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김경경의 시 세계 사슴섬(小鹿島)에서 탐색한 존재 이유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사슴섬의 애환과 감응의식 현대시가 지향하는 작금(昨今)의 경향은 대체로 체험에서 이미지를 창출하고 주제를 투영하는 체험 시법이 성행하고 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한 시인이 체득한 체험은 상상력의 재생으로 지난날에 겪었던 이미지들에서 선택된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의 통일체를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상상력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육체적인 지각작용에서 이룩된 감각적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되는 광의(廣義)의 개념과 이미지를 세분화해서 정신적, 비유적, 상징적으로 구체화시키는 협의(狹義)의 개념으로 제시하게 된다. 이것은 실재적인 것보다도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로 요약된 인상 깊은 연상이며 심리적인 그림으로써 기억이나 상상은 모두 과거에 체험된 어떤 것이 동기가 되는데 시는 이런 기능을 살리고 언어의 감촉으로 심상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김경경 시인이 상재하는 첫 시집『시집 이름을 기재할 것』에서 수록할 작품들을 일별하면 그가 체험한 ‘사슴섬’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애환을 목도(目睹)하면서 우리 인간들의 한 생애와 삶의 영위에서 구현하려는 진실을 창조하고 있다. 일찍이 프랑스의 상징주의의 비조(鼻祖)라고 일컫는 근대 탁월한 시인 보들레르는 시가 기쁨이건 슬픔이건 항상 그 자체 속에서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우리들 정감(情感)에서 추출하는 이상적인 사유(思惟)의 형상화가 바로 시의 참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선 김경경 시인의 전신에 흐르고 있는 의식의 중심에서 추출해낸 ‘사슴섬’에 관한 그의 심저(心底)에는 어떠한 시적 진실이 현현되고 있는가. 다음 작품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따스한 품 부드러운 숨결 짭짤한 향기 그리워천리 길 멀다 않고 달려왔노라 포물선 그으며 파도 가르는 철선에 몸을 실었다만 설레는 마음만 먼저 왔노라 꿈같은 봄날 처음 본 사슴 송두리째 빼앗긴가슴 떨림과 간절함 몇 몇 해던가 그리워 달려왔건만깊은 침묵에 잠긴 너 애타는 심정 이방인 만드는구나 차가운 침묵에 기약할 후일도 없이 혼령처럼 되돌아오고 말았노라. --「사슴섬」전문 김경경 시인이 체험한 이 ‘사슴섬’은 ‘꿈같은 봄날 처음 본 사슴 / 송두리째 빼앗긴 / 가슴 떨림과 간절함 몇 몇 해던가’라는 어조(語調)와 같이 애절한 풍경이 먼저 시적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사슴섬’의 정경(情景)과 거기에서 생활하는 현장인들(한센인들)과의 교감이 눈물겹게 현현되고 있는데 ‘그리워 달려왔건만 / 깊은 침묵에 잠긴 너 / 애타는 심정 이방인’이 된 채 ‘혼령처럼 되돌아오고’ 있다. 그가 소록도에서 체험하면서 불망(不忘)의 심저에 자리한 사랑과 인간애에 대한 진솔한 시적 진실은 ‘그리움에 몸부림치던 / 젊은 날 고뇌여 / 인간사 애잔함 녹아있는 / 아름다운 사슴이여.(「추억」중에서)’라는 어조이며 ‘애달픈 사연 / 커다란 눈망울에 담아 / 무너지고 짓밟혀도 / 잊혀진 전설 서러워 / 오늘도 뭍을 그리는 / 소록 사슴.