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3:36~14: 24절 (제자들의 4가지 질문) 21 11.17수 370 431
제자들의 질문으로 말씀을 나누게 습니다.
① 베드로의 질문 (13:36절)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영화:퀴바디스, 도미네>: 주님이시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로마 네로의 박해를 통해서 기독교인이 죽어가는 모습에서, 믿음은 무엇을 요구하며, 숭고한 사랑과 신자의 자세를 볼 수 있다.
베드로의 질문에 대답을 하시는데 <목적>답을 말씀하시니 않고“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예수님께서 본인을 위해 죽으실 것을 알지 못하는 베드로~ - 13:38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 너의 연약함을 내가 안다
② 도마의 질문(14:5)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의 대답은 “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③ 빌립의 질문(8절)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님의 답변은? 9절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④ 가롯유다가 아닌 유다의 질문(22절)“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능력과 기적을 온 세상에 들어나게 하시죠, 이 같은 질문에 공통점은? 현세적 현실적으로 보여 지는 것만 질문을 하는데 그들의 질문에 궁금해서 질문한 것인가요 아니면 불안해서 한 것인가요?
성경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약속을 했는데도 그것의 깊이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 아닌가? 여기 나오는 제자들과 똑같이 예수님의 어마어마한 사역의 길을 알지 못하고 불안하니 이렇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14: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제자들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걱정이 자리 잡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자꾸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니 불안한 것입니다.
근심의 해독제인 믿음이 아직도 부족함(1절) ▷ 믿음은 나의 삶을 맡기는 것이다 나의 삶을 예수님께 맡기면 평안함 가운데 거하게 된다 / 믿음은 곧 밑힘(저력)이다 -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자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믿음은 이해의 차원을 넘어선 맡김이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수용하면 불안은 사라진다.
2-3 절 내 아버지 집 은 우리 모두가 다 가야하는 곳이며 바로 천국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종말론적인 천국이 분명히 있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임재가 없는 천국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아버지 집은?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며 복락을 누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세상에는 극락이니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니 좋은 곳으로 얘기하지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23: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의 집→ 성전 → 실체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여호와 집은 공간보다는 관계적인 개념이다. 즉 예수님이 베푸신 세족식의 깊은 의미는 우리는 한 가족이며 한 몸임을 의미하니 결국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천국의 삶입니다. 그래서 찬송370장 주안에 잇는 나에게 딴 근심이 있으랴 431장 주안에 기쁨 있네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우리에게 진짜 천국가고 싶으세요? 하면 다 아멘 합니다. 그러나 두 종류의 아멘이 있다 ① 이 땅에 아무런 소망이 없어 천국이 나의 도피처로
② 구주를 생각만 해도<85장> 과연 우리는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은 삶을 사나요? 이 땅에 여전히 고난 고통 역경들이 있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있다면 바로 천국의 삶입니다.
요14: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적인 평안은 복음이 아니더라도 얻는다. 하나님 은총으로 살면 본질적으로 평강 합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해야만 진정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지는 종말론적 천국에 입성은 오늘의 천국의 기쁨평강을 누리어야 합니다.
*종교지도자 & 로마제국 : <힘>이 곧 정의~ 섬김을 받는 입장, 타인을 희생시킴
타인이 실수로 해서 본인을 다치게 했을 때 참으면 비겁한자요 그러나 복수하면 그것이 옳고 용기라고 하는 상황에 예수님은: <사랑>이 곧 정의, 섬김의 입장(섬기는 삶을 추구), 자기를 희생함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십자가의) 길, 진리, 생명 ▷ 예수님의 자기 진술
1) (십자가의) 길(걷기)은 타인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길)이다
2) (성육신의) 진리(살아냄)는 진리를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
3) (부활의) 생명(영적 성장) ▷ 길, 진리,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예) 캄보디아로 파송된 자매 두선교사가 유치원 어린아이들 11년째 사역을 하는 데 한 자매가 하는 말이 선교하면서 11년 동안 후회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
유치원으로 쓰는 건물주가 사용해야 한다하며 철수해야 하기에 너무나 속으로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어느 장로님이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선교헌금을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거절 할 수 도 없고 그래서 송금한 선교헌금이 그 주변에 부지를 1.000평정도 사고 유치원을 건물을 현대식으로 지을 수 있는 거액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벅찬 가운데도 사용 하실려고 하는 은혜를 깨닫게 되니 하나님의 강력한 위로와 또 까만 캄보디아 어린이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이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니 초막이나 대궐이나 주님이 계시니 그 어디나 하나님나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찬송438장
요15:1-8 붙어 있으라 21.11.19금, 452장
