 보이는 거야. 옥황상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마치 제사를 지내는 듯 엄숙하게, 옆에 있는 용에 대하여 신경도 쓰지 않았어. 뒤에 서있는 용도 꼼짝하지 않았어, 아버지 옥황상제가 그 마지막에 구름 주머니를 톡톡 털어 보일 때까지 눈도 깜짝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비를 내리는 일은 그만큼 신중해야 하거든.
‘비를 내리는 일은 하늘과 땅을 함께 살 수 있게 하는 오직 하나 뿐인 방법이야.’ 구름언덕을 내려오며 옥황상제가 입을 열었어. 아주 근엄하게 말씀하셨지. 용은 아무 말 없이 고대를 끄덕였어. 구름 언덕에서 옥황상제를 보았다면 누구든 그랬을 거야. 구름을 내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 알았을 거야.
용이 구름을 내리는 날이 되었지. 그 날은 하늘아이에서 이슬의[신]이 되는 일이기도 했어. 신이 되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거였어. 물론 신이 되는 일 보다는 서로의 세상을 살리는 일이었기에 더 신나는 일이었지만 말이야.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구름을 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이슬의 신이라고 한다는 것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구름의 신’이라고 해야 하잖아. 그렇지?
그런데, 구름을 다스리는 신은 따로 있어. 구름들이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돌보기도 하고 아픈 구름이 생기면 치료도 해 주지. 그럼, 구름을 떼어서 비를 뿌리는 건 또 뭐냐고? 그래 그게 궁금하지?
비를 내리는 것은 구름 씨앗을 뿌리는 거야. 하늘나라에는 구름 씨앗을 솎아내는 천사들이 따로 있었어. 천사들이 고르는 구름씨앗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라. 아무리 수다스런 천사도 그 것에 대하여 말하진 않았어. 천사들은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땅처럼 펼쳐져 있는 구름 속을 헤집고 구름의 씨앗을 하나하나 솎아 냈지.
구름의 씨앗은 둥근 타원의 모양을 하고 있는 두꺼운 가죽주머니에 담겨졌어. 두꺼워 보이는 구름 씨앗 주머니를 콕콕 눌러보면 솜처럼 폭신폭신했어. 물론 그래야겠지. 씨앗 구름을 보호하려면 딱딱해선 안 되지. 그리고 하늘세상에서는 [비]라는 말 대신 [이슬]이라는 말을 쓰지. 하늘나라에 ‘비’라는 건 없으니까. 그러니까 용은 ‘이슬의신’이지.
드디어 구름을 내리는 날이 되었어. 이슬의신이 된 용이 느릿한 걸음으로 구름산 위에 도착했어. 가장 먼저 눈부시게 빛나는 흰색의 날개를 가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에서 용은 직접 구름씨앗 주머니를 안아 내렸어. 옥황상제도 그랬어. 옥황상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씨앗주머니를 안은 채로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는 거야.
용은 곧게 세워진 다른 한쪽 다리에 씨앗구름주머니를 기대 세우고 기도를 했어. 어떤 기도를 했을까? 그건 모르겠어. 눈을 감고 있던 용이 살며시 씨앗주머니를 감싸 안았어. 눈을 감고 씨앗주머니에 귀를 대자 안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아직 날개옷을 다 펴지지 않았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용은 아무 말 없이 씨앗주머니를 가볍게 쓰다듬었지. 옥황상제님이 왜 씨앗주머니를 그렇게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는지 알 것 같았어.
“고마워요. 후후후 ”
얼마나 더 그래야 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준비가 끝나면 다시 무슨 이야기인가 들릴 거라고 생각했어. 그냥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마음속으로만 말했지.
잠시 후에 주머니 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왔어. ‘아하~’ 느낌이 왔지. 용은 준비를 신호하듯 주머니를 톡톡 건드려주었어. 용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누구나 ‘어머나!’하고 감탄했을 거야. 그 순간, 주머니 속에서 투명한 연기 같은 것이 피어나기 시작했거든. 그런데 그건 연기가 아니야. 땅 끝으로 향하는 구름씨앗의 날개인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씨앗 주머니가 홀쭉해졌어. 가슴이 오히려 뿌듯해졌지. 날개를 달고 있는 씨앗구름이 서로서로 손을 잡는 게 보였거든. 땅 끝까지는 먼 여행이야. 심심하니까 이야기 동무도 필요할 거야. 용은 그렇게 이해했어. ‘안녕~! 다음에 또 만나!’ 꿇고 있던 무릎을 세우며 용이 말했어. 손잡고 있던 씨앗구름들도 되돌아보면 손을 흔들었어.
“잘했다. 내 아들. 역시 내 아들이다. 진작 네게 맡겨도 좋을 것을 그랬어. 그게 옳았어. 허허허”
옥황상제의 칭찬을 들으며 용도 흐뭇했어. 아까 말했지만 그 후로 용은 ‘용’이라는 아이에서 [이슬의 신]이야. 이 소식은 그날로 하늘 세상에 쫙~ 퍼졌지. 이슬의신님!, 이슬의신님이 되었대. 천사들은 수다쟁이처럼 떠들고 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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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지개를 보다
천사들은 누구나 부지런했어. 구름 씨앗을 솎아내는 천사들도 예외가 아니었어. 잠시도 쉬지 않고 구름 위를 밟고 다녔고 별들은 천사님들의 주변을 돌며 땅 끝으로 간 구름씨앗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전해 주곤 했지. 씨앗구름 아무개는 태평양으로 들어가 짠물과 사랑에 빠졌다는 둥. 누구누구는 게으름만 피우다가 흙탕물이 되었다는 둥
그런데 요즘 들어서 부쩍, 구름 씨앗의 소식 중에 슬픈 이야기가 많아졌어. 처음엔 연꽃이 피어있는 웅덩이로 갔는데 그만 연꽃마저 시들어 버린 시궁창이 되었다는 둥, 가난한 사람의 일을 도우려고 공장으로 흘러갔는데 그 곳엔 악취가 너무 심해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는 둥, 이 게 다 세상 사람들의 욕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거야.
저수지로 간 어떤 친구는 울면서 말했지. 깊은 밤중에 어떤 사람이 와서 시커먼 친구들은 밀어 넣더라는 거야. 어두운 밤이라 처음엔 친구인 줄 알았더니. 미끈거려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츠려야 했데. 딱정벌레처럼 달라붙는 느낌이었다는 거야. ‘왜 이럴까?’ 날이 밝았을 때는 머리에 온통 기름 덩어리. 다시는 하늘을 볼 수 없다고 울고 있더라했어.
엄청나게 많은 가축의 똥물 속에 섞어 숨을 쉴 수 없어 죽어 버리는 빗물도 있고, 콱콱 쏟아지는 독약을 섞여 결국 병들어 죽는 빗물도 있대. 그렇게 되면 다시는 수증기가 되어 구름 씨앗으로 돌아 갈 수가 없어.
“살릴 수 없을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천사들이 가끔씩 한 숨을 쉬었어.
“정말로 온 몸이 푸릇푸릇 한 거니? 많이 아파하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도?”
가끔은 일을 멈추고 별과 눈을 마주친 천사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지, 별들의 눈에 고여 있는 눈물은 말할 것도 없어.
“보고 싶어. 그 부드럽던 살결. 빛을 따라 반짝이던 해맑은 눈동자. 그 애가 죽어 가다니.......”
여기까지 말하면 모두들 말을 잇지 못 했어. 아주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지. 그럴 때마다 천사들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졌지. 열심히 일을 하는 동안은 슬픔도 잊을 수 있으니까.
구름씨앗주머니가 채워지면 천사들은 먼저 별들에게 신호를 보냈어. 그 신호는 ‘잠시 뒤에 씨앗 주머니를 옮길 예정이 랍니다’ 라는 뜻이야. 이 신호를 받은 별들은 서둘러 용이 머무는 궁전으로 달려갔어. 용의 침실 옆에는 새로 깔아 놓은 양탄자가 있는데 별들은 천사보다 먼저 달려가 이 양탄자 위에 별 바구니를 만들어야 하거든. 물론 구름씨앗을 올려놓을 바구니지.
비가 오기 직전에 세상이 어두워지는 걸 너도 알지? 그 건 바로 별들이 궁전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해님도 별님바구니를 구경하러 오든 걸. 해님만이 아니야. 하늘나라의 모든 것들이 천사님들까지도 총 천연색 폭죽처럼 반짝이는 별님바구니를 구경하러 오지. 그러니 세상은 캄캄해질 밖에.