(「백록」중에서)’이라는 애잔한 전설처럼 발현되고 있다. 작은 사슴 섬에서 그대 무엇을 보았는가 섬의 신비함 보았고 천형의 무서움 보았습니다 병든 몸이지만 가슴 깊숙이 솟아오르는 사랑 보았습니다 또 무엇을 들었는가 한 맺힌 절규 님 향한 찬송을 들었습니다 사랑과 믿음 베일 뒤 숨겨진 절망 그들 향한 마음 있다면 아낌없는 사랑 주고 싶습니다. --「사슴섬에서」전문 김경경 시인은 이처럼 이 ‘사슴섬’에서 본 것은 ‘섬의 신비함’과 ‘천형의 무서움’ 그리고 ‘가슴 깊숙이 솟아오르는 / 사랑’이었다. 또한 여기에서 들은 것은 ‘한 맺힌 절규’와 ‘님향한 찬송’이었다. 그러나 ‘사랑과 믿음 / 베일 두 숨겨진 절망’은 너무도 큰 시각(視覺), 청각(聽覺)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결론으로 적시(摘示)한 것은 마지막연 ‘그들 향한 마음 있다면 / 아낌없는 사랑 주고 싶’다는 간절한 기원의 의지가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있어서 이 ‘사슴섬’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아주 정갈하고 온순한 내면의 주제가 김경경 시인의 뇌리(腦裏)를 진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작은 사슴 뛰놀던 평화로운 동산 / 한센인은 서러워 / 그들도 울고 사슴도 울던 섬.(「보랏빛 섬」중에서)’, ‘섬을 거쳐 간 천 여 명의 간호들 / 하나같이 동병상련 아픔 간직하면서 / 구석구석 또 다른 세상 밝힐 당신들 / 어두운 세상에 등불로 빛날 것이외다 / 작은 사슴섬 / 작은 사슴들 사랑합니다 / 당신들은 가장 아름다운 천사였다오.(「사슴 천사」중에서)’라는 그의 순정적인 진실이 분사(噴射)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적 상황이나 주제는 작품「슬프고 아름다운 섬」「사슴 소녀」「사슴섬의 봄」「사슴섬 축제」「목마른 사슴」「쪽빛 사슴섬」등에서 그가 토로(吐露)하고자 하는 ‘사슴섬’에 대한 아련한 상상력을 재현하고 있다. 2. ‘천형(天刑)의 세월’과 한센인들 김경경 시인은 이 ‘사슴섬’에서 뼈저리게 느끼면서 가슴 아파한 유정(有情)의 내면에는 ‘사랑과 인정 가득한 섬 / 삶도 죽음도 / 축복받아 아름답다던 사슴섬 사람들’에게서 그가 획득한 체험에서 진정한 인간애와 인본주의가 무엇인가를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와 같은 ‘천형의 세월’은 가장 근접한 상황에서 대화하고 생활하는 등의 생사고락을 함께 한 천사의 순수한 그의 심정은 ‘한센인들’의 환경과 생활 내면을 감응(感應)함으로써 시적 동기와 발상이 이루어지고 봉사와 사랑이라는 대전제를 숙명처럼 이행했던 그의 진실이 적나라(赤裸裸)하게 표징되고 있다. 부서지는 파도천형의 한 맺힌 절규 내 뱉고돌아서 눈물 씻는 사람들 지상 낙원 소록도 한 마디로 위안 삼기엔 깊숙이 침전해 버린 달랠 수 없는 한(恨)부모 형제 그리워 일그러진 몸뚱이가 서러워 울었던 천형(天刑)의 세월 응어리진 가슴 안고 뜬 눈으로 지새웠던 날 들 여명의 새벽 종소리에 두 손 모은다 건강한 몸 갖게 해 달라고 부모 형제 고향의 품에 안길 수 있게 해 달라고.. --「염원」전문 그는 먼저 간절한 ‘염원’을 통해서 그가 간직한 순정적인 이미지를 절규에 가깝도록 더욱 어조를 높이고 있다. 그가 ‘부서지는 파도 / 천형의 한 맺힌 절규 내 뱉고 / 돌아서 눈물 씻는 사람들’을 위한 ‘건강한 몸 갖게 해 달라고 / 부모 형제 고향의 품에 / 안길 수 있게 해 달라고.. ’ ‘여명의 종소리에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혼(詩魂)이 넘치는 작품의 전개는 그가 평소에 간직한 천사적인 심중(心中)에서 솟아나온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처럼 ‘천형의 세월’을 ‘일그러진 몸뚱아리’의 서러움과 외로움이 한(恨)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작품「수탄장(愁嘆場)」에서도 ‘신이 시샘하여 갈라놓은 천륜인가 / 그리움 회한이 되고 / 태어남이 더 아픈 한센 2세.’