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으로 보는 세계 미술사
그리스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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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시작은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지만 예술의 본격적인 시작은 그리스, 로마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 인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고, 또한 신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였으니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것이 참된 아름다움(idea)이며, 곧 신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창한 ‘모방’(mimesis)이라는 미적 개념은 이후 19세기까지 예술의 기본이 된다. 로마 인들은 그리스의 미학을 그대로 따랐고, 이러한 전통은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예술이 종교에 예속될 때까지는 지속된다.
시에나 대성당,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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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예술은 신이 중심이 된 예술이다. 처음의 교회(basilica)에는 창문이 없었다. 이는 세상의 유일한 빛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태양빛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으며, 점차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형된 태양빛(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하여)이 교회에 나타나기 시작하기도 한다. 회화는 예수의 행적을 무지한 시민들에게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단순하면서도 존엄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신이 중심이 되다보면,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은 쇠퇴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이 시기를 예술계에서는 암흑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대 로마 문명은 고트(Goth) 족이나 반달(Vandal) 족 같은 야만족에 의해 멸망했는데, 중세 시기를 야만족의 미개한 예술이란 뜻으로 비하하여 고딕(Gothic)이나 반달리즘(Vandalism)이라 부르기도 한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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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교황이 지배하던 중세의 시대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왕과 귀족의 지위가 점차 교황의 지위를 넘보게 되고, 상업이 발달하여 개인적인 부가 축적된다. 이렇게 되니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관심이 다시 증가하게 되고, 때마침 발굴되기 시작한 고대 문명의 아름다움에 찬미를 보내게 되니 이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Renaissance)이다.
르네상스는 다시 태어난다는 뜻으로 과거 헬레니즘의 전통, 즉 그리스, 로마 시대의 재현이라는 뜻이 된다. 이제 예술가들은 신이 아닌 인간과 자연에 다시 관심을 기울이고, 그 아름다움을 모방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래서 미술계에는 완벽한 모방을 위한 기술이 고안되는데 이러한 새로운 기술에는 유화의 발견, 원근법, 명암법, 비례법, 해부학 같은 것이 있다.
음악에 있어서도 기본적인 화성법이 마련되고, 음계가 정리되며, 과학적인 법칙에 따라 음악이 만들어진다. 이 때 가장 유명했던 화가들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화가 등이 있다.
렘브란트 <야간 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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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세는 완전히 물러나고 왕과 귀족과 부유 상인이 교황을 완전히 누르게 되면서 예술계에는 새로운 양식이 등장한다. 귀족의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음악이 등장하고, 귀족을 그린 초상화가 등장한다. 루이 14세는 엄청나게 화려한 궁전(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왕의 권위를 뽐낸다. 이 시기의 예술 작품들은 이렇게 왕과 귀족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색채를 화려하게 하고, 형태에 있어 약간의 변형을 가하게 되는데 이를 처음에 본 사람들은 매우 기괴한 음악과 회화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시기를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에서 바로크(Baroque)라고 부르게 되었다. 바로크는 포르투갈에서 진주 공예를 하다가 실패해서 버리게 되는 진주조각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이 시기의 유명한 음악가로는 바하, 헨델, 글룩 등이 있고, 화가로는 루벤스, 렘브란트, 푸생, 할스 등이 있다.
장 앙투안 와토(Jean A. Watteau)의 <키테라 섬 순례>,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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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권이 그 권위를 뽐내자 지방의 귀족들도 너도나도 화려한 궁전 주위로 몰려든다. 베르사유 궁전 주변의 건축들은 모두 귀족들의 손에 넘어가고, 날이면 날마다 파티가 성황을 이룬다. 이곳에는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쾌락만이 있을 뿐이다. 남편은 아내의 파트너를 구해주고, 자신도 다른 여자와 외도를 즐긴다. 여자들은 허리가 가늘게 보이려고 조이다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레이스가 많이 달린 옷, 허리는 가늘고 겹겹이 장식된 폭이 넓어지는 치마, 가슴이 거의 다 드러난 상의 등 성적인 면을 강조하며, 경쾌한 음악이 흐르며,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실내....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로코코(Rococo)라고 부르는 시기의 풍조이다. 과거 로마 시대의 지하 무덤(catacomb) 속에는 ‘작고 귀여운 색깔 있는 돌멩이’로 모자이크 장식된 종교 미술품이 상당수 있었는데, 이 때 쓰인 돌멩이를 로코코라고 부르며, 이 시대의 풍조를 비하하는 말로 로코코란 말이 사용되게 된 것이다. 이때의 화가로는 프라고나르, 부쉐, 와토 등이 있다.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나폴레옹 대관식> 1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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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의 사치가 절정에 달하자 서민들은 점차 힘들게 되었다. 루소나 볼테르 같은 선각자들은 서민들이 깨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당시를 계몽주의라고 부른다. 결국 프랑스에선 혁명이 일어나고, 왕을 처형하기에 이른다. 새로운 영웅인 나폴레옹이 등장하여 황제로 등극하고 나니 그의 위엄을 드높이고자 하는 역사와 신화를 강조하며, 사실적인 화풍이 생겼으니 이것이 신고전주의(Neoclassism)이다.
