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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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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더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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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씨시
수바시오산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움브리아의 넓은 평야..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들이 평화롭기 그지없고~살짝 오르막이고지나는 어디로 시선을 던져도편안함이 느껴져서오다가다 만나게 되는
모르는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고 싶은 동네이랍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예쁜 집들 사이 아씨시 골목길의 정경 그 속으로 오르내리락 하다보면 그냥 그대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수 밖에 없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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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오바 성당
(Chiesa Nu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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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키아라 성당' (Basilica di Santa Chiara) 산타 키아라 성당은 '아씨시의 성녀 키아라(글라라)가 잠들어 있는 곳'
Santa Chiara(St. Clara)
그리고 산 다미아노 수도원에 있던 그 유명한 '산 다미아노의 십자가'가 있는 곳이죠..*
우리 '하늘의 문 성당' 제대 얖에도 걸려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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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문 성당, 다미아노 십자가와 수난의 십자가 키아라는 누구인가
가이드북에는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감명 받아 수녀가 된 여인라고 나와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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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는 프란치스코를 사랑했던 여인이다. 프란치스코를 너무너무 사랑했지만 프란치스코에게는 오직 하느님 밖에 없어서
키아라 본인도 하느님을 사랑하겠다고 수녀가 되어 수녀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길잡이만의 생각인지 알쏭달쏭하더군요.. ^^ 성 키아라 성당
(Basillica di Santa Chiara)Basilica di Santa Chiara 1257년과 1265년 사이에 건축된 성녀 키아라 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아름다운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요. 전면부(Facade) 벽의 아치가 매우 인상적인 키아라성당은 건물 외관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고 분홍색과 하얀 돌이 번갈아 가며 가로 줄무늬를 이루고 있죠.
수바시오 산에서 가져온
장미석으로 지어진 성당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흰빛의 위엄을 자랑하는 데 비해 키아라 성당은 더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색감을 나타내는 듯 합니다.*
성당 내부는 비교적 간소하지만 엄숙한 분위기를 줍니다. 여기에 내부 사진 촬영 금지라니 더더욱 ㅠㅠ
12-14세기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으며,
중앙제단 뒤의 거대한 십자가 상은 14세기의 것이며,성 프란체스코를 성 다미아노 교회로
불러들였다는 다미아노십자가가 유명합니다 제단 위의 천정에는 4인의 성녀 (키아라 Chiara, 아녜스 Agnese, 카타리나 Caterina, 루치아 Lucia)가 그려져 있어요.지하묘소에는 성녀 키아라(Santa Chiara)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죠.
성당에는 이밖에도 성녀가 걸쳤던 의복과 금발머리가 보존되어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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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키아라(Santa Chiara)는 생전에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를 사랑했던 여인으로 평생 미혼으로 신앙 안에서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를 도운 신앙의 여인이었다네요. 우리나라에도 제주도 성 이시돌 성당 근처에 봉쇄 수녀원으로 성 글라라 수녀원이 있습니다. 김남수 주교의 초청으로 1994년 교구에 처음 진출했다. 봉쇄수도원이라는 하느님과 신비한 만남의 장소 안에서, 동정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과 항상 일치하는 기도 생활을 영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Basilica di Santa Chiara
'그대의 생활을 통해서
주님께 찬미를 드리십시오'
-성녀 글라라- 성녀 클라라의 생애 / Catholic Internet Mission Korean 길잡이는 우리가 왜 산타 키아라 성당에서 순례를 시작해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점심식사를 한다네요.. 12시부터 2시까지는, 산 키아라 성당은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어서 시간 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울 순례단도 그 시간에 식사를 하기 위해서랍니다..