이슬 신이 구름씨앗 주머니를 가지고 나오면 하늘 궁전에선 축제가 열려. 해님도 달림도 함께 어울려 춤을 추지. 비 오는 날 천둥소리를 들은 적 있니? 그 건 북소리야. 천사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크다거나. 노랫소리가 너무 커지면,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겠어? 그러면 축제를 주관하는 해왕성이 큰 북을 치는 거야.
“우르릉 쾅!”
우리에겐 그렇게 들리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아. 다 함께 치는 박수소리 같은 거야. 누군가가 착한 일을 했을 때 다 함께 쳐주는 박수소리. 하늘나라는 신나는 일이 많으니까 박수도 많이 치지. 그러면 해남도 별님도 달님도 달님 귀에서 구경하던 토끼도 마주보고 웃으며 인사를 하지.
“번쩍~”
웃음이 많은 하늘사람들이 한꺼번에 웃어 보이면 얼굴이 너무나 환해져서 눈이 부실 정도야. 특히 해님의 웃으면 입이 귀에 걸려. 얼굴의 절반이 웃어 보이면 모여 있던 하늘사람들은 비명을 지를 정도야. 웃을 때 세상 사람들도 그 절반은 눈이 작아지는 거. 그게 다 하늘에서 배운 거라니까. 번개는 웃음이 번진 크기를 말하는 거야.
용이 비를 뿌리게 된 것도 1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는 어느 날이었어. 그 때까지도 용은 여전히 착하고 성실한 이슬의 신이었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구름씨앗주머니를 접으려는데 주머니 속에서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거야.
“차라리 무지개와 함께 사는 게 좋겠어.”
용은 깜짝 놀랐어. 주머니가 다 비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였어. 고개부터 갸웃했지.
“무지개와 함께?”
“예. 씨앗 구름으로 뽑히는 건 영광이지만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다운 곳이 아닌 것 같아요.”
“왜?”
“세상 사람들이 너무 욕심이 많아졌어요. 처음엔 비로 내려 더러워진 세상 사람들의 몸을 닦는 일도 즐거웠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많은 친구들이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오물 때문에 생명을 잃어 다시는 하늘나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쯧쯧.......”
“지금 내가 떠나야 한다면 무지개의 그물망에 걸려 하늘과 땅 사이를 기웃거리더라도 아름다운 무지개님과 함께 있다면 슬프지 않을 거예요.”
“무지개?”
이슬의신이 말했어.
“예. 무지개님과 함께 지내는 편이 나아요.”
“무지개님?”
“예. 그 대신 난 다시 이곳으로 돌아 올 수 없을 거예요”
“왜?”
“무지개님은 하늘나라에 올 수 없는 분이거든요. 그 분 옆에 살려면 하늘에도 땅에도 살 수 없어요. 공중에 떠 있어야 해요. 슬픈 일이지만 차라리......”
“시간이 없단다. 소원이면 그렇게 하도록 해라.”
이슬의신님이 말 엉덩이를 채칙하 듯, 씨앗주머니 끝을 톡!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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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지개를 만나다.
처음 듣는 말이라서 용은 어리둥절해졌어.
“내가 무얼 도와주면 되겠니? 너희들은 어디에 있는 거니?”
용은 씨앗 주머니를 들어 툭~ 치며 말했어.
“엄마야~”
그 순간 구름 씨앗들이 한꺼번에 세상 밖으로 확~밀려나갔어.
“으이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거야. 용은 단지 씨앗구름을 다 보낸 뒤에는 씨앗주머니의 엉덩이를 한번 툭! 쳐 주어야 한다던 옥황상제님의 말씀대로 했을 뿐이었거든. 그런데 너무 성급했나봐. 투명한 구름 씨앗이 아닌 시커먼 구름 덩어리가 되어 한꺼번에 쏟아진 거지.
‘실수를 했어. 큰일 났군’하고 후회했지만 머리가 어질어질할 뿐 씨앗 구름은 날개를 펼 사이도 없이 저 땅 끝으로 내동댕이쳐지듯 떨어져 나갔어. 시커먼 회오리바람이 그 뒤를 따랐지.
“아~~아 어쩌면 좋아.”
그제야 아버지 옥황상제께서 주머니를 접어 어깨에 얹을 때까지 신중해야 한다던 말씀이 생각났어.
"어쩌면 좋지?"
용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씨앗구름이 떨어져 나간 검은 구덩이를 멍하니 바라보았어.
“아~~ 미안해. 미안해 ”
아마도 한 참을 그렇게 중얼거리며 멍하니 서 있었나봐. 어느새 검은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어. 그런ㄷ 말이야 눈앞에 뭔가 아른거리는 게 보였어. 이상한 일이야. 땅 끝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 한줄기가 솟아오르는 거였어.
“무지개?”
무지개는 말이야. 땅위에서 씨앗구름을 보호하는 천사였어. 용이 실수로 씨앗구름을 떨어트린다면 무지개는 구름산 바로아래서 쉬고 있다가 그물망을 던져 구름씨앗들을 구하는 거야. 그러나 그렇게 건져낸 구름씨앗은 하늘도 땅도 아닌 공중에서 무지개와 함께 살아야 하지.
“안녕하세요?”
무지개가 먼저 인사를 했어. 눈을 몇 번 깜박거리자 서서히 용의 눈으로 일곱 색깔 무지개가 선명하게 피어올랐지.
“당신이 바로 무지개군요.”
용은 그 때까지도 어리둥절할 뿐 뭐가 뭔지 분간 할 수 없었어. 그러나 무지개의 모습은 너무나 황홀한 모습이었어. 하늘나라에서 가장 멋지다고 소문난 용을 보고 무지개도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 둘이는 단번에 서로에게 반해버렸지 뭐야. 그럼 무지개도 사랑을 하느냐고? 글쎄 그건 나도 몰라.
그날 이후. 용은 씨앗 구름을 보낼 때마다 하늘 아래의 세상을 기웃거렸어. ‘혹시나 무지개가 나와 줄까? 안녕하세요? 하고 무지개가 인사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혹시 무지개가 나왔다가 구름 속에 가려진 용을 발견하지 못하고 무지개가 나왔다가 그냥 가버리면 어쩌나!’
“무지개를 만난지 얼마나 되었지?”
자꾸만 무지개가 보고 싶어지는 거야. 구름씨앗을 보내는 날이면 용은 종일토록 구름언덕에서 떠나지 않았어. 그러나 무지개를 만나기 위해 강제로 구름 씨앗들을 밀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야.
“너희들도 무지개를 아니? 너도 무지개를 만난 적이 있니? 무지개가 보고 싶지 않니?”
용이 가끔 구름 씨앗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어.
"아~~가엽은 무지개"
그 짧은 시간동안 무지개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용을 몹시 슬프게 했어. 무지개의 날개는 너무나 얇게 하늘거려서 한 여름의 따뜻한 햇살 속에서 한 시간을 이상 견디지 못하지만 날씨가 조금만 시원해져도 견딜 수 없다는 거야. 무지개는 피부가 너무나 약해서 바람만 스쳐도 몸이 굳어버리는 상처를 입고 조금만 추워도 살얼음처럼 깨져 버리기 때문이지.
“그럼 넌 어디에 살고 있니?”
“저~어기”
무지개가 푸른 숲 쪽을 가리켰어.
“인간 세상?”
“예. 언젠가는 저도 다시 하늘나라 와서 구름씨앗....... ”
"그럼 너도 천사?."
무지개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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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지개의 추억
“아!”
용이 탄성을 질렀어.
“오랜만이에요.”
무지개도 얼굴을 붉혔지.
“잘 있었어요?”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는지 용은 구름 아래로 손을 내려 무지개에게 악수를 청했어요. 그렇지만 무지개는 입가에 미소만을 지으며 살며시 웃었어요.
“무지개님을 만나다니. 꿈만 같아요.”
무지개를 용은 너무나 반가워 눈에 눈물이 흐르려는 걸 억지로 참았어요. 그러나 기쁨도 잠깐. 무지개가 파랗게 변하는 거예요.
“다시 떠날 때가 되었나 봐요. 좀 추워요.”
얇은 무지개 옷이 하늘거리고 있었어요. 부드러운 무지개의 살갗도 파르르 떨렸어요.
“왜 그래요?”
“나는 본시......”
무지개가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하늘에는 두개의 구슬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누가 무엇을 하였는지 과거와 미래를 다 모두 볼 수 있는 동경이라는 구슬이고 또 하나는 여의주라는 구슬인데 여의주는 하늘나라에서 지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망원경 같은 것이라는 군요. 달님만한 이 두개의 구슬은 모두 옥상상제님이 거쳐 하시는 방의 동쪽에 나란히 있답니다.
