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가 기록한 고종, 민비 그리고 조선 관료들의 부패 1부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발췌
윤치호는 대원군의 섭정 3년 째 되는 해, 1865년에 태어나 조선이 일제로 부터 해방이 되는 해, 1945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1883년부터 1943년 까지 장장 60년 세월 동안 일기를 기록하였다. 그는 갑신정변, 1894년의 농민봉기와 청일전쟁, 갑오경장, 민비시해, 아관파천 등을 시작으로 해서 일제 말기까지 현장에서 자기가 겪은 시대의 영욕과 부패상을 중앙의 관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교육가이자 종교인으로서 고스란히 쏟아 부었다. 그는 유교의 충효개념을 앞세우며 매관매직과 세금으로 백성들의 착취하며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들이 지배하는 조선 말기에 서구의 민주주의를 접한 지식인이자 크리스천 선각자였다.
기독교 선교와 궤를 같이하는 그의 삶의 경력은 화려하였으며 어디서나 표적이 되었다.
그는 1881년 신사유람단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가서 일본어와 영어를 배운 후, 1883년 초대 주한공사 푸트의 통역으로 귀국하였으나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통역직을 사임하고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는 상해 중서서원에서 영어를 배웠고 1887년 본넬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밴더빌트대학과 에모리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는 1895년에 귀국하여 조선정부의 내각참의, 학부협판, 학부협판 및 서리 학부대신, 외부협판으로 중임되었으나 1905년 을사조약을 반대하고 외부협판을 사임하였다.
그는 1896년 남감리회를 조직하였고 만민공동회 회장, 독립협회 부회장, 자강회 회장, YMCA 부회장, 신민회 회장 등으로 계몽과 조선 독립운동에 힘쓰다가 1911년 105사건의 주모자로 검거되었고 5년형을 언도받고 1915년 2월까지 복역하였다. 그 후에도 그는 YMCA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흥업구락부, 조선체육회 등의 일에 관여하였다.
그는 교육가로서 1906년에 개성에 한영서원을 설립한 이래로 평양 대성학교 교장, 연희전문 이사, 세브란스의전 이사, 송도교보 교장, 이화여전 이사, 연희전문학교 교장으로 자신의 삶을 투신하였다.
그는 고종과 민비 그리고 조선 정부 관료들에 대하여 감히 발설할 수 없는 말들을 일기장에 기록하였다. 그들에 대한 그의 평가와 비판이 오늘 우리가 보아도 예리하고 진보적이고 파격적이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망국으로 치닫는 급박한 역사를 지켜보는 그의 애국애민의 마음에 가득한 고뇌와 비애, 분노와 절망이 가슴을 친다.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곱씹는다.
아래는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에서 발췌한 글들이다.
조선 정부가 매관매직하고 인민을 돌보지 않고, 간신배 수중에 맡기고, 잔혹한 형벌, 중세(重稅)하는 현실에서 국세 회복은 꿈도 꾸지 마라.
1889년 5월 3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05쪽
오늘의 조선이 선택할 길은 다섯 가지다. 첫째, 평화적 자기 개혁이다. 둘째, 내부혁명이다. 최선이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 셋째, 현 상황의 지속이다. 그래서 조선 민족은 수치를 당하면서 서서히 죽어 간다. 넷째, 청국에 예속되는 것이다. 최악의 선택이다. 다섯째 영국이나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차라리 이 마지막 선택을 바라는 나는 자포자기적이다. 처음 두 가지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고, 그 다음 두 가지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1890년 5월 18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08쪽
김옥균이 말하기를 조선은 지옥보다 더 나쁜 곳이라고 한다. 지옥에서는 법에 따라 심판을 받지만 조선에서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고문하고 처형해 버리기 때문이다.
1893년 11월 8일,⌜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18쪽
조선 왕조는 지난 502년단 전제정치를 해 왔다. 이러한 조선의 역사는 조정 안에 있는 작은 당파들 간의 무자비한 증오, 음모, 그리고 보복 학살이라는 불명예스런 기록이라 할 수 있다.