따라서 오늘 날 남아있는 나폴레옹 초상화는 신고전주의의 화풍에서 나온 작품으로 보면 되며, 주요 화가로는 다비드나 그로 같은 화가가 있다. 바로크 시대 이후부터 낭만주의 사이의 시기를 음악에서는 고전주의(Classism)이라고 하며, 이 시기의 작곡가로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있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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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이후 민중들은 민주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산업혁명 이후 민중들은 부유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여 독재를 시행했고, 기계의 발전은 생산성은 증가시키지만, 빈부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일부 천재들은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고, 환상 속에 빠지기도 한다. 이들은 광기, 죽음, 사랑, 이국적 풍경, 피, 전쟁 등을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낭만주의(Romanticism)라고 하는데 낭만이란 말은 로만(Roman)이란 말을 일본식으로 읽은 발음이며, Roman의 원래 뜻은 ‘삼류의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주로 기사들의 무용담을 담은 프랑스 문학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제리코, 들라크루와, 고야 등이 있고, 음악가로는 브람스, 슈베르트, 브루크너, 바그너,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쇼팽 등이 있다.
귀스타브 쿠르베 <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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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낭만주의도 오래가지 못했다. 현실을 회피하려는 경향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광기를 강조하다 보니 그것도 쉽게 질리는 것이었다. 이 때 현실을 직시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강조하는 경향을 사실주의(Realism)이라고 하며, 처음으로 이를 주창한 사람은 쿠르베였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다오. 그러면 나도 천사를 그리겠다.”는 그의 말을 통해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다. 사실주의 화가로는 쿠르베 이외에 밀레, 코로 등이 있다.
문학에서도 사실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허구의 소설이지만 현실적인 삶의 단편, 어두운 모습까지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등장한 것이다. 발자크, 플로베르, 모파상 등의 작가들이 그 대표이며, 에밀 졸라로 대표되는 자연주의(Naturalism)도 극도의 사실성, 해부하듯 섬세한 묘사를 강조하는 사조로 사실주의의 한 종파로 생각하면 된다.
모네 <해돋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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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금까지의 미학을 바꿔놓는 새로운 풍조가 나타나게 된다. 기존의 미학은 아름다움을 모방(mimesis)하는 것이었고, 그 아름다움이란 완성미(idea)를 기초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인상주의(Impressionism)자들이었다.
기존의 그림은 밖에서 스케치하고 실내에서 완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당시를 정확히 포착할 수가 없게 되며, 그러므로 인상주의자들은 현장에서 그림을 즉시 그리게 되었다. 따라서 워낙 짧은 시간에 그림을 그리다보니 원색이 강조되고, 완성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주제도 아름다운 장면이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걸 그리게 되었다. 이들이 바란 것은 회화의 진정한 요소인 색채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더 이상 미술은 문학의 시녀이기를 거부하는 커다란 계기가 된 것이다. 기존의 작품에선 이야기가 있었지만 인상파의 그림엔 이야기가 없다. 그저 밝고 신선한 색점들이 이루어 놓은 완성미가 떨어지는 순간적인 영상들이 있을 뿐이었다. 이들의 그림은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고, 특히 모네의 <해돋이-인상>이란 그림을 풍자하여 비웃었던 평론에서 ‘인상주의’란 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로는 마네, 모네, 피사로, 드가, 시슬리, 르느와르 등이 있다.
시냑(Paul Signac) <Port Marse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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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예술은 새로움을 향하게 되었다. 아름답지 않은 것도 표현하게 되었고, 완성미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일상적인 것도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풍조에서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했던 화가들이 있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고흐는 색채를 임의대로 변경시켰다. 그의 색은 곧 그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자신이 행복하면 노란 색을 칠하는 그런 식이었다. 고흐의 예술은 훗날 순수 색채를 추구한 마티스로 대표되는 야수주의(Fauvism)와 감정 표현을 추구한 뭉크로 대표되는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효시가 된다. 고갱은 40대의 나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독특한 종교적 색채의 그림 세계를 완성하는데 그의 그림은 훗날 상징주의(Symbolism)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고흐가 색채를 추구한데 반해 영원히 변치 않는 형태를 추구한 화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세잔이다. 세잔은 동시에 다른 시점에서 관찰될 내용을 한 가지 형태에서 구축하고, 기본적인 기하학적 구도로 형태를 단순화시키는 등의 공로로 훗날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주의(Cubism)의 효시가 된다. 이들 고흐, 고갱, 세잔과 더불어 점묘의 기법을 추구한 쇠라, 시냑 등을 일컬어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라 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공동의 발명(Collective Invention)>,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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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주의 이후 예술은 더욱 다양한 길을 가게 된다. 색이나 형태의 가장 원초적인 단계까지의 탐구 뿐 아니라 공간의 탐구, 다양한 주제 탐구, 새로운 기법,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등 다양한 형태로 변모한다. 기성 제품을 예술가가 고르고 배열만 바꾼 뒤 작품이라고 하기도 하고(DaDa-아무런 뜻은 없다), 커다란 벽에 페인트를 뿌리기도 하고(Action Painting), 몸에 페인트칠을 하기도 하고(Body Painting), 그림의 소재를 무의식에서 찾기도 한다[초현실주의(Surre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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