옥황상제님은 땅의 사람이 하늘 세상으로 오면 그 동안 착하게 살았는지 아닌지를 이 거울을 통해 알게 되지요. 그 외에도 또 있어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임당수에 몸을 던지 효녀 심청이 이야기나 제비의 다리를 부러트리고 얻은 놀부의 박씨 속에 도깨비이야기도 잘 알고 있어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도 옥황상제님께서는 잘 알고 계시고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는 하늘나라에서도 즐겨듣는 세상이야기랍니다.
구슬이 세상 이야기를 건져 내는 것은 ‘반짝’거리는 힘에 있다고 해요. 먼지 하나 없이 맑은 얼굴로 반짝일 때 바로 세상 이야기 하나가 건져 올려 진답니다. 물론 옥황상제님의 지시를 받기는 해요. 그러나 필요한 이야기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구슬이 늘 깨끗하게 닦여져 있어야 해요. 무지개가 바로 옥황상제의 궁에서 이 구슬을 청소하는 천사였다는 군요.
무지개는 하루에 한 번 구름신을 신고 왕궁으로 들어가 구름실로 만든 작은 수건으로 구슬을 닦았어요. 사실 구슬을 닦는 건 먼지를 터는 일도 아니고, 구슬을 빡빡 닦는 일도 아니에요. 한 팔로 구슬을 껴안듯이 감싸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야 한다는 말이 더 정확해요. 아주 느린 동작으로 아픈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는 것처럼 살살.
구슬을 닦을 때는 눈을 감아야 했지요. 구름씨앗을 보낼 때 이슬의신이 눈을 감는 것처럼. 그랬어요. 아마도 하늘 세상에서는 중요한 일을 할 때 눈을 감고 느낌으로 하는 가 봐요. 어디를 더 닦아야 빛이 나는지. 그 건 보아서 아는 게 아니라 느낌으로 알아요. 처음부터 골고루 빼 놓지 않으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 날도 무지개천사는 옥상상제님의 방으로 갔어요. 마음을 먼저 안정해야 해요. 사람들의 경기는 빨리는 것밖에 없지만 오토바이 느림보 대회가 있는 것처럼 느리게 하는 게 더 어려울 때도 있거든요. 천사도 그랬나 봐요. 조용한 마음으로 동경을 감싸 안았어요. 딱딱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 동경을 안았을 때 그랬다는 군요. 다음은 여의주.
여의주를 닦으려는데 처음 들어보는 맑은 소리가 들렸어요. 노랫소리 같기도 하고 악기소리 같기도 했어요. 천사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귀를 열었어요.
“아이참! 아이참! 아이참! 아이참! 아이참.......”
바람기 많은 메아리처럼 아이들의 목소리가 뱅뱅 술래잡기를 했어요.
“그럼 너 왜 우리 학교 이름이 푸른산초등학교인지 알아?”
무슨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하늘의 언어가 아니었거든요. 천사는 일하던 손을 먼추고 살며시 눈을 떴어요.
“아!”
하늘 저 아래 세상이 환하게 보이는 거예요.
“우~하하하 만세! 이겼어!”
어떤 꼬마아이가 깔깔거리며 웃었어요. 그런데 아이의 주변에 빛나는 환한 그 빛은 하늘세상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이었어요. 달님의 빛도 해님의 빛도 아니었어요. 그럴 거예요. 해님이 세상에 빛을 내릴 때는 프리즘을 통해 일곱 색깔로 반짝인다는 것을 무지개가 알 리가 없잖아요. 무지개의 눈이 점점 커졌겠죠.
“흠 흠”
옥황상제가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무지개는 세상구경을 하고 있었어요.
“흠. 어흠”
“앗! 죄송합니다.”
무지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옥황상제가 여의주에 비춰진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함께 본 뒤였어요. 놀란 무지개는 머리만 조아렸어요.
“내가 네게 눈을 감으라고 한 것은 네가 여의주를 통해 세상을 보아선 안 된다는 것이 아니고 인간세상의 일을 간섭하려 들지 않기를 바라서 그랬느니라.”
“죄송합니다. 저는 단지.”
“그래. 괜찮다. 하늘 사람은 땅을 동경하고 땅의 사람은 하늘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세상의 빛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세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얼마나 해맑은 소리인지 들었겠지만 잊어버리고 네 할 일에 열중 하도록 해라. 세상에는 행복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단다. 그 속에도 다 슬픔이 있게 마련이지 ”
“알겠습니다. 제왕님”
무지개는 무릎을 굽힌 채로 말했지. 천사들에게는 너그러운 옥황상제였어. 그래서 그런가봐 천사들은 옥황상제라 부르지 않고 ‘제왕님’이라 불렀지. 그러나 옥황상제는 혀를 ‘끌끌~’ 찼어. 무지개가 땅의 세상에 대한 환상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옥황상제가 알고 있었던 거야.
“ 제왕님께서 용서를 해 주셨을 때 전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그만.......”
무지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슬의신이 그런 무지개를 바라보았을 때 무지개의 몸은 거의 다 녹아내리고 없었어.
“이봐요, 무지개!”
“아! 저는 이만....... 세상을 꼭 한 번 보고 싶어요. 단 한 번만이라도.”
무지개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었어. 이슬의신도 다시는 무지개를 볼 수 없었지. 다음 해 여름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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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사병
이슬의신이 무지개를 다시 만난 건 가을이 지나고, 긴 겨울을 보내고 그리고 봄이 지난 후였지.
“이봐요 무지개. 보고 싶었어요”
무지개가 얼굴을 붉혔지.
“그대의 형벌이 너무 과 하다는 걸 알았소.”
무지개는 대답 대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얼굴을 더욱 붉혔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의주와 함께 지냈소. 세상의 일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오.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 벌하지 않았다오.”
“이슬의신님. 저는 하늘의 법을 어겼어요.”
“무슨?”
“어느 날이었어요. 나는 제왕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또 다시 여의주를 보고 말았죠. 그런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울음소리?”
“예. 너무나 슬픈 소리였어요. 나는 그애를 가만히 바라보았죠. 알고 보니 그 애는 엄마를 잃고 우는 거예요.”
“엄마?”
“예. 제가 알기로는 땅의 세상에서 엄마는 제왕님과 도 같아요.”
“그렇지 그 건 나도 아는 이야기요.”
“더구나 아이에게 엄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에요. 이상한 일이지만 땅의 사람들은 ‘엄마’가 있나 없나만 가지고도 행복하다고 해요.”
이슬의신은 왼 손으로 오른쪽 팔 뒷꿈치를 받치고 오른 팔을 세워 검지손가락으로 턱을 괜 채로 고개만 끄덕였어요.
“그래요. 그런 엄마를 세상의 아이가 잃은 거예요.그애의 울음소리는 나의 가슴을 찌르는 듯했어요. 여의주를 통해 나는 그애의 슬픔을 고스란히 받고 있었어요.”
“그랬겠군요”
“나는 엄마를 잃은 꼬마아이가 너무나 불쌍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얼른 여의주를 놓고 하늘 세상으로 오는 길목으로 갔어요. 그 애의 엄마가 누군지는 잘 알아요. 그래서 병든 그 애 엄마를 돌려보내고 말았지요.”
“으응?”
“그래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그 애는 평생 엄마를 돌봐야 했어요. 그 뿐인가요. 엄마에게 병이 옳아 평생 온 몸이 일그러진 채로 살아야 했어요.”
“아니 그럼.”
“예. 나중에야 땅의 세상을 간섭하지 말라 하시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 때는 이미....... 흑흑”
“아~......”
“그 애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
“내가 그 아이의 생을 망쳐놓았어요.”
“엄마가 없어도 그 애는 불행했을 거요”
“그렇지만 병이 옮아 그런 흉측한 모습으로 살지 않았을 거예요.”
“아~~”
“내가 바보였어요. 그 애를 돕고 싶었는데....... 어리석었던 거예요. 제왕님께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결국 나는 그 애를 당쳐 놓았지요.”
“......”
“그 애를 돕고 싶었어요. 내가 땅의 세상에 살게 되었다면 나는 그애를 찾아 갔을 거예요. 반드시”
“그 건 하늘의 뜻이 아니라오. 하늘은 세상의 일을 참견하지 않아요. 구름 씨앗의 여행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게 전부에요.”
“그렇지만 땅의 세상을 처음 보던 그날, 제가 제왕님께 부탁드렸다면 땅으로 보내 주셨을 지도 몰라요. 나는 세상을 보았고 내가 본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무지개님은 아름다운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모른 거예요”
“그랬어요. 그냥 하늘세상처럼 평화로운 줄로 알았죠. 제가 누구를 간섭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무지개님 마음이 너무 고와서 그래요.”
“아니에요. 제왕님께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겠다고 빌었었거든요. 그래서 용서하신 건데 제가 그만 또.......”