라거나 작품「장례식 풍경」에서 ‘저 멀리 검푸른 바다엔 / 한센인 절규가 / 사나운 파도로 몸부림치는데’ 또는 작품「떨어진 발가락」에서 ‘양지 기슭에 발가락 묻고 돌아선 / 한센인 가슴엔 설움이 복받치는데 / 먼 산엔 핏 빛 아지랑이 서려 있었다.’는 등의 어조는 ‘간호의 눈동자엔 파도가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소록도엔 묘가 하나다 만 명의 영이 깃들어 있는 거대한 탑하나섬의 역사를 보여줄 뿐 한센인 한 맺힌 생 마치면한 줌 흙 되어 요단강 건너가 만나는 곳 훨훨 날고픈 영혼이건만탑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잔인한 인생사 붉은 동백 영혼부터고개 숙인 할미 영혼까지사연도 많은 길고 긴 세월 떠도는 먹구름 능선 넘지 못해 눈물 흘리며 주저앉은 가엾은 넋. --「만령당 (萬靈堂)」전문 김경경 시인은 ‘만령당’이라는 소록도의 거대한 묘탑(廟塔)에서 ‘잔인한 인생사’를 인식하게 된다. 이곳은 ‘한센인 한맺힌 생 마치면’ 봉안되는 일종의 묘(墓)에 해당한다. ‘떠도는 먹구름 능선 넘지 못해 / 눈물 흘리며 주저앉은 / 가엾은 넋.’들이 오늘도 한많은 생애의 일단을 되삭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의 천성(天性)의 사랑 미학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 못 하는 일 없었고 / 못 가는데 없었지만 / 진정 나를 울리는 건 / 그리움, 그것이었지요.(「몽당 손 몽당 발」중에서)’ 그리고 ‘찬바람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 겨울 / 트레이 가득 치료품 담아 / 언 손 호호 불며 길 나선다 / 치료 합시다 / 미닫이가 빼꼼이 열리고 / 황소바람 마다 않고 반갑게 맞아 / 차디찬 손 품에넣어 녹여주시며 / 복 받을 겨 중얼거리신 할머니 / 아침 내 소금물에 발 담가 / 상처 꼬들꼬들 하다며 내민 발목 / 정겨움과 사랑으로 희망을 바른다.(「치료합시다」전문)’는 어조와 같이 그의 한센인 사랑은 종결이 없다. 이 밖에도 작품「화해와 소통」「중앙 공원」 「백사장 추억결혼 가족사진」등에서 한센인들과의 정감어린 소통이 바로 사랑의 실천으로 그의 소재와 주제로 승화하고 있어서 그의 사랑과 봉사와 시가 융합(融合)하는 인간미와 사랑학을 이해하게 된다. 3. ‘존재의 이유’와 기원의 형상화 김경경 시인은 삶에서 획득하는 인생이나 존재의 문제에서 사유(思惟)의 다각적인 통섭을 시도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삶의 중심에는 ‘퇴색해가는 마음에 생기 돌고 / 가슴 뛰는 삶의 의미 찾을 수 있으니 /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행복하시나요」중에서)’라는 자아의 성찰이 내포된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사랑함에 뜨거워지지 않을까 따스한 온기 불어넣지 못할까봐 안달 난 마음 아픈 상처에 새 살 돋게 하지 못할까삭막한 삶에 촉촉한 말 한 마디 못 해줄까봐 보르르 떨리는 맘 그 아픔 진통제 되어 작은 가슴으로 부르는 희망의 노래 한 생 마칠 때 달콤하고 기름진 삶보다 소중한 사랑 선택한 탁월한 삶찬사 보내고 싶음 내 존재의 이유. --「존재의 이유」전문 그렇다. 