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시조 창작강의( 객관적 상관물 외)
1. 객관적 상관물
2. 감정 처리
3. 시간
4. 공간
5. 코드화, 탈코드화
1. 객관적 상관물
객관적 상관물은 특정한 정서의 공식이 될 그리고 그와 똑같은 감정을 독자에게 불러일으킬 일단의 사물들, 하나의 상황, 일련의 사건들을 가리킨다. 예술의 형식으로 개인의 정서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개인 감정의 예술적 객관화를 의미한다.
텍스트는 어떤 개인의 감정이라도 혼자만 향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향유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객관적 상관물은 이에 상응할만한 훌륭한 창작 방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객관적 상관물은 자신의 감정을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어떤 사물에 이입시켜 누구한테도 같은 감정을 환기 시킬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우에 고이 서리다.
- 김광균의「설야(雪夜」
‘밤에 내리는 눈’을 ‘머언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로 표현했다. ‘머언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인간의 생활 경험을 하늘에서 내리는 사물 ‘밤에 내리는 눈’으로 객관화시켰다. 원개념 ‘밤에 내리는 눈’을 매개념 ‘옷 벗는 소리’로 상응시킨 것이다. 이 때 ‘옷 벗는 소리’는 ‘밤에 내리는 눈’의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원개념 매개념 객관화 밤에 내리는 눈 ↔ 여인의 옷 벗는 소리 ⇒ 의미 도출
‘눈’을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 ‘서글픈 옛자취’,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 등으로 표현한 것도 ‘설야’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이 때 두 사물 간에는 긴장이 일어난다.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독자들은 두 사물 간의 공통된 의미를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의미가 사람들의 정서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노숙에 길들여진 저 자유의 빈 손짓
사는 일 짐이 된다며 소식 조차 끊고 사는
누이의 모진 가슴에도 된바람이 치겠구나
양지에 손을 내미는 민들레 속잎에서
때로는 봄소식을 앞질러 듣지마는
밤새워 울던 문풍지 저 떨리는 매화가지
-홍진기의 「저 매화」전문
‘누이의 모진 가슴’의 객관적 상관물은 ‘밤새워 울던 문풍지’ 혹은 ‘떨리는 매화’이다. ‘문풍지에 비치는 매화 가지’를 ‘누이의 모진 가슴’으로 표현한 것이다. ‘매화 가지가 바람에 떨리는 것’과 ‘밤새워 울던 문풍지’는 같은 이미지이다. 된바람 때문에 매화 가지가 떨리고 문풍지가 밤새워 우는 것이다. 그것을 누이의 가슴에 치는 된바람으로 표현한 것이다.
산빛은 수심을 재지 않고 강물에 내려앉는다
강물은 천년을 흘러도 산빛을 지우지 못한다
일테면 널 잊는 일이 그럴까, 지워지지 않는다
-김현의 「산빛」전문
여기에서 화자는 ‘나’ 즉 객관적 상관물인 ‘강물’이다. 청자는 ‘너’ 즉 객관적 상관물인 ‘산빛’이다. 산빛은 강물에 내려앉지만 강물은 산빛을 지우지 못한다고 했다. 강물과 산빛을 나와 너로 매치시켰다. ‘영원히 잊을 수 없다는 그리운 마음’으로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원래의 사물 ‘나’, ‘너’로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할 수 없다. 때문에 새로운 사물 ‘강물’, ‘산빛’ 같은 것들을 찾아내야하는데 이것이 객관적 상관물이다. 그래야만 정서를 새롭게 환기시킬 수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
나이는 스무살 키는 중키
아직 태어난 그대로의
분홍빛 무릎과 사슴의 눈
둥근 가슴 한 아름 진달래빛 사랑
해 한 소쿠리 머리에 이고
어느 날 말 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삼십 년 안개 속에 묘연
누구 보신 적 없습니까
이런 철부지 어쩌면 지금쯤 빈 소쿠리에
백발과 회한이고 낯설은 거리 어스름 장터께를
해마다 지쳐 잠들었을지라도
연락바랍니다 다음 주소로
사서함 추억국 미아보호소
현상금은 남은 생애 전부를 걸겠습니다.
-홍윤숙의 「사람을 찾습니다」 전문
잃어버린 과거의 젊음을 찾는다는 시이다.
