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2806 불교>불교실천
나무아미타불 대신 관세음보살을 염불해도 극락왕생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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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에 귀의합니다, 관세음보살은 나무가 생략된 형태입니다. 즉 아미타불을 염해도 관세음보살을 염불하거나 염관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보통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서 아미타정토에 내영하는 역할로 묘사됩니다마는 관음의 주처로 알려진 보타락정토의 주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578E124C8DE5CF25)
극락과 같은 개념의 정토 사상은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대승경전에서 비롯됩니다. 먼저 인도에서 용수보살의 아미타본원사상은 무착의 섭대승론, 세친의 왕생론을 거치면서 중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이어 혜원, 도작과 선도, 자민의 삼 부류에 의한 대중정토사상이 펼쳐집니다. 선도대사의 정토왕생사상과 경전예배, 경관 염관, 제불 찬탄,
염불...등의 타력신앙에 의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사상이 보편화됩니다. 계보를 보면, 백련사白蓮寺의 혜원慧遠은 중국 정토종淨土宗의 초조初祖가 되고 당의 선도善導, 승원承遠, 법조法照, 연수延壽, 성상省常, 원소元炤 등으로 그 종맥이 이어 왔으며, 선택본운염불집選擇本願念佛集에 의하면 제1 담란曇鸞법사, 제2 도작道綽선사, 제3 선도善導선사, 제4 화검懷憾법사, 제5 소강小康법사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도판 좌: 아미타독존도 교토국박)
우리나라에서는 통불교의 일환으로 정토사상이 깊숙히 한국불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남산 염불사의
미타염불소리가 360방 17만호에 낭랑히 들렸다 했습니다. 월명은 죽은 누이를 위해 향가를 지어 미타찰에서 만날 때까지 도 닦아 기다리고자 한다고 했지요.
신라의 욱면비 旭面婢는 지성으로 아미타불을 염송하여 절의
들보를 뚫고 서쪽으로 날아가다가 교외에 이르러 육신을 버리고 진신으로 화하여 연화대에 앉아 대광명을 발하며 천천히 갔다고 했고, 문무왕때 광덕은 관무량수경의 16관을 닦아 서방극락세계로 갔고, 근기가 모자랐던 엄장은 원효가 가르쳐준 삽관법을 베워 왕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수십년간 아미타불을 염송하던 포천산의 다섯 비구는 성중의 영접을 받으면서 왕생했다고 했지요.
(도판 우:관음 송 12세기 암스텔담 박)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또 건봉사乾鳳寺의 발징發徵화상 등이 정토수행을 통해 법을 성취한 분들이며, 신라화엄의 종조인
의상은 부석사에 무량수전을 세우고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을 봉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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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서는 대각大覺국사도 정토서를 편간했고, 보조普照국사도 염불고유경念佛固由經을 쓴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백련결사를 주도한 천태종계의 원묘국사 요세는 임종때에도 원효의 미타증성가를 부른 다음 서쪽을 향하여 입적했다고 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오늘날 우리가 불교를 생각하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떠올립니다. 그 배경을 알아볼까요?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왕생에 대한 사상은 정토삼부경, 즉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그리고 아미타경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먼저 아미타경에서 봅시다. 숫자는 대정신수대장경 페이지입니다.
(도판: 우 호오류지 금당벽화 재현벽화 6호벽 아미타 정토)
佛說阿彌陀經
姚秦龜 三藏鳩摩羅什譯
347b10-347b15
若有善男子善女人.聞說阿彌陀佛.執持名號.若一日.若二日.若三日.若四日.若五日.若六日.若七日.一心不亂.其人臨命終時.阿彌陀佛與諸聖衆.現在其前.是人終時心不顚倒.卽得往生阿彌陀佛極樂國土.
사리불아, 만약 착한 사람들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그 명호를 굳게 지니어, 하루나 이틀이나 혹은 사흘…나흘…닷새…엿새 혹은 이레동안을 두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우거나 부르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그 사람이 수명이 다할 때, 아미타불과 성중이 그 사람 앞에 나타나시니라. 임종시에도 신심이 바뀌지 않으면 바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아미타불은 불멸후 석존을 대신할 법신불의 대안으로 비로자나불과 함께 등장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비로자나불이나 아미타불은 부처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진리, 깨달음의 화현, 혹은 화신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소개됩니다. 관세음보살의 보관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지요.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아미타성중 즉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어느 부처님을 모셔도 극락왕생합니다. 그렇다면 관경에서 말하는 16관의 관상 대상 역시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과 같이 극락왕생을 위한 이정표가 된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관경-관무량수경에서 말하는 16관을 봅시다.
