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제5차 종주기(방축리-유둔재)
일 자 : 2007. 12. 7 - 12. 9(2박3일)
누구랑 : 나 홀로
일 정 : 첫 날 (방축리-방아재)
둘째날(방아재-유둔재)
날 씨 : 흐리고, 해.(바람 없고)
첫 날,
7일(금요일) 오후 버스편으로 광주를 거쳐 담양으로 간다.
담양경찰서 뒷편 대나무 찜질방에 하룻밤 여장을 푼다.
8일 아침 06시 30분 담양터미널에서 남원,순창행 버스를 타고, 금과면 소재지 버스 정차장에서 내린다.
<방축리 가로공원 금과동산을 찍었으나..>
<순창 - 대구쪽 이정표>
지난번 확인한 금과동산 들머리까지는 다시 되 돌아 한참을 걸어야 한다.
아직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다.
금과동산 가로공원에 도착하여 정맥길 들 차비를 한다.
스틱을 조정하고, 간단하게 몸풀기를 하고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정맥길로 들어가는 시간이 07시 10분이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걸어가자니, 좌측 개 막사에 개들이 정신없이 짖어댄다.
시멘트 포장길을 버리고, 작은 오솔길에서 두번의 좌회를 한 후, 고속도로에 살며시 내려선다.
어둑한 상태에서 마루금을 살펴보니, 우측 북쪽 방향 315봉을 향하는 마루금은 고속도로를 건너기 보다는 고속도로가 오히려 마루금 역할을 할것같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건너지 않고 가드레일을 따라 315봉 들머리까지 걷기로 한다. 인위적으로 지형이 변하면 정맥도 변해야 하는게 아닌가.
가끔씩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의 불빛을 받으며, 한참을 걷다가 마른 잡초가 엉클어져 있는 완만한 오름길의 산으로 들어간다.
완만한 오름에 이어 또 한번의 비알을 치고 오르니 오늘의 첫 봉우리 정상이다. 어둠이 걷히고 날이 밝아오고 있으나, 사방의 불빛들은 아직 잠에서 덜깬듯 히멀건하다.
오름보다는 경사도가 심한 내림길이다.
고속도로에 내려서니, 이미 날은 훤히 밝아왔고, 고속도로에 자동차도 늘어나 괭음을 내며 내 달린다.
차가 뜸한 틈을 이용하여 부리나게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낮은 절개지 둔덕을 따라 가니, 좌측 민가 뒷켠의 개막사에서 개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이놈들! 시끄럽다. 한마디 하고 계속 높아지는 고속도로 절개지 둔덕을 따라가다. 좌측으로 비스듬히 산으로 들어간다.
얕으막한 봉우리를 올라서니 넓은 묘목 재배지에 타박송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나무 묘목들이 열지어 자라고 있다.
소나무 묘목 사이를 지나서 임도를 따라가다 잠시 쉼을한다.
주인 모르게 묘목을 이식하면 민,형사간 처벌을 한다고 경고판이 세워져 있고, 묘목 내용을보니, 용송, 여주소나무, 여주목련, 벚꽃 등을 키우고 있다.
이른 봄철에 흐드러지게 피었을 목련의 앙상한 가지 넘어로 315봉의 능선이 날씬하게 뻗어있다.
<고속도로를 횡단 후, 작은 봉우리를 넘고 묘목장에서 315봉을..>
묘목장 임도가 끝나는 등로옆에 감나무 한그루가 앙상한 가지끝에 검붉은 감을 여나무개 힘겹게 달고있다. 몇개 따 먹어 볼까하고 스틱으로 휘저어 보고, 감나무를 발로 차 보았으나, 말짱 헛일이다.
궁 즉 통이라고, 스틱으로 나무가지를 하나 늘어뜨려 나무가지 하나를 손으로 붙잡아 힘껏 흔들어 대니, 감 두개가 떨어진다.
얼시구나 ~ 하고, 떨어진 감을 주워보니 까치가 벌써 한 구석에 입을 댄 흔적이 있다. 까치가 입댄 부분을 파내고 한 입 깨물어보니 쫄깃한 단맛이 입에 가득하다. 서리를 잔뜩 맞아 자연 숙성되어선지 맛이 일품이다.
까치는 맛있는 감만 골라 먹는다더니, 맛있는 무공해 감의 진맛을 본다.
까치가 먹던 감을 따 먹어 까치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러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감나무 끝에 아직 까치밥이 달려있으니 기분 나빠하지 않겠지.
입안에 가득한 단맛을 음미하며, 길을 떠난다.
마을 뒷편 시멘트포장 고개를 가로질러 민밑한 봉우리를 별 어려움 없이 올라서니, 어느새 봉황산 정상을 알리는 안내판이 싱겁게 눈앞에 나타난다.
< 어느새 봉황산>
산행 중, 싱겁다는 것은 호강에 받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장마다 꼴뚜기는 아니지 않는가. 이럴때도 있고 저럴때도 있는것이 매번 산길에서 우리내 인생길을 경험하지 않던가.