1893년 12월 8일,⌜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19쪽
조선은 불교 왕조 통치 때 더 나은 나라였다. 조선을 지옥처럼 만든 것은 유교다. 유교가 죄를 짓도록 나쁜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가르침의 끝이 나쁠 것이라고 알았다면 유교의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한다.
1893년 12월 12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19쪽
지배자의 학정과 노예근성으로 길들여진 평화는 오랜 세월 동안 조선과 청국을 멍들게 하였다. 이런 평화는 비겁함, 반역 행위, 속임, 나약한 타락 - 실로, 조선을 지옥으로 만든 모든 악의 근원이다.
1894년 6월 20일,⌜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1쪽
평화는 평화가 만든다. 조선 사람들은 조선의 평온한 사태에 대해 기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단지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데 방해받지 않기를 바라는 조선 정부의 이기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894년 7월 16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1쪽
일본이 조선의 개혁을 강권하지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임금은 왕비에게, 왕비는 내시들에게, 내시와 궁녀들은 악귀들에게 조종당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1894년 7월 30일, 중국 중서서원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2쪽
300년 전 임진년에 일본이 침공했을 때, 서울을 싸우지도 않고 20일 만에 내줬다. 임금은 압록강까지 도망가서 50일 동안 명나라의 보호를 받았다. 지금 같은 체제로는 개화의 희망이 없어 보인다. 500년 동안 한 것이 없다. 왕조의 노예들이여, 모두 사라져라. 1894년 10월 8일, 중국 중서서원,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3쪽
유교와 전제주의가 윗돌과 아랫돌이 되어 그들을 사람답게 만드는 모든 기질을 그 맷돌 사이에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1894년 11월 1일 중국 중서서원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3쪽
이노우에 공사와 조선 대신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그들에게 부끄러움과 서글픈 마음을 가진 채 자리를 떴다. 부끄러움이란 임금과 정부가 실제로 일본 공사의 손 안에 있는 꼭두각시라는 사실이고, 서글픔이란 이런 위험에도 대신들이 국가를 위해 힘을 모을 수 없다는 것이다.
1895년 2월 14일, 서울⌜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4쪽
이노우에가 왕실을 손아귀에 넣은 방법은, 일본 정부가 조선에 300만 엔을 뀌어주고 청국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한 후에 이것을 미끼로 조정의 큰 환심을 샀기 때문이다. 1895년 9월 7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6쪽
민영환이 며칠 전 주미 조선 공사로 임명되었다. 민상호가 그의 비서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막강하게 전횡하는 민씨들이여! 1895년 10월 6일,⌜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7쪽
왕비가 시해 당했다. 외국인들은 일본인의 야만적인 해위에 분개하고 있다. 암살자들이 왕비를 잔혹하게 살해한 행위는 결코 용인할 수 없다.
1895년 10월 8일,⌜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7쪽
500년 동안 백성을 돌보지 않은 부패한 정부에 반감을 갖고 있는 조선 사람들은 일본이든 러시아든 나라를 통치하는 법을 아는 누군가에게 조선을 맡기는 것이 차라리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끝내는 일본이나 러시아에 나라를 넘겨주는 것이 정의롭고 공평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1895년 10월 29일,⌜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7쪽
왕비는 수백만 명의 백성을 굶주림과 추위에 떨게 한 반면, 오로지 소수 양반들만이 비단옷에 호의오식하며 죄를 짓게 했다. 그렇다면 소수만이 왕비의 죽음을 비탄해 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1895년 12월 11일,⌜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8쪽
메뚜기도 한철이다. 러시아가 득세하니 러시아어 통역관들이 횡포를 부린다. 블라디보스토크 거리에서 몰려온 건달들이 군주의 방으로 몰려들어 상감으로 하여금 온갖 무모한 일을 하게 하고 있다. 1896년 3월 30일, 학부협판,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29쪽
(전권대사 민영환이 러시아) 외부대신 로마노프에게 국서 5개 항을 전달했다. 그 내용은 ;
1) 조선 국왕을 보호할 호위병을 보내줄 것
2) (조선에) 군사 고문관을 보낼 줄 것
3) 궁내부, 탁지부, 광산, 철도, 고문관 각 1명씩 보내줄 것
4) 양국 간 전화연결과 통신 고문관을 보내줄 것
5) 300만 엔을 차관해 줄 것
1896년 6월 5일 모스크바,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30쪽
(러시아) 비테 재무대신이 말하기를, 자국이 국왕을 지킬 의지가 없는데 어떻게 다른 나라가 지켜 줄 수 있나?
