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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히 시대순으로 나열하는 미숙한 구성을 가진 ‘국순전’에 비해 상당히 발전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태도
또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태도면에서도 두 작품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각 작품의 사평(史評)을 통해 단적으로 알 수 있는데, 국순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인물이며, 국성은 견기 이작(見機以作,기미를 보아서 이루어 나감)한 모범 적인 인물로 평가되었다. 이는 이규보가 설정한 주인공 국성이 ‘국순전’의 순과 동일한 소재이면서고 내용상 전혀 상반된 인물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국순은 방탕한 군주에게 크게 등용되었다가 나라를 어지럽히고도 물러날 줄을 몰라 내침을 당한 끝에 병이 들어 죽은 인물이다. 이에 비하여 국성은 임금을 도와 정사를 돌보다가 권세가 지나쳐 여론이 나빠지자 잘못을 뉘우치고 곧 물러나며, 또 국난을 당하여 용감히 일어나 나라를 구하고 공을 세우는 충성스럽고 의리가 있는 인물인 것이다.
주제의식과 문학사적 의의
이렇게 인물의 성격이 다르므로 자연히 그 작품에 담긴 사상에도 차이가 있게 된다. ‘국순전’은 향락만을 일삼는 요사한 벼슬아치를 꾸짖고 군주를 풍자하였다. ‘국순전’은 향락만 일삼는 요사한 벼슬아치를 꾸짖고 군주를 풍자 하였다. 그러나 ‘국선생전’은 위국충절(爲國忠節)하는 모범형의 인물로서 국성을 제시하여, 꼬집고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작품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임춘의 ‘국순전’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으로 창작된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편 국성이 수성(愁城)에 물을 대어 도둑 떼를 평정한다는 내용이 있는 바, 여기서 ‘도적’은 ‘마음의 근심’을 뜻하며 ‘물’은 ‘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근심을 술로 다스렸다는 말인데, 이것은 마음을 의인화한 첫 보기가 조선시대 임제가 쓴 한문 소설 <수성지(愁城誌)>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공방전(孔方傳)
줄거리
공방의 조상은 수양산에서 은거하고 있었는데, 황제 때에 처음으로 등용되었다.
뒤에 난리를 피해 숯화로 거리에 가서 살았는데, 아버지 천은 주나라의 재상으로 부세를 장악하였다.
방의 인품은 안팎이 다르고 임기응변에 능하여, 한나라의 벼슬을 하면서 오왕에게 붙어 많은 이(利)를 보았다.
한 무제는 그를 중용(重用)하였으나, 방은 탐욕스럽게 이(利)만 추구하다가 간관(諫官)의 눈에 거슬린 바 되었다.
원제 때 공우가 상소하여 마침내 퇴출 되었으나, 교만하여 반성하지 않았다.
진 나라 때에는 그를 좋아하는 자도 있었으나, 대체로 비천하게 여겨졌다.
당 나라에서 방의 재주를 이용하여 나라의 씀씀이를 편하게 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방이 죽었으므로 그 문도를 등용하였다.
남송 때에도 방의 무리가 정사를 도왔으나, 천하가 교란해지므로 축출되어 다시 번성하지 못하였다.
방의 아들은 경박하여 세상의 욕을 먹었고 뒤에 부정한 되가 드러나 사형되었다.
방은 본분을 잊고 사욕만을 따른 자이므로 그 일당까지 모두 죽여 없애야 할 존재였다.
작가의 비판적 현실
이 작품의 작가 임춘은 문벌 귀족 출신이지만 무신의 난으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여러 번 관직에 나가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해 산림에 묻혀 풍류를 즐기던 벗들과 함께 시를 읊고 술을 즐기다가 30대 후반에 요절함으로써 불우한 생애를 마친 인물이었다. ‘공방전’에서 그는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바탕으로 돈의 폐해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곧 ‘공방전’은 돈에 인간적인 품격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돈의 속성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과 각성을 의도하고 있다.
돈의 폐해 부각
임춘은 돈의 생김새부터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엽전은 바깥이 둥글고 속이 모가 나있다. 이것은 사람으로 치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원만해 보이지만 속은 편협하게 모가 나 있는 것이 돈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방(돈)이 임기응변(臨機應變)을 잘 한다고 한 것도 같은 속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조정에 중용(重用)도지만, 방은 마침내 욕심이 많고 더럽고 염치없는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본전과 이자 따지는 것을 좋아하고, 나라를 편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생산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 곡식은 천하게 하고 돈을 중하게 함으로써 농사에 방해를 끼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자기의 권세를 이용하여 벼슬을 매매하고 인품보다는 재물로써 사람을 사귀기 좋아하여 나라를 곤궁하게 만들고 만다.
타락한 관료 비판
이 작품은 돈이 당대의 질서를 해친다는 것과 함께 또 한편으로 당시 벼슬아치들의 윤리적 타락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작품의 말미에 사관의 입을 빌어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큰 이를 쫓는 자를 어찌 충이라 이를 것인가. …… 권세를 도맡에 부리고 이에 사사로운 당을 세웠으니, ‘충신은 경외의 사귐은 없다’는 것에 어그러진 자이다.”라고 말한 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돈의 문제와 더불어 충의 문제, 당시대의 비리 문제 등에 대한 의견까지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념적 작가 의식
공방(돈, 타락한 관리)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아주 단호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돈이 요구되지만 돈 때문에 인간은 탐욕스러워져 갖가지 비리를 저지르게 되므로 돈은 투통거리이다. 그러므로 후환을 막으려면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의도가 작품의 끝 부분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와 같이 ‘공방전’은 돈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 근거나 비평을 모두 과거의 역사 특히, 중국의 화폐 역사에 두고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는 아직 엽전이 크게 보급되었던 때가 아니다. 그러니까 임춘은 우리 나라에서 공방이 성장하기도 전에 중국의 사례를 놓고 경계의 화살을 보낸 것이다. 결국 ‘공방전’은 현실적 경험의 독창적 표현 이라기보다 관념적인 수준에 머문 작품인 것이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후략부분의 줄거리
두 사람은 만복사 으슥한 곳에서 하룻밤 정을 통한 뒤 그 여인의 집으로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여인이 이 곳 3일은 인간세상은 3년과 같아 가연(佳緣)을 맺은 지 오래 되었으니 인간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양생은 여인의 말을 따라 보연사로 갔는데, 그 곳에서 여인의 부모를 만나,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은 왜구에게 죽은 사람이며, 오늘은 그녀의 대상(大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양생은 얼마 후에 나타난 그 여인과 다시 만났으나 부모들은 그녀의 현신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제(祭)가 끝난 뒤 여인은 인연이 다하여 저승으로 떠나 버렸다. 그녀의 부모가 양생에게 여인의 재산을 주었는데, 양생은 그 재산으로 여인의 명복을 비는 재(齋)를 올려 달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양생은 그 후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해설
남원의 총각 양생이 처녀의 혼령과 사랑을 나눈 이야기로 소설적 상상력이 풍부하게 나타나 있으며, 한국인의 생사관도 엿볼 수 있다. 육체가 죽는다 해도 정신은 이땅에 남아 있다는 것, 즉 저승과 이승을 일원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전통적 생사관의 요점이다. 그러기에 죽은 사람이라도 그의 원(怨)을 풀어 주지 않으면 정신이 이승에서 방황하면서 원귀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양생이 사랑을 나눈 혼령은 바로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의 배경 사상이 외관상 불교적인 것 같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만은 없다. 작품의 끝 부분에서 사랑하던 여인이 저승으로 떠나면서 정업(淨業)을 닦아 속세의 누를 벗어날 것을 양생에게 부탁하는데 이것은 불교적 지향이다. 그러나 양생은 이 부탁을 외면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그 행방을 감추었는데 이는 불교도 인간을 궁극적으로 구제해 주지는 못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
전략 부분의 줄거리
개성 사람 이생은 글공부를 다니다가 명문가의 처녀 최랑과 담 너머로 시를 주고받는 끝에 사랑하는 사이다 된다. 이 사실을 안 부모는 이생을 시골로 보내 둘의 만남을 막았다. 그러나 그리움으로 인해 최랑의 병이 깊어지자 마침내 부모가 허락하려 두 사람은 온전한 혼례를 거쳐 부부가 된가. 이에 그들의 아름다운 사람은 꽃을 피우고, 이생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른다. 그러던 중 홍건적이 쳐들어와 온 가족이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되었는데, 이생은 홀로 몸을 피해 달아났으나 최랑(최씨 부인)은 미처 피하지 못한 채 남아 있다가 홍건적에 대항하여 정절을 지키다가 죽임을 당한다.