봉황산을 내려가는 길목인 임도에 이쁜 당 단풍나무 낙옆이 융단을 깔아 놓은것처럼 바닥에 깔려져 있어 그 위를 사뿐히 걷는 발걸음이 가볍기도 하다.
묘지를 지나 대나무 터널을 통과하여 마을 뒷편 포장도로에 내려선다.
지도상에 포장도로로 표시가 되어 있지 않으나, 경각간에 달라지는 도로 사정에 지도가 따라가지 못하니, 많은 곳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 순창 목동리- 담양 봉황리 고개>
특히 이번 구간에서 마을과 마을을 넘나드는 낮은 도로를 고개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낮은 마루금이라도 분수령을 이루는 곳은 고개라 정의 할 수 있을 것이다. 포장도로에 내려서서 좌우를 살피니, 담양군 봉황리와 순창군 목동리를 가르는 전라 남,북 도계이기도 하고 군계이기도 하다.
<도로를 가로 질러 서암산 들머리>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서암산 방향으로 향한다.
정맥길 좌우에 아담한 마을들이 평화롭다.
<서암산 오르면서 일목마을 전경>
이번 구간의 정맥길은 마을 뒷동산의 연속이다.
<상신마을에서 본, 좌측 산불감시초소봉. 우측 서암산>
씨멘트 포장길을 따라 완만하게 올라서니 마을 옆을 지난다.
마을과 조금 떨어져 정맥길 바로 옆에 전원주택 한 동이 시골집 답지 않게 깨끗하게 지어져 있고 정원도 그럴싸하게 가꾸어 놓고, 송지농원이라고 표석도 세워놓았다. 축사에는 사람보다 키가 큰 타조 한쌍이 뒤뚱뒤뚱 건정거리고 있다. 정원 한켠에 골프 타석도 만들어져 있는것이 도시에서 귀농을 한 사람의 집인것 같다.
<상신마을 송지농원>
마을을 뒤로하고, 높이 올려다 보이는 서암산으로 발걸음을 한다. 마을 노인들세사람이 오토바이에 제물을 실고 시제를 지내려 산으로 올라간다. 옛날과 달리 자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어 참석 인원이 없어 과일 몇가지만 준배해서 약식으로 지낸다고 한다. 임도 양쪽으로 과수원이 조성되 있으나, 가지만 앙상하니 무슨 유실수인지 알 수 가 없다.
과수원을 벗어나 서암산 오르는 길이 제법 본격적인 산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다.
모처럼 된비알을 오르려니 힘이들어 허리쉼을 하며 오던길을 돌아보니, 지난번걸어왔던 추월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산불감시 초소봉을 오르면서 지나온 추월산 마루금 # 1>
<#2>
<#3>
힘들게 정상을 오르니, 산불 감시초소가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있다.
초소는 문이 잠겨 있고, 공터에는 의자 한개가 놓여있어 발걸음을 잡아끌며 쉬어가기를 청한다.
쉬어 간 김에 아침을 먹기로 하고 자리를 펴고 인스탄트 미역국을 끓여 집에서 싸온 찬밥을 말아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지금까지 흐려있던 날씨도 햇살이 산하를 비추기 시작한다. 겨울날씨 답지 않게 포근한 기후로 산행하기엔 그저 그만이지만, 쉬는 동안 땀이 식으면, 이내 차갑게 체온이 떨어지니,아무리 날씨가 좋다지만 겨울은 겨울이다.
<산불 감시초소>
아침을 먹고 난 후, 사방을 조망해 본다. 추월산에서부터 빙 둘러 걸어왔던 마루금을 바라보니 아무리 정맥의 마루금이 물을 건너지 않는다고 하지만, 너무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추월산에서 광덕산까지의 마루금이 한눈에 보인다.
<산불 감시초소봉에서 본 추월산에서부터 광덕산까지 계속되는 마루금 #1>
<#2>
<#3>
<#4>
<#5>
파노라마 처럼 펼쳐진 마루금을 조망하며 디카에 담고, 작은 내림끝에 서암산으로 뺙쎄게 오른다. 밥을 먹고 난, 직후여서 인지 몸과 다리가 몹시 무겁게 느껴지고 숨이 차다. 지도상에는 서암산 어깨쯤에서 좌로 떨어지게 되어 있어, 어디쯤인가. 궁굼해 하면서 올라가다보니, 오로시 봉우리 정상까지 오르게 된다.
올라보니 우측 가까이에 솟아있는 봉우리 하나가 더있다. 그게 바로 456m 서암산이다. 정맥길은 서암산으로 가지 않고, 방향을 급좌하여 휘돌아 내려간다.
완만한 내림길 옆 벌목지역에 한칸짜리 조립식 집이 지어져 있는데, 지금은 인기척은 없으나, 주변의 상황이 사람이 살고있는 모양세다.
<산속에 웬 집이..>
두 곳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가로 지르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 우측으로 철망이 쳐있는 임도를 따라 걷는다.
앞에 삐쭉히 보이는 산이 설산이라고 가늠하고, 비알을 치고 오른다.