이처럼 그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한 생 마칠 때 달콤하고 기름진 삶보다 / 소중한 사랑 선택한 탁월한 삶’이 바로 김경경 시인의 인생관이며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언제나 그의 내면에는 ‘아픈 상처에 새 살 돋게 하지 못할까 / 삭막한 삶에 촉촉한 말 한 마디 못 해줄까봐 / 보르르 떨리는 맘’이 이 ‘존재의 이유’를 더욱 명징(明澄)하게 표징하고 있어서 그가 지향하려는 삶의 지표나 향방은 확고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정서와 철학에는 긍정적인 사고(思考)의 감응을 발양시키고 있는데 ‘오만 방자하던 젊음 뒤 주름살 깊고 / 귀 밑머리 하얗게 세어 / 초라한 늙은이로 전략해 갈 때 / 좀 더 겸허하게 살지 하다 측은지심 들면 / 마음은 살짝 원만구족하고 / 지공무사한 자리로 돌아온다.(「인생은 그런 거여」중에서)’는 자성(自省)의 언어가 그의 진실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결국 김경경 시인은 인생은 존재라는 범주(範疇)에서 생존에 관한 그 이유를 탐색하는 시법(詩法)으로 작품을 구성하거나 주제를 투영해서 그가 지향하려는 가치관을 충실하게 구명(究明)하는 지적(知的)인 정신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한편 그는 삶에서 ‘인연’을 중시하게 되는데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만난 인연 / 밤 새 번민하던 끝자락 / 쌓여있는 그리움 / 내 인생에 선물입니다(「선물입니다」중에서)’라거나 ‘세상에 영원한 게 없다지만 / 허무와 적멸 스치는 바람일지라도 / 망망대해 항해하는 인생 길 / 그대와 함께하리 함께하리라.(「인과응보」중에서)’라는 인연이 인생과 동행하면서 존재의 이유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 이슬 머금은 한 떨기 청초한 수련이고 싶다 살포시 짓는 미소 자질구레한 마음마저 정화되어 훗날 생각해도 사랑하였음에 가슴 뿌듯해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다 안을 수 있는 파란 하늘같은 풋풋함으로마주앉아 이슬 한 잔 나눌 수 있는편안함 간직한 사람이고 싶다. --「원(願)」전문 김경경 시인은 존재에 천착(穿鑿)하고 자아를 성찰하면서 그의 심연(深淵)에는 하나의 완전한 기원의 의식이 남아있다. 위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종결어미로 사용하고 있는 ‘.......싶다’라는 어휘는 그의 간절한 소망이 나타나고 있다. ‘한 떨기 청초한 수련이고 싶다’거나 ‘마주앉아 이슬 한 잔 나눌 수 있는 / 편안함 간직한 사람이고 싶다.’는 어조와 같이 간구(懇求)의 ‘원(願)’이 하나의 인생관으로 승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적시하고 있어서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 한겨울 응달에서 야윈 삶 덮어주는 / 마주보는 나무가 되고 싶다.(「널 바라보매」중에 서) - 이제 너에게 /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피어난 / 한 송이 꽃이고 싶다.(「꽃이고 싶다」중 에서) - 그대 있는 곳 / 언제나 / 그 바다 철새이고 싶소.(「그 바다 철새」중에서) - 지친 이들의 안식처로 새로운 힘을 얻는 / 사상도 종교도 초월한 곳에서 / 잠시 영혼을 쉬어가도 좋으련만.(「그곳에 가고 싶다」중에서) -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인생 / 한 사람 남겨놓고 갈 수도 있을 텐데 / 더 사랑하고 아끼 는 삶이면 좋겠습니다(「아프다하면」중에서) - 훗날 젊은 추억들 알알이 엮어 / 영근 알맹이 잉태하는 / 영원한 시인(詩人)이고 싶소. (「영원한 시인이 되고 싶다」중에서) 그는 ‘삶이 버거워질 때’나 ‘차가운 바람에 나그네로 돌아올’ 때, ‘좋은 시절 인연이고 싶’을 때 그리고 ‘꿈속에서도 마주’볼 때에는 이와 같은 염원이 담긴 어조가 강렬한 메시지로 현현되고 있어서 그가 여망(輿望)하는 기원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조망(眺望)해 볼 수 있을 것이다. 4. ‘참 나(眞我)’와 무소유의 함의(含意) 김경경 시인에게서 가장 중요한 존재의 개념에서 궁극적으로 탐구하려는 시 세계는 그가 추구하는 ‘참 나’를 구명하는 일이다. 