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따라 계절 따라
완주 동상 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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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익은 감과 푸른 호수가 있는 평화로운 산골
‘ 고동시’라는 곶감은 최고 품질로 이름나
최병준 _경향신문 문화부 차장
빨갛게 익은 감과 푸른 호수. 가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전북 완주군 동상면이다. 동상은 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감마을이다. 늦가을이면 집집마다 땡감을 꿰어 곶감을 만들고, 들녘에는 주렁주렁 까치밥을 남겨둔다. 대형창고에 쇠파이프를 걸친 현대식 곶감 건조장도 있지만 아직도 나무로 만든 옛날 건조대가 많이 남아 있는 벽촌이다.
농약과 화학비료 쓰지 않는 산감
10월말부터 곶감 말리기기 시작된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들이 두 세 명씩 평상에 앉아 갈고리 같이 휘어진 칼로 솜씨 좋게 후딱후딱 감을 깎고, 감꼭지를 능숙하게 줄에 끼워 처마에 걸어놓는다. 서늘한 산바람에 달포쯤 말리면 당분이 하얗게 배어나오는 먹음직한 곶감이 된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곶감은 귀했다. 추석 즈음 말리면 설 명절에나 맛볼 수 있었다. 그만큼 고급이었다. 동상마을에서는 찬 이슬이 맺혀 감이 물렁해지는 한로(寒露) 무렵까지 감을 따낸 뒤, 무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지나면서 곶감을 말리기 시작한다.
동상마을 곶감도 유명하다. 동상 곶감의 명성은 경북 청도와 비교된다. 청도곶감이나 동상곶감은 씨가 없는 게 특징이다. 청도는 이 곶감을 반시라고 하고, 동상은 고동시라고 부른다.
노인들은 고동시외에 ‘골동시’라고 부르기도 했다. 유래는 이렇다. 원래 이름은 고종시였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부터 임금님께 진상해왔는데 고종 임금이 먹고 탄복했다고 해서 고종시란 이름이 붙었단다. 이 이름이 나중에는 고동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동상면 200가구가 대부분 곶감 농사를 짓는다. 연간 생산량은 1000동 안팎이나 된다. 1동은 100접, 1접은 100개. 영동이나 청도 등에 비해 생산량은 적지만 곶감의 품질은 최고 수준이다.
정작 마을에서는 감나무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동상곶감은 산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 키우기 때문이다. 감나무는 수령이 보통 50년 이상씩 된다. 일반 감과 달리 씨가 없는 고동시는 꼭지 끝이 ‘V’자 형태로 갈라져 있다. 대부분은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도 쓰지 않고 자란 산감이어서 덜 달지는 모르지만 부드럽다. 씨가 없으니 먹기는 편하지만 건조 과정에서 크기는 많이 줄어든다고 한다. 작아도 값은 제법 비싸다.
온 산을 헤집고 다녀야 하니 인건비가 많이 들고 수확량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말이나 설날 선물용으로 수십 접 씩 사가는 단골이 많아 쉽게 동이 난다. 백화점 같은 곳에 납품할 필요조차 없다고 한다.
군락을 이룬 감나무 밭이나 숲은 없지만 마을의 들판이나 앞뒤뜰에는 이파리를 모두 떨구고 까치밥만 매달린 감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매운 서릿발에 익을 대로 익어 발그레한 홍시. 추수를 끝낸 노란 들녘이나 굽이진 검은 고샅길과 멋진 대조를 이룬다.
동상마을의 풍경은 평화스럽다. 감나무 아래서 배를 깔고 툭툭 떨어지는 홍시를 핥는 늙은 황구의 모습도 정겹다. 처마에 매달린 곶감을 지키는지 낯선 여행객이 나타나면 컹컹 짖어대지만 여린 가을볕 만큼이나 힘이 없어 보인다.
동상 감마을의 이런 풍경은 고향을 연상시킨다. 감나무와 고향이란 단어는 희한하게 어울린다. 특히 감나무는 주로 충청 이남지역에서 자라서 서울서는 보기 힘들다. 남도출신들은 그래서 감나무를 보면 왠지 반갑게 느껴진다. 나무가지에 그물망을 단 잠자리채로 감을 따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농촌이 기계화돼서 이앙기로 벼를 심고, 콤바인으로 추수를 하지만 아직도 감농사는 이렇게 원시적인 방법으로 한다.
게다가 동상면 감마을에는 아직 때묻지 않은 우리네 옛 산골마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면사무소 앞에도 식당도 많지 않고 그 흔한 다방도 별로 없다. 여관은 한참 떨어져 있다.
운장산(1,129m), 운암산(597m), 위봉산(524m)으로 둘러싸인 벽촌이라서 그렇다. 고개 너머가 바로 진안에서도 가장 깊은 골짜기인 운일암 반일암 계곡이다. 지도상으로는 마을이 해발 200m 정도에 위치해 있지만 막상 들어가보면 해발 500〜600m쯤은 되는 것으로 느껴지는 산골이다.
호반풍경은 또다른 볼거리
동상 감마을의 또다른 볼거리는 아름다운 호반풍경이다. 겹겹이 싸여 있는 산줄기 사이로 마을을 끼고 동상호와 대아호가 누워 있다. 동상저수지의 만수 면적은 1㎢, 대아저수지는 2.4㎢로 제법 큰 저수지다. 제각각 다른 저수지이지만 물줄기가 이어져 사실은 1개의 저수지나 다름없다. 대아저수지는 1920년대 만들어졌는데 지난 1990년 다시 제방 증축공사를 했다. 포천의 산정호수처럼 산중턱에 걸쳐 있다. 저수지를 끼고 뚫려 있는 호반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좋다. 호수길 끝머리에 전망대가 있어 굽이진 호수의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다.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탓에 일교차가 심해 새벽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낮게 깔린 안개가 잎을 모두 떨궈버린 수초 사이로 퍼지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때마침 햇살이라도 비치면 안개도 홍시처럼 붉어진다.
산마을이라 새벽이면 하얀 서리가 내리지만 막상 마주치는 풍광은 차갑지 않다. 푸른 가을 하늘에 매달린 까치밥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훈훈해진다.
찾아가는 길
교통/호남고속도로 익산IC〜799번 지방도(또는 741번 지방도)〜국도 17호선〜722번 지방도〜동상면 길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 완주 화산읍내의 붕어찜이 유명하다. 동상면을 빠져나와 국도 17호선을 타고 가다 화산면으로 빠지면 붕어찜집들이 많다. 대아리에는 전라북도가 운영하는 대아수목원이 있다. 참나무, 층층나무 등 280여종의 수목이 자라나는 천연림으로 산책로가 잘 단장돼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대아저수지와 주변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개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주변에 대아수목원(063-243-1951)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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