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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선 시인
인천광역시 옹진군 출생
2005년 <시인정신 > 으로 등단
'젊은시인들'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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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의 벽에 박힌 사내 / 김경선
날개를 깁는 여자 / 김경선
길을 걷다가 / 김경선
뼈 속의 도굴꾼 / 김경선
제3 병동 / 김경선
바람의 동거인 / 김경선
도박 / 김경선
9회말 투아웃 / 김경선
드라큘라 수난시대 / 김경선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 김경선
사각의 벽에 박힌 사내 / 김경선
사각의 벽이 사내와 함께 일어선다.
햇빛을 겨냥한 그의 눈빛은 마지막 외침으로 남고.
봄을 수소문하던
사내의 가슴엔 곰팡이처럼 어둠이 자랐다
낮에는 새우처럼 누워
곰팡이를 재배하는 사내
적갈색 어둠을 등에 지고
검버섯 핀 몸을 비틀어
하늘을 향해
기도인지 삿대질인지
허공을 자르고 또 자른다.
벽에 달라붙은 담쟁이로 가려진 사내
막노동을 하다가 다친 다리는
가로수 이파리처럼 흔들거렸다.
사내의 어미는 날마다 윤달을 기다린다.
죽음을 준비하는 수의를 생각했지만
아니란다.
어둠처럼 놀이터 미루나무에 기대어
바람을 닮아가는 아들에게
윤달이 필요하단다.
하늘과 땅의 신(神)이 한눈을 팔 때
아들의 사주를 바꾸고 싶어 이사를 해야 한단다
겨울을 마감 세일로 바쁜
윗 골목 의류수거함엔
헤진 구두와 옷들이 아쉬운 얼굴을 내밀다가
할머니 한숨 소리에 목젖만 탄다.
(시인정신 2005 여름호 등단작)
날개를 깁는 여자 / 김경선
수십 년을 재봉틀에 앉아 날개를 깁는 여자
한번도 시린 날개를 펴지 못해 앉은뱅이가 된 여자
퇴화된 날개를 방석 삼아 바느질을 한다
태양의 빛을 낚아 동정으로 달고
나무를 심어 열두 폭 크기로 날개를 저장한다.
꽃술에 날아드는 벌, 나비
날개를 수선해 주는 여자
날개의 비밀을 지켜주다 시력을 놓친 여자
돋보기 속에 날개란 날개는 다 감추어 놓고
절대 꺼내 자랑하는 법이 없다.
여자의 주소는 재개발동 접근금지호
날다가 죽을 너
걷다가 죽을 나
가볍긴 마찬가지
내 날개 오래전 끈 떨어졌어도
나에겐 기부할 날개가 남았단다.
날아봐라 날아봐 날개가 자랄 테니
살아봐라 살아봐 날개가 보일 테니
깃털에 꽂히는 여자의 자작 타령
그 여자 반찬은 시어터진 김치 한 조각
그 여자 낡은 골무처럼 굽은 등 새털 날개 푸르게 돋네.
(시인정신 2005 여름호 등단작)
길을 걷다가 / 김경선
생을 걸으며
마음의 깊이도 사랑의 결말도
쉬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생의 갈피갈피마다 젖은 풀잎이 무성하고
피고 진 흔적이 난무한 저 길 복판
태양이 진 언덕 위로 서리가 내리고
마른 갈잎도 간직 되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발아하지 못한 꽃씨를 품고
몸을 내 던지는 꽃잎,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대지는 겨울 내내 출렁거리는 암내를 풍기는
아, 생이란 것 결국 썩어 발아하는 것
생이라는 슬픈 길을 걸을 때
성에가 낀 창을 후후 불던 꽃잎도,
스스로 꽃 피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염려는
어수룩한 눈물바람인 것인데
생이 기막히다는 것, 생이 막막하다는 것,
다시 꽃피울 틈을 위해
떨고 있는 긴 겨울의 노래에 불과하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시인정신 2005 여름호 등단작)
뼈 속의 도굴꾼 / 김경선
세탁소 철재 철재 옷걸이 아래
구겨진 옷들이 추파를 던지며
웅성거린다
경상도 사내의 어눌한 눈웃음이
가볍게 묻어나는 옷걸이.
