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어느 초가을의 건강 검진
김병우
A급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한 며칠 후, 어느 쾌청한 초가을에 그동안 벼르던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러 미리 예약해둔 병원으로 출발했다. 검사 당일은 반드시 보호자와 함께 와야만 하고, 피검사자는 운전을 하면 안 된다고 하여 아내를 대동한 나들이 아닌 나들이 셈이었다. 검사 일정이 오전 시간에 잡혀 있었고, 집에서 가는 거리도 있고 하여 일찍 집을 나섰다. 공복에 기진맥진한 상태라 운전은 아내가 했다.
검사 전날에는 병원 측에서 시키는 대로 오전은 흰죽만 먹었고, 저녁은 금식하였다. 또한 원활한 검사를 위해서 나눠준 설사유도제 4포를 생수 500ml에 1포씩 넣어 잘 흔들어 네 차례에 걸쳐서 나눠 마셨다. 검사 당일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나머지 4포를 똑같은 방법으로 마저 마셨다. 총 8포를 4리터의 물로 2회에 나눠서 마신 꼴이다. 액상의 가스제거제 1봉지까지 마지막으로 먹었다. 계속되는 설사로 밤새도록 화장실을 수없이 들락거리며 긴긴 하룻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덕택에 깨끗한 빈속을 만들었으니 속은 편했으나, 입은 바짝바짝 말라 마른 침을 삼켜야 했다.
병동 대기실에는 미리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여 앉을 자리조차 없었다. 접수처에서 예약을 확인하고, 대기실에 서서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어제 밤을 설쳤을 테지?” 이렇게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걱정이 되는지 아내는 내 손을 놓지 않는다. 드디어 호명을 한다. “김병우님, 안으로 들어가서 옷장에 있는 가운으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간호사로부터 안내 받은 탈의실에서 선반에 올려놓은 옷을 펼쳐들었다. 상의는 두루마기 식의 기다란 도복 같았고, 하의는 잠옷바지 스타일인데 구멍이 크게 하나 나있었다. 반드시 구멍 난 쪽이 뒤쪽으로 가도록 입으라는 간호사의 몇 차례에 걸친 신신당부에 하의를 보면서 킥킥 웃음이 나왔다. 가끔 엉뚱한 사람이 있어서 지시대로 안 따라 줘 황당한 일들(?)도 있는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 강조를 할까. 옷장 키와 핸드폰을 대기실 밖에 있는 아내에게 건네주고는 간호사를 따라 검사실로 들어갔다. 검사가 용이하도록 수술대에 웅크린 자세로 옆으로 누웠다. 검사는 완전수면이 아닌 반수면 상태에서 실시하다 보니 시술 중의 기억들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순간순간 떠올랐다. 특히, 머리 위에 걸려있는 모니터 화면을 통해서 내 장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갑자기 배가 무지 아프다. 나도 모르게 악! 비명이 나왔다. “힘 빼세요, 힘! 이렇게 힘을 계속 주시면 창자가 터집니다.” 의사, 간호사의 나무람이 매섭다. 긴장한 탓에 힘이 잔뜩 들어 갔나보다. 검사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대장에 공기를 삽입하는 것 같았는데 힘을 주고 있으니 제대로 진행이 안 된단다. 창자가 터지면 안 되는데, 순간 겁이 났다. 본능적으로 들숨 날숨에 긴 호흡이 반복되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그렇게 아프던 배가 안 아프다.