<철망 임도에서 본 설산>
설산 7부 능선에서 반갑게(?)도 우측으로 꺽여 내려간다. 무슨 연유가 있어 설산으로 명명했는지 궁굼하지만 이번에도 갈길이 만만치 않다는 핑게로 설산 정상을 외면하고 발길을 우측으로 돌려 정맥길로 향한다.
내림짓을 다하자, 안부 묘 부근 임도에서 설악관광농원 쪽에서 올라 온, 부부등산객을 만났는데, 가야 할 방향을 잃고 설산과 괘일산을 두고 어느쪽으로 갈것인지 망서리고 있어 지도를 꺼내 주변 위치를 설명하여 준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설산을 다녀오기로 하고 올라간다.
관광농원에서 올라오는 임도는 거의 신작로 수준이고, 임도 고개마루도 작은 운동장처럼 넓은데, 반대편 고개 넘어 가는길은 임도가 아니고 오솔길 수준이다.
<설산과 괘일산 사이 임도에서 괘일산 들머리 #1>
<#2>
임도를 뒤로하고, 괘일산으로 오르면서 못가 본 설산의 모습이나 보려고 뒤를 돌아본다.
바위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제법 산세가 있다.
<괘일산 오르다 뒤 돌아 본 설산>
계속하여 가파른 오름길에 숨을 몰아쉬며 괘일산으로 오른다. 괘일산 정상부에 다달으자 암릉부분이 많아지고, 곳곳에 밧줄이 설치가 되어 있다.
괘일산이란 이름값을 하느라, 괴이하게 등로가 오락가락이다. 우회하는 길이 있으나, 암릉으로 계속 올라간다.
<괘일산 과 설옥리 저수지>
깍아지른 암벽이 고도가 제법이다. 암릉의 묘미가 제법 있고 전망도 좋다. 이번 구간에서 제일 빼어난 산인것 같다. 멀리 지리산 방향을 가늠하고 바라 보노라니 분명치는 않으나 웅장한 지리산능선이 그려진다.
가깝게는 도로도 보이는데, 아마도 과치재가 아닐까 싶다.
<저 쪽 어딘가에 지리산 능선이..>
<아기 자기한 괘일산 바위군들>
괘일산 정상표지판이 있는곳이다. 다른곳 표지판과는 다르게 "곡성" 괘일산이라고 지명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가 보성군과 인접한 곡성군 땅이란 말인가.
곡성군이면 호남정맥의 종점인 광양군과는 지척인데, 아직까지 호남정맥 중간지점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돌고 돌아야 광양 백운산 종착점에 다다를것인가. 아무리 정맥종주의 의미가 있다고 한들, 이럴땐 내 자신에게 무엇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괘일산 정상 표시판>
괘일산에서의 조망은 시원스럽다.
이번 구간 끝자락이고 다음 구간의 들머리인 무등산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1000m가 넘는 고봉의 무등산이 호남정맥구간 중, 오랫만에 제법 산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바위 암봉으로 이뤄진 괘일산은 근방의 산꾼들에게 제법 인기를 누릴것 같다.정상 부분에서는 동남쪽 조망이 일품이고 또한 쉬어가기가 좋다. 마침 햇볕까지 좋으니 나도 간식을 먹고 쉬어가기로 한다.
<무등산이 빼꼼히..>
내리막 구간도 자일이 매여있는 곳이 군데,군데있다.
이런곳일 수록 혼자하는 산행은 조금도 방심할 수 없다.
아무리 조심 또 조심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괘일산 암봉을 좌로 크게 휘돌아 내려, 다시 무이산으로 된비알을 치고 오른다. 오름길에 정맥 땜방을 하는 부부 정맥꾼을 만난다. 입석리에서 출발을 했다고 한다. 비록 교행하는 정맥꾼이라도 만나니 반가워 가던길을 멈추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지만, 어떻게 혼자서 정맥 종주를 하느냐고 혀를 내 두른다. 마냥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을 수 없어 서로간에 안전산행을 당부하며 가던길을 가는데, 이상하게 허전하고 서글픈 마음이 밀려온다. 나도 만약 마누라와 정맥길을 같이 할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고, 외로우랴.
밤 이건, 낮 이건, 어렵거나 쉽거나 서로 의지하며, 함께 나누어 가지면, 천리길인들 마다하지 않을것 같다.
중략하고...
가픈 숨을 몰아쉬며 무이산 정상을 밟는다. 작은 소나무에 매달려 있는 무이산 표지가 실망스럽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다고, 잔뜩 기대하고 오른 산 정상이 막상 허망함을 느낄때는 꼭 무슨 배신을 당하는 기분이다.
<무이산>
이제 과치재까지는 널널 산행만 남았고, 과치재를 오가는 자동차 소리가 지근거리에서 들려오고 있음에 안도와 위안을 삼는다.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업 밟는 소리를...
어떤 분위기에 따라선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는 낙엽을 밟고 웬 종일 걸어대니, 이제 실증보다는 낙엽에 미끄러질까 사고위험을 걱정해야 한다.
