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 간 김에 몇몇 유적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부산과는 거리도 멀고 갈 기회도 거의 없었다.
전날 숙소에서 우리가 갈 지역의 일기예보를 보니 온통 비였다.
곤란하다. 우리가 갈 곳이 대부분 산이라 비가 많이 온다면 갈 수 없는 곳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전체가 대부분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였다.
그러나 모두 예상했겠지만, 다음날 비는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우연일까?
김제 모악산 금산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금산사를 향해 300미터쯤 올라가
작은 개울에 걸쳐 있는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개울물이 맑아 다리 아래 피라미가 많을 것 같아 내려다보는데
풀숲에서 물뱀 한 마리가 머리를 바짝 들고 갑자기 튀어나왔다.
뱀도 내려다보는 우리를 보고 놀라 잠깐 멈춰 눈치를 살피더니 금세 제 갈 길을 갔다.
물뱀을 본지가 아마 50년은 되었던 것 같다.
아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5년 전에도 한번 본 적이 있었다.
5년 전에 나는, 인도 서부 라자스탄으로 가는 길에 아부산(Abu-mountion)에 들렀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인도의 세도나라고 할 정도로 성스러운 기운이 강했다.
그 작은 산에 사원이 무려 70군데나 된다.
아부산에서 가장 높은 중심 명당 자리에 유명한 자이나교 사원이 있다.
그 사원에 가기 전에 잠깐 땀을 식히기 위해
호수 옆 노점에서 파는 망고쥬스를 한잔 마시며
무심히 호수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멀리서 하얀 뱀 한 마리가 내쪽을 향해 헤엄쳐 왔다.
진짜 백사(白蛇)인가?
잡으면 어마어마하게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멀리 물속에서 또 한 마리의 뱀이 내 쪽을 향해 열심히 헤엄치며 다가왔다.
호수는 엄청 넓었다.
이번에는 붉은빛의 꽃뱀같이 보였다.
와. 저건 독사인데. 두 마리가 부부인가? 뭔가 먹이를 달라고 하는 것인가?
뱀 두 마리는 물 위에 둥둥 떠서 나를 한참 올려다봤다.
일행들도 하나 둘 몰려와 관심을 보이자 뱀 두 마리는 갑자기 물속으로 사라졌다.
뱀을 보고 난 뒤에 우리는 자이나교 사원으로 갔다.
그 사원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호수에서 봤던 그 두 마리의 뱀이 자이나교 신전에 있었다.
물론 진짜 뱀이 아닌 뱀의 조각이다.
사원 안쪽에 가장 중요한 신을 모신 자리 양쪽에 바닥에서 사람 몸을 향해 위로 구불구불 올라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아스칼레피오스의 지팡이.
즉, 쿤달리니의 상징이었다.
나는 뱀이 있는 그 앞에 서서 잠깐 명상을 했는데
내 머리 위의 검은 재 같은 것이 빛에 타서 허공으로 사라지는 분명한 영상을 보았다.
내가 본 뱀은 우연이었을까?
모악산 금산사는 미륵불이 유명하다.
1,300년 전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세운 미륵불은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내가 30년 전인 20대 무렵에 이곳에 처음 왔던 것 같다.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시절이라 키 큰 미륵불 외에는 아무 기억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이번에 차분히 살펴보니 대웅전이 산세의 기운과 전혀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고
놀랍게도 부처님 진신사리가 명당자리에 모셔져 있다.
그리고 그 자리 아래 기운의 맥이 흘러간 방향에 39척 높이의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이 있다.
용이 사는 연못을 메워 미륵전을 만들었는데 대형 시루를 걸고 숯으로 메웠다고 한다.
연못이라면 수맥이 있던 곳이니 흙으로 메운다고 수맥이 차단되지 않으니 숯이 당연하다 생각되나
시루를 걸었다는 이야기나 미륵불의 높이 등은
증산도를 비롯한 많은 미륵신앙 종교에서 나름의 해석을 붙이고 있다.
부처님 돌아가신 뒤 말법시대가 오면 미륵불이 온다고 했으니
코로나를 비롯해 변화가 많은 요즘 세상이
바로 미륵불이 올 시기지 않나 싶다.
인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절의 입구에서 뱀을 만난지라 금산사에서 특별한 인연을 만나기를 기대했는데 특별함이 없다.
내리쬐는 뙤약볕만 따갑고 대웅전에서는 행사를 하느라 소란스럽고
사람소리, 매미소리, 새소리 등이 섞여 소란하다.
주차장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그래도 귀한 불법을 전한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를 외면할 수 없어
높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 적멸보궁에 참배를 드렸다.
보통은 탁기 때문에 절에서 수련을 하지 않는데 어쩐지 그날은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니 역시 처음에는 가득한 탁기 때문에 힘들더니 조금 지나자 괜찮아졌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점점 좋아졌다.
하늘에서 놀랄만한 빛의 은총이 쏟아져 내려왔고 땅 속으로도 깊이 들어갔다.
대웅전에서 최근에 열반하신 송월주 스님 추모행사를 하고 있어 부산했는데 갑자기 모든 소리가 멈췄다.
순식간에 모든 공간이 정적 속으로 빨려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앉아 있는 동안 이상하게 아무도 그곳까지 올라오지 않았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새 소리 매미 소리도 멀리서 들렸다.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듯, 누군가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고 있는 듯.
그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우리는 20분 넘게 앉아 명당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절에서 내려온 우리는 절 앞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고 차를 한잔 하러 간 곳에서 큰 호랑나비 한 마리를 만났다.
그게 시작이었다.
대전에 있는 계룡산에 갔을 때도 수없이 많은 호랑나비를 만났다.
어떤 호랑나비는 박쥐만큼 컸다.
내 평생에 하루 동안 그렇게 많은 호랑나비를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호랑나비 개체수가 많아진 건가?
김일부 선생이 정역의 괘를 보고 완성하신 국사봉 아래 향적산방에 갔을 때도 수없이 많은 호랑나비를 만났다.
향적산방 오르는 이정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찾는데 애를 먹었다.
그런데 갈림길에서 이리갈까 저리갈까 고민할 때
항상 하얀 나비가 어디선가 나타나 우리가 갈 곳으로 날아갔다.
탄허스님이 창건하신 대전에 있는 자광사에 갔을 때
절을 지키는 스님 한분이 예고도 없이 오셔서 우리에게 따듯한 차를 주셨다.
스님이 오시지 않았으면 몰랐을 여러 정보들을 주시며
모두 자기 공부에 한 소식 듣기를 기원하셨다.
우리는 모두 우연히 만났다.
부산에서. 대구에서. 군산에서. 대전에서.
나는 37년 전에 요가를 배우러 갔다가 우연히 국선도를 만났다.
초가을 아침.
금산사 길목 다리 아래 지나가는 물뱀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갈림길에서 늘 옳은 길을 안내하는 나비를 만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13살의 어린 청산선사가 심부름 가는 길에 청운도인을 만나지 못했으면,
국선도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33살의 라히리 마하사야가 히말라야에서 바바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크리야요가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이 모두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것이다.
왜?
모두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세계에 우연이란 없다.
첫댓글 금산사에서 명상할때 쏱아져들어 오는 기운이 엄청났어요ㆍ선생님과 도반들이 함께하는 길엔 항상 신의 보호와 은총이 따라다니는것 같습니다ㆍ너무나 멋진 여행 동행하게 되서 행복했습니다ㆍ
신께서 다음에 이런 기회를 또 만들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뱀구경 하는중ᆢ
'신의 세계에 우연이란 없다'
모두가 준비되어 있었고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 숭고한 수련의 세계입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아름다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