30여 분에 걸친 대장내시경 검진 과정에서 용정을 3개 발견하여 모두 제거했는데 다행히 큰 것이 아니라서 안심이 되었다. 2개는 3mm 미만이고, 1개는 5mm짜리였다. 작은 것 2개를 제거할 때는 정신이 가물가물하여 생각이 잘 안 났는데, 큰 것 제거할 때는 달랐다. 올챙이 머리 같은 용정에 전기올가미를 씌워서 잡아당기듯 지지며 태우는 것을 숨죽이며 지켜봤으니 말이다. 참으로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서 수술대에서 내려오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모든 과정이 끝났으니 이제 집에 가겠구나, 생각했더니 아니란다. 잘못하면 장 천공이 대장내시경의 0.3~0.4%, 용정 절제술시 1% 미만에서 발생한다고 하면서, 당신이 그 1% 미만 확률에 해당될 수도 있으니 하룻밤을 병동에서 보내야만 한단다. 입원 준비를 하지 않은 나와 아내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대장 용정 절제술 입원계획표-1박 2일(OO병원 소화기내과)’라고 적힌 안내서를 받아 들고서야 현재 처해진 상황을 실감했다. 천편일률적인 패키지상품 같은 병원 측의 장삿속에 기분이 상했다.
하룻밤 묵을 병실로 이동침대에 누운 채 옮겨졌는데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아내는 서방을 놓칠세라 이동침대를 잡고 열심히 따라왔다. 배정 받은 병실은 7층에 있는 2인실 병동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먼저 입실해 있던 환자가 우리를 맞는다. 간단한 수인사를 나눴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적어보였고, 어제 입원했단다. 나처럼 대장 용정 제거를 했느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병명을 물으니 목에 조개껍데기가 걸려 식도를 타고 내려가 응급실에 실려 와서 레이저로 힘들게 끄집어내었는데, 그 과정에서 주변 장기가 손상을 입어 입원치료 중이란다. 어쩌다가 조개껍데기가 목에 걸렸느냐고 묻자 대답이 걸작이다. 점심으로 짬뽕을 먹었는데, 국물에 그놈의 조개껍데기가 같이 넘어가서 순간 뜨끔했는데 이 고생이란다.
“정말 비싼 짬뽕을 드셨네요.” 이렇게 말하며 같이 웃었다. 이 환자는, 흔히 대수롭지 않게 발생하는 일상적인 일들도 운이 없으려면 치명적인 사고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해주는 사례였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병원에서의 1박이 시작되었다. 출혈과 천공의 위험성이 있으니 침상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이 영 달갑지가 않았다. 오늘 하루도 금식이란다. 허기진 배를 잡고 딱딱한 병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좀이 쑤신다. 체질에 안 맞다. 아내를 꼬드겨서 병동 밖으로 나갔다. 병원 입구에 있는 식당을 보니 아차 싶었다. 늦은 오후시간인데도 아직 점심을 먹지 못한 아내가 그제야 생각이 났다. 내 코가 석자라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했나보다.
병원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아내를 데리고 들어서니, 계산대에 있는 여직원이 난색을 보인다. “환자분은 저희 식당 출입이 안 됩니다. 죄송하지만 나가주세요” 나보고 하는 말이다. 화들짝 놀라 식당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환자복에 흰머리가 너절한 중년의 남자가, 링거가 대롱대롱 매어달려 있는 이동식 받침대를 잡고 서있다. 창피했다. 같이 나오려는 아내를 식당 안으로 밀어 넣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병원 입구에 있는 벤치로 가서 앉았다. 초가을의 햇살이 따사롭다. 병원 안과 밖의 공기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비가 온 뒤라서인지 날씨도 맑고 무엇보다 공기가 상쾌했다. 나처럼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같이 그늘 아래 군데군데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 목에 깁스를 한 채 나무에 기대어 서있는 사람, 목발을 짚고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고 있는 사람…… 마치 병원을 소재로 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저들도 나처럼 병실 안이 갑갑해서 바람 쐬러 나왔으리라. 모두들 빨리 나아서 이 병원을 속히 탈출하기를 진심으로 빌어본다.
병실에서 맞는 밤!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생면부지인 사람과 한 방에서의 동침이 신경에 거슬려서인지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아내는 침대 밑에 있는 미닫이 간이침대에 누웠으니 나보다 더 할 것이다. 말이 침대지 무릎 밑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이 가관이다. 저 상태로 편히 잠든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게다. 둘이서 엎치락뒤치락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중간 중간 선잠이 조금씩 들기는 했으나 평균수명에는 태부족이다.