“하늘 세상에서 용서란 없다고 했어요. 당신을 땅의 세상도 하늘의 세상도 볼 수 없는 이 런 곳에 살게 한 것도 엄청난 형벌이지요.”
“이슬의신님! 그래도 나는 행복해요. 세상의 빛을 바라볼 수 있어요. 내가 아름다운 그 빛을 흉내 낼 수 있도록 제왕님께서 허락하셨어요. 다만 여름 한철 나는 오랫동안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에 금방 숲으로 돌아가야 하죠.”
“그 것 뿐인가요?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다면 사철을 살 수 있을 거예요.”
“땅의 나라에는 하루살이라는 것도 있다고 들었어요. 평생 하루밖에 못산다고 했어요. 난 그보다 나아요. 여름 한 철만 잠시 살아도 하루만 살고 죽는 하루살이 보다는 나아요. 영원히 살잖아요. 아~ 숨이 차요.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
“무지개님!”
“이슬의신님 너무 걱정 말아요. 또 만나요”
“무지개! 내가 그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하겠소.”
“아니에요. 없어요. 이슬의신님 뵈어서 행복해요. 살아 잇는 동안 번만이라도 땅의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면, 아니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마~ㄴ”
“무지개님! 무지개님!”
이슬의신이 애타게 불렀지만 무지개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한 채로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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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씨앗 구름 회의
어느덧 여름도 거의 지나가고 있었어.
‘다시는 무지개를 만날 수 없겠군.’
구름언덕을 거닐며 용이 중얼거렸어. 용은 웃음을 잃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쏘다니는 거야.
“이슬의신님이 왜 저러시지?”
걸음을 멈추고 멍~~ 하니 서 있는 용을 보며 씨앗구름이 말했어.
“글쎄”
씨앗구름들이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지.
“큰일이야.”
“맞아. 우리는 씨앗구름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아시면서.”
“아서! 이슬의신님은 저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도 우리를 위해 산을 오르시는 거 몰라?”
“그건 그렇지만”
“혹시 무지개 때문이 아닐까?”
“무지개?”
“맞아. 나도 들었어. ‘무지개를 보았니?’ 가끔 이슬의신님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셨어.”
“맞아. 맞아 나도 들었어.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어요. 이러다 이슬의신님께서 앓아누우시면 우리는 어쩌죠?”
“우리가 여행을 포기해야지. 우리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있은 거니까.”
“안돼요. 그럴 순 없어. 차례를 지켜야 해요.”
“아니야. 우리가 날짜와 주어진 시간을 정한 거잖아. 여행 시간만큼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고 다른 친구들도 다 그래. 우리가 차례만을 고집한다면 우리와 다른 시간을 선택한 다른 씨앗들이 모두 시간을 바꿔야 할 거야. 한 바탕 난리가 날 거야.”
“그래도....... 흑.”
어린 씨앗이 울음을 터트렸지.
“너무 슬퍼하지 말자. 이슬의신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따로 정해 주실 거야. 우리 조용히 이슬의신님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자.”
“......”
씨앗구름 사이에 얼마나 긴 시간이 침묵으로 흘렀는지 모르겠어.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했지.
“씨앗 구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100년 동안 기도하며 살았어요. 아무리 힘든 일도 꿋꿋하게 견뎠지요. 이슬의신님이 앓아 누워버리면 우리뿐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여행을 포기해야 할지 몰라요. 다시 100년을 기다리며.......”
“나도 씨앗 구름이 되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도 참을 수 있었죠”
“그래요. 이슬의신님께서 그걸 모를 리 없어요. 병이 나서 이슬의신님이 지금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혹시 여행을 다니시면서 이슬의신님과 같이 마르는 병을 앓는 이를 본 적은 없나요?”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기도하는 수밖에......”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가만히 앉아서 이슬의신님의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이런 방법이 어때요?”
그 말에 모두들 귀가 쫑긋해 졌어.
“만약 이슬의신님이 무지개님 때문에 병이 났다면 방법이 있어요. 그 대신 우리 중 몇 명이 희생해야 해요. 무지개님을 부르려면.......”
“무지개요?”
“그래요. 무지개님을 부르는 거예요.”
“어떡해요?”
“우선 내가 앞장서겠어요.”
“어떤 일을 하려는 거죠?”
“이슬의신님께서 무지개 때문에 병이 났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무지개를 부르는 거예요”
“어떡해?‘
“무지개를 부르려면 희생이 필요해요. 손톱만한 크기로 우리가 뭉쳐 회오리 계곡으로 뛰어드는 거예요.”
“회오리 언덕?”
“그래요. 불랙홀.”
“어머나!”
불랙홀이라는 말에 씨앗구름 몇몇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
“겁먹을 건 없어요. 누구나 어려움을 해결하며 살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회오리 계곡으로 가기로 한분은 뛰어 내리는 순간 날개를 펴선 안돼요. 겁먹을 필요가 없어요. 무지개는 반드시 둥그런 망을 던져 우리를 건져주죠.”
“정말요? 휴~~”
“그래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죠?”
“그 다음은 조금 슬퍼요.”
“......”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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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지개를 부르자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나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나요?”
누군가가 또 물었지.
“그 다음은 조금 슬퍼요.”
“......”
또 다시 말을 잇지 못하던 씨앗구름이 다시 말을 이었어요.
“우리가 검은 회오리로 뛰어 들면 일단은 무지개님이 우리를 구해주실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는 땅으로 내릴 수도 없고 하늘로도 돌아 올 수 없게 되겠지요. 무지개를 도우며 우리는 우리가 구름씨앗이 되기 위해 기도한 것보다도 더 긴~~ 세월동안을....... 공중에 떠서 살게 되죠.”
“우린 다시 못 만나요?”
“아마도......”
“아~ 그건 너무 가혹해요. 우리가 무지개님을 불러낸다고 해서 이슬의신님의 병이 낫는다는 보장도 없어요.”
“아기 구름 씨앗님!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 있으면 우리 모두는 영원히.......무지개보다도 더 오랜 세월을 이대로 살아야 할 거예요. 지난 온 세월만큼 온갖 시련을 견디며 또 다시.......”
“......”
“자. 자. 저를 따르실 분은 이 쪽으로 모여주세요. 지금까지는 이슬님이 우리를 도와주셨지만 이번엔 우리가 이슬의신님을 도와드려야 해요. 그러지 않는다면 더 많은 구름씨앗 친구들이 여행을 포기하고 옷갖 시련을 겪으며 살게 될 거예요. 우리가 해결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끝나자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던 씨앗주머니 속에 전등이 켜 진 듯 환하게 밝았어요. 그러나 진자 전등은 아니에요. 무엇이든 씨앗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지만 이렇게 필요에 따라서는 마음의 불빛을 밝혀 서로를 알아 볼 수 있게 되죠.
“아니에요. 우리가 이렇게 많을 필요는 없어요. 발아래를 보세요. 제가 서 있는 동그란 칸에 들어 있는 씨앗님만 남아 주세요.”
그러고 보니 발아래 벌집모양의 육면체가 그어져 있었어요.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두 번째 여행이랍니다. 400년을 살았어요. 제와 함께 가실 분 중에 첫 여행이신 분은 금 밖으로 나가주세요.”
몇몇 씨앗님들의 움직임이 보였어요.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소나기라 부른답니다. 우리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내리면 세상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을 잃기도 해요. 그러니까 신중해야 해요. 씨앗구름이 되는 것은 하늘과 땅이 서로를 조심씩 나누는 일이예요. 그러니 함부터 할 수 없어요. 여기 손을 잡고 계신 분만 남고 모두들 제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흑흑.......미안해요.”
누군가의 낮은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아니예요. 이 건 누가 시켜서 하는 일 아니잖아요. 게다가 난 두 번이나 여행을 다녀왔어요.”
“저도 두 번째예요.”
“저두요”
“저는 한 번”
이렇게 씨앗구름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시간. 아무 것도 모르는 용은 힘없이 구름 언덕을 뚜벅뚜벅 올라갔어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용은 살며시 눈을 감고 한쪽 무릎을 꿇었지.
용은 곧게 세운 씨앗 주머니를 감싸며 사랑스럽게 볼을 대었어.
“안녕 씨앗구름님. 무지개를 만나면 안부 전해 줘. 그리고 돌아오면 내게도 무지개의 안부를 꼭 전해 주어야 한다.”
이슬의신님의 말이 시작되자 서로들 얼굴을 바라보았어. 확신할 수 있었지. 이슬의신님은 분명 무지개 때문에 병을 얻은 거야.
