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의 서울대학교는 이 학교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으로 붐볐을 법하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한다’는 정부의 대학정책에 따라 졸업정원의 130%나 되는 신입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학내에 상주하던 사복경찰 등 외부인력까지 더하면 넓고 조용하던 관악캠퍼스가 모처럼 인파로 술렁였다는 게 당시 재학생들의 기억이다.
최다 신입생을 자랑하던 그 서울대 82학번들이 지금은 한국사회 곳곳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 부처에서는 실무자로서는 ‘톱(Top)’에 해당하는 실·국장에 포진해있다. 주요 정책 파트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자리다. 이런 식으로 정치·경제·사회·학계에도 서울대 82학번들은 중추신경계를 형성한다. 서울대 82학번 출신들이 ‘신(新) 슈퍼인맥’으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우선 정계만 놓고 보면 원희룡 제주지사(법학),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법학),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경제),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법학), 이혜훈 새누리당 전 최고위원(경제) 등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당 안팎의 주요 역할을 맡아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주역으로 활동한다. 경제계도 마찬가지다. 증권업계는 전병조 KB투자증권 대표(경제), 변재상 미래에셋증권 대표(공법)와 김신 SK증권 대표(경영) 등이 포진해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이원우 원장(법학)도 이들과 동기다.
서울대 82학번은 일명 ‘똥파리’ 학번으로 불리기도 한다. 82학번은 타 학번보다 인원 수가 많은 데다 서로 친밀감이 높아 무리지어 ‘우르르’ 몰려다녔다. 이를 지켜본 선후배들이 “어딜 가도 82학번들이 있다. 마치 똥파리 같다”며 숫자 ‘82’를 그대로 발음해 ‘똥파리’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역동적인 변화의 물결을 체험하다
학계와 재계에서는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서울대 교수, 김상현 NHN 대표,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진중권 문화평론가 등이 대표적인 인사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 사진·중앙포토
학계에서도 명성을 날리는 이가 많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와 조국 서울대 로스쿨 교수, 진중권 동양대 교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다. 이원우 서울대 로스쿨 원장,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도 서울대 82학번 학계 파워그룹의 한 축을 담당한다.
관(官)계에는 최상목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김철주 기재부 기획조정실장, 서영경 한국은행 부총재보 등이 거론된다. 재계에는 기재부 관료 출신의 전병조 KB투자증권 사장, 김상현 NHN 대표, 문홍성 두산 부사장, 박영춘 SK 전무 등이 활약 중이다.
50대 초·중반에 걸친 서울대 82학번들은 이처럼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뤄간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독보적인 분야를 개척하는 동기들이 많다”면서 “요즘 와서는 서로를 재발견하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강석훈 의원은 “‘양적인 팽창이 있어야 질적인 도약도 있다’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82학번에 적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입학정원이 늘다 보니 두각을 나타내는 이도 타 학번보다 많다는 해석이다.
그의 말대로 서울대 82학번은 팽창과 확산의 시대를 이끈 주역이다. 이들은 전후 복구와 더불어 산업화를 기점으로 고속성장이 진행된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 1980년대 졸업정원제 시대의 극소수 엘리트 집단에서 성장의 바람을 타고 각 분야의 슈퍼 엘리트로 발돋움했다.
이 무렵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주역으로 나서는 한편으로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를 확장·심화하는 과정이었다. 자연히 정계의 수요도 많아졌다. 황인상 대표는 “사회적으로 엘리트 수요 확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82학번은 가장 좋은 위치를 선점하며 최우선적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울대 82학번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할까? 재학 시절의 추억을 반추하던 몇몇 인사는 학창시절과 너무나 달라진 동기생들의 모습에 놀란다. 다들 같은 학번 친구다 보니 인터뷰 중에 ‘경원이’, ‘희룡이’, ‘석훈이’ 등 편한 호칭이 툭툭 튀어나온다.
“장하준(교수)은 똘똘한 친구라고 생각은 했죠. 그런데 이렇게 세계적 학자가 되리라고는 그땐 미처 몰랐고요. 예쁜 퀸카, 선망의 대상인 나경원 의원이 이처럼 큰 야망을 품은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요? 김난도 교수? 그저 고뇌하고 방황하는 청춘쯤으로 대했는데….(웃음) 시대를 이끌어가는 혜안을 가졌더군요. 다들 보고 싶네요.” 원희룡 지사는 대학시절 동문들을 하나둘 떠올렸다. 상대에 대한 후한 평가와 함께 동문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혜훈 전 최고위원도 “(강)석훈이 하고는 신입생 시절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활동했는데 정치권에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라며 잠시 회상에 빠져들었다. “(조)해진이가 새누리당 의원을 하고, 조국 교수가 강성 운동가적 기질을 발휘하고…, 그 시절에는 이런 모습을 상상도 못했죠.”
