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칼럼(20240331) 강춘근 목사(한국교회) <‘부활의 봄’을 노래합니다.>
새 생명이 열리는 길목에서 눈을 들어 주위를 바라보면, 주님은 부활의 약속이 성경책들 속에서만 쓰신 것이 아니라, 봄날의 잎사귀들에도 쓰고 계십니다. 앞마당과 동네 신작로, 산천을 둘러보면 천지가 조금씩 파릇파릇, 노릇노릇 발그스레해지고 있습니다. 봄은 겨울을 쓰라리게 보낸 사람들에게는 가장 뒤늦게 찾아오는 해빙의 계절이라지만 절망의 뿌리들이 소생해서 소망의 가지들을 자라게 하고, 소망의 가지들이 소생해서 희망의 꽃눈들을 틔우게 합니다. 봄은 겨울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슬픔을 통해 눈부신 희망을 알게 만들고 따뜻한 사랑을 알게 만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봄이 삶에 지친 사람들의 늘어진 어깨 위에 좁쌀가루 같은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햇빛 가득해도 마음 안에 햇빛이 쏱아져 내리고 가득하지 않으면 아직 봄은 주변에 머뭇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봄의 문턱에서 모든 생명들이 온몸으로 자기 만의 속깊은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산천과 섬들이 손짓하며 동내 앞마당과 신작로에서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 하면서 샘을 틔우며 우물쭈물 눈치만 보다 용기를 내어 봄의 턱을 가만히 넘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공포로 몰아 넣고 있었을 그때도 봄은 조용히 찾아왔습니다. 어느 듯 노란 유채꽃이 만발하고, 곳곳에서 개나리와 진달래, 매화와 산수유, 튤립과 벚꽃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봄의 향연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겨우내 말라 죽은 듯 아무런 생기조차 없던 가지 끝에서 아름다운 생명이 순을 튀우고 꽃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잎사귀조차 떨궈버린 채 죽은 듯 앙상한 가지들 속에 그 어떤 신비로운 조화가 그토록 아름답고 화려한 색깔들을 빚어내고, 상상할 수 없는 형형색색의 꽃잎들이 생명의 주님을 찬양할까요?
그 모진 추위 속에서도 겨울눈을 만들고, 꽃눈을 마련하여 채 늦추위도 가시기 전에 그 가냘픈 봄볕을 가지고 생명의 판타지를 연출해내고 있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는 산하는 가지각색의 온갖 봄의 꽃들로 화려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안에 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 봄이 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정하섭님과 윤봉선님의 그림책 <봄이다>에는 봄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나와 무관한 것도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을 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 자신이 봄이라고 선언할 때 그것이 봄입니다. 그러기에 봄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꽃을 피워야 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이며, 그렇게 오는 봄은 나의 봄이 아닙니다. 나의 봄은 내 안에 꽃을 피워 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 속에도 절기상으로 부활절이 찾아와 내게 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내 영혼에 봄날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봄도 봄되게 하는 이가 없다면 봄은 그저 계절의 순환일 뿐 희망의 계절일 수 없습니다. 주님의 부활도 저 옛날, 멀리서 일어난, 나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증언할 때 그것이 곧 봄입니다. 자연의 온갖 물상들은 낙엽 지는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죽음의 고통을 맞이합니다. 그 진통으로 봄에 새 생명을 부활시킵니다. 그 부활은 기쁨이요 생기를 돋우는 희망입니다. 산야의 생명들이 푸른 옷으로 바꾸어 입고 아름다운 꽃으로 치장하며 새들을 불러내고 함께 어울림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나는 봄이 좋습니다. 새 생명이 움트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 이름(春根)이라는 두 글자 속에는 봄이 가득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부활절 아침, 얼어붙었던 조선 땅에 신령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봄이 봄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생명과 평화, 기쁨과 자유 그리고 감사와 찬송을 노래합니다. 우리는 이 신령한 계절을 봄으로 밝게 색칠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창조적이고 긍정적 생각 속에, 우리의 삶의 자리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리가 해야할 바를 신실함과 성실함으로 희망과 용기를 새롭게 나누고자 하는 거룩한 사람들이 희망찬 봄을 열어가기를 바래봅니다. 동토의 땅에서 언 강이 녹아 흐르고, 푸른 하늘에서 새가 노래하며, 고목에서 새싹이 돋고, 산야엔 꽃들이 흐드러져 피어나는 이 봄, 새 생명이 꿈틀대는 새 봄을 바라봅니다. 따스해지는 봄볕 속에서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목청을 다듬어 온 누리에 희망을 노래하며 부활 생명의 꽃씨가 심기워지고 꽃이 피워지기를 기도해봅니다.
‘봄의 부활’과 함께 ‘부활의 봄’ 향연이 펼쳐지는 주변을 자세히 지켜보면 산천초목이 힘찬 물오름으로 새 생명이 고동치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며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다시 살아남’을 누리는 부활의 계절에 봄이 찾아왔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반드시 다시 산다’는 진리와 희망을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마치 봄의 외침이 살아있고 살아내고 살아가라는 생명선언 같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죽음의 기운이 넘치는 곳에 생명의 빛과 따뜻한 기운이 나누어지기를 바래봅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의 삶을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