무이산을 내려서자 다시 올라간다. 시계의 고도를 확인해 보니 260m 봉이다.
과치재까지는 이게 마지막 봉인가 싶었드니, 웬 걸~ 눈앞에 또 봉우리가...
이제는 마지막이겠거니 하였드니, 엊쭈 또 올라야 된다.
힘든 오름길에 나무가 등로를 가로막고 있어, 무릎을 꿇어야 통과를 할 수 있어 그냥 퍼질러 앉아 쉬어 가기로 한다.
두마디가 아니라 한마디로 힘들다.
어렵게 오른 봉우리가 시계 고도 240m을 가르킨다. 현재 시간은 13시 32분이다.
<과치재 전, 마지막 봉우리>
정맥꾼들의 심정은 다 같은 것인가.
과치재에서 구간을 끝내는 사람들이 만세라도 부르는 의미인가 아니면, 다 왔음을 환영하는 의미인가. 표식기들이 많이도 매달려 휘날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방아재까지 가야 한다는 부담에 기분이 착찹하기도 하지만, 오늘 조금 더 걸으면 내일이 쉬울거라고 위안을 해 본다.
과치재가 내려다 보인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귓창을 때린다. 예사 소리가 아니다. 도로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 소리를 듣고 살까 염려가 된다.
내려가다 보니, 과치재 좌측 계곡 안부 농장에 온통 빨간색 천지다.
무엇인가 싶어 주유소 쪽으로 내려서지 않고, 길도 없는 그 곳으로 발걸음을 해본다. 당 단풍나무 묘목 밭이다. 이 겨울에 아직까지 저리도 붉은 빛으로 자태를 뽑내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막상 도로에 내려와 보니 고속도로의 자동차 소리가 그리 크게 들리지 않는다. 이게 소리의 무슨 법칙이던가?
도로변 좌측 신촌가든에서 맛있는 음식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만약 일행이 있었다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련만, 혼자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지 않는가, 심신을 유혹하는 냄새를 뿌리치고 신촌 주유소 쪽으로 걸어가 정맥길을 탐색한다.
<과치재 좌측 농장의 당 단단풍나무 묘목밭>
<과치재 신촌주유소 전경>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그 많던 표식기들은 흔적이 없고, 산행 지도상에 표시된 마루금은 분명 신촌주유소에서 바로 고속도로를 건너게 되어 있으나, 고속도로에 자동차도 많이 다닐뿐더러, 중앙 가드레일이 높아 넘어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참 동안 지도와 비교하며, 현 지역 위치를 이쪽 저쪽 살펴보아도 가까운 곳에 고속도로를 가로 지르는 터널이 보이지 않는다.
이거 참! 낭패로다. 한참을 이리 저리 방황을 하다가 하는 수 없이 주유소 뒤 비포장 폐도를 따라 별장가든 안내판을 따라 가 보기로 한다.
폐도변 풀섶에라도 표식기 하나쯤은 있을법도 한데, 그 많던 표식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확신 없이 긴가 민가하며 무작정 걷다보니, 고속도로 중앙 가드레일 시멘트 벽이 낮아진곳이 나온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별 수가 없을것 같아 위험을 무릅쓰고 횡단을 하여, 왔던 방향인 신촌 주유소 방향으로 고속도로변 절개지 밑 풀섶을 따라 걸어 간다. 바람을 일으키며 무섭게 달리는 자동차가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한참을 걸어 주유소 맞은편 쯤에 절개지를 오르는 가파른 철 계단에 표식기 두개가 보인다. 반갑기 그지 없다. 그렇다 표식기는 이럴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성황당처럼 오색 화려하게 경쟁하듯 걸려있는 표식기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깍아지르는 3단의 철계단을 올라, 절개지 끝에 다 올라서서 한숨을 쉰다. 절개지 상단 둔덕에 배낭을 내려놓고, 수로에 앉아 바람을 피해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신촌주유소에서 여기까지 직선거리로 백미터도 않될것 같은데, 시간상으로 얼마인지 모르지만, 시간을 많이 허비한것 같다.
쉼을 마치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연산을 향해 희미한 낙옆 깔린 등로를 따라 오른다. 가끔 한 두개씩 표식기가 붙어 있지만, 등로가 뚜렸하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오른다. 한참을 오르니 길의 흔적이 뚜렸해져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제법 된비알을 올라간다. 약간 완만한 능선길을 가노라니 마이산 마이봉 석질과 비슷한 바위군들이 있는곳을 지나게 된다. 그 중 조금 형상이 이상하게 생긴 바위를 디카에 담아 왔는데, 산행기 작업을 하면서 언뜻 보니, 부처님 좌상 뒷모습을 닮은것 같다.
불자도 아닌데,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산엘 자주 다니다 보니, 이제 성불을 하여 바위가 부처님으로 보이는 것인가?
이거 참! 걱정이로세...
산꾼이 산만 보아야지, 웬~ 참!
<연산 가는 길에 만난, 부처님 좌상 뒷모습 바위. 상단이 머리 부분>
고도 500m 가 넘는 연산을 오르자니 많이 힘이든다.