이슬의신님의 말이 끝나자 구름 씨앗들이 하나 씩 날개를 펴기 시작했어. 씨앗 구름이 날아 갈 때는 투명한 연기처럼 보인다고 내가 말 했었지? 이 번에도 변함없이 그랬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구름씨앗주머니는 홀쭉해져갔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나봐. 구름 주머니가 빈 것처럼 보였어. 그렇지만 그 속에는 씨앗구름 몇몇이 줌 죽이고 있었어. 한꺼번에 검은 회오리 구름 속으로 뛰어내리려는 특공대야.
이를 알리 없는 이슬의신님은 천천히 눈을 떴어. 끓었던 한 쪽 무릎을 펴고 곧게 세웠던 다른 한 쪽 다리를 일으켰어. 그리고 이슬의신님은 의심 없이 주머니의 엉덩이를 툭! 쳤어.
“이 때야!”
누군가가 소리쳤어. 그 순간 검은 회오리가 지나갔지. 한 움큼의 구름씨앗이 검은 회오리 속으로 뛰어 내린 것도 동시였어.
“이~크”
이슬의신님이 놀라 한 발을 뒤로 물러선 것. 엄청난 회오리바람 때문에 헤어지지 않으려고 잡은 씨앗구름들은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참아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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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구슬을 훔치다.
무지개를 만나는 순간 이슬의신은 눈을 크게 떴어. 꺼져가고 있던 목소리도 반가움으로 넘쳤지.
“반가워요. 무지개님”
“어머나 안녕하세요? 수척해 지셨군요.”
“아하~”
이슬의신은 오른 손으로 얼굴을 몇 번 문지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었어.
“올 해는 여름이 빨리 왔어요. 다른 때 같으면 어림없어요.”
“나도 씨앗구름들에게 들은 이야기 인데 세상 사람들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어떡해요?”
무지개는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했어.
“하늘 세상과 땅의 세상을 나누는 구름판에 구멍이 많이 났다고 해요. 씨앗구름들의 말했는데 예전에는 구름씨앗 주머니에서 나가면 곧바로 여행의 시작이었는데 요즘은 땅에 내릴 때까지 긴장해야 한데요. 하늘 아래 검은 수렁이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조심하지 않으면 검은 회오리로 한꺼번에 빠져 들어 흙탕물이 된데요. 그렇게 되면 더러운 물로 흘러들기 일쑤죠.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다며 씨앗구름들도 걱정이 많아요.”
“어머나 그렇군요.”
“사람들도 잘 못을 잘 알아요. 사람들은 구름판을 오존층이라고 하더군요. 제왕님도 이 것 때문에 걱정 하세요. 씨앗구름들도 술렁이고......”
“그 아이는 어떻게 살까? 그 아이도 나쁜 아이가 되었을 까요?”
“잊어 버려요. 더 이상 그 아이의 일을 참견하지 말아요.”
“그렇지만.......”
그러나 무지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어. 온 몸이 다 놓아버릴 지경이었거든. 무지개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은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는지 ‘안녕’이라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떠났지.
무지개를 보내고 왕궁으로 돌아온 이슬의신은 여의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어. 이슬의신이 여의주를 통해 세상을 보는 건 늘 있는 일이야. 어려서부터 보아온 일이니까 별일이 아니야.
세상의 아이들이 운동회를 하고 있었어. 운동장 맞은편에 있는 산 중턱에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는 늘 이 동굴까지 올라와 빈 동굴 속에서 맴돌았지.
“하하하......”
“아~~저 소리는.”
이슬의신이 흠칫 하고 몸을 움츠렸습니다. 몸이 얼어붙는 듯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무지개가 들었다는 그 소리가 저 것일까?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쌍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가 있다면 바로 이 소리일 거야......!”
이슬의신은 혼자 중얼거렸어. 정말이야. 세상에서 들여오는 악기소리였어.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동굴 앞에서 또 한 번 메아리 쳤어.
“아~~무지개님이 저 웃음소리를 들었던 거야.”
이슬의신은 더 이상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정신마저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까르르 까르르.......”
“아~ ”
이슬의신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어.
“어엇!”
용이라면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이슬의신은 조금 헷갈리기도 했어. 그렇지만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지.
“너 알아? 이무기가 왜 용이 되었는지”
키 큰아이는 ‘여의주가 무엇인지’ 설명도 못하면서 키 작은 아이에게 묻고 있었어. 아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씩씩하고 용감했지.
“......”
키 작은 아이도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어. 그렇지만 지지 않으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지.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옥황상제의 아들이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이 세상에 내려왔는데 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하늘나라로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도 올라가지 않았데. 그리고는 그 아들은 이 세상에서 살게 해 달라고 맨날맨날 옥황상제한테 울면서 빌었데. 그래서 할 수 없이 옥황상제가 허락했다나봐”
“야!......”
진영이는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 할 말도 없으면서 남의 말을 끊어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밤이 되면 몰래 옥황상제와 아들이 만난대. 그래서 비가 오는 거야.
“그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용바위에 용이 아직도 산다는 말이야?”
“그 건 모르지만......”
“나두 용바위에 올라갔을 때 용귀신이 나올까봐 무지무지 무섭더라.”
“용귀신?”
“응! 용은 이 세상에 없는 동물이니까”
“그럼 왜 비가 오지?”
“우리 할머니는 옥황상제가 이 세상에 있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우는 거래. 너무나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린대”
“그런데 왜 그게 하필이면 우리학교 소풍날이야?”
“글쎄?”
거기까지는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어.
“하여간 우리 학교 운동회 전날 밤에 비가 오잖아. 오늘도 비 올지 몰라. 봐.”
이야기를 끝낸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들 얼굴을 들어 하늘을 향했어. 이슬의신과 눈이 맞추진 거야.
너무 예뻤어. 그 순간 무지개가 생각났어. 이 아이들이라면 무지개를 행복하게 할 것 같지 뭐야. 더구나 무지개는 세상의 아이들은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고도 했었어. 이슬의신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기로 했어. 서둘러 보석 상자에 여의주를 넣었지.
“당장 무지개에게 보여 줄 거야. 무지개와 함께 살겠다고 투정하는 구름씨앗은 언제나 있었어.”
이슬의신은 구름씨앗을 뽑는 천사들을 향해 달려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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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제왕님의 노여움.
“용아!”
그러나 용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안되겠다. 일하지 않는 자는 벌레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넌 흉한 이무기가 될 게야. 그래도 좋겠느냐?”
“......”
어떤 말에도 용은 끄덕하지 않았습니다. 옥황상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모습이 다리가 털북숭이 같은 이무기로 변하였지만 용은 눈만 껌벅거릴 뿐입니다.
옥황상제는 입술을 굳게 깨물었습니다. 용을 이대로 둔다면 하늘나라의 모든 평화가 깨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해서 그냥 봐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안 되겠다 너는 지금부터 인간세상으로 가서 수많은 네 발이 닳아 가죽신이 될 때까지 땅을 기어다니 거라. 잠시도 쉬어선 안 된다. 끊임없이 기어라.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것이다”
“구슬......”
용은 그 순간까지도 구슬을 더욱 거세게 껴안았습니다. 용은 이미 구슬 없이는 단 한 시간도 살 수 없는 환자가 되어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가장 혹독한 벌인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늘사람들은 인간세계에 버려지는 것이야 말로 가장 혹독한 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용은 구슬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습니다.
옥황상제는 어이가 없는 듯 그런 용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더니 보석함을 열어 그 구슬을 용을 향해 던졌습니다. 용의 팔은 이미 털북숭이의 다리가 되었으므로 용은 입을 벌려 구슬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용은 산등성이로 오르기 시작 하였습니다. 더 이상 구슬을 보려 해선 안 됩니다. 소용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분명 ‘입 속에 구슬을 물고 있는 한 안전하다’ 하셨습니다. 구슬을 물고 있는 한 용은 불행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잠을 잘 때에도 구슬은 입에 물고 있어야 합니다. 입을 다물면 한 쪽으로 불룩하게 솟아 올라 그 고통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양 볼에 굳은살이 생기고 있는 것도 구슬 때문이었습니다. 입 안에 가시가 돋은 듯 따끔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참을 수 있습니다. 구슬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걷기로했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걸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온 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아! 구슬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아름다운 빛과 아름다운 소리, 그 향기를 다시 맡을 수 있다면......”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종일 산을 헤매다 저녁이 되면 바위위로 올라와 잠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깃털처럼 가느다란 용의 발가락은 온통 물집으로 가득했습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가느다란 발가락 전체에 피고름이 가득하게 맺혔습니다. 발가락이 아니라 만신창이였습니다.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이럴 때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렇게 고통스러운 날이 또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짙은 어둠 사이에서 용은 아름다운 빛을 보았습니다. 어스름한 새벽, 꿈이었습니다.
