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직원 투기 사건의 혐의자들의 연이은 자살을 했다. 법을 어긴 혐의를 받는 사람이 자수를 하지 않고 자살을 한다. 왜 그럴까? 자살할 용기는 있어도 자수할 용기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자수를 하면 지킬 수가 없지만 자살을 하면 지킬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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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또 다은 이유에서 자수 보다 자살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이 그런 이들이다. 그들은 자수를 할래야 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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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고발로서의 자살도 있다. 한국 근대사에 있었던 숫한 분신자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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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에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신앙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람들에 대하여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 이라고 하니까 대단한 사람들 같지만 다른 성서에는 “이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되지 못했다.” 혹은 이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살 가치가 없었다. “ 로 기록되어 있다.
모든 시대에 걸쳐 이런 사람들처럼 사는 것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만약에 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없고 모두들 목숨이 아까워 바들바들 떠는 사람들만 있었다면 세상은 지금 보다 훨씬 살벌한 곳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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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사는 것만이 최선은 아닌 것이다. 산다는 것은 아무리 아름답고 귀중한 것일지라도 죽을 만한 이유가 있을 때 죽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온 몸에 신나를 끼어 얹고서 살이 타 들어가는 고통 속에서 죽어가면서 노동자의 기본권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희망, 참된 민주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가지고 죽는 것은 인류가 깨우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십자가에 오른 예수의 마음과 다름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