동이 틀 무렵 이부자리를 접고 일어났다. 목에 조개껍데기가 걸렸던 환자는 나보다 하루 먼저 입원한 게 적응이 되어서인지 코를 골며 잘도 잔다.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와 아내와 같이 휴게실로 갔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너 명 앉아 있고, 그 옆 소파에는 환자 가족으로 보이는 안식구들이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모두들 나처럼 불편한 밤을 보냈을 것이다. 멀뚱멀뚱 한참을 TV를 보고 있으니 담당 간호사가 찾는다. 메모지를 건네며 영상의학과에 가서 채혈과 X-Ray 촬영을 하고 오란다. 지하 1층에 있는 영상의학과에 가니, 나처럼 쪽지를 든 사람들이 입구에 하나둘씩 모여든다. 우리처럼 부부는 한 커플도 없었고 모두들 혼자였다. 어제 검사 받으러 올 때는 분명 보호자와 같이 왔을 텐데, 병실에서 밤을 지새운다고 하니 환자만 남겨두고 다들 집으로 가버렸나 보다.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아내가 무척 고맙다.
드디어 퇴원해도 좋다는 간호사의 지시가 떨어졌다. 팔뚝에 훈장처럼 걸려 있던 링거를 제거하고 환자복을 침상에 벗어놓은 후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부러운 듯 바라보는 옆 환자에게 ‘조리 잘 하셔서 하루빨리 완쾌하세요.’라고 인사하고, 병동을 빠져나와 퇴원 수속을 하러 원무과로 내려갔다. 일요일 오전인데도 창구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진료영수증을 받아드니 예상했던 것보다 금액이 크다. 2인실 병실료가 비쌌다. 6인실보다 무려 4배 이상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대장 용정 3개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병원 입구로 나왔다. 시계를 보니 11시다. 배가 고파 현기증이 일었다. 그동안 시술 전후로 거른 끼니를 계산해보니 5~6회인 것 같은데, 밥다운 밥을 못 먹은 걸로는 이보다 더 되는 것 같다.
면도도 하지 않은 초췌한 몰골로 병원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제 창피 당했던 바로 그 식당이다. 카운터의 여직원은 나를 못 알아본다. 다행이다. 당분간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라는 의사 얘기를 들은 터, 전복죽 두 그릇을 시켜 아내와 같이 먹었다. 코를 자극하는 고소한 죽 특유의 내음과 목구멍으로 미끄러지는 촉감이 짜릿하다. ‘아! 이 얼마 만인가? 살아있는 자의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건강도 확인하고 아내의 사랑도 확인한 대장 용정 수술 1박2일! 내 생애에서 결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2016.9.9.)
첫댓글 저도 대장 용종 시술을 받은 지 몇 년 되었네요.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다시 용기를 내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행이지요. 용종을 일찍 제거하셨어요. 그런데 용종제거하시는데 왠 입원까지 저는 건강검진 하면서 대장내시경을 하고 싶다고 하니 분변에 이상 없는 뭣하러 생고생하시려고 하기에 그냥 넘겼다가 2년 후에 그 병원에 가니 대장암 3기라고 말 화냈답니다. 어언 수술한지 8년이 넘었습니다. 저의 일 같이 느껴져 읽어 내려갔습니다.
대장 내시경검사 약물맛이 지독하고 인간의 인내를 시험하는고통이 따르지요 저는 3년 주기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용종시술받은사람은 정기검사가 필수이나 망설어 집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2년에 한번 건강검진이 무서운 병을 조기발견할 수 있어 건강지킴이 역을 잘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대장 내시경 정말 망설어지는 검사지요. 저도 난생처음 15년전에 검사를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아내와 지인들의 권유에도 차일피일 하다가 올 봄 정기 건강검진때 용기내 신청 검사를 했는데 이상이 없다는 소견에 힘들었던 순간은 간데없고 마음이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았읍니다. 힘들어도 오래동안 안하신 분들은 한번 도전하심이 어떨런지?
대장건강검진에 관하여 많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위내시경하다 장천공이 생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건강검진도 종합병원이나 숙련된 의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