객관적 상관물은 분홍빛 무릎, 사슴의 눈, 진달래빛 사랑, 해, 안개, 백발, 회한, 추억국 미아보호소, 남은 생애 등등이다. 분홍빛 무릎은 젊었을 적의 무릎이다. 사슴의 눈, 진달래빛 사랑도 젊었을 적의 눈과 사랑이다. 해와 안개는 지난 세월을, 백발과 회한은 지금 늙은 자신의 실체를 가리킨다. 추억 국 미아보호소는 당시의 젊었을 적의 미아보호소이며 남은 생애는 실현될 수 없는 천문학적인 현상금을 말한다.
객관적 상관물이 제시가 되었어도 원개념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시들은 대개가 상징으로 되어 있어 무슨 뜻인지 선뜻 규정지우기가 쉽지 않다. 제시된 사물 즉 객관적 상관물 하나로 의미를 천착해야하기 때문에 텍스트의 전문에서 많은 사유와 사색을 해야 한다.
문득 개화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멎는 순간
사람과 꽃송이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지나갔다
아, 지금 내 생의 정점에 자오선이 지나고 있다
-고정국의 「정오의 시」전문
사이렌이 멎는 순간이 개화 시간이다. 사람과 꽃송이는 무엇의 상관물이고 그림자, 자오선은 또 무엇의 상관물인지 알 수가 없다. 인간과 우주, 시간의 흐름과 정지, 자연과 인간, 음과 양, 사물들의 생성, 변화 등 여러 의미들을 생각하게 하는 시조이다. 이런 시들은 의미의 폭이 넓고 깊이가 있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물렁해 지기 위해 감들은 익고 있나
감밭에 언듯 실린 가을을 다는 가지.
특유한 저 손저울들 출렁이며 눈금 잰다
왁자턴 여름 벌레 무엇 그리 울다 갔나.
바위는 모래톱 쪽 실금내며 가고 있네.
오늘은, 사진으로 미리 찍힌 서호(西湖)도 질 잎새다.
-서벌의 「붓 먼저 감잎처럼 물이 들어」 전문
‘손저울, 바위, 서호’들은 객관적 상관물로 만추의 스케치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상징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상관물들은 의미를 천착해내기가 어렵다. 천착하지 못하는 ‘손저울의 눈금’과 ‘서호의 잎새’ 등에서 독자들은 깊은 감동과 감상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2. 감정 처리
감정과 정서는 사전에서는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물 현상에 반응하는 마음으로 기쁨․ 슬픔․ 두려움․ 노여움 등의 주관적인 의식 현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같은 지각 현상이면서 감정과 정서는 서로 다르다. 감정은 질서화되지 못한 생 다지 반응인 반면 정서는 질서화된 미적 반응이다. 감정 그대로는 문학이나 예술의 요소로 쓸 수 없다. 감정은 일정한 순화 과정을 거쳐야 정서가 될 수 있으며 이 순화된 미적 정서가 문학으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삼천리 그 몇 천리를 세월 그 몇 굽이를 돌아
갈고 서린 한을 풀어 가을 하늘을 돌고 있네
수수한 울음 하나로 한평생을 돌고 있네
-박영교의 「징 1」전문
징은 몇 천리를 돌아 세월 몇 굽이를 돌아 한을 풀어낸다고 했다. 그 풀어낸 한이 가을 하늘을 돌고 수수한 울음 하나로 또한 한평생을 돌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멀리 울려 퍼지는 징소리를 들으면 저 징처럼 울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렵게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징소리에도 눈물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주관적인 감정을 그대로 쓸 수는 없다. 울음을 객관화시켜야한다. 그래야 한이 되어 삼천리를 돌고 또 세월 몇 굽이를 돌고 한 평생을 도는 것이다.
주관적 감정인 생다지 울음이 정제 과정과 미적 경로를 거쳐 징이라는 객관적 정서인 사물로 대체가 되었다.
정제, 미적 경로
울음(주관정 감정) → 징(객관적 정서)
감정 처리를 위해서는 특수한 심리적 정제 과정이 필요하다. 대상을 실제적인 감정으로부터 객관화시켜 순화․ 정화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문학의 요소로 쓰려면 이러한 미적 경로를 거쳐야 한다.
감정이 미적 정서로 다듬어지는 특수한 심리적 정제 과정을 미학자들은 미적 경로(aesthetic process)라 불렀다.
미적 경로에는 대개 두 가지의 심리적인 특색이 있다. 하나는 실감의 유리요, 하나는 실감의 보수이다.