낡은 세탁기를 돌리면
타인이 흘린 부푸라기 뒤로
힘겹게 걸어오는 오랜 슬픔을 만난다.
세월에 닳은 손톱으로 보푸라기를 뜯어내면
둥글게 번지는
바람센 날의 기억들.
첫 아이를 낳고
산후풍이 정찰했던 내 몸
둘째를 낳으니
성난 모래바람으로 일어서
시린 몸으로 내 뼈에 부딪친다.
오월이면
태풍은 다시 지상에 길을 내고
뼈 속의 고통의 무늬를 그린다.
고요의 뼈가 부딪치는 소리들
들린다
(시인정신 2005 여름호 등단 시)
* 이상, 다음카페 "젊은시인들"에서 .
제3 병동 / 김경선
안녕하세요?
우리 인사나 하고 지내요
오래 전 장기 입원한 환자에요
당신도 병명을 모르시나요?
엄마의 슬픈 눈빛을 보면 불치병인 게 분명하지만
저는 병명이 뭔지 몰라요
날마다 치료는 받지요.
치료실에 가면 크고 작은 개꿈을 풀어놓고
기진맥진해진 벌거벗은 몸은 진땀을 흘리고
영혼조차 애벌레처럼 링거액 속으로 기어들어 가 종일 잠만 자요
검사를 하는 날은 금식을 해야 해서
맛깔 나는 욕망의 가시도 눈 딱 감고 뱉어 버려야 해요
어린 날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으면서
두꺼비에게 듣고 고쳤어야할 병이었는데
아이가 어른을 꿈꾸고
어른이 아이를 추억하는 지금까지
병명도 모른 채 입원실에서 먹고 자요
나는 아직도 두꺼비와 노는 도시를 세우고 있어요
오늘은 링거액 병을 깨고 싶을 만큼 어깨가 흔들렸어요.
의사의 말이 딸아이에게도 흡사한 유전자가 발견되었데요.
당신도 날마다 개꿈을 꾸나요?
바람의 동거인 / 김경선
낙원 떡집 옥상엔
한 장의 계약서도 없이
바람과 동거하는 사내가 있네
문틈으로 밀린 세금고지서가 빗물처럼 스며들고
슬픔이 찰랑거리며 받쳐놓은 고무다라이를 넘치곤 하네
마지막 남은 오천 원으로 복권을 사들고
어젯밤 폭포수처럼 울던 사내
헛도는 피댓줄 같은 헐거워진 생 앞에
짜거나 질척한 떡 반죽이 되는 사내
희망을 섞어 재 반죽을 시도하네
온몸으로 생을 걸쭉하게 치대며
철썩 처 얼 썩 두들겨 맞네
떡 시루에 사내의 눈물이 콩고물처럼 사이사이가 채워지네
찰진 아픔들이 차곡차곡 떡시루에 앉혀지고
뜨거운 수증기가 안개 같은 눈속임으로
상처들을 켜켜이 쪄내고 있네
조각조각 잘라져 포장되어 가판대에 놓이는 사내
낙원떡집에선 무지개떡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네
- <우리시> 7월호
도박 / 김경선
1,
그는 프로다
처음부터 내 상대는 아니었다
그는 정복자로서
내 삶 구석구석 구덩이를 파고 노상방뇨를 즐겼다
이랑 사이로 기미와 주근깨가 파편처럼 박힐 때마다
내 몸은 사막이 되고 모래바람이 인다
내 어느 봄날은 낙엽처럼 바스러졌다
2,
시력을 반쯤 잃었다
어느 것이든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찌든 삶의 모퉁이에 모여들던 바람조차도
내편이 되 주지 않는다
거꾸로 매달려
캄캄한 어둠을 전이시키는 박쥐처럼
시력이 퇴화 되었다
엄마 이전에 아내 이전에
한 여자로 한 사람으로
가야할 길을 수도 없이 놓쳤다
태양의 아가리에 머리통을 쳐 박고
마지막 영혼을 놓고 올인을 꿈꾼다
내 생의 베팅은 이제 마악 바통을 넘겨받았을 뿐이다
ㅡ 우리시 7월호 ㅡ
9회말 투아웃 / 김경선
출전 사인이 떨어졌다
내 마지막 등번호는 신용불량
생을 다초점으로 조명한다는 작전이었지만
한쪽으로 쏠린 생은 회복불능이다
절망은 마운드에서 기세등등하다
이 지상에서 아웃 될 우선순위