해설
제목에 나오는 ‘규장(奎章)’은 담 안을 엿본다는 뜻이다.
ⓐ부모의 반대로 인한 헤어짐 |
ⓑ부인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 |
ⓒ생사의 분리에 의한 갈라짐 |
ⓐ의 위기는 부인의 사랑으로 극복되어 둘은 혼인하게 된다. ⓑ의 위기는 현실적으로 해결 가능성이 없는 절망적 상황이다. 그러나 작자는 초현실적, 환상적 만남, 즉 현실계와 영계의 결합이라는 방법에 의해 이 어려운 상황을 극적으로 해결한다. ⓒ의 시련은 이생의 죽음으로 파국에 이르게 된다.
‘이생규장전’의 이러한 구성법은 이 작품의 인물 설정 기법과 더불어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한층 높여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 처음 이생이 최랑과 사랑을 나누면서 이 사실이 새어나갈 것을 염려하지만 최랑은 그런 것에 구애됨이 없었으며,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이생은 홀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도망하였고 최랑은 도적에 맞서 대항하다가 죽었다. 이것은 이생의 성격이 소극적인 데 비해 최랑의 성격은 용기 있고 적극적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작품의 등장인물의 성격을 비교적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어, 이 작품의 소설다운 면모를 확고하게 해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양반전(兩班傳)
줄거리
강원도 정선의 한 양반이 해마다 관청의 쌀을 빌려 먹은 것이 천석에 이르렀다.
관찰사가 이 사실을 알고, 관곡을 못 갚으면 양반을 하옥시키라고 명한다.
빚을 갚을 대책이 없어 울기만 하는 양반의 무능을 그 부인이 비난한다.
이웃의 평민 부자가 천 석 싸을 대신 갚아 주고 양반의 신분을 사기로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군수는 고을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양반 신분 매매 증서를 만들어 주기로 한다.
군수는 매매 증서에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행동 규범들을 회화적으로 나열한다.
이에 불만을 가진 부자의 요구에 의해 증서를 다시 작성한다.
두 번째로 작성한 증서에는 양반이 부당한 특권도 자의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을 담는다.
부자는 양반이 되는 것은 도둑놈이 되는 것이라 하면서 양반 되기를 포기한다.
제목과 구성의 괴리
‘전(傳)’이란 대개 특정 인물의 긍정적인 행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예컨대, <춘향전>은 열녀 춘향의 행적을, <심청전>은 효녀 심청의 행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양반전>은 그 서술 대상이 특정한 양반의 행적이나 생애가 아니다. <양반전>에 나오는 양반은 이름도 성도 부여받지 못한 불특정 인물이며 부정적 인물이다. 그러므로, <양반전>은 그 구성면에서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등과 같은 특정 인물 중심의 허구(虛構)라고 보기가 어렵다.
시대적 배경
<양반전>은 사회 비평의 성격이 짙은 작품이므로, 작품에 반영된 시대적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품의 양반 매매 장면은 중세적 신분 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이전에는 양반 계층이 정치․사회적 권력을 독점하였고 이를 배경으로 경제적 실권까지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 평민의 각성과 더불어 유교적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경제적 중심이 평민 계층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리고, 평민들은 부의 축적을 바탕으로 신분의 상승을 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매관매직(賣官賣職)이 성행, 관료 사회의 부패, 양반의 권위 추락 등과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풍자와 비판의 대상
이 작품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기초하여 몰락해 가는 양반과 점점 부각되는 평민 계층을 등장시켜 양반의 무능과 허위를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작가 의식을 보여준다.
연암은 양반 매매 증서라는 기발한 착상으로 양반층의 공허한 명분주의와 부당한 특권 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첫 번째 작성된 증서에는 양반의 무위 도식(無爲徒食)하며, 공허한 관념적 학문과 겉치레에 불과한 행동 규범에 얽매인 비생산적 계층으로 규정하고 있다. 두 번째 증서에서는, 앵반 계층이 지식과 신분을 앞세워 개인적 이익만을 취하며, 부당한 특권을 남용하는 집단으로 풍자되고 있다.
군수의 역할
이 작품에서 군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양반과 부자 사이의 신분 매매를 조정하는 구실을 맡았으나 결국 매매 계약을 무효화시키고 말았다. 그는 매매 증서를 통해 당시 양반의 허위와 무능, 부패를 해학과 풍자로 폭로하면서, 부자로 하여금 양반이 되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신분 질서가 동요되는 현실 속에서도, 경제력만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평민 계층의 망상을 일깨워 주는 구성이며, 양반의 부도덕성을 비판하면서도 양반 사회 자체를 부정하지 못하는 작가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요컨대, 작가의 일차적 비판 대상은 선비의 도를 상실하였거나 무단으로 백성을 괴롭히는 양반이며, 이차적 비판 대상은 신분 상승만을 열망하는 평민 게층의 망성이다.
허생전(許生傳)
줄거리
허생은 가난한 가운데 독서만 좋아하는 선비이다.
생활고를 견디다가 못한 아내가 질책을 하자 허생은 집을 나선다.
허생은 부자 변씨를 찾아가 만 냥을 빌려 장사를 시작한다.
과일과 말총등을 매점매석하여 큰 돈을 번 다음 빈 섬 하나를 탐문해둔다.
돈으로 도둑등의 삶의 터전을 빈 섬에 마련해 준다.
허생은 실리에 입각하여 빈 섬을 경영하고 교화시킨 뒤 출입을 금하고 자신만 귀환한다,
허생이 변씨에게 약속한데로 10만냥을 갚는다.
변씨는 허생의 후원자가 되기로 하고 서로 친교를 맺는다.
허생은 변씨와의 대화를 통해 돈 버는 방법, 매점매석 행위의 위험성, 인물관, 현실관 등을 토로한다.
변씨의 소개로 정승 이완이 허생을 찾아온다.