성인명 : 클라라(Clare) 축일 : 8월 11일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설립자 활동지역 : 아씨시(Assisi) 활동연도 : 1194-1253년 같은이름 : 글라라, 끼아라, 클레어, 키아라 이탈리아의 아씨시에서 귀족인 오프레두치오와 오르톨라나디 피우미의 딸로 태어난 성녀 클라라(Clara)는 용모도 뛰어나서 12세 때 혼인을 서두르는 부모들의 강권을 물리쳤으며, 1212년 사순절 때 성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크게 감명을 받고 수도생활을 결심하였다. 그녀는 성지 주일에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와서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 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수도복을 받았다. 프란치스코는 아직 여자 수도원을 세우지 않았으므로, 바스티아 근방 성 바오로(Paulus)라는 베네딕토 수도원에 그녀가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들이 그녀를 강제로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므로 끝까지 항거하다가, 산 안젤로 디판초로 옮겼는데 그 얼마 후에 15세 된 동생 아녜스까지 언니에게 와서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부친은 12명의 장정을 무장시켜 아녜스나마 데려오려고 하였지만, 클라라의 간절한 기도의 힘에 의해 끝내 아무도 데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산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을 모원으로 확정하였으며, 이들을 위한 생활양식을 써줌으로써 가난한 부인회가 탄생된 것이다. 이 회가 잉글랜드(England)에서는 작은 수녀회(Minoresses)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클라라회이다. 클라라는 1215년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로부터 ‘가난의 특권’을 얻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애긍에 의존해도 좋다는 허락이다. 그 후 클라라는 이 특권을 유지하는데 늘 고심하였고, 교황이나 다른 성직자들이 수녀들의 규칙이 너무 엄격하다고 반대해서 많은 곤경을 겪었다. 클라라회의 수녀들은 당시 어느 수도회보다도 엄격하고 가난하였다. 그러나 클라라를 비롯한 동료들은 높은 수준의 관상가들이었으며, ‘복음적 완덕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녀는 약 40년 동안 공동체를 지도하였지만 늘 건강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성 프란치스코의 뜻이 담긴 클라라회의 회칙은 그녀가 운명하기 이틀 전에야 겨우 승인을 받을 정도로 그 엄격성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것이다. 클라라회는 급속도로 이탈리아 전역과 프랑스, 독일로 보급되었고 교황과 추기경 및 주교들의 자문 역할로써 떨친 그녀의 영향도 지대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기적으로 더욱 영광스럽게 되었는데, 1241년 그녀의 기도로 프레데릭 2세의 난폭한 군인들로부터 아시시를 구출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1253년 8월 11일에 아씨시에서 운명하였는데, 2년 후에 곧바로 시성되었다. 클라라는 텔레비전의 수호성인이고 문장은 성체 현시대이다.>수바시오 산에서 가져온 장미석으로 지어진 산타 키아라 성당입니다. 12~14세기 프레스코화가 남아있습니다. 그 끝에 성 프란체스코를 성 다미아노 교회로 불러들였다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빛’을 뜻하는 ‘클라라’라는 이름의 성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주님의 빛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다. 아씨시에 이슬람 대군이 쳐들어왔을 당시 클라라는 자매들의 부축 없이는 자신의 몸조차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병들어 있었지만, 수도 가족과 아씨시 시민을 구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후 성광을 모시고 적군 앞으로 나서자, 성광에서 강한 빛이 나와 적군들은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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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키아라 성당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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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으로 이동합니다. (p.s.) : 이번 성지 순례에서는 예전보다 Security가 엄청 강화되었고 성당 내부에서의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무리하지 않고 눈으로, 마음으로 담고 사진은 성지(성당) Website나 기타 인터넷에서 많이 인용했습니다.
산타 키아라 성당에서 출발, 아씨시 윗마을의 가장 중심가인 코무네 광장(Piazza di Comune)과 오후에 개별적으로 들릴 미네르바 신전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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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예전에 자유여행으로 개별 성지순례 왔을 때 검토하기만 하고 호텔에 묵었었는데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도미토리오 & 일반 숙소) 순례자의 집을 지나가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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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질리오 수녀원 "Maria Immacolata" Suore Francescane Missionarie di Assisi 다음번에 이탈리아를 다시 오게 된다면.. 아시씨에는 따로 와서라도 이 델질리오 수녀원에서 3박 4일 정도는 숙박하면서 2번에 걸쳐 아씨시 1박2일 순례했어도 가지 못했던 곳들을 순례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열심히 기도해야 할까 봐요~~~ 아기자기한 아씨시의 중세 골목길을 20여분 걷다보니.. 어느새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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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왔을 때는 더 한산하고 호젓한 분위기의 골목길이었는데.. 지금은 순례객들도 많아서 조금은 더 북적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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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순례를 마치고 우리 순례단은 다시 아침에 왔던 길을 거꾸로 올라갑니다. 미네르바 신전을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조금 내려가면
자그마한 광장(Piazza Chiesa Nuova)과 성당이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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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생가' San Francesco Piccolino (Chiesa Nuova/누오바성당)
누오바 성당
(Chiesa Nu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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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이 교회는 지금은 문짝 하나만 남은 성인의 아버지 가게 (성 프란치스코의 생가) 위에 세워졌다네요. 성인이 죽기 전까지 입고 있던 옷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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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에는 원형을 중심으로 4개의 경당과 사제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입장, 왼쪽으로 한바퀴 돌아 나오게 됩니다 교회가 생기기 두 해 전(1613년), 프란치스코의 생가는 부서질 위기에 처했으나, 스페인인 ‘비카’가 필리페 3세(1578~1621) 왕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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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왼쪽으로 돌아서 성인의 생가터로 들어갑니다. 길잡이는 당시에 이정도 규모로 살았음은 대단히 부유했을 거라고 합니다.