9회말 투아웃
만루홈런은 로또복권이다
돌진하는 마구는
독을 품고 나를 노려본다
꼼짝없이 두려움에 갇혀
엘로우100 마젠다 30 오렌지 빛 슬픔,
두려움의 색깔로 나를 겨냥한다
희망은 더 이상 안타를 날릴 수 없는가
도루는 파랗게 질려 떨고 있다
절망은 넉살만 늘어 비대해졌다
잡아줄 수비수는 보이지 않는다
9회말 만루 홈런을 노린다
로또복권은 자동 A 구, 사, 일, 생, 이, 다
-'현대시문학' 2007년 가을호
드라큘라 수난시대 / 김경선
신구빌라 B101호 드라큘라가 산다
그 남자,
검은 양복을 입고 밤마다 어디론가 외출을 한다
늦은 골목에서 그를 만나면 섬칫
그의 본색이 드러난다
웃을 때마다 가로등 불빛이 반짝
양쪽 송곳니에서 붉은 피처럼 흩어진다
송곳니가 쓰윽 내 목을 스친다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목을 감싼다
그 남자 눈빛이 마주칠 때면 무의식중에
주머니 속 십자가와 마늘을 만지작거린다
송곳니가 내 목을 뚫고 들어와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쭉쭉 빨 것 같다
그 남자의 가계를 거슬러 가면 분명 드라큘라가 있을 것이다
침침한 거실에 오동나무 관 하나 있을 것이다
낮엔 관속에 누워 잠을 자다가 해가 지면
관 뚜껑을 열고 걸어 나올 것이다
환한 대낮에 그 남자가 외출을 한다
호기심으로 또르르 말린 바람 한 점 곁눈질이다
그 남자가 송곳니를 빼러 간단다
우리 동네 살던 드라큘라가 사라졌다
'현대시문학' 2007년 가을호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 김경선
발톱 색깔이 기억나지 않아요
털을 곤두세우고 연립주택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융자 많은 그린맨션 402호 창을 내 집처럼 넘나들어요
꿈속을 휘저으며 조상님 제사상 밑에 도사리고 앉아
어두웠던 이생의 장부 들춰내며 영민한 눈 무섭게 흘기곤 해요
무엇이든 주문만 해요
목숨도 담보로 잡습니다
유전자가 다른 뛰어난 사기꾼
즉시 매입 전단 명함처럼 내 놓고 능청스럽게도 발톱을 다듬지요
이 뻔뻔한 고양이를 고용한 발톱 큰 고양이가 궁금해요
정말 희대의 사기꾼 사를르 페로의 장화를 신은 고양이
그 후손인지 유전자 검사를 국과수에 의뢰해 봐야겠어요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으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말 거에요
네일 아티스트를 고용해 발톱에 매니큐어 발라 주는 척하며
목에 방울을 달아 달라고 주문할 테니까요
주택담보대출 이율대폭 인상이라는
비보가 날아들었어요
무이자 무이자라고 TV에선 떠드는데
발톱 자국 깊어 생이 화끈거려요
어리석은 죽음으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
어젯밤엔 눈 질끈 감고 선반에 올라갔어요
거드름피우는 고양이 앞에 빈 그릇을 던졌지요
빨강립스틱으로 떨리는 입술 감출 수 있었어요
영리한 고양이 킁킁 냄새를 맡고 있어요
가난은 사정거리 안에 있어요
계간 '시와사상' 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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