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수스 여행6 - 타르수스 거리 구경하고 바울교회에서 웨딩 촬영중인 신부를 보다!
5월 22일 터키 동남부 가지안텝 에서 버스를 타고 아다나를 거쳐 타르수스 Tarsus 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는 밖으로 나와 성 바울의 집터 Antik Sehir 와
우물 St Paul Kuyusu. 을 보고는 성 바울 광장을 지나 동상 들이 늘어선 거리를 봅니다.
그러고는 나무가 우거진 거리를 걸어서 드디어 오스만 투르크의 장군 기마상을 지나
허물어지다만 오래된 돌로된 성문 "클레오파트라의 문" Kleopatra Kapısı
(Cleopatra’s Gate) 을 보고는 말린 과일이며 사탕등을 파는 거리를 구경합니다.
타르수스 TARSUS 는 로마 제국의 속주로 예전에는 지중해에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항구도시로 BC 38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가 처음 만난 곳인데 현재는 홍수로 토사
가 유입되면서 항구 기능을 상실한 아다나 서쪽 인구 23만의 내륙 도시입니다.
BC 66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점령된 후 안토니우스 에 의해 “자유와 자치”가
주어졌으며 유대인 "사도 바울의 고향" 인지라 한글 성서에는
“다소”로 나오는데 AD 72년부터 로마 속주 킬리키아 왕국의 수도로서 번영했다고 합니다.
타르수스 는 고대 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하나인 헤티트 문명의 영향하에...
BC 3천년에 건설된 항구 도시로 문화와 학문의 발달로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했다고 하는데 15세기부터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가 되면서 쇠퇴했다고 합니다.
디오게네스의 후계자인 아르케데무스와 기원전 2세기 스토아 철학의 수장 안티파터를
등을 배출하였으며 한때 스토아 철학자인 키케로가 총독 으로 있기도
하였다는데 바울의 고향인 탓에 “타르수스의 바오로” 라는 신학 입문서 책이 있답니다!
기원전 333년 초봄, 알렉산드로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유명한 고르디움을
출발해 카파도키아를 평정한 다음 아나톨리아를 정복하고는
남하해 페르시아 해군의 본거지 킬리키아 연안 지대로의 진군을 서둘렀습니다.
적의 공격 없이 알렉산드로스는 무사히 킬리키아 수도 타르수스 에 도착했으나 페르시아의
수비대는 이미 도시에서 도망친 상태였는데 이 도시 타르수스의 무더위 를
견디지 못한 알렉산드로스는 그만 알몸으로 큐도노스 강으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이 강은 물이 차기로 유명했는데 몸이 식은 알렉산드로스는 바로 이 지방
풍토병인“킬리키아 열병”에 걸렸는데 여름이 지나자
열병은 회복되었지만 이때가 마케도니아군으로서는 최대의 위기였으니....
페르시아 제국에서 이윽고 다리우스 3세 가 출전해 알렉산드로스와 싸우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진격해 왔으므로 그해 10월, 건강을 회복한 알렉산드로스는
시리아를 향해 출발했지만 일부 병사들은 저 병에서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오래전 비잔틴 시대에 건축된 "성 바울 기념교회" 에 도착해
구경하는데 마침 신혼 부부가 웨딩 촬영을 하는 중이라....
인적이 드문 호젓한 엣날 교회에서 우리는 서로가 구경거리(?) 가 됩니다!
동로마 비잔틴시대에 지어진 교회를 보면서 한편 생각하노라니 이 도시
타르수스 는 1차 십자군 전쟁 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 옛일이 떠오릅니다.
1,096년 제1차 십자군에 참가한 프랑스 볼로뉴의 보두앵 은 영지가 없이 형에게 더부살이를
하던 처지라 "자신의 영지를 개척하려는 흑심" 을 품고 가족까지 데리고
1차 십자군에 가담했는데 십자군은 니케아를 함락하고 아나톨리아 내륙으로 들어섭니다.
