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프랑스-영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5개국 연합,
폴란드 침공을 마친 독일을 향해 선전포고
프랑스 공화국, 육군 230만
대영제국, 대륙원정군 30만
벨기에, 육군 40만
네덜란드, 육군 30만
총 병력 330만, 벨기에 국경 인근으로 집결
'독일이 영국-프랑스 동맹과 정면으로 싸워서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 아무리 독일이 발빠른 경제성장을 일궈내
막강한 공업능력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들,
상대는
로마 제국 이후 세계의 헤게모니를 쥔 인류 역사상 최강국인 대영제국과,
그 대영제국을 상대로 수백년을 나란히 경쟁한 프랑스 식민제국이었다. (중략) ...
'
영국이 거느리고 있던 캐나다와 인도로부터 도착한 지원병들
밝은 표정의 영국 대륙원정군.
'제군들! 우리는 크리스마스 만찬을 베를린에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1940년 프랑스 육군 북동부전선 사령관 알퐁스 조르주-
프랑스 만세!를 적고 손을 흔들며 마지노선으로 떠나는 프랑스군.
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의 서유럽 연합군의
위세는 막강했으며, 프랑스는 대단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프랑스의 분위기와 정 반대로, 독일 내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영국군과 프랑스군에 압도당해 독일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오히려 히틀러는 이 위기를 이용해 내부통합에 성공했다.
프랑스 전선으로 떠나는 독일군을 환송하는 히틀러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1940년 4월 요한 폰 킬만제크 준장-
1940년 5월, 독일 군수참모 요한 폰 킬만제크 준장,
제국화학청으로부터 각성제 용도의 '페르비틴' (메스암페타민,
필로폰) 30,000정 인수완료.
이 강력한 메스암페타민 기반 약물은 끔찍한 부작용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병사들이 3일 밤낮으로 전투와 행군을 반복해도 지치지 않게
해주었다.
벨기에 국경에
집결한 독일군.
제1기갑사단
프리드리히 키리히너 소장 및 전투병력 전원,
제7기갑사단 에르빈
롬멜 소장 및 전투병력 전원,
각성제 페르비틴 (메스암페타민)
복용.
프랑스군의 후방을 찌르기 위한 팔슈름예거의 공수강하
프랑스전 개전, 독일군 진격 시작
"조국의 모든 전우들이 우리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길을
열지 못하면 모두 죽는다.
우리는 대 독일의
선봉사단이다. 죽더라도 달리다가 죽자!"
-1940년 5월 9일, 제 1기갑사단장 프리드리히 키르히너
소장-
메스암페타민을 복용하고 휴식없이 진격하는 제1기갑사단
교전 중의 독일군 보병사단
독일국방군 49공병대대 2중대 소대장 루바르트 중사 (26세)가 이끄는 10여 명의 병력,
유일하게 세무아 강변 도하.
스당 방어선 진입 성공, 10여 명으로 7개의 벙커 무력화 (철십자 훈장)
아르덴 숲의 무장친위대
전투 후 담배를 피는 무장친위대, 위장패턴을 지급받았다.
독일 15기갑군단 제7기갑사단 에르빈 롬멜
소장,
프랑스 최정예 프랑스 제1기갑사단, 제4기갑사단
격파.
독일군 마스강 도하
'독일의 형제들이여! 우리가 마침내
해냈다!'
- 나치 기관지 '검은 방패'의 당시 1면
헤드라인 -
대서양과 맞닿은 프랑스의 서쪽 끝,
브리타뉴를 점령한 독일군
프랑스 수도, 파리 개선문을 통과하는 독일군
보병사단
파리 시내를 순찰하는 무장친위대와 국방군 병력
프랑스에 휘날리는 나치 깃발
파리 입성 선봉부대의 사열을 받으며 항복 서명장에 도착한 히틀러.
항복 서명은 1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군이 독일군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것 그대로,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항복서명을 했던 기차칸을 그대로 가져와서 시행되었다.
독일군의 귀환열차
프랑스에게 승리한 독일군 병사들의 모습
1940년 7월 9일 독일 베를린, 라디오에서 격앙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장병들이 도착했다는 긴급 보도를 송출했다.
히틀러와 귀환한 군인들을 보기위해 생업을 멈추고 몰려든 독일인들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귀국한 히틀러, 독일군의 시가행진과
인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