“아! 볼 수도 없는 것을......”
그러나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용이 가져온 이 구슬은 하늘 사람들 모두의 것이지 누구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용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용은 더 이상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발가락이 아프다고 엄살을 피우려 하지 않았고 입속에 물고 있는 구슬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면 발이 닿는 대로 기어갈 뿐입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나갈 뿐입니다. 때가 이르면 아버지는 다시 용을 불러줄 것입니다. 이미 자신의 모습이 보기 흉한 이무기가 되어 있지만 그런 것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용은 단지 구슬을 지키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햇볕이 제법 뜨거운 가을이었습니다. 용은 그날도 열심히 땅을 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처음엔 너무 작은 소리로 들렸기 때문에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가지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이 세상에 내려와 처음 듣는 소리였습니다만 분명 낯익은 소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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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무기가 되다.
“두~우~와~”
마침 동굴 앞을 지날 때이므로 용은 용바위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보았습니다. 소리는 바위 아래서 들려왔습니다. 아름다운 악기 소리 같았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잘 못들은 거야. 구슬이 내게 있는데 소리가 저 아래서 들릴 리 없어. 난 걸어야 해! 어서 빨리 구슬을 아버지께 돌려드려야 해”
바위에서 머리를 떼며 용은 발을 앞으로 내 딛었습니다.
“오~~아~”
그러나 소리가 좀 더 크게 들리자 다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굳어버린 듯했습니다. 그 옛날 구슬에서 들리던 그 소리가 분명했습니다.
용은 바위 난간에 엎드려 발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용이 머물고 있는 바위 아래는 푸른산초등학교 운동장이 부채처럼 펼쳐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옆으로 흐르는 호수같은 소양강이 하늘빛을 반사하며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아~ 저 아름다운 빛”
용은 무엇에 홀린 듯 눈을 감았습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구슬을 통해 보았던 바로 그 빛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빛이었는데 여기도 있네......”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 거렸지만 이내 돌아섰습니다. 조금 전에 들리던 소리도 확인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 이상 아름다움에 팔려 할 일을 미루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그 옛날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좋은 것은 가만히 마음속에 담기로 합니다.
“여전히~~참 아름다운 빛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막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입니다. 동굴 속에 맴돌며 조금 전에 들리던 소리가 메아리를 쳤습니다.
“우~와 하하......”
용은 다시 목을 길게 늘이고 바위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소리를 확인하지 않고는 돌아설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에는 긴 줄을 따라 연결된 만국기가 모래알처럼 반짝이며 팔랑거리고 있었습니다. 운동장 안에서는 아이들의 만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만~세! 마-안~세!”
“아~~ 저 소리!”
용이 흠칫 하고 몸을 움츠렸습니다. 몸이 얼어붙는 듯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하하......”
“아~~저 소리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구슬에서 들었던 악기소리가 바로......!”
이번에도 용은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구슬에서 흘러나오던 악기소리였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동굴 앞에서 또 한 번 메아리 쳤습니다.
“아~~아이들의 웃음소리였어.”
용은 더 이상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정신마저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까르르 까르르.......”
10년 전 구슬에서 흘러나오던 악기 소리. 아니 그 것은 악기 소리가 아니라 그 것이 아이들의 웃음 소리였습니다.
“아~ ”
용은 천천히 용바위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서서히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행복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아름다운 웃음소리를 사랑한 나머지 용은 하늘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름다운 소리를 듣기위해 아버지의 구슬을 탐냈습니다. 기어이 구슬을 가지고 와서 하늘 사람들 모두를 불행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헉!”
울음이 복받쳤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울었을 뿐입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용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꺾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너무나 슬픈 소리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오랫동안 참았던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용은 슬픔으로 희미해진 눈을 훔치고 기어가기 위해 뒤쪽을 향했던 머리를 앞으로 돌렸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코끝으로 스미는 향긋한 냄새. 산딸기 넝쿨에서 달콤한 향기가 싸하게 밀려왔습니다.
“아~~ 이 향기도 그때 그......”
용은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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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다시 풀벌레로
“아~ 내가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내 가 잘못했어.”
그러나 더 이상 머물지 않기로 했습니다. 머리를 숙인채로 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것도 잠깐이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눈부신 햇빛 때문이었습니다.
“아......”
용은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구슬로부터 나오던 그 아름다운 광경이 모두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현기증이 파장처럼 가느다랗게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아~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었어.......구슬이 아니었어. 구슬이 아니야. 구슬 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어리석은 욕심이었어.”
이미 어둠이 몰려와 땅이 보이지 않았지만 용에게 어둠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용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을 떼어 놓았습니다. 자꾸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용서 하세요.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용은 슬픔을 향해 쉬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기어나갔습니다. 길도 나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느 순간 발을 헛딛고 몸이 기울었는데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용이 절벽 아래로 까맣게 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용의 기억이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살아야 합니다. 제가 찾던 곳이 이곳이었습니다. 아버님의 구슬을 통해 보았던 곳이 이곳입니다.”
“아니다. 이곳은 네가 살 곳이 아니야.”
“아버지! 제가 찾던 곳이 이 곳입니다. 그 걸 이곳에 와서 알았습니다.”
“아니다. 너의 모습은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인간 세상에는 너와 같은 모습이 살지 않는단다.”
“제가 사랑한 것은 ......”
“......”
“10년 동안 저는 끊임없이 걸어야 했습니다만 아름다운 꽃향기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있었기에 저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곳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아버지의 나라에 가서 이곳을 그리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얘야!”
“이곳에서 저는 힘들게 살았지만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나라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슬은 하늘나라 사람들이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제가 그 곳으로 가게 되면 또 다시 이 구슬만 바라보며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하세요.”
“......”
그러나 그 순간 용의 몸은 1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한 마리의 벌레가 되어있었습니다.
“미안하다. 이럴 수밖에 없구나. 세상에 맞는 네 모습이란......”
“아버지. 저는 괜찮습니다. 부디 저를 잊으시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행복을 누리소서.......죄송합니다.”
“이제 너는 용이 아니다. 마음껏 웃으며 살아라. 그러나 나는 너를 보고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행복하게 살아라. 네가 슬프면 나는 슬퍼질 게다. 네가 울면 나도 비를 뿌리게 될 거야”
“용서하세요.”
“아니다. 나는 네가 몹시 보고 싶을 게야. 그러니 내가 슬프지 않도록 부디 행복해 다오.”
“예. 안녕히 가세요.”
용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습니다.
“얘야. 이젠 하늘을 보아도 좋다. 가끔 나를 바라봐 다오. 그리고 행복 하게 살아라.”
“예. 죄송합니다. 저도 그 곳이 그리울 거예요.”
“그래”
“죄송합니다. 흑흑......”
“하늘을 열 수 있는 것은 네 힘이다. 아들아. 이제부터는 네가 나를 불러다오.”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어지는가 싶게 하늘이 깜깜해 졌습니다. 그리고 한바탕 소나기가 퍼 부었습니다. 서서히 어둠이 걷혔습니다. 그 때까지 용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게 고여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때까지 소나기가 내리는 건 아닙니다. 용은 이미 하늘의 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풀벌레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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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무기가 되어버린 용
옥황상제는 곧장 구슬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용아!”
그러나 용은 방으로 들어오신 아버지께 정중하게 인사했을 드렸을 뿐 그대로 보석함 앞에 앉았습니다.
“용아!”
옥황상제가 다시 불렀지만 이번에도 용은 멀건이 아버지의 모습을 올려다 볼 뿐입니다.
“진정 네가.......”
말씀을 멈추고 옥황상제가 숨을 몰아쉬셨습니다.
“용아!”
그러나 용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안되겠다. 일하지 않는 자는 벌레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넌 흉한 이무기가 될 게야. 그래도 좋겠느냐?”
“......”
어떤 말에도 용은 끄덕하지 않았습니다. 옥황상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모습이 다리가 털북숭이 같은 이무기로 변하였지만 용은 눈만 껌벅거릴 뿐입니다.
옥황상제는 입술을 굳게 깨물었습니다. 용을 이대로 둔다면 하늘나라의 모든 평화가 깨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해서 그냥 봐 줄 수가 없었습니다.
“안 되겠다 너는 지금부터 인간세상으로 가서 수많은 네 발이 닳아 가죽신이 될 때까지 땅을 기어다니 거라. 잠시도 쉬어선 안 된다. 끊임없이 기어라. 내가 다시 부를 때까지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것이다”
“구슬......”
용은 그 순간까지도 구슬을 더욱 거세게 껴안았습니다. 용은 이미 구슬 없이는 단 한 시간도 살 수 없는 환자가 되어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가장 혹독한 벌인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늘사람들은 인간세계에 버려지는 것이야 말로 가장 혹독한 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용은 구슬만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습니다.
