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의 화인열전(2)
석현 박은용 화백
『검은 고독, 푸른 영혼』
진도는 언제나 흐른다. 예술의 바다는 더 깊어진다. 향(鄕)이 향(香)으로 불리는 섬.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항상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이는 체 게바라의 인생관이었다.
사람의 집. 사람의 길. 두강산방(頭江山房)이라는 그만의 낙원. 6‧25 한국전쟁으로 인해 해체된 가족의 그리움을 함성같은 화폭으로 또는 더 뜨거운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예술로 승화시킨 석현 박은용화백의 고독과 푸른 영혼의 삶과 예술은 사후 10년 만에 후배들에 의해 『검은 고독, 푸른 영혼』으로 출판 되었다.
때로 온 몸으로 향토의 색을 부르며 불우를 자처한 기인이었고 당대의 예술천재로 인정받았던 석현 박은용 화백은 남쪽 섬 진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의 한 복판에서 불행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안고 살다가 자기 시대를 가장 치열한 탐구력으로 전전하며 타향에서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11년 만에 후배작가 석주 박종석씨의 오랜 수고로 석현 박은용 화백의 삶과 작품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진도 옥주서점에서 일주일을 기다려 이 책을 구입해 읽고 있다. 진도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운림산방으로 오기 전 80년대 ‘칼노래’를 새겼던 조각가 오윤처럼.
화가의 일대기를 후배작가가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써서 평전을 만들었다.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아서 먼저가신 호남 화가들의 삶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고 석주 박종석씨는 말한다.
이는 역사의 한 복판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호남인들이 주류가 쓰는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은 것이 한탄스러워 직접 쓰고 그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호남정신이 담긴 한국화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시대에 그 맥락을 정리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있는 한국화가 석주 박종석. 그리고 20미터 크기의 대작에 석현 박은용 선생의 일대기와 글과 그림으로 정리된 석현 선생의 평전을 만난다는 것.
과연 예술가의 삶은 행복한가?
우문이 나비가 되는 세상은 갈수록 멀어진다.
“예술가의 삶은 과연 행복한가?”
예술가들 각자마다 독특한 삶의 무게와 시대의 굴절과 다양한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전라도 어느 이름 없는 한적한 황토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길을 연상하게 하며 소박하기 그지없는 어린이처럼 맑은 사고를 지닌 천진한 서민화가로 기억되는 석현 박은용. 그의 삶과 예술을 습작기, 모색기, 정착기 3부로 나누고 일곱 살 때 겪은 가족사에서 대학생활과 교직생활을 습작기로, 1985년 서울 발표 전으로 화단에 각인시킨 후 병원생활과 재혼을 모색기로, 그리고 두강화싥 짓기와 사평시장 연작시기, 1999년 전시와 생을 마친 2008년 마지막 과정의 삶을 정착기로 구분했다.
“향기는 꽃술에도 없고 꽃받침에도 없으리. 뼈 속에 사무치는 이 향기 바치오니 님이 감상 하소서.(소치실록 21쪽)”
셕현의 그림 속에서 너무 늦게 그 향기를 ‘물은 흐르고 꽃이 피네’로 읽는다.
진도의 청제공파 박씨 직계와 방계에서도 양천 허씨가 아닌 화가들이 배출되었다. 남농 허건에게 사사한 시경 박익중, 문화재위원을 하셨던 고 남계 박진주, 서양화에 박문수, 우계 박중호 등이 해당된다.
박은용(고군면 석현리 515)의 부친은 박영이고 어머니는 경주 최씨로 귀덕이다. 큰형인 박은섭이 6·25때 아버지와 함께 희생당해 석현은 집안 장자를 승계하였다. 일곱 살 이전에 의신면 옥대리로 이사한다. 호인 석현(石峴)은 진도의 유명한 서예가가 지어주어 일생동안 사용했다고 한다.
의신초를 나와 중·고교는 광주로 유학하여 하숙을 하고 서라벌예대 졸업 후 진도로 귀향하게 된다. 고모의 자녀인 김성자씨는 70년대를 풍미했던 5선의 국회의원 박순천 여사 비서를 지냈다. 이 분은 그 후 학교법인 지산학원 설립인가를 받아 이사장을 하였다. 현재 지산중학교는 박주생 교장이 재임중이다.