질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왜? 예수님이 나는 참 포도나무요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땅에 무화과나무 감람나무도 많은데 포도나무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참이란 거짓에 반대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모형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예수님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신 이유는 구약적 배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시80:8.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 바로 자연스럽게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오늘 14:1절에서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요 하심은 예수님이 참된 이스라엘의 공동체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인데 사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니 이제는 예수님은 참(실체)이신 이스라엘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2절 봅시다. 성경학자들간에 견해차이가 있지만 사실 견해의 통합으로 해석함이 옳다 즉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 한번구원을 받으면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없는 것이 성경적 해석인데 왜? 여기서 제거한다. 심판을 말하는 가입니다. 감리교를 중심에서 알미니안주의 교리가 있습니다. 구원이란 것은 인간의 행위 여부를 따라서 취소되고 변경이 될 수 있다고 함, 그래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지옥 가거나 복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열심을 다해 봉사 헌신 전도 헌금을 해야 한다고 잘못된 짝뚱복음을 전하기 쉅다. 마치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가짜교사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말하면서 알파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원+원을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제거하다 의미는 컷오프도 있지만 들어 올리다 의미가 있습니다. 예) 눈, 2가지 눈 을 생각할 수 있다 ① 보는 눈 ② 겨울철에 내리는 눈 그러므로 “눈” 한 글씨 만 보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전후 문맥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의 문백 상 컷오프 가 아니고 포도나무가지 밑에 큰 돌이나 받침대로 “들어 올리다” 입니다, 즉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땅바닥에 있는 가지는 꽃이 피더라도 열매가 썩어 맺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또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 말씀은 심판이 맞다. 구원이 취소나 변경이 아니라 심판인데 심판의 대상은 잘 믿다가 죄에 빠진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가지에 붙어 있는 척 한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다 깨끗하지 않는 가롯유다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제자인척 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도 솔직히 평생에 예수 믿는다고 하였지만 단 한 번도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없이 오래 다니니 직분을 맞게 되니 심지어는 목사도 집사도 되었지만 결국은 가나안 교인이 되고 맙니다. 가지에 붙어 있는 척 한자는 열매가 없다. 본인이 너무나 잘 안다 내가 열매가 있는지?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은?
요6: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우리가 주님의 살 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 믿는 믿음이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거함은 물질적인 사건이 아니라 교제와 나눔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호흡으로 동행하며 그 분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마치 부부가 함께 살림을 하는 것 처럼입니다. 결혼생활이 매일매일 이벤트 인가요 ? 때로는 징징 대고 잔소리하고 박가지 글고 엎어졌다 토라졌다 하면서 성숙해지면 생각과 뜻이 같아지고 얼굴까지 닮아진다. 주님과 때로는 아우성을 치지만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적어도 믿는다고 하면 생명의 교제가 이루어지므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주님께 붙어 있는척하면 열매는 없다. 결국은 그 가지는 말라서 밖에 버려져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게 됩니다.(6절)
*그러면 열매(칼로스)란 무엇인가?
① 성령의 열매 – 삶의 내용 윤리 및 도덕적인 삶입니다.
② 복음전도를 통해 맺는 열매 (요12:24) 즉 선교 및 전도의 열매
그러므로 두 영역이 다 들어 있다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열매는 삶으로 나타나는 전도의 열매를 말합니다. 이 두 가지 영역을 다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한국교회가 60-70년대 는 초고속성장으로 문제가 대형교회들부터 발생함, 그래서 한국교회 민낯이 들어나고 실력의 허약함을 들어남
이유는 예수천당의 전도를 극성맞게 했지만 성도들의 삶이 뒷받침이 따라오지 못하니 교회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가서 해외선교 단기선교보다 더 만만치 않는 것이 일상전도입니다. 세속의 바람 앞에 훱쓸려 가지 않도록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아니해야 합니다.
기도 말씀 예배가 교제입니다. 만사는 페이스가 있다. 자기가 하는 영역을 하루라고 쉬면 뒤쳐진다. 평생 새벽기도 하면서 즐거워하는가요? 육체의 피곤함을 이겨야 하고, 새벽에 싸우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주님의 시간표에 내가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김종서가수가 조용필의 노래를 부르고 난후에 그 자리에 있는 선배 조용필이 하는 말이 ‘너는 나를 많이 닮았어’ 하는 소리에 김종서가수는 자기평생에 처음 듣는 말이라고 하면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이 만약에 주님이 우리에게 너 아무개야 나를 많이 닮았다 하면 우리는 죽을 만큼 기뻐할 것입니다 . 오늘 우리는 일상에 묻어나는 일이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되시기를... 주님과 삶을 나누면 음식의 맛도 같고 생각도 같고 모습도 같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