굴뚝이 제 속을 까맣게 태우면서
누군가의 따스한 저녁을 마련할 때
길 건너 어둠을 받는 밀보리빛 우산 하나
먹물에 목이 잠긴 수척한 강을 지나
내 꿈의 어지러운 십자로를 한참 돌아
사랑이 다리 절며 오는굽은 길목 어귀에
-문희숙의 「외등」전문
외등은 굽은 길목에서 홀로 밤길을 밝혀준다. 이 외등을 어둠을 받는 밀보랏빛 우산으로 처리했다. 흔히 사람들은 ‘굽은 길목에서 외등 하나가 밤길을 밝혀주고 있었다’라고 표현한다. 시인은 이를 굳이 우산으로 어둠을 받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처리했다. 외등을 우산으로 은유하여 어둠을 비를 받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그냥 굽은 길목이 아니라 수척한 강을 지나 어지러운 십자로를 한참 돌아온, 사랑이 절며 오는 굽은 길목 어귀이다. 거기에서 비처럼 어둠을 우산으로 받으며 외등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현장 같은 길목을 제시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화자는 위와 비슷한 체험이 있었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을 겪으면서 외등처럼 골목에서 누군가를 늦도록 기다렸을 것이다. 당시의 감정은 혼란, 흥분, 고독, 처연함 같은 그러한 것들임을 예상할 수 있다. 당시 외등 같은 소재는 화자에게 있어서는 위안이 될 수 있고 깊은 고독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러한 감정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의 감정들로부터 유리되게 마련이다. 여기에 수정과 보수라는 미적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위 시는 실감의 유리와 보수를 거친, 당시의 사건을 객관화시킨 텍스트이다. 그래야 새로운 정서로 환기 되면서 당시의 감정을 실감나게 그려낼 수 있다.
사건 → 심감의 유리, 보수 → 택스트
3) 감정 처리 과정의 예
송강이 기생 진옥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부른 시조이다.
옥이 옥이라 커늘 번옥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살 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번옥(燔玉)은 돌가루로 구어 만든 가짜 옥이다. 진옥(眞玉)은 진짜 옥이다. 기녀 진옥을 바라보니 가짜 옥이 아니라 진짜 옥이었다. 진옥은 참옥을 뜻하면서 기녀 진옥을 가리키는 것이다. ‘살송곳’은 ‘살(肉)송곳’으로 남자의 거시기를 은유하고 있다. 그것으로 뚫어본다고 하였다.
철이 철이라 커늘 섭철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다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진옥의 정철에 대한 화답시조이다.
섭철(鍱鐵)은 순수하지 못한 쇠붙이가 섞인 가짜 철이다. 번옥에 대한 대구이다. 정철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진짜 철이다. 진옥에 대한 대구이다. 정철은 진짜 철이면서 송강 정철을 가리키고 있다. ‘골풀무’는 불을 피우는데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이다. 남자의 그것을 녹여내는 여자의 거시기를 은유하고 있다. 살송곳에 대한 대구이다.
상대방의 이름으로 대구를 만들어 남자와 여자의 그것을 속되지 않게 표현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않고 살송곳, 풀무 같은 은근한 사물로 처리했다. 송곳은 철이기 때문에 풀무로만이 철을 녹일 수가 있다. 그것을 잡되지 않고 멋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유리,보수(미적 경로)
정철(이름) → 정철(진짜 철)
진옥(이름) → 진옥(진짜 옥)
남자의 그것 → 살송곳
여자의 그것 → 풀무
박태기나무에서는 풋사과 향이 나요
풋사과 향 목소리로 작은 새가 울어요
나무의 가슴팍에서 날아가지 않아요
-김일연의 「첫사랑」
‘향이 나요’,‘새가 울어요’,‘날아가지 않아요’ 등도 감정의 유리와 보수를 거친 좋은 예이다. 이것이 ‘풋사과 향’, ‘향 목소리’, ‘가슴팍에서’ 등과 연결되면서 당시의 첫사랑이라는 설레는 가슴을 사람들로 하여금 그대로 느끼게 해주고 있다.
시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써서는 안된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말아야한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신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글자 한 자 한 자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 정제된 언어는 여백이다. 그래야 독자들이 거기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여백은 시의 생명이다. 감정 처리에 이유가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3. 시간
베르자예프는 시간을 우주적 시간, 역사적 시간, 실존적 시간으로 나누어 문학 연구의 한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우주적 시간은 원으로 표현되는 순환하는 시간이다. 밤과 낮의 반복이라든가 계절의 바뀜, 출생․성장․죽음 등과 같은 인간과 자연 간의 순환적인 시간을 특성으로 하고 있다.
