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로 이사온 것은 30대 초반이었고
주말에는 여전히 인사동으로 공부하러 갔지만
아이들이 유치원가면 주중에는
집 뒤에 있는 서실에서 조용히 붓을 잡고 공부를 했다.
하다보니 경찰대학 등등
출강을 자주가는 원장님대신
학생들을 지도하고 서실 관리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원장님이 강의가시는
남자교도소에도 대신 가게 되었는데
솔직히 30대 초반 앳된 그때는
처음에는 당혹했고 무서워서 전날에 잠을 자지 못했다.
나와 다른 높은 담의 세상...
육중한 철문이 열리면 또 한 철문이 열리고
딱히 뭐라고 할 수 없는 내음새가 공기에 가득 느껴지고
교과서적인 교화문구가 큼직큼직 곳곳에 적혀 있던...
영화에서 보던 그런 사나운 인상을 연상했던 것일까..
철문하나가 열리고 또 다른 철문이 열리면서
사나운 인상은 더 사납게...
팔에도 얼굴에도 흉터가 있을거란 상상은
점점 더 커져 나중에는 망상이 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겉만 보면 모른다는 것처럼
얼굴만 보고는 모를 정도로
그냥 평범한 동네아저씨 이발사, 빵집아저씨같은
그런 인상이다.
두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를정도로 지나갔다.
나름 열심히 매주 다녔지만 여름이 되면서
밀폐된 작은 교실에서 건장한 남자들에
둘러싸여 수업하다보니 기관지가 약한 나는
언제부터인가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원장님을 비롯해 교도소장께 말씀드렸다.
-남자교도소에는 다른 분을 추천하고
저는 여자교도소에 가서 할께요..;
그리고 수업장소는 가급적 밀폐된 교실보다
퉁풍이 되는 강당에서 하면 좋겠어요
돈을 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한동안 하다보니
재소자들이 희망하는 것은
서예뿐만 아니라 음악과 무용, 연극 등등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았다.
재소자들 뿐만 아니라 근무하던 노인복지관어르신들도
복지관에서 운동프로그램 아니면
매일 트로트 노래교실만 하던 때라
제대로된 문화예술을 하고 싶어 하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장애인계도 그러한 욕구들이 있었지만
문화예술은 돈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란 인식이 있던 시대라
대부분 경제가 취약한 장애인들은 개별 접근을 할 수 가 없었다
그래서 내 학원공간을 반으로
쪼개서 자비로 만든것이 무료교육센터였다
또한 한국문화예술교육***원이란
문화체육부 산하 국가공공기관에 응시하여 합격하여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운영추진하는
전문교육을 3년동안 받았다.
그 이후 국비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기획하고 국비를 따내어
보급하는 기획전문가로 활동했다.
합창, 탈춤, 난타, 악기연주, 수채화, 유화 ...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 원하던 로망들은 다 이루어드렸다
합창반은 국립극장에서도 두 번이나 공연할 수 있도록 했고
가방끈 짧은 할머니들이 우아한 드레스 입고 공연하고
수학여행가듯이 서울로 소풍가고
여기 저기 공연활동하니 무척 즐거워 하면서
노인우울증 앓던 분들은 명랑해지기도 하였다.
악기연주반은 수년의 연주교육끝에
세 악기의 합주봉사단도 창단하여
요양원과 축제와 길거리 버스킹 등 많은 봉사들을 주선했고
그 봉사단이 교육인적부 평생학습 대회에서 연주하여
대상수상도 하셨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들은
맛있는 음식이 품이 많이 들어가는 것처럼
비록 고단한 육신과 정신의 품이 많이 들어가더라도
배우는 분들과 가르치는 강사들이
가급적 마음이 열리고 서로 소통하고 평온하게 할 수 있게, 무엇보다도 커리큘럼설계시에
감성역량 향상이 예술적역량과 더불어
성장되도록 했다.
교육을 받는 사람과 교육을 실행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상대적 입장의 프로그램이고
기자재보급을 잘해서 인기가 많았다.
문학프로그램에서는 모두 책을 발간할 수 있도록 도왔고
음악악기에서는 드럼과 키보드 일렉기타 등등 을 보급했다.
여자교도소와 남자교도소들만 하다가
나중에는 예술치료사 자격과 사회복지사, 다문화전문,
심리상담, 폭력상담 등 다양한 여러 자격을 더 취득하면서
좀 더 특수한 곳의 삶들이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보급했다.
일반교도소에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 곳에 무용과 연극과 악기교육을 보급했다.
거기에 맞는 강사들을 섭외해서 계약하고
함께 가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볼펜하나라도 관리를 잘못하면 사고가 나기에
볼펜안의 용수철까지 나는 꼼꼼이 점검한다
간식에 주는 사탕도 과일종류는 안되고
요구르트도 왜 안되는지 잘 알고
강사들 지참물도 잘 관리하기로 정평이 났다
모든 프로그램을 할때 카페의 네임처럼
먼저 네임을 정하고 라포형성을 먼저 한다.