San francesco Piccolino 1300년도 초 고딕양식 아치형 문위에 라틴어로 "이 소성당은 소와 당나귀가 있던 마굿간으로.. 세상의 거울이 되신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 곳"이라 씌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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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입구 하나 남아 있는 오래된 문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 났을 것으로 여겨지는 장소 . 성 프란치스코 피콜리노(San Francesco Piccolino) 입니다 ↑ <가운데> 성인은 이곳에 갇혀서 신의 부름에 답하고 고행의 길을 가기로 작정했다고 전해온다.
프란치스코 성인 부모님 동상 이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부모님이다. 엄마는 쇠사슬을 아빠는 옷을 들고 서 계시는데.. 프란차스코 성인의 유명한 일화: 프란치스코 성인은 부유한 포목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그 뒤를 이어 부유한 상인이 될 것이라 여겼던 부모님의 뜻과는 달리..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고~ 그에 화가난 아버지가 마굿간에 프란치스코를 쇠사슬로 묶었다고 한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아버지의 상속을 포기하고 절연하겠다는 뜻으로 옷가지를 벗어서 아버지께 드렸다고 한다. 이 곳이 실제 마굿간 자리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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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 보이는 십자가는.. 성 프란치스코가 어느날 "무너져가는 성당을 일으켜 세우거라"라는 계시를 받았던 십자가이다
이 곳에 있는 것은 실제 그 십자가는 아니고 실제 십자가는 산 다미아노 수도원에 있다고 합니다. 누오바 성당은 1615년 성 프란체스코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 집터에 지어졌습니다. 당시 아씨시에서 가장 늦게 지어졌기 때문에 "새(누오바) 성당"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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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사 누오바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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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신전' (Tempio di Minerva) 마을의 중심인
코무네 광장(Piazza del Comune) 옆에
미네르바 신전이 있어요. 미네르바 신전 (Tempio di Minerva) 은 로마가 세상을 통치하던 시대에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 를 기리며 만든 신전이었다. (ps. 미네르바 로마식 이름은 그 유명한 '아테나') 현재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Chiesa di Santa maria sopra Minerva) 라는 이름의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타 마리아 수프라 미네르바 미네르바 신전은 아씨시에 있는 고대 로마 신전이다. 1539년에 신전으로 지어졌으며,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기둥의 형태가 울퉁불퉁..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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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고대 로마시대에 포룸으로 사용되던 산 루피노 광장도 앞에 두고 있다. 규모가 성 프란체스코 성당(Basilica di San Francesco)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청 작은 규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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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Chiesa di Santa Maria sopra Minerva)라는 이름의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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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는 입구 오른편에는 성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1181/2-1226)와 성녀 키아라(Santa Chiara, 1194-1253)가 세례를 받은 수반과 그 옆에는 그들의 동상이 서있다.
미네르바 신전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네요. 이탈리아를 3개월 여행한 문호 괴테가 아씨시를 방문했는데 아씨시에서 가장 유명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을 가장 형편 없는 건물'이라고 폄훼하였고 미네르바 신전에 대하여는 '내 생에 본 고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했답니다. 고대 로마에는 미네르바 신전이었고, 현재는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당은 1539년에 지어졌으며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습니다.