밤에도 대낮이 허옇게 걸려있다
누구냐, 내 숨을 곳 샅샅이 허물은 자는
천지는 거울을 대며 전 생애를 끄집어 내고 있다
-김원각의 「양심」전문
전생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삶의 이전은 전생이요 죽음 이후는 후생이다. 전생이 있으면 후생도 있게 마련이다. 전생과 현생과 후생을 순환적인 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아무리 숨으려고 해도 숨을 수가 없고 전생과 현생, 후생이 반복되고 있으니 양심대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적인 시조이다. 순환적인 시간을 끌여들여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주적 시간
역사적 시간은 수평선으로 표현되는 무한 직선의 지속 시간이다. 세속적 시간이다.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는 양식의 시간이다.
섬돌에 묻어 둔 불씨 빠지직 불 지피다
언 가슴 녹인 불꽃으로 피어난 맨드라미꽃
오지랖 데인 흔적을 주홍글씨 새기며.
몇 번을 까무라쳐도 끊어오르는 더운 피
내림굿 손대 잡고 날고 싶은 나비의 꿈은
선무당 신들린 춤사위 바라춤을 추느니
귀뚜리 밤을 울어 풀잎도 잠 못든 새벽
혼을 실은 낮달은 빈 하늘에 떠돌고
아 여기 불타는 집 한 채 지상에 머물고 있다
- 김정희의 「맨드라미,불지피다」
위 시간은 맨드라미가 봉오리에서부터 피어난 후 얼마간의 시간이다. 그리고 3연에서는 집중적으로 밤에서 그 이튼날 새벽, 낮시간까지 묘사되어 있다. 1연은 맨드라미가 피기까지의 시간을, 2연은 맨드라미가 피고 얼마간 경과된 시간을, 3연은 밤에서 그 이튿날 오후까지의 시간을 나타내고 있다. 이 텍스트에서의 시간은 직선으로 지속하는 시간이지 순환하는 시간이 아니다.
역사적 시간
실존적 시간은 수직으로 표현된는 개인적인 시간이다. 이 시간은 수직선으로 상징되는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세속적인 시간이 아닌 시간이 무화된 성스러운 시간, 해탈, 초월의 시간을 말한다.
벌판 끝 천둥 밟던 맨발이 저랬을가
빈 골짝 핥고 가던 회초리가 저랬을가
접질린 뉘 사랑만 같아라 내처 닫는 저 서슬!
-진복희 「소나기」전문
텍스트는 소나기를 천둥을 밟던 맨발, 빈 골짝 핥고 가던 회오리, 접질린 사랑, 내친김에 내닫는 서슬 등으로 표현했다. 소나기 시간이 무화 되어 있어 시간을 초월한 제의적인 시간에 가깝다. 시적 자아는 객관적 상관물인 소나기로 세속을 넘어 초월적인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는 거의 단절된 정지된 시간이기도 하다. 소나기가 끝나면 대지의 모든 것들은 다시 조용한 세속의 시간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실존적 시간
약속을 할 때 시간과 장소를 묻는다. 어떤 메시지도 시간과 공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하나의 메시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단어 자체 하나만으로는 메시지를 담지할 수는 없다. 메시지가 되지 못하면 그 단어는 영원히 침묵하는 언어가 된다. 언어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져야 비로소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꽃’이라고 하면 도대체 그 꽃이 어떤 꽃인지 언제 피는 꽃인지 어디에서 피는 꽃인지 알 수가 없다. 아침이라는 시간이 개재되면 ‘아침에 피는 꽃’이 된다. 그러면 독자들은 나팔꽃, 박꽃, 호박꽃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정보성은 높아진다. 죽었다가 살아있는 꽃이 된다. 여기에 구체적인 공간이 주어지면 밀도는 더욱 높아진다. ‘이른 아침 마당 울타리에 핀 나팔 모양의 꽃’ 하면 바로 그 꽃이 나팔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과 공간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여기에 약간의 수식만 가해주면 메시지의 내용은 더욱 선명해진다. 시간이나 공간이 메시지의 의미 획득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가슴 풀린 대지 위로 벚꽃이 톡톡 튄다
맑은 날 킥킥대는 꼬마 새싹 재롱 보며
뾰족한 연필 끝으로 세상 모서릴 찔러본다
사춘기 나뭇가지 여드름이 송송 돋고
뻐꾸기 음성에도 변성기 소리가 난다
화냥끼 대지는 지금 신열을 앓고 또 앓고
선생님 호명 따라 차례 차례 앉은 3월
산수유, 개나리꽃, 백목련, 진달래꽃
길길이 때때옷 입고 입학식이 한창이다
-이영필의 「3월에」전문
위 텍스트는 3월이라는 시간에 일어나는 자연의 현상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시간이라는 백지 위에 여러풍경들을 안치시켜 놓고 있다. 시간이 없으면 텍스트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다. 시간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3월의 시간 안에 꼬마 새싹 재롱도 보고 사춘기의 나뭇가지 여드름도 보고 학생들의 입학식도 본다. 이 시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시간이 텍스트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학에서 시간의 두 단계, 서술과 허구의 시간이 있다. 지속으로서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의 양과 텍스트의 양을 비교하여 생략, 대화, 요약, 분석, 묘사, 인쇄 공란 등 이야기 속도의 형태로 나타난다.