허생은 국가적 현안 문제 해결책으로 인재 등용, 권신의 척결, 실질적 부국강병의 방안 등을 제시했으나 이완은 현실적으로 그 실행이 어렵다고 한다.
허생은 허례 허식에 얽매여 현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대부 계층을 꾸짖으며 이완을 쫓아 낸다.
다음 날 허생은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인물의 성격
<허생전>의 주인공은 입체적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처음엔 무기력한 선비로 등장하여 아내의 비난을 받지만, 곧 현실에 참여하여 자신의 능력을 사회적 행동으로 보여 주는 적극적 인물이 된다. 그리고 허생은 다시 실학의 선구자로 당대의 사대부 계층을 맹렬하게 꾸짖는 비판자로 변신한다.
<허생전>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로 변씨도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대범한 성격으로 허생의 사회 활동을 가능케 했도, 허생의 말상대가 되어 허생의 역량을 드러내 주었으며, 나아가 허생과 이완을 연결시켜 대의명분(大義名分)에 얽매인 위정자를 비판하는 인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해 주었다. 그는 당시 경제적으로 성장한 신흥 세력의 대변자로서 작품 전개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허생의 상행위
허생이 과실과 말총을 독점하여 큰 돈을 벌게 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 독점적 상행위는 허생 자신도 나라를 병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번 것은 우리 나라의 경제와 유통 구조의 취약성과 허례허식에 얽매인 양반 계층을 풍자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독점에 의한 장사의 성공은 상품 유통이 원활하지 못한 현실을 그러내기 위한 거싱고, 과실과 말총을 독점한 것은 제사지내지 않고 갓을 안 쓰면 죽는 줄 아는 양반 사회의 허례 허식을 비웃기 위한 상행위이다.
한편, 이러한 허생의 상행위를 중상주의의 표현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그것은 잘못이다. 허생은 변씨와의 대화에서, 자신을 장사치로 보는 데 대하여 역정을 냈었고, 돈을 재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장사나 돈에 혐오를 느끼는 인물이었으며, 사리사욕을 위해 이윤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돈을 벌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백성을 구제하는데 썼고, 자신은 빈털터리로 되돌아갔다. 따라서, 그는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바로 그 돈을 벌게 한 경제적․사회적 모순에 직접 대결함으로써 그 해결책을 촉구한 것이다.
또, 변씨와의 대화에서 허생이 돈은 도(道)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로 보건대, 연암의 대리인인 허생은 도와 덕을 바탕으로 한 실리 추구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 현실의 비판
허생이 이완과의 문답을 통해 제시한 국가적 현안 문제 해결책은 한결같이 고루한 위정자들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혁신적린 개혁안들이다. 이러한 개혁안을 제시함으로써 작가는 집권 관료층이 명분과 예법에 얽매여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수용하지 못하는 당대의 정치를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사대부들에게 우물 안 개구리식의 식견을 탈피하고 높은 차원의 세계를 지향하는 안목을 요구한 것이다.
특히, 청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을 씻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실리를 취할 것을 주장한 부분은 북학파(北學派)로서의 작가 의식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호질(虎叱)
줄거리
범은 지혜, 용기, 덕을 갖추었지만, 제일 강한 짐승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범을 제일 무서워한다.
하루는 범이 창귀들을 불러 먹이를 의논한다.
창귀들이 의사, 무당, 선비를 먹이로 추천했으나, 거짓된 자들이므로 맛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어느 고을에 존경받는 선비 북곽 성생과 열녀로 소문난 과부 동리자가 있었다.
어느 날 밤, 북곽 선생이 동리자와 방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그녀의 성이 다른 다섯 아이들에게 들켰다.
다섯 아들은 여우가 북곽선생으로 둔갑하여 어머니를 유혹한가고 생각하여 이를 잡으려 했다.
북곽 선생은 도망을 하다가 똥 구덩이에 빠진다.
구덩이에서 나온 북곽 선생이 범과 마주친다.
더럽다고 외면하는 범에게,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려 아첨하며 살려 주기를 간청한다.
범은 선비들의 잘못된 형식 논리, 인의(仁義)도 없고 잔혹한 인간의 소행 등을 장황하게 꾸짖는다.
북곽 선생은 꿇어 앉아 오래도록 빌고 있다가, 머리를 들어 보고 범이 사라진 것을 안다.
새벽 밭 갈러 나온 농부를 만나자, 다시 근엄한 선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범’의 성격
이 작품의 범은 단순히 의인화된 동물이 아니라, 인격화되고 성화(聖火)된 존재이다. 범은 선비로 대표되는 인간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주동적인 인물이며,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영적 동물로서 연암을 대변하는 주인공이다. 뿐만 아니라, 제 3부에 등장하여 인간을 직접 질타함으로써 작품의 유기적 구성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질타의 대상
이 작품에서 범이 꾸짖는 대상은 우선 표리부동한 인간이다. 인간의 어떤 점이 어떻게 질책되고 있는지 작품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제1부에서는 인간의 가치를 범의 먹거리로서 평가하고 있다. 사람의 상투를 짐승의 꼬리와 동일시함으로써 인간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고 나서, 범은 의사, 무당, 선비를 먹이의 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그들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다. 의사나 무당이나 선비는 모두 혹세 무민(惑世誣民)을 일삼는 자들이기 때문에 맛이 없다는 것이다.
제2분에서는 위선적인 인간의 모습이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존경받는 북곽 선생과 열녀로 칭송되는 동리자는 조선 사회가 숭상해 오던 인간상들이다. 그러나 북곽 선생은 과부의 집을 드나드는 바람둥이고, 동리자는 성이 다른 아들을 다섯이나 둔 부정한 여인이다. 여기에서 조선 사회의 이중성, 허위성이 여지없이 폭로된 것이다. 특히, 북곽 선생이 똥구덩이에 빠진 것은 선비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부분이다. 북곽 선생이 똥과 동일시 됨으로써, 그의 추한 모습이 분명하게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대중들은 이들의 명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동리자의 다섯 아들은 어머니의 방 안에 있는 남자가 북곽 선생일 가능성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여우가 둔갑하여 동리자를 유혹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 이 작품은 북곽 선생과 동리자의 위선에 대한 풍자에 그치지 않고, 동리자의 다섯 아들을 포함한 고을 사람 전체의 어리석음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제3부에서는 제1부에 등장했던 범이 북곽 선생과 만난다. 여기에서는 똥과 동일시된 선비의 위선이 범의 입을 통해 직접 표현된다. 그런데 범은 자신들의 자연스럽고 정직한 세계와 대비시켜 가면서, 선비의 위선과 허위를 지나 인간의 비정, 부도덕까지 비판의 범위를 넓혀간다.
그러나 새벽에 북곽 선생을 만난 농부는 눈앞에 나타난 이중적 선비의 모습을 간파하지 못한다. 선량하되 타자나 세계의 진실에 눈뜨지 못한 어리석은 대중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북곽 선생은 밤의 모습에서 다시 근엄한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범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위정자들의 모습과 같이 평면적인 인물이다.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줄거리
선귤자(禪橘子)의 벗 예덕 선생은 동네로 돌아다니며 똥을 져 나르는 일에 종사하는 미천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엄 행수라 불렀는데, 엄은 성(姓)이고 행수는 늙은 역부(役夫)를 뜻하는 말이다.