정상 직전에 잘 조성된 묘역에 부부묘가 잘 조성되어 있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묘지석을 살펴본다.
호가 장춘인 전주이씨 와 배위 영일정씨 지묘다.
약력을 보니 1905년 창평에서 태어나 서울대 약대 전신을 나와 광주에서 약사 제1호로 장춘약국을 경영하신 분이란다.
꽤 덕망이 있었던 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사후에 자손들이 약력을 작성한 것이기도 하지만,
묘지명에 연산을 일명 등룡산이라 칭하였다. 옛날에는 그렇게 부르기도 했던 모양이다.
시계고도 505m 연산 정상에 올라보니 역시 무미건조하다.
<연산 정상>
오늘 산행의 종점인 방아재가 40분 걸린다고 되어 있으나, 산새를 보니 그렇게 걸릴것 같지 않아 속도를 내 본다.
방아재를 향하는데, 또 다시 고사목이 등로에 넘어져 앞을 가로 막는다. 잡목과 가시넝쿨 때문에 좌우 어느쪽으로도 우회하기 어렵다. 천상 무릎꿇고 엎드려 기어가야 할 코스다.
그러나 쓸데없이 성질을 부려 무리수를 둔다.
나무위로 어렵게 올라 뛰어내리는데, 앗뿔사! 가시덩쿨이 코밑 입술부위를 스치면서 상처를 내 피를 보고 만다.
피가 조금 흐르는데 그만하기 다행이다.
역시 만용은 금물인데, 공연히 성질을 부리다가 큰코 다칠뻔 하였다.
< 결국 피를 보게 한,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고사목>
방아재가 눈아래 내려다 보인다.
이제 거꾸로 매달아도 그까짓것이다.
좌측 도로변에 보이는 건물이 지도상에 있는 병원이고, 좌측 계곡쪽의 마을이 용대산장이 있는 마을인가 보다.
<방아재 전경>
연산에서 30여분만에 방아재에 당도를 한다. 내일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김장 수확이 다 끝난 무우밭에서 몽당무우를 하나 뽑아 깍아 먹는다. 껍질부분은 얼어있으나, 속살은 시원하게 먹을만하다.
산행 갈증시 꼭 먹어보고 싶은게 하나 있었다. 무우밭에서 길다란 무우하나 쑥~ 뽑아 손톱으로 무우껍질 벗겨가면서 먹어보는 것이였는데 오늘에야 반분을 풀어보게 되었다.
<방아재에서 내일의 들머리를...>
이번 정맥구간 출발전 도상 트레이닝을 하던 중, 방아재에 용대산장이 있어, 인터넷을 뒤져 전화번호를 알아내 통화를 하며, 정맥꾼 사정을 말하니, 지금은 마누라가 아파 장사를 하지 않지만, 하룻밤 잠자리는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흔쾌히 말을 한터라, 반신반의하며 마을 어귀로 들어간다. 마을 입구엔 애향루라는 정자가 있고 정자옆 똘감나무 가지끝에 빨간 똘감이 올망 졸망 많이도 열려 있다.
집이라고는 두세채 있는 마을로 들어서니, 서너마리의 개가 사납게 짖으며, 살벌하게 달려든다.
스틱으로 휘저어 쫒아대며, 첫번째 집으로 들어가나, 인기척이 전혀 없다. 조금 안쪽 집에는 승용차 2대가 주차되어 있으나, 역시 인기척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밖으로 나와 간판을 보니, 옛날 용대산장의 간판이 용대 오가피와 야생화 재배지란 간판으로 바꾸어저 있다.
메모를 해 온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니, 간판에 적힌 전화 번호와 같아, 전화를 해 보았으나 도통 받지를 않는다. 핸드폰 번호도 적혀있어 전화를 해보나, 역시 받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광주방향으로 나가 보기로 하고, 차를 힛치하려고 하는데, 마침 병원에서 봉고버스가 나온다. 손을 들어 차를 세우니, 광주시내까지 가는 중이라고 한다. 일단 차를타고 사정이야기를 하며 하룻밤 지낼만한 곳까지만 가려고 하였으나 찜질방이나, 24시간 사우나는 광주 시내까지 가야된다고 한다. 내일 방아재 들머리까지의 어프러치가 걱정되지만, 이왕지사 편하게 마음먹기로한다. 오늘밤은 따뜻한 곳에서 잠을자고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한다.
둘째날,
광주시내 사우나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고, 전날밤 천신만고 끝에 방아재 가는 버스 시간과 정류장을 알아 논 덕분에 광주 대인광장에서 06시30분 버스를 무사히 탑승을 하여 방아재에 07시 10분에 도착한다.
<방아재 도로변의 분재감 소나무>
이틀째 산행의 들머리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또 하루의 발걸음을 시작한다.
들머리 시작부터 제법 경사가 있는 오름길이다. 묘지 근처에서 광주시내에서 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는 무거운 몸 정리를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오늘도 화이팅을 외쳐본다.
작은 잡목들로 우거진 등로에 가시덩쿨이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작은 봉우리를 올라, 또 한 작은봉을 오르다가 중천에 올라온 지각 일출을 본다.