1896년 6월 7일, 모스크바,⌜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30쪽
민(영환)공은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우리 상감님을 많이 닮았다. 내 종교 신념과 내가 받은 교육 이념은 앙갚음하지 말라는 것이다. 1896년 7월 5일, 상트페테르부르크,⌜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31쪽
상감이 외국 공관의 보호를 받는 것은 오직 상감 자신의 안전 때문이 아닐까? 치욕스런 일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황제로 내세우려고만 한다니!
1897년 5월 27일, 상해,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39쪽
현 왕조의 개국 505주년 기념식. 예정대로 독립협회 후원으로 독립협회 회관에서 행사가 개최되었다. 주목할 점은 큰 뱀인 이윤용과 그의 동생 이완용이 기념식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회관 밖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두 사람은 폭파 음모가 있다고 지레 두려워했을 것이다. 1897년 8월 13일, 서울,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41쪽
전하께서 조선의 연호를 건양에서 광무로 변경한다고 선포하셨다. 이런 일은 모두 눈속임이다!
1897년 8월 15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41쪽
지금 전하께서 전심전력하시는 계획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황제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 있는 소위 반역자(박영효)들을 처단하는 일이다.1897년 8월 29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41쪽
전하의 신임을 얻으려고 아부하며 일을 꾸미는 악당이 네 종류 있다.
첫 번째는, 소위 폭도들을 처단함으로써 죽은 민비의 원한을 풀 수 있다고 전하를 부추기는 자들이다. 두 번째, 전하를 황제로 만들겠다고 전하를 기만하는 자들이다. 세 번째, 전하를 위해 돈을 갈취하는 자들이다. 네 번째, 전하를 위해 온갖 건물을 건설하는데 돈을 낭비하는 자들이다.
1897년 9월 15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41쪽
오늘 조선의 왕인 전하께서 환구단에 왕림해서 제물을 바치고, 황제의 칭호를 갖겠다는 의지를 천신께 알렸다. “전 세계 역사상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황제의 칭호 의식이 있을까?” 1897녀 10월 11일,⌜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42쪽
이달 14일, 폐하는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으로 바꾼다는 칙령을 반포했다. 폐하는 백성들을 위해 많은 것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나는 그 약속을 한 마디도 믿지 않는다.
1897년 10월 16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42쪽
유교문화가 군림해서 백성들과 전문직과 (조선인의)투지를 꺾어 놨다. 1897년 11월 11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43쪽
배재학당의 토론회 1주년 기념행사에서 저재필 박사와 내가 연설하다. 서재필 박사의 연설은 여전히 훌륭하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군주나 아버지를 죽일 수 있다고 말한 부분은 지나쳤다.)1897년 11월 30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43쪽
서(재필)박사와 함께 독립협회에 갔다.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몹시 위태롭다. 백성들은 억압받고 있으나 폐하는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독립협회의 자격으로 왕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외국의 함대가 아니라 국내의 실정(失政)이라는 사실을 알려 드려야 한다.” 1898년 2월 13일, ⌜우순 소리 부록 윤치호 어록⌟,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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