선귤자의 제자 자목(字牧)은 스승이 사대부와 교유하지 않고 비천한 엄 행수와 벗하는 것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선귤자는 이해(利害)로 사귀는 시교(示敎)와 아첨으로 사귀는 면교(面交)를 하지말고, 마음으로 사귀고 덕을 벗하는 도의의 교(交)를 해야한다고 설득한다.
그는 이어서, 엄 행수는 신분이 미천하고 하는 일은 더럽지만, 마음이나 행동은 향기롭고 의롭기 때문에 예덕 선생으로 일컬으며 도의의 교를 나누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인간상의 발견
<예덕선생전>은 소외되기 쉬운 하층민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켜, 그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핵심 인물인 엄 행수의 생활은 그야말로 하층민의 삶이다.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나, 웃을 때나 그의 모습은 무식하고 천하며,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은 더럽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분수를 지켜 욕심내지 않고 가식이 없다. 그래서 선귤자라는 학자도 그를 에덕 선생이라 부르며 존경하였다. 선귤자는 대부만을 대상으로 청렴 결백을 논의하던 전근대적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찾아 낸 것이다.
바람직한 우도(友道)의 제시
이 작품에 나타난 유일한 갈등은, 스승인 선귤자가 재래의 신분 질서를 무시하고 하층민인 엄 행수와 벗하는 데 대하여 제자 자목이 불만을 터뜨린 사건이다. 벗을 사귐에 있어서 계급 의식 문제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갈등이 유발된 것이다. 이런 갈등을 계기로 선귤자는 자목에게 참다운 인간 관계와 바람직한 교우의 도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선귤자의 입을 빌려 표현된 교우의 도에서, 당대의 시대상으로 보아 가장 혁신적인 것은 계급의식의 타파에 있다. 벗을 사귀는 데 있어서 신분적 차이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해(利害)나 아첨에 의해 맺어지는 인간관계도 비천한 것이다.
다만 진실된 마음과 도의에 의한 교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 행수(예덕선생)는 신분과 종사하는 일은 미천하지만, 자기 분수를 알고 허례허식에 얽매이지 않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덕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를 마음으로 존경하고 벗삼는 것이 도리에 합당한 일이라는 게 선귤자의 설명이다.
예덕선생의 시대적 의미
예덕 선생이 분뇨를 나르는 사람이라는 점에 근거하여 이 작품이 농사를 천시하는 사상을 비판한 작품이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줄거리로 보아 예덕 선생은 직접 농사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전통적 신분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농부들에게 인분을 가져다 주고 돈을 받아 살아가던 새로운 계층 - 임금노동계층이라는 추정까지도 가능하다. 이 작품에서 예덕 선생이 가지는 의미는 분뇨를 나르는 역부나 농사꾼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분수를 알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가지는 모든 인물로 확대되는 데 있다.
전우치전(田禹致奠)
줄거리
선비 전우치는 일찍이 도사를 만나 도술을 배웠다.
남쪽 지방에 해적이 침입하고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살기가 어려웠다.
전우치가 선관(仙官)으로 변신하여 대궐에 들어가 황금 들보를 바치게 한다.
전우치는 황금 들보를 거두어, 이를 곡식으로 바꾸어 남쪽지방 백성들을 구제한다.
왕이 속은 것을 알고 체포하려 하자, 일부러 잡히어 자신의 행위가 정당함을 말하고 도망한다.
무고하게 투옥된 백성을 구하고, 백성을 괴롭히는 관리를 벌한다.
거만한 한량과 기생을 혼내주는 한편, 선전관이란 벼슬을 얻어 조정에서 벼슬아치들의 비행을 징벌한다.
왕명으로 대도(大盜)의 반란을 평정하였으나, 역적으로 몰리게 되어 그림 속으로 도망한다.
조정에 있을 때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했던 관원을 혼내 주고, 욕심 많은 사람을 징계한다.
친한 벗을 위하여 수절 과부를 납치하려다가 강림 도령에게 제지를 당한다.
서화담과 도술 대결을 벌이다가 패배하고, 그를 따라 산 속에 들어가 선도(仙道)를 닦는다.
작품의 형성
전우치 설화는 주인공의 도술 행각이 여러 가지 삽화로 결합되어 있는 형식이다. 이러한 설화에 작가 의식이 투영되어 소설화된 것이 <전우치전>이가. 그래서 <전우치전>은 이본(異本)에 따라 주제 의식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 설명 대상으로 삼은 것은 신문관본(新文官本)인데, 5종의 이본 중, 전우치의 도술 행각에 사회적 의미를 가장 강하게 부여한 작품이다.
작가의 사회 의식
전우치의 첫 번째 도술 행각은 왕실로부터 황금 들보를 탈취하여 어려움에 처한 백성을 구제한 일이다. 왕조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빈민을 구제하려는 의도에서 도술 행위가 시작된 것이며, 전우치의 민중적 영웅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후에도 전우치는 불의에 대항하여 약자를 돕고, 사악한 관리를 벌하는 등 도술로써 영웅적 행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행적이 과연 현실과의 치열한 대결적 자세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또는 바른 사회 건설을 위한 정의로운 활동인지에 대하여는 회의적(懷疑的)이다. 그의 도술 행각 중에는, 대의 명분도 없이 거만한 한량과 기생을 흔내 준다든지, 자기에게 피해를 준 자에 대하여 복수를 한다든지, 수절과부를 훼절시키려는 패륜적(悖倫的) 행위를 시도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적들은 순전히 개인적 욕구의 해소를 위한 장난 수준의 행위들이다. 더구나 하늘의 도를 지킨다는 강림 도령이 전우 치를 필부(匹夫)로 규정한 점, 그리고 당대의 큰 유학자 서화담에게 굴복하여 입산하는 점 등은그의 민중적 영웅으로서의 이미지를 소멸시키는 구성이다. 이것은 작가의 사회(현실) 의식이나 소설 구서으이 기법이 미숙한 단계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홍길동전>의 아류작
기테의 형식을 취하였고, <전위치전>은 일관된 줄거리가 업이 여러 개의 에피소드가 병렬된 형식을 취하였다. 이것은 이 작품이 <홍길동전>에 비하여 그 구성이 미숙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홍길동전>은 민중의 힘을 기반으로 부조리한 사회 제도나 현실을 개조해 보겠다는 영웅적 의지와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집단적 행동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전우치전>은 가족 질서에 대한 저항도 있지만, 개인적 욕구나 재미를 위한 도술 행각도 있고, 현실에 대한 치열한 대결이나 민중적인 행동이 결여되어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전우치전>은 <홍길동전>에 미치지 못하는 아류작(亞流作)이라고 하는 것이다.
임진록(壬辰錄)
줄거리
최일경이 왜의 침입 징후를 언급했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유배당한다.
왜군이 거침없이 침입하자, 이순신이 수군으로 출정하여 왜군을 물리치다가 적장 마홍에게 죽는다.
강흥립이 적장 마홍을 죽이고 대승을 거둔다.
정충남이 출진하여 전사(戰死)하자 왕이 피난길에 오른다.
김덕령이 군사를 일으켜도 술로 왜군을 대파한다.