<만덕산 가는길에 지각 일출을...>
봉우리에 올라 내림길을 바라보니 경사도가 가파른게 작난이 아니다. 낙엽이 쌓여있는 급한 내림길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아침 일찍부터 좌측 마을 뒷산에 불을 피워놓고 추위를 녹여가며 굴삭기 작업이 요란하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서니, 화순군과 담양군을 넘나드는 제법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가로지나 본격적인 만덕산으로의 오름길이다. 제 2차 종주때 힘들었던 또 다른 만덕산이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진득하게 밀어부치며 올라간다. 드디어 오르고 또 오르니 만덕산이다. 만덕산 정상도 별 볼일 없이 키를 넘는 갈대만이 우거져 있다. 갈대가 우거진 이곳이 아마도 폐 헬기장이였던것 같다. 갈대밭 한편에 정상(할매바위)을 가르키는 쇠 말뚝 표지판이 있어, 가르키는 방향쪽으로 약간 내려가 본다. 어찌된 영문인지 폐 헬기장보다 고도가 낮을뿐 아니라, 정상이라는 표시는 아무것도 없다.
특이 한것은 어느 봉우리 정상에서 그렇듯, 고운 잔듸로 넓게 조성해 놓은 묘역에 묘지 한기가 자리하고 있다. 묘지 앞에는 한평 남짓한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를 무슨 연유인지 할매바위라고 하는 모양이다.
묘지의 잔듸 상태나, 둘레 조경수를 보더라도 자손들이 정성을 들여 관리를 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묘지석이 하나도 없다. 누구의 유택인지 이름표가 없다. 이 정도 관리를 잘하는 후손들이라면, 상석 하나쯤은 설치할 수 있으련만,..
시계를 보니 조금은 이르지만, 편안한 장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한다. 유택이나, 양택 역시 사람이 산다는 것은 똑 같은 이치인지 항상 좋은 자리를 선택하고 있다.
버너를 피우고, 국을 끓여 찬 밥을 말아 먹는다. 아침 요기로는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만덕산 정상아래 할미바위 근처 잘 다듬어진 묘역과 분묘>
날씨는 아침나절이라서 그런지 우중충하다. 햇살은 있으되 햇살 같지가 않다.출발전 지도를 펴고 독도를 하며 갈길을 살펴본다.
만덕산을 한참 지나서는 거의 360도(동.남.서.북) 좌측으로 시작하여 크게 한바퀴를 휘도는 형국이다.
별다른 바위를 본 기억도 없는데, 신선바위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만덕산에서 부터 이런 철 말뚝 안내판이 있으며, 현재 위치가 신선바위?>
임도를 지나, 대구에서 온 두사람의 정맥꾼을 만난다. 어제 만난 부부 정맥꾼과 마찬가지로 입석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정맥꾼들에게 입석리 지역이 들머리로 편한 곳이기는 한 모양이다.
정맥꾼들과 헤여져 내림길을 재촉하니, 또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산으로 든다.
평탄한 등로 저편에 각양 각색의 표식기들이 엄청 매달려 있다. 가까이 가보니 잠시 잊고 있었던, 호남정맥 중간지점을 알리는 표시기둥이 서 있는게 아닌가. 호남정맥 반을 넘어섰다는 생각에 반갑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이제부터 한걸음 걸으면 정맥종점이 한걸음 줄어든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불연듯 백두대간 종주시, 대미산 중간지점을 지나면서부터 각오를 새롭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호남정맥 중간지점의 표식기들>
<중간지점 표시기둥>
중간지점 표시기둥을 어루만지며 작별을 고하고, 수양산 어께까지 된비알을 올라가다, 수양산 갈림길에서 급 우회하여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넓은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 제법 큰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편안한 농로길을 걸어 입석리 고개 도로에 내려선다. 주변을 살펴보니 옛날 여기 고개마루가 성황당이 있었던 곳이거나, 당골(마을 무속인)네가 살았던 곳 같다. 지금도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고개마루에 사람이 살고있는 집 마당에 오래된 돌탑이 정교하게 여러개 세워져 있고, 고개마루 주변에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과 고목들이 여러그루 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고 유추를 해본다.
그리고 입석(立石)리와 돌탑도 필연 상관관계가 있는것으로 보인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한다더니, 가던 산길이나 갈 일이지 쓸데 없는 일에 신경을 쓰다니 원~참!
어제 오늘 만났던 정맥꾼들이 입석리를 들머리로 삼은 이유를 알것 같다. 고개마루가 참 편안함을 주고, 들고 나기에 접근성도 좋다.
<입석리 고개>
<입석리로 내려 온 마루금과 성황당 같은 집>
도로를 건너 국수봉 산 기슭에 있는 마을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도로 우측 임도를 따라 제법 뺙쎄게 올라 부쳐 국수봉에 오른다. 국수봉 표지판이 무인 산불감시 철탑 기둥에 매달려 있어 정상 사진을 찍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또 국수봉이라는 표지 깃발이 걸려 있다. 고도상으로 거기나 여기나 도토리 키재기인듯 싶고, 굳이 정상 다툼에 별 의미는 없을것 같다.