간단한 한 두 줄로 몇 십년을 생략할 수도 요약할 수도 있다. 묘사할 수도 있고 인쇄 공란으로 남겨둘 수도 있다. 이야기의 속도가 평형을 유지하느냐, 빠르냐, 완만하냐 등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어쩌면 닿을 법한 멀고 먼 소식 하나
기다린 긴긴 날들 이끼 돋아 푸르도록
날마다 나 여기 와서 강물처럼 울고 있다
열릴 듯 열리쟎는 트일듯 트이쟎는
쇠사슬 녹슨 사슬 절로 삭아 끊어지렴
사무친 말씀 하나로 흘러가는 물이어라
-김춘랑의 「임진강 쑤꾹새․2」전문
위 텍스트는 반백년의 역사의 이야기를 불과 14줄로 요약해놓고 있다. 이야기의 시간은 반세기도 넘지만 기술의 시간은 짧다. ‘기다린 긴긴 날들/이끼 돋아 푸르도록’에서 보면 그 많은 세월이 ‘이끼 돋아 푸르도록’이라는 단 두 줄로 요약되어 있다. 그리움에 목말라 있어 빠른 시간의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시의 행간에도 시간은 존재하고 있다.
생략은 이야기(허구)의 시간은 있어도 텍스트(기술)의 시간은 없다. 대화는 이야기 시간과 기술의 시간이 같아 속도는 평형을 유지하고, 요약은 많은 이야기를 간단한 줄거리로 짧게 기술하기 때문에 기술의 시간이 이야기 시간보다 적어 속도가 빠르다. 분석은 짧은 이야기를 세세하고도 길게 분석하기 때문에 기술의 시간이 이야기 시간보다 커서 속도는 완만하다. 묘사는 한 시점을 길게 구체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기술의 시간은 있으나 이야기 시간은 없다. 심리 묘사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창작에 있어서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는 순전히 작가에 달려있다. 시의 연․ 행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시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 고려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시의 행간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시간을 다루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안에 따라 행간을 생략으로 활용할 수 있고 요약, 분석, 인쇄의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작가의 역량에 달려있다.
4. 공간
대상이 있어 공간이 표출된다. 대상이 먼저이고 표출이 후라는 얘기이다. 대상은 감각적 경험으로 인식될 수 있는 실재적 공간이다.
수사 때문에 표상되는 또 다른 공간이 있다.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표상되는 공간이다. 상상적 공간이다.
공간 - 실제적 공간
상상적 공간
실제 공간은 실제적 자연이 전개되는 차원으로의 가시적, 구체적 공간을 의미하며, 상상적 공간은 상상에 의해 축조된 비가시적, 관념적 공간을 말한다. 전자는 감각적인 인식 공간이며 후자는 수사에 의한 상상 공간이다. 실제적 공간이라도 기호로 표출된 이상 자연 그대로의 공간은 물론 아니다. 구체적 공간이지만 작가에 의해 변형된, 재창조된 공간이다. 이는 수사에 의해 형성된 상상적 공간과는 다른 차원의 실제적 공간이기도 하다. 상상적 공간은 은유나 상징에 의해 형성되는 은유 공간이나 상징 공간을 말한다.
상징 공간
섬이 하나 있다. 콩알보다 조금 작은…
몇몇 살던 이들 낱낱이 다 떠나고
일흔 둘 할머니 혼자 살고 있는 작은 섬
- 이종문의 「섬」첫수
산재한 갈망위해 돌아와 답하는 봄비
계절이 머뭇거리는 허공을 진압하고
먼 재를 넘어온 그리움 풀어
어찌나 속삭이는지
-김교한의 「봄비」
섬은 실제적 공간으로 우리가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사실적 공간이다. 섬이 콩알보다 작다고 한 것은 섬을 강조하기 위해 쓴 과장법이다. 거기에서 살던 이들은 다 떠나고 일흔 두살 할머니가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섬은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인지할 수 있는 가시적 공간이다.