셀주크 술탄 클르츠 아르슬란 은 수도 니케아에서 후퇴해 도랄라이온에서 십자군을
습격했으나 패한후 초토화 작전을 수행해 우물 하나, 곡식 한톨 남기기를
거부했으니... 십자군은 병사와 말들이 기아와 갈증으로 인해 고통받다가 죽어갑니다.
고통스런 행군은 6주간이나 이어진후 콘야를 거쳐 동남쪽 아르메니아인 들의 영토를 통해
안티오키아를 거쳐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으로 진군하려 했으나 보두앵 은 실리시안
관문을 통과하자 바로 2500명의 별동대를 이끌고는 본대를 이탈해 토로스 산맥 을 넘습니다.
또 노르만인 탕크레드 도 자기 영지가 없는지라 300명 정도의 병력을 이끌로 토로스 산맥을
넘어서 타르수스 Tarsus 에 도착했으나 성공하지 못하던차에 보두앵이 더 많은 군대를
가지고 도착함으로써 함께 도시를 함락했지만 도시 점령후 보두앵은 탕크레드를 쫓아냅니다.
보두앵은 도시를 차지하려는 욕심에 또다른 십자군을 성안으로 들이는 것을 거부 했다가
적의 기습을 받아 전멸되자 악화된 여론에 도시를 포기하는데 이후 탕크레드가 점령한
성에서 결국 두 군대는 충돌해 전투를 치르니 이 도시 타르수스를 놓고 벌어진 일 들이지요?
그리고 터키 동남부에 산르 우르파 Sanliurfa 도시는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에뎃사 라고 명명한후 로마와 페르시아 및 아랍이 쟁투를 벌였으니 11세기 말 기독교
군주 토로스 가 다스리는데 동쪽 모술에서 카부카의 아랍 군대가 진공을 준비하는 중이라!
안티오키아를 공략하던중 보두앵 은 에뎃사의 태수 기독교도인 토로스의 구원요청 을 받고
다시 본대를 이탈해 에뎃사에 도착해 토로스의 양아들이 된후 한달만에 양부를 죽이고
기독교 에뎃사 백국령 을 세웠으며 후일 예루살렘왕국 2대 왕 이 되니 집념의 사나이지요?
여기 타르수스 에 수도를 둔 킬리키아 아르메니아국의 레본 2세 는 1187년에 작위를 계승해
코냐, 알레포, 다마스쿠스의 지배자들과 싸웠으며 이집트의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패배시키면서 3차 십자군 이 시작되자 교황 클레멘스 3세로 부터 지원 요청을 받게됩니다.
1199년 아르메니아인들의 성탄절인 1월 6일에 킬리키아공 레본 2세는 타르수스 대성당 에서
시리아의 야코부스파 대주교와 타르수스의 그리스 교회 수석 대주교 등 수많은
고위 성직자들과 장군들 앞에서 엄숙한 의식을 거쳐 왕위에 올라 레본1세 라 칭합니다.
기독교 킬리키아 총대주교 아비랏에게 왕관을 받았으며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6세의
이름으로 마인츠 대주교 콘라트에게서 사자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받은후
십자군국가 안티오키아와 동맹국 으로 귀족들과 통혼하는데 이 교회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르메니아 왕국의 대관식 장면을 회상하고는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성 바울 기념교회 를
나와 숙소로 돌아오는데 호텔 엘리프 하툰 코냐지 Elif Hatun Konige 는
옛 고풍스러운 주택을 호텔로 개조했으니 건물 내부는 가히 앤티크 그 자체입니다.
이 오래된 옛 주택은 상당한 지위의 관리이거나 재력가가 살았던 모양인데 오래된
나무 계단에다가 문고리 하나에도 청동과 황동 구리 로 되고 가구들도
고풍스러운데 특히나 창문에 여러겹 붉은 커텐은 장중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가구며 커텐과 장식품들이 아주 오래된 것 같지는 않으니
얼마전에 내부와 가구는 리모델링 했나 싶습니다만....
그러고는 마당으로 내려가 레스토랑 으로 사용하는 탁자며 파라솔에 인테리어를 구경하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니 축구경기 며 사막을 횡단하는 아랍인 들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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