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다시 새롭게 보기 2강을 들으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마커스 보그나 크로산을 처음 알았을 때는 충격과 공포, 갈등과 번민 속에서 자신에게 이단과 자유주의에 빠지거나, 엇나가거나, 바르게 목회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점점 올바른 성경 읽기와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된 상태로 편안하게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장로교인이 이런 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고독하고 위험한 일인지를 알고, 지금 평신도들이 겪는 모호한 느낌 또한 잘 알기에 이 글을 씁니다.
2강을 들으면서 그 옛날 신학생 때 강의실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이 머리 아프다며 듣기를 거부하거나 시험기간까지 덮어두고 있을 때, 저는 밤새 관련 논문과 책들을 참고하여 공부 자료를 만들어 책자를 만들어 나눠주었습니다. 목회자들이 공부해야 한국교회가 살아난다는 일념으로 신학생들을 위해 공부자료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훗날 저를 위한 공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엔 스승도 없었고, 미리 예습한 내용을 강의시간에 실날하게 질문하는 정도였고, 혼자 스승을 찾아다녀야 했고, 찾은 것이 도서관에 손때도 묻지 않은 숨은 논문들과 책들이었습니다. 신학생 때 교수님이 과제로 내주신 마커스 보그와 크로산의 책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밝혀내고야 말겠다며 공부하다가 성서신학, 성서해석학에 깊이 빠지고, 지금까지 성경바로읽기를 위한 투사로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감동(레마)은 뜨겁고, 해석(로고스)은 건조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만, 성서해석 즉 올바른 성경 읽기는 ‘나 중심의 길 잃은 감동’을 바로 잡아주고, ‘성경 말씀이 직접 선사하는 더 깊은 감동’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본문을 읽고 느낀 대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의 내용을 파악하기보다 자신의 느낌이 어떠한가를 파악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접근해 볼 때, Q.T는 묵상엔 조력자이지만, 성경 연구엔 방해꾼입니다. 크리스쳔이라면 누구나 해 봤을 큐티는 성경을 읽다가 느낌이 오는 대로 밑줄을 쳐두었다가 몇 번씩 반복하면서 마음에 착상하는 이미지를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로 여기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깊이 나누는 것으로 Q.T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Q.T.식 묵상으로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주제로 삼는 것은 성경의 본뜻을 전달하기보다 개인의 묵상을 성경의 메시지인양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강을 건넌 후엔 배를 버리십시오.
한국교회는 성경 읽기의 넓은 대중성과 달리 해석의 영역이 매우 좁은 게 현실입니다.
단순한 문자주의 성경해석법이 한국교회의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한국교회 성서신학의 발전을 가로막은 것이 초기 선교사들이 전한 복음주의 성경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부흥사 무디처럼, 제대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이들의 복음주의 즉 예수 천당 불신 지옥과 같은 단순한 문자 중심의 기독교 교리를 전해 받은 한국교회가 이를 기준으로 여타의 성경 해석학들을 배격해왔던 것입니다.
단순한 문자 중심의 기독교 교리는 긍정적으로는 네비게*토성경공부, 일대*일제자양육 등으로, 나쁘게는 신천지와 같은 이단 사이비 등의 무료성경공부 등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두란* 일대*제자양육 교재로 교회 부흥을 거둔 온**교회가 몇 년 전부터 창조과*회를 전파하는데 앞장섰던 것도 문자적 성경해석의 줄기를 타고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젊었을 때부터 Q.T. 그리고 오랜 기간 강의했던 일대*제자양육, 창조과*회 지도자 과정까지 공부하면서 복음주의 성경공부는 해 볼 만큼 다 해 봤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기독교의 맥을 잡아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기독교의 기준인 성경을 제대로 알게 해주진 못합니다. 그것은 성경본문을 교재 내용에 맞게 뽑고, 추리고,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기독교 교리를 전해 주는 목적으로 작성된 교재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성서신학적으로 그런 제자훈련교재들을 수정해야 한다면, 너무 많아서 처음부터 새로 쓰는 게 낫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또한 교인들에게 기초적인 기독교 교육 수준을 충족시켜주므로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복음주의 성경공부는 유치원 과정으로서, 저를 성경학교 문 앞까지 데려다준 몽학선생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복음주의 성경공부라도 제대로 했으니까 열정적인 신앙, 선교적인 신앙, 목회적인 신앙을 갖게 되었고, 성경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부모들은 자식들을 일류대학 또는 유학을 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 자신들의 영적인 스승인 목회자들은 왜 공부시키지 않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자식들이 더 공부해서 똑똑해지면 뭐합니까? 부모가 자식들 앉혀놓고 과거의 지식을 주입교육시키는데요.
이렇듯 목회자가 열심히 성경을 연구해서 제대로 가르치려고 하면, 성도들이 그 옛날 문자주의 수준의 성경 지식으로 반기를 들고, 자유주의 신학이니 이단이니 몰아세우고 교회에서 쫓아내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그런 교회의 생리를 잘 알기에, 신학생들도 이런 머리 아픈 성서신학 관련 과목에 집중하기보다 실천신학 과목 즉 전도학, 상담학, 영성신학, 찬양인도법 등에 집중합니다. 이같은 해석학(마커스 보그나 크로산)은 대부분의 신학교에서(감신대, 한신대, 장신대, 성결대, 한세대, 연세대 등) 기본적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100년 넘게 굳어진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설파하는 것은 더 힘든 일입니다.