세계각지에서 성지순례를 온 수녀님들이 많이 보였다 부축을 받아 걸어야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수녀님이 천천히 성당을 둘러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종교를 인생의 제 강령으로 둔 사람의 성지순례는 어떤 의미일지 가늠해본다. 아씨시는 다른 유적처럼 얼마나 알고 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마음속 평소의 믿음이 얼마나 깊었는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내었는지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고 감동의 크기와 폭이 달라지는 곳이랍니다.
환한 대낮에는 골목길마다 창가에 많은 꽃화분이 걸려 있어 순례자와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지만
움브리아 평원에 저녁이 찾아올때 골목 골목엔 밤을 밝히는 등불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아씨시 수녀원의 저녁식사는 숙박비 외에 식사대를 추가하면 수녀님들이 직접 요리하는 제 1요리, 2요리, 샐러드와 와인까지 이탈리아 가정식을 코스로 즐길 수 있죠
Twin Rm (2인실) : 숙박 + 조식 = 60유로, 숙박 + 조식 + (중식 또는 석식) = 90 유로 숙박 + 조식 + 중식 + 석식 = 106유로 & Tax 1유로 / Night / Person
[출처] 아씨시 수녀원 순례자의 집
'산 루피노 대성당' (Cattedrale di San Rufino )
Cattedrale di San Rufino(Duomo, 산 루피노 대성당)은 이 곳 아씨시의 초대주교이자 선교자였던 수호성인 루피노를 기리기 위하여 1140년에 건축된 성당이죠..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키아라가 세례를 받은 유서 깊은 Assisi의 주교좌 성당입니다.
종탑아래 아치 사이에 있는 건물이 산타 키아라(성녀 글라라) 생가랍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정면 에는3개의 문과 그 위에3개의 장미창이 자리하고 있어 독특하답니다.
중앙의 장미창에는 4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상이 있어요 (마태오; 사람, 마르코; 사자, 루카; 소, 요한; 독수리)
대성당 내부 중앙 제대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키아라의 입상이 자리하고 있어요. 성녀 키아라의 상징은 백합과 안고 있는 등불이죠.
성전 바닥에는 유리판이 깔려 있어서 예전의 성당 바닥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더군요.
로카 마조레는 올라가지않고 산 루피노 대성당 종탑에 올라 왔습니다. 아씨시 전역을 충분히 조망할 수 잇는 곳이랍니다. 물론 입장료는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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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피노 대성당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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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화장품 Camaldoli' 꼬뮤네 광장(Piazza de Commune) 앞 골목에 있는 약국, Farmacia Rossi Dottionessa Marie (주소 : via Portica 06081 Assisi PG Italy) Crema IDRATANTE Profonda(건선용) Crema Purificante Ai Propoli(지선용) Essentia Oleum(에쎈스 오일) RUGIS UNGUENTIUM/루지스 운꾸엔띠움(주름 개선 보습 크림) 등등 챙기셔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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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 크림
'이탈리아의 Espresso와 Assisi의 Cappuccino'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에스프레소를 즐깁니다. 당연하게도 '카페 Caffe' 즉 커피가 Espresso라는 것이죠.