<국수봉의 무인 산불감시 철탑>
<몇미터 전방에 진짜 ? 국수봉이..>
국수봉에서 거의 정북방향으로 진로를 급격하게 바뀌어 내려간다. 국수봉 7부능선쯤에 인동장씨 세장천(世葬阡)이 있고, 제일 윗대 조상이 이조참의를 지내신 분이다. 이 세장천에서 부터 마을까지는 묘역사업을 위함인지 임도가 잘 닥여있다. 임도를 따라 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철망을 따라 내려가다 다시 임도를 만난다. 다시 임도위 능선으로 올라가다 또 다시 임도로 내려온다. 경사도를 피해 지그재그로 임도가 설치되어 오락가락한다. 계속 철망을 따라 내려 가다 다시 오름끝에 전망이 좋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 쉬면서 창평면 소재지와 드넓은 벌판을 시원스럽게 내려다 본다.
<창평면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불감시초소 봉우리에서>
<산불감시초소에서 본, 가야할 마루금>
어제부터 오늘까지 빙빙도는 산행을 해서인지 방향감각이 없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내려가는 내림길의 경사도가 이번 산행 중, 제일 가파르다. 몸을 가누기에 신경을 바짝쓰고 내려간다. 철망의 용도가 굼굼하였는데, 좌측 산 아래 저수지가 있고, 넓은 분지에 흑염소 목장이 있다. 내리막 마지막부분에 작은 구덩이 때문에 발 딛기가 고약하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간벌목을 옮겨 등로공사(?)를 해 놓고 간다.
내가 언제 다시 오랴마는, 길보시도 큰 보시중에 하나가 아니던가.
좌측 철망 아래 막사가 여러동 가깝게 보인다.
정맥 지도상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곳으로 잘못 표기된 암봉에 올라 간식을 한다. 현재 시간이 11시 40분이다. 첫날 보다는 이틀째인 오늘, 진도가 많이 느린것 같다.
호빵을 따끈하게 코펠에 쪄서 3개를 먹고나니 배가 불룩하다. 간식을 먹고, 쉬던 암봉을 내려 다시 길을 간다. 안부에 도착을 하여 또 한 봉우리를 올라간다. 12시 24분 고도 415m 활공장이 있으나, 최근에는 사용한 흔적이 없는 폐활공장이다. 여기까지 장비를 짊어지고 올라 온다는것도 보통 문제가 아닐듯 싶다.
폐 활공장에서 급우회 내리막을 내려가다 약간 오름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니, 사람들 소리가 난다.
<폐 활공장>
갑자기 능선 옆으로 페러글라이드가 활공을 하며 나무에 부딪칠것 같이 계곡을 따라 날아간다. 조금 올라가니또 다른 활공장이 나온다. 이미 세사람은 하늘을 날고 있고, 대여섯명이 활공을 보조하거나 활공할 준비들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의 장비 역시 돈으로 쳐도 만만치 않을것 같다.
어떤 레저 스포츠건 돈 없으면 못하는 세상이다.
한사람의 활공 모습을 지켜 보다가 노가리재로 내려간다.
노가리재에서 이곳 까지는 거리나 경사도를 보아 활공장비를 짊어지고 올라 올만하다. 한마디로 활공장 여건이 좋다.
<또 다른 활공장에서 활공중인 페러글라이더들 #1>
<#2>
활공장에서 기껏해야 2-3여분 내려가니 노가리재다. 지금까지 전국의 많은 산 봉우리의 할공장을 보았지만, 차량의 접근성으로 보아 여기가 상당한 명당으로 보인다.
<노가리재>
도로에서 짧은 절개지를 올라 허리쉼을 하면서 지도 점검을 해 보니, 또 다시 400m 이상 고도의 봉우리를 올라야 할것 같다.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눈만 게을러진것이 아니라 발도 게을러진다. 가다 쉬다를 하며 올라 해남터 갈림길에 도착한다. 처음으로 그럴듯한 이정목을 만난다. 한국가사문학관과 소쇄원 주차장 그리고 유둔재 방향으로 가는 삼거리다. 내가 가야 할 유둔재까지는 7.1km 남았음을 알린다.
<해남터 갈림길>
비슷한 봉우리를 계속 힘들게 넘나들며 오르고 내린다.
지도상 표시가 없는 봉우리에 올라보니, 최고봉이라는 표지판이 걸려있다.
시계고도를 확인해 보니 고도가 493m나온다.
<최고봉>
최고봉에서 우측으로 내려 까치봉으로 향한다. 오르면서 뒤 돌아본 최고봉이 또 다른 봉우리와 나란히 있다.