이젠, 성도들이 그러한 목회자를 청빙하고, 성경을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아무리 시끄러운 성도라도 교회 떠나기 쉽지 않지만, 성도들을 시끄럽게 만드는 목회자는 당장 쫓겨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목회자들도 바른 성경읽기를 성도들에게 가르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목회자의 입을 막는 것도 성도들의 입이고, 목회자의 입을 여는 것도 성도들의 입입니다.
강사님이신 정목사님은 그러한 목회를 차분하고 지혜롭게 하고 계셔서 후배 목회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문학적-역사적 읽기”을 좋아합니다. 이에 관련해서 초창기에 써먹었던 몇가지 사례를 소개할까 합니다.
1. 문학적 읽기를 위해
(1) Q.T.하던 시간에 문맥따라 성경 읽기를.
성경해석학의 기본은 “본문이 의도한 의미는 본문이 속한 문맥의 의미와 일치하는 의미”라는 사실입니다. 성경 읽기와 해석에 있어서 문맥 읽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문맥은 사고의 흐름을 제공하며, 문맥은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제공하고, 문맥이 단락들 내에서 올바른 관계를 보여줍니다.
하나의 짧은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앞 뒤의 문장, 그리고 그 문장을 포함하고 있는 앞뒤 단락, 그 단락을 품고 있는 장 전체, 그리고 그 장을 이어주는 앞뒤 장, 그리고 그 장들을 품고 있는 그 책 전체를 읽어보십시오. 그러다가 성경을 다독하게 된답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는 습관을 길러보십시오. 그러면 큰 숲에서 나무의 위치와 메시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그리하면 Q.T묵상할 때보다 더 큰 감동을 주어서 주님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2) 쉬운 번역 성경을 곁에 두기.
공동번역성경이나 표준새번역 성경은 내용도 쉽고, 원어성경에 더 가깝습니다.
핸드폰 어플 “Goodtv 다번역성경”이 참 좋습니다.
정교수님께서 소개하신 “연대기성경”을 읽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두란노에서 나온 연대기성경은 오타나 빠진 문장 등이 곳곳에 숨어 있어서 그거 찾았을 때 감격 또한 작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경 구절 사이에 있는 각주번호를 지나치지 마십시오. “없음”이라고 표기된 성경 구절 옆에 작은 숫자, 각주 번호가 기입돼 있습니다. 그러면 그 페이지 밑에 그 번호에 들어갈 “성경본문이나 해설”이 적혀있습니다. 대개 다른 사본에 기록된 본문이 있습니다. 공동번역성경이나 표준새번역성경은 이 부분까지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3) 처음엔, 짧지만 강력한 책 읽기가 좋습니다.
처음 문학적 읽기를 위해 “성경바로읽기”(민영진박사의 성경클리닉, 대한기독교서회)를 추천합니다. 문맥에 따라 읽어도 성경이 바로 보이는 예를 많이 들어놨으니 화장실에 놓고 읽어도 좋을 겁니다.
2. 역사적 읽기를 위해
어떤 성경 구절의 올바른 해석은 그 구절의 역사-문화적 배경과 일치하는 해석입니다. 성경의 메시지는 원래의 역사-문화적 배경 내에서 갖고 있었던 사건이나 문제와 갈등 상황 속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되, 성경이 역사-문화적 배경 내에 있는 사상과 가장 밀접하게 부합되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므로 성경의 배경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 성경배경사전을 곁에 두기.
책이 두껍긴 하지만 궁금할 때만 보니까 무섭진 않습니다. 유대적 배경, 고대근동 배경, 성경시대 등의 고대 사회, 문화를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2) 예수세미나 즉 마커스 보그나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도 좋습니다만, 그 책을 출판한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발간한 성경배경 관련 책들은 성경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나오면서,
올바른 성경 읽기와 해석은, 먼저 성경본문이 성경의 역사-문화적 배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를 파악하고, 그 본문이 앞뒤 문맥 가운데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성경교사는 오늘날의 청중을 성경본문의 청중들 속에 앉혀놓고, 예수의 설교를 듣는 듯한 감동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회를 달라고 갈구할 때 그에 맞는 은혜와 도움을 주시더라구요.
"복음서 다시 새로보기"같은 과목을 듣게 된 것도 저에겐 코로나 이후 가나안성도를 비롯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바른성경읽기" 의 투사로 쓰임받기 위해 다시금 체계를 잡아줄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첫댓글 강의 보다 목사님 댓글이 더 휼륭한 것 같습니다. 좋은 가이드 감사합니다. ^^
애구애구. 정목사님 덕분에 20년 만에 "성경바로읽기"를 체계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나 혼자만 이런 생각 가졌나 하다가도 이 강의 들으면서 다시 한번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용기를 얻습니다. 그동안 공부해온 것이 아까워서 지금은 평신도가 읽기 쉬운 요한계시록 주석을 써가고 있는데, 힘들 때마다 이 강의들으면서 에너지 받고 다시 힘내서 쓰고 있습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