커피 원두의 Blending과 Roasting 곱게간 원두에 높은 온도와 압력을 가진 물을 흘려 추출해 에스프레소만의 고유의 컵에 담아 음미하는 커피를 말한다. 기존 원두를 끓여 우려냈던 커피를 조금더 빠르게 추출하기위해 나온 방법이다. 에스프레소(Espresso)는 진한 순수 원액 커피이며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Americano)가 되고 우유를 넣으면 카푸치노(Cappuccino)가 된다. 즉 다양한 커피의 변신의 근본적인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Assisi에서는 카푸치노를~' 이탈리아에서는 Espresso라지만 Assisi에서 만큼은 Cappuccino도 의미가 있다죠~
Cappuccino라는 이름이 바로 이곳 아씨시 '작은형제회 수도원'에서 생겨났답니다. 카푸친 작은형제회 ( 라틴어: Ordo Fratrum Minorum Capuccinorum )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섞어 만드는 메뉴로 라떼보다 거품의 양이 많고 기호에 따라 시나몬 가루나 초코가루를 위에다 뿌려 마시는 음료. 카푸치노라는 명칭은 이탈리아 프란체스코회의 카푸친 수도회 수도사들에게서 유래되었다. 카푸친 수도회의 수사들은 청빈의 상징으로 모자가 달린 원피스 모양의 옷을 입는데, 진한 갈색의 거품 위에 우유거품을 얹은 모습이 카푸친 수도회 수도사들이 머리를 감추기 위해 쓴 모자와 닮았다고 하여 카푸치노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수도사들이 입던 옷의 색깔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푸치노 [Cappuccino] (두산백과)
이제 아씨시 순례를 모두 마치고 Orvieto를 거쳐 Israel로 가기 위해 산타 키아라 성당쪽으로 이동합니다. 아침에 주차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른 것과는 다르게 걸어내려 가요.. ^&^*~ Assisi Sonatas: Sonata No. 6 in G Major, Anh. 43 아씨시의 수도원에서 발견되어 '아씨시'의 소나타라 불리는 12곡의 소나타중 하나~ Friar Alessandro - ♪ Panis Angelicus ♬ - The Voice from Assisi 노래는 이태리의 차세대 테너로까지 평가 받는 알레산드로 수사(수사회에서는 형제로 호칭하기도 합니다)가 부릅니다. 현직 천주교 수사님이시고 평소에는 수도원에서 목공일도 하십답니다. 수사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에 음악학교에 다녔는데, 수사회 입회 조건으로 음악학교를 마치라는 조건이었답니다. 졸업조건에 미달이라는 교수의 말을 듣고 미친듯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천부적인 목소리를 발견했고, 그룹 U2를 길러낸 Hedges가 주선하여 영국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첫째 CD녹음을 하러 탄 비행기가 최초의 해외여행이랍니다. 아베마리아, 파니스 안젤리쿠스, 키리에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키리에 (from misa criolla)가 독특합니다. CD제목에 순수한 목소리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딱 그 느낌입니다. 데카에서 계약한 이유를 알만합니다. 사진은 작년에 최초로 발매한 " 아씨시의 목소리 "이고... [출처] 알레산드로 수사 성가집 from decca (하이파이코리아 오디오) | 작성자 인생백년 Friar Alessandro - ♪Sancta Maria ♬ - The Voice from Assisi 제1회 이탈리아 중북부 1부_미니시리즈 순례, CPBC
'산 다미아노 수도원' (Convento di San Damiano, Santuario di San Damiano The friary and sanctuary of San Damiano)
다미아노성당이 있던 자리에 산 다미아노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2018년 패키지 성지순례 왔을 때나 2003년 자유 여행으로 성지순례 시에도 와보지 못했던 곳이지요.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수도원은 사각형으로 설계됐으며 가운데에는 소박한 정원과 우물이 있습니다. 1층에는 경당과 식당, 작업실과 공동 공간이 있고, 2층에는 벽에 걸린 십자가와 나무 침대뿐인 수도자들의 작은 방이 있죠. 1층의 소박한 성당도 옛 모습 그대로이고 식당도 클라라 성녀가 살았던 당시의 모습대로 잘 보존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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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 다미아노 수도원 가는 길
"Pace e Bene" (평화와 선) 아씨시 수도원에 가시면 수사님들이 '파체 에 베네' 라고 인사를 하십니다. 모두 '피체와 베네' 하시길 바랍니다. 청빈을 실천하다 삶을 마친 곳으로, 건물은 낡았지만 조금도 누추해보이지 않는다. 아씨시의 산 다미아노 수도원, 의사로서 순교한 동방의 두 성인 고스마와 다미아노에게 봉헌된 이 성당은 9세기 또는 10세기에 처음으로 건축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 성당은 처음에 베네딕토회 소유였다. 그러다가 1212년 말 클라라와 아녜스 및 몇몇 동료 자매들이 이 성당으로 옮겨오게 된다. 그리고 1260년 클라라의 자매들이 성녀 클라라 대성당으로 옮겨가고 이 성당은 아시시 주교 참회의 소유로 남게 된다.