佛說觀無量壽佛經
宋西域三藏畺良耶舍譯
16관
서쪽 하늘에 매달린 북과 같다고 해를 보는 日想觀, 물과 유리와 광명대가 苦空無常과 무아를 연주하는 水想觀, 三昧觀照로 땅을 생각하는 地想觀, 칠보와 마니보주의 나무와 잎과 열매를 관조하는 寶樹觀, 八功德水를 觀照하는 寶池觀, 불법승을 상기시키는 음악이 연주되는 寶樓觀, 법장비구의 공덕으로 지어진 연화대를 관하는 華座觀, 阿彌陀佛과 如來 應供 正遍知를 깊이 관조하는 像觀, 아미타불의 미간 백호를 관조하여 시방세계 제불에게 수기를 받는 眞身觀, 관세음보살의 상호와 영락과 광명을 관하는 觀音觀, 삼악도를 여의게하고 고해중생을 제도하는 勢至觀, 蓮華生의 光明을 관하는 普觀, 관음과 세지를 함께 생각하는 雜想觀,
상품의 상중하생으로 왕생하는 上輩觀, 중품의 상중하생으로 왕생하는 中輩觀, 하품의 상중하생으로 왕생하는 下輩觀이 있다.
문제는 극락이 있는가, 극락이 무엇인가가 밝혀져야 극락왕생이 규명되는데... 그 대답은 정토삼부경보다 몇세기 앞서 집성된 아함경에 있습니다.
증일아함경에 봅시다.
增壹阿含經卷第六 東晉 賓三藏瞿曇僧伽提婆譯 利養品第十三
574b21-574b27
或有衆生.身行惡.口行惡.心行惡.誹謗賢聖.邪見造邪見行.身壞命終.生三惡道.趣泥[黍-禾+利]中.或復有衆生.身行善.口行善.意行善.不誹謗賢聖.正見·無有邪見.身壞命終.生天上善處.是謂淸淨天眼觀衆生類.有生者·有終者.善色·醜色.善趣·惡趣.若好·若醜.隨衆生行所作果報.皆悉知之.
즉 어떤 중생은 몸으로 악을 행하고 입과 마음으로 악을 행하며 성현을 비방하고 그릇된 소견으로 그릇된 일을 하다가 몸이 썩어 문드러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세 갈래 나쁜 길에 떨어져 지옥에 난다. 또 어떤 중생은 몸으로 선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선을 행하며 성현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을 가지고 그릇된 소견이 없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의 좋은 곳에 난다?
아함경이 집성되던 시절에는 극락이라는 말이 없고 천상이라 했습니다. 천상에 가기 위해서는 신구의업을 정화하고, 성현비방, 그릇된 소견을 버리라고 하지요.
잡아함경을 다시 봅시다. 천상-극락에 간다는 것은 생의 고리를 끊고 고해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것인지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판단하겠지만, 삶의 애착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죽을 때 "세상에 태어나 떳떳하게 살았으니 다시 이 생사의 윤회를 거듭하지 않으리라"고 만족스레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극락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요?
No. 99
雜阿含經卷第一
宋天竺三藏求那跋陀羅譯
042b02-042b06
如是我聞.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於何所是事有 故.何所起.何所繫著.何所見我.諸比丘.令彼衆生無明所蓋.愛繫其首.長道驅馳.生死輪 .生死流轉.不知本際.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비구들이여, 어느 곳에 이 일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일어나고, 무엇이 매이어, 집착하며
어디서 <나>를 보아 저 중생들로 하여금 무명에 덮히어 그 머리를 싸매고 먼 길을 달리
면서 생·사에 윤회하고, 생·사에 유전하면서 돌아갈 본 고장을 알지 못하는가."
042b25-042c04
若復有見.非此我·非此我所·非當來我·非當來我所.彼一切非我·非異我·不相在.是名正慧.若多聞聖弟子於此六見處觀察非我·非我所.如是觀者.於佛狐疑斷.於法·僧狐疑斷.是名比丘.不復堪任作身·口·意業.趣三惡道.正使放逸.諸聖弟子皆悉不從向於三菩提.七有天人往生.作苦後邊.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만일 다시 어떤 소견이
있어 '현재의 <나>도 아니요 현재의 <내 것>도 아니며, 미래의 <나>도 아니요 미래의 <
내 것>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일체는 <나>도 아니요 <다른 나>도 아니며, 그 둘의 합
한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면 이것을 바른 슬기라 하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로서 이 여섯 가지 보는 곳에 대해서, 그것은 <나>가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관찰하고, 그와 같이 관찰하면 그는 부처에 대해서 의심을 끊고 법과 승에
대해서 의심을 끊을 것이니, 이것을 비구라 하느니라. 다시 그들은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지
어 세 가지 나쁜 길로 나아가는 데에 맡겨 두지 않으면, 혹 방일하더라도 결정코 삼보리로
향하면, 일곱 번 천상과 인간에 태어난 뒤에는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순서로 봐서는 아함경이 먼저이고, 정토삼부경이 후세에 결집되었습니다. 변천과정을 역행하여 근본불교로 돌아가보면 후세에 근기가 낮은 중생을 위한 많은 비유와 방편이 보일 것입니다.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 아미타경阿彌陀經,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등 많은 정토서를 쓴 운표元曉대사는 선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마음 밖에는 미타도 정토도 없다(동성미타 유심정토 同性彌陀 唯心淨土)사상을 선양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믿는 사람의 보려고 하는 의지와 근기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