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아~ 이천교에 가서 이사 구루마 하나 불러 온나~"
가세가 기울던 초등학교 시절엔 거의 일 년에 한 번씩은 이사를 했었다.
집에 있어봐야 이삿짐을 꾸리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막내였던 터라, 내 몫은 그 당시 이삿짐을 나르는 짐수레들이 몰려있던 대구 이천교 부근에 가서, 힘 좋고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가 끄는 짐수레를 하나 불러오는 일이었다. 빈 수레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흥정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집안은 갖가지 보자기로 싼 이삿짐들로 가득했고, 그중에서 부피가 큰 보자기들에는 이불이나 옷가지들이 터질 듯 묶여있었다. 흥정이 끝나면 짐수레 아저씨와 같이 따라온 일꾼이 주로 농이나 장독 등 무거운 것들을 들어내는데, 그때부터 나는 나만의 즐거움을 찾아 분주해졌다. 더 못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어른들의 아픔과는 전혀 다른 아이로서의 즐거움.
장롱을 들어내면 그 빈자리에는 내가 잃어버리고 찾지 못했던 물건들... 보배구슬, 동그랗고 얇은 딱지들, 지우개, 몽땅 연필, 화투 등등이 쌓인 먼지 속에 파묻혀 있기 마련. 먼지를 털고 닦아내며 반가운 해후를 하는 것이었다.
다락방 물건들 들어낼 즈음엔 버리자~ 안 된다~ 누나들과 어머니의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지고, 큰형의 중재로 버릴 것과 남길 것이 정해진다. 아버지는 객지에 계셨으니 큰형의 주장이 제법 힘이 있었다. 버리는 것들에는 좀 더 우겨볼 걸 싶은 어머니의 진한 아쉬움도 함께 남는다.
뭔가 가득했던 다락방이 휑해진 다음에 다락방을 올라보면 갑자기 거처를 잃은 쥐 가족들이 황당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한다.
"익아~ 뭐 하노~ 할 일 없으면 방마다 돌면서 다마 좀 뽑아라~"
이것저것 챙길 것 바쁜 어머니, 혹시라도 농에 흠집 생길까, 장독 깨질까 염려 많은 중에도 부엌이며 마루 위 전구 챙기라고 이르시고, 형광등은 나보다 큰 작은형 몫, 전구는 돌리면 빠지니 내 몫, 하나라도 거들고자 우리들도 바빠진다.
점심 무렵이면 판판했던 빈수레에 이삿짐들이 가득 쌓인다. 일층 위에 이층 그 위에 삼층을 쌓을라치면 수레꾼 아저씨 수레 한 대 더 불러라 투정을 부리시고 어머니 웃돈을 약속하며 그 마음 달랜다. 별 짐 없어 보이던 이삿짐들이 꺼내서 쌓으면 또 얼마나 많던지...
"이사 가거든 집이 불처럼 확 일어나이소~"
"그동안 고마웠는데 받은 정도 다 못 갚고 이래 갑니더~"
어머니가 이웃들과 헤어짐의 아쉬운 인사들 나눌 참에는 나 또한 동네 친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눈다. 양쪽 주머니 불룩하게 아끼던 구슬과 딱지 골라서 챙겨 넣고, 남은 구슬 남은 딱지, 깡통 따고 상자 헐어 이 친구도 한 움큼, 저 친구도 한 움큼 마디마다 튼 손으로 정을 나눈다.
"놀러 올끼제?"
"말하마 뭐하노~ 내가 여 빼고 놀 데가 어디 있다꼬..."
어린 마음들에도 아쉬움은 어른 못지않았다.
혹시 잘못 묶어 떨어지는 물건은 없는지, 구덩이 덜커덩하면 장독 깨지지나 않는지 이리 보고 저리 보며 내 힘이야 무슨 보탬이 될까마는 수레 뒤에 달라붙어 열심히 민다.
어머니 깊은 한숨 소리 귓전으로 흘리며, 나는 어느새 친구들과의 아쉬운 헤어짐도 잊어버린 채 새로운 집,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새 기대를 품으며 등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민다.
******
오늘은 이사하는 날입니다.
낯선 곳에 정착하려니
예상치 못한 힘든 일이 무척 많았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놀아본 적도 없는데
손에 쥔 모래들은 다 빠져나갔고
밑빠진 독은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십 년 넘는 세월을 흘려보내고
코로나 덕분에 붙잡고 있던
욕망과 집착들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가진 것 다 잃었지만
얻은 것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제 몫의 성인으로 잘 자라 주었고
아내의 루프스는 별 탈 없이 잘 조절되었지요.
미국 처음 와 살던 집을 팔고
아파트로 옮겨가던 전날 밤,
아내는 서럽게 목놓아 울었어요.
그 상실감을 어찌 채워주나...
울컥하는 가슴 누르며 속다짐만 했지요.
'집은 꼭 다시 되찾아 주마...'
그 후로도 독은 쉽게 밑이 메워지지 않았고
희망은 저 멀리에 있는 것 같았는데..
길 위에 서서 길 찾아다닌 덕에,
가족의 사랑이 하나로 모인 덕에,
다행히 밑빠진 독에 다시 얕은 물 고였고
고인 물 정성스럽게 퍼담아
집 하나를 샀습니다.
미국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
작고 아담한 집 하나를 샀습니다.
첫 집처럼 크지도 넓지도 않지만
아내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돕니다.
웃음을 되찾은 것 같습니다.
다 잃고 고생시킨 주제에,
환갑 몇 년이나 더 지나서
혼자 힘 아닌 함께 힘 모아
간신히 집 되찾은 주제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저도 좋아서
히죽히죽 영구처럼 웃습니다.