오상을 받은 라베르나 산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적 여정의 마지막이라면 그의 영적 여정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 곳, 다미아노 수도원이다. 1205년 늦가을 프란치스코는 폴리뇨에서 돌아오던 중 이 수도원에서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하는 도중 "프란치스코야, 가서 무너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영적 투쟁의 길을 시작하게 되는 곳이 바로 이 다미아노 수도원이니, 프란치스칸들에게는 뿌리가 닿아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산 다미아노 수도원은 관람순서대로 하면 좋습니다 2번에서 3번으로 이어지는 문은 경당 맨 앞, 제대 오른족에 있습니다 통로가 거기에 있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제 마음이 완전히 바뀌어 어느 날 거의 다 허물어져 아무도 돌보지 않는 성 다미아노 성당 근처를 걷고 있었다. 그는 성령의 이끄심에 안으로 들어가 기도하려고 십자가 앞에 겸손하고 경건하게 엎드렸다. 십자가에 달리신 고상이 입술을 움직이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말하였다. "프란치스코야, 보다시피 다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가서 수리하여라."
성 다미아노 십자가 성 다미아노 십자가는 오랫동안 아시시의 성 다미아노 성당에 걸려 있었기에 성 다미아노 십자가라고 불린다. 이 십자가는 12세기에 시리아 수도자에 의하여 그려진 비잔틴 양식의 이콘이다. 풍요로운 의미가 담긴 이 이콘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광의 모든 신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십자가는 요한 복음에 기초를 둔 요한계 이콘이다. 가시관 대신 놓여진 영광의 관은 이것을 입증하는 분명한 표이다 여기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영광으로 변모되어 있다 예수님의 오른쪽 옆구리 상처 역시 사랑하는 사도 요한에 의하여 표현된 신앙고백의 하나이다.
성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바치신 기도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주여,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산 다미아노 수도원은 또한 클라라의 자매들의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이며, 사라센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이미 쇠약한 클라라 성녀가 자매들의 부축을 받으며 성체를 모시고 회랑까지 나아가 기도하면서 아씨시를 구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클라라와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식사 전에 기도하는 성화 그리고 1228년 어느 날 교황 그레고리오 9세의 청으로 키아라가 빵을 축성하자 모든 빵에 십자가가 새겨진 사건을 표현한 두 폭의 프레스코화가 지금도 식당의 벽면에 남아 있다
성녀 키아라 숨 거둔 작은방
중정
성 다미아노(San Damiano)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서기 303년 2월 24일 교회에 대해 가장 잔인한 박해자라고 볼 수 있는 로마제국의 황제 디오크레시아노는 돌연 칙서를 내려 전국에 있는 기독교 성당을 불사를 것과 즉각 배교를 엄명하였다. 과거 40년간은 교회에 대한 별다른 탄압이 없어서 교회 활동들이 활발하여, 상류계급의 사람들과 궁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허다하게 그리스도교를 믿고 성당을 세웠는데.. 갑자기 내린 이런 금교령(禁敎令)에 누구나 어안이 없었겠죠. 가장 먼저 박해의 불길이 일기 시작한 곳은 제국의 수도가 있는 니코메디아가 있는 소아시아 지방인데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는 그 때에 순교한 형제이다. 이 쌍동이 두 형제는 아라비아의 명문가 출신이며 어머니 데오타다 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아 신앙이 두터운 이들이었다.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 의사, 순교자 축 일-9월 26일
성 코스마(또는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는 아라비아 태생으로 쌍둥이 형제였다고 전해오는데, 그들은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실리시아(Cilicia)의 에게해(Aegean Sea) 근방에서 살았는데, 그들의 의료기술이 남달리 뛰어나 그 명성이 널리 퍼져서 명의라는 높은 칭송을 듣고 살았다. 또한 열렬한 그리스도인이던 두 형제는 박해가 일어나자 실리시아의 집정관 리시아스(Lysias) 앞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다가 신앙 때문에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코스마와 다미아누스는 이발사의 수호자이고, 루카(Lucas) 복음사가 다음으로 의사들의 수호성인이다. San Damiano - Ass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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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다미아노 수도원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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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첼리 은둔소'
(Eremo delle Carceri)까르첼리 은둔소(Eremo delle Carceri)는 해발 791미터에 자리잡고 있다.