후자의 시조는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상상적 공간이다. ‘산재한 갈망’에서의 ‘산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을 말한다. 공간이 없으면 흩어져 존재할 수 없다. 단어 자체가 공간이다. 그러나 ‘갈망’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간 부재의 관념적인 단어이다. 이 관념적인 단어 ‘갈망’에 공간이 존재하고 있는 단어 ‘산재하다’가 한정해줌으로써 ‘산재한 갈망’이라는 상상적 공간이 생기게 된다. ‘산재’라는 단어에 의해 ‘갈망’이 공간화된 것이다. 갈망이 흩어져서 존재한다는 뜻이다.
‘계절’과, ‘그리움’의 관념적 단어는 ‘허공을 진압하고’, ‘먼 재를 넘어온’이라는 ‘허공, 먼 재’라는 실제 공간 때문에 상상적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꾸며줌으로 해서 공간 부재의 관념적 단어가 상징 공간인 상상적 공간으로 전이가 되는 것이다.
시인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은유와 상징 같은 수사를 사용한다. 그 때문에 은유 공간과 상징 공간이라는 상상적 공간이 생겨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게 된다.
코잡아 별을 짜려나 연사흘 은빛 생각
대바늘 사슬뜨기 재촉하여 폭설내리고
마무리 눈동자 위에 처음이듯 그 설레임
-김성숙의 「‘새벽, 뜨개질하다 」첫수
여기에서는 ‘그리움’이라는 원 개념이 생략되어 있다. ‘그리움’을 ‘은빛 생각’으로 은유했다. ‘그리움’, ‘은빛 생각’은 공간이 형성되지 않은 관념적 단어들이다. 그러나 ‘연사흘’이라는 시간의 길이 때문에 ‘은빛 생각’이라는 새로운 의미의 은유 공간이 생겼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생 섬이 된다
유난히 파도가 많고 유난히 바람이 많은 섬
그래서 가슴에는 평생 등불이 걸려있다
-신웅순의 「내 사랑은 47」
위 텍스트에서 사랑하면 일생 섬이 된다고 했다. 섬은 파도가 많고 바람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시인은 가슴에 평생 등불이 걸려있다고 했다.
사람도 실재 공간이다. ‘사랑하면’이라는 수식 때문에 ‘사람’에서 '섬'으로 전이되었다. ‘나’라는 축소된 실제 공간에서 ‘섬’이라는 확대된 실제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랑하는 인간도 섬처럼 바람이 많고 파도가 많다는 얘기이다. 공간이 축소되었느냐 확대되었으냐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 공간의 크기도 꼼꼼하게 체크해야할 사항들이다.
공간 – 축소 공간
확대 공간
사랑하는 사람이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섬으로 창조되었다. 섬은 실제 공간이기도 하지만 은유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적 공간에서 비현실적 공간(은유, 상징)으로 전이이든 현실적 공간에서 현실적 공간으로의 전이든 또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동은 언제나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동반하게 된다. 독자들에게 깜짝 놀라게 해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없는 이름 부르며 한 생 저어 가듯
어둠 끌어 안고 살 지피는 밑불처럼
캄캄한 눈썹 하나로 산을 넘는 밤이 있다
없는 길을 찾아서 한 생 헤처 가듯
어둠으로 기르는 생금 같은 눈썹 들고
높다란 고독 하나로 밤을 넘는 밤이 있다
-정수자의 ‘그믐달’
‘이름, 어둠, 밤, 눈썹, 고독’ 등의 상징어들이 ‘부르며’, ‘끌어안고’, ‘밤을 넘는’, ‘생금 같은’, ‘높다란’의 단어들의 한정으로 여러 상징 공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상징보다 은유가 이미지 면에서는 선명할지 모르지만 의미 공간의 크기나 울림에는 상징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징은 많은 사유가 필요하다. 원개념을 규정지울 수 없어 의미 천착이 쉽지 않다. 의미는 공간의 크기와 깊이를 말해준다. 크기와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매우 주관적이어서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원개념을 계속 지연시키면서 의미를 재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시텍스트에서 구체적인 묘사 없이 ‘이름, 어둠, 밤, 눈썹, 고독’ 같은 상징어들을 제시해주고 있어 독자들이 나름대로 읽어내야한다.
상징 공간들은 의미를 확대, 축소시켜 주면서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 낸다. 상징은 몇 구절로는 의미 천착이 어려워 시 텍스트 전체를 읽지 않으면 안된다. 상징의 애매성 때문에 작가의 표현 공간과 독자의 감상 공간 사이에는 언제나 의미의 차액은 남게 된다.