최일경이 돌아와 왕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명에 구원병을 청하게 한다.
관운장이 현신하여 도성을 점령한 왜적을 물리친다.
김응서가 기생 월선과 공모하여 왜장 조섭을 살해한다.
이여송이 대군을 거느리고 조선 장수들과 함께 왜진을 공격하여 물리친다.
김덕령이 역적으로 몰려 원통하게 죽는다.
이여송이 조선 산천의 혈맥을 끊다가 신령에0게 봉변을 당한다.
강홍립과 김응서가 일본 원정에 나서 승리하지만, 강홍립의 배신으로 둘 다 죽고 만다.
사명당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술로 왜왕을 흔내 준다.
작품의 형성
임진왜란 이후, 현시에 대한 민족적 자각이 싹트면서, 일본을 배척하고 왜란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을 민중적 영웅으로 윤색ㅎ나 설화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것은 패전의 역사를 승전의 역사로 허구화함으로써, 쓰라린 패배에 대한 정신적 포상을 얻으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임진록>은 이러한 설화들이 집대성되고, 전승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수십 종의 이본으로 형성되어, 하나의 작품이 라기보다 ‘임진록군(壬辰錄群)’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의 변용
<임진록>은 다른 고전 소설처럼 특정 인물의 생애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이본에 따라 강조된 인물이 다리기는 해도, 임진홰란 중에 영웅적으로 활약했던 많은 인물들의 활약상이 나열식으로 전개되어 있는 구성법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모두 실존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역사적사실이 그대로 서술되지는 않았다. 이들은 모두 민중의 정서와 역사 의식에 의해 조금씩 민중적 영웅으로 변용된 인물들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어린 나이에 왜군을 무찌르고, 강홍립은 역사적으로 왜란 이후에 등장하는 인물이면서 왜군과 싸우고 왜국 정벌에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정신적 배경
<임진록>은 실질적으로 패배한 전쟁을 승리의 전쟁으로 승화시킨 문학이다. 여기에는 굴욕적 참패에 대한 울분, 그리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자기 반성의 회한(悔恨)등 왜란의 충격에 의한 민족의 정신적 상황이 반영되고 있다.
왜의 침입을 예고한 충언을 요망한 언사라고 처벌까지 하면서 전라에 대비하지 못한 지배층의 무사 안일과 왜적을 무찌르는 데 앞장 섰던 변방의 용장, 승려, 기생들의 모습을 대비시킨 구성은 곧 지배층에 대한 민중의 불신이며, 자기 반성을 통한 민중 의식의 성장을 암시한 것이다. 이순신, 김응서, 김덕령 등은 평안도, 강흥립은 제주도에 웅거하던 장수로 설정한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김응서와 강흥립이 왜를 보복 정벌하고, 사명당이 왜왕에게 항복을 받는 구성은 왜에 대한 강한 적대감과 왜란에서 받은 피해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임진록>에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뿐만 아니라, 명의 군대에 대한 민중의 증오심도 나타나 있다. 구원군 이여송이 갖가지 트집을 부린다든지 전쟁이 끝난 뒤 우리 나라 산천의 혈맥을 끊다가 혼이 나는 사건등은 이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배타감정이 아니라, 독자적 국력 배양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구성인 것이다.
박씨전(朴氏傳)
줄거리
한양의 이득춘이 늦게 낳은 아들 시백은 총명하고 비범하였다.
금강사의 도사 박 처사가 자신의 딸과 시백의 혼인을 청하자, 득춘이 허락한다.
시백은 신부의 얼굴이 추물임에 실망하여 부인을 돌보지 않는다.
박씨는 후원에 피화당(避禍當)을 짓고, 홀로 지낸다.
박씨는 부덕(婦德)과 신묘한 도술의 힘으로 가정을 풍족하게 하고 남편을 자원 급제 하게 한다.
어느 날 박 처사가 와서, 액운이 끝났다며 딸의 허물을 벗겨 주니 절세 미인으로 변한다.
시백을 비롯한 가족들이 박씨를 사랑하게 된다.
시백은 병조 판서가 되어 남경에 사신으로 갔다가 임경업과 함께 가달의 난을 평정하고 귀국한다.
호왕이 조선 침공에 앞서 시백과 경업을 죽이려고 첩자를 보내지만, 박씨가 이 첩자를 쫓아 버린다.
박씨가 시백을 통하여 호왕의 침입에 대비하도록 조정에 청했으나, 김자점의 반대로 거절된다.
호국이 침입하자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가 항복하고 많은 사람이 화를 당한다.
적장 용골대의 아우가 피화당에 침입했다가 박씨에게 죽고, 복수하러온 용골대도 박씨 도술에 혼이 난다.
용골대가 인질들을 데리고 회군하다가 의주에서 임경업에게 대패한다.
왕은 지난날을 후회하고 박씨를 절충 부인에 봉인한다.
성격과 구성
허구적 인물인 박씨의 이인적(異人的) 행위가 주축이 되어 병자호란의 참상과 패배를 설욕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 작품이다. 창작의 목적이나 시대 배경으로 보아 <임경업전>과 동질적인 작품이지만, 주인공이 허구적 인물이며 여성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이 작품은 박씨의 갈등 내용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가정 안에서 쥐는 박씨의 갈등이고, 후반부는 병자호란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갈등이다. 전반부의 갈등은 박씨가 추한 허물을 벗어 절세의 미녀로 탈바꿈하는 것으로 해소가 되고 후반부의 갈등은 박씨가 호군을 도술로써 제압하고 임금에서 포상 받는 것으로 해소된다.
주인공의 특수성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인공이 여성이며, 그 당대 상회의 주축인 남성들을 압도하는 초월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이다.
하나는 삼종지의(三從之義) 같은 가부장적 제도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여성들의 내면적욕구가 표현화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의 능력으로도 국난을 타개할 수 있다는 사회 의식이 반영되었다는 점이다. 박씨는 남편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도술력을 발휘하여, 하룻밤 사이에 조복(調服)을 지어 내고, 비루먹은 말을 준마로 키워 가산(家産)의 증대에 이바지하고, 남편을 장원 급제시키는 등 가정문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확대되어, 호란에 대비할 필요성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호란 중에는 침입자를 벌 주고 피화당에 모인 부녀자들을 보호한다.
추녀가 미녀로 변신한 사연
이 작품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박씨가 추한 얼굴의 허물을 벗고 절세 미녀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부분일 것이다. 박씨는 이 탈갑 변신 이후에 비로소 명실상부한 아내, 며느리로 받아들여져 여성의 역할을 온전하게 수행 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변신 이전 추한 모습으로 시비 계화만을 데리고 초당에서 지낸 생활은 금기와 고난의 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이기간은 시집 및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통과 의례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런 변신의 모티프(motif,화소)는 혁거세 신화에 나오는 ‘알영’이나 민담에 나오는 ‘우렁이 색시’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주제의식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은 병자호란으로 인한 치욕적인 패배감을 극복하고 정신적인 승리 의식을 심어 주며,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기 위한 소설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박씨의 활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임경업 등의 활약상도 나타나 있다.
따라서, 주제의 핵심은 병자호란의 패배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과 민족적인 자부심의 각성에 있다고 하겠다.