1205년과 1206년 사이에 이 산에 프란치스칸의 삶이 자리잡게 되는데,젊은 프란치스코가 기도를 통하여 그의 삶의 길을 찾기 위하여 자주 찾던 바로 그 곳이다.그 때에는 이웃 성 베네딕토 수도원 부속의 작은 은둔소 하나와그 주변에 흩어진 몇 개의 동굴들만이 있었다.그 이후부터 초기 형제들이 침묵과 기도를 하기 위하여 자주 이 곳을 찾게 된다.성 프란치스코는 1210년(또는 1211년)에 사순절을 여기서 보냈다.1211년 실베스테르 형제가 이 곳을 찾았는데,그것은 프란치스코가 관상과 활동생활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클라라와 그에게 자문을 청했기 때문이다
카르체리 은둔소는 프란치스칸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은둔소들(코르토나의 첼레, 몬테카살레, 포지오 부스토네, 그레치오, 폰테콜롬보, 나르니의 스페코, 스폴레토의 몬테루코,체토나 등) 중의 하나이다. 옛 수도원을 나와 왼쪽으로 향하면 작은 15세기의 성당(2)이 나온다.이 성당은 ‘성 베르나르디노 경당’이라고도 하는데,그 벽에는 14세기 첫 중반에 그린 지오토 유파의 ‘십자가 형’이 있다.이어지는 옛 경당(3) 또는 초기 은둔소라고 부르는 곳은성 프란치스코 시대에 이미 있었던 곳으로서주변 동굴들에 거처하던 초기 형제들이 공동기도를 바치던 곳이다.제대 위에는 십자가형을 표현한 13세기의 프레스코화 위에다1506년에 그린 아기 예수와 동정녀 마리아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 프레스코화가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동굴은 성 프란치스코의 돌 침대와 경당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이 동굴의 출구에는 동굴을 막는 ‘악마의 구멍(Buco del diavolo)’이라 부르는 붉은 돌이 있다.
숲 위쪽 가까운 곳에 맛세오, 루피노, 그리고 작은 다리를 건너 숲 아래쪽에 레오, 베르나르도, 실베스테르그리고 복자들 에지디오, 스펠로의 안드레아(†1254), 스트론코네의 안토니오 형제 등이자주 찾았던 동굴들이 있다.
한편, 막달레나 경당 오른쪽의 다리 부근에는1882년에 빈첸소 로시뇰리의 청동 작품 ‘산 비둘기를 한 소년에게서 놓아주는 프란치스코’(잔꽃 22 참조)가 있다.
-발자취를 따라서에서 발췌-죽전1동 하늘의문성당 십자가
▲ 다미아노 십자가(신자석쪽). 최근 ‘제18회 경기도건축문화상’ 대상을 수상한 용인대리구 죽전1동 하늘의문성당(주임 윤민재 신부) 내부에는 금상첨화의 다채로운 성물들이 마련돼 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성물 중 하나가 바로 신자석과 제대 사이에 현수돼 있는 이콘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의 특이한 점은 십자가 양면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신자석에서 바라보는 면은 다미아노의 십자가이나, 제대 위에서 올려다 보이는 반대 면은 수난의 예수님을 나타낸다. 신자석 쪽의 다미아노 십자가는 프란치스코 성인으로 유명한 아씨시 다미아노성당에 보존돼왔던 십자가를 210X152cm 원본 크기 그대로 만들었다. 이 십자가의 이콘은 ‘영광의 그리스도’ 로서 12세기 전형적인 후기 로마네스크 예술의 형태를 보여주며 요한복음의 경향을 따르는 요한계 이콘이다. 요한계 성화는 그리스도의 영광, 신비 등을 말해준다. 이 이콘에서 예수님은 부활이자 악의 죽음에 대한 승리자시다. 따라서 예수님을 비롯해 모든 성서 상 인물들이 부활의 기쁨을 얼굴에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이콘의 예수님의 발아래를 보면 네 명의 성인이 그려져 있는데, 원본에서 치유를 기원하며 어루만지는 손길에 닳아 없어져버린 오른쪽 두 사람, 의사와 약사의 주보성인 고스마와 다미아노 성인을 고증 복원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했다. 제대 쪽 수난의 예수님 십자가는 스페인의 똘레도 대성당 행렬용 십자가에서 착안했다. 앞면에서는 당당하게 십자가에 달려 계시지만 거울에 비친 뒷면에서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고통스럽게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냈다. 아울러 수난의 예수님 십자가 맨 위에는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최후의 만찬과 원죄를 나타내는 선악과를 따 먹는 장면이 있다. 특이한 점은 사악한 악마의 상징인 뱀이 아닌, 요한 묵시록(12,1-3)에서 등장하는 임신한 여인이 아들을 낳기만 하면 잡아먹으려 기다리는 붉은 용으로 표현, 창세기에서 요한 묵시록까지 인간의 죄를 끊기 위해 오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의 이유를 드러냈다. 이와 함께 원죄를 끊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보혈은 십자나무를 타고 흘러내려 아담의 해골을 적신다. 아담의 해골은 온 인류를 대표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십자가를 통해 미사 중 성체, 성혈 거양 시 사제가 성작을 높이 치켜들면 정말 예수님의 피가 성작 안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수난의 십자가(제대쪽)
[출처 : 가톨릭신문] 태양의 찬가 ;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 있음을.