차액이 지나치게 많아서도 안 되고 지나치게 적어서도 안 된다. 시는 극히 주관적이어서 객관적인 감동의 수치로 나타낼 수가 없다. 세대와 시대, 계층과 지역 간의 문화 차이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에는 개성과 보편성과 항구성을 갖고 있어야한다. 이것이 충족이 될 때 영원한 명시로 남게 되는 것이다.
코드화, 탈 코드화
석야 신웅순 시인․평론가·서예가 중부대 명예교수
소쉬르의 2항 구조
소쉬르가 제시한 기호는 두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졌다. 개념과 청각영상이다.개념은 기의(시니피에), 청각영상은 기표(시니피앙)에 해당된다. 물리적 형태인 기표와 정신적 형태인 기의가 결합하여 하나의 기호가 만들어진다.
갑순이는 자신의 마음을 갑돌이에게 전하고 싶었다. 장미를 선물했다. 장미는 사실은 갑순이가 갑돌이에게 준 사랑의 마음이었다. 이 때 ‘장미’를 기표라 하고 ‘사랑의 마음’을 기의라고 한다. 기표인 ‘장미’와 기의인 ‘사랑의 마음’이 결합하여 하나의 기호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소쉬르의 2항 구조이다.
기호=기표(장미)+기의(사랑)
갑돌이가 갑순이에게 장미를 받았을 때 갑돌이는 장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해석하게 된다. 갑순이는 사랑이라는 의미를 담아 갑돌이에게 장미를 보냈다. 기호를 만들어 보낸 것이다. 갑순이는 기호 발신자요 갑돌이는 기호 수신자이다. 이때 기호 발신자와 기호 수신자 사이에는 의미 작용이 이루어진다. 기호 발신자는 '사랑'이라는 의미를 전했는데 기호 수신자가 '우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실패이다. 기호 수신자가 '사랑'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이다. 기표인 장미와 기의인 사랑이 결합해 하나의 의미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5. 코드화, 탈코드화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갑순이는 사랑한다는 기호를 만들어야 하고 갑돌이는 그것을 사랑한다는 기호로 해석 해야 한다.
갑순이는 장미를 사서 갑돌이에게 주었다. 이 때 장미는 사랑의 운반체, 기표이다. 갑돌이는 갑순이한테 장미를 받는 순간 갑순이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 때의 장미는 그냥 장미가 아닌 사랑의 기호가 되는 것이다. 눈짓이면 사랑의 눈짓, 미소면 사랑의 미소, 손길이면 사랑의 손길이 기호가 되는 것이다.
기호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표와 기의를 결합시켜야한다. 그 즉시 기호는 의미작용을 하게 된다. 갑순이의 갑돌이에 대한 사랑이 변함없다고 갑돌이가 믿게 되면 코드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관습화된 코드에 의해 이루어진 시조들이 있다. 이는 하나의 해석만을 요구하지 둘 이상의 해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 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되만 높다하더라
제탓을 하지 않고 남만 탓한다는 교훈 시조이다. 누구나 다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일반적으로 코드화된 기호들로 이루어졌다.
예술은 탈코드화이다. 기표와 기의 관계를 해체시키고 기표와 기의 관계를 새로운 질서 위에서 재조립해야한다. 예술은 작가와 독자와의 코드화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 작가와 독자의 생각은 단선 라인이 아닌 수 많은 복선 라인으로 이루어졌다.
하이덱커는 예술 작품은 사물로서 있는 것을 넘어 있는, 어떤 다른 것이라고 했다. 사물 자체로 보지 않고 은유나 상징으로 본 것이다. 예술은 탈코드화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야한다. 예술은 탈코드화이며 탈 커뮤니케이션이다.
기표는 반드시 기의 하나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소쉬르가 제시했고 바르트가 심화시킨 기호 모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여자는 곰이다.’ 라고 할 때 곰은 실제의 곰이 아니다. ‘뚱뚱한 여자’ 혹은 ‘미련한 여자’ 등의 의미로 우리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기표 1’인 곰의 외시 의미는 ‘기의 1’인 동물 ‘abear(실제 곰)’를 말한다. 그러나 ‘그 여자는 곰이다’라고 할 때 ‘곰’은 ‘뚱뚱한 여자’ 혹은 ‘미련한 여자’ 를 의미하지 실제 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외시 의미에서 곰이라는 용기인 ‘기표 1’에는 동물 ‘abear’의 내용물이 들어있지만 새로운 용기, ‘기표 2’에서는 실제 동물 ‘abear’의 내용물이 아닌 새로운 의미인 ‘기의 2’인 ‘뚱뚱한 여자’ 혹은 ‘미련한 여자’ 등의 내용물이 들어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부터가 함축의 의미이다.
