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국가보훈처 국내 항일독립운동및 수호사적지 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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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떨어지고 날씨가 추워질수록 소집해제가 다가온것 을 느끼는 나날입니다.
달력에 O표를 그리면서 날짜 계산중인데 돌아오는 말년휴가는 기억에 남고 뜻 깊은 말년휴가를 보내고자 나홀로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순례를 6박 7일의 일정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퇴직금아 얼른들어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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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12일부터 여수수산학교 학생들은 자질이 부족한 교장 하야시의 퇴진을 요구하며 동맹휴교를 하였으며, 2년 뒤인 1925년 9월에도 동맹휴학을 전개하였다.
사건의 발단은 수시로 학생들을 때리며 욕설을 하는 일본인 교사 이타가 8월 22일 통영에서 실습하고 온 학생들에게 다시 실습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이에 2학년 학생들은 해당 교사의 비행을 열거하며 학교뿐만 아니라 군청 등에도 진정서를 제출하고 동맹휴교에 돌입한 것이다.
2학년 학생들이 먼저 동맹휴교를 하자 3학년 역시 도청에 진정서를 제출한 후 동맹휴교에 가담하였다.
결국 전라남도 당국은 학교에 내려와 조사에 착수하였는데, 퇴학처분을 두려워하는 학생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학교 당국으로 하여금 교사와 학생들의 화해를 주선하게 함으로써 동맹휴교를 풀었다.
1930년 11월에도 다시 전교생이 광주학생독립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동맹휴교에 참여하여 항일의식을 드높였다.
이 과정에서 비밀조직인 독서회가 발각되어 그 회원들이 경찰에 검거되었다.
여수공립수산학교 독서회는 1930년 졸업한 윤경현과 재학생 이용기 등 항일사상이 투철한 14명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였다.
1917년 5월 진남관 부속건물인 부청에 여수공립수산간이학교를 병설, 1921년 2년제 공립수산학교로 승격, 종포로 이전하였다.
1924년에 3년제로 승격하여 현재의 중앙초등학교로 이전하였고, 1944년 국동 195번지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러 전남대학교 여수 국동배움터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