옥황상제는 어이가 없는 듯 그런 용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더니 보석함을 열어 그 구슬을 용을 향해 던졌습니다. 용의 팔은 이미 털북숭이의 다리가 되었으므로 용은 입을 벌려 구슬을 받았습니다. 순식간이의 일이었습니다.
“...... 고맙습니다”
용은 천천히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습니다. 용도 압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그 어느 것도 자신의 것이 없다는 것 말입니다. 이곳의 것은 모두가 함께 쓰고 나누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구슬을 달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구슬을 넘겨받은 것입니다.
“입에 물고 있어라 넌 오늘부터 구슬을 볼 수 없다. 절대로 구슬을 놓아선 안 된다. 명심해라 죽어도 놓아선 안 된다. 그 것이 벌이다”
“고맙습니다. 구슬만 있다면......”
어느새 용은 눈물선 눈물이 뚝뚝! 흘렸습니다.
“넌 이제부터 구슬을 볼 수 없다.”
“......”
말이 없는 용을 향해 옥황상제가 말을 이으셨습니다.
“네 입속에 있는 한 어떤 경우가 되어도 구슬은 안전하다.”
옥황상제의 목소리는 슬픔에 잠겨있었지만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어디에 있더라도 너는 세상을 보호해야 한다. 인간세상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늘의 사람이니라. 그들은 잠시 세상에 머무는 것뿐이다. 그러니 네가 어디에 있든 그들에게 해가 되어선 안 된다.”
“예. 잘 알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울지 마라. 하늘 사람의 눈물은 곧 세상 사람들에게 재앙이 되느니라”
“예. 죄송합니다. 흑흑 ”
“어허! 함부로 울지 마라. 너의 눈물 한 방울이 인간세계에서는 호수 하나를 채우는 비로 내릴 것이다. 네가 숨차게 흐느껴 운다면 그 한 번에 폭풍이 되어 버릴 것이다. 네 주변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예”
“이 세상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하늘이라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므로 네가 구슬을 탐했기에 탐한 것만큼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너는 구슬을 볼 수 없을 것이다.”
“......”
“무엇을 하기 싫다고 해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없다. 내 아들이어도 마찬가지다. 네게 주어진 일은 너 밖에 할 사람이 없다. 싫어도 참아야 하고 무엇이 좋다고 하여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 네가 좋아하는 것이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나누어야 한다. 그 것이 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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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안녕 풀벌레
용은 아니, 이무기가 된 용은 구슬을 입에 문채로 자기가 흘린 눈물을 타고 인간세상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무기가 떨어진 곳이 바로 장군봉 중턱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였습니다.
“이크!”
땅에 떨어지는 순간 몸이 공중으로 튕겨지면서 하마터면 입에 물고 있던 구슬을 놓쳐버릴 뻔했습니다. 그러나 용은 구슬에 상처를 낼까봐서 몸을 구부리며 얼른 입 안쪽으로 구슬을 밀었습니다. 그 바람에 구슬과 용의 입술이 맞물려 그만 한 쪽 입술이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용바위 위에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나는 괜찮아”
용은 속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입을 벌려 구슬을 확인하려 하였습니다. 상처난 곳은 없는지....... 그러나 구슬은 입 속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애써보지만 구슬은 입 속에서 빙빙 돌아갈 뿐입니다. 그제야 다시는 구슬을 볼 수 없다던 옥황상제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 그랬어.”
용이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다시 볼 수 없다고 했어”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용은 마음을 가다듬고 속으로 ‘구슬아 괜찮아?’하고 물어보았습니다. 혀로 입 속에 있는 구슬을 조심조심 굴려보았습니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구슬을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구슬이 상처를 입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서 미칠 것 같습니다.”
“......”
입 속에 구슬을 물고 있기 때문에 말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대답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이제부터 구슬을 꼭 지키겠습니다.”
용은 고개를 젖혀 아버지의 모습이라도 한 번 보고 싶었지만 고개는 정면으로 고정되어 있을 뿐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용이 아버지께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용은 바위에서 돌아섰지만 용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하게 고였습니다. 헉헉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이 온통 시커먼 구름에 휩싸이면서 하늘을 행하여 폭풍우처럼 구름이 솟구치더니 ‘우르릉 쾅쾅’ 소리를 내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용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아. 흑흑......”
울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이 솟아났습니다. 하늘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치고 소나기도 더욱 거세게 쏟아졌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었습니다. 슬프다고 해서 함부로 슬퍼 울지 말라 하시던. 용을 향해 ‘함부로 울지 말라’ 하셨습니다. 용은 흐느끼면서도 서둘러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러자 장군봉 위에 가득했던 먹구름도 하얗게 걷혔습니다. 그리고 장군봉 봉우리가 용을 향해 답례를 하듯 아주 조금 앞으로 숙여졌습니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용은 산등성이로 오르기 시작 하였습니다. 더 이상 구슬을 보려 해선 안 됩니다. 소용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분명 ‘입 속에 구슬을 물고 있는 한 안전하다’ 하셨습니다. 구슬을 물고 있는 한 용은 불행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잠을 잘 때에도 구슬은 입에 물고 있어야 합니다. 입을 다물면 한 쪽으로 불룩하게 솟아 올라 그 고통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양 볼에 굳은살이 생기고 있는 것도 구슬 때문이었습니다. 입 안에 가시가 돋은 듯 따끔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참을 수 있습니다. 구슬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걷기로 했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걸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온 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아! 구슬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아름다운 빛과 아름다운 소리, 그 향기를 다시 맡을 수 있다면......”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종일 산을 헤매다 저녁이 되면 바위위로 올라와 잠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깃털처럼 가느다란 용의 발가락은 온통 물집으로 가득했습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가느다란 발가락 전체에 피고름이 가득하게 맺혔습니다. 발가락이 아니라 만신창이였습니다. 고통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이럴 때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렇게 고통스러운 날이 또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짙은 어둠 사이에서 용은 아름다운 빛을 보았습니다. 어스름한 새벽, 꿈이었습니다.
“아! 볼 수도 없는 것을......”
그러나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용이 가져온 이 구슬은 하늘 사람들 모두의 것이지 누구 혼자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 구슬....... ”
용은 말없이 칡넝쿨 위로 기어갔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시던 구슬을 내가.......”
용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이 구슬 때문에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어하실까?’ 그러나 그 또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장군봉을 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용을 위하여 구슬 없이 하늘나라가 지켜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슬을 포기하면 안 될까? 아버지께 그냥 돌려드리면....... 내 잘못이야. 이대로 영원히 벌을 받아야 하더라도 이 건 내 탓이야”
그러나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옥황상제가 부르시기 전에는 구슬을 돌려드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늘의 법칙은 한 번 정한 일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분명 구슬은 구슬을 가진 주인이 지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소중한 것을 함부로 다루거나 포기해 버린다면 세상이 온통 죄악으로 변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소중한 것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다시는 탐내지 않을 거야....... 아!”
용이 크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가슴이 저리게 아파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합니다. 온 몸에 피멍이 들어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지만 걷기를 포기하진 않기로 합니다. 그 것이 구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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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무기의 슬픔
용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용은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발가락이 아프다고 엄살을 피우려 하지 않았고 입속에 물고 있는 구슬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면 발이 닿는 대로 기어갈 뿐입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나갈 뿐입니다. 때가 이르면 아버지는 다시 용을 불러줄 것입니다. 이미 자신의 모습이 보기 흉한 이무기가 되어 있지만 그런 것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용은 단지 구슬을 지키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할 뿐이었습니다.
안개가 걷힌 어느 날입니다. 그날도 용은 열심히 땅을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낯익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세상에 내려와 처음 듣는 소리였습니다만 분명 낯익은 소리였습니다.
“우~우~~”
마침 동굴 앞을 지날 때이므로 용은 용바위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보았습니다. 소리는 바위 아래서 들려왔습니다. 아름다운 악기 소리 같았습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잘 못들은 거야. 구슬이 내게 있는데 소리가 저 아래서 들릴 리 없어. 난 걸어야 해! 어서 빨리 구슬을 아버지께 돌려드려야 해”
바위에서 머리를 떼며 용은 발을 앞으로 내 딛었습니다.
“우~우~”
그러나 소리가 좀 더 크게 들리자 다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굳어버린 듯했습니다. 그 옛날 구슬에서 들리던 그 소리가 분명했습니다.