***
첫댓글
"축 입주"
먼저 내 집 마련에 축하 드립니다.
앞에 쓴 글에는,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로 생각했습니다.
큰 나무가 하나 우뚝하니 있고
아담한 단층 양옥집이 그림 같습니다.
내집으로 이사한다는데,
그냥 울컥 눈물이 날라카네요.
그간 노고가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들과 오손도손
부인과 손발 맞추어 살아오신
마음자리님의 숨은 역경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작년 초여름, 길 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던 그 때에 아름문학 이벤트가 있었고 수필방과의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지요. 마음 흐트러지지 않게 늘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제 자리에 서있습니다.
콩꽃님, 참 고맙습니다.
축하드려요
사진속의 집은
내가 지어서 살고 싶은 집처럼
아담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좋은 기운이 가득모이는
서기집문~
흥하시길 바라고
이사도 무사히~^^
어제 이사 잘 마쳤고
오늘 다시 길 위에 있습니다.
식구들은 이삿짐 정리에 바쁘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길을 달립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가족들 모두 힘을 모아
멋진집에 이사를 하시는군요.
이제 집안에서
항상 웃음소리만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마당 넓으니 강아지도 키우고
축구도 하고
예쁜 정원도 만드시고
할 일이 많네요.ㅋㅋ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어쩌면 혼자 한 일이 아니라서
더 기쁜 것 같습니다.
제라님 감사합니다.
장롱 들어낸 자리에서 나온 구슬 딱지가
무지하게 반가우셨을 것 같아요.
제게 남동생이 있어
딱지 구슬이 어릴 때 기억에 있습니다.
문방구에서 산 동그란 딱지, 달력 접어 만든 네모난 딱지도 있었지요.
새집 장만 너무 축하드립니다.
복 많이 들어서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 누리세요.
그럼요.
구슬과 딱지가 그 당시엔
제일 귀한 보물이었죠. ㅎㅎ
헤도네님 감사합니다.
사진의 집이 이사가는 집입니까?
멋진집 이네요
아파트 보다는. 이런 가정집 건물이 정이 갑디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동감입니다.
크지않아 관리하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충성. 감사합니다.
예쁘네요.
마당에 선 아름드리 나무와
집이 그림입니다.
축하 드립니다.
여긴 현관 앞에 저런 큰 나무 심어둔
집이 참 많습니다.
앞으로 살며 저 나무와도 정 붙여야죠.
어젠 손으로 만지며 인사만 했습니다.
지언님 고맙습니다.
집이 참 아름답네요...
제가 좋아하는
벽돌집에 베이 윈도우..
너무 좋아요!
그곳에서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분들 모두 건강과
행복 누리시길
빕니다....!!
참 감사 하네요....
작은 단층집입니다.
활동 반경이 작아 노후에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ㅎ
수산님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예쁜집
건강과 행복이 가득해 보입니다.
성실한 성공으로,마련하신,집
축하드립니다.
축하박수 드립니다.
늘 큰 사랑 보내주시고
기도해주신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가족이 함께 했기에 더
아름다운 집이 되실것 입니다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닌
가족이 하나되어
이루신
큰 경사 십니다
오래오래
행복만 가득하소서^^
맞아요.
가족 함께해서 더 기쁩니다.
조한나님 감사합니다.
사진속의 집 입니까
너무 멋있고 운치 있네요.
이사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새롭개 장만한 아담한 집
수고 많으셨습니다. 행복하세요.
작고 아담한 집입니다.
늘 건강하세요~
한스님 감사합니다.
집이 너무 너무 이쁘고 멋져요.
" 길 위에 서서 길 찾아다닌 덕에, 가족의 사랑이 하나로 모인 덕에,
다행히 밑빠진 독에 다시 얕은 물 고였고 고인 물 정성스럽게 퍼담아
집 하나를 샀습니다. " 이 표현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아요.
아내에 대한 사랑이 멀리 한국에서도 느껴지는 좋은 글에 박수^^
멋쟁이 낭만쟁이 영구 마음자리님에게도 큰 박수와 축하를^^
주산 댓글 덕분에 더욱 기운이 납니다.
겨울꽃장수님 고맙습니다.
부인께서 서럽게 울었다는 대목이 낯설지 않네요
낡고 허름했던 타운 하우스에 처음 짐을 풀었을때
한심하고 막막하다며 펄썩 주저않아 오랫동안 눈물을 보였던 아내 생각이 납니다
집이 매우 단정하게 보이네요
새집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부인께서 눈물 보이는 그 마음도
그런 마음을 헤아리시는 단풍님
마음도 다 느껴집니다.
새집에서 잘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좋으실까...?
영구처럼 웃을 일만 계속 되시길...
가족과 함께 늘 행복하세요!
좋다기보다는 짐 하나를 내려놓아
홀가분하고 편안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아담하고 이쁜 새집으로 이사하는군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집은 오래된 집인데 이사 하니 새집입니다. ㅎ
나이들어 주책인 줄 모르고 호들갑 떨어 보았습니다.
이 추억방이 그런 속내 털어놓게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을 사서 이사를 하셨군요^^
타국에서 노력 해서 집을 산다는
의미는 여기보다 크고 보람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축하 드립니다
앞으로도 두 내외분이 무탈하고
평화로운 시간 지내십시요
필담님,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구봉선배님, 요즘 뜸하셔서
안부 궁금했습니다.
잘 계시지요?
고맙습니다. 잘 살겠습니다.
인생사가 세옹지마라고 하는데요.
노후에 마련한 내집 감회가 남다르신거죠.
행운의 여신이 늘 맘자리님 편이라고 믿습니다.
네. 덕을 많이 본 삶이라 생각합니다.
나무랑님 감사합니다.