‘전란에 죽은 영혼의 결혼식’
늦은 가을날 첨찰산 쌍계사 대법당에는 소복단장한 신부가 신랑도 없이 사진을 옆에 끼고 불교식 결혼을 거행했다. “신랑은 공산치하에서 지방 폭도에 의해 전 가족이 함께 몰살당한 박은섭 군이며 신부는 애인 한 양(도평리 출신)이었다. 읍내중학교를 나와 목포사범학교 진학했다. 그들은 중학교 때 연애를 했다. 은섭은 옥대 고모집으로 피신하였으나 추적해온 ‘지방 폭도’와 싸우다 숨을 거두었다.” 이렇듯 박은용은 일가족을 잃은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후군에 시달렸다.
석현은 당시 진도중학교에 원서를 제출했으나 집안 어른들이 광주 조선대학교부속중학교로 옮겨 미술부를 다니며 당시 조선대학교 미술과에 재직했던 오지호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수채화의 대가인 강연균씨와의 편지 수담도 눈길을 끈다. 그에 앞서 박은용은 1962년에 개최된 전국학생실기대회 고등부에서 최우수상을 연2회 수채화부로 수상한다. 이후 옥대리에 있을 당시 강연균씨는 자주 엽서를 보냈다. 친구들 중에 유제필, 최정길은 오래 동안 교류했다.
진도 거주 당시부터 고민이 많아 흡연했는데 값싼 봉초(종이에 말아 피는 담배)를 피우자 서라벌예대출신들이 간곡히 만류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교직생활 이전 양계사업을 계획하고 난초를 채취 판매하기도 했다. 1972년부터 진도고 근무, 77년 2월까지 지산중학교 근무, 그 이후 의신중학교 근무로 이어진다고 알려졌다. 75년 국전에 ‘샘’으로 입선, 천경자 화백을 찾아 자문을 구한다. 이는 부인 주행자(지산면 소포출신)씨가 생존시 박은용평전 저자에게 알린 일화다.
토착화에 고뇌하며 인본주의에 눈을 뜬 그에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많은 사람들, 선배 화가들과 지인들은 박은용의 치열함과 고뇌가 다른 쪽으로 소진될 것을 우려했던 것 같다. 그는 이제 우리 곁에 있지 않다. 나는 가끔 침계리에서 창포리로 흐르는 우항천을 지나거나 조금리 5일장을 찾아 광주리를 펴놓은 시골 할머니들과 수작을 부리며 그 모습 속에서 석현 박은용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갈라진 붓의 질주와 원색의 향을 킁킁거린다.
1997년 석현 화백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도시 변가나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농촌사람들의 터전과 그들의 모습을 좋아하여 그 곳에 머물러 그 현상을 우리의 전통적 재료와 화법을 바탕으로 표출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또한 공허하지만 “나를 지키던 근대적 생활도구와 가족들, 이웃들의 모습들이 정겨워 매일 일기처럼 은근한 색조, 또한 투박하고 단순한 형상으로 노동하고 부딪히는 생산적 소시민의 삶을 소재로 한국화라는 작업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밝혔다(백운동 작업실에서).
호남의 미술 현실과 박은용의 21세기 민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진도의 화인들이 어떻게 자기 삶을 수놓았는가, 한 땀 한 땀 피를 짜 선과 색과 공간을 창출하고자 영혼을 불살랐는가 감회에 서린다.
진도와 목포에서 올 해도 국제수묵비엔날레 전람회가 열린다. 수묵은 평면이 아니 시공을 감염한다. 남북도 만나고 5채를 다 보여주겠다고 한다. 유홍준은 호남의 미술을 “어느게 누구 작품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없을 정도로 비슷하다”면서 집단적 개성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는 일부 키치(Kisch)일 뿐이지만 “그림의 유행은 이들의 미술시각을 외곬으로 몰아붙였다.”고 평하기도 한다. 또 다른 문학분야에서의 ‘힘의 미학’을 강조하기도 한다. 박은용의 광주 학운동 집에서 부인 주행자씨와 아들 박철진이 모델로 선 ‘초여름의 정경’은 흑염소와 함께 그의 아름다운 꿈이었다. ‘들녘’은 시골정서의 공감각이 극대화된 절창으로 읽힌다. 그는 고향땅 어느 시골에 집을 지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본인이 따뜻하게 살며 그림그리기 위한 단 한 채의 집이었다.
2013년 결성된 ‘석현박은용기념사업회’는 약 200여 명 회원들의 후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박은용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봉사하고 있다.
아를르강의 별빛과 고흐와 헤밍웨이를 좋아했던 박은용. 그의 호(石峴) 이자 예술의 한 봉우리를 찾아가기 위한 또 다른 ‘돌고개’를 넘고 파도를 넘어 100년 천년을 훌쩍 넘는 예술성취를 이루는 그 후학들이 진도 예향에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다.
(박남인 예향진도신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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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