‘그 여자는 곰이다.’ 라고 하면 이는 은유이다. 은유는 바로 수사를 말한다. 은유는 새로운 차원의 의미인 신화이다. 여기에서부터가 시의 영역이다.
퍼스의 기호 모형은 탈코드화의 좋은 예이다.
한 기표가 어떤 다른 것을 표상함으로써 기호가 될 수 있다. 즉 어떤 사물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기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퍼스의 3항 구조
퍼스의 3항 구조는 ‘기호’와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체’, 기호 사용자가 그 대상에 대해 갖고 있는 정신적 개념인 ‘해석체’로 구성되어 있다.
기호는 그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대신해서 나타낸다. 실제 대상체를 가리킨다. 대상체는 언제나 기호에 의해서 표상되어진다. 일단 기호가 작성되면 기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것이 대표하고 있는 대상체를 지시하게 되어 있다. 기호 사용자는 그러한 기호를 읽음으로써 기호가 지칭하는 대상체에 어떤 해석을 내리게 되는데 이러한 정신적 개념이 해석체이다.
대상체가 기호 주변에 있으면 기호로서의 구실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된다. 기호가 대상체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호는 대상체를 잠적 시킨다. 만들어진 기호 속에는 대상체의 지시와 지시된 대상체의 해석체를 담지하고 있다. 기호는 대상체를 사라지게 하고 거기에 새로운 해석체를 들어앉힌다. 기호 사용 즉시 대상체는 증발되고 또 다른 해석체가 그 자리에 들어 앉게 된다. 외시를 넘어서 함축의 차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기호 사용 이전에는 기호의 해석체는 외시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호를 사용함으로써 함축 의미의 길로 들어선다. 기호를 사용하자마자 외시 의미는 사라지고 새로운 함축 의미가 그 자리에 들어앉게 되는 것이다.
퍼스의 대상체는 소쉬르의 기표에 해당되고 해석체는 기의에 해당된다. 퍼스의 기호모형에서 '장미'는 기호이며 실제 장미는 대상체이다. 갑순이가 갑돌이에게 장미를 주었을 때 그 때의 장미의 의미인 사랑은 기의이며 이것이 퍼스의 해석체에 해당된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광야」일부
‘초인’은 기호이다. 이 ‘초인’의 기호는 지금 여기에 없는 대상체를 가리킨다. '초인'은 ‘보통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한다. 이것이 외시 의미이다.
기호 사용자는 대상체와 가졌던 경험에 의해 원래의 실제 대상체인 외시 의미인 ‘초인’을 증발시키고 거기에다 ‘의지나 희망, 광복’과 같은 새로운 해석체를 들어 앉힌다. 해석체를 매개로 해서 대상체인 실제 초인을 시에서 초인이라는 기호로 의미를 완성시킨다. 해석체의 중개 없이는 기호로 표상되어진 대상체의 의미는 불가능하다. 이 때 해석체는 문화적 관습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각자의 해석들은 또 하나의 기호가 되어 또 다른 해석을 낳게 된다. 절대적인 해석은 존재하지 않고 끝없이 지연되는 것이다. 기호의 무한한 표류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육사는 광야의 시에 '초인'의 기호를 만들었다. '초인'은 기호이고 초인의 대상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해석체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광복','희망' 등 여러 해석체들을 의미한다. 초인이라는 기호는 대상체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증발시키고 '의지','광복','희망' 등의 해석체를 들어 앉힌다. '초인'이라는 기호는 대상체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넘어 '의지','광복','희망' 등의 해석체로 탈코드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이다.
함축 의미는 독자들이 내리는 주관적인 의미이다. 결국 시의 의미란 독자들의 몫이다. 시가 독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의미로 남는 것은 함축 때문이다. 남이 쓴 시이지만 누구나 다 내 마음을 쓴 것처럼 느껴져야한다.
산에서 살자하니 그도 닮는 걸까
오늘은 약수터에 물 길러서 간 아내가
흡사 그 원추리 꽃 같은 산 노을을 입고 왔다.
-정완영의 「아내의 노을」전문
산 아래에서 살고 있으면 아내도 산을 닮아가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물 길러간 아내가 원추리꽃 같은 산노을을 입고 왔다는 것이다. 옷이 아름답다라든가 옷이 해진다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 코드화된 외연적 의미의 기표인데 시인은 원추리꽃 같은 함축적 의미인 산 노을을 입고 왔다는 것이다. '옷'을 '산 노을'로 탈코드화시켰다. ‘산노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결국은 독자들의 몫이다. 함축의 의미는 문화에 따라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시이다.
출처: 행복도시부산환경문화알리기사업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판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