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말
16억 달러, 우리나라 돈 1조8천억 원의 주인공이 나왔다지요? 복권을 산 분들도 있을텐데 뭐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번개 맞을 확률이 1/6백만이라는데 이번 복권은 1/3억이었습니다. 번개를 50번 맞아야 당첨될 수 있는, 이 말도 안 되는 확률을 생각하면 맞을 것을 예상하고 복권을 사는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만 1조 원이 넘는 돈을 탄다고 가정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는 데에 2 달러를 지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가끔 300억짜리 상상을 하곤 합니다. 은퇴 후 300억을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곳을 도우면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300억, 굉장히 큰 돈인줄 알았는데 이번 당청금의 겨우 일 년 이자더라구요. 제 꿈은 아주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당첨되면 일 년 이자만 제게 떼 주십시오.
남을 돕는데 반드시 돈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돈으로는 못하는 것을 말이 해내기도 합니다.
지난 2016년 브라질 올림픽에서의 일입니다. 펜싱 에페 종목의 결승전에 우리나라의 박상영 선수와 헝가리의 임레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박상영은 나이도 21살, 세계랭킹도 21위였습니다. 그에 비해 상대는 세계랭킹은 3위인데다 산전수전 다 겪은 42살의 베테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객관적 전력에서 우세한 헝가리 선수가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2세트가 끝났을 때, 박상영은 9-13으로 뒤졌고 2점을 더 잃으면 금메달을 놓치는 상황이었습니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카메라에 비친 박선수의 모습은 풀이 죽은 듯 보였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할 수 있다!” 용기를 북돋는 그 말에 전류가 통한 듯 박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혼잣말을 했했습니다.
3세트에 들어서서 한 점씩 주고 받아 10-14가 되었습니다. 상대에게 단 1점도 주지 않고 내리 5점을 따야 하는 위기에 몰렸습니다. 사자에게 목을 물린 얼룩말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박상영은 주눅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이기고 있던 것처럼 박상영의 검은 거침없고 예리하게 뻗어나갔습니다. 11-14, 12-14, 13-14 그리고 드디어 14-14. 체육관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기세에 눌린 상대의 검은 흔들렸습니다. 결국 마지막 금메달 포인트도 박상영의 것이었습니다. LA 타임지는 이 게임을 리오 올림픽 최고의 펜싱경기로 꼽으면서, 올림픽에 첫 출전하는 스무살의 청년이 올림픽 최고령 메달리스트를 해치웠다고 전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대 역전극의 출발점은 누군가 소리친 “할 수 있다!”였습니다.
내가 만일 시력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하기조차 싫습니다.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니까요.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후천적 시각장애인 바르티메오입니다. 그는 시력을 잃은 것도 모자라 가족에게서도 버림받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삽니다. 죽지 못해 사는, 정말 비참하고 절망적인 인생입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맨날 똑같은 자리에 앉아 구걸하는데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심지어 죽은 이도 살렸다는 그 예수님말입니다. 바르티메오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칩니다.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눈을 뜬다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실낱같은 희망이 저 깊은 곳에서 절망을 뚫고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친 듯이 소리치는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오히려 꾸짖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예리코가 그렇게 큰 도시가 아닙니다. 뻔히 다들 아는 사이란 말입니다. 보이지는 않아도 친구의 아버지, 동네 형들의 목소리임을 압니다. 잠자코 있으라니... 나같은 놈은 희망도 품어서는 안된다니... 바르티메오는 당신들이나 조용히 하라는 듯 더욱 큰 소리로 주님을 불렀습니다. 절망의 깊은 동굴 속에서 토해내는 그의 소리는 차라리 분노였고 절규였습니다. 급기야 주님께서는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소리치는 이를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누군가 바르티메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주님께서 그대를 부르시네.”라고 격려합니다. 그 말에 바르티메오는 누더기 겉옷을 벗어던지고 그의 손에 이끌려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주님은 무얼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부드러운 그분의 목소리는 사람들이 던져주던 값싼 동정 따위와는 달랐습니다. 시력을 잃은 눈구덩이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다시 보고 싶습니다.” 잠시 후 눈을 뜨게 된 바르티메오의 시야에 들어 온 첫 모습은 주님, 예수님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는 그 도시를 떠나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찬찬히 그려보면 볼수록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바르티메오에게 용기를 내라고 격려의 말을 건넨 그 사람이 누군가요? 베드로인가요, 아님 요한일까요?
바로 나입니다. 내가 해야 할 몫입니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까? 절망에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불씨가 되어준 격려와 칭찬들이 기억납니다. 너한테는 이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라고 힘을 실어주신 스승님의 한 마디 말을, 그 말의 위력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바람에 흩어지는 쓸모없는 말도 많이 하지만 가끔은 힘이 되는 격려와 칭찬의 말들을 하도록 합시다. 칭찬은 시체도 벌떡 일어나게 한다지 않습니까? 게다가 칭찬의 효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칭찬받는 사람의 행복보다 칭찬하는 사람의 행복이 더 크다고 합니다.
남을 살리는 말을 자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