< 뒤 돌아본 최고봉>
최고봉을 내려오니 지도상의 까치봉으로의 오름길이다. 힘이들어 7부 능선에서 잠시 앉아 다리쉼을 하고 봉우리 정상으로 오른다. 현재 위치가 삿갓봉 갈림길임을 알리는 이정목이 서있고, 반대편 유둔재에서 출발했다는 전주에서 오신 정맥꾼들 6명이 쉬며, 간식을 먹고 있다. 힘들게 올라 온 나에게 귤 하나를 까주어 고맙게 받아 먹는다. 지형상 이곳이 분명하게 까치봉인데 까치봉이란 흔적이 없다.
전주 정맥꾼들 덕분에 모처럼 증명사진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유둔재까지는 아직도 장장 6.1km 남아 있다.
<삿갓봉 갈림길에서..>
이번 종주중에는 같은 방향으로 주행하지 않지만, 정맥을 종주하는 사람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쉬다가 다시 발길을 땐다. 가야 할 마루금을 확인해보니, 좌로 휘어져 돌아가다가 거의 정남으로 방향을 틀어 유둔재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오늘 유둔재에서 마무리하고 집으로 올라 갈려면, 좀 더 주행속도를 내야 할것인데, 오히려 발걸음이 자꾸만 무거워져 다리쉼을 자주하게 되니 마음만 바쁘다. 지도상 임도가 있는 새목이재는 보지 못하고 간다. 보지 못한게 아니라 그냥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안부를 지칭하는것 같다.
<유둔재 5.20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목>
465m봉을 오르고 내려 다시 된비알을 치고 올라보니 455m봉이다.
<유둔재 3.67km 전방>
해남터 갈림길에서 부터 번호를 붙여 논, 이정목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제법 찾는 등산 코스인가 보다. 어산이재 역시 재라고 하기 보다는 안부에 불과 하다.
<유둔재 2.40km 전방>
해가 자꾸만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니, 마음은 더욱 바빠진다. 하지만 체력은 반대로 마음과 같이 따라 주지 않는다.
해가지는 방향으로 거대한 산군이 버티고 서 있다. 다음 구간의 압권이 될 무등산인 것이다. 모처럼 만나 본 1000m 이상의 산군이다.
막상 붙어보면 별것 아니겠지만, 여기서 바라보는 무등산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체력이 소진되어 지쳐있는 현재 상황에선 작은 봉우리도 부담스러운데 저렇게 높아보이는 무등산은 당연히그렇게 보일 수 밖에...
15시40분 마지막 봉우리의 고도가 450m이고, 이제 유둔재 까지는 얼마 남지 않은것 같다.
<무등산과 무등산으로 오르는 마루금>
달도차면 기울듯이 걷고 또 걸어보니, 멀게만 느껴젔던 유둔재가 드디어 바닥을 들어낸다.
근위대장 청주한씨 익태, 배위 김해김씨 묘역을 지난다.
어느 왕조에 근위대장을 지냈는지 모르지만, 청주 한씨라면 명문가이기도 하지만, 대표적인 인물 한명회가 요즈음 모 방송극 인기 사극에도 재 조명되고 있듯이 청주한씨의 권세가 대단한 시대가 있었기는 하였던 모양이다.
묘역 옆에 서있는 이정목에는 유둔재 방향만 표시할 뿐, 남은 거리가 적혀있지 않다. 이제 다 왔다는 것인가.
<청주한씨 묘역>
그리고도 넓은 임도를 한참 걸어내려 와서야 유둔재에 떨어진다.
호남정맥 구간 중, 이번 구간이 전체적인 고도가 제일 낮은지대라고 하더니만, 고도와 관계 없이 힘들었던 구간이였다. 어디 한구간 힘들지 않은구간이 어디 있으리오 마는, 사람이 하도 간사하여서 편하면, 더 편해지고 싶다고 하지 않는가. 즐겨쓰는 옛말에 "말 사면 종 부려 말고삐 잡히고 싶다" 라는...
어찌되였건 이번 구간도 마지막까지 무탈하게 마무리 하였음을 존재 여부를 떠나, 그 누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유둔재에 세워진 등산 안내도>
<광주- 담양방면>
<다음구간 등산 들머리>
첫댓글 논짱님! 축하합니다. 호남정맥 종간지점(261km)을 드디어 통과 했습니다 그려, 유둔재라면 무등산을 향한 들머리가 되는데 우리 거북이 팀 보다 먼저 무등산을 오르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아직 4구간이나 남았는데 말입니다. 호남정맥 종주라는 것이 결코 쉽지많은 않터이다. 해발이 4백을 밑도는 산들이지만 겹쳐진 봉우리가 많아 잽을 연타로 맛는 격이여서 코피터지고 제풀에 지쳐서 대부님마져 쥐가 날 정도 였으니까요. 아무튼 노짱님과 산길에서 만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때는 먼가 의미있는 이벤트라도 만들어 큰 잔치라도 한 번 벌려 봅시다. 아무튼 당신 생각을 하다보면 "강인한남자" 조철봉 생각이 납니다.ㅎㅎ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잽을 연타로 맞아 서서히 무너지는 꼴입니다. 행님 표현이 절묘합니다. 대간마루금은 한번 올라가면 선계에서 노니는것 같은데, 호남정맥길은 속세의 세상살이 같이 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어 더욱 힘들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