오! 아름다워라. 저 하늘의 별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은. 오 아름다워라! 어머니신 땅과 과일과 꽃들. 바람과 불, 갖가지 생명 적시는 물결. 이 모든 신비가 주 찬미 찬미로 사랑의 내 주님을 노래부른다. 평화의 기도 : 오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여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성 프란치스코의 조력자 1) 물질적 조력자 - 야고빠 세떼쏘리 2) 영신적 조력자 - 끼아라(글라라)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가 태어난 아씨시는 이태리 움브리아주의 페루쟈현에 속해 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방도시로써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움브리아 평야의 평화로운 경치를 바라 볼 수 있는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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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시시에서 수녀원 숙소에서 3박4일 정도 머무르면서..
이제는 무언가 꼭 봐야 되겠다는 아무런 부담 없이
그냥 아시시의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가
달콤한 젤라또 한 입이면 정말 행복할 듯 하지 않나요(?). ..
아씨시는 토피노강과 키아시오강 사이, 아펜니노산맥의 수바시오산 중턱에 자리잡아 밑으로 움브리아 평야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기원전 295년에 로마가 지배하면서 쌓기 시작한성벽에 둘러쌓인 아씨시의 좁은 골목에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베어 있어요.성탄구유는 1223년 Assisi의 성 프란치스코가 처음 만든 후 퍼지기 시작했다는데.. 그래서인지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에는 전세계 성탄구유가 전시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어쨌든 Assisi에서 성탄 전야 미사 참례~
아씨시로 돌아온 성 프란치스코의 강론에 감화돼 수행에 나선 이가 바로 성녀 키아라다.
당시 18세였던 그녀는 여자 성 프란치스코로 불릴 만큼 청빈한 성인의 삶을 그대로 본받았다.
그가 외침에 맞서 도시와 성당을 지켜낸 기적을 행하고 수녀회를 세웠으며 생을 마감한 곳 역시 아씨시다.
그녀는 도시 외곽 성 다미아노 수도원에서 수녀회를 세우고 이끌다 생을 마감했다.
수도원 안팎의 풍경은 성녀 키아라의 삶을 그대로 닮아 있는 둣 해요.
아씨시 윗마을에서 성 다미아노 수도원을 향해 난 1km 남짓의 산책로는 걷는 것 자체가 수행이고 순례다.
조금 가파르긴 해도, 올리브 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뜻한 햇볕을 쪼이며 걷다 보면
헝클어진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800여 년 전 성녀 키아라도 걷던 길이랍니다.
Tartufo(트러플)
트러플은 우리가 흔히 송로 버섯이라고 부르는 버섯입니다.
이 트러플은 세계 3대 진미중에 하나죠?
(세계 3대 진미는 푸아그라, 캐비어 그리고 트러플입니다.)
‘땅속의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만큼 트러플 특유의 향과 맛 때문에 아주 비싼 가격으로 팔린답니다.
트러플은 블랙 & 화이트 이렇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아래 사진은 블랙트러플▼화이트트러플]
프란치스칸 ; 허리 띠 밧줄 매듭3줄 청빈 정결 순명이라네요
Assisi, 결코 볼게 없고 심심한 곳이 아니랍니다.
로마등 대도시와 다르게 친절하고 순박한 주민들과 상인들이 있는 곳이죠.두번의 1박2일의 스쳐지나감이
충분치 못해서.. 3박4일, 4박5일의 머무름을 일정을 추가로 잡은 아씨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