용은 바위 난간에 엎드려 발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용이 머물고 있는 바위 아래는 푸른산초등학교 운동장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 옆으로 흐르는 호수같은 소양강이 하늘빛을 반사하며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아~ 저 아름다운 빛”
용은 무엇에 홀린 듯 눈을 감았습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구슬을 통해 보았던 바로 그 빛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빛이었는데 여기도 있네......”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 거렸지만 이내 돌아섰습니다. 더 이상 아름다움에 팔려 할 일을 미루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그 옛날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좋은 것은 가만히 마음속에 담기로 합니다.
“여전히~~참 아름다운 빛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막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입니다. 동굴 속에 맴돌며 조금전에 들리던 소리가 메아리를 쳤습니다.
“우~우 우~우 하하하......”
용은 다시 목을 길게 늘이고 바위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빛처럼 아름답던 그 소리를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에는 긴 줄을 따라 연결된 만국기가 모래알처럼 반짝이며 팔랑거리고 있었습니다. 운동장 안에서는 아이들의 만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만~세! 만~세!”
“아~~ 저 소리!”
용이 흠칫 하고 몸을 움츠렸습니다. 몸이 얼어붙는 듯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하하......”
“아~~저 소리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구슬에서 들었던 악기소리가 바로......!”
이번에도 용은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정말이었습니다. 구슬에서 흘러나오던 악기소리였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동굴 앞에서 또 한 번 메아리 쳤습니다.
“아~~아이들의 웃음소리였어.”
용은 더 이상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정신마저 잃을 것만 같았습니다.
“까르르 까르르.......”
10년 전 구슬에서 흘러나오던 악기 소리. 아니 그 것은 악기 소리가 아니라 그 것이 아이들의 웃음 소리였습니다.
“아~ ”
용은 천천히 용바위 아래로 내려섰습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서서히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행복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아름다운 웃음소리를 사랑한 나머지 용은 하늘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버린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름다운 소리를 듣기위해 아버지의 구슬을 탐냈습니다. 기어이 구슬을 가지고 와서 하늘 사람들 모두를 불행하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헉!”
울음이 복받쳤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울었을 뿐입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여전히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용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꺾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너무나 슬픈 소리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과 오랫동안 참았던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용은 슬픔으로 희미해진 눈을 훔치고 기어가기 위해 뒤쪽을 향했던 머리를 앞으로 돌렸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코끝으로 스미는 향긋한 냄새. 산딸기 넝쿨에서 달콤한 향기가 싸하게 밀려왔습니다.
“아~~ 이 향기도 그때 그......”
용은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 내가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내 가 잘못했어.”
그러나 더 이상 머물지 않기로 했습니다. 머리를 숙인채로 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것도 잠깐이었습니다. 눈앞에 펼쳐진 눈부신 햇빛 때문이었습니다.
“아......”
용은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구슬로부터 나오던 그 아름다운 광경이 모두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이곳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현기증이 파장처럼 가느다랗게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아~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것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었어.......구슬이 아니었어. 구슬이 아니야. 구슬 속에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한 것은 어리석은 욕심이었어.”
이미 어둠이 몰려와 땅이 보이지 않았지만 용에게 어둠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용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을 떼어 놓았습니다. 자꾸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용서 하세요.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용은 슬픔을 향해 쉬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기어나갔습니다. 길도 나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느 순간 발을 헛딛고 몸이 기울었는데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용이 절벽 아래로 까맣게 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용의 기억이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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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하늘이 열리고
“용아! 용아!”
얼마나 지났을 까요. 하늘의 문이 떡 벌어졌습니다. 안개문가 피어나는 곳으로부터 문이 열리고 근엄한 표정으로 서 게신 옥황상제가 용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용아! 용아!”
용은 쓰러진 채로 아련하게 옥황상제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굳어버린 듯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털복숭이 같았던 발가락들도 뻣뻣한 가죽처럼 굳어 몸체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ㅂ~지!”
말도 할 수 없이 다 헤진 입으로 여전히 구슬을 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하고 소리 내었지만 아무에게도 그렇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고생 많았다. 아들아 훌륭하게 해 냈다. 이젠 내게 돌아와도 좋다”
옥황상제의 목소리도 눈물에 젖어있었습니다.
“아들아. 내 아들아.......”
그러나 용은 고개를 조금씩 좌우로 흔들고 있을 뿐입니다.
“고생 많았구나. 이리 온”
“아니에요.”
“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온 몸에 피멍이 들었구나. 쯧쯧.......”
그러나 용은 가만히 숨죽인 채로 엎드려 있었습니다.
“어서 이리로 오너라!”
“아~아버지.......”
“오냐! 얼마 만에 들어보는 목소리더냐. 너는 역시 내 아들이다. 훌륭하게 견뎠다. 아들아!”
“아버지~”
“말하지 않아도 좋다. 아들아~!”
아버지의 목소리가 빗물처럼 눈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용의 눈에서도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도 안개비가 뽀얗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너라.”
옥황상제가 팔을 내 밀었습니다. 그제야 용이 몸을 일으켰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십시오.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습니다.
“아버지. 여기 아버님의 구슬이 있습니다. 약속대로 저는 이렇게......”
용이 입을 딱 벌렸습니다. 다 헤진 입 속에서 구슬은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를, 저를 이곳에 살게 해 주세요.”
“으응?”
“저는 여기에 살아야 합니다. 제가 찾던 곳이 이곳이었습니다. 아버님의 구슬을 통해 보았던 곳이 이곳입니다.”
“아니다. 이곳은 네가 살 곳이 아니야.”
“아버지! 제가 찾던 곳이 이 곳입니다. 그 걸 이곳에 와서 알았습니다.”
“아니다. 너의 모습은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인간 세상에는 너와 같은 모습이 살지 않는단다.”
“제가 사랑한 것은 ......”
“......”
“10년 동안 저는 끊임없이 걸어야 했습니다만 아름다운 꽃향기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있었기에 저는 힘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곳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아버지의 나라에 가서 이곳을 그리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얘야!”
“이곳에서 저는 힘들게 살았지만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나라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슬은 하늘나라 사람들이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제가 그 곳으로 가게 되면 또 다시 이 구슬만 바라보며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하세요.”
“......”
그 옛날, 용이 세상으로 내려 와야 했을 때 용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만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아버지!”
“.......”
“저는 이곳에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일들을 가슴 속에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구슬을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 구슬을 가지고 가신다면 그 동안 저 때문에 보지 못한 세상의 아름다운 일들을 다시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많은 분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운 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모두 행복할 수 있을 겁니다.”
“진정 그래야만 하겠느냐? 용이 되어 다시 날고 싶지 않느냐?”
“예. 저는 이대로 영원히 땅을 기어 다녀도 허락만 해 주신다면 이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다시는 내 나라에 올 수 없어도?”
“죄송합니다.”
“지금의 네 모습이 어떤 줄 아느냐?”
“아닙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 곳에서 살고 싶을 뿐입니다.”
“......”
“죄송합니다. 아버지”
금방이라도 비가 퍼 부을 것처럼 하늘이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옥황상제의 맑은 눈이 슬픔이 가득하게 고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네가 이곳에 살려면 네 모습도 이곳에 맞아야 하느니......”
“예”
“후회하지 않겠느냐?”
“예.”
용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용의 눈에도 슬픔이 가득하게 고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용은 그 자신의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입 속 가득하게 물려있던 구슬의 무게는 또 언제였느냐는 듯 가벼워졌습니다.
“.......”
그러나 그 순간 용의 몸은 1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한 마리의 벌레가 되어있었습니다.
“미안하다. 이럴 수밖에 없구나. 세상에 맞는 네 모습이란......”
“아버지. 저는 괜찮습니다. 부디 저를 잊으시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행복을 누리소서.......죄송합니다.”
“이제 너는 용이 아니다. 마음껏 웃으며 살아라. 그러나 나는 너를 보고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행복하게 살아라. 네가 슬프면 나는 슬퍼질 게다. 네가 울면 나도 비를 뿌리게 될 거야”
“용서하세요.”
“아니다. 나는 네가 몹시 보고 싶을 게야. 그러니 내가 슬프지 않도록 부디 행복해 다오.”
“예. 안녕히 가세요.”
용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습니다.
“얘야. 이젠 하늘을 보아도 좋다. 가끔 나를 바라봐 다오. 그리고 행복 하게 살아라.”
“예. 죄송합니다. 저도 그 곳이 그리울 거예요.”
“그래”
“죄송합니다. 흑흑......”
“하늘을 열 수 있는 것은 네 힘이다. 아들아. 이제부터는 네가 나를 불러다오.”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어지는가 싶게 하늘이 깜깜해 졌습니다. 그리고 한바탕 소나기가 퍼 부었습니다. 서서히 어둠이 걷혔습니다. 그 때까지 용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게 고여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때까지 소나기가 내리는 건 아닙니다. 용은 이미 하늘의 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풀벌레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