거기에는 구도자적인 고매(高邁)한 인간 정신의 정도(正道)를 작품으로 승화하는 지적인 사유가 차원 높게 발현되고 있다. 그는 ‘나(我)가 누구인가 / 아집([我執)으로 둘러싸인 허상 아니던가 / 놓아버려라 / 참 나(眞我) 찾을 수 있으리 / 그 마음 진경(眞景)이요 참 자유라네.(「참 자유」중에서)라는 ’나‘에 대한 집착이 그의 정신세계의 지향점이며 일생동안 탐구해야 할 숙명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본시 가진 것 없는데무엇을 욕심낸단 말인가 빈손으로 왔으니 손뼉치고 살다가 빈손으로 간다면 만족해야지 그러나 가져가는 것 두 가지 있다네 죄와 복 보따리 사바세계 풀어 놓고 죄 보따리 작을수록 좋고 복 보따리 클수록 좋다네 빈손으로 왔으나 커다란 복 보따리 가져가 삼세 업장 녹이고세세생생 윤회하리. --「무(無)」전문 보라. 김경경 시인은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지향의식은 바로 ‘무(無)’라는 기본적인 철학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가 원불교의 신앙인으로서의 시적 발상이긴 하지만 우리 인간의 근본적인 성취의 대미에는 ‘무’라는 심원(心願)이 상당한 시적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관점에서 그 이미지나 주제는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다. 그가 주창(主唱)하는 주제의 핵심은 ‘빈손으로 왔으니 손뼉치고 살다가 / 빈손으로 간다면 만족해야지’이며 ‘삼세 업장 녹이고 / 세세생생 윤회하리.’라는 불가적인 진실을 그의 인생관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다시 그는 ‘영원한 게 있을까 / 여여(如如)하여 변치 않는 건 / 잘 닦은 성품 하나 / 욕심을 놓지 못한 수도인 말로 / 저 꽃과 같은데 / 구류 중생들 삶 오죽하랴(「인과, 그것은」중에서)’라거나 ‘차디찬 바람이 귓전을 때리는 계절 / 홀로 걷는 산사의 작은 길이 / 이토록 호젓할 줄이야 / 아무도 모를 거야 / 무엇에도 걸림 없는 바람 같은 이 자유(「무소유」중에서)’라는 어조가 바로 ‘무소유’의 삶에서 ‘나’ 혹은 존재의 이유에 대한 해법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후박나무 굵은 잎사귀바람에 이리 저리 흩어지는 늦가을 물결 일렁이는 마음 바다 천지개벽으로 소용돌이친다 이게 아닌데 인간사 부귀빈천 없다지만 세상살이에 부귀빈천 있더라 여보쇼 벗님네야더 가졌다고 허세부리지 말고 덜 가졌다고 기죽지 마소 인생이란 오르막 내리막 반복이려니 많이 가졌어도 그 복 다하면 공수래공수거 아니던가어울려 살 적 따뜻한 말 한마디 영원한 복 그 아니던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전문 이처럼 인생무상에 대한 깊은 심려(心慮)가 그의 심안(心眼)에서 시적 진실로 승화할 때 비로소 그가 간직한 내면의 심저가 인생의 진리로 발양되는 것이다. 그는 ‘인생이란 오르막 내리막 반복이려니’와 ‘많이 가졌어도 그 복 다하면 / 공수래공수거 아니던가’라는 어조로 인간들의 지각(知覺-perception)을 일깨우고 있다. 이러한 시적 상황의 전개는 그의 의식의 흐름에서 신앙적인 지적 자양이 함께 흡인(吸引)함으로써 다양한 주제(시적인 진실)을 창출하게 되고 우리들은 공감하는 새로운 메시지를 수용하게 된다. 