유충렬전(劉忠烈傳)
-2006학년도 기출
줄거리
명나라가 약해지면서, 호적의 힘은 커지고 있었다.
이때, 명관(名官) 유심은 늦도록 자녀가 업어 부인 장씨와 남악 형산에 들어가 기도를 하였다.
장씨가 천상 선관(仙官)이 하강하는 꿈을 꾼 뒤에 충렬이 태어나 비범한 기상을 품고 자란다.
유심이 간신 정한담의 모함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정한담의 박해를 피해, 장씨는 충렬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강가에서 도적을 만나게 된다.
도적들은 충렬을 강물에 던지고 장씨를 잡아갔으나, 장씨는 도망을 하여 조카의 집에 숨어 지낸다.
충렬은 간신히 물에서 나와, 전(前)승상 강회주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살다가 그의 사위가 된다.
강 승상도 정한담을 규탄하다가 귀양가게 되니, 충렬은 또다시 화를 피하여 아내와 이별을한다.
충렬은 광덕산 도승을 만나 병법과 도술을 익힌다.
정한담이 호적과 결탁하여 천자를 공격하자, 천자는 금산성으로 후퇴한다.
충렬이 나타나서 반군을 물리치고 도성을 되찾지만, 황후, 태자가 호국에 포로로 잡혀간다.
한담이 몰래 천자를 죽이려다가 충렬에게 사로잡혔다.
충렬은 호국을 정벌하고 황후, 태자를 구하여 돌아오는 길에 부모와 장인, 아내를 찾는다
천자가 한담을 처형하고, 충렬에게 큰 벼슬을 내려 부귀를 누리게 한다.
군담․영웅 소설의 정석
이 작품은 동명왕 신화에서 이미 그 구조가 확립된 귀족적 영웅의 일생을 바탕으로 한 전형적 영울 소설이다. 그러나 <유충렬전>과 같이 조선 후기에 성행한 영웅 소설은 영웅 신화와 좀 다른 점이 있다.
신화에서는 영웅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고난에 적대 관계나 보복이 없지만, 후대의 영웅 소설에서는 적대 관계에 의해 성장기의 영웅이 고난을 겪거나 보복을 당하게 된다. 또 신화의 주인공은 자신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여 주체적으로 영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유충렬은 자신을 위한 투쟁보다는 천자를 위한 투쟁에 비중을 두는 종속적 영웅이다. 그래서 투쟁의 결과로 얻은 영광도 천자에게 부여받은 벼슬이다.
그리고 대개의 영웅소설들은 천상계와 지상계라는 이원적 공간을 설정하고 주인공이 어떤 잘못으로 지상계로 추방된다는 적강(謫降) 화소를 지닌다. 적강 화소는 작품 전개에서 복선(伏線)의 구실을 한다. 유충렬은 천상에서 익성과의 반목 때문에 적강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 익성의 화신인 그 누군가와 대립할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익성의 화신은 바로 정한담이었다.
작가의 역사적․사회적 의식
이 소설에서 토번과 가달의 정벌을 둘러싸고, 유심과 정한담이 벌이는 대결은 주전(主前)․주화(主和)의 대립이다. 이것은 병자호란 때의 척화파(斥和派)와 주화파(主和派)의 대립을 연상케 한다. 또 호국에 황후․황태자가 포로로 잡혀 간 것은 대군과 비빈이 청나라의 포로가 된 역사적 사실을 반영이며, 천자가 금산성으로 피난한 것은 인조가 남한산성에 피난한 사실에 대응된다. 그러므로 충렬이 호국을 정벌하고 인질을 구함으로써 통쾌하게 설욕하는 것도 민족의 역사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박씨전>이나 <임경업전>과 같이 병자호란에 대한 민족적 울분과 복수심을 표출한 것이다.
그러나 <유충렬전>에서는 또 하나의 작가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역경에 처하여 왕권이 얼마나 무능하고 비굴한가를 보여 주면서, 유충렬이 몰락한 가문을 일으키는 과정을 서술하고, 정적(政敵)인 정한담을 대역 죄인으로 형상화하여 잔인한 보복을 가하는 작품전개에 암시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 전개는 권좌에서 실세한 양반 계층의 권력 회복의 꿈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즉, 몰락한 계층의 권좌 만회의식이 구현된 보복 문학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요컨대, <유추열전>에 나타난 작가 의식은 호국에 대한 적개시, 지배층의 무능 폭로, 실세층의 복권 의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줄거리
선비 백상군과 부인 정씨는 명상 대찰에 빌어 낳은 외아들 선군이 장성하자 혼처를 구하고 있었다.
이 때 옥련동의 적강 선녀 숙영이 연분됨을 꿈으로 알려 준 이루 선군은 상사병에 시달린다.
숙영은,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옥련동으로 찾아온 선군에게, 하늘이 정한 기간 3년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군은 숙영의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혼인을 강요하여, 남매를 낳고 금슬의 낙을 누렸다.
선군은 아내와 헤어지기 싫어, 과거를 보라는 부명(父命)을 거역하다가 아내의 권유로 과거 길을 떠났다.
그러나 선군은 숙영을 연연한 나머지, 두 번이나 밤중에 집으로 몰래 되돌아와 아내와 함께 자고 갔다.
백상군이 선군을 외간 남자로 오인한 틈을 타, 시비 매월 숙영을 음해하여 누명을 씌운다.
숙영이 분함을 못 이겨 자결했는데, 시체가 움직이지 않아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백 공은 선군이 숙영의 죽음 때문에 상심할 것이 두려워 임 진사의 딸과 약혼해 두었다.
과거에 급제한 선군이 꿈을 통해 숙영의 소식을 알고 돌아와, 사건을 밝히고 매월을 죽여 원수를 갚는다.
숙영 낭자는 며칠 뒤 옥황상제의 은덕으로 재생하여 선군과의 미진한 연분을 잇게 된다.
선군은 숙영의 권유로 자신과의 약혼 때문에 정절을 지키고 있는 임 소저를 제2부인으로 취한다.
세 사람이 부귀 영화를 누리다가 같은 날 함께 상천(上天)하였다.
근원 설화와 구성
㉮인간과 선인(仙人)이 결혼하는 이야기 |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 |
㉰관리가 누명을 벗겨 주는 이야기 |
㉮의 설화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비롯한 많은 민담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의 설화는 죽음과 재생을 통해 시련의 극복을 나타내는 상징적 이야기로 옥중의 춘향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 요소이며, ㉰는 관리의 올바른 처리로 억울한 백성이 구제 받는 이야기로 <춘향전>의 어사 출도 장면과 성격이 유사하다.
그리소 전체적 구성도 ‘만남 - 시련(누명과 죽음) - 재생과 재회’로 되어 있어 <춘향전>의 구성과 종일한 원리임을 알 수 있다.