본인이 되고 싶은 소망으로 또는 즐기고 싶은 것.,
또는 좋아하는 어떤 것들 등 다양하게 짓는데
감을 못잡는 사람들을 위해서 종종 내가 먼저 나서서
저는 사다리라고 불러 주세요 하고 말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올라가지 마라는 옛 속담과 달리
오르지 못할 나무는 사다리로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
저의 신조라서....
그래서 못 들어도 마음의 사다리를 많이 만들어서
말도 잘하고 이렇게 여기에 강사님들 모시고
오는 일도 한다고...
이렇게 시작을 열어주면
너도 나도 닉네임을 잘 짓기 시작했다
강사들도 실명을 말하지 않고 네임을 똑같이 지었다
강사 한 분은 테디베어라고 하였고 다른 분은 아침이슬이라고..
나이 많은 아저씨는 소나무라고 짓고 어떤 분은
태권브이 어떤 분은 삼겹살이라고 짓고 어떤 분은
인기가수 등등을 지었고 어떤 청년은 토끼라고 하였다.
일년간 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할때마다
마음을 들여다보며 깊이 가라앉은 앙금을 조금씩 꺼내어
헝크린 실타래처럼 있는 그 앙금의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보기도 한다.
시작만 해주고 방법을 알려주면 본인의 노력에 따라
통한의 후회와 원망과 복수심으로 점철된
그 앙금은 해소될 가능성도 있고
나중 사회복귀할때 대인관계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아마도 다르겠지만
심적으로는 외로움과 가족을 비롯한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단절이겠고
육적으로는 배고픔과 갇힌 것에서
오는 절망이 아닐까 싶다.
그 앙금을 꺼내어 보는 작업의 시초인
현실직시와 하고 싶은 것을 연극을 통해서
해보는 작업을 하는데...
어느 날 토끼라는 청년이 상세히 연필로 적은
현실직시의 글에서
나는 가슴이 일렁 일렁 거렸다.
일요일 마다 자주 가던 그 곳...
청양고추와 호박과 감자가 송송 들어간 구수한 청국장
그리고 여러 종류의 닭과 소와 토끼가 있는 곳..
원초적 부부싸움으로 나를 빙그레 웃게 하던 곳...
엄마와 아버지가 말을 못해 무척 친구들에게 창피했고
다른 친구들은 읍내에 사는데 자기는 깡촌에 살아서 싫었고
형들이 자주 야단치며 때려서 가족들이 참 미웠다는
그 곳이 이제 되돌아 보면 바로 천국이었다는 ....
먹고 살려고 나쁜 사람들과 어울려 돈을 벌다보니
깡촌 가난한 그 곳이었지만
사시사철 먹을 걱정이 없었던 풍요한 곳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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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길어져서
다음 3편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전에도 언급했던것이 있는데
해후를 풀어가기 위해
좀 더 상세하게 보태었으니
양해바랍니다
첫댓글 늘평화님은 끊임없는 도전으로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해서
소외된 곳에서 희망을 안겨주며
희생적인 봉사의 삶을 사셨네요.
존경합니다.
예전에 여자교도소를 배경으로한
하모니~영화를 보고 어찌나 울었던지
눈밑이 벌겋게 부어
피부과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합창 하모니처럼 무용발표, 연극발표공연, 난타공연 등등
모든 문화예술교육의 꽃인 발표즈음에는
배우는 분들 가르치는 분들 기획하는 분들
함께 어려움을 풀어나갔던 관련담당자분들이
웃음과 눈물이 같이...
이제는 모두 추억이 되었네요
평안한 밤되세요
복지를 위한 것,
일반인들이 기피하는 소외된 곳,
필요한 자격증을 미리 갖춘다는 것,
늘평화님은 일반인들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일찍 깨여 있네요.
봉사하며 산다는 것은
또 하나의 자부심이기도 하지요.
많이 행복하셔요.
이제는 모두 추억이네요
최근들어 집에서 다시 컴퓨터를 켜게 되고
글도 읽고 쓰고 조금씩 여유가
생겨가네요..
평온한 밤되세요
수고 많으셨네요.
글에 쓰인 내용보다
얼마나 많이 세심한 계획과
노력이 공들여 행하였을까
생각만 하여도 찡하고 가슴 울렁거립니다.
그,보람은 하늘에 다다라서
크신 상급,받으셨을거라고
믿습니다.
조윤정님 고맙습니다
하늘과 땅에 모든 영광이 있고
우리는 다만 도구로 쓰임이라는
선현의 말씀이 있지요..
그 당시는 나름 잘한다고 했는데
지나고 보니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미 지난 일이니 이젠 추억으로 여기고
글로 써서 나누고 간직합니다^^
여러가지로 많은 준비를 하셨으니
더욱 보람된 결과를 창출하였으리라
생각 됩니다.
건필 유지하세요.
고맙습니다
평온한 저녁되세요^^
빈집에 오니 난꽃화분 세개에서 동시에
꽃대가 솟아올라 꽃이 피어 흐믓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