이러한 메시지는 작품「도반이여」에서 ‘어리석은 중생에게 / 각성의 몸부림 가르쳐주며 / 알뜰히 사랑하심을 /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습니다’라거나 작품「길싱사에서」에서 ‘대원각 진흙탕에서 / 한 송이 연화 피워 / 거룩한 정제 이루었으니 / 소중한 사랑 인연 공덕 한량없으리.’, 작품「자운스님」에서 ‘산사에 심은 뜻 무엇이기에 / 그렇게 찬연히 일어 나셨습니까 / 부디 성불 제중하소서.’ 그리고 작품「참 성품(眞性)」에서도 ‘불자여 어찌 다행 / 바른 길 만났던고 / 시절 인연 만났을 때 부지런히 갈고 닦아 / 삼세 지은 업장 수행으로 돌파하고 / 본래 영성 찾아 보배로 간직하라’는 불성(佛性)과 관련된 주제가 많이 창출되고 있다. 이러한 불성시편들은 김경경 시인에게 내재된 신심(信心)의 유로(流路)로 창작된 실재(實在)의 진실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자아를 인식하고 ‘무’의식에 몰입하는 작품들을 다수 읽을 수 있어서 그의 시정신과 시법 그리고 그의 시학을 예감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김경경 시인은 다시 ‘나르찌스 연작시’를 통해서 사랑학을 추구하는 또 다른 작품들을 다수 접하게 되는데 ‘내 마음 불사조 / 노을보다 강렬하게 / 더 붉게 / 활활 타는 이 마음 / 속은 숯덩이 되어도 / 그대 아니면 끌 수 없는 불 어이하랴.(「그대 향한 마음」중에서)’라는 어조처럼 시적 화자(話者) ‘그대’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사랑의 탐미적 진실을 구현하는 작품들도 많은 관심을 흡인시키고 있다. 이제 김경경 시집의 시 읽기를 정리한다. 대체적으로 ‘사슴섬’의 애환과 한센인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자비의 봉사로 사랑을 실천하는 백의천사들의 순정미 그리고 존재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탐색하는 시법으로 나타나는 보편성으로 정리하지만 ‘사슴성’과 한센인이라는 특수상황에서 창작된 작품이라서 더욱 많은 사유의 지적인 감상이 필요로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존재와 자아의 성찰을 통해서 그 이유의 함의를 충실하게 해석하려는 노력과 이를 타개 극복하려는 기원의식을 도입한다든지 ‘참 나’와 ‘무소유’ 등의 경지를 예감하는 시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라는 본분(本分)과 시의 위의(威儀) 그리고 시의 본령(本領)을 위해서 고차원의 열정을 가미(加味)시키는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시인의 가슴」전문에서 ‘시인은 언제나 울고 있다 / 찬바람에 가슴 시려오면 / 빈 맘 채우지 못해 갈잎보다 먼저 흐느낀다 // 꽃 피면 설레고 / 허공 달 바라보며 벅찬 황홀에 빠져 / 두근거린다 // 한여름 태양보다 빨리 끓어오르고 / 뜨거움 토해내지 못해 타들어가 / 막히고 답답하다 // 서설(瑞雪)이 내리면 / 빈 하늘 날아다니는 / 시인의 가슴 영원한 보헤미안.’이라고 그의 내면 풍경을 진솔하게 내 비치고 있다. 이는 그가 영원한 시인으로서의 각인(刻印)된 향방(向方)의 일단이기도 하거니와 시와 접맥(接脈)하는 모든 현실과의 화해 혹은 융화를 모색하는 시인들의 고뇌를 다시 새김질하고 있어서 동질(同質)의 연민(憐憫)을 느끼게 하고 있다. 무릇 시인은 깊이 잠재해 있는 시적 원류를 꾸준히 발굴해서 현실과 괴리(乖離)된 모순과 갈등을 해소하고 오로지 진실과 동행하는 숙명의 과제를 풀어나가는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김경경 시인의 첫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