애정지상주의
<숙영낭자전>은 신선 사상에 바탕을 둔 비현실적 애정담이다. 특히 숙영 낭자와의 애정을 성취하기 위한 선군의 행위들은 가히 저돌적이라고 할 만하다.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옥련동으로 숙영을 찾아가는 모습이나 천명으로 정해진 3년의 금기까지 깨뜨리면서 숙영에게 혼인을 요구하는 부분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숙영의 자결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시체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복선(伏線)을 통해 독자를 긴장시킨 다음, 옥황상제가 숙영을 재생시켜 선군에게 되돌려 보내는 구성으로 반전되는데, 이러한 구성은 선군의 애정 행각에 대한 하늘의 관용적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이 작품의 애정 지상주의적 성향을 표현화 한 것이다. 금기를 어김으로써 이별을 하게 되는 ‘우렁이 색시’ 이야기 같은 민간 설화의 구성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중세적 가치관의 탈피
한편, 사랑하는 아내의 곁을 잠시도 떠나기 싫어 과거에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던 선군의 태도는 본능적 욕구를 긍정하는 새로운 가치관의 제시일 뿐만 아니라, 입신 양명으로써 가문을 빛냄이 지고(至高)의 효행으로 여겨지던 중세적, 유교적 가치관의 탈피라는 의미도 지닌다. 유교적 가치관의 탈피는 곧 가부장적 권위의 약화로 이어진다. 과거에 나가기를 바라는 부명(父命)은 거역하면서, 아내의 말에 따라 과거에 응시하는 선군의 태도에서 가부장적 권위가 허물어져 가는 변화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선군의 아버지는 시종 선군의 애정 행각에 대하여 가부장으로서의 권세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외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쇠약한 선군의 가출을 말리지 못하였고, 공부보다 사랑 놀음에 빠진 자식에게 한마디 말도 제대로 못한 채 지켜 볼 뿐이었다. 또, 옥황상제의 절대적 명령으로 정해진 금기를 거역한 숙영과 선군에 대하여 그 징벌이 미미한 점도 가부장적 권위의 약화라는 사회 변동상을 암시하는 것이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줄거리
명나라의 명신 유현이 느지막이 아들 연수를 낳았으나 곧 이어 부인 최씨가 세상을 떠난다.
연수는 15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된 이후 덕성과 재덕을 겸비한 사씨와 결혼을 한다.
사씨는 9년이 넘도록 출산을 못하여 유 한림에게 후실을 얻어 후사를 이으라고 권한다.
한림은 사씨의 간곡한 부탁을 못 이겨 교씨를 맞아들었으나, 숙모 두(杜) 부인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교씨가 아들 장주를 낳은 지 얼마 후 사씨고 혼인한지 10년만에 아들 인아를 낳는다.
간악한 교씨는 문객 동청과 짜고 온갖 흉계를 꾸민 끝에 장주까지 죽여 사씨에게 누명을 씌운다.
한림은 사씨를 축출하고 교씨를 정실로 삼는다.
사씨는 시부모의 묘하에서 머물다가 몽조(夢兆)로 교씨가 보낸 자객을 피하여 수월암에 거처하며 여승 묘회의 도움을 받는다.
교씨는 동청과 간통하여 한림까지 없애려고 조정에 참소한다.
한림은 유배되고 동청은 한림을 고발한 공으로 지방관이 되어 교씨와 함께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유 한림은 성은을 입어 풀려난 다음에야 전일의 모든 불행이 교씨의 흉계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다.
한림은 동청의 자객을 만나 도피하다가 여승 묘회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사씨와도 상봉한다.
동청과 교씨는 죄상이 폭로되어 참형을 당한다.
한림은 이부 시랑이 되어 사씨와 다시 합하여 영화를 누리게 된다.
창작동기와 주제
이 작품은, 인형 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책봉한 숙종의 잘못을 풍간(諷諫)하기 위한 목적 소설로 알려져 있다. 사씨는 인현 왕후를, 교씨는 장희빈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또, 작품의 창작 동기를 왕에 대한 풍간에 국한시키지 않고, 권선징악(勸善懲惡)을 통해 일부 다처(一夫多妻) 제도 비판이라는 측면으로 확대하려는 견해도 있다.
한편, 이 소설의 주제를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처첩 사이의 갈등’으로 보라, 쟁총형(爭寵形)가정소설로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강조된 것은 여인의 덕행(德行)이다. 특히, 사씨가 남편 한림에게 소실을 얻어 아들을 낳도록 주선해 준 일이나, 교씨의 간교로 인해 쫓겨났을 때 친정으로 가지 않고 시부모의 묘소에서 지낸 일등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부덕(婦德)을 실행하려는 강인한 의지의 발로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주제는 쟁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덕행으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구성상 성격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여성으로 사씨와 교씨, 두(杜)부인등이 있다. 사씨는 후덕(厚德)안 인물인 반면 교씨는 간교한 여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대립적 인물 설정은 여주인공 사씨의 인품을 강조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리고 한림의 숙모인 두 부인은 교씨의 미모를 보고 화(禍)를 부를 것이라고 하는 등 사리 판별이 뛰어나, 복선을 제시하는역할을 한다.
이러한 인물 설정의 치밀성에 반하여 사건의 전개는 다른 고전 소설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천우신조(天佑神助)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사씨가 시부모 묘하에서 살다가 교씨의 마수를 피하여 남방으로 향한 일, 묘희가 자객에게 쫓기는 한림을 구출한 일 등 중요한 사건들이 현몽(現夢)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처럼 꿈을 통한 하늘의 계시가 자주 사용된 것은 작품의 현실성을 감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문학사적 의의
이 작품은 첩실(妾室)에 의해 야기된 가정의 비화(悲話)를 권선징악의 관점에서 소설화한 것이다. 비록 선악의 과보(果報)라는 전근대적 주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교씨를 통해 조선 시대 양반 가정의 치부(恥部)를 폭로함으로써, 이 작품은 후대 가정 소설의 한 전형이 되었다. 또, 이 소설은 사악한 첩실의 행위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 여성 독자층의 기호에 적합한 처첩 간의 갈등이나 축첩(蓄妾)으로 인한 가정 내의 비극이 영웅 소설적 요소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편의 가정 소설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운영전(雲英傳)
줄거리
선조 때 선비 유영이 안평대군의 옛집인 수성궁 터에 들어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가 잠이 들었다.
유영이 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궁녀였던 운영과 김 진사를 만나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게 되었다.
풍류를 좋아하던 안평 대군이 10명의 궁녀를 별궁에 두고 시와 풍류를 배우게 한다.
운영은 안평 대군을 찾아온 김 진사에게 반하고, 둘은 서로의 연정을 편지로 주고 받는다.
운영은 궁 밖으로 빨래하러 나가는 틈을 이용하여 김 진사를 만나 회포를 푼다.
이후, 운영은 밤마다 궁궐 담을 넘어 들어오는 김 진사와 짙은 사랑을 나눈다.
안평 대군이 이 사실을 알고 대로하여 궁녀들을 문책하니, 운영은 자책감 때문에 자결한다
김 진사는 절에 가서 운영의 명복을 비는 재를 올린 다음, 슬픔이 병이 되어 죽는다.
김 진사와 운영은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면서 자신들의 사랑을 세인(世人)에게 전해달라고 당부한다.
유영이 다시 취중에 졸다가 깨어보니 김 진사와 운영의 일을 기록한 책만 남아있었다.
유영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명상 대천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그 마친 바를 알 수는 없다.