조국 교수에 대해서는 나 의원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깜짝 놀랐죠. 조국이 그럴 줄은.(웃음) 대학 때 ‘입 큰 개구리’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나이도 또래보다 어려서 놀려먹는 분위기였는데…. 그땐 정말 ‘아기’로 생각했어요.”(웃음)
나경원 “대학시절, 원희룡이 참 애틋했다”나 의원은 ‘기억나는 82학번 동문’으로 원희룡 지사를 꼽았다. 그는 대학시절의 원 지사가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원)희룡이와는 법대 같은 반이었죠. 수석 입학한 친구니까 ‘정말 뛰어난 수재’쯤으로 여겼죠. 그런데 약간 애틋했었어. 너무 많은 사람한테 주목을 받는 거야, 게다가 ‘넌 공부 잘하는 놈이니까 너 자신만 알지?’라는 식으로 되게 못살게 구는 이들도 있었고….(웃음) 당시 내가 보기엔 ‘희룡이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앞서 너무 많은 압력을 받는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원희룡 지사는 대학 시절을 회고하며 서울대 82학번의 저력을 소통에서 찾았다. 82학번은 사회적으로도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학번이었기에 학구파들도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고 항거했다. 이전 세대와 달리 이때의 학생운동은 소수 엘리트들의 폐쇄적인 운동이 아니라 ‘동아리’ 개념의 생활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운동권, 비운동권 할 것 없이 스스럼없이 한데 어울렸다. 그런 식으로 공감대를 키웠다. 원 지사는 “내가 핵심 운동권이었다면 (나)경원이는 정 반대였다. 그래도 서로를 인정해줬고, 진솔한 대화가 가능했다”고 돌이켰다.
각계에서 잘나가는 서울대 82학번이 집단으로서 응집력을 발휘하는 날이 올까? 과연 대선주자는 나올까?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서울대 82학번 중에 대선을 바라볼 인사는 원희룡 지사밖에 없다. 정치 입문하기 전 히스토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 지사는 수석 출신에 운동권 경험도 있다. 정치판에 들어와서도 나름대로 다이내믹하지 않았나”고 말했다. 황인상 대표는 나경원 의원을 눈여겨볼만한 차기 주자로 꼽았다. 2012년 불리한 상황에서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등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지는 면모를 높이 샀다. 황 대표는 “나 의원이 쉬운 길만 걸어왔다는 일각의 편견을 서울시장 보선에서 상당부분 해소했다”고 평했다.
‘새시대’의 시작인가, ‘구시대’의 끝물인가? 서울대 82학번의 정치인들은 민주화를 열어젖힌 세대로서 한국정치의 수준을 높이라는 주문에 대해서는 어떤 해답을 내놓을지 기대된다. / 사진·중앙포토
하지만 아직 설익은 과일에 가깝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서울대 82학번이 진정한 파워그룹으로 성장했다고 속단하기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신 교수는 “정계의 경우 서울대 82학번 출신 중 차기 대선주자를 발견하기 어렵다”면서 “엘리트주의를 극복하는 대중적 지도자로 성장할지는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계로 진출한 서울대 82학번들이 ‘스타성은 있으되 감동을 주는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많이 노출된다. 국민 다수의 정서에 호소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삶의 족적과 진정성이 대중 정치인으로 가는 첫째 조건이다. 서울대 82학번들은 이 점에 취약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선 이들 대부분 ‘집사’ 혹은 ‘전략통’으로 발탁되거나, 대변인을 맡으며 ‘미디어형’으로서 정계에 입문했다. 독자적 기반 없이 실세 정치인의 어깨에 기대 성장한 경우 소리소문 없이 잊혀질 수도 있는 게 한국의 정치풍토다.
한 학번 아래인 83학번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밀어 동업자 정치를 펼치던 면모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정권을 창출하고 지분을 행사했던 두 사람에 비해 서울대 82학번은 라인업은 화려해도 선이 가늘다는 인상을 준다. 이에 대해 원희룡 지사는 “서울대 82학번은 민주화 및 경제 호황 등 시대가 만들어준 사회적 자산을 먹고 자랐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대정신에 보다 투철한 정치력이 요구된다. 시대의 열매를 마치 개인의 것인양 착각하면 곤란하다. 이런 부채의식을 놓치는 순간 지탄받는 출세주의자에 머물 것이다.”
“첫사랑을 기억하면 못할 게 없다.” 나경원 의원은 82학번을 둘러싼 주변의 우려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가자”며 이같이 말했다. “82학번이 아직 성장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분명히 장점이 있다. 소통에 능하다. 갈등과 대립의 역사를 82학번이 반드시 끊어낼 수 있다.” 이혜훈 전 최고위원도 “상대방이 주장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우리 쪽이 주장하면 무조건 옹호하는 진영정치 틀에 갇혀있다”고 자성했다. 그는 “82학번들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의미에서 진영정치의 틀을 벗어났으면 한다”는 희망을 말했다.
야권에서 차기를 노려볼만한 서울대 82학번 출신 인사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조국 교수를 거론하면서도 2%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황 대표는 “조국 교수는 결단을 해야 한다. 말은 하면서 행동은 않는다. 사회적 중책을 맡는다든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데 그것은 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친야 성향인 조 교수는 현실정치에 돌직구를 던지면서도 정치적 행보는 하지 않았다. 덕분에 일종의 ‘순수성’을 유지해올 수 있었다. 그가 결단을 내려 정치에 뛰어든다면 야권은 잠재적 대선 주자를 한 명 더 보유하게 된다.
82학번은 운동권 ‘구시대’의 막내이자 이른바 386세대로 통칭되는 당시 ‘새시대’의 시작점으로, 일종의 샌드위치 세대로 불린다. 이와 관련 황인성 대표는 “대중성을 확보하면 새시대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지만 그 한계를 넘지 못하면 구시대의 끝물로 소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김포그니 월간중앙 기자
[출처: 중앙일보] [집단연구] 정·관·재계의 ‘신주류’ 서울대 82학번 大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