비극성의 근원
주인공인 운영과 김 진사는 비극적 인물이요, 좌절된 인간상이다. 운영은 궁녀라는 신분과 순수한 인간적 애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죽음을 선택하였으며 운영의 죽음은 곧 김 진사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운영의 죽음은 단순히 비극성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녀의 죽음은 순수한 애정마저 감추어야 하는 유교적 절곡과 궁녀의 억압된 삶에 대란 저항이며, 인간성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는 비인간적인 규제와 형식에 매인 삶을 벗어나 진정한 자아 찾기를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이 또 다른 주인공으로 유영을 들 수 있는데 그도 역시 비극적 인물이다. 그는 김 진사가 기록한 책을 보며 식음을 전폐하고 발랑 생활을 하다가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비극적 존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주요 인물들이 모두 비극적으로 설정되어 있어, 이 작품은 조선 시대 유일의 비극적 소설로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랑의 진실
안평 대군은 궁녀들을 여성으로 대하지 않았다 단순히 자신의 시와 풍류를 위한 존재이기를 요구하였으며, 자신을 포함하여 어떤 남자와의 사랑도 금하였다. 이렇게 대군의 비인간적 명을 거역하고, 김 진사와 사랑을 나눈 운영의 용감한 행위는, 궁녀라는 신분에 앞서 성숙한 자연인으로서, 인간성의 해방을 요구하는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운영이나 김 진사는, 인간의 본능적 정욕에 대한 인위적 제약은 반인륜적 행위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랑의 행각을 벌인 것이다.
또, 금지된 궁녀와의 사랑에 적극성을 띠었던 김 진사의 저항적 행위는 이미 그의 시적 성향을 통해서 암시되고 있다. 그는 양평 대군을 포함하여 당대 성리학자들이 좋아했던 유교적 시인 두보(杜甫)보다는 호방하여 얽매임이 없는 낭만적 시인 이백을 더 좋아했는데, 이것은 인위적 윤리나 억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고 초탈한 세계를 지향하는 김 진사의 세계관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환상적 구성
이 작품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유영이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서 운영과 김 진사를 만나 그들의 비극적 연애담을 듣고 다시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유영은 꿈 속이 아닌 환상적 세계를 체험한 것이다. 이것은 ‘현실 - 꿈 - 현실’로 구성되는 몽유록계 소설의 일반적 구성과 다른 방식이며,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몽유록의 발전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이 삼중의 액자로 구성되어 있다.
C C: 운영과 김 진사의 과거 회고 부분
창선감의록(彰善感義錄)
-2003 수능 기출
줄거리
명(明)의 상서 하욱의 세 부인 심씨, 요씨, 정씨 중, 요씨가 일찍 이 딸을 낳아 정씨에게 부탁하고 죽었다.
화욱은 심씨 소생의 장남 춘이 용렬하매, 정씨의 소생의 아들 진과 요씨 소생의 딸 빙선을 편애하였다.
그러나 심씨는 과부가 되어 집에 와 있는 시누이 성 부인의 위엄으로 불만을 표하지 못하였다.
간신 엄숭이 득세하자 화욱은 사직하고 낙향했는데, 이 때 춘은 부덕(婦德)을 갖춘 임 소저와 혼인한다.
또, 화욱은 진의 배필로 윤 소저와 남 소저를, 빙선의 신랑으로 유공자를 정해놓고 죽었다.
성 부인이 집을 비우자, 심씨와 춘은 진과 빙선을 학대하였으나, 그들은 조금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성 부인이 돌아와 진과 빙선을 각각 성례시켰으나, 시씨는 진의 부인 윤․남 두 소저를 미워하였다.
춘은 방탕해져서 불량한 범한, 장평과 사귀면서 임 소저를 내쫓고 간사한 조씨를 정실로 삼았다.
이 때 진과 성 부인의 아들 성준, 빙선의 남편 유생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고 있었다.
심씨는 조씨와 결탁하여 남 소저를 독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진은 춘의 참소(讒訴)로 투옥된다.
조씨가 범한과 간통하자, 춘은 장평과 짜고 그들을 없애고, 윤 소저를 엄숭의 아들에게 주려 한다.
그러나 윤 소저의 동생이 어사가 되어 악당들을 처벌한다.
한편 유배지의 진은 신인을 만나 도술과 병법을 배워 해적의 반란을 평정하는 무공을 세운다.
심씨와 춘이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흩어졌던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와 가문이 화락하게 된다.
교훈과 주제 의식
이 소설은 상당히 길고 플롯도 복잡하지만 주제 의식은 작품의 처음과 끝에 명시되어 있다. 남녀 귀천을 막론하고 충효를 근본으로 해야 하며 형제간의 우애나 선행은 다 여기서 나온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철두철미 교훈적이다. 또 주요 인물의 하나인 화진은 큰어머니 심씨와 이복형 춘이 터무니없이 자신을 모함하여도 변명하려 하지 않는데, 이는 자기가 변명하여 사실을 밝혀 심씨와 춘이 화를 당하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누명을 쓰느 쪽을 택한 것이다. 가히 효성심이 뛰어난 인간형이라 하겠다. 이 작품에 이와 같은 인간형이 설정되어 있는 것은 독자가 그의 효성심을 본받기 바라는 작가 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개성적 등장 인물들
이 소설에 등장하는 50여 명이나 되는 인물들은 선인과 악인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선인 또는 악인이라 해도 하나같이 동일한 유형은 아니다. 예컨대, 같은 선인이라고 화진과 그의 처남 윤여옥은 대조적이다. 진은 성현군자답게 점잖은 반면 여옥은 담대하고 적극적인다. 진의 두 부인은 윤 소저와 남 소저도 고귀한 가문 출신의 재자가인이면서도 각자 개성은 판이하다. 윤 소저가 순종적이고 인욕적(忍辱的)인데 비해 남 소저는 엄격하고 모가 난 성품이다. 그만큼 인물들의 개성이 부각된 것이다. 전형적 인물이 지배하던 고전 소설에서 인물의 개성이 부각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주체적 인간상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다.
선악의 대립상과 해결 방식
일반적으로 악행이 드러나는 양식은, 선인쪽에서 악인의 죄상을 밝혀 내는 것과 악인들 사이의 내부 갈등으로 그들의 죄상이 드러나는 것의 두 가지가 있다. <춘향전>, <장화홍련전>, <홍길동전>등은 전자에 해당되고 <창선감의록>은 후자에 해당된다. 예컨대, 조씨와 범한의 악행이 같은 패거리인 강평에 의해 폭로되는 것이다. 그리고, 악행을 저지른 자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들과 구별된다. <춘향전>이나 <장화홍련전>에서 악인이 처벌받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악인을 개과시켜 구제하고 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모든 악인을 다 개과 시킨 것은 아니다. 악인 중에서도 조씨나 범한, 장평 등 교활한 악인은 모두 처벌되었다.
문학적 의의
이 작품의 주게 의식이 전통적 관념의 고수에 있기 때문에 참신성은 없지만, 치밀한 구성으로 소설적 흥미가 풍부한 작품이다. 또, 창작 동기 면에서 <구운몽>과 같이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쓴 것으로 알려져 있고, 구성면에서는 <사씨남정기>와 유사성이 많아 17세기 소설의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사씨남정기>나 <창선감의록>등은 구성상 부녀자들의 역할이 돋보여 <규방소설>로 일컬어지기도 하며 여성 독자들에 의해 애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독자 계층이 여성으로 확대됨에 따라 고전 소설은 비약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